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페니를 쌓으며
쌓는다. 탑처럼 조심스레. 매년 이맘때면 하는 일이다. 유리병에 모았던 코인을 책상 위에 쏟는다. 수북하게 쌓인 코인을 종류별로 구분한다. 여섯 가지 크기에 색깔과 무게도 다 다르다. 달러(Dollar), 하프 달러(Half Dollar), 쿼터(Quatre), 다임(Dime), 니켈(Nickel), 페니(Penni)다. 동전은 구리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화폐로 쓰고 남은 잔돈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동전을 귀찮은 애물단지로 여긴다. 거스름으로 받으면 보관하기도 귀찮아 팁 통 속에 넣는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동전은 줍지도 않는다. 요즘 코인이라 하면 암호화폐의 비트코인, 플랫폼 코인 등 종류는 1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투자의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기도 했지만 내가 지금 쌓고 있는 코인은 길에 떨어져 있어도 누구든 외면하는 동전이다. 그런데 나는 왜 새해 초에 보잘것없는 동그라미를 정성스레 쌓고 있을까? 10개씩 키를 맞추어 늘어놓고는 손가락 감촉으로 키재기를 한다. 그러고는 은행에서 지정한 좁은 종이봉투 속에 가지런히 넣어야 한다. 이때 옆으로 삐져나오거나 공간이 생기기 쉬워 숙련된 경험이 필요하다. 인쇄된 작은 봉투에는 $10, $5, $2, 50¢라고 적혀 있기에 들어갈 개수도 각각 다르다. 곱하기와 나누기하며 녹슨 머리를 굴려본다. 수북이 쌓였던 동전 뭉치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인내를 시험하는 것처럼 나와의 싸움을 싸워야 한다. 한참 집중하노라면 허리가 아프다. 허리를 펴며 일어날 때는 새까맣게 변해있는 손바닥과 손가락을 본다. 노란 페니가 거무스레한 이물질로 뒤덮였고 색깔을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를 돌고 돌아 ‘돈’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거래가 오가는 교환으로 쓰였기에 받으면 기분은 좋지만, 세균의 요새로 여길 수도 있다. 비누를 발라 여러 차례 비빈다. 손 정제까지 바르고 책상 바닥을 박박 문지른 후에야 개운한 기분을 맛본다. 동전을 전자파 방지용으로 컴퓨터에 붙이거나 신발 속에 넣어 냄새 제거용으로 쓰는 등 홀대한다. 아이들이 물건을 산 후에 슬그머니 동전을 버리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쓰리다. 천덕꾸러기가 된 동전의 숨은 가치를 생각해 본다. 자판기 안에서 유용한 동전은 크기와 부피에 의한 인식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동전이 꼭 필요했던 사례를 되돌이켜 본다. 유럽 여행에서 화장실 갈 때, 물건을 실으려고 카트를 뺄 때, 세차장에서 차를 닦을 때, 빨래방에서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마트에서 플라스틱 봉툿값으로 동전은 필요하다. 필요한 용도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복권을 긁을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동전이 없어 카드 사용을 권장하는 곳도 있다. 거스름돈은 필요한데도 시중에 부족해 제조에 악순환은 계속된다. 드디어 좁은 종이봉투로 싼 동전 뭉치를 들고 은행을 찾았다. 저금한 액수는 고작 몇십 불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뿌듯함은 무엇 때문일까? 14년간 모은 10원짜리 동전 11만 개로 태극기를 새겨 동전 벽화를 완성하고 기네스 세계기록으로 공식 인정받았다는 어느 분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또한 작은 동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때문이리라. 서랍 속이나 돼지 저금통에서 잠자고 있거나 사라지는 동전의 소중함을 일깨워 본다. 정말 필요한 곳에 사용되는 적은 액수의 동전이 있다. 그 자리엔 그 동전만이 필요하다. 동전이 없어져 최소 단위가 지폐 단위로 바뀐다면 인플레이션은 높아질 것이다. 아무리 미미한 사물이나 사람일지라도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소임을 감당하려 하는 소중한 사람이 있다. 윤택을 잃고 손때 묻은 보잘것없는 존재로 살아가지만,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로 인해 세상은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다. 오늘도 누리끼리한 페니 한 개를 유리병 안에 살그머니 넣는다. 이희숙 / 수필가수필 동전 뭉치가 동전 벽화 10원짜리 동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