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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새벽은 오고야 만다

  피를 철철 흘리는 아이를 안고 아버지가 뛴다. 히잡을 두른 여인은 아이 대신에 자기를 죽이라고 군인에게 절규한다. 병원이 폭격당하고 아파트도 무너졌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뉴스가 나온다. 나는 체한 사람처럼 가슴이 답답해 온다. 철나고 평생 들어왔던 팔레스타인 문제다. 평소에 무심히 넘겼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작년 10월부터 뉴스를 지나치지 못했다. 거리마다 죽음이 무더기 휴지처럼 뒹굴었다. 흰 포대 속에 싸인 자들이 내다 만 신음이 나를 뚫고 들어왔다. 그것은 쉬지 않고 떨리는 진동 소리로 변하여 나를 몸서리치게 했다. 분노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궁금증이 몰려왔다.     이 땅은 원래 누구 것인가? 왜 땅 하나에 두 나라가 들어가 있는가? 영국 정부에서 1917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 국가를 약속했다. 팔레스타인 땅 전체가 아닌 ‘일부’에 수립을 지지한다는 선언이다. 문제의 소지는 그때부터 있었다. 전 세계에서 흩어져 있던 유대인은 자치 국가의 꿈을 안고 이주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이 선언을 할 당시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 아니었다. 아랍인 70만 명이 이미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이주 초기에 아랍인과 유대인은 친구처럼 잘 지냈다. 저녁이면 텐트에서 술을 나누면서 덕담을 하는 좋은 이웃이었다.   1948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 신탁통치를 끝냈다. 이스라엘이 독립국가를 선언하자, 네게브 사막 근처에서 이집트와 말썽이 생겼다. 이것이 1948년 1차 중동 전쟁의 시작이다. 몇 차례 전쟁을 겪는 동안에 대부분의 땅이 이스라엘로 넘어갔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서안, 가자 혹은 주변국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라엘의 근거는 무엇일까? 세 가지 담론이 있다. 약속된 땅 가나안의 회복 담론이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선조가 지나갔던 가나안을 되찾는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는 황무지 개간 담론이다. 낙타를 데리고 사막을 더욱 황폐하게 하는 베두인에게 이 땅을 버려둘 수 없다.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서 흩어진 유대인을 다시 모은다는 생존권이 걸린 담론이다.     글을 쓰고 있는 새벽에 문자가 들어왔다. 보스턴의 한 대학에서 강의하는 전승희 교수님이다. 팔레스타인 작가 아다니아쉬블리가 2024년 아시아 문학상을 탔다는 소식이다. 나는 ‘교수님 축하드려요’ 라고 답했다. 전 교수는 쉬블리의 소설 ‘사소한 일’을 한국어로 번역한 분이다. 소설은 양쪽의 입장에서 서사를 펼친다. 이스라엘 점령군 장교와 팔레스타인 지식인 여성의 입장에서 각각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가 쉬블리는 선제공격이 어떻고 하는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고 강조한다. 지금의 현상을 고슴도치를 삼킨 뱀에 비유했다. 뱀이 너무 절박한 나머지 앞뒤 사정 보지 않고 사막에 어슬렁거리는 고슴도치를 삼켰다. 삼키고 나서 아뿔싸 한다. 고슴도치의 가시가 뱀의 목에 걸려서 내장을 찌른다.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뱀과 고슴도치는 둘 다 서서히 죽어간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사람들이 나라를 떠나고 있다. 학자, 과학자 등 지성인들이 탈 이스라엘을 하고 있다. 산업은 성장을 멈추었다.     끝없는 보복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양측 지도자가 ‘너희는 값을 치를 것’이라는 보도가 화면에 붉은 고딕체로 나온다. 구호물자로 연명하는 사람들이 목숨으로 값을 지불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땅은 거대한 죽음의 용광로가 되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원혼이 그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저 어둠이 언제쯤 걷힐까? 나는 검은 연기가 배회하는 화면 속의 하늘을 쳐다본다. 그래도 새벽은 오고야 마는 것 아닌가?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새벽 팔레스타인 신탁통치 팔레스타인 지식인 팔레스타인 영토

2024-10-22

팔레스타인 시위대, DNC 행사장 인근 시위 요청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서 열리는 2024 민주당 전당대회(DNC) 행사장에서 더 가깝게, 더 긴 거리서 시위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나섰다.     앞서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당국에 시카고 서부 웨스트 루프의 유니언 파크에서부터 주 행사장인 유나이티드 센터까지 워싱턴 불러버드를 따라 행진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시카고 시는 워싱턴 불러버드에 비밀경호국이 배치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시위대에 다른 경로를 이용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에 대해 “헌법 제1조에 따라 우리는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유나이티드 센터에 오는 이들이 우리를 보고 들었으면 한다”며 “시카고 시가 제안한 경로는 우리의 존재감을 없애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친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시카고 시가 확장된 행진 경로를 허가해줄 때까지 우리는 집회의 자유를 위해 계속해서 싸울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달 위스콘신 주 밀워키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RNC)에 수 천명의 시위대가 집결했던 것과 달리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는 약 2만명에서 2만50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Kevin Rho 기자팔레스타인 시위대 팔레스타인 시위대 행사장 인근 대규모 시위

2024-08-06

팔레스타인 옹호 시위 UVA 학생 졸업 유보

      지난 5월 버지니아 대학(UVA)의 팔레스타인 옹호 시위를 주도했던 4학년 학생 4명이 졸업 요건을 갖추고도 아직까지 졸업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4월 이후 전국적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옹호 시위가 발생했으며 UVA에서도 광장에 텐트 노숙 시위가 전개됐다. UVA는 졸업식을 핑계로 버지니아주립경찰에 시위대 해산을 요청했으며 주립경찰이 5월6일 진압에 성공했다.    대학 측은 불법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학칙에 의해 처벌받아야 마땅하다며  학생 11명을 학생사법위위원회(UJC)에 회부하고 징계를 요청했다.   11명 중에는 4학년 졸업예정자도 포함돼 있었는데, 졸업식 전에 진행된 불법시위에 대한 징계절차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졸업이 유보된 상태다. 이들은 대학 측의 치졸한 보복행위로 인해 취업도 불가능해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학 측은 학생처 등을 통한 공식적인 징계절차를 밟을 수 있음에도 학생자치기구인 UJC를 통한 징계를 청구해 비겁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수의 교수들은 UJC가 학생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청부 징계를 하는 있는 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UJC의 징계 결정은 9월 이후로 미뤄진 상태이며 재판 결과에 따라 졸업이 불가능하거나 정학, 퇴교 조치 등도 가능하다. 전국적으로 4월 이후 2500명 이상의 시위대가 체포됐으나 졸업생의 졸업유보 조치는 UVA가 유일하다.     UVA에서는 올초부터 유태인 학생들과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 간에 마찰이 계속돼 있으며 이번 사태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팔레스타인 옹호 팔레스타인 옹호 졸업유보 조치 학생 졸업

2024-07-08

UCLA 친팔-친이 시위대 물리적 충돌...오늘 수업 전면 취소

UCLA 캠퍼스 내에서 친팔레스타인과 친이스라엘 시위대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해 진압 경찰이 투입되는 사태로 발전했다.  UCLA 시위는 전국의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을 규탄하면서 평화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진행됐고 캠퍼스 내에 야영지를 세웠다. 그러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나타나 맞불 시위를 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양측이 대립하며 험악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모습이었다. 결국 어제(4월30일) 밤부터 오늘(5월1일) 새벽에 걸쳐서 양측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30일 밤 11시쯤 친이스라엘 시위대가 가드레일과 합판으로 구성된 친팔레스타인 야영지 바리케이드를 허무는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야영지를 향해 폭죽을 던졌고, 서로 몸싸움을 벌였고 후추 스프레이와 각목, 쇠파이프 등 둔기도 동원됐다. 진 블락 UCLA 총장은 LAPD 임시 국장에게 경찰력 투입을 요청했고, 캐런 배스 LA 시장은 CHP에 UCLA 캠퍼스에 경찰력을 투입해줄 것을 요청했다. 개빈 뉴섬 CA 주지사도 자신의 사무실이 UCLA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언급했다. LAPD와 CHP 경찰들은 1일 새벽 2시쯤 현장에 도착해 사태를 진압했다. 시위대 체포에 관한 정보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UCLA 측은 지난 밤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친이스라엘 시위대 충돌 이후에 캠퍼스 내 보안을 강화했고 대체적인 평화가 회복됐지만 방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UCLA는 캠퍼스 내 캠프를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 불법이라며 캠프 참가 학생들이 징계를 받을 수있다고 경고했다.   학생이 아니고 대학과도 무관한데 캠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경범죄로 처벌될 수있다는 것이 UCLA 발표 내용이다. UCLA 측은 안전을 위해 1일 수업을 전면 취소하기로 결정했으며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박준한 기자 [park.junhan@koreadaily.com]팔레스타인 폭행 친팔레스타인 진영 양쪽 진영 사이 폭행 한인 캘리포니아 LA 로스엔젤레스

2024-05-01

작년 LA 발생 증오범죄 17% 증가 역대 최다

지난해 LA에서 발생한 증오범죄가 전년 대비 17% 증가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LA 경찰국(LAPD)에 따르면 2023년 발생한 증오범죄는 총 838건이다. 이는 2020년 발생 건수(408건)의 2배 이상 되는 수치다. 최근 10년간 증가세를 보인 증오범죄는 여러 양극화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견해차 등으로 더 악화했다.     지난해 발생한 증오범죄 유형 중 단순 폭행은 총 214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기물 파손 159건 ▶가중 폭행 136건 ▶범죄 위협 159건 ▶무기 사용 53건이 뒤를 이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에 따른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증오범죄가 건수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전쟁이 시작된 지난해 10월은 100건 이상의 증오범죄가 발생해 최근 3년 가장 많았던 달로 기록됐다. LAPD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유대인 증오범죄만 165건이다. LA 지역 중 엔시노와 피코-로버트슨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계 증오범죄는 지난해 17건이 기록됐다.     트랜스젠더 증오범죄도 최근 급부상했다. LAPD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년 대비 22% 올라 총 44건을 기록했다. LAPD 올랜도 마티네즈 증오범죄 조정관은 “최근 전국적으로 LGBTQ+ 증오범죄가 급증했다”며 “범죄를 목격하면 적극적으로 신고해서 예방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LAPD는 증오범죄 감소와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 지난 1월 11일부터 증오범죄에 대한 온라인 신고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김경준 기자 kim.kyeongjun1@koreadaily.com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한인 미주 증오범죄 이스라엘하마스전쟁 유대인 팔레스타인 트랜스젠더

2024-03-11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현역 군인 이스라엘대사관 앞 분신

워싱턴DC에 위치한 이스라엘대사관 인근에서 25일 현역 군인 한 명이 팔레스타인 지지를 호소하며 분신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 남성은 군 훈련복을 입은 상태로 이날 오후 1시께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분신했으며 현장에 있던 경호 및 소방 당국자들이 불을 끈 뒤 남성을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이 남성은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본부 소속 현역 미 공군 애런 부슈널(25)로 확인됐다.     그는 현장에서 이스라엘에 맞서온 팔레스타인 지지를 호소하며 분신하는 모습을 소셜미디어 트위치를 통해 생중계하기도 했다.     당시 영상에서는 이 남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스라엘 대사관 쪽으로 걸어가며 "나는 더는 제노사이드(집단말살)의 공범이 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겼다.   또한 "나는 극단적 시위를 하려 한다"며 대사관 정문 앞에서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몸에 불을 붙인 뒤 쓰러질 때까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외쳤다고 NYT는 전했다. 해당 영상은 트위치 측에서 현재는 삭제한 상태다.     이 남성을 제외하고 다친 사람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이스라엘대사관 측에서도 직원 측 부상자는 없다고 전했다. 현재 로컬 경찰 등은 영상을 확보한 뒤 사건 정황을 조사 중이다. 지난해 12월 애틀랜타 주재 이스라엘영사관 앞에서도 한 시위자가 분신한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이스라엘대사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대사관 인근 팔레스타인 지지 현역 군인

2024-02-26

[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을 통한 화해와 공존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1999년,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서동시집’이라는 이름은 독일 시인 괴테가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집필한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에서 따 온 것이다.   그 전까지 서양 사람들은 동방 문화가 서양 문화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괴테는 하피즈를 통해 동방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고, 그 결과 동서양의 문학양식을 이상적으로 결합한 ‘서동시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은 괴테가 구현하고자 했던 동서양 화합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오케스트라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 언어, 정치적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세계 여러 지역을 돌며 음악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이다.   지난 2005년,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팔레스타인의 임시수도 라말라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연주 곡목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과 베토벤의 ‘운명’이었다. 이때 젊은 연주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음악에 깊이 감동을 받고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는 사실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 전까지 팔레스타인 사람하면 테러나 일삼는 괴물 집단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그들도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들을 묶어 준 것은 물론 음악이었다. 바렌보임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것이 연주회의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두 나라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음악 화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팔레스타인 출신 동서양 화합

2024-02-26

[디아스포라 시선] 디아스포라의 묘

개인적으로 연이 없는 이들의 타계 소식이 마음을 휘젓고 지나갈 때가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의 죽음이 그런 슬픔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우리의 감성과 지성을 살찌운 책의 저자나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정신적 스승의 죽음은 생각보다 큰 상실감을 수반한다.   필자는 ‘디아스포라 지식인’으로 불린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교수의 타계 소식을 들었을 때 그랬다. 두 달 전인 12월 18일, 자택에서 향년 72세로 타계한 그는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역사의 증인 재일 조선인’ 등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해 자신과 재일조선인, 더 나아가 소외된 이들의 존재에 관해 물었다.     서 교수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왜 그가 생전 그런 고민을 했는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다. 1951년 피비린내 나는 6·25 한국전쟁 중 교토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일본 내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서사로 점철된 것과 동시에 모국의 분단 이데올로기 희생양이기도 했다.   그의 청년 시절, 서울대에서 공부하던 친형 둘이 이른바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휘말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일이 있었다.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한 일본 거주 재일조선인에게 분단된 한반도는 상냥하지 않았다. 그는 20년의 세월 동안 형들을 위한 구명 활동과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비애를 겪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유독 ‘죽음’에 집착한다. “어디서 어떻게 죽을까. 언제나 그게 마음에 걸린다” 라는 ‘디아스포라 기행’의 한 문구가 그런 심리를 대변한다. 그는 생전 여행하는 나라의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묻힌 묘지를 방문하곤 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하나하나의 묘가 그에게는 다 같지 않았다. 대부분의 묘는 전통적 양식, 종교적 예식, 문화적 유산, 가문의 역사를 반영한다. 하지만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묘, 묘비가 쓰여 있지 않은 묘를 그는 ‘디아스포라의 묘’라고 명명했다. 그렇기에 그가 평소 자신과 같은 디아스포라적 배경을 가진 지식인들에 끌린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는 프리모 레비와 에드워드 사이드를 자주 인용했다. 레비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유대계 이탈리아인 작가이고,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주장하던 팔레스타인계 미국 석학이다. 레비와 사이드는 각각 유대인, 팔레스타인으로서 자신들이 겪은 디아스포라적 경험을 자기연민의 도구나 타자에 대한 무기로 이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이산의 경험과 약자의 서러움을 공유하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두 집단이 서로 대치할 수 밖에 없는 모순적 현실에 신음했다.     현재 진행되는 또 다른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역사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위치는 항상 뒤바뀔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내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아니 내가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서 교수는 식민주의적, 국가주의적 폭력을 끊을 수 있는 힘이 디아스포라적 삶을 통해 가능하길 염원했다. ‘의식적으로 피차별자의 위치에 서는 것’이 그것이다. 그는 실제 피차별자로 살았지만 의식적으로 한 번 더 그렇게 살아가려고 했다. 자신이 경험한 차별과 배척의 기억을 다른 소수자, 약자, 디아스포라들을 인식할 수 있는 보편적 시선으로, 심오한 질문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누구인가,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는 왜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 가져야 하는가. 왜 세상을 바꾸어야 하는가.   그는 생전 마지막 강연에서 자신의 정신적 스승, 레비가 인간해방의 보편적 가치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수용소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렀던’ 인간이었음을 대중에게 상기시킨다. 서 교수 역시 그랬다. 그는 한반도 근대사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값비싼 대가’를 치른, 그래서 우리에게 ‘디아스포라적 삶’이라는 유산을 남긴 사람이다. 죽음에 가까워진 이들이 외쳤던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희망에 대한 담론은 그래서 무게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생전에 꼭 뵙고 싶었던 서 교수의 묘, ‘디아스포라 묘’를 꼭 찾아볼 것이다.  전후석 / 다큐멘터리 감독디아스포라 시선 거주 재일조선인 유대인 팔레스타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2024-02-12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 뉴욕 진입 터널·교량 막아

8일 출근 시간대 뉴욕 맨해튼으로 통하는 터널과 교량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중단을 촉구하는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의 기습 시위가 열렸다.     abc7 등의 보도에 따르면 약 120명의 시위대는 맨해튼 다운타운의 홀랜드터널 입구에서 도로를 점거해 뉴저지주 저지시티로 향하는 터널의 통행을 막았으며, 브루클린과 맨해튼 다운타운을 연결하는 3개 교량(브루클린·맨해튼·윌리엄스버그브리지)의 맨해튼 출입구도 점거하는 등 출근길 차량 통행을 차단했다.   점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시경(NYPD)이 시위대 전원을 연행하기 시작했고, 시위에 참가한 120여 명이 체포됐다. 이에 오전 11시쯤에는 차량 통행이 재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기습시위는 팔레스타인 청년운동, 팔레스타인 귀환권리연합 등 친팔레스타인 단체를 비롯해 전국 민주사회주의자(DSA), 평화를 위한 유대인 목소리 등 미국 내 진보단체들이 주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깃발과 함께 ‘가자지구 포위공격을 멈춰라’, ‘점령을 끝내라’ 등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중단과 휴전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혜 기자 yoon.jihye@koreadailyny.com팔레스타인 시위대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시위대 뉴욕 친팔레스타인 단체

2024-01-08

[FOCUS] “이제 전쟁 끝내야” 이·팔 해법, 영화 속에 있다

오랜 역사의 이·팔(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전 및 분쟁이 일상 속에 어떻게 내면화 되어 있는가는 영화 ‘레몬 트리’에 여실히 나타난다. 이스라엘 출신의 에란 리클리스 감독이 만든 영화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접경 지역(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이스라엘인 정착촌 접경지역)에서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인 살마(히암 압바스)는 레몬 트리를 재배하며 살아 간다. 살마의 농장 바로 옆으로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사를 오고, 군인들이 살마의 레몬트리를 삭둑삭둑 잘라 버린다. 국방장관 집 경호를 위한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다. 살마는 곧 법정 투쟁을 시작하지만 이스라엘의 ‘어거지’를 이길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나온 변호사는 힘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살마에게 동정의 시선을 느끼는 것은 국방장관의 아내 미라(로니 리파즈-미셸)다.   ‘레몬 트리’는 이스라엘 거주 지역에서 힘겹게 살아 가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왜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이끄는 자치 정부보다 강경 기조의 정치 조직이자 정파 중 하나인 하마스에 더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가를 보여 준다. PLO는 무능하다. 60년 동안 권력을 유지하면서(1964년 설립) 부패해졌다. 대신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아픈 곳, 가려운 곳을 잘 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심각성은 네타냐후 같은 이스라엘 내 극우 정치 집단과 하마스 같은 순혈주의적 강성 정파가 부딪히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최근의 전쟁이 바로 이런 양상이다. 걱정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건국기념일이 대재앙의 날   존 르 카레의 원작을 박찬욱 감독이 6부작 드라마로 만든 ‘리틀 드러머 걸’은 걸작이다. 근데 다소 어렵다. 1979년이 배경이다. 이란에서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던 때이다. 이 와중에 독일 이스라엘 대사관저에 폭탄 테러가 발생한다. 분노한 이스라엘 정보조직 모사드의 마틴 쿠르츠(마이클 섀넌)는 팔레스타인 혁명 테러조직을 분쇄할 계획을 세운다. 제5열(이중간첩)을 조직에 침투시키는 것이다. 쿠르츠는 실전 교관인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카드)를 통해 무명배우인 찰리(플로렌스 퓨)를 선발해 그녀를 아랍 민족주의에 경도된 여성이자 예비 테러리스트로 둔갑시켜 상대 조직에 침투시킨다. 찰리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인 칼릴 알 카다르(차리프 가타스) 조직의 막내인 미셸(아미르 후리)의 애인 안나(이벤 아켈리)인 척,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에 동화된 여성인 척 행동한다. 문제는 찰리 본인이 점점 정체성에 혼돈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고 실제로 팔레스타인들을 동정하고 동화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박찬욱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역사에 대한 영민한 분석이 돋보이는 이 작품을 이해하려면 역시 몇 가지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바로 ‘알 나크바’란 말이다. ‘대재앙’이란 뜻의 아랍어다. 아랍 민족은 1948년 5월 15일을 대재앙의 날로 부른다.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뺏긴 날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스라엘인들은 이 날을 축복의 날로 규정한다. 건국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대 이스라엘은 바로 이때부터 1973년까지 무려 네 차례 전쟁을 치른다.   이·팔, 네 차례 전쟁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다음날 이집트 등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시작된다. 결과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늘 이스라엘 뒤에는 미국과 서방국가가 자리한다.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한다고 선언하자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이집트를 공격해 일어난 전쟁이 2차 중동전쟁이다. 1967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를 상대로 대승을 거둬 동예루살렘과 골란고원 등을 차지한 3차 중동전쟁이 그 유명한 6일 전쟁이다. 1973년에도 이집트와 시리아가 주축이 된 아랍 연합군에 맞서 이스라엘이 승리한다. 4차 전쟁이자 일명 욤 키푸르 전쟁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 그리고 박찬욱의 영화는 평화와 협상이라는 단어가 극히 어색했던 시대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민족의 갈등을 그린다. 양 진영은 1993년에 이르러 빌 클린턴의 중재로 이어진 오슬로 협정에 의해 극적으로 타결되기도 하지만, 요즘 양상을 보면 ‘두 국가 해법’도 별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시오니즘을 대서사로 엮은 영화는 1960년에 나온 ‘영광의 탈출(원제 엑소더스)’이다. 원제와 동명인 레온 유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3시간짜리 영화다. ‘영광의 탈출’에서 엑소더스의 설정이자 대상은 영국이다. 영국은 두 가지 모순된 협정에서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하나가 1917년의 벨푸어 선언(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 국가 건국 인정)이고 또 하나가 맥마흔 협정(오스만 투르크와 싸우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인정)이다. 두 협정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눈치를 보던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가려는 유대인들을 그리스 키프로스 수용소에 가둬 놓는데, 영화는 한때 영국군 장교였던 유대인 지하조직 하가나의 간부인 아리(폴 뉴먼)가 키프로스 수용소 유대인 2800명을 이끌고 여객선 엑소더스 호로 탈출하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영국을 상대로 100일 단식 투쟁까지 벌여 국제여론의 호소를 이끌어 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영광의 탈출’의 후반부에 유대인 정착촌 키부츠에서 아리와 그의 동료들이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벌이는 모습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원작자인 레온 유리스와 감독인 오토 프레밍거 모두 유대인이었던 만큼 친 이스라엘적 시각이 우세했던 영화기에 편견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반부 약 2시간, 그러니까 키프로스에서 팔레스타인으로 탈출하는 과정의 유대인 역사 역시 얼마나 지난한 것이었던가를 적극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품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스파이’(2019)는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분쟁을 다룬 작품 중 가장 실화의 생동력이 강하다. 다만 다소 지나친 이스라엘 우선주의가 배어 있음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1960년대 중반이 배경이며 실존인물이었던 이스라엘 모사드 스파이 엘리 코헨의 이야기이다. 엘리 코헨의 첩보 활동으로 이스라엘은 1967년의 제3차 중동전쟁, 곧 6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다. 코헨은 전쟁 발발 전인 1965년 시리아 경찰에 체포돼 수도인 다마스쿠스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해졌다. 시리아 정부는 그의 시신을 6시간동안 매달아 놓고 온갖 모욕을 가했다. 이스라엘과 중동이 양 진영 모두 처참하고 비극적인 역사를 겪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종종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때로는 파격적일 만큼 새로운 시각의 역사물에 투자한다. 네트워크 제국주의를 꿈꾸는 미디어 회사의 아이러니다.   ‘영광의 탈출’에서 ‘레몬 트리’까지. 이·팔 분쟁의 해법은 사실 영화 속에 있다. 그런 영화를 지지해 온 관객과 민중, 민심에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현재 똑 같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전.쟁.을. 정.말. 끝.내.야. 해.  오동진 영화평론가FOCUS 영화 해법 이스라엘인 정착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팔레스타인 분쟁

2023-12-17

'팔레스타인 해방' 말한 8학년에 유기정학 논란

    8학년 중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팔레스타인 해방(Free Palestine)'을 말했다는 이유로 학교 측이 해당 학생에게 유기 정학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 출신인 이 학생과 가족은 학교 측의 이 같은 조치에 강력히 반발하며 학교와 교육구 측에 징계 철회와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소셜미디어에는 징계를 받은 학생의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어머니와의 인터뷰 내용을 게재해 찬반 논쟁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동영상에는 8학년 학생의 어머니에게 아들이 발언한 내용이 사흘 동안 유기정학을 당할 정도의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또 징계 받은 학생이 한 소녀에게 '팔레스타인 해방'이라고 말했고 이에 그 소녀는 그에게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학교 측은 징계 받은 학생이 교실에서 한 어린 여학생에게 위협적인 언사를 구사했기 때문에 징계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징계 학생 가족 측은 이번 사태가 발생하기 2주전 그들의 아들이 다른 학생으로부터 "너네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왕따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해당 사건이 발생한 당일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러 교장실을 방문했을 때 교장 책상에 '이스라엘: 지구상에서 가장 오해받는 나라에 대한 간략 안내서'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고 학생 측 가족은 소셜미디어에서 주장했다.      디지털본부 뉴스랩팔레스타인 유기정학 팔레스타인 해방 유기정학 논란 징계 학생

202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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