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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내심의 한계

어느 병이나 발병에서부터 났을 때까지 일정 기간이 필요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낫는데도 완쾌될 때까지는 불안하다. 그래서 환자나 가족은 그 안에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5월 중순쯤 큰딸이 장기 출장을 다녀오면서 코로나에 걸렸다. 출장 2주 전에 2차 부스터샷도 맞았다. 평소에 유난스러울 정도로 회사에서,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철저히 방역을 해왔는데  그만 목이 가라앉고 말하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사위는 두 손주를 건사하고 나는 딸이 먹을 음식을 날마다 만들어 날랐다.  남편과 내가 음식을 현관 앞에 갖다 놓으면 딸이 들여다가  먹었다. 사위는 두 애와 식사를 밖에서 해결했다. 배달해서 셋이서 공원에서 주로 먹고 일체 집에서는 먹지를 않았다.  
 
열흘 만에 딸이 음성으로 나왔다.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며칠을 더 격리하고 검사를 했다. 천만다행으로 모든 증세도 없어지고 정상으로 되었다. 그런데 한참 후에 이번에는 사위가 걸렸다. 냉정하리만치 철저히 격리하고 방역을 했는데 알고 보니 교회에서 같이 봉사하는 팀원이 확진자였다고 한다. 본인도 께름칙해서 4일 후에 PCR테스트를 했는데 음성으로 나와서 우리와 야외에서 피자도 먹고 마켓도 갔다. 며칠 후에 증세가 있어 다시 집에서 신속검사키트로 검사했더니 양성이었다. 가끔 PCR테스트 오류로 코로나를 확산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뒤이어 이번에 중학교를 졸업한 둘째 손녀가 걸렸다.  
 
우리 부부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몸이 찌뿌듯하면 테스트를 했다. 음성으로 나왔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날마다 비타민을 정성껏 챙겨 먹고 무리하지 않으려고 사위와 손주 먹을 것도 손이 덜 가는 것으로 만들고 사다가 주었다. 우리는 온종일 방에서 격리하고 있는 사위와 손주의 무료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날마다 찾아갔지만, 막상 아픈 상태에서는 낫는 것 이외에는 어떤 말도 큰 위로가 되지 않으므로 창밖에서 몇 마디 하고  돌아오기가 일쑤였다.
 


부녀가  격리하고 있던 중 6월 29일이 사위 생일이었다. 딸이 생일 밥상을 차려 가족 카톡에 올렸다. 쟁반 세개에  따로 따로 밥,미역국, LA갈비, 나물, 오이지 등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놓았다. 그 쟁반을 들고 방 앞에 놓아두면 각자 가져가서 혼자서 먹는다고 하였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쉴 새 없이, 소리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말을 하면 같이 밥 먹고 있는 남편이 알까 봐 숨을 죽였다. 어떤 눈물일까?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대해 여태 참아왔던 울분일까?  2년 반 동안 우리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고 있는 보이지 않는 왕관 모양의 바이러스에 대한 인내심이 증오로 나타나는 것일까? 유난히도 제 아빠 생일이면 두 딸이 바이올린과 플루트로 생일 축하곡을 멋지게 연주했는데 이런 즐거움을 앗아간 서운함에서였을까?  온 식구가 한 식탁에 둘러앉았던 그때가 얼마나 소중했던가 새삼 그리웠다.  한바탕 실컷 눈물을 쏟고 나니 코로나를 꼭 이겨내야 되겠다는 결심이 더 강해졌다.  
 
다른 자식들에게도 알렸다. 오래된 집이라  어둡고 작은 방에서 격리하고 있는 그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넓은 바다에서 두 사람이 파도를 타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싶었다. 친척들이 위로 전화를 하고 환자에게 좋은 음료수나 면역 증진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등을 부쳐왔다. 손녀는 방학 동안에 받는 수업도 결국 취소하고 마음껏 텔레비전도 보게 하고 친구들과 전화도 마음 놓고 하라는 등 완전히 자유를 주었다.  
 
딸은 재택근무를 하며 고단백으로 균형 있게 세 끼를 준비하고 하루종일  창문은 모두 열어놓고 환기를 시켜 항상 새로운 공기가 들어오게 하였다. 다른 가족이 걸리지 않도록 화장실도 따로 사용하고 최대로 조심시켰다.  다행히 사위나 손녀가 입맛을 잃지 않아서 잘 먹고 편안하게 쉬어 거의 열흘 만에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가족 모두가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수차례 검사 후에 우리는 다시 한 식탁에 모여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다. 행복했다. 고통을 겪은 후의 행복은 더욱 소중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워도 인간의 행복은 거의 건강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보통이며 건강하기만 하다면 모든 일은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이 된다고 했다.
 
코로나로 자유를 잃은 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백신이 나오고 조금은 마음 편했지만, 자꾸 변형되어 나타나니 이제는 인내심에 한계가 느껴진다. 언제부터인가 앞으로 바이러스 전쟁 시대가 올 거라고 과학자들이 예견했지만 무슨 뜻인지도 몰랐는데 집 가까이 있는 백화점을 가보면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쇼핑하러 다니지만 거의 빈손이다.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팬데믹 기간이 길어지니 방역도 허술할 수밖에 없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코로나에 걸린다.  어디를 가나 마음 편히 다닐 수가 없다. 손을 잡을 수도 없다. 친한 사람이 잔치에 초대해도 마음이 무겁다.  
 
인생의 가장 황금 시기는 65세에서 75세 까지라고 100세를 넘기신 노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동의하며  하루 하루를 아껴 쓰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귀한 3년을 외롭게  보내고 있다. 어서 코로나의 위험에서 벗어나서 즐겁게  살고 싶다.

이영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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