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천국에도 아카시아 꽃이 있으면 좋겠다
수필
그건 감미롭다는 표현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 흐뭇한 기분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이럴 때 우리는 인간 언어의 한계를 안타까워한다. 그 섬세한 향기를 조금이라도 더 넉넉히 맛보고 싶어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곤 했던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낯익은 전경이다.
아카시아 꽃은 소담스럽다. 군락으로 피어있는 아카시아 꽃을 보노라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예쁜 꽃 한두 송이 피어있는 것이 눈길을 끌 때도 있지만 아카시아 꽃은 한가득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이 제격이다.
굳이 마법의 성이 아니라도 괜찮다. 우린 왕자도 되고 공주도 되고 그렇게 동화 속에 살았다. 그 싱그러운 꽃을 따서 한 움큼 입에 넣으면 혀끝에 살짝 얹힌 단맛과 신비로운 향이 입안 곳곳을 맴돌다가 코를 타고 뇌리에 닿는다.
우리는 고향 추억을 그렇게 새겼나 보다. 거기 순이도 있고 철수도 있고, 아지랑이 언덕 넘어 야트막한 초가집들이 정겹게 늘어서 있다. 저녁 어스름에 밥 짓는 연기가 굴뚝 위로 흐르고, 황소는 게슴츠레 눈을 끔벅이며 저녁 여물을 기다린다. 저녁상을 물리고 둘러앉은 가족들은 아카시아 향을 맡으며 별을 헤고 꿈을 헤고….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면 꿀벌들은 꼭두새벽부터 난리다. 아마 사람 이상으로 아카시아 꽃을 반기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꿀벌들이다. 꼬박 한 해 만에 모처럼 만났으니 오죽이나 반가우랴. 꼭두새벽부터 붕붕거리며 연신 채밀장을 드나들기에 바쁘다.
꽃송이 하나하나를 정겹게 찾고는 꿀을 가득 싣고 돌아온다. 벌통 입구에 들어서면서 꿀을 실은 무게를 못 이겨 뒤뚱거리며 문 앞에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보초를 서던 녀석들은 좋아라 궁둥이를 치켜들고 마중을 나간다. 저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인간은 이 축제를 감히 탐낼 수 없다며….
이 녀석들을 넋 놓고 바라보노라면 난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나도 날개를 달고 얘네들 따라 아카시아 꽃밭에 다녀왔으면.
식물학자가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아카시아는 아마 외지에서 유입된 꽃들 중에 가장 우리네 정서에 어울리는 토속적인 꽃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그윽한 향이며 예쁜 연미색 색조,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송이는 우리네 선조들의 곱고 넉넉한 심성을 빼어 닮았다.
나는 특별히 우리나라 아카시아 꽃을 좋아한다. 너무 진하지도 옅지도 않은 그 은은한 향은 누구든 그리워하게 하는 마법이 있다.
다른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가끔 몇 종류의 다른 색깔 아카시아 꽃들을 만난다. 그들도 특색이 있고 예쁘기는 하지만 우리네 땅에 있는 그런 향미(香味)와 색조에 비견할 수 있는 경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한번은 몇 해 전에 40번 국도를 타고 오클라호마에서 서쪽으로 텍사스 주 경계를 넘다가 우연히 활짝 핀 한 무더기의 아카시아 군락을 보았다. 이국 땅에서 아카시아 꽃을 만났으니 너무도 반가워 탄성을 지르며 곧바로 다음 출구에서 차를 되돌려 갔다. 그런데 아니었다. 꽃이나 나뭇잎은 아카시아가 분명한데 향기는 다 어디다 숨겨뒀는지…. 아무리 코를 부비며 향기를 찾으려 해도, 글쎄, 꼭 마음 돌린 여인네 같았다. 얼마나 서운하고 허탈했는지 난 온종일 아쉬웠다.
연세가 많이 드신 아버지의 한 지인이 얼마 전에 아카시아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으신다. 몇 해 전에 출간한 내 시집에서 아카시아 꽃을 소재로 한 시를 읽어보신 모양이다. 시 외곽에 있는 자신의 농지에 꿀벌 몇 통을 치고 있는데 그들에게 아카시아 꿀맛을 보게 하고 싶어서 한국에서 아카시아 씨앗을 가져왔단다.
그분도 정성이 참 어지간한 분이시다. 씨앗들이 벌써 잘 발아하고 이미 한두 자 정도씩 자랐는데, 아카시아 꽃 향기를 그리 좋아한다니 원하면 한두 그루를 주시겠단다.
이게 웬 복인지!... 지금 우리 뒤뜰에는 아카시아 두 그루가 아주 임금 대접을 받고 있다. 제발 미국 아카시아 닮지 말고 한국 풍미를 그대로 견지하려무나. 아마도 두세 해가 지난 후 좋은 꽃망울을 터트리면 나는 분명 이런 글을 다시 쓰고 있을 게다, 여기서 근사한 고향을 만들었노라고….
나는 가끔 천국은 어떤 곳일까 상상해 본다. 물론 성서에 천국의 단면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여러 신학자가 회복된 에덴의 아름다운 장면을 소개하면서,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한 곳이라 묘사한다. 죄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 곳이라니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다우랴! 그런데 아마 거기에 한국 아카시아 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늘에서도 난 그 꽃의 풍미는 꼭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아카시아를 좋아하는 데는 또 다른 연유가 있다. 구약 성서에 의하면 신께서 인간과 가까이 만나기 위해 성막을 짓도록 하셨다. 이 성막의 중심 격인 지성소 내부에는 신이 손수 기록하신 십계의 두 돌 비를 담은 법궤가 있었다. 이 법궤는 싯딤나무(신명기 10:3)로 만든 후 전체를 금으로 입힌 작은 궤였으며, 그 상단은 '쉐키나'라 일컫는 신의 영광이 언제나 현현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법궤의 소재가 되었던 그 싯딤나무가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아카시아 나무란다.
가시가 많아서 누구든 접근하기도 여의치 않고, 나뭇결이 고르지도 못해서 가구용으로도 부적합하고, 곧게 자라지도 않아서 재목으로도 소용이 없고, 그리고 잎이 많아서 유난히 바람을 많이 타는, 꼭 나 마냥 볼품없고, 별반 쓸모도 없고, 모가 많은 싯딤나무를, 하필 소중한 법궤의 소재로 다듬어 쓰도록 하신 연유는 무엇일까, 그것도 정금까지 입혀서.
글쎄,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 다가, 아무리 볼 품 없어 보일지라도, 온 우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더없이 소중한 소재들이 될 수 있다는 신의 계시인지….
어디선가 미풍에 실려 온 아카시아 향이 폐부로 스며들고, 살며시 감은 두 눈 사이로 평화가 내리고…. 그래, 천국에도 아카시아 향이 있을 거야. 거긴 우리 모두의 고향이니까.
유진왕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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