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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자연의 한계

우주 만물은 저마다 정해진 한계 내에서만 존속할 수 있기에 이를 넘어서면 기존의 상태가 보존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본질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경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이는 전체를 망라하는 물리적 법칙에 의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의 일정한 궤도를 따라 운행하면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낸다. 지구 환경은 이런 운행 원리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과 지상의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으로 더 복잡, 다양해진다.     인류는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현상들에 적절히 대처하면서 생존하고 있다.  즉, 자연에 얹혀 그 안에서 자연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필요한 것들을 취하면서, 생로병사의 여정을 이어간다.      자연은 우리를 낳고 기르며, 또 후대로 이어주는 생명과 삶의 근원이고 터전이 된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인구가 늘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자연을 크게 훼손하고 오염시키고 있다. 또 과소비로 인한 자원 고갈 등으로 인해 자연계의 부정적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자연의 훼손 정도가 크면 클수록 물리학의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하려는 기전 또한 강하게 작동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자연의 몸부림을 인류나 여타 생명체들이 감당하며 견뎌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근래에 들어 전례 없는 기상 이변 현상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폭우·폭설·혹서·혹한 현상이 급증하고 있다. 인류는 이미 그 재앙의 범주에 에워 쌓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의 기상 이변이 곧 우리 앞에 밀어닥칠 재앙의 전조와도 같아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이제는 지체할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인다. 우리 모두 지구의 자연 회복을 위한 모든 조치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때이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자연 한계 자연 회복 여타 생명체들 지구 환경

2024-01-30

[김형석의 100년 산책] 120세도 바라보는 시대, 장수가 축복이 되려면…

100세가 넘으면서 가장 많이 받는 인사가 있다. “120세까지 사시라”는 축하 말이다.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고맙다는 표정으로 대신한다. 그런데 내 가족 안에서는 그런 인사가 없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고, 104세인 지금도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조사 통계를 본 적이 있다. ‘100세까지 살고 싶으냐’는 물음에 한국 사람은 51%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일본인은 22%만이 그때까지 살고 싶다고 했다.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장수인구가 많은 나라다.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100세 이상 인구는 9만 명이다. 우리보다 10배가 높은 셈이다.   한국과 일본, 100세를 보는 다른 눈     그런데 왜 일본인들은 78%가 100세 이상 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100세 이상의 장수를 행복한 삶이라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왜 120세까지 살라는 인사를 받으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못 가졌을까.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셔 주세요”라는 인사라면 머리를 숙이면서 “감사합니다”라며 답례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첫째 원인은 100 이상의 삶은 신체적 부담과 고통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어려움이 있다. 나도 95세 이후부터는 내 정신건강이 신체적으로 노쇠한 육신을 업고 다니는 부담을 느낀다. 저녁 10시가 되어 잠드는 시간에는 편안한 안식을 느낀다. 하루의 짐을 풀어놓는 가벼운 자세다. 반대로 아침 기상 시간이 되면 일어나는 것이 싫어진다. 내 몸이 천근만근 같아지면서 “30분만 더 자면 안 되나”라며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심정이다. 기상 자체가 주어진 부담이다.   이런 상황을 직접, 간접으로 경험해 보는 사람들은 “100세라는 산(山)을 넘어서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100세 이상 사는 가족이나 친지를 보는 사람은 그런 상태 이전까지의 인생을 원하게 된다. 정신이 신체의 노예가 되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100세 이상까지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통계에 따르면 가장 많은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긴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소원이다. 오랜 기간의 행복이 인생의 목표다. 그보다 낮은 수이기는 하나 두 번째가 가족들의 성공과 행복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것이 인간적 본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고 싶다는 기대도 있었다. 죽기 싫어서 산다는 대답도 있으나 20% 정도뿐이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마음으로 살아     100세까지 살기 싫은 이유는 무엇인가는 물음에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많았다. 그에 뒤따르는 것이 신체의 노쇠현상에서 오는 걱정, 경제적 불안감, 더 좋은 삶이 불가능하다는 예측, 평균수명이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어떤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연사가 으뜸이다. 죽음에 따르는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는 죽음의 분위기가 싫기 때문이다. 같은 희망의 반쯤은 가족들의 돌봄 속에서 조용히 가고 싶다는 기대였다. 평상시와 같이 잠들었다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도 모르게 깨어나지 않는 죽음은 복을 받은 편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은 어떠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90까지는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되었다. 그런 희망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막상 90이 되니까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라고 스스로 반문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했는데 100세까지 연장되었다. 지금은 더 갈 수 있고 가야 할 인생의 길을 스스로 포기할 수가 없어 계속하고 있다. 평균수명과 건강나이가 10년은 더 연장된 세상이니까. 그러니까 100까지는 누구나 도전해도 좋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는가. 행복과 보람을 유지할 수만 있으면 누구나 의욕과 희망을 품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100세가 되었다고 스스로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앞으로는 120세까지도 연장되는 세상이 올지 모른다. 구한 말에는 왕실에서 80세 장수한 노인을 찾아 지팡이를 선물했다. 20년이 연장되어 나는 100세에 청와대에서 주는 지팡이를 받았다. 지금 20~30대의 젊은이들은 20년쯤 더 연장될 수 있을지 모른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명감     그러나 그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은 아니다. 자연인의 한계를 넘어 삶의 정신적 가치와 의미를 창조해 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전이다. 자연의 한계를 넘어 정신적 문화에 동참하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니까. 인간은 시간 안에서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사회와 더불어 창조해 가게 되어 있다.   역사를 누가 이끌어 왔는가. 삶의 가치와 의미를 위해 최선의 삶을 영위해 준 사람들이다. 이에 뒤따르는 또 하나의 삶의 창조적 영역이 있다. 내가 사는 공동체 의무를 사명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나와 더불어 가족을, 우리와 함께 민족의 행복과 발전을 위한 삶이 본연의 책임이다. 정신적 가치를 창조하는 노력과 공동체의 기본이 되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주어지는 일과 사명 의식을 갖추고 산다면 100세라는 시간적 한계는 사라지게 된다. 나이란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진실이 된다. 나 같은 늙은이도 주어진 일이 있는 동안은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로 삶을 계속하고 있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장수 축복 정신적 가치 시간적 한계 여론조사 통계

2023-09-01

[삶의 향기] 과학의 한계

"종교와 철학, 과학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것을 포기하겠습니까?"     종교학 개론 첫 시간 교수님의 질문이다. 워낙 추상적인 단어들이라, 각각의 개념에 대한 일정 수준의 합의 없이는 생산적인 논의가 어려운 질문이다. 각각의 개념과 인문학적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는 것이 교수님의 의도였을 것이다.   종교와 철학, 과학은 '진리 탐구'라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협력도 하지만, 방법이 다르다 보니 주로는 대립과 갈등이 부각된다. 스님과 하버드 대학교 뇌 과학자가 '명상의 효과'를 언급했다고 가정해 보자. 대중들은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할까.   불가에서 인과는 결정론이 아니라고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는 인과의 사전적 의미만을 고려한다면 현재 나의 모습은 1초 전의 모습과 환경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를 계속 뒤로 미루면, 여러분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이 시간에 이 글을 읽을 것이 정해진다는 '라플라스의 악마'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불교의 인과론은 이론적으로는 결정론에 가깝다고 했던 불자이면서 서울대학교 물리학부 명예교수였던 고(故) 소광섭님이나 불교의 진리와 과학이 충돌한다면 과학을 따르겠다는 달라이라마의 입장은 과학 만능시대를 살아가는 불교인들에게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현대사회에서 과학을 부정하거나 도외시하는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오늘은 과학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과신하는 과학적 결론들은 '관측'에서 시작한다. 일단 관측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아주 작거나(소립자) 큰 것(은하수),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것(전자기장), 갈 수 없는 곳(지구 핵심), 고고학, 우주론, 자연사, 진화론 등에서 다루는 과거사건 등은 관측 자체가 불가능하다.   관측 자체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한쪽 눈을 감고 다른 눈으로 코를 주시하면 코가 보인다. 안경 쓰신 분들은 안경테를 의식하는 순간 평소 보이지 않던 안경테가 보인다. 물리적으로 늘 시야에 있던 코와 안경테이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관측은 관찰자의 의식(경험 또는 지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의 이론 적재성(의존성)'의 전형적 예다. 부처님께서 경계하신 분별과 주착은 과학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자의 태도 역시 지적한다. 과학자들 역시 그들이 독선적이고 편협하다고 비난하는 종교인들 못지않게 독선과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자들은 종교인들이 창조론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비난하지만, 진화론자들 역시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고, 물리학계에서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를 인정 안 하는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당한다.     과학 이론과 방법론은 진리 공부에 크게 기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하늘에 있는 비행기를 보고 비를 내려달라는 것도 문제지만, 과학 만능주의 역시 인류가 경계해야할 또 다른 미신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과학 한계 과학 이론 철학 과학 과학 만능주의

2023-08-14

[독자마당] 인공지능의 한계

지능이 높은 인류는 각종 유익한 도구들을 만들어 사용하며 오늘날의 문명을 이뤘다. 그런데 이제는 도구의 발달에 더해 인간의 지능활동까지도 대신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의 시대를 맞고 있다.       20년 전 한 미래학자는 그의 저서에서 기술·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특이점’의 시기를 40년 후로 예측한 바 있다. 그 당시엔 미래학자 특유의 공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이를 의심하거나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이미 그 시기가 우리 앞에 바짝 다가선 듯하다.     요즘 어디서나 챗GPT가 화제다. 이는 인간이 오래도록 쌓아온 모든 지식의 기록이나 머릿속 기억들을 컴퓨터에 저장하고, 적절한 알고리즘에 따라 도출해 내는 기법으로 사람과 어떤 부문이라도 어렵지 않게 소통이 가능하다.     인간의 두뇌는 정신적,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다량의 테이터를 입력 저장하고 필요에 맞춰 내놓게 되니 인간의 기억용량과 지각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그렇다면 특이점에 닿았을 때 오히려 인간이 기기의 지배를 받으며 기계의 아바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러한 기기도 결국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이를 조종해야 하고 삶의 편의를 위해서만 쓰이도록 해야 한다. 창을 만들면서 방패도 함께 만들듯이 그렇게 될 것으로 믿는다.     인간이 만든 어떤 기기도 조물주가 창조한 인간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런데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인간이 하던 일을 모두 기기가 대신하게 되어 인간은 할 일이 없이 두손 놓고 있어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는 변환의 새 단계마다 이전보다 다 앞으로 나가려, 남보다 더 앞서려 새 일거리를 만들어 내는 특성이 있어 그때가 와도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윤천모 / 풀러턴독자마당 인공지능 한계 인공지능 시대 디지털 기술 미래학자 특유

2023-03-26

[독자 마당] 인간의 한계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인간은 월등한 지적 능력을 이용해 다른 생명체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이용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사실상 다른 생명체의 지배자이고 나아가 지구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구는 무한대의 우주에서 보면 하나의 작은 행성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풀 수 없는 다양한 생명체의 생성과 존재의 신비가 존재한다. 그런데 인간은 진정 이 모든 생명체의 상위에 설 수 있을지….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인류는 재앙 수준의 큰 피해를 입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코로나에 맞서고 있지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이렇게 전 인류의 역량을 모아도 이 미미한 바이러스에 역부족이라면 진정 인간의 위상이 모든 생명체의 맨 위가 맞는지 의문이다.     동물의 왕이라는 사자도 서식지의 하위동물들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하위 생태계가 존속되기에 역설적으로 사자의 위치도 유지되는 것 아닌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나 동물의 왕인 사자도 주어진 영역 안에서 저마다의 생존을 지속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따른 일정한 질서 안에 있게 되는 것이리라.     생태계의 약육강식 법칙은 혼란이고 무질서인 듯 보이지만 이는 공존과 조화를 위해 필요한 전제로 이해된다. 이러한 모든 현상을 보면 그 이면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 자연의 섭리가 개입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주체가 우리가 일컫는 조물주, 창조주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우주와 우리가 사는 지구의 모든 생성,존속,운행의 주체는 조물주이고, 창조주이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피조물 중 하나다. 따라서 인간도 겸허하게 자연의 섭리에 따른 공생,공영의 원리에 맞춰 나감이 마땅한 일이다. 윤천모 풀러턴독자 마당 한계 조물주 창조주 사자도 서식지 하위 생태계

2023-02-12

[독자 마당] 국방력의 한계

한국의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국방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를 보면 외세로부터 수도 없이 많은 침략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 당시의 사람들이나 위정자들은 국방력을 튼튼하게 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인접한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지만 이들 3개국은 우리나라보다 국토로 넓고 인구도 많다. 따라서 한국보다 국력도 강하다. 아무리 플라이급 선수가 기량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헤비급 선수를 이길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침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국방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외교다. 만일 중국이 침략한다면 러시아와 일본이, 일본의 공격을 받게 되면 러시아와 중국이 도와주도록 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미국과의 동맹 관계 덕이 크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쏜다고 해도 절대로 남한을 침략하지는 못할 것이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질 경우 북한 땅이 초토화된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한 위정자들이 정권 유지를 위해 분단 상황을 이용하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다. 아무리 국가가 분열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민족의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앞서 있다.     광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한국은 북한에 대해 유화정책을 펴야 한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떡을 주다 보면 미운 자식의 마음이 돌아설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은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북한을 계속 다독거려야 한다. 사람이 이성을 잃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효원 / LA독자 마당 국방력 한계 국방력 강화 현재 한국 플라이급 선수

2022-10-23

[디지털 세상 읽기] 소셜네트워크의 한계

2004년에 설립된 페이스북(메타)은 꾸준히 변화해 왔지만 그 핵심에는 ‘소셜 네트워크’라는 기본 틀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모르는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을 꺼리는 Z세대가 등장하면서 이런 네트워크 방식에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요즘 10, 20대의 눈과 시간을 빼앗는 건 틱톡이지 페이스북이 아니다. 그런데 틱톡은 친구들의 소식을 확인하는 앱이 아니라 인기있는 영상을 보는 곳이다. 즉, 네트워크라기보다는 매스미디어에 가까운데 매스미디어보다 훨씬 더 사용자 맞춤형 콘텐트를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틱톡의 무서운 성장을 지켜보던 메타는 최근 큰 결단을 내렸다. 틱톡을 본뜬 형태로 변신하기로 한 것이다. 메타는 자사의 소셜네트워크에 ‘발견 엔진(discovery engine)’이라 불리는 알고리듬을 채택해 사용자들의 관심을 빠르게 파악하고 시선을 붙들어 둘 만한 영상을 보여주는 틱톡의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신경써서 들여다본 사용자들은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나 매체가 올려서 인기를 끌고 있는 포스트가 자신의 뉴스피드에 올라오기 시작한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이는 메타의 서비스들이 소셜 ‘네트워크’ 역할을 서서히 줄이고 틱톡과 같은 ‘디지털 매스미디어’가 되려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치 않다. 유명한 스타들이 “인스타그램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고 시위하면서 사용자들이 이런 탄원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메타 측에서는 그래도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대다수의 사용자는 새로운 변화를 좋아한다며 이번 결정을 고수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소셜네트워크가 아닌 개인화된 미디어를 원한다는 것이다. 박상현 / 오터레터 발행인디지털 세상 읽기 소셜네트워크 한계 디지털 매스미디어 사용자 맞춤형 소셜 네트워크

2022-08-12

[독자 마당] 자유의 한계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이 인간에게 최상위 가치는 자유다. 욕구 충족을 위한 정신적,물리적 작용에 외부의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무한 자유를 희구함이 인간의 본능적 성정이다.     그러나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유 욕구가 한정된 영역에서 서로 막히고 부딪칠 때의 선택지는 양보하고 타협하며 상생의 도를 지키는 것이다. 자유의 걸림돌은 외부의 간섭, 견제인데 실상 이런 막힘없이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없음은 이율배반적이다.     현재 세계 대다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유사 이래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시켜온 가장 이상적인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듬어진 제도하의 사회나 국가가 소속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킬 만큼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누구나 최대한의 자유를 위해, 절제된 한계에 갇히지 않고, 더 확고한 자기 보존을 위해 더 가지려는 본능적 욕구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쟁이 유발되고, 이를 조정하기 위한 장치와의 줄다리기에서 어느 정도의 갈등과 혼란도 파생된다. 하지만 이 또한 자유의 한 부분이고 인간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만인의 자유 신장을 위한 최상의 장치인데도, 세계 도처에서 이를 제한하는 권위주의가 작동하고 있다. 이는 구성원 모두의 의지에 반하는 힘 있는 소수가 통치권을 장악하고 유지하려는 것 때문이다.    중국,러시아,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나 독재 국가들은 권력과 체제 유지를 위한 힘을 가지기 위해 경제,기술 분야 등 필요한 부분은 개방하지만, 국민의 보편적 자유를 제한하는 반 인권적 통제를 견지한다. 작금의 국제 정세를 보면 언젠가 세상 모든 사람이 부당한 억압에서 벗어나 천부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날이 올지 의문이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자유 한계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유 욕구 천부적 자유

2022-08-09

스스로 한계 정하지 않았나 돌아보고…불편한 것 시도하면 성장의 기회 열려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지는 것을 마다하고 다소 어려워 보이는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는 늘 쉽지 않다. 친근한 느낌을 주는 전혀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는 일상의 삶의 방식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을까? 종교작가인 닐 도널드월쉬는 “인생은 당신의 안락한 구역의 끝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강인함은 역경의 습격을 무찌르는 영혼의 잠재력이다. 담대한, 자신감, 확신, 인내, 건실함이 모여 강인함을 만든다.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자   새롭고 두려운 일을 시도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시작할 때는 불편하다. 시도할 때는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 더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잘할 수 있을지, 혹은 하는 것이 유익할지 확실하지 않게 느껴지며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기에 바빠질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우선 충분한 정보를 찾아보자. 낯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수영을 배우는 것이 두렵다면 낮은 물속에서 놀면서 환경에 친숙해지면서 두려움은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며 도전에 성공했을 모습을 상상하며 즐겁게 시도해 보는 것이다.     ▶틀에 박힌 패턴을 깨 보자     내성적인 성격인 사람들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말이 거는 것을 힘들어한다. 이런 사람들이 먼저 하루에 한 명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를 도전해 볼 수 있다. SAT 공부를 하면서도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절대 만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공부한다. 왜 그럴까? 머리가 나빠서 정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고, 만점을 받을 만큼의 노력을 더 들어야 하는 것이 싫거나 겁이 나는 학생들도 있다. B를 받는 학생들 중에는 그만큼만 노력하기를 원하고 더 이상의 노력을 들이는 것이 싫다고 하는 학생들도 간혹 있다.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상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자신에 대한 한계를 스스로 정해 버리는 일은 매우 쉽다. 하지만 이것을 깨고 나올 때 기분 좋은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수 있다. 참 희망적이며 기분 좋은 이야기다.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새로운 일을 하나의 위협으로 간주하며 가능성보다는 잠재된 위험을 먼저 본다.     ▶실패를 즐길 수 있다면     걸음마를 뗄 때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안전하고 당당하게 걷는 것이 가능할까? 누구나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서 다시 걸음을 걷기에 가능한 일이다. 심리학자 스나이더는 그의 책 ‘희망의 심리학(the Phychology of Hope)’에서 힘든 순간, 우리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후에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정신적 노력을 기울이면서 의지력이 가해진다고 했다. 의지력이 강한 사람은 이전에 난관을 극복한 사람이다. 사춘기 청소년들은 성장하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도전의 어려움 때문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한 것은 공포감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들이 겪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그 어떤 시기보다 강렬하다는 사실을 교사와 부모는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배움의 과정에서 반드시 겪게 될 실패에 대해 우리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므로 두려움을 떨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부모도 도전하자     청소년 재단을 운영하는 필자는 수천 명의 회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효율적인 매체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요즘 십대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디스코드’를 소개받았다. 카카오톡과 같이 여러 사람들이 그룹 방을 만들어 소통할 수 있으며, 사진과 같은 파일 전송도 용이하고, 화상 미팅도 가능한 유용한 애플리케이션이지만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부분 때문에 통신수단으로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배우기에 어려운 것도 없었다. 그전 친숙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하는 부담에서 오는 거부감이 컸다. 거기다 문제는 나 한 사람 바꾸는 건 쉬운 일이지만 모든 학부모들에게 나가는 공지도 바꿔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 되고 있다. ‘굳이 바꿔야 하는가?’라는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술도 배우고, 신세대 자녀들이 사용하는 것을 공부하고 함께 익숙해지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를 배워 나가보자고 권유하고 싶다.     ▶문의: (323)938-0300   www.a1collegeprep.com  새라 박 원장 / A1칼리지프렙한계 불편 심리학자 스나이더 정신적 노력 사춘기 청소년들

2022-07-31

[수필] 인내심의 한계

어느 병이나 발병부터 낫을 때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낫는데도 완쾌될 때까지는 불안하다. 그래서 환자나 가족은 그안에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5월 중순 쯤 큰 딸이 장기 출장을 다녀오면서 코로나에 걸려왔다. 출장 2주전에 부스터 2차도 맞았다. 평소에 유난할 정도로 회사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철저히 방역을 해왔는데 그만 목이 가라앉고 말하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사위는 두 손주를 건사하고 나는 딸이 먹을 음식을 날마다 만들어 날랐다.     남편과 나는 음식을 현관 앞에 갔다 놓으면 딸이 들여다가 먹었다. 사위는 두 애들과 식사를 밖에서 해결했다. 배달해서 셋이서 공원에서 주로 먹고 일체 집에서는 먹는 일은 안했다. 열흘만에 딸이 음성으로 나왔다. 그래도 마음이 안놓여 며칠을 더 격리하고 검사를 했다. 천만 다행으로 모든 증세도 없어지고 정상으로 되었다. 그런데 한참 후에 이번에는 사위가 걸렸다. 냉정하리만치 철저히 격리하고 방역을 했는데 알고보니 교회에서 같이 봉사하는 팀원이 확진자였다고 한다. 본인도 께름직해서 4일 후에 피시알 테스트를 했는데 음성으로 나와서 우리와 야외에서 피자도 먹고 마켓도 갔다. 며칠 후에 증세가 있어 다시 집에서 신속검사키트로 검사했더니 양성이었다.     가끔 PCR테스트 오류로 코로나를 확산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뒤이어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한 둘째 손녀가 걸렸다. 우리 부부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몸이 찌뿌듯하면 테스트를 했다. 음성으로 나왔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날마다 비타민을 정성껏 챙겨 먹고 무리하지 않으려고 사위와 손주 먹을 것도 손이 덜 가는 것으로 만들고 사다가 주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방에서 격리하고 있는 사위와 손주의 무료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날마다 찾아갔지만 막상 아픈 상태에서는 낫는 것 이외에는 어떤 말도 큰 위로가 되지 않으므로 창 밖에서 몇 마디 하고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부녀가 격리하고 있던 중 6월 29일이 사위 생일이었다. 딸이 생일 밥상을 차려 가족 카톡에 올렸다. 쟁반 세개에  따로 따로 밥, 미역국, 엘에이 갈비, 나물, 오이지 등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놓았다. 그 쟁반을 들고 방앞에 놓아두면 각자 가져가서 혼자서 먹는다고 하였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쉴 새없이, 소리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말을 하면 같이 밥먹고 있는 남편이 알까 봐 숨을 죽였다. 어떤 눈물일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대해 여태 참아왔던 울분일까? 2년 반동안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있는 보이지 않는 왕관 모양의 바이러스에 대한 인내심이 증오로 나타나는 것일까? 유난히도 제 아빠 생일이면 두딸이 바이얼린과 플룻으로 생일 축하 곡을 멋지게 연주했는데 이런 즐거움을 앗아간 서운함에서 였을까? 온 식구가 한 식탁에 둘러 앉았던 그때가 얼마나 소중했던가 새삼 그리웠다.  한바탕 실컷 눈물을 쏟고나니 코로나를 꼭 이겨내야 되겠다는 결심이 더 강해졌다.     다른 자식들에게도 알렸다. 오래된 집이라 어둡고 작은 방에서 격리하고 있는 그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넓은 바다에서 두사람이 파도를 타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싶었다. 친척들이 위로 전화를 하고 환자에게 좋은 음료수나 면역 증진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등을 부쳐왔다. 손녀는 방학 동안에 받는 수업도 결국 취소하고 마음 껏 텔레비젼도 보게하고 친구들과 전화도 마음놓고 하라는 등 완전히 자유를 주었다.     딸은 재택 근무를 하며 고단백으로 균형있게 세 끼를 준비하고 하루종일  창문은 모두 열어놓고 환기를 시켜 항상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게 하였다. 다른 가족이 걸리지 않도록 화장실도 따로 사용하고 최대로 조심시켰다.  다행히 사위나 손녀가 입맛을 잃지 않아서 잘 먹고 편안하게 쉬어 거의 열흘만에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가족 모두가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수 차례 검사 후에 우리는 다시 한 식탁에 모여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행복했다. 고통을 겪은 후의 행복은 더욱 소중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워도 인간의 행복은 거의 건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보통이며 건강하기만 하다면 모든일은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코로나로 자유를 잃은 지가 벌써 오래 되었다. 백신이 나오고 조금은 마음 편했지만 자꾸 변형되어 나타나니 이제는 인내심에 한계가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앞으로 바이러스 전쟁 시대가 올거라고 과학자들이 예견했지만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집 가끼이 있는 백화점을 가보면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쇼핑을 다니지만 거의 빈 손이다.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니 방역도 허술할 수 밖에 없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걸린다.  어디를 가나 마음 편히 다닐 수가 없다.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친한 사람이 잔치에 초대를 해도 마음이 무겁다.     인생의 가장 황금 시기는 65세에서 75세 까지라고 100세를 넘기신 노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동의하며 하루 하루를 아껴쓰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귀한 3년을 외롭게 보내고 있다. 어서 코로나의 위험에서 벗어나서 즐겁게  살고 싶다.   수필가 / 이영희수필 인내심 한계 가나 마음 바이러스 전쟁 피시알 테스트

2022-07-28

[수필] 인내심의 한계

어느 병이나 발병에서부터 났을 때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낫는데도 완쾌될 때까지는 불안하다. 그래서 환자나 가족은 그 안에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5월 중순쯤 큰딸이 장기 출장을 다녀오면서 코로나에 걸렸다. 출장 2주 전에 2차 부스터샷도 맞았다. 평소에 유난스러울 정도로 회사에서,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철저히 방역을 해왔는데  그만 목이 가라앉고 말하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사위는 두 손주를 건사하고 나는 딸이 먹을 음식을 날마다 만들어 날랐다.  남편과 내가 음식을 현관 앞에 갖다 놓으면 딸이 들여다가  먹었다. 사위는 두 애와 식사를 밖에서 해결했다. 배달해서 셋이서 공원에서 주로 먹고 일체 집에서는 먹지를 않았다.     열흘 만에 딸이 음성으로 나왔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며칠을 더 격리하고 검사를 했다. 천만다행으로 모든 증세도 없어지고 정상으로 되었다. 그런데 한참 후에 이번에는 사위가 걸렸다. 냉정하리만치 철저히 격리하고 방역을 했는데 알고 보니 교회에서 같이 봉사하는 팀원이 확진자였다고 한다. 본인도 께름칙해서 4일 후에 PCR테스트를 했는데 음성으로 나와서 우리와 야외에서 피자도 먹고 마켓도 갔다. 며칠 후에 증세가 있어 다시 집에서 신속검사키트로 검사했더니 양성이었다. 가끔 PCR테스트 오류로 코로나를 확산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뒤이어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한 둘째 손녀가 걸렸다.     우리 부부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몸이 찌뿌듯하면 테스트를 했다. 음성으로 나왔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날마다 비타민을 정성껏 챙겨 먹고 무리하지 않으려고 사위와 손주 먹을 것도 손이 덜 가는 것으로 만들고 사다가 주었다. 우리는 온종일 방에서 격리하고 있는 사위와 손주의 무료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날마다 찾아갔지만, 막상 아픈 상태에서는 낫는 것 이외에는 어떤 말도 큰 위로가 되지 않으므로 창밖에서 몇 마디 하고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부녀가  격리하고 있던 중 6월 29일이 사위 생일이었다. 딸이 생일 밥상을 차려 가족 카톡에 올렸다. 쟁반 세개에  따로 따로 밥,미역국, LA갈비, 나물, 오이지 등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놓았다. 그 쟁반을 들고 방 앞에 놓아두면 각자 가져가서 혼자서 먹는다고 하였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쉴 새 없이, 소리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말을 하면 같이 밥 먹고 있는 남편이 알까 봐 숨을 죽였다. 어떤 눈물일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대해 여태 참아왔던 울분일까?  2년 반 동안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있는 보이지 않는 왕관 모양의 바이러스에 대한 인내심이 증오로 나타나는 것일까? 유난히도 제 아빠 생일이면 두 딸이 바이올린과 플루트로 생일 축하곡을 멋지게 연주했는데 이런 즐거움을 앗아간 서운함에서였을까?  온 식구가 한 식탁에 둘러앉았던 그때가 얼마나 소중했던가 새삼 그리웠다.  한바탕 실컷 눈물을 쏟고 나니 코로나를 꼭 이겨내야 되겠다는 결심이 더 강해졌다.     다른 자식들에게도 알렸다. 오래된 집이라  어둡고 작은 방에서 격리하고 있는 그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넓은 바다에서 두 사람이 파도를 타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싶었다. 친척들이 위로 전화를 하고 환자에게 좋은 음료수나 면역 증진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등을 부쳐왔다. 손녀는 방학 동안에 받는 수업도 결국 취소하고 마음껏 텔레비전도 보게 하고 친구들과 전화도 마음 놓고 하라는 등 완전히 자유를 주었다.     딸은 재택근무를 하며 고단백으로 균형 있게 세 끼를 준비하고 하루종일  창문은 모두 열어놓고 환기를 시켜 항상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게 하였다. 다른 가족이 걸리지 않도록 화장실도 따로 사용하고 최대로 조심시켰다.  다행히 사위나 손녀가 입맛을 잃지 않아서 잘 먹고 편안하게 쉬어 거의 열흘 만에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가족 모두가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수차례 검사 후에 우리는 다시 한 식탁에 모여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행복했다. 고통을 겪은 후의 행복은 더욱 소중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워도 인간의 행복은 거의 건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보통이며 건강하기만 하다면 모든 일은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코로나로 자유를 잃은 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백신이 나오고 조금은 마음 편했지만, 자꾸 변형되어 나타나니 이제는 인내심에 한계가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앞으로 바이러스 전쟁 시대가 올 거라고 과학자들이 예견했지만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집 가까이 있는 백화점을 가보면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쇼핑하러 다니지만 거의 빈손이다.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니 방역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걸린다.  어디를 가나 마음 편히 다닐 수가 없다.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친한 사람이 잔치에 초대해도 마음이 무겁다.     인생의 가장 황금 시기는 65세에서 75세 까지라고 100세를 넘기신 노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동의하며  하루 하루를 아껴 쓰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귀한 3년을 외롭게  보내고 있다. 어서 코로나의 위험에서 벗어나서 즐겁게  살고 싶다. 이영희 / 수필가수필 인내심 한계 가나 마음 바이러스 전쟁 pcr테스트 오류

20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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