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휠체어 탄 장애인 이용 힘들어”
오늘(3일)은 유엔이 지정한 제32회 ‘국제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라는 국제 장애인의 날 목표에 맞춰 장애인들의 삶을 보다 깊이 있게 취재하기 위해 수소문한 끝에, 휠체어 인생 25년차라는 한인 장애인 박 모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플러싱에 거주 중인 77년생 박 씨는 취재가 시작되기 전 “내가 휠체어를 이용하는 한인 장애인 전부를 대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했다. 그리고 취재 당일, 그는 “기사를 통해 아주 작은 변화라도 생겼으면 한다”며 용기를 내 조금 특별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박 씨의 조금 특별한 하루를 함께해봤다.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평범한 청년이었지만 1992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 온 박 씨는 아이스하키와 배구를 즐기는 활발한 성격의 청년이었다. 적어도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사고를 겪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1999년 겨울, 모든 것이 변했다. 사고가 나던 해의 12월 18일, 퀸즈 키세나파크 인근 도로를 운전 중이던 그는 차량 전복 사고를 겪게 된다. 박 씨는 “순식간에 차량이 뒤집혔고, 열려 있던 썬루프로 몸이 튕겨 나갔다”며 “이후 내 차가 내 다리 위를 밟고 지나갔다”고 전했다. 이후 17일 동안 코마 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그는 깨어난 후에도 2년 동안 사고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을 경험했다. 사고로 중추신경계가 손상됐기 때문이다. 사고 후 이전과는 180도 다른 하반신 마비자의 삶을 살게 된 그는 “지금도 사고 당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철은 20년 만에 타봅니다” 지난해 인구조사국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약 7%의 뉴욕 시민은 보행 장애를 가졌지만, 뉴욕시 전철역 472개 중 미국 장애인법(ADA)에 따라 다양한 장애를 가진 승객을 수용할 수 있고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이용 가능한 역은 27%뿐이다. 이 소식을 들은 박 씨는 “비록 나는 차량을 운전하고 다니지만, 내가 전철을 이용하던 수십년 전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바뀌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 조금 특별한 도전을 해보겠다”고 밝혔다. 20년 만에 전철을 타고 단골 식당을 찾기로 한 그의 여정은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전철역 엘리베이터를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빨리 찾을 수 있었지만, 그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용 가능한 시설이 있다고 해도, 노숙자 단속이 잘 되지 않아 전철역 엘리베이터에서 노숙자들이 자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열차와 플랫폼 사이 넓은 간격 때문에 휠체어 앞바퀴를 들고 열차에 탑승한 박 씨는 “기자님, 지하철에서 휠체어 탄 사람 자주 보셨어요?”라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많지 않았던 기억이다. 박 씨는 그 이유에 대해 “수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휠리(Wheelie·턱에 걸려 넘어지거나 틈새에 바퀴가 끼이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휠체어 앞바퀴를 들고 이동하는 행위)’를 통해 열차 탑승이 가능하지만,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열차와 플랫폼 사이 틈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직원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DA에 따르면 플랫폼과 열차 사이 가로 간격은 2인치, 세로 간격은 4인치를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장애인 승객을 고려하지 않았던 100여년전 건설된 뉴욕시 전철 시스템에서는 이 법이 대부분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다. ━ “정책보다는, 사람들 인식부터 바뀌었으면” 휠체어 이용 어려운 건물들 식당도 가던 곳만 가게 돼 ‘억세스-어-라이드’ 불러도 지연 심해 결국 자차 구입 택시들, 장애인엔 추가 요금도 ◆“캔 유 헬프 미?” 7번 전철이 지나는 퀸즈 전철역 중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역은 5개. 이중 하나인 우드사이드역에 도착해 식당으로 향하던 길, 사고가 발생했다. 보행 신호등이 설치되지 않은 골목길을 건너던 박 씨가 빨리 달리는 차량을 피하고자 급하게 이동하다가 보도 턱에 걸려 넘어진 것. 휠체어는 반쯤 뒤집어졌고,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진 박 씨는 큰 소리로 “캔 유 헬프 미?”를 외치기 시작했다. 성인 5명이 달려들어 그를 바닥으로 옮겼고, 박 씨가 직접 휠체어 장비를 체크한 후에 다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탑승할 수 있었다. 박 씨는 “신호등이 없는 거리라서 차를 피하려다가 급한 마음에 사고가 난 것 같다”며 “이래서 처음 가는 동네는 잘 안 가려고 하고, 가더라도 차를 갖고 가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방금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서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모르는 사람이 휠체어를 갑자기 컨트롤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어 더 불편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식당, 도전해보고는 싶은데요 식당으로 들어선 박 씨는 익숙한 듯 직원에게 인사를 건넸다. 박 씨는 “휠체어가 화장실에도 들어갈 수 있어야 하는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식당을 가보고 싶어도 가던 곳만 가게 된다”며 “전에 베이사이드에 위치한 한 한식당을 갔는데, 정문으로는 휠체어가 입장할 수 없어 쓰레기 버리는 주방 쪽 통로로 들어갔다”고 전했다. ◆조금 특별한 그의 운전법 식사 후 플러싱 쪽으로 돌아온 그는 ‘조금 특별한’ 차량 운전법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차량 문을 열고, 팔 힘을 이용해 운전석에 탑승한 그는 휠체어를 분해해 차량 옆좌석에 싣고는 운전 방법을 설명했다. 하체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운전대 좌측에 설치된 손잡이를 활용해 브레이크와 엑셀을 밟아야만 했다. ◆장애인은 요금 더 받습니다 박 씨도 사고 이후 바로 차량을 운전한 건 아니었다. 브루클린에 있는 학교에 가기 위해 노인 및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인 ‘억세스-어-라이드(Access-A-Ride)’를 이용했으나, 여러가지 불편함이 많았다.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최소 하루 전까지 예약을 해야 했고, 예약에 성공해도 약속한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게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30분 이상 차량이 안 올 경우 일반 택시나 다른 차량을 이용한 뒤 뉴욕시정부에 청구할 수 있는데, 이때 박 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급히 가야 하는 곳이 생겨 한인 택시업체에 연락했는데, 장애인은 요금을 더 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것. 그는 “장애인을 태울 때 추가 요금을 받는 것은 불법이지만, 그럼에도 당당하게 요금을 더 받겠다고 했다”며 “그래도 신고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정책보다는, 사람들 인식부터 바뀌었으면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냐는 질문에는 “마트에 가면 장애인 지정 주차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주차된 일반 차량을 많이 보게 된다”며 “정책보다는, 사람들 인식부터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윤지혜 기자휠체어 장애인 휠체어 앞바퀴 장애인 승객 국제 장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