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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천국에도 아카시아 꽃이 있으면 좋겠다

이맘때면 유독 아카시아 향이 그립다. 고향 산하를 온통 불태우던 진달래의 열화가 웬만해질 무렵, 어느 곳에서인지 미풍에 실려오던 아카시아 꽃의 그윽한 향을 기억한다.   그건 감미롭다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 흐뭇한 기분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이럴 때 우리는 인간 언어의 한계를 안타까워한다. 그 섬세한 향기를 조금이라도 더 넉넉히 맛보고 싶어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곤 했던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낯익은 전경이다.   아카시아 꽃은 소담스럽다. 군락으로 피어있는 아카시아 꽃을 보노라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예쁜 꽃 한두 송이 피어있는 것이 눈길을 끌 때도 있지만 아카시아 꽃은 한가득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이 제격이다.     굳이 마법의 성이 아니라도 괜찮다. 우린 왕자도 되고 공주도 되고 그렇게 동화 속에 살았다. 그 싱그러운 꽃을 따서 한 움큼 입에 넣으면 혀끝에 살짝 얹힌 단맛과 신비로운 향이 입안 곳곳을 맴돌다가 코를 타고 뇌리에 닿는다.     우리는 고향 추억을 그렇게 새겼나 보다. 거기 순이도 있고 철수도 있고, 아지랑이 언덕 넘어 야트막한 초가집들이 정겹게 늘어서 있다. 저녁 어스름에 밥 짓는 연기가 굴뚝 위로 흐르고, 황소는 게슴츠레 눈을 끔벅이며 저녁 여물을 기다린다. 저녁상을 물리고 둘러앉은 가족들은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별을 헤고 꿈을 헤고….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면 꿀벌들은 꼭두새벽부터 난리다. 아마 사람 이상으로 아카시아 꽃을 반기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꿀벌들이다. 꼬박 한 해 만에 모처럼 만났으니 오죽이나 반가우랴. 꼭두새벽부터 붕붕거리며 연신 채밀장을 드나들기에 바쁘다.     꽃송이 하나하나를 정겹게 찾고는 꿀을 가득 싣고 돌아온다. 벌통 입구에 들어서면서 꿀을 실은 무게를 못 이겨 뒤뚱거리며 문 앞에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보초를 서던 녀석들은 좋아라 궁둥이를 치켜들고 마중을 나간다. 저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인간은 이 축제를 감히 탐낼 수 없다며….     이 녀석들을 넋 놓고 바라보노라면 난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나도 날개를 달고 얘네들 따라 아카시아 꽃밭에 다녀왔으면.   식물학자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아카시아는 아마 외지에서 유입된 꽃들 중에 가장 우리네 정서에 어울리는 토속적인 꽃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그윽한 향이며 예쁜 연미색 색조,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송이는 우리네 선조들의 곱고 넉넉한 심성을 빼어 닮았다.     나는 특별히 우리나라 아카시아 꽃을 좋아한다. 너무 진하지도 옅지도 않은 그 은은한 향은 누구든 그리워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가끔 몇 종류의 다른 색깔 아카시아 꽃들을 만난다. 그들도 특색이 있고 예쁘기는 하지만 우리네 땅에 있는 그런 향미(香味)와 색조에 비견할 수 있는 경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한번은 몇 해 전에 40번 국도를 타고 오클라호마에서 서쪽으로 텍사스 주 경계를 넘다가 우연히 활짝 핀 한 무더기의 아카시아 군락을 보았다. 이국 땅에서 아카시아 꽃을 만났으니 너무도 반가워 탄성을 지르며 곧바로 다음 출구에서 차를 되돌려 갔다. 그런데 아니었다. 꽃이나 나뭇잎은 아카시아가 분명한데 향기는 다 어디다 숨겨뒀는지…. 아무리 코를 부비며 향기를 찾으려 해도, 글쎄, 꼭 마음 돌린 여인네 같았다. 얼마나 서운하고 허탈했는지 난 온종일 아쉬웠다.   연세가 많이 드신 아버지의 한 지인이 얼마 전에 아카시아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으신다. 몇 해 전에 출간한 내 시집에서 아카시아 꽃을 소재로 한 시를 읽어보신 모양이다. 시 외곽에 있는 자신의 농지에 꿀벌 몇 통을 치고 있는데 그들에게 아카시아 꿀맛을 보게 하고 싶어서 한국에서 아카시아 씨앗을 가져왔단다.     그분도 정성이 참 어지간한 분이시다. 씨앗들이 벌써 잘 발아하고 이미 한두 자 정도씩 자랐는데, 아카시아 꽃 향기를 그리 좋아한다니 원하면 한두 그루를 주시겠단다.     이게 웬 복인지!... 지금 우리 뒤뜰에는 아카시아 두 그루가 아주 임금 대접을 받고 있다. 제발 미국 아카시아 닮지 말고 한국 풍미를 그대로 견지하려무나. 아마도 두세 해가 지난 후 좋은 꽃망울을 터트리면 나는 분명 이런 글을 다시 쓰고 있을 게다, 여기서 근사한 고향을 만들었노라고….   나는 가끔 천국은 어떤 곳일까 상상해 본다. 물론 성서에 천국의 단면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신학자가 회복된 에덴의 아름다운 장면을 소개하면서,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한 곳이라 묘사한다. 죄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곳이라니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우랴! 그런데 아마 거기에 한국 아카시아 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늘에서도 난 그 꽃의 풍미는 꼭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아카시아를 좋아하는 데는 또 다른 연유가 있다. 구약 성서에 의하면 신께서 인간과 가까이 만나기 위해 성막을 짓도록 하셨다. 이 성막의 중심 격인 지성소 내부에는 신이 손수 기록하신 십계의 두 돌 비를 담은 법궤가 있었다. 이 법궤는 싯딤나무(신명기 10:3)로 만든 후 전체를 금으로 입힌 작은 궤였으며, 그 상단은 '쉐키나'라 일컫는 신의 영광이 언제나 현현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법궤의 소재가 되었던 그 싯딤나무가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아카시아 나무란다.     가시가 많아서 누구든 접근하기도 여의치 않고, 나뭇결이 고르지도 못해서 가구용으로도 부적합하고, 곧게 자라지도 않아서 재목으로도 소용이 없고, 그리고 잎이 많아서 유난히 바람을 많이 타는, 꼭 나 마냥 볼품없고, 별반 쓸모도 없고, 모가 많은 싯딤나무를, 하필 소중한 법궤의 소재로 다듬어 쓰도록 하신 연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정금까지 입혀서.     글쎄,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 다가, 아무리 볼 품 없어 보일지라도, 온 우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더없이 소중한 소재들이 될 수 있다는 신의 계시인지….   어디선가 미풍에 실려 온 아카시아 향이 폐부로 스며들고, 살며시 감은 두 눈 사이로 평화가 내리고…. 그래, 천국에도 아카시아 향이 있을 거야. 거긴 우리 모두의 고향이니까. 유진왕 / 수필가문예마당 아카시아 천국 아카시아 씨앗 아카시아 군락 우리나라 아카시아

2025-01-30

[문예마당]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새해를 새 마음으로 시작하기는 애초부터 글렀다.     지난 연말부터 한국에서 들려온 방탄, 탄핵, 비상 계엄 등 무시무시한 말들로 뒤숭숭하더니 급기야 최악의 제주항공 참사로 179명이나 되는 희생자가 숨졌다.     LA에서는 역대 최악의 산불이 LA 곳곳을 휩쓸며 황폐화시켰다. 한국의 지인이 문자를 보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이래서 아프고 저래서 아프고, 땅도 하늘도 모두 아픕니다.”   나도 댓글을 보냈다. “지금 LA도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힘들고 모두 사는 게 힘듭니다.”     옛말에 ‘복은 겹쳐 오지 않고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나쁜 소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정초에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희망찬 한 해를 설계하는 게 보통인데 올해는 어쩐지 떠오른 해가 밝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한국은 불신과 반목, 가짜뉴스, 유언비어에 음모론까지 판을 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을 비롯해서 대행이 많다 보니 ‘대행민국’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 무정부 상태와 다름없다.   연말연시 파티로 즐겁게 북적일 시기에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과 광화문에선 탄핵 찬반 시위로 진영이 둘로 쪼개져 목청이 터져라 외쳐대고 있다. 한겨울 맹추위에 철야 농성을 이어 가니 안타깝다. 백골단까지 등장하며 준 내전상태다. 국가 기관끼리 맞부딪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언제 끝날 것인가. 뉴스를 보고 있으면 부글부글 화가 치민다. 행여 무슨 일이 일어날 까 불안하다.   한국의 지인들은 요즘 이념 양극화로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밥도 같이 먹기 싫다고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달라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정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모임에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암묵적 규칙이다.     정치 위기는 정치로 풀어야 하는데 정치는 없고 모든 것을 법에 의존한다. 아전인수격으로 법을 따지지만 법은 딱 떨어지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법에 대한 얘기가 있다. “법을 무시하는 난동은 최악이고, ‘법대로 하라’며 따지는 세상도 결코 좋은 세상은 아니다. 예로서 질서를 지키고 악으로써 화합하여 ‘법 없이도 사는 세상이 가장 좋은 세상’이다.”   정치도 품격이 있다. 화합과 타협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정확한 과학이 아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타협의 예술, 타협의 기술이란 뜻이다. 타협은 없고 대결만 있는 지금의 한국 정치에서 곱씹어 봐야할 말이다.   TV가 없던 시절, 아버지는 라디오를 끼고 사셨다. 매시간 뉴스를 경청하셨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 뉴스 같은데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 내가 그렇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신문을 읽고 낮엔 같은 뉴스를 계속 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화가 나면서도 보고 또 본다.   그러다 보니 내용을 꿰뚫고 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정치 평론가 수준인데”라고 놀린다. 예전에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정치는 원래 남자들의 전유물처럼 여겼다. 요즘은 여자들이 더 정치에 관심이 많다. ‘개딸’이나 ‘태극기 부대’를 보면 여자들이 더 적극적이다.   원래부터 정치나 뉴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방문을 자주하게 되고부터 하도 시끄럽게 정치문제가 사회 전체를 삼키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 된 것이다. LA에서도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뉴스를 접할 수 있어 마찬가지다. 한국 정치는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정치에 함몰시킨다.   나라의 앞날 걱정에 잠을 설치니 남편은 “신경 꺼”라며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남편은 스트레스 받는다며 아예 한국 뉴스를 외면한다. 초야에 묻힌 선비처럼 집에서 책만 읽고 있다. 요즘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다. 지금 한국의 모양새가 포용과 보편성은 사라지고 혐오와 독선이 판치는 멸망 직전의 로마제국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일까.   한국인의 정치 관심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이자 높은 시민 의식을 반영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지나친 몰입은 정치적 극단화와 사회 분열을 심화하는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   결국 계엄 사태 43일 만에 윤대통령이 체포됐다.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불안감은 일단 해소됐다. 그래서 대통령의 미래는, 한국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가?     어수선한 조국을 바라보며 한국 근무를 마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떠나며 한 말을 생각한다.     “지금 한국은 매우 어려운 순간이지만 이겨낼 것이다.”     한국은 저력이 있는 나라니까 희망을 가져 본다. 누구의 말 대로 ‘희망은 힘이 세니까’ 그 말을 믿어본다.   정초에 한국이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스러웠다면 LA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비상상태가 선포됐다. 주택 등 1만여 채의 건물이 전소됐고, 수만 명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 LA 인근 지역 곳곳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악마의 바람이라는 ‘샌타애나’ 강풍으로 급속히 번져나갔다. 투명하도록 맑고 파랗던 LA하늘은 온통 잿빛 연기로 뒤덮였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밤중에 ‘삐익 삐익’ 급박한 소리와 함께 대피하라는 경고문자를 세 번이나 받았다. 난감했다. 한국 같으면 염치 불구하고 친척 집이라도 간다지만 캄캄한 밤중에 어디로 대피한단 말인 가. 불안하지만 꼬박 밤을 새며 버텼다.   다음날 또 대피 경고를 받았다. 일단 집을 떠날 때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기에 가지고 나갈 물건을 챙기는데 무엇을 챙겨야 할지 몰랐다. 산이 가까운 LA 북쪽에 살면서 대형 산불을 여러 번 경험했지만 당황하기는 매번 마찬가지였다. ID와 신용 카드, 여권과 중요한 서류, 먹는 약만 챙겼다. 가족 사진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단출하게 짐을 챙겨 밖에 나가보니 좀 떨어진 거리가 시커먼 연기 속에 묻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바람과 연기가 우리집과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걸 본 후 안심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사방에서 염려하는 전화가 왔다. 특히 한국에서 “괜찮으냐”는 전화가 많이 왔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귀중품이 아니라 힘들 때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들의 정이라는 것, 재난속에서 얻은 귀한 깨달음이었다.   나훈아가 부른 노래 중에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정말 세상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 혼돈과 슬픔에 빠진 한국 사회와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LA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이래 수필 한국 정치 정치 이야기 정치 위기

2025-01-23

[문예마당] 의사가 환자가 되어 시작한 새해

십여 년 전에 ‘환자가 싫어하는 의사’, ‘의사가 싫어하는 환자’, 작년 이맘때는 ‘의료 방해와 의료사고 예방’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 글의 요점은 환자들과 의사, 의사들과 환자들 사이의 간격 좁히기와 도움이 되기 어려운 높은 기대치 허물기에 대한 것이었다. 서로 간의 관념과 관점을 이해하면 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것을, 환자는 의사들이 알리고자 하는 것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의사라는 직업은 밥벌이를 위한 것이 아니고 타고난 직업, 천직(天職)으로 분리된다. 즉 하늘이 준 일, 영어로는 vocation(보케이션)이라 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occupation)과 구분하는데, 여기에는 봉사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간호사, 교사, 종교인, 변호사도 직업인이라기보다는 천직을 가진 사람이라고 본다.   천직을 가진 사람들, 특히 질병을 다루는 의사들이 매일 천직의 관념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물질 만능주의가 강세인 현대를 살아가는 의사들은 학자금 대출 때문에 쌓인 빚을 잊고 살 수는 없다.     의과대학 학자금 빚은 탕감해 주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 2024년 1월 포브스 잡지는 의과대학생들의 평균 빚이 20만6924달러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졸업하는 시점부터 빚을 갚기 시작해야 한다. 빚에는 이자까지 포함되어 있다. 가정도 꾸려야 할 나이이다.   그런데 환자들이 기대하는 의사는 어떤가? ‘마르코스 웰비, M.D.’의 주인공 의사처럼 인자하고, 인정 많고, 한사람의 환자를 위해서 충분한 시간을 써 주는 의사가 주치의이기를 바란다.     ‘마르코스 웰비 박사’ 텔레비전 시리즈는 1970년대 ABC에서 방영되었던 인기 있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천천히 움직이는 한가한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실화일 것이다.   얼마전 의사인 내가 환자가 되어 외래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곳은 내가 의사로서 젊음을 보냈고, 그곳에서 은퇴한 메디컬 그룹이 운영하는 큰 병원이었다. 내가 활동하던 시기보다 수술프로토콜이 더 많이 세분되어 있었다. 병원의 운영과 의사 중심에서 환자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체재로 많이 변해 있었다. 내가 전직 의사라서 특별대우를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어느 정도 맞을지도 모르겠다.   수술은 오른쪽 어깨 근대의 파열을 보수하는 것이었다. 담당하는 가정의에게 어깨가 아프다고 알렸을 때, 진단에 필요한 엑스레이, 초음파, MRI 검사와 함께 물리치료 전문의에게도 의뢰되었다. 이어서 정형외과의사, 물리치료와 정형외과 보조 의사와도 몇 번 만나는 바쁜 한 달을 지났다.     수술을 하면 좋은 점, 나쁠 수 있는 점, 부작용 등등 세심한 설명과 내용이 적힌 팸플릿, 영상까지도 제공되었다. 옵션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어떠한 질병 치료에도, 좋든 나쁘든, 옵션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옵션은 환자가 수술을 거부할 수 있는 옵션이다.   참고로 어깨 근대 파열은 테니스나 골프를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 흔하다. 또는 무거운 것을 들어야 하는 직종을 가진 경우에도 발생한다. 나의 근대 파열 문제는 오랫동안 써서 생긴, 나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치료로는 수술 대신 운동을 하라고 권하기도 하는데, 운동은 근대 주위의 근육들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병난 부위의 대치 역할을 시키는 방법일 뿐, 운동으로 잘린 근대가 이어지지는 않는다.   수술로 일단 단절되어 있는 부위를 연결해 주기로 했다. 요즘은 환부를 크게 오픈하지 않고 관절경(arthroscopy) 방법을 쓴다. 끄트머리에 꼬마 카메라가 달린 관절경을 관절에 집어넣고, 관절경이 실시간으로 보내 주는 정보를 TV 스크린을 통해서 본다. 외과의사는 환자의 확대된 환부를 스크린에서 보면서 수술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수술하는 날, 새벽 5시 30분까지 입원 대기실에 도착했다. 미래 의료 동향서와 휴대폰만 갖고 갔다. 수술은 전신 마취였고, 하루 전날 밤부터 공복이어야 하였다. 입원 대기실에 도착한 후, 나와 보호자인 남편을 동석시키고, 자세한 개인 정보를 확인하고, 팔에 ID 팔찌를 끼워 주었다.     미래의료동향서를 건네니까, 이를 스캔하는 부서로 일단 보내고, 스캔 된 부분은 전자기록에 첨가된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직원은 만약 의료사고가 생기거나, 전신 마취 중에 연락이 필요한 경우, 일 순위부터 가족들의 이름, 연락처가 정리되어 있는지도 확인하였다.   수술 대기실로 옮겨지고, 친절하고 명랑한 마취전문의, 마취 전문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맥주사가 연결되었다. ‘잠깐 주무세요!’라는 속삭임 이후의 해프닝은 전혀 알 수도 기억나지도 않는다.   이론적으로만 이해하였던 내 환자들의 ‘육체적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참을성의 문턱이 꽤 높은 나 자신에게, 실상 진통제가 필요할 만큼 심한 이 아픔은 적극적으로 침범해 온다. 시간이 약이라던 어른들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삼각기 팔걸이 슬링을 하고 다니면, 동정도 많이 받을 것 같다.   환자로 시작한 의사의 2025년이다. 아프지만 의미 깊은, 그래서 겸손하게 시작하는 새해이다. 그래서 그런지, 2025년은 힐링의 새해, 겸손과 나눔의 새해가 될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든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문예마당 의사 환자 정형외과의사 물리치료 주인공 의사 의사 의사들

2025-01-16

[문예마당] 첫눈

무엇이든 처음이 있다. ‘첫’자가 들어가는 말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첫사랑, 첫걸음, 첫눈 등… 11월 끝자락, LA로 돌아오기 이틀 전 한국에는 첫눈이 내렸다. 자고 일어나 창밖을 보니 밤새 내린 눈이 새하얀 눈꽃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야말로 설국이다. 야외 원탁 위에는 50cm가량의 눈이 쌓였다. 눈 구경하기 힘든 LA에 살다 보니 신기 했다.   너무 예뻐서 보고 또 보고 있는데 친구가 전화를 했다. “난 아침부터 창밖만 보고 있어. 넌 떠나기 전에 흰 눈을 선물 받은 것 같구나. 실컷 보고 가라.”     나도 흥분해서 대꾸했다. “너무 환상적이야. 이렇게 많은 눈을 보기는 생전 처음이야. 우리 아파트 주민들이 사진 찍느라고 난리가 났어.”     낮에 아파트 바로 앞 세브란스 병원에 정규 검진을 받으려 가는데 보니 마침 점심시간인지라 간호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눈 위에서 포즈를 취하며 셀카를 찍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첫눈이 11월에 내린 117년 만의 폭설이라 하니 한국에 사는 사람들조차 신기한 광경이었던 것이다. 눈은 그날 하루 종일 내렸다.   떠나기 하루 전 날 아침 친정 언니네 집에 가려고 밖에 나오니 눈이 무릎까지 쌓였다. 길도 나지 않았다. 셔틀버스도 안 다녔다. 걱정이 태산 같았다. 남편은 위험하다고 나가지 말라고 극구 말렸지만 구순에 가까운 언니를 이번에 못 보면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몰라서 꼭 보러 가야했다.     다른 출입구로 가보니 누군가 지나간 흔적이 있어서 겨우 그 발자국을 따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동백역까지 갔다. 역사 안은 사람들로 꽉 차서 오도 가도 못할 지경이었다. 지하철을 연결해 주는 경전철을 잠깐 타야 하는데 눈으로 인해 지연돼서 2시간씩이나 기다린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언니를 만나고 집에 오는 길도 험난했다. 이번 눈은 축축하고 무거운 습설(濕雪)이라 눈이 쌓인 곳은 괜찮지만 사람들이 다닌 길은 녹은 후 얼어서 외줄타기 하듯 힘들었다. 집에 거의 다 와서 긴장이 풀어져 방심했는지 꽈당 넘어졌다. 다행히 수북이 쌓인 눈 때문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집에서 걱정스레 기다리던 남편에게 말했다. “나 살아서 돌아왔어요.”   일본 교토로 놀러간 사촌 동생이 눈 때문에 예정보다 이틀 후에나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내일 비행기가 뜨려나?” 밤에 잠이 안 왔다. 눈이 많이 와서 비행기들이 뜨지 못한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눈은 그쳤지만 안심이 안 되어 오전 내내 항공사에 전화를 했지만 통화를 못했다. 문의 전화가 쇄도했기 때문이다. 점심때쯤 항공사로부터 예정보다 2시간 늦게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 휴~ 한숨 놓았다.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 출국날짜 기막히게 잡은 것 같다. 내 동생은 어제 싱가폴 간다고 비행기 탄 후에 이륙을 못해서 15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 갇혀 있었다고 해.”   쌓인 눈의 하중을 견디다 못하고 결국 나무들이 꺾이고. 전신주가 쓰러지며, 지붕이 내려앉아 사람이 죽는 이변까지 속출했다. 첫눈의 설렘과 낭만이 폭설로 인해 악몽으로 변해 버렸다. 우리가 설경을 즐긴 대가가 너무 컸다.   한국으로 간 때는 지난해 5월이었다. 한국의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명성답게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찬란한 봄빛을 내뿜었다. 온 천지가 생명 에너지로 충만했다. 그러나 잠깐 눈 호강을 했을 뿐이다. 6월인데 전국이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였다. 174년 만에 가장 뜨거웠다고 한다. 7, 8월엔 더위가 무서워서 외출도 못했다. 어쩌다 나가면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안은 지나칠 만큼 시원하지만 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5분여가 헉헉 숨이 막혔다. 사람들이 아예 약속을 잡지 않았다.   9월이 되니 좀 살만 했다. 그렇다고 폭염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추석 때도 한여름처럼 더웠다. 가을 늦더위로 예쁜 단풍구경을 못하고 LA로 돌아가나 싶었다. 계절을 그냥 지나치기 아쉬웠는지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11월 하순쯤 뒤늦게 반짝 단풍의 절정기를 맞았는가 싶었는데 첫눈 폭탄을 맞은 것이다.   비행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아! 드디어 LA 공항에 도착했구나. 일단 LA 공항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화창한 날씨가 나를 반겨주기 때문이다. 다음날 낮에 밖에 나가보니 햇볕은 쨍쨍,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다. 반팔에 민소매 옷을 입은 사람도 가끔 눈에 띄었다. 불과 이삼 일전만 해도 추워서 두꺼운 코트를 입고, 흰 눈을 보며 감탄하고,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는 세상에 있다가 LA에 오니 생판 딴 세상이었다.     LA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롭고 평화롭다. 맑은 공기와 햇볕이 주는 행복감 때문이리라. LA에 도착한 지 3일 만에 한국에선 계엄령이 선포되어 전국이 요동치고 있다. 느닷없는 계엄령으로 국민은 경악했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사정상 LA와 한국을 비교적 자주 오가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서 ‘LA와 한국 중 어디가 더 살기 좋으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각기 장단점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우선 춥고 눈 오는 겨울이 있는 한국 날씨와 사시사철 화창하고 따뜻한 LA 날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LA에는 지진, 폭염, 강풍, 산불과 같은 재앙이 있고 한국에는 태풍, 홍수와 폭설, 한파 등의 자연 재해가 있다.   한국에 가면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이 발달해서 나 같은 노인들이 살기 편리해서 좋긴 하지만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니 땅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LA 와서 화창한 날씨에 사방이 툭 터진 프리웨이를 달리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다.   한국서 LA로 떠나기 바로 전에 내린 폭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이었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던 한국은 이제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이라고 말들 한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은 스치듯 지나간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탓이다.   재해와 사고를 예측한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 이전에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와 전조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처한다면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나, 방치한다면 훗날 대형 사고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위에서 말한 기상 이변들은 지구의 경고가 아닐까.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데 없다’는 속담이 있다. 모든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 있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지구온난화 문제에 관심을 갖고 우리가 망가뜨린 지구를 회복시킨다면 그 어느 곳이나 살기 좋은 곳이 아니겠는가.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첫눈 수필 첫눈 폭탄 이번 첫눈 비행기 창문

2025-01-02

[문예마당] 태어난 날에

몇 년쯤 되었다. 매년 12월이 되면, 나와 남편에게 자그마한 꽃다발이 배송되곤 한다. 짧은 노트와 함께… ‘사랑, 삶, 그리고 세상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엄마(umma), 아빠(appa)’. 어제도 예년처럼 꽃다발을 받았다.   둘째 딸은 제 아이가 태어난 이후부터 매년, 자기 생일에 꽃을 보내온다. 제가 태어난 날을 기념일이라 여기고, 부모인 우리가 제 출생의 일부라고 여기는 것 같다. 딸의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의예과 시절에 생명이 창조되는 도중에 멈추어져서 실험실에 도달한 생명 없는 생명들을 보았고 그들을 갖고 실험했다.     각각 다른 창조 시기에 있던 그들은 의과대학생들이 현미경을 이용해서 공부하도록 굳혀진 후, 마이크론 두께로 잘리고, 염색 과정을 거쳐 슬라이드에 부착된 상태이었고, 어떤 경우에는 포르말린 병에 갇혀 둥둥 떠 있었다. 창조되었던 생명이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과학도들에게 묵묵히 제 몸을 내어놓고 있었다. 종교적 차원과 철학적 견해를 떠나, 과학을 하는 사람이 ‘생명 옹호’ 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보호받은 애초의 생명은 엄마의 자궁 안에서 약 280일 동안 자라고 때가 되면, 엄마의 몸에서 분리되어 세상에 나와야 한다. 그때 빛을 보고, 공기를 들여 마시는 순간이 있던 날을 우리는 생일로 기념한다.     말 그대로 생일이지, 생년월일은 아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생일’, 즉 ‘만들어진 날’이란 처음 창조되어 엄마의 자궁 안에 정착한 때를 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보까지 알 수 없는 우리네 형편이다. 그래도 법적으로 나이 계산에 대한 새로운 규칙이 생기기 전에 한국인들이 쓰던 나이 계산법, 즉 태어날 때 한 살인 것은 꽤 과학적이다.   생일(birthday)과 출생일(birthdate)은 한 사람의 출생에 관련된 날을 표시하는 두 종류의 방법이다. 생일은 태어난 연도, 시간과 상관없이 날짜만을 뜻하고, 양력이나 음력을 따르는 나라, 고장, 가정이 있다. 출생일은 태어난 해, 달 그리고 날을 함께 명시하는 경우이다. 한국에서는 출생일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대신 생년월일이라고 표한다. 생일은 사람뿐 아니라, 회사, 학교 같은 기관도 창립일로 기념하고 축하한다.   출생일 또는 생일은 개인이 갖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정보로 어른과 아이를 구분한다. 우리들의 권리나 의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성장 중인 아이는 어른의 보호가 필요하고 결정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아이를 보호하는 보호자가 담당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성인이 되면,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으면 내 맘대로 퇴학해도 된다. 의무교육이 적용되지 않는 나이이다. 또 성교나 결혼할 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 술, 담배, 로토 살 권리가 있다. 투표권과 공직에 출마할 권리도 있고, 운전면허도 받을 수 있다.   책임이 주어지는 법적 의무는 어른이 되면 그 효력을 발생한다. 그 예가 한국에 있는 병역의 의무이다. 의무를 회피하고 이탈하게 되면, 범죄자가 되므로 구속되고, 벌금형을 받거나, 영창 생활을 하는 일도 있다. 미국은 병역의 의무 즉 징병제가 1973년에 폐지되어, 군대 지원을 원하면 나이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른은 몇 살부터인가.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다르다. 12살에서 21세 사이에 성인으로 입성한다.   미국의 경우는 주(州)마다 다르다. 보통은 18세부터 성인으로 취급하지만, 앨러배마, 콜로라도, 메릴랜드, 네브래스카주는 19세부터 성인이고, 워싱턴 DC, 인디애나, 뉴욕은 21세부터 성인으로 취급한다니, 놀랍다.   어떻든, 생일이 관련된 문화 행사도 꽤 있다. 예수의 생일로 서방 국가들이 정한 12월25일,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가 축하한다. 한국은 만 한 살 될 때 ‘돌’ 잔치, 60살 때 환갑을 축하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은 딸이 16세가 될 때 ‘스위트 열여섯 살’ 파티를 하여 준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은 15세에, 필리핀의 경우는 딸은 18세 때, 아들은 21살 때, ‘데뷔’ 파티를 연다. 유태인은 12살 때 여아(女兒) 바트 미츠바, 13살 때 남아(男兒) 바 미츠바 성인식을 결혼식 버금가게 종교와 민족 의례를 합쳐서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른다.   제 생일날, 꽃다발을 보내 준 딸은 남편과 내가 뉴욕주립대학 시러큐스 캠퍼스에서 혹독한(!) 수련 의사 과정을 거치고 있던 때, 편안하고 즐거운 태교(胎敎)를 받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나와 함께 받으면서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반도의 최 북쪽, 중강진과 같은 위도에 있는 시러큐스는 강추위에, 스노 벨트 중심지에 있어서 흐린 날이 많고, 눈도 많이 내렸다. 그 애가 태어나던 새벽에도 함박눈이 내렸다.   밤새 함박눈이 사뿐히 내려와서 세상의 더러움이나 어려움을 모두 덮어 주던 그날, 막 모습을 드러내며 밝아오던 여명에 세상은 창백하게 눈부시었다.     아이는 자라면서, 자기를 환영해 주었던 함박눈에 덮이어 티 없이 완벽했던 세상이 그렇지 못한 세상과 함께함을 배웠다.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하루를 살아가는 초.중.고교 학생들을 학생 실습에서 보기도 했다.     만화소설 ‘파우어 온!’은 그래서 탄생했다. 그래도 그 애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처음 보았던 그날을 기념하면서, 제 부모에게 꽃다발을 보내 주었다. 모니카 류 / 수필가문예마당 수필 나이 계산법 생일날 꽃다발 생일로 서방

2024-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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