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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구화학물질(PFAS)’에 대한 뒤늦은 경각심

“난 잘못이 없는데도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해 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희귀 암으로 숨진 20세의 아마라 스트랜드가 올 1월 말 법정에서 한 말이다. 아마라의 용기는 미네소타 주의 영구화학물질 생산 금지법 통과에 큰 역할을 했다.     영구화학물질(forever chemical)은 보통 PFAS로 불리며 페르-앤드 폴리플루오로알킬 물질(per-and polyfluoroalkyl substance)의 약자다. PFAS는 내구성이 강해 분해되지 않고 자연이나 인체에 쌓여 영원히 남는다. 물질의 유형도 1만2000 가지 이상이다.     아마라는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 본사를 둔 3M 회사와 1마일 떨어진 거리에 살았다. 그녀는 집 인근 오우크데일의 타르탄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15세 때, 백만명에 한 명 꼴로 걸리는 희귀 간암 판정을 받았다. 5년 동안 20번의 수술을 받았고 법정 증언 당시에는 목에 난 종양과 폐로 전이된 암 때문에 말하기조차 힘들었다.     3M은 1902년 ‘미네소타 광업 및 제조사’란 이름으로 설립됐다. 그 후 PFAS를 사용해 의료기기부터 소화기의 거품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했다. 이 회사는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오우크데일과 다른 지역에 구덩이를 파 연간 400만 갤론의 PFAS를 처리했다. 그 결과, 타르탄고의 지하수가 오염됐고 이로 인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5명의 학생이 숨졌고, 20년 동안 21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 또 지역 어린이의 암 사망률은 타지역에 비해 171%나 높았다.     3M은 2018년에 미네소타 주에 8억5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고, 지난 6월 22일에는 ‘미국 공공 수자원 개선 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수천건의 소송을 합쳐 103억 달러 배상금에 합의했다.     PFAS는 보편성과 잠재적 위해성을 가진 물질이다. 이 물질은 방수 및 부식 방지, 테프론 코팅 팬과 같은 조리용품, 의류, 가구, 카펫, 화장품, 생리용품, 음식물 포장재, 치실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된다. 식품의약청(FDA)은 PFAS가 암 발병과 불임, 갑상선 질환, 간과 면역시스템 붕괴, 혈관 노화, 고혈압, 염증, 비만, 미숙아 출산 등과 연관 있다고 경고했다.     7월 초 미국 지질연구소(USGS)는 전국 수돗물의 PFAS 오염도를 조사해 발표했다. 연구소는 주택과 사무실, 학교, 또 환경이 잘 보존된 지역과 폐기물 처리장 인근 지역 등 도시와 농촌 716 곳의 수돗물 샘플을 수집해서 32가지 PFAS 유형의 존재 여부를 확인했다. 놀랍게도 도시 수돗물의 75%, 시골은 25%가 오염됐으며, 대평원과 동부 연안을 비롯해 중가주와 남가주 식수의 오염도가 가장 높았다.   질병통제예방센타(CDC)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PFAS는 미국인 98%의 혈액에서 검출된다. 또한 최근 노르웨이에서 어린이 1094명의 혈액을 조사한 결과, 전원이 PFAS 유형을 갖고 있었다. 환경보호청(EPA)은 지난 3월 처음으로 PFAS 2개 유형의 식수 기준치 농도를 제안했다. 앞으로 계속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 한다.     영구화학물질의 금지는 연방정부보다는 주 차원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8년 워싱턴 주에서 처음으로 화재진압용 거품과 포장재에 쓰이는 PFAS의 제한법이 통과된 후로 24개 주에서 106개의 법이 제정됐다. 또한 소방관과 농부들의 로비 덕분에 맥도널드, 타겟, 이케아와 같은 기업들이 자사 제품에서 PFAS를 부분적 또는 완전히 제거하는 목표 시점을 정했다.     사람은 PFSA를 피할 방법이 없으며 이미 오랫동안 이에 노출되어 왔다. 전문가들은 역삼투압 기능의 식수 필터와 고효율(HEPA) 필터가 부착된 진공청소기를 사용하고, 유리 용기를 이용하며 패스트푸드 섭취 제한을 조언한다.  늦었지만 영구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확실하게 인지해야 한다. 정 레지나기고 영구화학물질 경각심 독성 화학물질 미네소타 광업 지역 어린이

2023-08-02

24년 전 미네소타 설립 '한국어 마을' 방문

LA한국문화원은 오는 8~9일 미네소타주 콘코디아 언어마을 내 한국어 마을인 '숲속의 호수'에서 '찾아가는 K-컬처' 행사를 연다고 4일 밝혔다.   콘코디아 언어 마을(Concordia Language Villages)은 1961년 미네소타주 베미지 지역에 설립된 비영리 외국어 교육기관으로, 한국어를 비롯해 14개의 외국어 프로그램을 캠프 형태로 운영한다.   한국어 마을인 '숲속의 호수'는 1999년 개설됐으며, 매년 미 전역에서 100명이 넘는 현지인들이 참가해 태권도, 미술, 음악, 요리, 연극, 노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힌다. 개설 이래 지금까지 수강생은 3000여 명에 달한다.   현재 스탠퍼드대학교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교수인 대프나 주어 교수가 촌장을 맡아 한국어 마을 캠프를 총괄하고 있다.   캠프 운영 초반에는 빈자리도 많았지만, 한류 열풍이 불면서 지금은 "숲속의 호수 등록이 BTS 콘서트 티켓을 사는 것만큼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LA한국문화원은 전했다.   LA한국문화원은 이번 캠프에서 전통미술(한지공예.민화) 체험과 케이팝(K-Pop) 댄스 워크숍, 전통 다례 체험 등을 진행한다.   정상원 LA한국문화원장은 "올해부터 새로 운영하는 '찾아가는 K-컬처' 프로그램은 미 현지인들이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매력에 흠뻑 빠질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미네소타 한국어 한국어 마을 미네소타 설립 마을 방문

2023-07-04

[로컬 단신 브리핑] 일리노이, 가정 꾸리기 좋은 주 13위 외

#. 일리노이, 가정 꾸리기 좋은 주 13위   일리노이 주가 미국서 '가정을 꾸리기 좋은 주'(Best State to Raise a Family)의 한 곳으로 꼽혔다.   금융 정보 웹사이트 '월렛허브'(WalletHub)는 최근 미국서 '가정을 꾸리기 좋은 주' 순위를 발표했다.     전국 50개 주를 대상으로 평균 가구당 소득, 학교 수준, 실업률, 주택 비용, 가족 친화적인 환경 등 50개 부문으로 나눠 평가했다.     이에 따르면 평균 가구 소득 부문 3위를 비롯 가족 엔터테인먼트 4위, 경제성 11위, 교육 25위, 건강과 안전 29위 등을 기록한 일리노이 주는 총점 55.49점으로 전체 13위에 올랐다.     총점 66.14점을 받은 매사추세츠 주가 전체 1위에 올랐고 이어 미네소타, 뉴욕, 노스 다코타, 버몬트, 뉴햄프셔, 뉴저지, 네브래스카, 아이오와, 코네티컷이 차례로 2위~10위를 기록했다.   반면, 미시시피 주는 최하위 50위의 불명예를 안았고 뉴멕시코, 웨스트 버지니아, 루이지애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일리노이와 미네소타를 제외한 중서부 지역에서는 위스콘신 17위, 미주리 28위, 오하이오 31위, 인디애나 34위, 미시간 36위 등을 기록했다.   #. 연말 파티 장식 위해 책 대량 구입했다가 반납   시카고의 한 서점 주인이 최근 황당한 일을 겪은 후 이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많은 이들의 지지와 공감을 받았다.     시카고 북부 위커파크와 다운타운에서 '볼륨 북카페'(Volumes Bookcafe) 서점을 공동 소유 중인 레베카 조지(42)는 지난 9일 트위터를 통해 "지난달 우리 서점에서 가장 많은 책을 사갔던 소비자가 알고 보니 연말파티를 위해 책을 장식으로 사용했고, 이를 모두 환불 받고 싶어한다"며 "제발 이런 짓을 하자 말아달라"고 적었다.     조지에 따르면 지난 12월 초 한 여성이 800달러어치의 책을 구입했는데 이는 서점 한달 임대료의 1/3에 해당되는 큰 액수였다.     하지만 이 여성은 해가 바뀐 지난 9일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구입한 모든 책에 대한 환불을 요구했다.     이미 환불 기간인 30일을 넘겨 전체 환불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했지만 결국 '스토어 크레딧'(Store Credit)을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조지는 이후 "장식으로 책을 사용할 것이었다면 헌 책이나 도서관 책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며 "이 같은 행위는 우리 같은 소규모 사업에 너무 큰 타격이 된다"고 밝혔다.     조지의 게시글은 무려 530만개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트위터 사용자들은 "아직도 이런 비상식적인 사람들이 있네", "작은 업체를 상대로 그런 행동을 한 정말 역겨운 사람", "책은 잘 안 읽지만 올해 생일 선물은 이 서점의 책으로 받고 싶다"는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조지는 "게시물을 올린 뒤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책을 온라인으로 주문해 왔다. 따뜻한 말과 성원을 보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Kevin Rho 기자로컬 단신 브리핑 일리노이 일리노이 주가 일리노이 가정 미네소타 뉴욕

2023-01-11

마사지 받던 한인 총격 사망…미네소타서 용의자 커플 체포

24일 미네소타 지역 자택에서 40대 한인 남성이 마사지를 받던 중 한 커플에 의해 총격 살해당했다.   다코타 카운티 셰리프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쯤 피해자 마이클 창범 이(43)씨의 신고 전화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그러나 도착한 경관은 자택 화장실에서 총을 맞아 숨진 이씨를 발견했다.     셰리프 경관은 출동 당시 집 뒷문이 부서져 있었으며 카펫에는 많은 양의 피와 피 묻은 발자국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셰리프국은 로건 데이비드 슬랙(25)과 포티니 웨스트(25)를 이씨의 살인 용의자로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셰리프국에 따르면 사건 당시 슬랙은 마사지 서비스를 위해 웨스트를 이씨의 자택에 데려다줬다. 이후 이씨가 웨스트를 폭행하고 서비스 비용 지급을 거부하자 권총으로 이씨를 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고펀드미(https://gofund.me/96191b0f)에는 이씨의 2살 아들과 아내를 위해 기금을 모금중이다. 현재까지 2만2000달러가 모금됐다.  이씨의 처남인 케빈 시옹은 “그는 다정하고 활기찬 사람이었다”며 “항상 긍정적인 태도로 주변을 밝게 했다. 그의 눈웃음이 그립다”고 전했다.    한편 슬렉과 웨스트는 2급 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며 오는 5일 법정에 출두할 예정이다.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징역 40년 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김예진 기자미네소타 마사지 용의자 커플 한인 총격 마사지 서비스

2022-09-30

일리노이 경제경쟁력 최하위권

일리노이 주가 미국서 경제 경쟁력이 가장 약한 주 가운데 하나로 조사됐다.     정치인과 기업인으로 구성된 미국 입법 교류 위원회(ALEC)은 최근 미국 내 ‘부유한 주, 가난한 주’(Rich States, Poor States) 순위를 발표했다.     세금 부담, 정부 규모, 노조 역할, 공공 부채 등을 고려했다는 ALEC은 일리노이 주를 최하위권인 전체 45위로 선정했다.     전체 1위는 15년째 같은 순위를 지키고 있는 유타 주가 차지했고, 이어 노스 캐롤라이나•애리조나•오클라호마•아이다호•네바다•인디애나•플로리다•노스 다코타•와이오밍 주가 2위~10위를 차지했다.     ALEC은 "부유한 주들은 가난한 주들에 비해 낮은 세금으로 많은 주민들의 이주(in-migration)를 이끌어내고 있고, 이를 통해 더 강한 경제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방 센서스국에 따르면 일리노이 주 인구는 지난 2020년 7월부터 2021년 7월 사이 약 11만4000명이 줄어든 것으로 기록됐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뉴욕 주가 최하위인 50위로 평가됐고, 뉴저지•캘리포니아•버몬트•미네소타 주가 각각 49위부터 46위를 차지, 하위권을 형성했다.  Kevin Rho 기자경제경쟁력 일리노이 일리노이 경제경쟁력 일리노이 주가 미네소타 주가

2022-04-20

다섯식구 평균키 203cm 미네소타 가족 '최장신' 기네스북 등재

미네소타주 소도시의 다섯식구가 '세계에서 가장 키 큰 가족'으로 공식 인정받아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기네스 세계기록 위원회는 14일 미네소타 동부 에스코에 사는 트랩 가족이 '세계 최장신 가족' 기록을 갱신했다며 "5명으로 구성된 트랩 가족의 공식 평균 키는 203.29cm"라고 발표했다.   삼남매 중 막내인 애덤(22)이 221.71cm로 가장 크고 이어 장녀 사바나(27) 203.6cm, 둘째 몰리 197.26cm 순이다. 아버지 스캇(57)은 202.7cm, 어머니 크리스틴(52)이 191.2cm로 가장 작다.   미네소타 일간지 스타트리뷴에 따르면 이전 기록은 네덜란드 가족의 200cm다. 트랩 가족은 지난 2020년 12월 기네스 등재를 위해 공식 측정을 받았다.   기네스 측은 "가족 1인당 3차례씩 서고 누워서 키를 잰 후 평균값을 냈다"며 이후 1년4개월의 검증 과정을 거쳐 세계 최장신 가족으로 공식 등재했다고 밝혔다.   트랩 가족은 "등재 소식을 듣고 가족 모두가 환호했다"며 "믿기 어려울만큼 기뻤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삼남매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교내외 스포츠 팀의 관심을 모아 애덤과 사바나는 농구 특기자로, 몰리는 배구 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했다.   최장신 애덤은 "7학년 여름방학 때 급성장했다. 그 때 키가 1m85cm에서 2m13cm가 됐다"고 말했다.   모델로도 활동하는 사바나는 "장신의 최대 단점은 부상이 잦은 것"이라며 "문틀, 천장 조명 등에 머리를 부딪힌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이마를 꿰매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몸이 자랄 때 느끼는 성장통도 상상을 초월한다"고 털어놓았다.   몰리는 몸에 맞는 옷과 신발을 찾기 어려운 것도 단점이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아버지 스캇은 "키가 커서 좋은 점도 많다. 높은 선반 위 물건도 쉽게 내릴 수 있다. 사다리가 필요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크리스틴도 "난 키가 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 중에 제일 작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트랩 가족은 "비상한 외모를 가졌지만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가족"이라고 강조하면서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용기를 주며 살고 싶다"고 밝혔다.   어딜 가나 시선을 끌게 되는 것이 한편으로 불편하지만 사람들에게 다가가 관계를 맺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기회로 삼는다고 이들은 말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트랩 가족의 좌우명이다.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기자다섯식구 미네소타 트랩 가족 네덜란드 가족 가족 1인당

2022-04-15

미국서 두 번째 오미크론 확진자…뉴욕 방문한 미네소타 주민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미크론에 감염된 두 번째 확진자가 나왔다고 CNBC·CNN 방송이 2일 보도했다.   미네소타주 보건부는 최근 뉴욕시를 방문한 적이 있는 성인 남성 주민의 검체에서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됐다고 이날 밝혔다.   미네소타주 헤너핀카운티에 사는 이 남성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지만 지난달 22일 경미한 증상을 보였고 24일 검사를 받은 결과 이 주 공중보건연구소로부터 오미크론 변이 감염자로 판정됐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증상을 겪지 않고 있다.   이 남성은 직전인 지난달 19∼21일 뉴욕 재비츠센터에서 열린 '아니메 NYC 2021'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전날인 1일 캘리포니아 주민이 첫 오미크론 확진자로 밝혀진 데 이어 두 번째 감염자가 나왔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을 비롯한 보건 전문가들은 미국에서도 오미크론 확진자가 나오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말해왔다.   미국 전역에서 계속해서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오미크론 감염자는 더 많이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네소타주 보건부는 역학 조사를 벌이는 한편 뉴욕시의 연구자들 및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협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이 소식은 우려스럽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며 주민들에게 실내 마스크 착용과 부스터샷 접종을 권고했다. 연합뉴스.  미국 오미크론 오미크론 확진자 미네소타 주민 오미크론 감염자

2021-12-03

미네소타 한인복지센터 독도 영화 ‘아버지의 땅’ 특별상영회

지난 주말(12일)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소재 한인복지센터 1층에서는 미네소타 주 출신 매튜 코슈몰 감독이 제작한 독도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땅’ 특별 상영회가 한인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영화 ‘아버지의 땅’은 독도 첫 주민인 고 최종덕씨의 딸과 8년째 일본에 건너가 “독도는 한국 땅”이라며 1인 시위를 펼치는 농민 노병만씨의 이야기다.   코슈몰 감독은 영화 촬영을 위해 독도 7번, 울릉도 10번을 다녀왔고 편집에만 꼬박 5년이 걸렸다.   코슈몰 감독은 “10여 년 전 서울에서 3년 간 살았다. 하지만 미국인으로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입장이라 생각한다. ‘아버지의 땅’을 제작하는 동안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진실된 아픔을 봤다. 영화가 강제 징용 및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뻔뻔함과 한국인에 대한 공감 부족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코슈몰 감독은 “영화 ‘아버지의 땅’은 아직 정식 개봉을 하지 않은 상태인데 내년에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미네소타 한인복지센터 김권식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50년 정도 생활하다 보니 독도에 대해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런데 황효숙 한인회장님의 소개로 영화 ‘아버지의 땅’을 보니 독도는 그냥 작은 섬이 아니었다. 부분이 전체라는 말처럼 독도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며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한인들과 이를 공유하고자 상영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J 취재팀한인복지센터 특별상영회 미네소타 한인복지센터 독도 다큐멘터리 독도 문제

2021-11-19

김평식 신 유람 (28) 미네소타 1만개 호수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28〉 미네소타 1만 개 호수   망망대해 닮은 오대호 옆 100마일 환상 드라이브     맑고 깨끗한 물, 물의 고장  산 속엔 취나물 널려 있어   주 최고봉 마운틴 이글도 1만개 호수 사이에 '봉긋'   미네소타주는 중북부의 주로 캐나다와 국경이 접해있고 오대호 중에서도 가장 큰 슈피리어 호수와도 150마일이나 맞닿아 있다. 이곳엔 크고 작은 호수가 1만개가 넘는다. 미국은 어느 주든 그 주의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것을 자동차 번호판에 표시하고 있는데 미네소타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10000 Lakes’라고 표시되어 있다. 1만개의 호수가 있는 주라는 말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1만개 호수가 아니라 1만2000개쯤 된다고 한다.    이들 호수는 슈피리어 호수의 서북쪽에 대부분 오밀조밀 밀집해 있다. 생명이 있는 동식물들은 번식을 위해 서로 모여 산다고 하지만 생명이 없는 호수나 바위 같은 것들도 이렇게 한곳에 모여있다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할 뿐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많은 호수가 다닥다닥 붙어있으면 일반적으로 여기가 저지대로구나 생각하겠지만, 미네소타주에서 가장 높은 최고봉도 이 오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하긴 필자는 처음부터 1만 개의 호수를 가보겠다고 작정하고 간 게 아니었다. 과거 미국 50개 주 최고봉을 모두 오를 때 미네소타주 최고봉 마운틴 이글(Mt. Eagle)을 찾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만 개의 호수 속을 두더지마냥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1만 개 호수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슈피리어 호수 서북쪽에 있는 61번 도로를 한 번 달려보시라. 100마일이 넘는 호안 길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환상적이다. 오른쪽으로 망망대해 같은 호수에 한가롭게 떠 있는 돛단배, 왼쪽으로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배기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빚어내는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자 가히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이 호수 서남쪽에는 둘루스(Duluth)라는 도시가 있다. 애틀랜타 한인타운 귀넷 카운티의 둘루스와 똑같은 이름이다. 노벨상 수상 가수 밥 딜런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약 60마일 정도 캐나다 국경 쪽으로 올라가면 1번 하이웨이가 나오는데 이 길로 들어가면 미네소타주  최고봉에 이른다. 미네소타 최고봉인 마운틴 이글은 이 많은 호수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명색이 최고봉임에도 정상에 서면 온통 침엽수에 가려 호수라곤 몇 개밖에 안 보이고 온통 진한 청색뿐이다  마운틴 이글이 있는 곳은 슈피리어 국립삼림(Superior National Forest) 지역인데 한인들이 알면 또 하나 놀랄 게 있다. 이 지역에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먹는 취나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필자가 갔을 때도 완전 무공해에 잡풀 하나 섞이지 않은 곳에, 크기는 마치 호박 이파리만큼 큰 취나물이 꽉 박혀있는데 낫으로 대충 후려도 5분이면 한 짐은 싸겠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언젠가 어떤 산에 고사리가 많다더라는 소문이 처져서 고사리가 남아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 당국의 단속에 걸려 많은 한인들이 벌금을 물기도 했었는데 미네소타에 이렇게 취나물이 많다는 것을 알면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미네소타에는 수많은 호수가 있고 그 호수들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오대호도 만들고 미시시피 강물도 만들고,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도 만들고 캐나다와의 국경선도 만든다.    미네소타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더 하자면, LA에는 NBA의 유명한 농구팀 레이커스(Lakers)가 있다. 원래 이 팀은  미네소타 연고였다. 1947년 미니애폴리스에서 창단되어 17번이나 NBA 우승까지 한 팀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만 개의 호수를 버리고 LA로 이전해 갔다. 그게 1960년이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필자도 아는 바는 없는 무식쟁이다. 내 이름이 평식이지만 그 점에선 맹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여행메모 미네소타라는 이름은 깨끗한 물이라는 뜻의 원주민 인디언 말에서 유래됐다.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크지만, 인구는 600만명이 채 안 된다. 주도 세인트폴은 경제 중심지인 미니애폴리스와  인접해 있는데 두 도시를 함께  ‘트윈 시티(Twin Cities)’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한국 아이들을 가장 많이 입양한 주도 미네소타주인데 약 2만명 정도 입양인이 있다.   〈사진설명〉  -미네소타 1만개 호수 -미네소타 최고봉 마운틴 이글 (Mt. Eagle) -오대호 중에서도 가장 큰 슈피리어 호수. 미네소타에 거의 반이 접해 있다.  -미네소타주 자동차 번호판. 1만 개의 호수(10,000 Lakes)가 쓰여 있다.    배은나 기자미네소타 김평식 미네소타주의 자동차 슈피리어 호수 호수 망망대해

2021-11-07

김평식의 신 미국유람 <28> 미네소타 1만개 호수

  ━   망망대해 닮은 오대호 옆 100마일 환상 드라이브       미네소타주는 중북부의 주로 캐나다와 국경이 접해있고 오대호 중에서도 가장 큰 슈피리어 호수와도 150마일이나 맞닿아 있다. 이곳엔 크고 작은 호수가 1만개가 넘는다. 미국은 어느 주든 그 주의 가장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것을 자동차 번호판에 표시하고 있는데 미네소타주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10000 Lakes’라고 표시되어 있다. 1만개의 호수가 있는 주라는 말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1만개 호수가 아니라 1만2000개쯤 된다고 한다.     이들 호수는 슈피리어 호수의 서북쪽에 대부분 오밀조밀 밀집해 있다. 생명이 있는 동식물들은 번식을 위해 서로 모여 산다고 하지만 생명이 없는 호수나 바위 같은 것들도 이렇게 한곳에 모여있다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할 뿐 아니라 자연의 섭리를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많은 호수가 다닥다닥 붙어있으면 일반적으로 여기가 저지대로구나 생각하겠지만, 미네소타주에서 가장 높은 최고봉도 이 오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하긴 필자는 처음부터 1만 개의 호수를 가보겠다고 작정하고 간 게 아니었다. 과거 미국 50개 주 최고봉을 모두 오를 때 미네소타주 최고봉 마운틴 이글(Mt. Eagle)을 찾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만 개의 호수 속을 두더지마냥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1만 개 호수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슈피리어 호수 서북쪽에 있는 61번 도로를 한 번 달려보시라. 100마일이 넘는 호안 길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환상적이다. 오른쪽으로 망망대해 같은 호수에 한가롭게 떠 있는 돛단배, 왼쪽으로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배기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빚어내는 풍광은 한 폭의 그림이자 가히 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여겨질 정도다.     이 호수 서남쪽에는 둘루스(Duluth)라는 도시가 있다. 애틀랜타 한인타운 귀넷 카운티의 둘루스와 똑같은 이름이다. 노벨상 수상 가수 밥 딜런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약 60마일 정도 캐나다 국경 쪽으로 올라가면 1번 하이웨이가 나오는데 이 길로 들어가면 미네소타주  최고봉에 이른다. 미네소타 최고봉인 마운틴 이글은 이 많은 호수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 명색이 최고봉임에도 정상에 서면 온통 침엽수에 가려 호수라곤 몇 개밖에 안 보이고 온통 진한 청색뿐이다.   마운틴 이글이 있는 곳은 슈피리어 국립삼림(Superior National Forest) 지역인데 한인들이 알면 또 하나 놀랄 게 있다. 이 지역에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 먹는 취나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필자가 갔을 때도 완전 무공해에 잡풀 하나 섞이지 않은 곳에, 크기는 마치 호박 이파리만큼 큰 취나물이 꽉 박혀있는데 낫으로 대충 후려도 5분이면 한 짐은 싸겠다 싶을 정도로 많았다.     캘리포니아에서도 언젠가 어떤 산에 고사리가 많다더라는 소문이 처져서 고사리가 남아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 당국의 단속에 걸려 많은 한인들이 벌금을 물기도 했었는데 미네소타에 이렇게 취나물이 많다는 것을 알면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미네소타에는 수많은 호수가 있고 그 호수들에서 발원된 물줄기가 오대호도 만들고 미시시피 강물도 만들고, 그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도 만들고 캐나다와의 국경선도 만든다.       미네소타와 관련된 이야기 하나 더 하자면, LA에는 NBA의 유명한 농구팀 레이커스(Lakers)가 있다. 원래 이 팀은  미네소타 연고였다. 1947년 미니애폴리스에서 창단되어 17번이나 NBA 우승까지 한 팀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만 개의 호수를 버리고 LA로 이전해 갔다. 그게 1960년이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필자도 아는 바는 없는 무식쟁이다. 내 이름이 평식이지만 그 점에선 맹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여행메모   미네소타라는 이름은 깨끗한 물이라는 뜻의 원주민 인디언 말에서 유래됐다.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크지만, 인구는 600만명이 채 안 된다. 주도 세인트폴은 경제 중심지인 미니애폴리스와  인접해 있는데 두 도시를 함께  ‘트윈 시티(Twin Cities)’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한국 아이들을 가장 많이 입양한 주도 미네소타주인데 약 2만명 정도 입양인이 있다.     김평식 / 여행 등산 전문가미국 미네소타 미네소타주의 자동차 슈피리어 호수 호수 서남쪽

2021-11-07

“양자 보내달라 외침 외면 못 해…”

한현숙(83·사진)씨는 미네소타주에서 입양아의 대모(代母)로 불린다. 그는 50여 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렸다. 당시 한국 입양 기관인 국제사회봉사회에서 처음으로 근무를 시작(1964년)할 때다. 한씨는 “그때 한국에는 고아가 너무 많았다. 대구 한 고아원에 갔는데 200여 명의 아이들이 방 안에 가득하더라. 제대로 눕지도 못할 만큼의 공간이었다”며 “그때를 잊을 수 없다. 나를 보더니 다들 소리를 지르는거다. 가만히 들어보니 자기를 ‘양자로 보내달라’며 이름을 외치는 소리였다”고 말했다. 너무나 가여웠다. 입양 사역에 평생 몸담겠다고 결심한 게 그때다. 한씨는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 좋은 부모를 만나길 원했다. 당시 열악했던 한국의 경제 사정으로는 그 많은 아이들을 수용하기가 어려웠다. 입양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다. 한계가 있었다. 한씨가 해외 입양으로 눈을 돌렸던 이유다. 그는 미네소타 아동복지회와 연이 닿아 1975년 미네소타로 왔다. 한씨는 “미국 입양 역사에는 '고아 열차(orphan train·1854~1929)’가 있다. 당시 넘쳐나는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어 아이들을 열차에 태워 동부 각 도시의 역(驛)을 거치며 서부 쪽으로 입양을 보냈던 이야기”라며 “그때 아이들을 가장 많이 입양했던 게 미네소타 사람들이다. 이곳은 미국에서도 입양에 가장 열려있던 주”라고 말했다. 그는 은퇴(2003년) 전까지 오직 입양아를 위해 살았다. 아들을 직접 입양하기도 했다. 그렇게 미국으로 데리고 온 한인 입양아만 1만 명이 넘는다. 한씨는 “많을 때는 1년에 600명까지도 한국에서 데리고 왔다”며 “입양은 이후에도 양부모와 상담도 하고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환경 자체가 달라졌다. 한국에서의 입양도 과거에 비해 많이 변했다. 그는 “한국에 가보니 출산율도 낮아져서 예전만큼 고아도 없다. 한국의 시설도 정말 좋아졌다”며 “미네소타로 입양 오는 아이들이 많이 줄은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오늘날 미네소타 한인 사회는 타주와 달리 입양인의 영역이 존재한다. 한국과의 인연 사이에 사람이 있어서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20-07-13

미네소타 한인들, 미국인 편집장이 '뉴스'로 연결

미네소타주 한인 사회는 ‘언론’을 보유하고 있다. 영문 계간지 ‘코리안 쿼터리(Korean Quarterly)’는 한인 관련 뉴스 전문 매체다. 특이한 건 미국인이 편집장을 맡고 있다. 이 신문은 벌써 23년째(1997년 발행) 운영되고 있다. 부부인 마샤 빅커리(사진) 편집장, 스티븐 운로 발행인이 이끌고 있다. 두 사람은 시라큐스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코리안 쿼터리는 미네소타주와 한국의 인연 사이에서 태동했다. 미네소타주는 한인 구성이 다양하다. 1세 이민자와 2세 외에 한인 입양인이 많다. 입양을 한 미국인 가정까지 한국과 연결돼 있다. 빅커리 편집장과 운로 발행인 역시 세 자녀 중 두 명(순영·한용)을 한국에서 입양했다. 빅커리 편집장은 “미네소타주 한인 사회 안에는 언어, 배경, 문화 등이 각기 다른 3~4개 이상의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며 "이런 한인 사회가 어떤 뉴스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코리안 쿼터리가 시작됐다. 한인을 위한 언론으로서 다양한 구성원을 연결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시작은 뉴스 레터였다. 이들 부부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주기 위해 자녀를 지역 한인 교회에 보냈다. 거기서 교회의 도움을 받아 입양인과 한인 사회를 연결하는 목적의 뉴스 레터 1200부를 제작, 배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지금은 비영리 독립 계간지로서 이 지역에서만 1만 부가 배포된다. 정규·비정규 기고자만 30여 명 이상이다. ‘미니에폴리스·세인트폴 매거진’에서 수석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는 한인 킴 잭슨 씨도 이 신문의 편집 등을 돕고 있다. <본지 6월25일자 A-4면> 빅커리 편집장은 “코리안 쿼터리는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코리안-아메리칸’의 경험과 시각을 지면에 담고자 한다”며 “한인 사회 요구에 대답하고 뉴스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코리안-아메리칸’의 삶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의 독자층은 한인을 넘어 계속 확대되고 있다. 미네소타 주류 사회에서는 “한국을 알려면 ‘코리안 쿼터리’를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 코리안 쿼터리의 취재 영역은 상당히 넓다. 위안부 논란 특집 기획 도쿄 전범 재판 현장 취재, 통일 기획 시리즈 북한 방문 취재,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영어 의무화 논란, 하와이 한인 이민자 4세대 취재 등 굵직한 이슈까지 다루고 있다. 때문에 미네소타신문협회(MNA), 뉴아메리칸미디어(NAM), 유튼 리더(Utne Reader) 등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며 공신력 있는 언론으로 자리매김했다. 요즘 코리안 쿼터리는 디지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웹사이트(www.koreanquarterly.org)도 새롭게 개편했다. 미네소타주 외에도 타지역, 해외에서까지 구독자가 확장되고 있어서다. 신문 콘텐츠는 일회성 소비가 아니다. 역사적 자료다. 빅커리 편집장은 “디지털 전환의 궁극적 목표는 모든 이슈에 대한 ‘디지털 기록 보관화’에 있다”며 “현재 이 작업을 위한 기금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 부부는 풍물패 ‘신바람’도 운영하고 있다. 입양인, 양부모, 한인 2세 등 다양한 회원들이 활동중이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20-07-09

“한국산 식물 많은 곳 ‘한국 언덕’ 만들어야”

김권식 대표(77·사진)는 미네소타주에서 ‘태양을 꿈꾸는 사람’으로 불린다. 그는 이곳에서 태양광 재생에너지 회사 EVS를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미네소타주와 한국과의 인연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그는 지난 2017년 미네소타대학 농과대학 부속 수목원에 본인과 아내(황성숙)의 이름으로 작은 벤치 하나를 마련했다. 김 대표는 “죽으면 다 끝나는 건데 묘지는 필요 없지 않느냐. 우리 부부와 가족이 가장 즐겨 찾는 곳에 벤치 하나 만들자는 제안에 기부를 해서 마련하게 된 것”이라며 “훗날 우리 손자들, 친지가 의미가 있는 이 벤치에 와서 함께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 수목원에는 한국의 흔적이 많다. 한국전 후 미네소타대 교수들이 한국에 나가 가르치고 돌아오면서 가져온 한국산 식물이 곳곳에 심겨져 있다. 때문에 수목원내 ‘한국의 언덕’도 추진중이다. 그는 “수목원내에는 중국, 일본 가든도 있는데 한국 관련된 정원이 없어 항상 아쉬운 마음”이라며 “75만 달러 정도가 필요하다. 한인사회에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동참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1969년 미네소타대학으로 유학을 왔다. 어느덧 51년째다. 요즘은 그동안 맺은 노력의 열매를 아낌없이 나누며 산다. 그는 군 복무 당시 백령도에서 2년간 야학 선생으로 활동했다. 지난해에는 당시 제자 11명을 미국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EVS에서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연수 기회도 제공한다. EVS는 미네소타주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2017)’에 선정됐다. 김 대표는 최근 재미과학자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기업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둘째 아들을 입양했다. 미네소타주에서는 매년 입양 가족을 위한 ‘캠프 조선’이 진행된다. 매년 한국의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캠프 조선에 봉사단을 보내는데 김 대표 부부는 이들을 물밑에서 돕는 역할도 맡고 있다. 그는 노래를 사랑한다. 최근에는 음악을 즐기는 미네소타 한인들이 만든 ‘뜸부기 합창단’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김 대표는 미네소타와 맺은 인연을 희망으로 전한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20-07-06

“그들이 떠난 학교에 우리 딸이…”

미네소타주의 김병문 박사(76·사진)는 한국전 참전용사를 위해 산다. 그는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가를 알면 알수록 감사해진다”고 했다. 김 박사는 197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미네소타대학에서 교육행정학 석·박사를 취득(1984년)했다. 그는 2004년부터 미네소타주 참전용사들을 위해 매년 감사 야유회를 진행하고 있다. 참전용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음악 공연도 함께 즐기면서 감사를 표하는 시간이다. 매해 행사를 DVD로 제작, 타주 지역 참전용사에게까지 나눠주고 있다. 2014년부터는 매해(1인당 500달러·총 20명) 자비를 들여 참전용사 후손들을 위한 장학금 사업도 펼치고 있다. 김 박사는 “전쟁의 승패는 결과를 봐야 한다. 남과 북의 발전상을 비교해보면 참전용사들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가를 알 수 있다”며 “한국을 잊어버리고 싶다 했던 그들이 훗날 한국이 발전한 모습을 보며 너무나 놀라워 한다. 그들은 한국 제품까지 사용하며 미국 사회에서 한국을 널리 알리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지의 공개한 사진<본지 6월25일자 A-1면>을 보면 아직도 눈시울을 붉힌다. 1950년 12월20일 미군들이 고아 1000명을 미 공군 수송기(C54) 16대에 나눠 태우고 서울에서 제주도로 피신시킨 사진이다. 김 박사는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미군들이 고아들을 안고 내리는 사진은 지금봐도 감동적"이라며 “나는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서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혜택은 못 받았지만 대신 참전용사들에게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그는 둘째 딸이 1998년 MIT에 입학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MIT 10번 건물 벽면에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MIT 학생 8명의 이름을 봤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그들이 돌아오지 못한 학교에서 우리 딸이 공부를 하게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며 “한편으로는 너무나 애통했을 학생들의 부모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참전용사 장학금 사업이 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지고 있다. 또,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한국 교육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책도 쓰고 있다. 김 박사는 “그들은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와서 싸웠다. 나는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며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고마움을 생각하면 그들의 이름이 대대로 기억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은혜를 아는 이상 그가 감사를 멈출 수없는 이유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20-07-05

과격 시위 때도 제 역할 톡톡

미네소타한인회 황효숙 회장(46대·사진)은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한 시위로 갑자기 ‘미네소타’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황효숙 회장은 “원래 이곳은 상당히 평화롭고 조용한 곳인데 조지 플로이드 사건 때문에 근래 들어 가장 많이 주목을 받았다”며 “과격 시위로 인해 한인 업소들이 피해를 입어 한인회가 성금을 모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미네소타주 한인사회는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적극 나섰다. 교회, 개인, 미네소타주를 거쳐간 한인 등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2만4088달러를 피해자들에게 전달했다. 황 회장은 “피해를 입은 한 업주는 전화를 해보니까 펑펑 울더라”며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한인끼리 아픔을 나눈다는 의미가 컸다”고 전했다. 코로나19 기간에도 미네소타 한인회는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인 양로원을 방문해 노인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포장해 전달하기도 했다. 미네소타 한인회는 지난 2016년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한인회관 건립모금 운동을 시작한 지 무려 37년 만이었다. 역대 회장들이 모은 기금과 재외동포재단 회관 기금 지원을 통해 세인트폴 지역에 한인 회관을 세웠다, 모두가 힘을 합한 건립이었기에 지금까지 단 한번도 분쟁없이 운영될 수 있었다. 현재 한인회관은 한글학교, 입양인 단체 모임, 워크숍, 이벤트 장소 등 다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황 회장은 개인 사업을 하는 가운데 지난 1월부터 한인회를 맡았다. 현재 한인회의 디지털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황 회장은 “한인회의 모든 서류 관리, 정리 등을 디지털화하고 웹사이트 개편 등 미래를 대비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며 "이번 한인 업소 돕기 성금 모금도 온라인을 통해 진행했는데 새로운 방식에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미네소타 한인회가 작지만 강한 이유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20-06-29

“지금의 좌우 논쟁, 한국전 때와 비슷”

미네소타주와 한국의 인연 사이에는 ‘사람(人)’이 있다. 송창원 박사(88·사진)는 방사선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1968년 한국인 최초로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논문을 게재한 인물이다. 발표한 논문만 300건 이상이다. 지난 18일 송 박사를 만났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미네소타대학 의대에서 연구 활동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그는 서울대 출신이다. 송 박사는 1세대 국비 유학생(1959년 9월)이다. 미네소타대학에서만 45년간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도 한국전 참전 용사다. 늘 고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송 박사는 “70년대 초 한국에서 방사선 치료 전문의가 없어 도움을 요청해온 적이 있다”며 "그 때 서울대에서도 3명이 왔는데 내가 비용을 다 지원했다. 고국에 빚을 갚고자 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송 박사는 계속해서 한국 의학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앞장섰다. 연수부터 강의까지 한국의 제자들을 위해서라면 시간 할애부터 금전적 지원까지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는 아직도 매일 고국 관련 뉴스라면 빠짐없이 읽는다. 특히 “요즘 한국의 상황을 보면 답답하다”고 했다. 송 박사는 “한국전 당시와 지금 상황이 매우 비슷하다”며 “그때도 ‘좌냐, 우냐’ 싸움이 심했는데 지금 한국이 극심한 좌우 논쟁으로 양분돼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의 양극화가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그는 한국전 참전 당시 부상을 입었다.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아직도 몸에 지니고 산다. 빼내지 못한 파편이 아직도 척추 옆에 그대로 박혀 있다. 송 박사는 “전쟁 당시 바로 옆에서 선임하사가 죽는걸 봤다. 하늘이 나를 살려준 건 뜻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아직도 한국을 위해 일하는 이유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20-06-28

[취재수첩] 멈춰선 70년…미네소타 가는 곳마다 한국전 사연

19일 오후 3시, 출장 일정을 끝내고 미네소타를 떠나기 전이다. 잠시 미니애폴리스 다운타운에 들려 5가 인근의 밥 딜런 벽화 앞에 섰다. 미네소타는 밥 딜런이 나고 자란 곳이다. 그는 평화를 노래했다. 흥얼거림은 인식으로 스민다. 아무래도 이곳 사람들은 음률을 입은 그의 가사를 좀 더 음미하며 들었을 거다. 그래서일까. 조지 플로이드가 짓눌렸던 그 자리에는 지금 평화의 생기가 움튼다. 미네소타주는 애칭이 있다. '미네소타 나이스(Minnesota Nice)’. 이곳의 기운이 묻어나는 별칭이다. 미네소타에서 나눈 여담을 잠시 적는다. 이곳의 겨울은 미국 내에서 손꼽을 정도로 춥다. 북유럽 이민자가 많은 이유다. 이곳 사람들은 혹한을 이타심으로 이겨낸다. 미네소타에서 45년째 산 한현숙(전 미네소타아동복지회)씨는 “한 예로 한겨울에 차가 멈춰버리면 너무 춥기 때문에 정말로 위험한 곳이 여기”라며 “그래서 차가 멈추면 너도나도 와서 도와주는 게 미네소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네소타의 혹한은 한국과 인연으로 닿았다. 한국전쟁 당시 추위에 익숙한 병사가 필요했던 탓에 미네소타의 병사들이 대거 차출됐다. 정전협정 뒤에도 미네소타와 한국의 인연은 계속됐다.한인 입양아도 많다. 미네소타 입양 역사 이면에는 한국전이 있다. 미네소타대학은 서울대학교에 학문과 기술을 전수하는 프로그램(미네소타 프로젝트)을 진행한다. 연간 75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710만 달러)를 투입했다. 취재 도중 그 당시 미국행 비행기 삯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미네소타대학 송창원 박사(88)를 만났다. 방사선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런 송 박사가 뜬근없이 퀴즈 하나를 냈다. 그는 1세대 국비 유학생(1959년 9월)이다. “장 기자, 내가 유학올 때 비행기표 값이 얼마였을 것 같아요.” 나는 1979년생이다. 맞출 리가 없다. “950달러였어요. 그 당시 한국의 국민소득이 60달러대였으니 상상이 되십니까.” 미네소타대학이 한국을 돕기 위해 매년 지원한 금액이 어느 정도 규모인가를 가늠해본 대목이다. 이 대학 농과대학 부속 식물원에는 한국산 식물 수십 종이 있다. 한국전 후 미네소타대 교수들이 한국에 나가 가르치고 돌아오면서 가져온 것들이다. 미네소타에서 태양광 회사 EVS를 운영하는 김권식 대표는 이곳에 ‘한국의 언덕’ 제작을 추진중이다. 식물원 측과 어느 정도 논의가 오간 상태다. 인연은 여러 면에서 공교롭다. 미네소타는 작가 찰스 슐츠의 고향이다. 그는 미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만화 캐릭터 찰리브라운과 스누피를 그려냈다. 한편으로는 ‘찰리 브라운’하면 김시스터스(The Kim Sisters·1953년 결성)다. 한국전 이후 미군 부대에서 인기를 끌다가 1959년 미국에 진출한 원조 케이팝 걸그룹이다. 이들이 부른 찰리 브라운(1962년)은 아직도 미네소타 사람들 기억에 남아있다.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린다. 당사자에게 그때의 기억을 묻는 건 상당히 조심스럽다. 전쟁은 실제다. 악몽을 소환해야 한다. 추상적 질문은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해서다. 질문자와 답변자 사이의 괴리다. 대신 이곳에는 흔적이 많다. 한국과의 접점들이다. 그 자취는 저마다 인연을 담아낸다. 종적을 따라간 건 답을 듣기 위한 과정이었다. 미네소타는 한국전의 ‘사실’을 70년이 흐른 지금도 사연으로 말하고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20-06-25

미네소타 참전 용사들 전쟁 고아까지 품었다

버려진 게 아니다. 인연으로 지켜진 거다. 미네소타주에는 가슴으로 낳은 생명이 많다. 한현숙(83ㆍ사진)씨는 미네소타주 한국 입양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외길만 걸었다. 미네소타아동복지회, 국제사회봉사회 등에서 40년간 해외 입양만 담당했다. 입양의 연분은 슬프게도 전쟁이다. 6·25는 고아를 양산했다. 곳곳에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한국전의 또 다른 그늘이었다. 한씨는 “미네소타주의 한인 입양 역사를 보면 미군들이 한국전 참전 후 이곳으로 돌아올 때 한국서 고아를 데리고 오거나 양자를 삼으면서 시작됐다”며 “이후 입양 기관들이 생겨나면서 한국의 아이들이 공식 입양 절차를 밟게 되면서 입양아가 더 많아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네소타주 참전용사를 돕는 김병문 박사 역시 “참전용사는 물론이고 그 자제들 중에는 아버지로부터 ‘한국전’ 이야기를 듣고 훗날 한국에서 아이를 입양한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미네소타아동복지회가 한씨를 통해 이곳에 데리고 온 한인 입양아는 무려 1만 명이 넘는다. 한국전 이후 가슴으로 품고 지켜낸 어린 생명들은 그렇게 미네소타로 건너왔다. 한씨는 “미네소타는 한인 사회 구성이 타주와 다르다. 이곳의 한인 입양아는 현재 1만5000여 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한인 이민자보다 더 많다”며 “대부분 아기 때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기 때문에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한인들”이라고 했다. 입양인이 한인 이민자 1.5배 주 공화당 의장도 입양인 센서스국 조사도 진행중 실제 센서스국에 따르면 미네소타 지역 한인은 총 2만995명(2010년 기준)이다. 이중 한국어 사용자는 5678명 뿐이다. 센서스국도 미네소타주 입양인 사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특별히 올해 센서스에서는 입양인 인구 조사도 하고 있다. 정확한 입양 인구를 파악하겠다는 심산이다. 미네소타주의 한인 입양아들은 사회 곳곳에서 활동중이다. 미네소타주 공화당 의장 제니퍼 카나한도 입양아다. 지난 2016년 국적을 회복해 한국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에서 활동한 마리사 브랜트(한국명 박윤정) 역시 미네소타주에서 자란 입양아다. 한때 골수 이식으로 한국에서 관심이 높았던 미 공사생도 성덕 바우만 역시 미네소타주 출신이다. 한씨는 “유명 체인 스토어 ‘타겟(target)’이 미네소타주에서 처음 생겨났는데 그때 창업자(존 제스)도 한인 여자 아이를 입양해 내가 도움을 줬다”며 “한국전을 통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연이 여러모로 많은 곳이 미네소타주”라고 말했다. 피보다 진한 인연이다. 거기엔 가슴으로 낳고 키운 생명들이 있다. ------------------------------------------------------------------------------ 한인 입양아, 왜 미네소타인가 미네소타와 한국은 1950년을 기점으로 각별해졌다. 특히 가장 많은 전쟁 고아를 입양해 돌본 곳으로 기록됐다. 그 흔적을 따라가봤다. “미네소타 입양아들 기록으로” 킴 잭슨 수석 아트 디렉터 킴 잭슨(사진)씨는 현재 ‘미니에폴리스ㆍ세인트폴 매거진’에서 수석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해군에 있을 때 1950년대 초반 한국에서 근무를 했다. 그 인연으로 1973년에 미네소타로 나를 입양했다”고 말했다. 잭슨씨는 미네소타주 한인 입양아들을 한 명씩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나’를 찾기 위한 여정에서 비롯됐다. 6년여의 걸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발간(2010년)된 사진집의 제목은 ‘HERE(여기에)’다. 그는 “친구가 사진집의 제목을 ‘THERE(거기에)’로 제안했는데 내가 나고 자란 이곳의 의미를 담아 제목을 ‘HERE’로 달았다”며 “이곳의 입양아를 담아내기엔 책 한 권으로 부족하다. 계속해서 ‘HERE’ 시리즈, 입양아들을 위한 기록을 남기는 일을 기회가 되는대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잭슨씨는 본업 외에 미네소타주 한인 사회와 입양 가족들을 위한 계간지(Korean Quarterlyㆍ1997년 창간) 편집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는 지금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한국’에 대한 의미를 물었다. 그는 “내가 돌아갈 수 있고, 나 자신에 대해 아직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잭슨씨는 “한국은 나에게 고향, 조국…동시에 먼 나라, 잘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부분이 많은 문화 등 여러 의미가 떠오른다”며 “그런데 이상할 만큼 상당히 친숙하다. 그 느낌은 역시 내 아이들에게 피를 통해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입양아 돕는 건 내 평생의 일” 미네소타대 쥬디스 에컬리 교수 쥬디스 에컬리(사진)는 미네소타대학 의과대학 부교수다. 소아과 전문의로서 현재 입양 아동 의학 클리닉 디렉터로도 활동중이다. 당시 에컬리 교수의 양아버지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것이 계기가 돼 에컬리를 입양하게 됐다. 그가 생후 5개월 때 일이다. 에컬리 교수는 ‘어머니’가 되고 나서 생모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그는 “내 딸이 태어나고 몇 달 후 양어머니가 ‘엄마가 되니까 생모 생각이 더 나느냐’고 묻더라”며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 당시 생모에게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머니가 나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린 거라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컬리 교수는 학창 시절부터 의사가 되고 싶었다. 특히 고등학교 당시 ‘입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나 존슨 박사를 멘토로 만난 게 계기였다. 이후 입양 의학(adoption medicine)을 통해 미네소타주의 또 다른 입양 아동들을 돕는 길을 걷고자 결심했다. 그는 “위탁 양육 아이, 입양아는 물론 어린 시절 부정적 경험 등을 가진 아이, 가족 등을 만나 소아과 의사, 전문 치료사, 심리학자 등이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며 “입양 의학은 소아과 분야에서 작은 부분에 해당하지만 이것은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2020-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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