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중앙칼럼] ‘그늘 차별’ 받고 있는 한인타운

지난 5월 할리우드의 작가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7월에는 배우·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도 파업을 선택했다. 할리우드 생태계를 떠받치는 양축이 63년 만에 ‘동시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제작사 입장에서 제작 지연은 곧장 손실로 이어진다.     양측의 긴장감이 팽팽해지던 때 ‘그늘 논쟁’이 파업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 유니버설시티 인근 NBC유니버설 스튜디오 앞길의 ‘피커스’ 나무들이 하루아침에 짧게 가지 쳐진 게 발단이 됐다. 7월 뙤약볕을 가로수 그늘에서 피하며 시위하던 배우들은 NBC유니버설을 비난했다. 시위대를 땡볕으로 내몰며 파업할 권리에 보복을 가했다는 비난으로 번졌다. 회사 측은 정해진 일정에 따른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로수를 대체할 그늘막을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비난은 잦아들 줄 몰랐다. 이후 노조의 요구로 LA시가 조사한 결과, 해당 바햄 블러바드 선상의 가로수 관리는 시 정부 관할이고 지난 3년 동안 가지치기를 허용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늘을 두고 이런 다툼도 있었는데 다른 한편에선 그늘 때문에 더는 야자수를 심지 말자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LA타임스는 남가주에 더 많은 그늘이 필요하다며 토착 식물도 아니고, 가성비도 좋지 않은 야자수 퇴출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고 전했다.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는 야자수 폐기를 발표했고, 마이애미비치는 30년에 걸쳐 가로수 중 야자수 비중을 현재 60%에서 25%까지 줄이기로 했다. 가주 산림소방국은 도시·지역사회 산림 조성 보조금 수령자가 야자수 심는 것을 금지했다. LA에서는 햇살 가득한 번영을 상징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낸다며 100여 년 전 붐을 일으켰던 야자수지만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폭염 장기화 속에서 “키만 컸지 그늘도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며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꼴이 됐다.     그늘은 LA에서 차별을 만들기도 한다. 부자 동네와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 최대 6배 이상 나무 그늘의 규모 차이가 난다는 연구도 있다. 범죄 예방을 위해 나무 심기에 소극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폭염 사망자가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변명은 아닌 듯하다. 임대주택에 에어컨 설치 의무화가 추진 중인 것처럼 이제 그늘은 커뮤니티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됐다. 역대 시장들도 이를 의식해 많은 약속을 했지만 목표 달성에는 실패했다.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전 시장은 2006년 무려 100만 그루 나무 심기를 약속했지만, 절반에 못 미쳤다. 그마저도 5그루 중 1그루는 심은 뒤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에릭 가세티 전 시장도 9만 그루를 공약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인도 대사로 떠났다.     이런 가운데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이 한인타운과 그 주변에 3년간 3000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나선 건 반가운 소식이다. KYCC는 가주 천연자원부(CNRA)와 가주 산림소방국이 선정한 24종의 나무를 심게 된다. 2016년 LA카운티 공원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타운의 공원 공간은 주민 1000명당 0.1에이커로 카운티 전체 평균 3.3에이커에 크게 못 미쳤다. 또 한인타운 주민 39%만이 사는 곳에서 0.5마일 이내에 공원이 있는 것으로 조사돼 카운티 평균 49%와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LA에서도 손꼽히는 녹지 부족 공간인 한인타운의 ‘그늘 공정성’이 개선되길 바란다. 평균 70피트 높이보다 2배 더 큰 그늘을 만들어준다는, 캘리포니아에서 자생하는 상록수 ‘코스트 라이브 오크’ 같은 가로수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한인타운이 되길 많은 한인은 기대하고 있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칼럼 한인타운 그늘 가로수 그늘 그늘 논쟁 그늘 때문

2023-11-19

[글마당] 넝마도 그늘이 있어야 한다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이무럽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정오   그늘이라고는 없는 길가에서 함박웃음은 힘든 넝마 속의 잡화들   넝마 속일망정 화사하고 정 스러워야 한다   얼굴을 활짝 펴서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해야 한다   더 넓은 곳으로 도로변이 아닌곳에서  안락한 가정의 삶을 생각하며       세파에 무너진 희생자는 너무강한 의지를 가졌었는가   아니면 폐자였을까   수줍은 미소는 마르고 먼지 묻은 얼굴에 더욱 어두운 그림자를 그린다   넝마를 소중히 지키며 번화가 한쪽에 몇 년을 버티며 몸을 숨기고 있다   뒷짐을 쥔 손에 셀폰을 쥐고 기웃거리며 세상구경을 하는 남자   춤과 멋진 걸음으로 모든이의  눈길을 끄는 여자에 무관심한 그녀       반대편 보도블록에 눈길이 간다   시멘트 블록의 물 홈에 자라는 질경이   밟아도 밟아도 개의치 않는 푸르름의 낮은 속삭임   건장한 나뭇잎들 아직 기다리는 곳이 없다   어디를 향하여 어디쯤 걷고 있는가   바람은 질경이의 끊임없는 태양의 축복을 붙들고 노파의 얼굴에   웃음을 안기기를 희망한다   잡화 속에 파묻힌 그녀의 눈은 오뚝이를 닮았다 정숙자 시인 / 아스토리아글마당 넝마도 그늘 넝마도 그늘 반대편 보도블록 여름날 정오

2023-09-01

[아름다운 우리말] 헐떡헐떡과 쉬엄쉬엄

우리말에서는 숨을 쉰다고 말합니다. 쉬다라는 말은 숨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이 명사와 관련되는 예가 많습니다. 우리 신체 기능 중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숨을 쉬는 것입니다. 숨을 더 이상 쉬지 않으면 죽습니다. 숨이 멎었다는 표현은 그대로 죽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숨을 거두었다는 말도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목숨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눈을 감는다는 표현은 비유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눈을 감는 행위가 꼭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듯이 잠을 잔다는 표현을 합니다. 눈을 감는 게 그저 잠을 자는 것이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숨이 막힌다든지 숨이 찬다든지 하는 표현에서 숨은 단순히 쉬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습니다. 숨을 급하게 쉬거나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힘든 일을 하거나 빨리 움직여야 할 때 숨이 차오릅니다. 숨을 쉬기가 어렵습니다. 긴장하거나 누군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 아예 숨을 못 쉬기도 합니다. 죽을 것 같다는 말은 이럴 때 딱 알맞습니다. 너무 숨을 빠르게 쉬거나 쉬지 못하는 상태는 죽음 바로 앞의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숨을 빨리 쉬지 않으면 진짜 죽습니다.    저는 가파른 산을 빠르게 오를 때 이런 극도의 고통을 느낍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천천히 올라도 크게 문제가 없는데도 빠르게, 숨차게 오릅니다. 숨이 차면 힘들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시간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거친 숨소리가 위로가 되는 순간입니다. 숨은 나를 단련시킵니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기쁨일 겁니다. 운동이라는 게 대부분 가쁜 숨을 느끼며 성장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말 쉰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숨을 쉬는 겁니다. 빠른 숨도, 거친 숨도, 가쁜 숨도 모두 숨을 쉬는 겁니다. 가슴이 터질 듯한 행위입니다. 괴롭지만 즐겁고, 죽을 것 같지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행위입니다. 숨을 쉬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언합니다. 숨만 잘 쉬어도 충분히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숨 쉬는 수련이 종교에서 기본인 것은 그러한 이유일 겁니다. 좌선, 요가, 명상이 모두 숨 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운동과는 반대 방향의 숨쉬기네요.   쉬다의 다른 뜻은 휴식입니다. 휴식 역시 숨을 쉬는 겁니다. 가쁜 숨을 거두고, 참았던 숨을 서서히 토해내는 과정입니다. 다 토해내고 나면 시원한 마음이 몸을 풀어줍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쉬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쉰다는 말에는 나무 그늘 아래에서라는 배경이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쉬다를 의미하는 한자 휴(休)의 모양이 사람 인(人)과 나무 목(木)으로 이루어져 있을 겁니다. 숨 쉴 식(息)은 코를 의미하는 글자[自]와 심장을 의미하는 글자[心]가 합쳐져 있네요. 숨이 막히면 코와 심장이 괴롭습니다.   전헌 선생님과 소식을 나누다가 ‘헐떡헐떡이쉬엄쉬엄 보다 푹 쉽니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습니다. 급하면 더 숨이 많이 쉬게 되고, 그래서 다시 살아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산에 오르면 가쁜 숨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헐레벌떡 숨이 가쁜 시간이 지나면 그때는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았지만 그다음부터는 힘들어도 두려움이 적어집니다. 숨이 가빠올 것은 알지만 그 숨도 다시 잦아들 것을 내 몸이 제대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몸은 가빴던 기억을 안고, 더 큰 헐레벌떡도 견디어 냅니다. 다시 살아나는 몸입니다. 힘들어도 숨이 차도 잘 견뎌냅시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때가 찾아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나무 그늘 좌선 요가 반대 방향

2022-10-09

[수필] ‘그리운 것’은 산 그늘에 묻혀있다

옛날 시골집엘 가면 너른 마당에 ‘바지간지대’라는 게 있었다. 어른 키보다 두서너 뼘 정도 더 높게 서 있는 키다리 나무 장대를 일컫는다. 표준말로는 ‘바지랑대’라고도 하는데, 이놈은 마당 복판에서 안채 처마 밑에서 행랑채 서까래, 혹은 감나무 가지 밑동이 까지 가로질러 다소 느슨하게 잡아맨 긴 빨랫줄을 받치고 있다. 이놈은 빨랫줄의 중간에 비스듬히 제 몸을 기대거나 그 줄을 힘겹게 떠받치며, 허구헌날 마당 창공을 가로지르는 온갖 풍경을 혼자서 멀거니 보고 느끼고 혼자서 건들대는 싱거운 물건이다.     이 키다리 나무 장대는 보통 동네 곳곳에서 흔히 자라던 버드나무를 베어다 만들거나 실한 대나무를 잘라 끝을 살짝 가르고 중간에 짧은 쐐기 막대를 끼워 결 따라 갈라지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 끝부분을 새총처럼 V자로 남김으로써 빨랫줄에 끼어 걸 수 있게 짝을 맺어주었는데, 아마 유년을 널찍한 마당이 있는 시골집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 잔바람에도 싱겁게 건들거리던 키다리 ‘바지간지대’의 그 희화적 풍경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수필가는 이 ‘바지간지대’에 관련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다.     ‘빨랫줄이 한가할 때는 이 녀석도 건들거리며 늘어지게 쉬곤 하지만, 어쩌다 젖은 겨울 빨래라도 가득 널리는 날이면 땀을 줄줄 흘리며 줄을 붙잡고 온종일 서 있어야 한다. 줄과 이루는 각도를 적당히 하면서 빨래가 땅에 닿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이 녀석의 소임이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이렇듯 그 훤칠한 키에도 불구하고 바람 따라 다소 건들대긴 하지만, 그래도 혼자서 힘자랑하듯 외다리로 마당을 지그시 밀어 올리고 나서야 겨우 제 몸을 세우는, 그야말로 집안의 돌쇠 머슴처럼 시골엔 꼭 필요한 물건’이라고 했다.     가만 돌이켜보면, 시골 마당의 상징처럼 서 있던 바지간지대... 그게 어디 보통 물건이던가, 나무에 걸려 맥을 못 추던 연을 걷어 살려내고 초가지붕 위에 냉큼 올라앉은 속수무책의 제기를 마당으로 다시 내려오게 하는가 하면, 감나무 끝에 매달린 홍시를 따먹기 위해서는 필수의 무기(?)가 아니었는가. 그야말로 아이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물건이었다. 그런가 하면, 바지막대기는 바람이 드세게 부는 날은 똑바로 서 있기보다 옆으로 비스듬히 비켜서는 법을 알고, 꼿꼿하게 서서 모진 바람과 맞서기보다는 바람과 함께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꾸라지지 않는 법을 알던 지혜로운 물건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즘 세대들은 별 신통한 반응이 없을 것이다. 요즘은 이제 시골에서도 마당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사선으로 쳐진 논스톱 빨랫줄을 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또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내다 거는 일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찾아보면 이 물건의 짝이었던 빨랫줄의 흔적은 조금은 남아있다. 가끔 아파트 옥상에는 옹색하지만 빨랫줄이라는 게 있는데... 진화 뒤끝에 생긴 퇴화의 흔적이라 할까, 마치 인간의 퇴화한 꼬리뼈 같아 삐시기 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어느 시인은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고 했다.     "혹 산 뒤에 있는 이런 물건들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오래전부터 서로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은, 결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가 아닐 것이다. '산이 있어 그 산을 오른다'는 말처럼 이미 산자락에 가려져 있는 그리운 것들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그래서인지… 여유 없이 살다보면 어떨 땐 가끔 수평과 수직이 서로 기대어 말없이 떠받드는 옛날 시골 너른 마당의 그 풍경이 떠오른다. 수평을 높여 비스듬히 제 몸을 세우던 ‘바지간지대’의 그 넉넉한 마음이 그립다.  삶이 힘들고 팽팽하여 명치끝이 콕콕 찌를 땐, 느긋한 빈 빨랫줄을 지그시 누르던 그 ‘바지간지대’라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산자락에 숨어 있더라도 그런 물건을 함께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혹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손용상 / 소설가수필 그늘 논스톱 빨랫줄 옛날 시골집 키다리 나무

2022-08-04

[이 아침에] 나누는 기쁨

내가 다니는 성당은 자체 건물이 없어 학교 성당을 빌려 주일에만 미사를 드리는 작은 공동체다. 성당이 없는 대신 넓은 대지에 사제관과 별도의 작은 경당이 있는 회관을 가지고 있다. 회관에는 오렌지와 자몽, 석류나무 등이 자라고 있다. 그동안 다녀가신 신부님들 중에 정원 일에 관심을 가진 분은 없었지 싶다. 넓은 마당은 가드너가 관리하고 철 따라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도 대부분 땅에 떨어져 버리곤 했다.     작년에 오신 신부님이 정원의 나무들에 관심을 보이고 돌보자, 나무는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신부님은 때맞추어 가지치기를 하고, 거름과 물을 준다. 마당에 심은 포도가 열매를 맺자, 몇 개씩 잘라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얼마 전에는 신자들에게 장바구니에 이름을 써서 가지고 오라고 하더니, 다음 주에 성당에 가니 바구니마다 오렌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집에 가지고 와서 먹어 보니 여간 맛있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미사가 끝나면 다과를 나누는 친교시간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코로나 셧다운이 풀리고 다시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며 우리 반은 미사가 끝나면 주차장 한편의 나무 그늘에 모여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7월 초, 신부님이 우리 반 자매들에게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하니, 오렌지로 잼을 만들어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데, 만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의기투합, 수요일에 회관에 모이기로 했다.     잼을 만들기로 한 날, 아내는 10시 전에 회관으로 가고, 나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햄버거를 사서 갔다. 사제관에 들어서니 온통 달콤한 오렌지 냄새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오렌지가 가득하다. 아마 700~800개도 넘었을 것이다. 신부님 혼자 3일 동안 딴 것이다.     오렌지 잼을 만들려면 먼저 껍질을 벗겨, 주스를 짜고 (또는 갈아서), 적당하게 썬 껍질과 설탕을 넣고 졸여야 한다. 성당의 오렌지로 이미 두 차례 집에서 실험해 본 아내는 지난밤 유튜브를 보며 오렌지를 살짝 데치면 껍질이 쉽게 벗겨진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나는 껍질 벗기는 작업을 잠시 도와주다 회사 마감을 해주어야 해서 돌아오고, 아내는 밤 10시나 되어 돌아왔다. 신부님이 구입하신 병 160개 중 150여 개를 잼으로 채웠다고 한다.     주일 아침 성당에 가니, 입구에 잼이 담긴 병들이 테이블에 줄을 맞추어 놓여 있다. 미사가 끝나자 잼을 한 병씩 받아 든 신자들이 기쁜 표정으로 돌아간다. 나무 그늘에 서 있는 우리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 와서 인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눔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10시간 넘게 잼을 만들었던 자매님들도 힘은 들었지만 마음은 가볍고 흐뭇하다고 했다. 게다가 그날은 루비나 할머니를 성당에 모시고 다니던 부부가 일이 생겨 우리 반 다섯 가정이 돌아가며 차편을 제공하기로 한 첫날이었다. 루비나 할머니는 밭에서 키운 애호박을 우리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은 이런 것이지 싶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누고, 부족한 것은 서로 채워주며 사는. 신부님이 과일 농사를 잘 지으시면, 내년에도 잼 공방은 문을 열 것이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기쁨 자몽 석류나무 학교 성당 나무 그늘

2022-07-20

지병·외로움…'장수시대의 그늘', 88세 남편이 86살 치매아내 살해

#. 자식들이 결혼해 떠나면서 혼자 산다. 외롭다. 돈은 없는데 자식들에게 손 벌리기도 싫다. 나이 먹으면서 온몸이 다 아프다. ‘왜 이러고 사나’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차라리 빨리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 싶은 때도 많다.-김철수(83) 할아버지 #.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78.9세다. 올해 안에 80세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이다. 100세를 바라보는 장수 시대. 하지만 재정, 건강 등 노후 준비없이는 우울한 게 현실이다. -이순자(86) 할머니 21일 실비치에 있는 양로원에서 88살 남편이 치매에 걸린 86살 아내를 총격 살해했다. 실비치 경찰국은 이날 정오쯤 카운티 빌라 헬스케어 센터에서 클라라 레어드가 머리에 총격 한발을 맞고 숨진 채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살인 용의자로 남편인 로이 찰스 레어드가 체포됐다. 이들 부부는 70년 가까이 살았다. 딸은 “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한 안락사 시킨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6월 80대 한인이 대낮 길거리에서 권총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평소 지병 때문에 병원에 다녔는데 병세가 악화되면서 말수가 줄고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게 지인의 전언이다. 이들 케이스는 나이, 건강을 비관해 살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아 죽음을 부른 것이다. 자살같은 심각한 경우는 드물지만 우울증, 학대, 빈곤율 등 노인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홀로 사는 60대 최모씨는 “나는 아직 젊고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일거리는 없고 돈도 없고 친구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생활비가 부담스러운데 걱정할까봐 자식에게 말도 못하고 있다. 우울해하며 갈 날을 대비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인가정상담소의 김경희 카운셀러 매니저는 “나이 들수록 소홀해지는 가족에 대한 서운함, 건강 문제로 상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연령이 높아질수록 정신적, 육체적 노쇠 현상으로 판단 등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 친지들의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소림 디렉터도 “노인층에 대한 관심이나 기반 시설이 타인종에 비해 한인 커뮤니티는 약하다”며 “한인 노인 우울증이나 자살은 증가하는데 막상 대책은 막연하다. 특히 자녀들에게 문제가 생길까 숨기는 등 문화적 이유로 상담이나 치료를 꺼리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희 기자 jaeheelee@koreadaily.com

2010-11-22

[OC] ['어바인의 그늘' 마리화나-2] '우리애는 그럴리 없다' 믿다가 날벼락

부모의 무지는 마리화나를 흡입하는 한인학생들이 느는 이유 중 하나다. 일단 젊은 시절 마리화나를 피워 본 경험이 많은 타인종 학부모에 비해 마리화나를 접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녀의 흡입 여부를 알아 낼 정보가 부족하다. 마리화나 중독에서 벗어난 조슈아 김(가명.20세)씨는 "마리화나를 피운 직후엔 눈을 잘 뜨지 못한다. 중독이 되면 눈이 붉게 충혈돼 있고 기억력이 심하게 손상받는다"고 말했다. 김씨는 "간혹 피우는 애들은 마리화나로 인한 증상이 없어질 때 까지 3시간 정도 기다렸다 집에 가기 때문에 부모가 알기 힘들다"며 "옷이나 손끝에 마리화나 특유의 냄새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녀의 방에서 녹색 또는 갈색의 이끼를 닮은 풀덩어리를 발견하면 의심해 봐야 한다. 자녀가 마리화나를 피운 사실을 알고 난 뒤의 대응은 무척 중요하다.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자녀가 더 탈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드럭방지 프로그램(DARE)' 자문위원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일도태권도장 강창진 관장에 따르면 자녀의 마리화나 흡입을 알게 된 한인 부모들은 대개 큰 충격을 받는다고 전했다. "평소 '우리 애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고 믿어 온 이들일 수록 하늘이 무너진 듯 충격을 받습니다. 특히 아버지들은 엄청 화를 내지요. 무턱대고 화를 내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강 관장은 "마리화나에 대한 부모와 자녀의 시각 차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마리화나에 대해 개방적인 가주의 분위기는 자녀 부모 사이에 큰 인식의 괴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중독에 따른 심신의 피폐 더 강한 마약에의 유혹 등의 해악에도 불구 고교 12학년의 절반에 육박하는 인원이 한 번쯤은 접해 볼 정도로 마리화나 흡입은 만연돼 있다.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의 사례 지난 5일 아놀드 슈와제네거 주지사의 "마리화나 합법화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할 때가 됐다"는 발언 등은 학부모들보다 학생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강 관장은 "마리화나에 대해 잘 모르는 부모의 강압적인 태도는 문제를 악화시키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자녀와 대화하는 법 자녀의 마약 문제를 걱정하는 어바인 부모들의 온라인 모임 '패런트 팀 오브 어바인'(PARENT TEAM OF IRVINE)은 자녀의 마리화나 흡입 사실을 알게 될 경우 부모로서 명심해야 할 사항들을 소개하고 있다. ▷강의하려 들지 마라. 시간을 두고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먼저 귀를 기울이고 나중에 말하라. "마리화나 때문에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을 아니?" "그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니?"란 식의 질문을 던져라. ▷정보를 수집하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라. 뇌가 발달하는 과정인 10대엔 마리화나가 특히 좋지 않다고 조언하면 자녀들이 귀담아 들을 가능성이 높다. ▷강압적인 태도를 피하고 마리화나의 해악을 과장하지 말라. 부모에 대한 자녀의 신뢰감을 없애기 때문이다. 부모가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녀들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녀의 경험 시기를 늦추는 시도를 해라. "네가 운전을 할 수 있을 때 까지 미뤄 보면 어떨까"와 같은 제의가 좋다. 임상환 기자

2009-06-04

[OC] ['어바인의 그늘' 마리화나-1] 마리화나···한인 청소년들 멍든다

학군, 치안이 좋은 어바인은 교육열 높은 한인 부모들의 선호 거주 지역으로 꼽힌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어바인에도 그늘은 있다. 적지 않은 한인 청소년들이 마리화나에 멍들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이 모르는 사이 자녀들의 심신을 위협하는 마리화나 사용 실태와 대책을 짚어 봤다. "부모들이 몰라서 그렇지 마리화나 피우는 한인 학생 엄청 많아요." 마리화나에 중독됐다가 두 달 전 끊는 데 성공했다는 조슈아 김(가명.20세)씨는 "A 고등학교만 해도 내가 아는 마리화나 피우는 한인 학생 수만 90명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어바인에서 중 고교를 나온 김씨는 현재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니고 있다. "B 고등학교엔 50~60명쯤 돼요. 같은 동네 살면 학교 교회를 통해 서로 잘 알게 되잖아요. 마리화나는 파티같은 데서 여럿이 어울려 피우는 경우가 많아서 시간이 지나면 많이 알게 돼요." 12학년 시절 처음 마리화나를 접한 김씨에 따르면 마리화나 흡입은 일부 학생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적이 좋은 우등생 중에도 마리화나를 피우는 학생이 많다.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화가 났거나 공부하다 스트레스 받는 애들이 많이 피웁니다." 어바인 한인학생들의 마리화나 문제는 상당수 학부모들이 쉬쉬하며 우려할 정도다. '청소년 드럭방지 프로그램(DARE)' 자문위원으로 오랜 기간 활동해 온 일도태권도장 강창진 관장도 "요즘 마리화나를 포함한 마약 문제를 호소하는 한인학생 학부모가 예전보다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한인 청소년들이 마리화나를 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교내의 판매책을 통해 구입하는 것이다. 20달러를 주고 1그램을 사면 4명이 나눠 피울 수 있다. 두번째는 18세 이상 학생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다. 의사를 찾아가 의료용 마리화나 처방전을 받아 구입한 뒤 친구들에게 나눠 주는 방식이다. 김씨는 "150달러 주면 처방전을 준다. '분노 조절이 안 된다' '잠이 안 온다' 같은 이유를 대면 된다"고 전했다.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와 구입은 합법이기 때문에 돈은 더 들지만 '불법'이란 마음의 짐을 덜려는 학생들에게 인기다. 대개 친구들의 권유로 시작하기 때문에 마리화나를 피우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끊는 것이 무척 어렵다. 또래집단에서 흔히 나타나는 집단의 압력 때문이다. "중독이 되면 친구가 아니라 같이 피우는 데 돈을 부담할 사람으로 보이게 마련이죠. 나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끊지 못하다가 결국 친구들과 연락을 다 끊은 뒤에야 성공했어요." 김씨는 "내가 친구를 버리지 않았으면 결국 혼자 안 피우다 서서히 왕따가 됐을 것이다. 마리화나를 끊으려면 친구와 절교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2009-06-03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