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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극동 러시아와 만주의 한인 ,1895-1937’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마침내 다 읽었다. 저자 이혜옥 박사로부터 책을 받아 읽으며 가끔 덮어버리기도 하고, 한숨도 쉬고, 주먹도 불끈 쥐었었다.   책 제목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 클레어몬트 대학원에 진학한 이 박사의 학위 논문 제목이기도 하다. 영어 원문을 번역한 각주만 59쪽에 달한다. 일본국립보관소,미국정부공문자료,러일 전쟁 정부 보고서,외교관 보고서,서양인 여행기 등 출처도 다양하다.   책에 빽빽하게 기록된 역사 자료들을 보다 서양인이 상투를 틀고 조선인 사이에 서 있는 ‘내 친구들…’ 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1904년에 러일 전쟁을 취재하러 한국에 와 5개월간 일본군을 따라 종군했던,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소속 잭 런던 기자가 남긴 기사와 사진들이었다. 그는 조선의 ‘게으른 양반들’, ‘가난한 일꾼들’,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글로 남겼다. 그보다 앞서 한국을 네 번이나 방문해 3년간 머물렀던 영국 귀족 출신의 이사벨라 비숍은 여행기에서 한국인에 대해 ‘체력이 강하고 외모가 뛰어나다’고 기록했다는 내용도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비참했다. 이로 인해 목숨을 걸고 러시아나 만주로 떠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마을 전체가 이주하기도 했다. 계속된 홍수와 기근에도 농민들에게는 ‘백골징포’라는 무서운 세금이 있었다. 세금을 갚지 못하고 숨지면 자녀나 친척, 이웃에게까지 그 부담이 넘겨졌다. 또 1894-95 청일전쟁,1904-05 러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전국이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집권 세력은 고종 황제를 둘러싸고 파벌 싸움만 벌였다. 이때 일본은 이미 한반도 지도를 만들어 수탈과 징용 등의 자료로 활용했다.     책에는 흥미 있는 내용도 나온다. 잭 런던은 일본군과 함께 이동하며 간단한 한국어도 익혔다. 그는 ‘어서!(Osau!), 바삐(Papee), 얼른(Ol-run), 속히(Sok-kee), 얼핏(Oil-ppit), 급히(Koop-hee), 냉큼(Ning-kom), 빨리(Bal-lee), 잠깐(Cham-kan)’ 등의 방법으로 한국어를 영문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또 1894~1897년 사이 조선을 방문했던 이사벨라 비숍은 나룻배를 개조해 강을 따라 여행하며 ‘조선의 관리들은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기록했다.     조선인들은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로,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떠나갔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중국인도 많았는데 조선인들은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고유의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 이 지역의 조선인 디아스포라 형성과 유지에 여성의 역할이 컸다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시베리아에 러시아인을 정착시키기 위해 이주자에게 땅과 돈을 주기까지 했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돌아갔다고 한다. 특히 금광에서 중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조선뿐이었다. 1897년에 러시아를 찾은 비숍이 발견한 것은 비록 타향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감과 긍정적인 모습의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은 피부색으로 인해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아르메니아 등에서 온 러시아인, 그리고 유대인이나 독일인처럼 지역 사회에 쉽게 융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조인인들은 주로 군기지 근처에 거주하며 육류와 채소 조달 사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만주에서 여윈 소를 사다 살을 찌운 후 양질의 소고기를 파는 등 사업 수완도 남달랐다. 비숍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국에서의 소심하고, 의심 많고, 움츠린 모습과 달리 솔직하고,남성적인 독립심을 보였다’고 썼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많은 디아스포라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 수백만 명의 디아스포라들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 한국에서 재외동포청도 출범한 만큼 한국인 디아스포라 역사도 발굴해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아리랑 민족 아리랑 민족 조선인 사이 조선인 디아스포라

2024-03-26

[아름다운 우리말] 한류의 뿌리, 한국어

최근 한 인터뷰에서 한류의 뿌리는 한국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제 대답은 그렇다였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어를 알아야 한류 속에 담겨있는 한국인의 사고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한국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지, 왜 한국 노래에 세계가 열광하는지에 대해 그 뿌리를 한국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한국어 속에는 어떤 문화요소들이 담겨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어의 문화적 특징을 이야기합니다. 한국어는 형용사가 발달한 언어입니다. 이 말은 한국어가 변화에 민감하다는 말이에요. 한국인은 변화, 사람 사이의 관계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상대높임법이 발달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의성어나 의태어도 변화와 관계가 있습니다.      유아에게 가르치는 말놀이는 그야말로 우리말의 유전자입니다. 도리도리, 짝짜꿍, 곤지곤지, 부라부라, 곤두곤두는 말을 배우는 시작이고, 걷기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또한 운동을 통해서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말과 걷기와 건강이 유아어에 담겨있습니다. 도리도리는 머리 운동입니다. 곤지곤지, 짝짜꿍은 손 운동이고, 부라부라, 곤두곤두는 발 운동입니다. 모두 말하기, 걷기와 연계되는 놀라운 놀이입니다. 이런 말놀이가 있는 언어는 거의 없습니다.    저는 한국인을 대표하는 나무로 잣나무를 듭니다. 잣나무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혹시 잣나무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시나요? 영어로는 Korean pine입니다. 한국 소나무라는 말인데요. 잣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로도 잣나무는 조선소나무라고 합니다. 잣은 높이가 60m 정도까지 자라는데, 우리를 맑게 해주는 피톤치드도 엄청나게 뿜어냅니다. 잣나무 숲으로 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잣은 우리의 기상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노래는 역시 아리랑이죠. 아리랑은 다양한 어원적 해석이 있습니다. 어원이 복잡할 때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리랑은 아리다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쓰리랑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쓰리랑은 쓰리다와 관계가 있죠. 그리고 아리다는 앓다 즉 아프다와 관계가 있습니다. 쓰리다는 슬프다와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아리랑고개는 아픔의 고개, 쓰리랑고개는 슬픔의 고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아리랑 노래에서는 아리랑고개를 넘지 않게 해달라고 빌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아리랑 고개는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하는 고개이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빨리 건너가게 해달라고 노래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아픔이나 슬픔이 없을 수는 없어요. 잘 지나가게 하고, 잘 이겨내는 게 중요한 겁니다. 모두 아픔의 고개, 슬픔의 고개를 잘 넘기시기 바랍니다. 슬픔에 머무르지 마세요. 아리랑고개에서 주저앉지 마세요.     인사말 중에서는 반갑다만 소개해 볼까요? 반갑다의 반은 빛이라는 의미입니다. 반짝이나 반디, 번개에서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갑다는 빛이 난다는 의미, 밝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내 얼굴이 빛이 났다면, 밝아졌다면 반갑다는 말은 참입니다. 그런데 말은 반갑다고 하면서 얼굴이 굳어있다면 그 반갑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저는 반갑다는 말을 하는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바랍니다. 반갑다고 말하며 웃어보세요. 진심으로.   한류의 뿌리는 한국어입니다. 그리고 한국어는 그대로 우리입니다. 한국어가 한국인을 이어주는 문화의 피이고 유전자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저는 한국어가 한민족 공동체의 연결고리가 되기 바랍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한국어 한류 뿌리 한국어 아리랑 고개 어로도 잣나무

2023-09-04

아시안 3% 학교, 5년째 "아리랑"

북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소재 사립학교 버건디 팜 컨트리 데이 스쿨(Burgundy Farm Country Day School)에서 한인 학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아시안 학생 조차 전교생의 3%에 불과하다. 하지만 매년 학교 연말 행사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이 빠지지 않는다. 한복을 곱게 입은 타인종 학생들이 북과 장구의 장단에 맞춰 조금은 어색한 발음으로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은 5년 이상 된 이 학교만의 전통이다.   이 전통의 주인공이자 아리랑 무대를 책임져 온 한인 교사 안젤라 백(Angela Baek.사진)씨를 만났다.   버건디 스쿨의 유일한 아시아계 교사인 백 씨는 한국 태생이지만 어렸을 때 이민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한인 1.5세다. 본인을 포함해 아시안이 5명밖에 없었던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백 씨는 소수 인종으로 서러움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버스에서 옆자리에 못 앉게 하고, 점심으로 싸간 김밥이 냄새 난다고 인상 찌푸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사춘기 때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는데 그때 부모님의 엄격한 지도가 아니었다면 한국어를 잊고 살았을 것"이라며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백 씨는 "나와 같은 이민자로서 한국인 정체성 확립에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라며 교육 분야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이중언어학 석사를 취득한 백 씨는 뉴욕 퀸스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 YWCA에서 유스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을 하다 남편을 만나 메릴랜드로 이주했다. 이후 한국어 교육이 이뤄지는 센터빌 소재 콜린 파월 초등학교서 교사를 하다 현재 학교인 버건디 팜 컨트리 데이 스쿨 (이하 버건디 학교)에 자리 잡았다.   여러 학교를 거치면서 그는 타인종들에게 한국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 재임중인 학교 연말 행사에 아시안 문화의 무대를 감독해야 하는 직무를 맡게 된 그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아리랑이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지부터 시작해,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아리랑 공연을 위해 백 씨는 한국 문화원에서 직접 한복, 장구, 북 등을 빌려 학생들에게 한국을 친숙한 나라로 인식하게끔 노력했다.     "그동안 혼자 무대를 꾸려나가며 어려움도 많았지만 아리랑을 넘어 한국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며 더 알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반응에 보람이 컸어요."   아리랑 공연을 통해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등 한국에 대해 아이들의 높아진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과 후 한국어 수업 또는 케이팝 댄스반을 개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건의할 예정이라고 그는 전했다.   끝으로 백 씨는 "한국 출신이라고 하면 남한인지 북한인지를 묻는 진부한 질문이 아닌 한국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학생들에게 한국을 알리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박세용 기자아시안 아리랑 사립학교 버건디 아리랑 무대 민요 아리랑

2022-12-23

미국 학생들에 ‘아리랑’ 전파하는 1.5세 한인교사

      북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소재 사립학교 버건디 팜 컨트리 데이 스쿨 (Burgundy Farm Country Day School)에서 한국인 학생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매년 학교 연말 행사에서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이 빠지지 않는다. 한복을 곱게 입은 미국 현지 학생들이 북과 장구의 장단에 맞춰 조금은 어색한 발음으로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은 5년 이상 된 이 학교만의 전통이다(본보 17일 A3면 기사 참조). 이 전통의 주인공. 이 학교 아리랑 무대를 책임져 온 한국인 교사 안젤라 백 (Angela Baek) 씨를 만났다. 주류사회와 자라나는 미국의 미래 주인공들에게 한국 문화 전파를 위해 힘쓰는 1.5세 한인의 모범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와의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버건디 스쿨의 유일한 아시아계 교사인 백 씨는 한국 태생이지만 어렸을 때 도미 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한인 1.5세다. 본인을 포함해 아시안이 5명 밖에 없었던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백 씨는 소수 인종으로 서러움이 많았다고 한다. “버스에서 옆자리에 못 앉게 하고, 점심으로 싸간 김밥이 냄새 난다고 인상 찌푸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사춘기 때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우기 힘들었던 백 씨는 "부모님의 엄격한 지도가 아니었다면 한국어를 잊고 살았을 거 같다"며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백 씨는 “나와 같은 이민자로서 한국인 정체성 확립에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라며 교육 분야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이후 교육학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이중언어학 석사를 취득한 백 씨는 미국 학생들에게 한국을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뉴욕 퀸스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 YWCA에서 유스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을 하다 남편을 만나 메릴랜드로 이주한 후, 백 씨는 한국어 교육이 이뤄지는 센터빌 소재 콜린 파월 초등학교서 교사를 하다 현재 학교인 버건디 팜 컨트리 데이 스쿨 (이하 버건디 학교)에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서 한유일한 아시아계 교사인 백씨는 버건디 학교의 다문화 존중 정신에서 비롯된 연말 행사에 아시안 문화의 무대를 감독해야 하는 직무를 맡으며 고민에 빠졌었다고 전했다. 또한 백 씨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아리랑이 한국에서 어떤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는지부터 시작해,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포부로 시작된 아리랑 공연을 위해 백 씨는 한국 문화원에서 직접 한복, 장구, 북 등을 빌려 학생들에게 한국을 친숙한 나라로 인식하게끔 노력했다. 아리랑뿐만 아니라 한국에 열렬한 관심을 보이며 더 알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반응에 뿌듯함을 느낀 백 씨는 “솔직히 혼자 무대를 꾸려나가는 데에 애로가 많았지만, 아이들이 한국에 흥미를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미소 지었다. 또한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 등 한국에 대해 아이들의 높아진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방과 후 한국어 수업 또는 케이팝 댄스반을 개설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건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백 씨는 앞으로도 현지 학생들에 한국이 먼 아시아 나라 중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흥미롭고 친숙한 나라로 알게끔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한 아님 북한인지를 묻는 클리셰적 질문이 아닌 한국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에 대해 알리겠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미국 한인교사 한국인 학생 학교 아리랑 민요 아리랑

2022-12-19

"한국의 '아리랑', 아이들의 '빛'이 되다"

      알렉산드리아 소재 사립학교 버건디 팜 컨트리 데이 스쿨 (Burgundy Farm Country Day School). 한국 학생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 학교 연례행사인 ‘페스티벌 오브 라이트’ (Festival of Lights)에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이 학교 유일한 아시아계 교사 안젤라 백 씨의 노력이었다.   매년 12월마다 열리는 학교 전통 행사인 ‘페스티벌 오브 라이트’는 각 학년별로 빛과 관련된 다양한 국가의 전통문화와 종교적 신념을 나타내는 무대들로 구성했다.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학교인 만큼,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접하기 힘든 국가들의 전통문화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올해 행사에는 아프리카 문화인 콴자의 ‘키나라’, 라틴계 문화의 ‘루미나리에’, 하누카의 ‘메노라’ 등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선보였고, 그 중 6학년은 아시아 문화 대표로 한국 전통문화인 아리랑을 선보였다. 한인이 한 명도 없는 미국인들로만 구성된 6학년 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장구와 북을 치면서 아리랑을 제창한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더라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 부르는 학생들에 관객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감동을 자아낸 아리랑 무대는 버건디 팜 컨트리 데이 스쿨의 유일한 아시안 선생님인 안젤라 백 교사의 지도로 진행됐다. 백 씨는 아리랑 무대를 위해 한국 문화원에서 한복, 장구, 북 등을 직접 빌려 현지 학생들이 한국 문화를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백 씨는 “한복을 입고 장구를 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의 열렬한 반응에 놀랐다”며 “아이들이 한국 전통문화인 아리랑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에 뿌듯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학교 측은 ‘페스티벌 오브 라이트’ 행사는 학교 커뮤니티의 다양성에 대한 존중, 공동체가 추구하는 인간성과 신뢰를 재확인할 수 있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특히 “어느 문화에서 왔던 빛은 어둠을 추방하고 희망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우리 학교의 행사는 전 세계의 종교적 믿음과 전통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빛의 의미인 ‘희망’을 추구한다”고 전했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아리랑 한국 한국 문화원 아리랑 무대 아리랑 아이들

2022-12-16

[아름다운 우리말] 희로애락(喜怒哀樂) 아리랑

흔히 사람들은 아리랑이 우리네 인생사를 담았다고 합니다. 여기의 인생사는 역사의 사(史)일 수도 있고, 일의 사(事)일 수도 있겠습니다. 내가 지나온 인생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내 인생에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의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담은 노래로 아리랑을 보는 것입니다. 아리랑은 전해져 내려오는 노래만 1000여 편이 넘고 지역마다 독특한 색깔로 발전해 왔습니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로 아리랑을 드는 것에는 전혀 이의(異議)가 없을 겁니다.     한편 아리랑에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가사마다 특별함이 다릅니다. 즉흥성이 있기에 새로운 변화도 끊임없이 생길 겁니다. 느린 가락에서 빠른 가락으로 폭도 넓으며 애절한 가사에서 풍자 가득한 즐거운 가사로 신명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공통점을 찾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아리랑이라는 표현만 닮은 노래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공통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비유적일 수 있지만 아리랑 고개를 넘어갑니다. 노래 속의 아리랑은 고통의 고개, 슬픔의 고개, 분노의 고개입니다. 동시에 아리랑은 기쁨의 고개, 환희의 고개, 즐거움의 고개이기도 합니다. 고개라는 특성상 오를 때는 힘이 들지만 내려올 때는 편안합니다. 고개를 넘어가면 고통은 그저 고통, 슬픔은 그저 슬픔, 기쁨은 그저 기쁨, 즐거움은 그저 즐거움일 뿐입니다.     산 위의 고개는 머무르는 공간이 아닙니다. 고개는 지나가는 곳입니다. 이 점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줍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아리랑이 희로애락이라는 말은 아리랑이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종종 놓치고 있는 것은 희로애락에 ‘기쁠 희(喜)’와 ‘즐거울 낙(樂)’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왠지 희로애락이라고 하면 ‘성낼 노(怒)’와 ‘슬플 애(哀)’만 있다고 짐짓 짐작하는 듯합니다. 아닙니다. 삶에는 ‘희’와 ‘낙’도 있습니다. 아니 희로 시작해서 낙으로 마무리되는 삶입니다.   아리랑을 부르면서 우리는 하나의 감정에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시종일관 같은 감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어차피 살면서 고개는 만나게 됩니다. 올라야 합니다. 힘이 들겠지요. 숨도 차고, 땀도 나고, 때로는 눈물도 날 겁니다. 그래서 해주 아리랑에서는 넘어갈 적 넘어올 적 눈물이 난다고 했을 겁니다. 그러기에 진도 아리랑에서도 문경 새재는 굽이굽이 눈물 고개인 겁니다.   허나 우리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는 본조 아리랑의 후렴에서 보듯이 우리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슬픔을 잊고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고개를 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밀양 아리랑처럼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봐달라고 웃으며 노래하기도 하고,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웃기도 합니다. 아리랑이 슬프다고 하는 것은 한 면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아리랑을 듣고, 부를 때는 다양한 아리랑을 만나보기 바랍니다. 아리랑마다 담긴 우리의 감정을 느껴보고, 함께 어우러지며, 사는 것이 다 그렇게 아리랑 고개를 오르듯이 올라가고, 지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느껴보기 바랍니다. 희로애락의 끝은 분명 즐거울 낙입니다. 아리랑 고개는 머무르는 고개가 아니라 넘어가는 고개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희로애락 아리랑 아리랑 고개 희로애락과 생로병사 해주 아리랑

2022-11-13

아리랑, 마리아치 만나다

한국과 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멕시코의 음악과 무용, 문화를 교류하는 친선 콘서트가 열린다.     LA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은 오는 14일 오후 7시 LA 한국문화원 3층 아리홀에서 한국과 멕시코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 ‘아리랑, 마리아치를 만나다’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LA 출신으로 그래미상을 받은 여성밴드 마리아치 디바스와 김동석 교수가 이끄는 한국 음악 무용예술단이 합동공연을 펼치며 두 나라의 음악과 무용 등을 선보인다.   마리아치 디바스는 한국인의 귀에 익숙한 ‘라 밤바’, ‘베사메 무쵸’, ‘씨엘리토린도’ 등을 멕시코 음악인 마리아치 밴드 형식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 음악 무용예술단은 ‘장구춤’, ‘북춤’ 등과 ‘가야금 산조’ 등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정상원 LA 한국문화원장은 “정치와 경제, 문화와 역사로 한국 사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멕시코는 한국과 수교한 지 올해 60년이 된다”며 “한국과 멕시코 양국의 친선과 우호를 기념하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우정과 희망을 기원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소: 5505 Wilshire Blvd, LA   ▶문의: (323) 936-7141    이은영 기자  마리아 아리랑 아리랑 마리아치 la 한국문화원 멕시코 음악인

2022-10-09

끝나지 않은 아리랑아파트 운영권 분쟁

재미한국노인회가 한인사회 공공자산인 ‘아리랑 시니어 아파트’(사진) 반환을 거부하는 아리랑 하우징(Arirang Housing. Inc)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예고했다.   28일 재미한국노인회 박건우 회장은 “지난 1년 동안 아리랑 시니어 아파트 운영권을 불법독점한 찰스 김씨와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 측에 이사회를 해체하고 아파트 소유권을 반환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해왔다”며 “김씨와 이사회는 10년 넘게 아파트를 관리하며 300만 달러 이상의 공금을 불투명하게 사용했다.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이어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찰스 김씨는 이사회의 이사장 타이틀만 내려놓고 이사로서 실권을 행사한다”며 “아파트의 건립 주체는 한국노인회인 만큼 정관에 따라 소유권 및 운영권을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인회에 따르면 아리랑 시니어 아파트는 1993년 10월 28일부터 한국노인회 주도로 건립에 나서 1995년 5월 16일 할리우드(1715 N. Whitley Ave,)에 8층 높이 75유닛 규모로 완공됐다. 이후 한국노인회는 관리를 맡을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를 별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찰스 김씨는 2007년부터 아파트 운영주체인 비영리단체 아리랑 하우징의 이사장을 맡아왔다. 지난해 11월 한국노인회가 아파트 소유권 및 운영권 반환 여론을 조성하자 김씨는 지난 1월 “이사장을 사임했고 2021년 이사로 선임된 안창해씨가 새 이사장을 맡게 됐다. 나는 이사로서만 활동한다”고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한국노인회는 찰스 김씨가 5인으로 구성된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의 실권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노인회는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가 연방국세청(IRS)에 보고한 세금보고 자료를 토대로 ▶2007~2019년 매년 6784~10만733달러의 적자 발생 ▶연방주택도시개발부(HUD) 지원금과 LA시 커뮤니티재개발국(CRA) 기금 약 820만 달러 상환의무 불이행 ▶부실 운영에 따른 300만 달러 이상 공금 사용처 불투명 등을 지적했다.   박 회장은 “그동안 오렌지카운티 사무실을 항의 방문하는 등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찰스 김씨 등과 대화 자체를 나눌 수 없었다. 한인사회 공공자산 환수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 안창해 이사장과 전화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한편 한국노인회 측은 지난해 11월 성명에서 ▶찰스 김씨는 조건 없이 즉시 아파트 운영권(Management Authority)을 재미한국노인회에 반환하고 ▶(운영권 반환 시) 그동안 과오나 부당한 행위는 일체 책임을 묻지 않으며 ▶찰스 김(한국명 김성주)씨는 한인사회에서 기만행위를 중단하고 자숙의 시간을 약속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한국노인회 아리랑 아리랑 하우징 아리랑 노인아파트 재미한국노인회 박건우

2022-09-28

[열린 광장] 이민 선조들의 ‘아리랑 드레스’

삶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흔히들 ‘의식주’라고 부른다. ‘입는 옷(衣), 먹는 음식(食), 사는 집(住)’의 순서는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옷을 꼽는다. 마찬가지로 곤궁한 상태를 표현할 때도 ‘굶주리고 헐벗다’가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다’로 표현한다. 안 입고는 살아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 텐데도 옷 입는 것을 중시하게 된 것은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쟁이 막 끝난 1950년대의 한국은 먹고 사는 문제로 급급했다. 예쁘고 멋진 옷을 입는 것은 상상도 못 할 때였다. 한국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로 꼽히는 노라 노는 미국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귀국했을 때 “우리나라의 한 사람당 국민총소득이 겨우 87달러, ‘몸빼’바지가 생활복인 현실”이었다고 회상했다.     패션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던 시절에 미스코리아 오현주양이 1959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아리랑 드레스’란 애칭을 얻은 양단 드레스로 의상상을 탔다. 노라 노가 디자인한 ‘아리랑 드레스’는 그 이름처럼 한복의 치마저고리 유형을 서양의 드레스와 접목한 새로운 형태의 옷이었다. ‘아리랑 드레스’는 이후 해외에 나간 여성들이 즐겨 입는 옷이 되어 세계 곳곳에 한국 의상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아리랑 드레스’는 국가 등록문화재 제613호로 등재되어 한국현대의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전통 복식과 서구 복식의 절충 또는 융합을 시도한 ‘아리랑 드레스’는 당시 멋쟁이들의 옷으로 유행했을 뿐 아니라 결혼식에서는 웨딩드레스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얼마 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리랑 드레스’를 직접 만났다. 순백색의 ‘아리랑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은 신부가 다소곳이 서 있었다. 신부의 다소곳한 모습을 바라보는 신랑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신랑과 신부는 결혼 60주년을 맞아 리마인드 웨딩을 올리는 부부였다. 60여년 전,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두 사람은 교회에서 케이크와 음료수만 차려놓고 조촐한 결혼 예식을 올렸다. 유일한 사치였다면 한국에서 보내온 ‘아리랑 드레스’를 입는 것이었다.     20대의 꿈 많은 청춘이었던 신랑과 신부는 60년이라는 세월을 지나며 80대의 중후한 모습으로 변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미국 생활의 불확실함 속에 시작한 결혼 생활은 안정과 평안이라는 꽃을 피웠고, 자녀와 손주들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리마인드 웨딩을 주례하면서 ‘계속해서’라는 말이 맴돌았다. 60년 전 결혼식을 올리며 맺었던 약속이 계속해서 이어졌음에 감사했다. 60년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으로 이어온 결혼 생활이 계속해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삶의 고비마다 두 사람이 함께 견뎌왔던 인내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가기를 간구했다.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구부러진 어깨를 펴고 늠름하게 선 신랑과 60년간 깊숙이 간직했던 ‘아리랑 드레스’를 꺼내입은 신부가 두 손을 맞잡고 세상을 향해 나가는 모습에서 이민 생활이라는 거친 세파를 이긴 개선장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두 사람뿐 아니라 이민자로 사는 우리의 인생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때 가졌던 꿈과 함께 말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열린 광장 아리랑 드레스 아리랑 드레스 양단 드레스 이민 선조들

2022-06-27

[취재수첩] 아리랑 노인아파트는 한인사회 공공자산

'본회의 이익이나 추진주체 세력의 편의를 위함이 아니고 1994년 현재 1000만 달러가 넘는 순수재산을 우리 후세들에게 유산과 교훈으로 남겨 이민 1세 노인들의 황혼기를 영예롭게 마무리하고자 한다'-1994년 3월 3일, 한국노인회 정관 제20조 ‘아리랑 노인아파트 건립목적’.   1995년 한인사회 최초의 정부 지원 프로젝트로 완공된 ‘아리랑 노인아파트’ 운영권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사실 아리랑 노인아파트 존재는 2010년 이후 잊혀져 있었다. ‘오래전 한국노인회가 주축이 돼 한인사회 성원으로 8층짜리 노인아파트를 할리우드에 지었다’는 말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아리랑 노인아파트의 의미와 한인사회 주인의식은 잊힌 셈이다.   발단은 재미한국노인회(회장 박건우)가 단체 재건을 계기로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재조명하면서 비롯됐다. 이에 한인사회 원로들은 “한쪽은 아리랑 노인아파트 재조명을 반기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어하지만, 한인사회 공익을 위해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인회는 정부 지원금과 한인사회 성금으로 건립한 노인아파트를 한인사회 공공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일 기자회견에서는 “10년 동안 노인아파트 운영을 좌지우지한 찰스 김씨가 뒤로 숨어서는 안 된다. 김씨를 중심으로 구성된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 해체, 이사진 전원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건우 회장 중심의 한국노인회가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재조명한 노력은 일단 긍적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내분으로 인한 갈등이 반복된 단체라는 점에서 공신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한인사회 공공자산으로 활용할 의지와 중장기 계획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한인사회 간담회 등 여론 수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 아리랑 노인아파트 운영주체인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이사장 안창해, 서기 찰스 김)는 2010년을 강조한다. 2010년 전후 당시 한국노인회 백춘학 회장 및 구자온 회장 지시로 ‘이사 자체 선임권까지 명시한 정관개정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더는 한국노인회 산하 단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양측은 당사자들 서명이 담긴 동일한 서류를 두고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10년 이상 이사장을 맡았던 찰스 김씨는 “나는 이제 이사장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아리랑 노인아파트는 한인사회만의 것이 아니다. 한인사회 성금 30만 달러도 고 정의식 회장이 다 써서 많아야 2만~3만 달러만 들어갔다. (LA)저소득 노인을 위한 아파트”라고 강조했다.   아리랑 노인아파트 건립사업에 참여했던 원로 1세대들은 ‘상식과 염치, 주인의식’을 당부했다. 이번을 계기로 이 아파트가 한인사회 공공자산이란 사실도 분명히 하자고 주문한다.   이영송 전 LA한인회 이사장 겸 전 LA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은 “찰스 김씨는 영 김 연방 하원의원 남편이다. 원로들은 영 김 하원의원에게 행여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조심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리랑 노인아파트는 노인과 우리 커뮤니티를 위한 공공자산이다. 한국노인회가 원로초청 간담회를 열고 진지한 대응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용태 전 LA한인회장은 “아리랑 노인아파트 건립 역사를 우리가 모두 알아야 한다. 한인사회 공공자산으로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만 남가주한국학원 이사장은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해서는 안 된다. 한국학원 정상화 때처럼 서로 양보하고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면서 “특히 영 김 하원의원 역할이 중요하다. 김 하원의원이 입장을 밝히면 쉽게 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재 사회부 기자취재수첩 노인아파트 한인사회 아리랑 노인아파트 한인사회 공공자산 동안 노인아파트

2022-01-19

"지속된 적자 운영 등 현 이사회 책임져야"

아리랑 노인아파트 운영권을 놓고 대립하는 재미한국노인회(회장 박건우, 이하 한국노인회)와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이사장 안창해)가 새 국면을 맞았다.     한국노인회는 10년 넘게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를 독점한 찰스 김씨의 이사장 사임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한국노인회 측은 지난 10년 동안 찰스 김씨 중심으로 운영된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의 전면 해체를 요구했다.   이사회 새로 꾸려야    18일 한국노인회 박건우 회장은 LA한인타운 JJ그랜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는 한국노인회가 정관에 따라 이사 선임권을 갖고 있다.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는 주택도시개발청(HUD) 등 정부기관 이사만 남고 다른 이사들은 모두 사퇴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인회에 따르면 아리랑 노인아파트는 1993년 10월 28일부터 한국노인회 주도로 건립에 나서 1995년 5월 16일 할리우드에 8층 높이 75유닛짜리 아파트로 완공됐다. 이후 한국노인회는 아리랑 노인아파트 관리를 맡을 별도의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박건우 회장은 “2010년 백춘학 전 회장과 구자온 전 회장이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의 정관개정 무효, 찰스 김 당시 이사장 해임 등을 통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후 찰스 김씨는 이사회를 독단적으로 운영했다. 현재 이사진 모두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노인회 측은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가 연방국세청(IRS)에 보고한 세금보고 자료를 토대로 ▶2007~2019년 사이 매년 6784~10만733달러에 달하는 적자 발생 ▶연방주택도시개발청(HUD) 지원금과 LA시 커뮤니티재개발국(CRA) 기금 약 820만 달러 상환의무 불이행 등을 지적했다.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는 IRS 세금보고에서 2010~2019년 동안 수입 매년 41만~47만 달러, 지출 매년 62만~67만 달러(인건비 매년 6만6000~7만9000달러 포함)로 보고했다. 현재 아리랑 노인아파트 부지와 건물 시가는 2019년 약 3200만 달러로 알려졌다.   아리랑 하우징은 독립단체   18일 아리랑 하우징 이사장 사임 사실을 밝힌 찰스 김씨는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는 한국노인회와 상관없는 독립단체”라고 밝혔다.     김씨는 “(1993년~1995년) 당시 한국노인회 정의식 회장이 노인아파트를 건립하겠다고 해서 기금모금을 시작했다. 한국노인회와 노인아파트 건립을 많이 했던 유대계 한 단체(UDHC)와 합작해 HUD의 5가지 심사를 통과,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건립했다”면서 “하지만 당시 정의식 회장은 (한인사회 모금액) 30만 달러 중 1만5000달러만 투입했다. 노인들은 아리랑 노인아파트에서 자꾸 무언가를 챙기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이어 “약 10년 전쯤 백춘학 전 회장이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를 한국노인회에서 떼어 내라고 했다. 이사회를 열고 (정관을 개정해) 비영리단체를 독자적으로 만들고 이사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이사도 선임하도록 했다. 하지만 백춘학 회장이 이를 번복했고 이사회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 뒤로 자체 이사회가 구성됐다”고 덧붙였다.   양측 대화 가능성 남아   찰스 김씨가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 이사장직을 사임하면서 양측은 대화 가능성도 열어놨다.   박건우 회장은 “현 아리랑 하우징 이사진 모두가 사퇴하길 바라지만 새 이사장과 대화를 먼저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찰스 김씨도 “(노인회 측과 대화는) 새 이사장과 이사회가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본지는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 새 이사장 안창해씨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김형재 기자이사회 적자 아리랑 노인아파트 아리랑 하우징 한국노인회 박건우

2022-01-18

찰스 김 아리랑 노인아파트 이사장 사임

한인사회 공공자산인 ‘아리랑 노인아파트’ 관리단체 아리랑 하우징(Arirang Housing. Inc) 이사회를 10년 동안 이끌어 온 찰스 김씨가 이사장을 사임했다.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 측은 1월부터 오렌지카운티에서 발행되는  주간지인 타운뉴스 발행인 안창해씨가 새 이사장으로 활동한다고 밝혔다. 1995년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건립했던 재미한국노인회 측은 아리랑 하우징 이사진이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18일 찰스 김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리랑 하우징 이사장을 사임했고 1월부터는 2021년 이사로 선임된 안창해씨가 새 이사장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7년부터 아리랑 노인아파트(1715 N. Whitley Avenue LA, 75유닛) 운영주체인 비영리단체 아리랑 하우징 이사장을 맡아왔다.     관계기사 3면   이사장에서 물러난 찰스 김씨는 아리랑 하우징 이사로 계속 활동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현재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는 캘리포니아주 검사 1명, 전병조 CPA, 민병수 변호사, 안창해 이사장, 저까지 5명”이라고 말했다.   재미한국노인회는 지난해 11월 박건우 회장 명의로 “아리랑 아파트를 즉시 반환하라”는 성명을 냈다.   당시 성명은 ▶찰스 김씨는 조건없이 즉시 아리랑 아파트 운영권(Management Authority)을 재미한국 노인회에 반환하고 ▶(운영권 반환 시)그동안 과오나 부당한 행위는 일체 책임을 묻지 않고 ▶찰스 김(한국명 김성주, 영 김 연방 하원의원 남편)은 한인사회에서 기만행위를 중단하고 자숙의 시간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한국노인회 성명 직후 찰스 김씨는 “일부(한인)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리랑 아파트는 운영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2000년대 초반)한국노인회 내부 문제가 많았다. 자기네끼리 싸우다가 내게 이사장을 해달라고 했다. 아리랑 아파트마저 공중분해 될 뻔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찰스 김씨는 이사장 사임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김씨는 “그분들(한국노인회)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 제가 (이사장으로) ‘그만큼 해 먹었으면 됐지’라고 하는데 (근거 없는) 공격이다. 한국노인회 내분 등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려웠던 곳은 아리랑 노인아파트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미한국노인회 박건우 회장과 임원진은 LA한인타운 JJ그랜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즉시 반환하라. 찰스 김씨는 현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를 즉시 해체하라”고 강조했다.   박건우 회장은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는 정관상 한국노인회 산하 단체”라고 강조한 뒤 "노인회가 빠진 현 이사회는 해체하고 이사진도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형재 기자사설 아리랑 아리랑 아파트 아리랑 하우징 재미한국노인회 박건우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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