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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인종차별, 스스로 씌운 굴레

“인종차별이라 몰아가는 건 이 사건을 덮으려는 세력만 편들어주는 꼴입니다.” “이건 인종차별이 아니라 어떤 커뮤니티든 겪을 수 있는 공공안전 문젭니다. 이 논리로 모든 세력을 모아야 해요.” “이 문제를 최대한 오래 끌고 갈 겁니다. 포트리 한인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한인 시장 하나가 안 나와요. 이번 일을 한인 영향력 확장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수많은 말의 진원지가 된 인물은, 도와달라 신고한 가족의 요청에 응한 한 경관의 총격에 결국 숨을 거둔 한 조울증 환자다. 이들이 요구하는 의제 중 하나도 정신질환자 1차 대응 프로토콜의 적절성을 검토해달란 것이다. 지역 정치인 및 타민족 비영리단체 대표들은 이미 조치는 있으니, 인식 개선이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이미 있는 교육 시스템을 지키도록 경관 인식을 제고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 전에 한인 커뮤니티 내에서 정신질환자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꾸는 게 급선무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 사건을 최대한 길게 끌고 가겠다는 일부 한인의 목소리는 여러 의문이 들게 한다. 유족 변호인 측 관계자는 유족이 이 사건을 알리길 바라지 않았다고 다시 한번 기자에게 귀띔했지만, 유족은 어쨌든 사건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현장마다 등장하고 있다. 2차 랠리서 진입한 포트리타운홀 미팅에선 유족 측 변호인이 모친을 일으켜 세웠지만, 누구도 따라 일어나지 않았다며 전략이 잘못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무엇을 위한 전략인가. 포트리경찰서가 절차대로 하겠다고 답하는 게 답답하다며, 한인의 심정을 어루만질 수 있도록 가해 경관으로 지목된 토니 피켄슨 주니어를 포트리경찰서에서 퇴출시켜달라는 공허한 요구도 이어진다.   “이제 곧 선거철이니 사건 이야기를 더 하도록 만들 겁니다.” 한 취재원이 이 같이 말했다. 한인 밀집지역의 장점을 살려 정치인을 불러모아 펀딩 조건으로 이 사안을 심각하게 다루도록 만들겠다는 각오가 뒤이었다. 사건 초기, 진상 파악 없이 규탄 성명을 내고 사진 한 번 찍으려는 뉴저지 일대 인사들이 줄을 섰다. 뭐라도 했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좁은 동네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간 사람은 말이 없고, 오직 주관만 남은 현장에서 남은 이들만 떠든다. 그 속에 사실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은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걸 기반으로 한인사회의 다음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 너무나 당당하게, 유족 의도와는 다른 의미의 ‘넥스트 레벨’이 필요하다 말하는 이들의 얼굴만 여기저기 떠돈다. 강민혜 / 취재팀 기자취재일기 인종차별 굴레 한인 커뮤니티 한인 밀집지역 포트리경찰서가 절차

2024-09-10

[취재일기] 한식계 지록위마(指鹿爲馬)

"뭘 안다고 저럴까요. 제가 옆에 있었으면 소리질렀을 거예요." 이달 뉴욕 맨해튼 한 한식당에서 진행된 한국정부의 우수한식당 심사를 지켜보던 모 셰프가 귀띔했다. 식당을 찾은 평가원은 기자가 있다는 것에 거세게 항의하며 식당 관계자에게 주는 자문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기자는 한국정부 평가 협의체 관계자의 허가를 받아 미리 정당한 절차를 거쳐 현장에 취재를 위해 찾았다.   아쉬운 쪽이 쩔쩔매며 달래야 했다. 평가원이 관계자에게 조언을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모습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자신을 따라다니지 않고 관심을 보이지 않자 이내 수그러든 평가원은 스마트폰을 들어 한국의 '진짜' 평가원들에게 보낼 것이라며 가게 곳곳을 찍었다. 음식은 주문하지도, 먹지도 않았다. 위생평가 단계를 거쳐야 시식의 권한을 식당에 주겠다는 것인데, 지난해 뉴욕서 선정된 대다수 우수한식당이 퓨전한식집이었고, 그 이유로 한국정부 관계자가 위생평가 탓을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도 결과는 유사할 것이란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날 화장실과 주방서 관계자에게 질문을 쏟아내던 평가원은 벽면에 걸린 뉴욕시 보건국의 'A' 평가에 대해선 묻지도 않았다.   시 보건국은 시내 식당들을 급습, 음식도 맛보고 꼼꼼하게 확인한다. 급작스레 찾아와 음식을 주문하고 냉철한 평가를 남기는 통에 한식당은 물론 뉴욕일원 식당 업주들은 두려워 하지만 A를 받으면 자랑스러워 한다. 평가는 투명하게 시 보건국 홈페이지를 통해 게재되고, 이유도 상세하다. 당당하게 급습하고 투명하게 관리하며, 상황에 따라 무통보 재검도 한다.   한국정부는 지난해 뉴욕 등을 대상으로 우수한식당을 선정하기 시작했다. 당초 계획했던 암행어사식 방문은 어려워 결국 현장서 통보하는 것으로 자의적으로 바뀌었다. 정식 평가기준이 있긴 하지만, 평가원들은 저마다 간략화된 다른 체크리스트를 가졌다는 후문이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그 때는 8명의 평가원이 한국에서 직접 날아와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전체적으로 평했다. 당시에도 이어진 한식 정의 및 선정 기준 관련 문제 제기에 정부 관계자는 신경쓰겠다고 답했지만, 올해는 가관이다. 생전 처음 뉴욕에 왔다고 긴장이 풀린 후에야 고백한 단 한 명의 평가원이 사진을 찍을 줄 아는 타국 셰프라는 이유로 뉴욕 식당을 돌고, 귀여운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재미한인식품학회의 한 고문은 기사를 보고 "한식진흥원이 이 같은 형식적 평가를 하려면 현지에 있는 교포 전문가를 쓰는 게 낫지 않겠냐"며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는 건 기본도 되지 않은 것이며 퓨전한식은 장난하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든다"고도 했다. 이번 우수한식당에 뉴욕서 어떤 식당들이 선정될지 지켜볼 일이다. 강민혜 / 취재팀 기자취재일기 한식계 우수한식당 심사 이번 우수한식당 대다수 우수한식당

2024-06-25

[취재일기] 기묘한 이야기

“우리 애는 그런 거 몰라요. 우리 애는 주권이 없어요.”   아들 엘리엇 사망 관련 혐의로 기소된 그레이스 유의 모친이 수없이 한 말이다. 주권이 없다는 건 변호인의 말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금자의 현실은 빗댄 것일 테다. 사건 당일 행적과 관련한 그레이스 유 부모와 남편의 말도 잘 맞질 않지만, 진실은 그 어디쯤에 있을 테다. 한인단체들은 그가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는 입장을 견지중이다. 한인사회의 관심이 집중된 이 사건에서 이제 중요한 건 본질이 아닌 다른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뉴욕일원서 전개되는 유씨 구명운동과 관련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있는 이들은 극소수다. 대부분의 관계자는 유씨의 사촌 데이비드 유씨가 전임 뉴욕한인경제단체 회장이었다는 이유로 참여중이다.   유씨와 같이 어린 아이들과 떨어진 상태로 구금돼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지만, 그럴 방법이 없다는 한인 여성 두 명의 사례가 떠올랐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줄 힘있는 가족이 없다. 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아 구금된 그레이스를 포함한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은 산모에게 주어지는 밥을 달라고 하기도, 못하기도 했다. 차이는 힘 있는 가족의 유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힘 있는 가족도 미국 사회선 재판 한 번 치르게 해달라며 시위를 잇달아 해야하는 모양새다.     재판부의 인종차별로 정당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들은 다수였다. 이를 규탄하는 집회서 눈물을 훔치는 그레이스의 모친 옆으로 한인 테너가 나와 노래를 부르곤, 한인회장들에게 가서 ‘인증샷’을 요구했다.   집회를 위해 모인 이들이 탄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법원행 버스에서는 자꾸만 다른 이름이 나왔다. “그레이스 멩! 아니 그레이스 멩 아닌가? 아이고 큰일이다. 그레이스 유? 그레이스 멩? 내가 그레이스 멩을 정치인 만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요?” 당사자는 알 길 없을 인맥자랑이 이어졌다.   집회를 지켜보던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법원 셰리프는 “지난달 집회에선 노래를 불렀던 것 같진 않다. 이번엔 모두에게 마이크를 잡고 자기 표현 기회를 준다”고 했다. 출마의 장이 된 법원 앞에서 눈물을 훔치던 그레이스의 부모는 기자의 손을 잡으며 또 한 번 강조했다. “우리는 그레이스에게 피해가 갈까봐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중요해요.”   검찰의 심기를 거스를까 말 한 마디 걱정하는 가족과 소란을 일으켜 검찰을 압박하겠다는 인사들 간의 의견 간극만큼 목소리 고저 차이도 컸다. 하나, 둘, 셋. 숫자를 셀 수 있는 이도 없었다. “한 250명 왔다고 할까? 100명인가? 겹쳐서 세면 200명 안 될까?” 무엇을 위한 집회였을까. 짐작도 어렵다. 강민혜 / 취재팀 기자취재일기 이야기 그레이스 유의 전임 뉴욕한인경제단체 유씨 구명운동

2024-04-01

[취재일기] "신녠콰일러" 남기고 떠난 호컬·아담스

  엄청난 취재열기였다. 20여명의 취재진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귀 현수막을 든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 톰 수오지 전 연방하원의원, 론 김(민주·40선거구) 주하원의원, 린다 이(민주·23선거구) 뉴욕시의원 등이 나타난 플러싱 '루나 이어 퍼레이드'를 취재하기 위해 몸싸움도 서슴지 않았다.     정치판 취재에는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한 기자들간의 몸싸움이 필수다. 선배들의 카메라에 머리를 받침대로 내어주던 과거를 떠올리며, 이번엔 팔을 잡아당기는 푸른 눈의 기자, 중국어 구사 기자들과의 웃음섞인 사투를 벌였다.   지난 10일 현장서 달리 느낀 건 하나다. 현수막의 한국어가 무색하리만큼, 호컬도 아담스도 수오지도 하나 되어 "신녠콰일러"를 외쳤다. 현수막을 들고 유니온스트리트부터 플러싱 도서관까지 이어지는 행진에서 몇 번이나 외쳐야 했는데, 한국어는 면피용인가 궁금해질 정도다. 현수막 글귀가 한국어인 걸 알기나 할까.   행진에 앞서 만난 중국계 피터 두 회장은 "저들이 보기에 우리는 다 아시안이지 중국인과 한국인을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의문은 금방 풀렸다. 호컬, 아담스가 행진 내내 외쳤던 "신녠콰일러"는 호컬이 감사를 표한 "차이니즈 피플"로 대상이 명확해졌다. 미국인도 아시안도 아닌 중국계다.   한국계 의원들도 "신녠콰일러"만 외쳤다. 린다 이 의원에게 의견을 묻자 "어쩔 수 없다"는 취지의 답이 돌아왔다. 현장을 찾은 샤론 이 전 퀸즈보로장 대행에게 의견을 묻자 "한국어를 안 했느냐"며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플러싱 커뮤니티 전체의 파티인 만큼, 조심스러운 답변이다.   행사에 앞서 경찰서에서 진행된 커피·베이글 파티도 마찬가지다. 오성홍기를 든 이들은 없지만, 태극기를 든 경관은 안팎에 각 한 명 있었다. 104경찰서 소속 한인경관 이 모씨는 "상관들이 특별히 근무 시간이지만 허가했다"며 "그들은 민족·인종을 뛰어넘어 미국인이 하나 되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고 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이 경관은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태극기를 들었다. 그의 곁엔 빈 손의 중국계 동료가 웃으며 서 있었다.   퍼레이드에 한인단체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가정상담소, 시 태권도스쿨 관계자들은 저마다 "우리가 유일하게 참가한 한인단체"라고 했다. 왜 한 축제의 장에 모이고도 존재를 몰랐을까. 행사에 초대한 뉴욕시경(NYPD) 관계자가 왜 이 행사를 중국인의 축제가 아닌 한국도 동등한 역할을 차지한 미국인의 축제라고 했는지 미지수다.   대만계인 우씨는 "대만을 자유롭게 하라"는 글귀가 적힌 곰인형을 들어 보이며 "이게 축제"라고 말했다. 떠난 그들보다 우씨가 빛났다.     강민혜 기자 kang.minhye@koreadailyny.com취재일기 아담스 현수막 글귀 글귀 현수막 플러싱 커뮤니티 캐시 호컬 에릭 아담스 경찰서 뉴욕시경 NYPD 커뮤니티보드 커뮤니티 플러싱 톰 수오지

2024-02-14

[취재일기] 빅애플 동고동락(同苦同樂)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의 신년 기자회견은 자화자찬이었다.   그는 텐트를 친 LA 홈리스 사진을 들어보이며 “뉴욕시가 낫다”고 했는데, 거리의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플러싱 공원에 흰 텐트를 펴두고 술을 마시던 남성 한인 홈리스 세 명은 알콜중독이다. 이들은 한인 지역사회에 맡겨진다.     시가 홈리스들이 야외에서 잘 권리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 앉아있으면 오가며 술을 주는 한인이 있어 셸터 가길 거부하기도 한다. 시에서 받는 지원금으로 스마트폰도 쓴다. 맥북에 아이폰을 가진 홈리스가 셸터에 가득한 건 이같은 지원 덕이다.   영어가 가능한 한인 홈리스는 시에서 인가받은 셸터에 입주해 생활하지만, 취재중 접한 이같은 사례는 단 한 건이다. 그 외는 모두 한인 셸터 몫이다. 셸터 대표는 거리를 다니며 한인을 찾고, 홈리스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 입주 가능 여부를 묻기도 한다.     일부 셸터를 향한 한인사회 일각의 의심도 여전하다. 모금행사를 열기만 하고 사용처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산공고를 통해 밝히면 해결되겠지만,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사랑의집 부원장은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방 세 개짜리 지하 1층 셸터에서 홈리스들과 동고동락하는데, 그래야 홈리스가 교화된단다.     뉴저지에 살던 부원장은 뉴욕주 플러싱 공원에서 홈리스들에게 봉사하다 뉴욕주에 정착했다. 셸터 발전을 위해 향후 홍보도 활발하게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아직 결산공고도 내지 않아 이들이 얼마나 투명하게 모금액을 쓰는지는 알 수 없지만, 70대 홈리스 미란씨를 통해 이들이 얼마나 친한지는 알 수 있다.     “고마워요 원장님! 많이 많이 고마워요!”   더나눔하우스엔 영적 치유를 하겠다는 목사를 보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30대 크리스티씨가 있다. 향긋했던 크리스티씨의 2층 독방에는 기타, 전자매트, 명품 브랜드 가방이 있다. 최고령자라는 90대 노인은 침대에 앉아 맥북을 쓰고 있다.     지난해 기준 뉴욕시 홈리스는 2만6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2.3% 늘었다. 아시안은 1만157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급증했다. 뉴욕일원 방 한 칸 렌트는 700달러대에서 2000달러를 오간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지만 실패한 홈리스들은 거리로 내몰린다.   ‘홈리스 권리장전’을 정할 만큼 홈리스에 관심 많은 아담스 치하 홈리스들은 얼마나 안정될까. 셸터들은 얼마나 더 한인사회에 온정을 요구하게 될까. 同苦. 셸터의 홈리스가 늘어날수록 한인사회는 더 많은 온정을 요구받을 것이다. 함께 오래가기 위해 투명성이 필요한 이유다. 강민혜 / 취재팀 기자취재일기 애플 동고동락 한인 홈리스 홈리스 권리장전 la 홈리스

2024-01-12

[취재일기]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그 노인은 뭐가 두려웠을까

"필요한 노인에게 가는지는 미지수다."   취재차 만난 노인복지 종사자의 말이다. 뉴욕시 노인국의 서비스 감시 대상이 누가 되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뉴욕한인봉사센터(KCS) 경로회관은 가정급식서비스(Citymeals-on-Wheels)를 통해 시 지정 구역 내 노인에게 일주일에 세 번 밥을 배달한다. 초기 30~40명대로 시작한 급식 봉사에 현재는 수백명이 참여한다. 한인노인도 있지만 한식이 좋아 노인국에 한식을 요구한 타민족도 있다. KCS에 따르면, 한식 제공 단체는 이곳뿐이다.   주방은 ▶생선전 ▶술떡 등 이른바 '특식'을 마련했다. 이 때문에 배달이 차례로 밀리자 배달차 전화통은 그야말로 불이 나게 울렸다.     한 중국계 노인은 전화로 언성을 높이기도 했는데, "calm down"을 말하자 진정했다. 취재차 종일 동행한 배달 봉사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밥도 거른채 한순간도 쉬지 못했다. 하지만, 수십 곳의 빠듯한 배달 일정에도 그의 방문만이 대화의 전부일지 모를 노인을 위해 밝게 배달했다.   노인은 대면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열일 제쳐놓고 기다렸다. 밥차가 오는 시간에 집에 없다면 사전고지해야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데, 집에 없을 때가 많다. 모순적이지만 현실이다. 여행이나 자녀 집 방문 등 사유가 있지만 집 앞 외출이 더 많다.   노인국은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 중 수혜자를 선정한다. 질병의 정도가 심하거나 이동이 불편한 걸 증명한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노인국 서비스 매니저가 구역별 가구를 방문해 심사한다.   운영을 맡은 KCS 등 단체들은 밥을 받기로 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없다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려야 한다. 대면 프로토콜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국은 연방·주정부의 지시를 거쳐 비영리단체 등에 노인 서비스 제공 정도를 계약단계서 나눈다. 계약단체를 까다롭게 모니터링하는 것도 복지 혜택이 제대로 되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다만 이미 수혜자가 된 노인들에게도 까다로운 모니터링이 적용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무릎수술로 거동이 불편했지만 수년이 흘러 회복돼 매일 대중교통을 타고 외출하는 H할머니 ▶요리는 못하겠다던 K부부 ▶대저택에 사는 P할아버지는 노인국의 까다로운 심사 방향이 누구를 향하는지 어리둥절하게 한다.     요리를 하다 맨발로 배달을 받고 집에 들어오라 초대한 후 수시간이 흘러 갑작스레 시에 신고한 K할머니는 어떤가.     過則勿憚改(과즉물탄개). 공자는 "허물이 있다면 버리기 두려워말라"고 했다.     자진해서 초대했던 손님을 한순간에 감시 대상으로 만들어버릴만큼 그 노인은 무엇이 두려웠을까.   강민혜 기자 kang.minhye@koreadailyny.com  강민혜 / 취재팀 기자취재일기 노인 노인국 서비스 뉴욕시 노인국 노인복지 종사자

2024-01-05

[취재일기] 뉴욕에서 서울·부산을 외치다

지난주 UN 총회로 전 세계 정상들이 뉴욕을 방문하며 한동안 맨해튼이 들썩였다. 총회가 한창이었던 20일 타임스스퀘어엔 자그마한 부스 2개가 설치됐다. 하나는 서울시의 ‘서울 마이소울’, 다른 하나는 현대차의 ‘부산 엑스포’ 홍보 부스였다.   서울시 쪽은 좋게 말해 홍보 부스지, 긴 테이블 하나가 다였다. 그 위로 TV 한 대, 서울시 홍보 티셔츠와 모자 몇 개가 어색하게 놓여 있었다. 번쩍이는 전광판으로 가득한 타임스스퀘어에선 보기 힘든 아날로그적 풍경이었다.   그런데 운영시간은 단 하루, 4시간뿐이었다. 자신감의 원천은 K-POP 아티스트였을까. TV엔 BTS 정국의 영상이 반복 재생됐고, 그 옆엔 뉴진스의 포스터가 있었다.   관광객들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대부분 부스를 등지고 유명한 ‘빨간 계단’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오세훈 시장이 나타나 한국 취재진이 몰려들기 전까진.   오후 늦게 오세훈 시장이 포토월에 서자 여기저기서 사진 요청이 들어왔다. 오 시장도 여러 포즈를 취하며 인기를 만끽했다. ‘두유 노 서울’ 같이 간단한 대화는 오갔지만, 오 시장이 서울시 브랜드를 직접 언급한 건 시민들 사이가 아닌, 언론 카메라 앞에서뿐이었다.   오 시장이 취재진과 함께 떠나자 인파는 사라졌다. 나중에 사진을 요청했던 이들에게 물어보니 “누군지 모르는데 유명한 것 같아 일단 사진을 찍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짧고 굵은(?) 홍보도 그렇게 끝났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 셀링’은 규모가 훨씬 컸다. 47개국의 정상을 만나 ‘부산 엑스포’ 유치를 지지해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에 돌아가 “많은 국가가 대한민국 정부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국제적 역할에 재외동포는 들지 못했던 걸까. 한국의 리더들이 모처럼 뉴욕에 왔지만, 재외동포에 대한 언급을 찾기 어려웠다.   윤 대통령은 대선 때 ‘재외동포청’ 설치를 약속했다. 재외동포의 거주국 내 지위를 향상하고, 본국과의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목표였다.   마침내 올해 들어 재외동포청이 출범했지만 한국도 뉴욕도 담당 인력이 부족해 불편함을 감수 중인 상황이다.     아직 한인들에겐 영향이 크지 않지만, 뉴욕엔 폭증하는 망명신청자 등의 이슈도 도사리고 있다. 기왕 뉴욕을 찾은 김에 한 번이라도 재외동포를 언급해줬으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는 지점이다.   국제적인 행사에 로컬 이슈를 들이민다니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모든 정부의 지지기반은 로컬에서 시작하고, 그 로컬엔 서울과 부산뿐만 아니라 뉴욕도 있다. 재외동포의 지위 향상과 본국 연계 강화, 말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이하은 / 취재팀 기자취재일기 뉴욕 서울 서울시 홍보 서울 마이소울 서울시 브랜드

2023-09-27

[취재일기] 제2의 한국인 NBA리거를 기원하며

3년 전부터 한인 농구팬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는 선수가 있다. 오는 23일 미프로농구(NBA) 드래프트에 도전하는 이현중(21) 선수다.   이현중이 58명을 뽑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지명되면 2004년 하승진(2라운드 46번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이후, 한국인 중 2번째로 NBA에 진출하는 선수가 된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데이비슨칼리지에서 지난 3년간 좋은 활약을 보인 이현중은 3학년 시즌을 맞은 2021~2022시즌 팀의 주득점원으로서 경기 당 평균 15.8 득점을 올리며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남자농구 디비전1 애틀랜틱10 올컨퍼런스 퍼스트팀에 뽑히며 주목을 받았다.   기세를 몰아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3월의 광란’에도 진출했지만 아쉽게도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토너먼트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낙담할 틈도 없이 NBA 드래프트 도전을 발표한 이현중은 최근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NBA 팀들과 워크아웃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리그 최고의 인기 팀 중 하나인 LA레이커스와 브루클린 네츠와도 워크아웃을 가졌다.   LA 또는 뉴욕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운동 선수가 지역사회에 끼칠 영향력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는 LA다저스에서 활약했던 박찬호, 류현진이 한인사회에 몰고 왔던 열풍을 기억하고 있다.   특히, 박찬호의 활약은 IMF 외환위기로 시름에 빠져있던 모든 한국 사람들에게 희망을, 류현진의 활약은 이민 1세대는 물론, 미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이민 2·3세대들에게도 자부심을 심어주면서 세대 간 유대감 형성에 일조했다.   냉정하게 보면, 현시점에서 이현중의 NBA 진출 가능성은 반반으로 평가된다. 인기팀·비인기팀, 찬밥·더운밥을 가릴 처지는 아니라는 소리다.   이현중은 좋은 사이즈(6피트 8인치)와 슈팅 능력(대학 통산 3점 성공률 37.3%)을 가졌지만, 상대적으로 평범한 운동능력이 괴물들의 리그인 NBA에선 큰 약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현중이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더라도 서머리그나 마이너리그인 G리그를 통해서라도 NBA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아시안 선수들에게는 불모지 같은 NBA에서 꼭 살아남길 기대한다.   2012년 뉴욕 닉스에서 ‘린새니티’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뉴욕은 물론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대만계 제레미 린도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언드래프티’였다.   NBA는 “Where Amazing Happens”(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이현중이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서 활약하며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심종민 / 편집국 기자취재일기 한국인 기원 한국인 운동 이후 한국인 드래프트 도전

2022-06-16

[취재일기] 퀸즈 한인타운 붐도 일어나길…

“진짜(Authentic) 한식을 먹으려면 플러싱, 머레이힐에 가야 한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어요. 너무 ‘백인화’ 된 한식당은 전 별로더라고요.”   “한인 아저씨, 아줌마들이 많은 한식당에 저도 가고 싶어요! 아, 근데 플러싱이죠?”     최근에 20~30대 타민족 뉴요커들에게서 몇 번이나 들은 말이다. 이들이 퀸즈 한식당에 대한 관심을 드러낼 때마다, 곱씹어 생각해보게 되는 점들이 있다.     먼저, 플러싱·머레이힐·베이사이드 등 한인 밀집지역까지 꿰고 있는 타민족들의 ‘프로페셔널함(?)’이 놀라웠다. 이들의 구글맵을 들여다보면, 평소 SNS나 뉴스를 통해 관심을 갖게 된 퀸즈 지역 한식당에 찍어둔 별표 표시가 가득했다. 순대, 족발, 한국식 회 등 맨해튼에선 상대적으로 즐기기 어려운 음식들도 줄줄이 꿰고 있었다. 한식당마다 갖춘 대표 메뉴도 섭렵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만큼 ‘진짜’ 한식 문화를 경험하고자 하는 수요는 상당한 셈이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점은 ‘한인 어른들이 좋아하는 한식당’에 가고 싶다는 말이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바로 답이 나왔다. 한인들도 서울 명동 거리에서 새벽에 문을 여는, 어르신들이 출근 도장을 찍는 설렁탕집이 제일가는 맛집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뉴욕에서도 나이가 지긋한 이들이 바글바글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면, 왠지 믿고 먹어도 될 것 같은 느낌도 받아본 경험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꼭 마지막 말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플러싱은 너무 멀다”, “먹으러 갔다가 뭐하지? 할 게 없다”, “올 때 우버를 타야 하나?” 등의 말이 꼭 뒤에 붙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고, 방탄소년단(BTS)이 좋아한다는 진짜 한식을 즐기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물리적·심적 거리는 아직 멀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서 홍보물을 접한 뒤 거리가 먼데도 브루클린, 할렘 등에 기를 쓰고 찾아가는 것을 보면 괜스레 더 억울한 생각도 든다. 이미지가 다채로운 다른 지역에 비해 퀸즈는 상대적으로 ‘먹고 마시러 가는 곳’이란 인식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서다.     일부 한식당 업주들은 타민족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도 말한다. 이제 막 팬데믹 타격에서 회복된 지금, 줄을 서야 입장할 수 있는 맨해튼 코리아타운 분위기는 아예 딴 세상 얘기라는 것.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고 믿는다. 이미 퀸즈 한인 밀집지역은 흥미로운 한인 역사와 진짜 한식이 있다. 단지 필요한 것은, 물리적·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한 적절한 홍보에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다. 김은별 / 편집국 기자취재일기 한인타운 퀸즈 퀸즈 한인타운 퀸즈 한식당 퀸즈 지역

2022-06-09

[취재일기] 마리화나 합법화와 한인들

지난 4월말부터 뉴저지주에서 합법적인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가 시작됐다.   판매 첫날부터 주전역에서 1만2000명이 총 200만 달러어치 마리화나를 사갈 정도로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주변 몇몇 지인들만 해도 반응이 뜨겁다.   “이제 합법화 됐으니 마음 놓고 피워도 되겠네”, “불법 딜러들을 찾아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어졌다” 등 마리화나 합법화를 반기는 일부 주변인들의 분위기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놀랍다.   한국의 경우 ‘대마초 흡연’을 죄악시 하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 대부분은 마리화나를 음주 정도로 취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인식차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응답자 중 단 8%만 ‘마리화나가 합법이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사에서 60%의 응답자는 ‘기호용·의료용 모두 합법화해야 한다’고 답했고, 31%는 ‘의료용만 합법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반면, 한국에서 이민 온 1세대들, 중·장년층들, 특히 중·고교생 자녀가 있는 학부모들은 우려가 크다.   한 지인은 “접근장벽이 더 낮아진 마당에 아이가 혹시나 호기심에, 또래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리화나에 손을 댈까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마리화나가 성장기인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신체적 영향은 물론, 정신적 의존성이 술·담배보다도 높다는 연구가 있어 중독성 문제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청소년기에 마리화나를 흡연할 경우, 두뇌 발달과 신경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은 수많은 연구결과에서 입증되고 있다.   또 20대 이상의 성인들보다 10대 청소년들이 중독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오면서 부모들의 걱정은 커져만 가고 있다.   보건당국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의 마리화나 사용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2~15세 청소년들의 15%가 월 1회 이상 사용하는데, 실제는 이 수치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판단된다. 연구의 성격상, 이 같은 유형의 데이터는 축소 보고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마리화나 흡연 후 차량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업무 중 흡연으로 인한 다양한 문제 등 마리화나 합법화가 가져올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 때문에 합법화 소식을 반기지 않는 한인들도 많다.   한편, 한국은 마리화나 흡연은 물론 매매·소지·알선 등도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내 허용된 주에서 마리화나를 흡연하더라도, 한국 귀국 후에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심종민 / 편집국 기자취재일기 마리화나 합법화 마리화나 합법화 마리화나가 합법 마리화나 흡연

2022-05-12

[취재일기] 격리 면제 사각지대

자가격리 면제에 사각지대가 있다.       이달 초부터 코로나19 백신을 접종 완료했다면 한국에 입국할 때 자가격리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팬데믹으로 3년 넘게 발이 묶였던 뉴욕 한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7세에서 12세 미만의 자녀를 동반해 한국에 입국하는 경우, 백신을 접종한 부모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동반 자녀는 자가격리를 해야 할 수 있다.     어린 자녀가 격리를 할 경우 현실적으로 돌볼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부모도 꼼짝없이 격리 아닌 격리에 처하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다.     자녀가 백신을 접종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자가격리가 면제되는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자가격리가 면제되는 사람은 인정되는 백신을 국내나 국외에서 접종 완료한 사람이다. 2차 접종(얀센백신의 경우 1차 접종) 이후 14일에서 180일 이내인 사람 또는 부스터 샷을 접종한 경우다.     백신 종류는 WHO가 인정한 백신으로 미국에서 접종하는 화이자·모더나·얀센이 모두 포함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단, 뉴욕 거주 성인의 다수가 작년 봄과 여름에 1·2차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부스터샷을 맞아야 격리면제 대상에 해당한다.     2차 접종 후 180일이 경과한 어린이도 부스터샷을 맞아야 격리면제가 되지만, 미국에서는 이 연령대에 대한 부스터샷 접종이 승인되지 않았다.     한인 A씨는 8세, 11세 두 자녀와 한국에 방문할 계획에 분주하던 중 이같은 소식을 접했다.     자녀 둘 다 작년 11월에 백신을 접종해 5월 중순이면 6개월을 넘긴다. 결국 180일 이내에 가까스로 입국하느냐, 미국에서 아동 부스터샷이 시행될 때까지 기다리느냐의 기로에 섰다. 자가격리 앱을 통한 추적이 없으니 대충 피하면 된다는 주변의 의견도 들었다.     자가격리의 역사도 간단치 않다. 면제 없는 강제에서 직계가족 방문의 경우로 제한 허용하면서 총영사관이 격리면제서 발급에 북새통을 겪기도 했었다.     이달 취재차 만난 한 한인은 “구글링만 하면 가장 최신의 통합 입국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국 방역당국과 지역별 영사관에서 올린 과거와 현재 자료가 혼재돼 혼란스럽다는 설명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질병관리청은 “위험도가 낮은 입국자에 대해 격리면제를 적용하는 것으로 12세 미만 소아에 대한 예외 적용은 어렵다”고 답변했다. “단 6세 미만은 동반 입국한 보호자의 예방접종에 따라 격리가 면제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은주 / 편집국 차장취재일기 사각지대 격리 자가격리 면제 격리면제 대상 부스터샷 접종

2022-04-28

[취재일기] 다양한 아시안 서사가 중요한 이유

지난주, 올 가을 브로드웨이에 진출한다는 뮤지컬 ‘케이팝(KPOP)’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NY1, NBC, 뉴욕포스트, PIX11, 한국 취재진 등 25개 매체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생각보다 큰 관심에 뉴욕한국문화원 직원들도 뿌듯한 분위기였고, 포토타임 이후 취재 경쟁도 꽤 치열했다.   기다림 끝에 뮤지컬 케이팝의 디렉팅을 맡은 테디 버그먼 감독에게 물었다. ‘아시안 소재 뮤지컬인 만큼, 혹시 증오범죄나, 아시안들이 이민자로서 살아가는 고충을 풍자하는 내용도 약간 들어 있느냐’고. 뉴욕에서 증오범죄가 핫이슈인 데다, 시선이 꽤 몰려 있는 만큼 당연히 그렇다는 답이 돌아올 거라고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대답은 “노(No)” 였다.     매우 강한 어조의 부정이라 살짝 당황하던 찰나, 버그먼 감독은 바로 말을 이어갔다. 케이팝 스타가 되고 싶은 일반적인 사람들, 한국인들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야망이 넘치고, 꿈을 위해 이들이 얼마나 인생을 쏟아붓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는 것.     뮤지컬 음악을 작곡한 한인 작곡가 헬렌 박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시대를 초월한 뮤지컬을 만들려 했고, 각자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려 했을 뿐 특정 이슈를 다루겠다는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또 “다양한 아시안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는 데 의미가 있고, 이들의 이야기들이 계속 노출되다 보면 사람들도 아시안에 대해 더 제대로 알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인종차별을 딛고 살아가는 아시안들의 삶도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답했다면 좀 더 광고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을 텐데, 이들은 오히려 아시안 서사를 담백하게 전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본 것이다.     예상외였던 제작자들의 답변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잊을 만하면 뉴욕 일원에서 아시안이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이 소식이 뉴스로 생산된다. 물론 예전엔 숨기려 했던 차별과 증오범죄 문제를 겉으로 꺼낸 것은 의미가 크다. 제대로 된 처벌을 끌어내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런 뉴스는 계속 필요하다.     다만 지나치게 증오범죄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자칫 ‘아시안=범죄 타겟’이라는 또 다른 차별이나 편견을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꿈을 위해 살아가는 다양한 아시안, 열정적으로 살아온 한인들의 일반적 서사가 더 많이 알려져야 하는 것 아닌지. 우리가 마치 ‘백인’ 이야기라고 해서 내용을 예측하고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지 않는 것처럼, 다양한 아시안의 이야기가 알려져 더는 ‘아시안’ 콘텐트라고 광고하지 않아도 될 때, 진정 차별도 사라지지 않을까. 김은별 / 편집국 기자취재일기 아시안 서사 아시안 서사 아시안 열정적 아시안 소재

2022-04-07

[취재일기] 유명인 특혜, 형편성 없는 방역조치

지난달 27일 미프로농구(NBA) 브루클린 네츠의 간판스타 카이리 어빙이 1년 만에 홈 경기장인 바클레이스센터에서 경기를 펼쳤다.   최근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이 코로나19 정상화의 일환으로 민간기업 백신 의무화 대상에서 운동선수·예술 및 공연가를 제외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면서 어빙이 다시 홈경기에서 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명의 네츠 팬으로서 어빙의 홈 복귀가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어빙의 복귀가 형평성 없는 뉴욕시의 방역조치를 재조명했기 때문이다.   어빙은 지난해 코로나19 백신이 보급되기 시작할 때부터 ‘자신의 신념’에 따라 끝까지 백신 접종을 거부한 선수다.   앞서 뉴욕시는 코로나19의 추가 확산을 막고 백신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실내시설 접종 증명 의무화, 민간기업 백신 접종 의무화 등 강력한 접종 의무화 정책을 펼쳤기에 그간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어빙의 홈경기 출전 금지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또 당시 뉴욕시는 공무원 백신 접종 의무화 지침으로 끝내 백신 접종을 거부한 수천명의 교사·소방대원·경찰관을 해고하는 극단적인 방역책을 선보였는데, 연봉 3500만 달러대의 인기 스포츠스타라고 해서 경기 출전을 허용하는 예외는 없었다.   그런데, 백신 미접종 뉴욕시 연고 스포츠팀 소속 운동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하던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이 지난주 돌연 출전을 허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조치 뒤에는 사전 로비가 있었다는 보도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이제는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코리 존슨 전 시의장이 운동선수들의 뉴욕시 백신 접종 의무화 면제 조치 행정명령과 관련해 브루클린 네츠 측과 작성한 로비 계약서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또, 뉴욕타임스(NYT)는 개막을 앞둔 미프로야구(MLB)의 뉴욕양키스·뉴욕메츠 구단 관계자들이 지속적으로 이번 행정명령 조치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사실을 보도했다.   처음에는 로비 의혹을 부인하던 아담스 시장은 결국 이를 시인했는데, 이번 사태는 결국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생계 유지를 위해 억지로 백신 접종을 한 교사·경찰관·소방대원 등 뉴욕시 공무원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억울할 만하다. 결론적으로 보면 똑같이 ‘본인 의지’로 백신 접종을 거부했던 사람들이지만, 수백, 수천만 달러를 받는 운동선수들은 ‘유명인 특혜’로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아도 결국 다시 자신들의 직장을 되찾은 셈이고, 공무원들은 밥줄을 끊길 수는 없기에 억지로 백신 접종을 하거나 직장을 잃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심종민 / 편집국 기자취재일기 방역조치 유명인 백신 접종률 백신 미접종 접종 의무화

2022-03-31

[취재일기] 팬데믹 2년, 잃어버린 것은

팬데믹 가운데 2년이 지났다.     뉴욕주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이 본격화한 것이 정확히 2년 전인 2020년 3월 2일, 1호 환자가 발견되면서부터다. 이후 감염이 급속도로 번지면서 첫 확진 단 20일 만에 모든 활동이 강제로 중단됐다.     새로운 바이러스는 전염경로, 증상, 치료방법 등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감염과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팬데믹이 망쳐 놓은 건 단순히 감염으로 인한 것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코로나19가 무서워 식재료까지 배달시켜 먹는 등 최대한 외부활동을 끊었던 한 40대 여성은 최근들어 지난 2년간 체력이 형편없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단으로 단 몇개 층을 오르는데도 머리가 핑 돌고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라고 했다.     팬데믹 전에는 꾸준히 헬스장을 찾아 운동을 했지만, 감염이 무서워 운동까지 끊은 것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바이러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자신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같은 체력 저하는 격리와 여행 제한 등에 따른 근육량 감소가 큰 원인일 것이다.     어두운 방안에서 스마트폰을 친구 삼던 사람들은 눈이 급격히 피로해졌다는 하소연이다. 재택근무와 원격학습, 넷플리스와 유튜브 시청으로 스마트폰과 랩톱만 끼고 산 탓이다.     전문의들은 이같은 눈의 노화도 눈과 주변 근육의 퇴화에서 비롯한다고 설명하고, 팬데믹 가운데 젊은 노안환자가 늘었다고 전한다.     마음과 관계의 근육을 다친 사람은 더 많다.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 장기화에 따른 정신적,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가벼운 우울감과 불안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부터 심한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까지 다양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무섭다는 경우도 있다.     돌이켜보면 바이러스보다 무서운게 단절과 불확실성으로 인한 공포였다는 생각이다. 여행과 가족모임, 회식같은 소소한 일상이 중단된 데서 오는 단절감, 그리고 언제 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그것이다.     하지만 무서운 게 습관이다. 처음에는 간절히 일상으로의 회복을 꿈꾸던 사람들이 어느덧 예전의 그 일상을 불편하게 느끼게 된 것이다.     한 30대 직장인은 일도 놀이도 혼자하는 게 익숙해졌다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재택근무로 직장 내 관계가 끊어진 것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관계도 그렇다고 했다. 통화나 온라인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으로만 관계를 이어가다 보니, 이제는 만나면 어색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2년, 무엇보다도 복원해야 할 것은 몸과 마음, 그리고 관계의 근육이 아닐까. 장은주 / 편집국 차장취재일기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근육량 감소 감염과 죽음

2022-03-10

[취재일기] H마트에서 울다

소녀같이 앳돼 보이는 한 여성이 무대에 올랐다.     청중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이 여성이 지난달 24일 맨해튼 지그펠트볼룸에서 개최된 ‘뉴욕한인의 밤’ 행사에서 ‘차세대상’을 수상한 미셸 조너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라는 인디밴드를 이끄는 리드보컬로, 세 장의 앨범을 내놨고, 올해 그래미상 신인상에 노미네이트된 라이징 스타다.     이런 그가 지난해 4월 ‘크라잉 인 H마트’라는 자전적 에세이를 펴냈다. 이 책은 현재 31주째 뉴욕타임스(NYT)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주류사회의 열광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쭉, 나는 H마트에서 운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를 암으로 떠나보낸 그는 H마트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글을 썼다.     책에서 그는 “전화해서 우리가 예전에 사 먹었던 김이 어느 브랜드냐고 물어볼 사람이 없다면, 내가 아직도 한국인일까?”라고 묻는다.       이 책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자신이 한국인임을 확인하는 과정, 세상을 떠난 엄마를 기억하려는 노력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 책을 “디아스포라적 삶이 현기증을 불러 일으킨다”고 평가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대부분의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책에는 떡국, 동치미, 김, 미역국, 만둣국, 삼겹살 등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의 이름이 나열돼 있어 반가웠다.     문득, 하필이면 왜 음식을 통해서 엄마를 추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음식은 단순히 생명 유지를 위한 먹거리만은 아니다.     나만의 취향과 선호를 나타내고, 우리 가족만의 밥상문화로 우리식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한다. 어떤 냄새만 맡아도 인상적인 한 순간의 식탁과 엄마의 손맛을 기억하게 한다. “밥 한번 먹자”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지고, 우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나라마다 다른 식탁 매너로 예절과 교양까지도 표현한다.     식문화라고 표현할 정도로 음식이야말로 문화의 핵심이다.     한국의 음악과 춤, 영화와 드라마, 휴대폰과 자동차가 세계에서 인정받은 가운데, 이제는 한국의 식문화 차례가 아닌가 싶다.     이날 ‘뉴욕한인의 밤’ 행사에는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도 참석해 “한인 커뮤니티가 곧 뉴욕”,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라고 강조했다.     미셸 조너가 음식으로 그의 어머니를 기억했듯이, 음식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당당하게 인정받는 현실이 훌쩍 다가왔다. 장은주 / 편집국 차장취재일기 마트 한국인 어머니 식문화 차례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2022-03-03

[취재일기] 학교 급식 채식 강요 정당한가

매일 점심시간이면 회사 앞 한 고교의 학생들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 모습을 본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유독 학생들이 많아 보였는데, 아마 뉴욕시가 이번에 새로 추진하는 ‘비건 프라이데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은 이달 초부터 매주 금요일을 비건 프라이데이로 지정하고 뉴욕시 공립교에서 완전채식 중심의 식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취지는 좋다. 실제로 뉴욕시 학생들이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을 섭취하는 빈도가 높아져 소아비만과 당뇨, 천식 등에 대한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 비건을 자처하는 아담스 시장은 2016년 비만, 당뇨 등을 겪다가 채식을 시작한 뒤 35파운드를 감량하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주장한다.   분명 학생들에게 건강한 식습관을 심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지도 않고 무조건 비건 식단을 제공하는 것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낮은 질과 맛없는 급식으로 악명 높은 공립교에서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시작한 정책이 되려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학교 정문을 나서게끔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생들이 채식이 입에 맞지 않아 학교 밖에서 패스트푸드 등 불량식품을 더 자주 사 먹는 악순환이 이어지진 않을까.   또 필수 영양분 중 비타민B12, 칼슘, 철분, 아연 등은 채식만으로는 충분히 섭취하기 힘들어 영양을 골고루 섭취해야 할 성장기 학생들이 채식급식으로 인해 영양 불균형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건 프라이데이가 시작된 이후 트위터에서는 학부모들의 인증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 일부 학교에서 제공된 검은콩 ‘치즈’ 부리토가 논란이다.   채식주의의 종류와 유형이 다양하다지만, 가장 높은 단계인 ‘비건’을 정의할 때는 동물성 고기와 생선, 달걀은 물론 유제품도 포함되지 않는다.   시 교육국은 해당 이슈와 관련 비건 프라이데이에 ‘베지테리언’(포괄적 의미의 채식) 식단이 제공될 수 있다는 말장난 같은 답을 내놨다. 비건과 달리 유제품 계란 등 일부 동물성 음식을 허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교육국의 반응은 최근 아담스에게 불거진 ‘피시게이트’(FishGate)를 떠오르게 한다.   지난 7일 아담스 시장은 자신이 “완벽하지 않은 비건”임을 인정했다.   단골식당에서 생선요리를 즐겨먹는 것을 목격했다는 보도에 아담스는 즉각 오보라며 반박했지만 결국 증거가 속속 나오자 이를 사실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이쯤 되면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라는 좋은 취지가 허울뿐이지는 않을까라는 의구심도 들만하다. 심종민 / 편집국 기자취재일기 학교 급식 학교 급식 뉴욕시 학생들 학교 정문

2022-02-17

[취재일기] 뉴욕한인회 설날 나눔 행사 풍경

지난 토요일(5일) 플러싱 머레이힐역 인근은 춥지만 화창했다.     폭설이 만들었던 지저분한 잔해는 전날 온 비로 씻겨 나가 거리는 깨끗했다.       한주 전 눈으로 취소됐던 뉴욕한인회 설날 나눔 행사가 열린 거리 곳곳은 북적대면서 흥분되는 분위기였다. 올해는 많은 직능단체들이 참여해 쌀포대부터 떡국 떡, 만두, 냉동식품에 과일까지 나눠주는 데다, 무대에서는 흥을 돋우는 공연까지 더해서 딱 옛날 장터 분위기였다.     한 할머니가 다짜고짜 내게 한국사람이냐고 물었다. 욕심껏 나눠주는 물건들을 받았는데 도저히 혼자 가져갈 수 없는 양이라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했다. 받아 든 전화기에는 입력된 번호가 단 몇 개 뿐이고, 아들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전화 거는 방법도 모르는 것 같아 걱정이 됐다.     겨우 연결한 아들은 일하고 있어 어머니를 모시러 갈 수 없다면서 난감해 했다. 세상이 험한데 왜 혼자 갔냐면서, 무거운 물건은 싹 다 버리고 길만 잃지 말고 집으로 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날 행사에는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가 참석해 한인들에게 일일이 명절선물이 담긴 봉투를 나눠주면서 “해피 뉴이어”를 외쳤다. 지역정치인들도 한데 모여 모범적인 한인사회의 발전상과 한인단체들의 헌신적인 기여를 칭찬하는 데 바빴다. 한인 소상인과 이민자를 위한 정책을 아낌없이 실현시키겠다는 약속들도 내걸었다.     늦게 행사장을 찾은 척 슈머 민주당 연방상원 원내대표는 길게 줄을 선 한인들 사이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어렵사리 배운 한국말로 “여러분의 상원의원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반복했다. 줄선 일행들은 영문도 모르고 박수를 치다가 옆에서 “상원의원이래요” 하니까 “홍준표, 윤석열은 알아도 여기 국회의원은 몰라”라고 했다.     올해로 세 번째인 행사는 참여기업과 기관들이 늘면서 눈에 띄게 풍성해진 모습이다. 독지가부터 한인기업까지 나누는 물품들이 넘쳐나는 게, 팬데믹을 거치면서 한인사회에 나눔 문화가 정착된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로 눈살 찌푸리게 하는 모습도 많았다. 공간은 좁고 사람은 많은데 밀치는 사람들이 많아 안전사고가 걱정됐다.      이날 머레이힐역 주변은 하루종일 들고 나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어떤 사람들은 차를 대놓고 가족을 총동원해 받은 물건을 실어 날랐다.     이른 아침부터 나와 기다렸다는 한 주민은 “일찍 서둘렀는데도 이미 줄이 길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로 실직한 데다 몸까지 아파 먹고 살기가 막막한데, 받은 먹거리가 너무 고맙다”면서 꾸러미들을 들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장은주 / 편집국 차장취재일기 뉴욕한인회 설날 뉴욕한인회 설날 행사 풍경 나눔 문화

2022-02-10

[취재일기] 우버로 출퇴근하는 사람

말로만 듣던 ‘대중교통 대신 우버로 출퇴근하는 사람’을 직접 만났다.     지난 주말, 지인과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서는데 주인이 잡아세우며 물었다. “이 시간에 걸어가려면 테이저건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괜찮냐”고. 자리를 일어서며 공원을 좀 걷다 가자고 한 말을 얼핏 듣고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 이제 해가 막 진 시각인데도 말이다.     브롱스에 살며 어퍼 맨해튼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이 여성은 늦은 퇴근길에 우버를 이용한 지 벌써 6개월째라고 했다. 한 달에 우버에 쓰는 돈만 1000달러가 넘는다. 수입이 크게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전철역에서 약물을 직접 주사하는 사람을 마주친 후 밤늦은 시각 전철은 포기했다. 차를 사는 게 낫지 않냐고 물으니 그렇진 않단다. 그러면서 “그래도 언젠가 정상으로 되돌아 갈 거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잊을 만하면 전철에서 일어난 사건사고 소식이 들려온다. 정신병력이 있는 노숙인이 선로로 밀어 사망한 여성, 지하철에서 졸다보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칼을 휘두른 사건, 아시안이나 유대인에게 혐오 발언을 쏟아붓는 사건 등이 줄을 잇는다. 작년 전철 내 중범죄는 1997년 이후 가장 많았다. 한인 상당수가 팬데믹동안 아시안 증오를 경험했고, 대중교통 타기를 두려워한다. 이런 소식을 접하고 있노라면 다시 팬데믹 이전의 분위기를 찾기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브롱스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 식당 주인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 그는 “팬데믹동안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케어해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굳게 믿는다”며 “뉴욕시경(NYPD)을 더 투입하는 것도 좋지만, 정신질환자들을 제대로 돌봐주고 그들이 갈 곳을 만들어 주는 게 시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노숙인을 위한 셸터가 집 근처에 생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다.     순간 이 사람이 부유해서, 장사가 잘 돼서 한가한 말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꼬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지나치게 진지했고, 식당도 딱히 장사가 잘 되진 않았다. 연말연시 예약도 절반은 취소됐다고 한다. 그는 “911 테러 이후에도 도시 분위기가 되돌아오는 데 한참 걸렸다”며 “언젠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도울 방법이 있다면 동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달에 1000달러가 넘는 돈을 우버에 쏟아부으면서도 희망을 논하는 걸 듣자니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또 한편으로는 머리가 띵하기도 했다. 결국은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말을 믿어야 현실을 살아갈 수 있어서인걸까. 아니면 이런 믿음들이 수많은 위기 이후에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만들고, 뉴욕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 힘인 걸까. 김은별 / 편집국 기자취재일기 출퇴근 도시 분위기 시각 전철 대중교통 타기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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