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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수필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나는 음식을 회피하는 거식증이 있거나, 음식에 욕심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다. 또 충동적으로 먹지도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이었을까. 나는 늘 허기가 지었던 것 같다. 6.25 전쟁 중에, 그리고 그 후에 한국의 모든 국민이 힘들고 가난했던 때에도 우리 식구들은 끼니를 거른 적은 없었다. 집이 부유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쪼들리는 살림 중에도 엄마의 지혜로운 가정 행정의 운영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에는 배고파 한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배가 고팠다. 집을 떠났을 때부터였다는 것을 요즘에야 깨달았다. 그러니까 내가 성인이 된 이후부터라고 생각된다. 형체를 구별하기 어려운 무엇인가가 촌스러울지언정 단순하고 상큼했던 엄마의 밥상을 텅 빈 벌판으로 밀어낸 형국이다. 회오리바람이 그곳을 휘젓고 지나갔던가.
 
인턴이 되었을 때 나는 부모님의 집을 떠났다. 오십 여년 전 한국의 인턴들은 당직 숙소에 기거해야 했다. 하루 건너서 당직이므로, 당직을 선 시간과 낮 근무까지 합쳐서 24시간 일하고, 그 다음날 정규 일과를 계속해야 했던 때라 인턴 숙소에서 일 년간 살았다면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인권, 노동법, 의료 수련의 법 위반이라 그리하지 못한다.  
 
어떻든 나는 그때부터, 부모님을 가끔 방문하던 손님이 되어 버렸다. 그와 함께, 나를 안아주실 때 풍기던 익숙하고 따뜻한 체취, 반찬 냄새가 배어있는 엄마의 남루한 옷자락이 엄마가 끓이신 된장찌개와 풋김치가 올려진 단순하고 가난했던 밥상과 함께 멀어져 갔다. 엄마의 가슴과 나 사이에 있던 사랑과 희생이라는 이름의 구름다리 밑에도 그녀의 남루한 옷, 가난했던 밥상, 신선한 풋김치가 더는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인턴 생활이 전공의 삶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에 왔고, 나는 부모님을 방문하기에는 너무 먼,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서 살게 되었다. 불쑥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나 배고파!’ 말하던 삶의 한 단편은 이미 지나고 난 후였다. 그래서 나는 나의 허기를 엄마와 연결하여 본다.
 
구질구질하고 쩨쩨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엄마에게 할애하는 기억은 불공평하다. 당신은 전쟁·최루탄 연기·남루함 안에서 표정을 잃은 창백하고 주름진 얼굴로 세상을 보고 있다. 그 시대의 단 한 장 남은 흑백 가족사진 속에 있는 그녀는 슬프다. 그 사진 속에 그녀의 큰아들은 없다. 아들의 아내도 없고, 아들의 큰딸이 나와 함께 앞줄에 웃지 않고 서있다. 그녀의 눈동자와 입매가 엄하다. 한때는 빛났을 당신의 젊음과 웃음을 떠나보내고, 기뻐하여도 된다는 전능하신 분의 자비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엄마는 그 시대 어머니들의 모상(母像)을 대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1970년대에 도미하실 때까지, 40여 개의 전쟁으로 점철된 땅에서 사셨다. 일본의 속국인 나라 잃은 국민에게 일본이 관련되었던 크고 작은 모든 전쟁은 조선인들의 전쟁이 아니었던가.
 
여러 전쟁을 겪을 때 엄마와 함께했던 나의 손위 형제들과는 달리, 나는 그 시대를 알지 못한다. 대신, 아버지 목마를 타고 피난 길에 올랐던 한국전쟁의 참상을 구경했을 터이다. 그러나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 전쟁의 잔재인 가난 속에서 자랐다.  
 
중학교 입학 후에 목격하였던 학생혁명과 이어서 발발한 군사혁명으로 한국 사회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새마을 운동이 그중 하나이었다. 쌀 생산량에 비해서 인구가 많았던 한국은 일주일에 하루는 밥 대신 식빵을 먹을 것을 장려했고, 매가지 없는 월남 쌀을 수입하여 국민의 배를 채워야 했다. 출생률이 너무 높다고 판단되었던 때라서 시골 보건소에서는 피임약을 집집마다 다니며 나누어 주었던 때였다. 그러했던 격동기에, 엄마는 말이 없으셨다. 세상에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듯 보였다.
 
나의 배고픔은 허기(虛飢)가 아닌 허기(虛氣)가 아니었을까? 허기라는 두 글자는 한문으로 달리 쓰이고 뜻이 다르다. 허기(虛飢)란 실제 굶어서 생기는 배고픈 증세를 뜻하고, 내가 겪어온 것은 허기(虛氣)가 맞는다. 내가 말하는 배고프다는 것은, 정신적, 감성적 허기이다.
 
의학에서는 배고픈 이유를 당뇨, 저혈당, 스트레스, 저 단백질 음식 섭취, 갑상샘 기능 결핍, 수면 부족, 임신 등 열 가지 정도로 설명한다. 그 외에 질병의 이름이 붙여지는 ‘먹는 상황’과 관련된 예도 있다. 음식을 섭취하고자 하는 욕망, 음식을 회피하는 거식증 등 정신적인 또 감성적인 뇌의 기능과 관련된 질병들이다.
 
나의 갈증(渴症)을 유발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또 내가 갈구(渴求)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 그것은 바로 엄마의 실질적인 부재(不在)와 영적인 부재에서 온 것이다.  
 
엄마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반찬 냄새가 밴 당신이 없다. 먼 곳을 바라보시던 절망과 단념의 눈동자도 찾을 수 없다. 내가 가졌던 엄마에 대한 연민은 머지않아 내가 이승을 떠날 때 대(代)가 끊길 것이다. 이 사이클은 계속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의 아이들은 배고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니카 류 / 수필가·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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