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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새날

새날
 
신호철

신호철

날이 밝아오고 있다 / 나는 네게 무엇이었는가 / 눈길을 걸어야겠다 / 남에서 북으로, 동에서 서로 / 내 발이 녹고 눈이 녹을 때까지 / 불꽃처럼 타오르리라 / 다시 네 앞에 설 때 부끄럽지 않게 / 활 활 태우며 살아가리라 / 남은 재 한 줌까지
 
음력 설이다. 하늘 저편 지구의 반대편 사람들은 바쁘다. 새로운 해가 떴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사람들은 고향을 찾아 떠난다. 차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거북이 걸음을 걸어도 기어코 떠나고야 만다. 하늘의 반대편 이곳 시카고는 조용한 설을 맞이하고 있다. 신문이나 SNS를 통해 정보를 얻지 않으면 구정인지도 모르고 지나게 된다. 고향이 너무 멀어서일까? 너무 오래 이곳에 살아서일까? 소리 없이 새로운 하루가 이곳에서도 움트고 있다.

 
해가 뜨는 것과 지구가 돌고 있다는 사실은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 지구 위 모든 나무와, 들녘의 꽃들과, 바다 같은 미시간 호수와, 빌딩의 숲들과, 그 사이를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들 모르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거대한 우주의 하늘 속에서 매일 기울어진 체 스스로 돌고 있다는 사실은 입증되어진 지 오래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서로 부딛히지도 않고 서로의 거리를 유지한 채 잘 살아가고 있다. 서로 끌어당기기도 하고 서로 밀쳐내면서 기막힌 조화를 유지하고 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을 지나고 있는 오늘 새벽 창가에 눈이 내렸다. 얇은 솜이불을 펼쳐 놓은 듯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이 되었다. 얼마 후 먼동이 트고 하루가 밝아 올 것이다. 밤과 낮의 구별은 단순히 공간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먼 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바라봄의 위치에 따라 밤이 될 수도 한편으론 낮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판단은 우리의 시선에 따라,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진실이 되고 거짓이 될 뿐이다.
 
벽난로에 불을 부친다.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나무가 탄다. 벌겋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 침잠해 있던 마음의 열정이 다시 일어난다. 나무를 뒤집어 주면 더 활 활 타 오른다. 삶의 열정이 식어 질 때 무섭게 타오르던 불꽃도 사그라질 것이다. 불꽃같이 타오르는 새날이 되기를 마음 속에 다짐해 본다. 일 년을 불꽃같이 살아간 후에 다시 새날 앞에 설 것이다.
 
설을 맞으면서 사람들은 소원 하나쯤은 모두 가지고 있다. 가족의 행복을 소원하기도 하고, 무너져 내린 건강을 회복하기 원할 것이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기를 소원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도모하기를 원할 것이다. 꿈이란 의지로 세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새싹이 자라나듯, 꽃이 피어나듯, 낙엽이지듯, 오늘같이 눈이 내리듯, 구름이 바람에 흐르듯이 내 안에서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생명력으로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아침이 오고 있다. 새날에 대한 기대와 감사가 함께 다가오고 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얼마나 견딜 수 없는 설레임인가?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일 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음은 또한 얼마나 귀한 일들인가. 나에게도 작은 소원이 있다. 내 속에 생각과 언어들을 꾸밈 없이 표현해 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원하고 있다.
창밖에는 소리 없이 눈이 내리고 아침은 샤프란 향기처럼 내 마음을 채우고 있다. 자주 찾는 호수에 나가 그리운 사람에게 그리움을 전해야겠다. 어서 일어나라고.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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