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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양은 주전자

얘야, 막걸리 좀 받아 오렴     엄만 맨날 나만 시켜, 언니는 안 시키고     떼구르르 주전자 뚜껑     저거 성질머리         오늘은 할아버지 제삿날     양은 주전자 몸통으로 뽀얀 막걸리가 컬컬컬컬     목까지 차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이장님댁 경숙이네 마당엔 백열등이 환하고     나무 타는 연기가 숭숭 구멍을 내며   마을로 퍼져간다       심부름은 나만 시켜     몇 발짝 걷다가 돌멩이를 냅다 걷어찼다   아, 발가락이야     벌컥벌컥 막걸리가 춤을 추다     뽀그르르 거품을 토해냈다   멀미가 가신 노란 주둥이 속   뽀얀 혀가 내밀내밀     까불지 마, 주둥이를 콱 틀어막았다     두터운 내 입술로         쏴아아 목젖으로 퍼지며     낭떠러지로 처박히는 이 아찔한 숨 막힘     내 인생의 막걸리 첫 모금       우리 언니는 공부만 지키지     삼대독자 내 동생은 몸집만 지키지     나는, 심부름이 날 지켜주냐     아, 인생은 무엇이고 운명이란 무엇이냐     오늘은 할아버지 제삿날, 술 한잔하시는 날         예끼 이놈!   할아부지이, 하나도 안 무섭다     기분이 아쭈 좋아, 엄마도 이쁘고 언니도 이이쁘다   심부름은 내가 지킨다       언제 또 제사가 돌아오나 홍유리 / 시인문예마당 주전자 양은 양은 주전자 주전자 뚜껑 할아버지 제삿날

2024-11-21

[문예마당] 비숍 단풍여행 (2)

  비숍 한복판에서 100년 된 극장을 만났다. 1924년. 그해 세상에서 제일 유별난 사랑을 주신 아버지가 태어나셨다. 1994년 노스리지 지진으로 집이 다 무너져 황당할 때, 아버지가 미국에 오셔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글귀의 유명 서예가 작품을 빈 벽에 걸어주셨다. 긍정적 자신감, 우주에서 나보다 더 존귀한 존재는 없음을 자주 일깨워 주셨다.     저 멀리 ‘위스키 크릭(Whiskey Creek)’이라는 식당 간판이 보인다. 깊은 산속에 ‘위스키 냇가’라는 이름이 좋다. 오늘 비숍의  저녁은 여기서 먹기로 점 찍어둔다.     오웬즈 밸리에 깊숙이 숨어 있는 비숍은 산장 스타일 호텔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웨이파인더(WAYFINDER)는 캐슬 같은 고풍스러운 호텔이다. 이스턴 시에라의 심장이라는 애칭대로 졸졸졸 흐르는 해자가  호텔을 감싸고 사냥, 하이킹, 캠핑을 즐길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눈 쌓인 산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시냇물은 맑고 깨끗하다. 또, 요즘 수영에 빠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풀장, 핀란드 스타일의 사우나와 온수 스파도 있다.     비숍은 옛날부터 일확천금을 꿈꾸는 방랑자들이 쉴 새 없이 오가며 돈을 썼던 곳이다.     나는 이 호텔에서 야외 페치카가 있는 호반 정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바라만 보아도 힐링이 되는 곳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추억의 앨범을 펼쳐 놓고 가족들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지나간 시간은 아름답고 감동이었다. 남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어머머 귀여워요”라고 말하는 며느리가 참 예쁘다. 전망 좋은 호텔에서 여독을 풀고 오웬즈 밸리의 첫날밤을 맞이하니 내 마음에 꽃이 핀다.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이렇게 작은 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닐까.     호텔 방에 있는 가이드북은 비숍의 역사책이나 다름없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인디펜덴스 부근에 만자나르(manzanar) 일본인 강제 수용소가 지어졌다. LA시와 오웬즈 밸리 주민 간의 ‘캘리포니아 물 전쟁(California Water Wars)’ 이야기도 있다. 현재 LA 시에서 사용하는 물의 상당량이 이 지역에서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장남은 출산예정일을 훨씬 지나고도 세상 구경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의사는 예정일에서 15일이 지나면 무조건 병원으로 오라고 해 입원 준비를 했는데 그 날은 마침 내 생일이었다. 큰 아이는 생일 날 ‘신의 선물’로 나에게 도착했다. 세상에 이렇게 큰 축복이 또 어디 있으랴! 너무나 감사하게도 큰아들은 내가 가시밭길 험한 세상 온갖 파도와 고난을 겪을 때도 내 손을 꼭 잡고 항상 위로가 되어 주고 희망의 꿈을 심어 주었다.     비숍에서 찐 맛집 ‘위스키 크릭’ 레스토랑을 만난 것은 이번 여행 중 최고의 행운이었다.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와인을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동네 맛집이다. 마침 우리가 간 날은  월드시리즈 3차전이 열린 날이었고 이날 LA다저스는 양키스를 4대2로 꺾었다. 대형 TV를 보며 다 같이 응원했는데 모르는 사람에게도 맥주를 돌릴 정도로 흥겨운 분위기였다.   드디어 나의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생일 저녁 식사라 더없이 좋았다. 촛불을 켜고 소원을 빌고 해피버스데이 노래를 부르고 손편지를 나누고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뜻깊은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비숍의 100년 된 빵집 에릭샤츠에서 소문난 양치기 빵과 샌드위치를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한 아름 샀다. 이번 비숍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사브리나 호수의 단풍이었다. 하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물은 메마르고 단풍은 빈약했다. 하지만 인요 국립산림지역의 깊은 사슴 마을에는 로키 마운틴처럼 눈이 쌓여 있고 곳곳에 큰 별장들이 보였다.     황금 아스펜 단풍은 이 마을에서 약 70가 장관이었다. 단풍을 바라보며 나는 한 번도 인생을 활활 불태워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일가친척 아무도 없는 미국에서 어린 두 아들 손을 꼭 잡고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문득 이 숲속에서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처럼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은빛 미래를 그려본다.     숭어 낚시를 즐기는 게 사브리나 호수의 낭만이다. 나는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을 오버랩해 본다. 나도 단풍처럼 어느새 가을을 온몸에 색칠하고 무르익고 있었다. 사브리나 호수 주변 단풍은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고산준령을 머리에 이고 노을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진다. 너무나 짧은 찰나다.   여행은 고행이다. 그래도 또 떠나고 싶다. 그래서 여행은 중독이다. 비숍 여행은 마법이었다. 자연은 깊어 가는 가을, 숲속의 감성을 명화로 연출한다. 가만히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먼 옛날 이 산마을에 황금을 찾아온 사람들의 환호성. 미칠 것 같은 환희의 외침이 들려 온다. “와! 금이다. 금 노다지다. 금 광산을 발견했다!” 나도 황금 지도를 한장 사서 아무도 모르게 저 사막을 향해 길을 떠나야겠다.   유강호 / 수필가문예마당 단풍여행 비숍 비숍 한복판 오늘 비숍 위스키 크릭

2024-11-21

[문예마당] 비숍 단풍여행 (1)

  LA에 사는 사람들은 비숍으로 단풍구경 가는 게 연례행사다. 마치 서울 사람들이 내장산이나 설악산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하다. 아침 8시에 차이나타운에서 모닝 딤섬을 먹고 출발했다. 모처럼 가족여행이다. 요즘 아들은 내가 ‘ㄷ’ 하면 딤섬 집으로, ‘ㅂ’하면 비숍으로 안내한다. 결혼하더니 척 하면 삼천리다.     예전에 요세미티 투어 갔다가 처음 본 비숍은 이렇게 멀고 먼 길이 아니었는데…. 이젠 지구력이 사라져 좋은 구경도 긴 시간 바라보니 지루하다. 하늘의 뭉게구름을 이 세상 아닌 저 세상 경치로 생각하며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간다. 빅파인 저 너머 무진장한 광산을 이고 있는 산세는 구석기시대 신선들의 놀이터처럼 신비롭다. 미국에서 멋진 경치를 보면 서울에 있는 가족들 얼굴이 그려진다. 함께 하고 싶은 바람. 보이는 모든 풍경이 예술이며 진경산수화, 흑백 몽유도원도이다.     비숍까지 숨차게 달려갈 아무 이유가 없는데도 아들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 자동차도 숨을 쉬고 쉬엄쉬엄 가면 좋으련만 개스가 달랑달랑할 때까지 달려와 막판에 개스를 넣는다. 시골길에 있는 개스 스테이션은 서부 개척시대 분위기가 물씬하다. 찬바람이 쌩쌩 분다. 산골 공기가 상쾌하다. 앞으로 100마일만 더 가면 비숍이다 .     시골길에 있는 개스 스테이션에서는 비프저키를 사는 게 가장 현명하다. 산마을마다 비프저키 맛이 다르고 내추럴, 스모키 등등 제조 공법이 달라 여행하는 동안 이 동네 저 동네 비프저키 품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화이트산맥 사이의 오웬즈 밸리(Owens Valley)에 있는 비숍은 평균 해발고도가 1264m이다. 이 도시 비숍은 초기 정착자였던 사무엘 애디슨 비숍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인요카운티 근처 산악지역은 암벽등반 명소로 알려져 세계 각국의 등반가들이 찾는다. 캘리포니아 최고의 단풍 관광지인 이스트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 위치한 모노 레이크, 비숍 크릭 캐년 등 10월 중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지역이다.     호텔에서 체크인하고 손바닥만 한 동네를 한바퀴 돌았다. 처음 만난 건물은 노새(mule) 박물관이다. 1969년부터 매년  ‘노새의 날(Mule Days)’ 축제가 열린다. 서부 개척시대 시에라 산맥에서 금광이 발견되고 너도나도 황금을 찾아 말 타고, 노새를 끌고, 역마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다가 하룻밤 머문 장소가 비숍일 거라고 상상해본다.     시골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인디언 보호구역, 기차역, 금노다지 보물찾기 지도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벽 그림을 많이 만난다. 노새 박물관은 금시초문이다. 역시 여행은 배움의 학교다. 예전에는 건물 벽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내비게이션 역할을 했나 보다. 공항 지도도 벽에 그려져 있는데 비숍에서는 샌프란시스코도 가고 덴버도 가는 비행 노선이 있다.     비숍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이 눈 덮인 산과 호수가 지천인데 벽 그림 산맥 속에는 광맥을 찾아온 개척시대 카우보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 파이우트족과 쇼쇼니족 등이 거주하던 지역 표지판이 있다.  골드러시로 모여든 이주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꾸민 모습을 벽 그림으로 장식한 지혜가 놀랍다.     시에라 마드레의 파인 크릭 마인 보물 지도가 내 눈에 확 들어온다. 황량한 마을에서 흘러간 서부영화 하이눈, OK목장의 결투, 석양의 무법자를 기억해 내고 나홀로 좋아서 비숍의 모든 것들을 내가 아는 것과 연결해 보려고 벽화 속으로 한참 빠져들었다. 어디선가 내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이는 배우들의 메아리가 들린다.     비숍,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여정. 골드마인의 역사는 먼 옛날, 금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수많은 광부가 이곳에 모여들어 지칠 줄 모르는 노동으로 황금을 캐냈을 것이다. 황금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는 더욱 값진 보물이다.   허름한 건물 벽에 새겨진 금광 발견 지도를 가슴에 품으니 온몸이 따스해진다. 오늘 저녁은 안 먹어도 배부르다. 오늘 밤은 잠 안 자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다.  쉴 새 없이 달려온 우리집 장남의 센스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야호! 역시 비숍은 따봉 ~ 생각만 해도 골드, 금 광산은 울트라 수퍼 파워 에너지를 뿜뿜뿜! 나에게 준다.   유강호 / 수필가문예마당 단풍여행 비숍 도시 비숍 시에라네바다 산맥 시에라 네바다

2024-11-14

[문예마당] 믿음의 승리

지난 10월 6일 주일 저녁 4시에 풀러턴 장로교회 창립 50주년 감사 음악 예배가 있었다. 믿음의 친구가 이 교회에 권사로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왔다. 친구는 나에게 음악 예배 소식을 전해주면서 꼭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친구는 그 교회의 호산나 성가대 찬양 대원으로 늘 교회를 섬겨온 터라 꼭 참석해서 찬양에 많은 은혜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나는 감회가 매우 깊었다. 친구를 만난 지가 30여 년이 가깝지만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친구는 아니었다. 직장에서 사귄 친구인데 언젠가 말 못 할 가정 사정이 있다면서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친구를 매일 만날 수 있었다. 휴식 시간 때마다 나에게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했다. 더욱이 임신 중이었다. 나는 친구의 하소연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가슴이 먹먹하면서 내 가슴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친구는 크리스천이었지만 믿음이 돈독하지는 못했다. 나는 밤마다 교회 철야 예배에 데리고 가서 둘이 손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친구는 믿음이 생기면서 주어진 고난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면서 기도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모든 고난을 이기고 나갈 믿음이 생겼다며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들을 순산했고 믿음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외도하던 남편은 첫사랑의 연인과 동거생활을 시작했고, 이혼소송장까지 가져와 이혼을 강요했다고 한다. 백방으로 노력해 봐도 한 번 돌아선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남편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막내아들을 믿음으로 키우는데 사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임신 중에 같이 손 붙잡고 기도했던 그 아들이 UCLA를 졸업하고 CPA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며 합격 기도를 부탁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맏딸과 첫째 아들 모두 결혼을 시켰고 가족 모두가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자녀들이라는 자랑이다.       나만 보면 기도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한다. 남편과는 헤어졌지만, 자녀들을 모두 믿음으로 키워 훌륭한 믿음의 일꾼들이 되었다. 막내아들은 덤으로 얻은 아들처럼 너무나 귀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믿음이 없었으면 너무 힘들어 유산할 뻔도 했는데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순산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었다고 했다.   창립 50주년 감사 음악 예배의 주제는 ‘세상을 향하여’ 였다. 합창은 모두 3부로 나뉘었는데 1부는 ‘하나님을 향해’ 였고,  2부는 '서로를 향해',  3부는 '세상을 향해'였다.   중간에 특별 초대 손님이 특별한 연주를 해 주어 금상첨화로 찬양 예배가 더욱 빛났다.   친구는 호산나 찬양대 대원으로 맨 앞줄 중앙에 하얀 찬양복을 입고 찬양하는 모습이 마치 천사가 노래 부르는 것 같이 아름답고 보기 좋았다. 과거 모든 아픔 다 잊고 노년에 교회 권사로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찬양 예배와 함께 친구를 지켜보는 나로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오늘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믿음의 승리를 한 개선장군처럼 어엿하고 자랑스러웠다.   믿음으로 맺어진 우리의 우정은 하늘의 샛별처럼 빛나며 천국 가서도 영원하리라. 친구야! 참 장하고 자랑스럽다. 아름다운 목소리 잘 간직하여 주님 찬양하는데 더욱 쓰임 받기를 주님께 기도드린다. 김수영 / 수필가문예마당 믿음 승리 모두 믿음 장로교회 창립 찬양 예배

2024-11-07

[문예마당] 인간의 잔인함·뻔뻔함은 어디까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늦더위에, 가을장마까지 겹쳐 푹푹 찌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화창한 날씨로 변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맑고 푸르러 눈이 시릴 정도다. 무겁고 우울했던 마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쾌청한 하늘을 보던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상은 엉망진창이다.   세상이 날로 더 악해지고 있다. 한국이 경제대국이라고 하지만 살기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각종 재해와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정치도 사악하게 흘러간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한국 사회가 총체적 난국처럼 느껴졌다. ‘마약 청정국’도 옛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마약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묻지마 살인’ 등 끔찍한 뉴스가 끊이지 않더니 급기야는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 하나가 밝혀졌다. 이 사건은 여고 시절 공포에 떨며 읽었던 애드거 앨란포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를 소환하게 했다.     ‘검은 고양이’는 단순한 공포 소설을 넘어 인간 본성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한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던 고양이를 학대하고 죽인 후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다 아내까지 살해하고 발각되기까지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가정 폭력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그 경험들이 ‘검은 고양이’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요약하자면, 온화한 성격에 동물을 아주 좋아하던 평범한 남자가 술에 중독되면서 점점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인 인물로 변한다. 술에 취해 자신이 기르던 검은 고양이 ‘플루토’의 한쪽 눈을 도려내고 나중에는 풀로토를 나무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한다. 그 후, 그는 술집에서 플루토와 닮은 고양이를 발견하고, 그 고양이를 데려와 또 기르기 시작한다. 이 고양이 역시 그의 폭력적인 성향을 자극한다. 결국 이 남자는 두 번째 고양이도 도끼로 죽이려다 실수로 아내까지 죽이게 된다.     아내의 시신을 지하실 외벽과 내벽 사이에 감추고 벽을 새로 발라서 범행을 숨긴다. 아내가 죽자 기르던 고양이도 자취를 감춘다. 아내가 사라지자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경찰이 집을 방문한다. 경관들이 집을 훑어보고 무심히 지나치려는데, 그는 자신이 완전범죄를 저질렀다는 교만한 마음에 벽을 두드린다. 그 순간 벽 뒤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수상히 여긴 경관들이 벽을 허물게 되고 그 안에서 아내의 처참한 시신이 발견되고, 아내의 시신과 함께 산 채로 묻힌 두 번째 검은 고양이도 발견된다. 결국 그는 체포되고 만다.     공포와 긴장 속에서 읽었던 소름 끼치는 ‘검은 고양이’가 갑자기 떠오른 것은 지난 9월 하순 경남 거제의 한 주거지에서 16년 만에 발견된 시신 때문이다. 한 남성이 말다툼 중 동거하던 여자친구를 살해한 뒤 여행용 가방에 시신을 넣어 유기한 사건이다. 그는 동거녀와  살던 옥탑방 바로 옆 베란다에 가로 39cm, 세로 70cm, 높이 29cm 크기로 벽돌을 쌓은 다음 시신이 담긴 가방을 넣고 10㎝ 두께의 시멘트를 부어 범죄를 은닉했다.     그 후 그는 그곳에서 무려 8년이나 더 살았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의 범행은 16년간 아무도 몰랐다. 10㎝ 두께의 시멘트로 은닉한 탓에 별다른 냄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의 잔인함과 폭력성, 그리고 존엄을 훼손하는 장면을 드러낸 사건이다.   그의 범행은 옥상 누수공사를 하던 중 드러났다. 작업자가 콘크리트 구조물을 파쇄하다 시신이 담긴 여행용 가방을 발견하면서다. 시신은 백골 상태가 아닌 미라처럼 된 상태였다. 다행히 지문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범인을 체포할 수 있었다.     ‘완전범죄는 없다’, ‘반드시 잡힌다’는 말이 있다. 특히 과학의 발달로 범인 체포에 지문 감식과 DNA 분석이 큰 역할을 한다. 과학수사팀 사무실에는 ‘모든 시신에는 흔적이 남아 있다’,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문구가 곳곳에 걸려 있다고 한다. 과학 수사 요원들은 ‘스치기만 해도 흔적이 남는다’고 말한다.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는 말은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또는 해서는 안 될 고약한 짓을 했을 때 하는 말이다. 천인공노(天人共怒)라는 말도 있다. 하늘과 사람이 함께 분노할 일이나 인간을 두고 쓰이는 낱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그런 일이 있는데 앞의 사례도 그런 경우다. 사람을, 그것도 한때는 사랑해서 함께 살았던 동거녀를 잔인하게 살해해서 암매장한 집에서 태연하게 8년씩이나 일상생활을 했다는 게 소름 끼친다. 인간의 잔인함과 뻔뻔함은 어디까지인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인 순자의 ‘성악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성악설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관점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다”가 아니라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으로 기우는 경향을 지닌다”라는 의미이다.     순자는 예의 같은 인간의 도덕적 행위는 본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위적인 노력으로 도덕적으로 교정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이 선하게 되기 위해서는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규범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말한 암매장 사건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생명과 법을 경시하는 풍조와 개인의 분노가 사회 전반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더욱 강력한 법 집행과 사회적 경각심이 필요하다. 위의 사건을 통해 사회 안전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애국가의 한 소절이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티 없이 맑고 쾌청한데 세상은 왜 이리 혼탁하기만 할까?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잔인함 수필 한국 사회 가을 하늘 다음 시신

2024-11-07

[문예마당] 맛집 ‘삼세판’

  지난해 말 타지에 사는 아들네 다섯 식구가 성탄과 연말을 우리와 함께 보내겠다며 왔다. 아들 가족은 LA에 올 때면 맛집도 기대한다. 가까이 사는 딸이 동생 가족에게 한턱낸다고 해서 오전 붐비지 않을 시간에 LA한인타운의 한 식당을 찾았다. 항상 붐비는 식당이라 일행 중 네 명이 먼저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직 정리는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양옆 테이블은 비어있었다.     일행이 11명이라 양쪽 두 테이블을 예약하려 했더니 종업원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오는 순서대로 앉는다는 이유였다. 곧 아들 가족이 들어왔지만 그 종업원은 멀리 떨어진 테이블로 안내했다. 바로 뒤이어 딸 가족도 왔는데 더 먼 자리였다. 남편은 종업원을 따라다니며 우리 옆자리를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며느리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화가 나서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종업원이 남편에게 “안 된다”며 험악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양옆자리는 깨끗이 치워진 채 비어 있었다.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즐겁게 식사하려고 왔는데 난처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를 함부로 대하는 종업원에게 화가 나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외식이란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시켜서 서로 나누어 먹는 재미인데 뿔뿔이 떨어져서 먹으니 자연히 맛도 없었다. 자리가 부족해 그렇게 되었다면 이해할 수 있다. 고객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식당 규정이었다. 그 식당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식당이 되어버렸다.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맛집을 또 가게 되었다. 보스턴에 있는 질녀 가족이 와 맛집을 고르라고 했더니 그 식당을 선택했다. 이번에는 으레 따로 앉을 각오로 갔더니 인원수를 물었다. 우리는 열 두 명이었다. 예쁜 여자 종업원이 친절하게 “조금만 기다려주면 자리를 잡아 주겠다”고 했다. 의외였다. 붐비는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조금 후 우리 일행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대접하는 입장에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LA한인타운이 자랑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반찬과 밥은 일찍 나왔지만 주문한 메인 음식은 영 나오질 않았다. 나중에 알았는데 우리가 주문한 요리는 30분이 걸린다고 카운터 앞에 적혀 있었다. 그 시간이 그렇게 긴 줄 그때 알았다. 한참 만에야 메인 요리가 나왔다. 비주얼이 장난 아니었다. 갈비, 떡, 감자 등을 수복이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치즈까지 얹었다. 가스라이터로 불맛까지 내주는 게 아닌가.  맛집다웠다. 우리 일행은 “우와!”하며  즐거워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배가 고픈 데다가 그 맛집의 대표 요리다 보니 모두 흡족하게 밥을 모두 비웠다. 그런데 식사가 끝날 무렵 사위가 들어왔다. 따로 음식을 주문했다. 그런데 안된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지금 시키면 30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까지 우리 테이블을 놓아둘 수 없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긴 했지만 당시 식당에는 빈 테이블이 많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사위가 주문하려던 음식은 조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식당 문 닫을 시간이 가까워 그러느냐고 했더니 그것도 아니란다.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납득할만한 설명도 없이 종업원은 무조건 거절했다. 식당 내부가 너무 시끄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맛집이라는 이유로 참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또 실망감을 줬다. 계산하는 딸에게 얼마나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예상외로 금액이 많았다. 딸은 인원도 많고 해서 팁을 많이 주었다고 했다. 사위의 추가 식사 주문을 이유 없이 거절한 종업원에게 오히려 팁을 많이 줬다고 하니 화가 날 정도였다. 팁이란 고객이 종업원의 서비스 만족도에 따라 주는 것 아닌가. 사위는 한사코  간식을 먹어서 괜찮다고 했지만 미안하고 속이 상했다. 손녀는 아빠 준다고 깨끗이 남긴 음식을 투고 박스에 담고 있었다.아무리 소문난 맛집이라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두 번째 방문에서도 씁쓸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섰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며느리와 파마를 하러 갔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끝이 났다. 너무 배가 고팠는데 며느리가 지난번 갔던 맛집이 가까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또 그 집을 들어갔다. 시장하던 차라 둘이 정신없이 식사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밥값 계산을 하며 영업시간을 물었더니 ‘24시간 오픈’이라고 했다. 난 깜짝 놀라 두 번째 방문 때 얘기를 하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매니저라는 그분은 그럴 리가 없다면서도 미안하다고 했다. 결국 세 번째 가서야 기분 좋게 밥을 먹은 셈이다.     매니저는 음료수까지 들고 따라 나왔다. 한국 속담에 ‘삼세판’이란 말이 있다. 한번 경험으로 누구를 판단하는 것은 경솔한 행동이다. 적어도 세 번은 겪어 봐야 평가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음식 맛도, 분위기도 좋은 그 맛집이 고객을 기분 좋게 하는 친절도 함께 내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영희 / 수필가문예마당 삼세판 맛집 여자 종업원 양옆 테이블 아들 가족

2024-10-31

[문예마당] 가을 산을 오르며

  모처럼 산을 찾았습니다. 볼디산(Mt. Baldy)입니다. 집에서 한 시간쯤 걸리는 곳입니다. 낙엽을 밟으며 혼자서 천천히 걸어갑니다. 젊은이 몇이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갑니다. 가파른 언덕이 시작됩니다. 숨이 차오릅니다. 가뿐히 걷던 길이었는데 이제 만만치가 않습니다. 헉헉거리며 등성이 하나를 넘었습니다. 잠깐 쉬어갈 요량으로 걸음을 멈추고 길가 바위에 걸터앉았습니다.     사방이 조용합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묻혔던, 산이 품고 있던 소리들이 조심스럽게 살아납니다. 물소리, 풀벌레 소리,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구름 흘러가는 소리 등 걸으면서는 들리지 않던 소리입니다. 멈추니 들려옵니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듣지 못했던 소리입니다. 저렇게 세상 모든 것은 각자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저만치 아스라합니다. 내가 남긴 발자국을 되돌아봅니다. 내 소란한 발걸음이 행여 이웃에 불편을 끼치지나 않았는지. 무례한 내 발길에 차여 애먼 사람이 상처를 입지는 않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봅니다. 내 발에 밟혔을 가엾은 작은 생명들을 떠올립니다. 내 구둣발의 횡포를 새삼스럽게 확인해봅니다.     물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길옆 골짜기에 물이 흐릅니다. 일만 봉우리에 내린 가랑비가  내를 이루어 계곡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산이 좋아, 나는 길 따라 올라가는데 물은 저렇게 산을 버리고 떠나가는 중입니다. 한 세월 산의 품속에 살다보니 싫증이 났나봅니다. 산은, 촐랑거리며 멀어져가는 저 물을 탓하지 않습니다. 말없이 바라볼 뿐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나고 헤어지는 이치를 산과 물은 저렇게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 위에 낙엽 한 잎 툭 떨어집니다. 낙엽은 개울을 타고 천천히 떠내려갑니다. 물은 빨리 가라고 재촉하지 않습니다. 구덩이를 다 채우지 않고 흐르는 물을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낙엽이 웅덩이를 한 바퀴 휘돌고 나더니 물 따라 다시 흘러갑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중일까요. 물과 함께 흐르는 낙엽을 보며 우리네 삶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세우고, 마음을 옮기고, 마음을 접으며, 마음이 무너지는 세월을 따라 흘러가는 한 잎 낙엽. 그것이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다시 신발을 조여 맵니다. 올라갈수록 더 가파릅니다. 저 건너 언덕배기에 깡마른 여우 한 마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지고 온 지팡이에 지긋이 힘을 주어봅니다. 가만히 서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이 낯선 나그네에게 수인사를 건네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발로 땅을 구르며 워,워, 소리치자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저만치 가다가 무슨 전해줄 말이라도 있다는 듯 몇 번이나 멈추어 뒤돌아보곤 합니다. 큰 바위 부근을 지나면서 다시 뒤를 돌아봅니다. 저 바위 위에 폴짝 뛰어올라 두어 번 굴러 재주를 넘은 다음 어여쁜 색시로 변해 산속 나그네를 유혹이나 하지 않을랑가 가만히 바라봅니다. 녀석은 앞발을 들어 내 쪽을 바라보며 툭툭 땅을 치더니, 살아있는 존재끼리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게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듯 무어라 긴소리를 내지른 다음 산 너머로 사라져버립니다.     다시 발걸음을 천천히 옮깁니다. 벌써 몇 사람이 나를 스쳐 올라갔습니다. 산행길에서 한인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백인들도 제법 눈에 띄지만 일본이나 중국인을 보았던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한인에게는 산을 좋아하는 특별한 인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전국의 산이 몸살을 앓는다는 한국뉴스를 볼 때면 더욱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제법 높이 올라온 모양입니다. 숨이 찹니다. 까마귀 소리가 들려옵니다. 까악 까악 깍…. 산중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까마귀 소리가 마치 “가아, 가아, 가”하는 소리 같습니다. 조금 전 만났던 여우가 생각납니다. 자기들의 동네를 무단 침입한 인간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산 정상 부근, 선 채 말라죽은 고목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풍장(風葬) 중입니다. 다비식 날 장작더미 위에 앉아 불꽃 가마를 타고 가볍게 오르시는 큰 스님처럼 몸을 말리는 중입니다. 몇백년 한 자리를 지켜 거목이 된 다음, 생을 마친 후에도 저렇게 같은 자리에서 몇십년인지 백 년인지 모르는 세월 동안 조금씩 조금씩 바람에 몸을 맡겨 장례의식을 치르고 있습니다. 누워버린 고목도 한둘이 아닙니다. 저 나무님들의 나이를 혜량할 수가 없습니다. 고작 70평생 웃고 울며 이 땅 위에 살다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인간이 어떻게 저 어른들의 나이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줄기 마른 바람이 스쳐 갑니다. 생각해보면 생명을 불어넣은 것도 바람이요, 가져가는 것 또한 바람의 일입니다. 바람을 모셔오는 분은 누구이며, 바람을 몰아가는 이는 또 어떤 분일까요.     가져온 점심을 먹었습니다. 보온병에 담아온 따끈한 차 한 잔이 일품입니다. 갑자기 저만치서 어떤 이가 “야호~” 소리를 지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횡포입니다. 산 짐승을 놀라게 하고 나무의 잠을 깨우는 무례한 일입니다. 먼발치로 보니 한인입니다. 산에 처음 올랐거나 젊은 친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던 백인들이 그쪽을 쳐다보더니 저희끼리 무언가 수군거리며 걸어갑니다. 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천천히 산길을 내려갑니다. 발을 절뚝거리며 가는 사람이 보입니다. 내리막길은 힘은 덜 들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합니다. 산은 말없이 가르치는 스승입니다.     바람이 골짜기를 휘돌아갑니다. 낙엽들이 또르르 또르르 길 따라 굴러갑니다. 낙엽을 따라 나도 굴러 내려갑니다.   정찬열 / 수필가문예마당 가을 수필 물소리 풀벌레 발자국 소리 까마귀 소리

2024-10-24

[문예마당] 자이언 캐년과 헤세의 싯다르타

  자이언 캐년으로 가는 길의 건조하고 마른 벌판 한쪽에 버팔로들이 보였다. 색다른 정경이라 차를 세우고 수십 마리의 버팔로와 시선을 나누었다. 8년 전, 이 길을 지나 브라이스 캐년을 관광한 다음 날 큰사위와 작은딸이 탄 ATV가 전복한 사고가 있었다. 자이언 캐년 입구에서 눈요기만 하고 다친 두 사람을 가까운 도시의 응급실로 데려가며 우리는 여행을 마쳤었다. 그때 언젠가 다시 온다고 다짐했는데 자이언 캐년의 협곡으로 들어서는 굽이굽이 도로와 긴 터널을 지나면서 기분이 좋았다.     장엄한 암봉에 감탄하다 찾아간 학 두 마리가 우아하게 자리 잡은 숙소는 정갈했다. 2층 방에 가방을 두고 아래층과 집 안팎을 살펴보는 사이 손주는 발코니에 있는 모래 상자에 작은 목재 빗으로 일본 정원의 디자인을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작은 돌들 사이로 움직이는 아이의 손놀림을 지켜보니 마음이 평안했다.     뒤뜰 의자에 앉아 병풍처럼 둘러싼 멋진 산줄기의 정경을 즐기다가 응접실 커피 테이블에 진열된 유타주 캐년의 사진 책들을 봤다. 그리고 책장을 훑어보다 가슴이 뛰었다. 젊은 시절에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캐년 깊숙이 있는 종점에 들어가서 만만한 트레일, ‘리버사이드 워크’를 걸었다.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는 많은 방문자들의 대열에 섞여서 층층이 겹진 암벽만 아니라 숲과 물의 신선함에 더위를 잊었다. 손주가 신발을 벗고 강물 속에 들어가 좋다고 첨벙대는 것이 부러워도 우리 부부는 감히 따라 하지 못했다. 되돌아오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한 여자가 불쑥 “아직 목적지가 멀었어요?” 물었다. LA에서 혼자 왔다는 그녀의 한국어가 마치 청량 음료수 같았다. 작가 레이첼 카슨이 한 말, ‘지구의 아름다움을 숙고하는 자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견딜 수 있는 기운을 마련한다’ 처럼 우리는 많은 기운을 마련하고 있었다.       딸은 ‘에메랄드 풀’을 찾아 다시 떠났고 남자들은 놀러 간 사이 나는 숙소에서 헤세의 책을 들고 소파에 앉아 시간을 잊었다. 밖이 어둑하니 가족들이 돌아오며 저녁을 가져왔다.     자정이 넘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싯다르타와 그의 친구 고빈다, 그리고 연인 카말라에 잡혀 있었다. 내면의 갈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본질에 목말랐던 싯다르타가 평범하게 살면서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체험담이 잔잔한 공감을 줬다. 젊었을 적에 느꼈던 흥분이 아니고 이번에는 차분하게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더욱이 싯다르타의 연인 이름이 민주당 대선 후보와 같은 것이 재미있었다.     내가 밤하늘을 좋아하니 큰딸은 사진작가 크리스토퍼 이톤의 ‘밤하늘(Night Skies of the American Southwest)’ 사진 책을 구해와서 내 가방에 넣어줬다. 미국 대륙 남서부의 여름 밤하늘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절경이다. 밤하늘에 반했던 반 고흐도 “나는 가끔 밤이 낮보다 더 생생하고 풍성한 색깔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 않았나. 그리고 앨라배마 대학축구팀 모자를 쓰고 다닌 남편은 여러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Roll Tide!” 인사를 나눴다. 북부에 사는 한 남자가 앨라배마와 전혀 관련은 없지만 앨라배마 팀을 좋아해서 로고가 프린트된 셔츠를 즐겨 입는다고 하자 모두 웃었다.     집 떠난 후 노는데 바빴는데 작은딸이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딸과 전화하다가 떠오른 것이 있어 말해줬다. 여행 시작부터 매일 좋은 숙소와 비싼 음식, 멋진 볼거리 많이 보고 다니지만 정작 내가 쓴 돈은 앤텔로프 캐년 여행안내자에게 팁으로 준 20달러 밖에 없다 하니 딸이 깔깔 웃었다. 흔히 말하는 ‘효도 여행’을 받는다며 나도 행복했다.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면서 양옆에 앉은 딸과 손주의 손을 꼭 잡았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첫날, 숙소의 뒤뜰에서 본 부처의 미소 지은 얼굴에 마지막 숙소인 두 학의 집에서 다시 본 만족한 부처의 얼굴이 겹쳐졌다.     알찬 여행일정을 잡은 딸의 세심한 배려에 싯다르타가 동참한 것 또한 오묘했다. “근검절약하는 큰 딸네가 우리 부부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준 호강을 받았다”하니 앞자리에 앉은 남편이 맞장구쳤다. 돌고 도는 삶의 매 순간을 우리 열심히 즐기자 했더니 남편이 크게 웃었다.   영 그레이 / 수필가문예마당 싯다르타 자이언 헤르만 헤세 앨라배마 대학축구팀 여름 밤하늘

2024-10-17

[문예마당] 무언의 가르침

  오랜만에 신문에서 훈훈한 기사를 읽었다.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자장암에 놓인 시주함에 누군가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와 함께 현금 200만원을 넣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편지에는 27년 전 그 시주함에서 3만원을 훔치려 했던 사람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어린 소년이 시줏돈을 훔치러 갔다 스님에게 들켰던 모양이다. 모두가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IMF 외환위기 시기라 사찰의 시주함이 털리는 일도 많았던 시절이었다.     편지는 “어린 시절 생각이 없었습니다. 27년 전에 여기 자장암에서 시주함을 들고 산으로 가 통에서 돈을 꺼냈습니다. 약 3만원 정도로 기억납니다”로 시작됐다. “그런데 한 스님이 제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고개를 좌우로 저으셨습니다.” 편지는 이렇게 이어졌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일도 열심히 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글 말미에는 “곧 아기가 태어날 거 같은데 아기에 당당하고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날 스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시주함을 도둑질하다 스님에게 들켰지만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간 그 소년은 그날의 일을 혼자 간직한 채 예비 아빠가 된 것이다. 그리고 27년 후 다시 그곳을 찾아 시주함에 편지와 함께 현금 200만원을 넣은 것이다.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한 다짐이었다.     그때 소년의 어깨를 잡았던 스님은 지금도 자장암에 있는 현문 스님이라는 분이다. 현문 스님은 “그 무렵 IMF로 사람들이 너무 힘든 것을 알았기에 소년을 그냥 보낸 후 그 일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날 ‘사건’은 소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듯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이 없습니다. 스님이 주문을 넣어서 착해진 것 같습니다”라고 편지에 쓴 걸 보면 스님의 무언의 큰 가르침이 소년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 것 같다. 만약 스님이 소년을 경찰에 넘겼다면 그는 세상을 원망하며 더 깊은 범죄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현문 스님은 손편지에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돌아온 감동적인 사연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불에 등장하는 장발장과 미리엘 신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리는 일곱명의 조카를 위해 빵을 훔치다 체포돼 19년 감옥살이를 하며 세상을 증오한다. 가석방 후 이리저리 떠돌게 되지만, 전과자인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이는 없었다. 마침내 미리엘 주교가 그를 받아들여 숙식을 제공하는데 장발장은 성당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나다 병사들에게 붙들린다. 장발장을 끌고 온 병사들에게 주교는 자신이 은식기를 주었다며, 오히려 장발장에게 ‘은촛대는 왜 그냥 두고 갔느냐’고 말했다. 이후 장발장은 선한 삶을 추구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는 타임(TIME), 라이프(LIFE),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 같은 영어 잡지와 영어 신문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울 상대의 전신인 고상 출신인 아버지가 어쩌다 그렇게 영어에 심취하셨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당시 인텔리들은 서구 문물에 큰 관심을 가졌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학에 갓 입학해서였다. 아버지는 가끔 나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그랑프리가 영어로 그랜드 프라이즈지?” 라고 물으셨다.  나는 ‘그랑프리’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래도 아는 척하며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얼버무렸다. 아버지는 빙그레 미소만 지으셨다. “이상하다. 영어를 잘하시는 아버지가 왜 내게 그것을 물으셨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얼른 내 방에 들어가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랑프리가 영어로 그랜드 프라이즈(grand prize) 라는 것을 알고는 무안함에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확인해 보라는  메시지와 딸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배려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한 번은 영자 신문을 불쑥 내밀면서 한 기사를 번역해 보라고 하셨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 나의 영어 실력은 형편없었다. 아버지가 또 나를 테스트하려는 것이라 생각하고 낑낑대며 번역을 해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내심 잘했다는 칭찬을 기대했지만 그때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부드러운 미소만 지으셨다.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다시 꼼꼼히 읽었다.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서 궁색한 여자가 남편 덕에 여왕처럼 호화롭게 사는 여고 동창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가 수모를 당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답은 바로 그것이었다. 여학생 때는 학교라는 울타리와 동일한 교복으로 인해 친구들 간에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졸업 후에는 각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 길이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특히 여성은 결혼을 잘하고 못함에 따라 인생행로가 결정되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딸에게 그런 여자의 운명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무언의 가르침을 통해 삶의 지식과 깨달음을 얻고는 했다.       노자에 나오는 ‘불언지교(不言之敎)’는 말하지 않고도 가르침을 준다는 뜻이다. 소년이 시주함의 돈을 훔치려 했을 때 스님이 소년의 어깨를 잡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어 제어한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너는 지금 잘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 때문인지 그 마음은 다 헤아리고 있다. 그러니 못 본 것으로 해 두마. 그러나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말라.”   용서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 당시 스님이 베푼 무언의 가르침과 용서가 자칫 빗나갈 뻔한 한 남자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현문 스님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가르침 무언 시절 아버지 영어 신문 그날 스님

2024-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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