[열린광장] ‘오 솔레 미오’가 열어준 길
6. 25 한국전이 일어난 뒤 서울의 모든 중고등학교가 휴교했을 때였다. 전국 중고등학교 음악경연대회가 국제오페라협회 주최로 배재학당 강당에서 열렸다.
나는 테너 파트로 노래 부르기로 했는데 대회가 열리는 날에 반주 교사가 나타나질 않았다. 할 수 없이 노래부르길 단념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 다른 참가자들이 노래를 잘못 부르는 데 화가 난 나머지 무턱대고 강단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고 맨 나중에 노래 부른 학생의 반주자에게 반주를 부탁했고 그 반주로 지정곡 ‘가고파’와 자유곡 ‘오 솔레 미오’를 불렀다. 청중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고 반주자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하고 강당을 내려왔다.
심사발표가 나왔다. 다섯 학생이 합격했다. 넷은 여학생이었고 나머지 한 명이 나였다. 이 경연대회에 합격한 학생들은 서울 음대에 응시하면 실기는 면제받는다는 말을 들었다. 상장과 놋그릇 한 벌을 상으로 받았다.
이듬해, 나는 서울대 음대에 진학하려고 음악 교사에게 입학추천서를 부탁했다. 그랬더니 “경중아, 음악을 전공해 봤자 나처럼 음악선생밖에 더 되겠니. 그러지 말고 더 좋은 대학에 가서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는 말이 돌아왔다.
성악가를 꿈꾸는 내게 음악대학에 가지 말라니 그럼 무얼 전공하란 말인가. 할 수 없이 기독교 대학인 연희(연세)대학교 입학요강을 살펴봤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이 대학에 박태준 박사가 음악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입학하면 신학과 더불어 음악도 공부할 수 있다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단 말인가. 대학에 입학한 뒤 박 박사로부터 화성학을 비롯한 과목을 배웠음은 물론이요, 합창지휘를 공부하기 위해 박 박사가 이끄는 오라토리오 합창단에 들어가 합창지휘도 공부했다. 뿐만 아니라 주일에는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오랫동안 봉사했다.
서울 음대로 나의 삶의 길이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길이 놓여져 있는 연희 신대로 나는 걸어가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고 싶은 삶의 길을 걸어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 속담에 ‘길로 가라면 메로 간다’는 말이 있다. 일마다 엇나가기만 하는 사람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러지 않으려면 이미 놓여져 있는 길을 따라 순리대로 걸어가야 하는데 이 역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길이 열려야’ 한다. 실력과 운이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놓여져 있는 길로 걸어갈 수 있다.
경연대회에서 “나의 햇님! 내게 비쳐다오!(오 솔레 미오, 스탄 후롬 테아 테)”를 불렀던 내게 햇님이 열어준 길은 아마도 목회자가 아니었을까.
운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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