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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여자학교, 남자학교 그리고 남녀공학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두 여학교를 다녔다. 남녀공학은 초등학교 시절이 전부다. 의과대학 졸업 후 인턴 시기도 학교 교육의 연장이라고 한다면, 이때 다시 남녀공학에 다닌 셈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의 교육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남자학교, 혹은 여자학교들의 남녀공학 전환이다. 이에는 어떤 것이 먼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육제도와 함께 사회적 변화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이 두 가지는 병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세대가 바뀌면서,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와 그 가운데 성장한 자녀들은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 같다. 우리는 여러 요소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두 딸은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여학교를 졸업하고 남녀공학 대학에 진학했다. 재학생들은 남, 여 구별을 느끼지 못하는 듯 보였다. 많은 클래스가 혼성이었고, 과외 활동도 자연스레 혼성이 많았다. ‘성과 법의 조지타운 저널(Georgetown Journal of Gender & Law)’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는 남학생, 혹은 여학생만 뽑는 초·중·고교가 366개라고 한다. 이는 약 7만개인 공립 초등학교, 2만3519개의 공립 중·고교의 1%도 되지 않는 숫자다.   오래전 사립 여자중·고교의 이사로 10년간 봉사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여학교와 합병을 제안한 남학교가 있었고, 이사회 안건으로 올라왔다. 안건으로 올리기 전에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외부 전문인의 의견도 들었다. 또 19세기 말에 설립된 유서 깊은 그 학교 졸업생들의 의견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이 학교는 아직 여학교로 남아있다.   한국의 한 여자대학에서 남녀공학 전환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실 한국 여성 교육의 역사는 서양 국가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한국은 남존여비 유교 사상이 굳게 자리 잡고 있던 나라였다. 그런 가운데 꽃 피운 여학교의 역사를 보면 멋있다.     최초의 서양식 중학교였던 배재학당이 세워진 지 한 해 뒤인 1886년에 이화학당이 한 명의 여학생을 위해 문을 열었다. 그 후 길에 버려진 여아, 부모가 맡기고 간 여아, 문 앞에 놓고 간 여아들을 거두며 여성 교육에 앞장섰다. 나는 이 학교보다 22년 뒤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세운 관립 여학교 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관료주의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어떻든 정신적, 신체적, 정서적으로 예민한 십 대 시절에 여자 학교에 다녔다. 뒤돌아보면, 여학생들만 있었기에 ‘나빴다’, ‘좋았다’ 할 만한 사항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보다, 빈부 차이가 컸던 것이 큰 단점이었다.     그 후, 쉽지 않았던 의학도의 길, 쉽지 않은 이민 의사의 길,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온 디아스포라 교민으로 남은 기분이다.     지난달 모교에서  ‘자랑스러운’이라는 이름이 붙은 특별한 상을 받았다. 직접 오라는 통지를 받고, 잠시 한국에 갔다. 한글로 칼럼과 수필을 쓰며, 미국 정규학교에 한국어반을 만들기 위해 힘써 왔기에 한국과 모교를 빛냈다는 것이 선정 이유였다. 시상식 때 강당을 가득 메운 선배님, 후배들의 아낌없는 칭찬을 들었다. 지금도 여학교인 그곳 강당에서 강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디아스포라로서 사회에 기여해 온 한국 여인들의 쉽지 않은 삶에 대해서 강조했다.   단성 교육, 혹은 혼성 교육의 장단점은 국가나 교육자, 학부모들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가정과 학교에서 장점은 키워주고, 단점은 보완하면서 차세대를 응원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 방법이라는 생각이다.  류 모니카 M.D. / 종양 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 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여자학교 남자학교 남녀공학 전환 남녀공학 대학 관립 여학교

2024-11-20

[오픈 업] 차세대도 기억해야 할 독도

벼르고 벼르던 숙제를 드디어 했다. 10월 첫 주에 독도와 울릉도 땅을 밟은 것이다. 특히 독도는 동해 지역 기후가 자비로워야만 방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난 7월에도 방문 계획을 세웠다 파도가 높고 험해 포기한 바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배가 독도 해변에 정박하고 방문객들이 땅에 첫발을 디딜 때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라는 안내자의 방송이 들렸다.배에서 내리기 직전 모든 승객에게 조그마한 태극기를 나눠줬다. 태극기 휘날리며 독도 섬 길을 걷는 방문객 행렬은 장관이었다.   얄팍한 나의 상식에 독도는 동해안에 있는 작은 섬 이름처럼 고독한 섬 지금도 일본이 자기 영토라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섬 정도였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독도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도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부터 궁금했다. '독(獨)'은 '홀로 독'이라는 한자에서 온 것으로 '홀로' '외롭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독도는 혼자 있는 섬이 아니라 91개의 암초 바위가 함께하므로 홀로 있는 섬은 아니다.      2019년  동북아역사재단의 '영토ㆍ해양 연구저널'에 소개된 정연식 서울여대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독도란 우리말 '독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에서 유래가 됐다. 정 교수는 고지도에 '독도'로 표기된 섬은 세 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독 모양의 옹도(瓮島)와 육지나 큰 섬에서 떨어져 나간 '동' 섬 한자로는 '독(獨)' 섬이지만 '돌섬'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독'이란 말은 돌을 의미하는 알타이어의 방언이라고 한다. 독도는 세 번째 해석이 맞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독도를 섬(island)으로 규정하지만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독도는 암초(rock) 즉 바위로 구별된다. 섬이란 사람이 살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곳이다. 2019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독도의 거주자 등록 인구는 3555명이지만 실 거주자는  59명뿐이다. 주민이 14명 독도경비대원 약 40명 등대 관리원 3명 울릉군청 직원 2명 등이다.     일본은 세계 2차 대전에서 패전하면서 강제로 점령하고 있던 영토들을 반환해야 했다. 미국도 그들이 관리하던 일본 영토를 일본에 돌려주었지만 일본은 아직도 주변 국가들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쿠릴열도는 러시아와 센카쿠 섬은 중국 및 타이완과 분쟁 중이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독도 영유권을 억지 주장하고 있다. 참고로 독도에 일본인이 거주했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     '세종실록 지리지' '성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책에는 모두 독도가 우리 영토로 기록되어 있다. 1900년대 이후 기록을 봐도 조선시대 울릉도는 강원도에 속했었고 1914년부터는 경상북도에 포함됐다. 그리고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이 선포한 칙령 41호에는  독도가 울릉도 담당 지역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매년 10월25일을 '독도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공주대학 김소영 교수에 의하면 일본은 매년 3월 교과서 검정 시행을 하고 이때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한국이 침해하였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한국의 항의에도 매년 가르치는 셈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독도 관련 교육이 약화되는 듯하다. 2022년에 개정된 역사 교과서에는 한국사가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사 부문은 '한국사 2'에서 다뤄지는데 독도 관련 내용은 거의 끄트머리에 있고 분량도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학기 중에 교과서를 완전히 마치지 못하거나 선생님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독도에 대한 차세대 교육이 미흡할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 때문인지 독도 방문 때 받았던 조그만 태극기가 더욱 소중해 보인다. 류 모니카, M.D./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차세대도 기억 독도 영유권 독도 해변 모두 독도

2024-10-29

[오픈 업] “전자담배는 안전한가요?”

약 5년 전 32세의 필리핀계 남성을 치료한 적이 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간호사로 열심히 일했지만 아버지는 한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도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쉬운 일만을 찾으려 했고 어머니는 그에게 간호학교 입학을 권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처럼 일을 많이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싱글벙글 웃으며 찾아 왔다. 좋은 사업을 소개받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자담배(E Cigarette) 판매 사업으로 자본도 필요 없다고 했다. 당시 전자담배에 대해 많이 알려진 것이 없었고 다만 금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조사해 보니, 전자담배란 배터리를 사용해 니코틴 액체를 가열해 기체로 만들어 흡입하는 기구였다. 담배는 아니지만 담배 관련 제품(Tobacco Product)으로 분류됐다. 니코틴이 주성분이지만 다른 화학 물질들(니켈, 납, tin 등)이 작은 입자로 폐 속 깊숙이 침투한다고 것이다. 아무래도 전자담배도 중독의 가능성이 있을 듯해 그를 말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후 근무했던 카이저 병원에서 은퇴하는 바람에 더는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지난 9월 초 미의사협회학술지(Journal of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전자담배에 대한 내용이 소개돼 관심 있게 읽었다. 전자담배는 Vapes, Vape Pens, Sticks,E Hookahs, Hookah Sticks, Mods, Personal Vaporizer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기구도 USB 플래시 드라이브나 펜, 라이터 모양 등 다양하고 냄새도 사탕,과일, 박하향 등 많다. 담배 용액(E liquid  , E Juice) 안에 마리화나나 다른 약물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전자담배는 현재 미국의 중고교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담배 관련 제품이다. 지난해 한 조사에 따르면 고교생의 10%. 중학생의 4.6%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210만 명의 청소년이 사용한다는 의미다. 성인 가운데는 4.5% 가량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 전자담배 흡연(vaping)과 일반 담배(smoking)의 차이는 무엇일까? 두 가지 다 니코틴과 그 외의 물질을 호흡을 통해 폐 속으로 들여 보낸다는 점은 동일하다. 담배는 담배를 태워서, 전자담배는 액체를 가열해 그 속에 포함된 니코틴과 다른 화학 물질들을 폐 속 깊이 흡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담배 관련 물질은 안전하지가 않다. 전자담배가 담배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심각한 의료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전자담배에 포함된 니코틴은 청소년 두뇌 발달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임신 중 전자담배 흡연은 조기 분만, 저체중 신생아분만, 태아의 허파와 두뇌 발달을 방해한다. 니코틴은 중독성이 강하고, 내성이 생기며, 대인 관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로 인해 학업이나 직장 생활 등에 악영향을 준다. 젊은이 중에는 전자담배 사용으로 간질 발작을 일으킨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니코틴 중독 치료 방법으로 지속적인 대화를 권한다. 전자담배를 끊고 싶어하는 청소년들과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지속해서 대화를 유지한 것이 좋은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금연을 원하는 성인에게 전자담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금연 후에는 전자담배 사용도 중지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왜냐하면 전자담배도 오래 사용하면 중독의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 전자담배는 FDA(식품의약청)으로부터 금연용으로 승인도 받지 못했다.   전자담배는 청소년들에 중독성이 강하다. 또 청소년이 장기간 사용 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아직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특히 조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전자담배 안전 전자담배도 중독 전자담배 흡연 전자담배가 담배

2024-10-23

[오픈 업] 한강(漢江) vs 한강(韓江)

새벽에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문자가 왔다. 내달이면 54세가 되는 1970년생 한국 여성 작가 한강(韓江) 씨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쾌보였다. 너무 감격한 나머지, 기사를 카피해서 여기저기 퍼 날랐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보니 동시다발적으로 기사가 전달되고 있었다. 한강 작가가 ‘한강(漢江)의 기적’을 다시 한번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날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강의 기적’은 빈곤했던 한국이 기적적으로 가난에서 벗어난 것이다. 배고픈 국민이 없어졌고, 전국을 구석구석 연결해주는 도로가 생겼고, 해외여행을 할 능력이 생겨 다른 문화를 접할 기회가 생긴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런 경제적 발전을 의미하는 ‘한강의 기적’에 이바지한 분들이 한국은 물론 해외에도 많다. ‘한강의 기적’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참패한 독일이 급속하게 선진국으로  발전한 것을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본뜬 것이라고 한다. 4·19 학생혁명 후 잠시 정권을 잡았던 장면 내각이 독일을 본보기로 삼아 한국도 도약하자며 역설한 것에서 유래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의미를 더 확대하는 것은 어떨까. 단지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의미하는 것에서 문화, 연예, 과학, 스포츠 등 모든 영역을 망라해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모든 것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자는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생각하다 보니, 잊어서는 안 될 역사가 있다. 바로 한인 이민역사다. 내가 어렸던 때 브라질 이민이 처음 시작되었다. 1962년 109명의 한국인이 브라질 산토스 항에 도착했고, 이후 한인이 늘면서 현재는 브라질의 한인 인구가 5만 명이 넘는다.     이어 1963년에는 광부,간호사의 서독 파견이 시작됐다. 이후 1977년까지 광부 7936명, 간호사 5800명, 보조간호사 4232명이 서독으로 갔다(2020.12.1. 청죽통한사 보고) 그중에는 계약 기간을 마치고 학업에 전념해 대학교수가 된 분도 20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국의 세 번째 여성 대사 김영희씨도 파독 간호사 출신이고, 광부로 독일에 갔다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병원장이 된 분도 있다. 하와이와 파차파 캠프의 미주 한인 이민 선조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전 세계에 한인 디아스포라가 750만 명에 이르고, 미국만 해도 한인 인구가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이 이루어 가는 나날의 노고, 그러나 그들이 가르쳐 주는 삶의 풍요로움에 고개를 숙인다.   한반도를 동서로 흐르는 ‘한강’의 한자는 한강 작가의 한자 성과는 다르다. 이와 관련 흥미로운 것은 지난 7월 민족문화연구원장인 심백강 박사가 한 언론에 게재한 ‘한강(漢江) 한자 표기, 한강(韓江)으로 바꾸자’는 칼럼이다. 심 박사에 따르면 극동지방에는 중국 한(漢)족의 모태가 된 ‘한족의 한강’과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의 젖줄이 되어준 ‘밝족의 한강’이 있었다고 한다. 고려 때까지 서울의 한강은 백강(白江), 즉 우리말로 ‘밝강’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밝강’을 한강(漢江)이라는 말로 음차 표기하게 되었고, 조선시대에 사대적인 의미로 변질하였다는 주장이다.       심 박사의 주장이 옳다면 한강은 ‘밝강’으로 쓰거나 한자로는 한강(韓江)으로 쓰는 것이 옳을 것 같기도 하다. 한문을 거의 쓰지 않는 현시대에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백하자면, 한강 작가의 맨부커 수상작 ‘채식주의자’를 읽은 후, 그녀의 다른 작품은 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한 작가가 힘들게 쌓아왔을 알찬 문학 작품들을 통해 정치와 철학, 인간 비애를 감싸 안는 자비로움, 잔인한 인간상을 꼬집는 능력들을 알아볼 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흥분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인이 나 말고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다.    류 모니카, M.D. / 종양 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 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한강 한강 작가 한국 여성 한인 인구

2024-10-13

[오픈 업] 은혜를 갚을 줄 아는 한국

몇 년 전 아름다운 모임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LA총영사 관저에서 열린 평화봉사단(Peace Corps) 단원 초청 만찬 행사였다. 이날 모인 많은 은발의 인사들은 젊은 시절 한국에서 봉사했던 분들이었다.   이날 참석자 중에는 캐서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도 있었다. 그녀는 나의 제2의 고향인 충남 예산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단다. 그리고 그곳 주민들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그때 그녀는 자신이 훗날 미국 정부를 대표하는 대사가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날 그녀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많은 평화봉사단 회원들이 세계 곳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받아들였던 나라 중에서 스스로 봉사단체를 만들어 다른 나라로 파견하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이 현재 필자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선 왕조 말기 암울했던 시기에 에비슨, 알렌 박사 등은 선교활동을 위해 조선 땅에 들어왔다. 이들은 서양 의술을 시술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제중원이라는 병원을 세웠다. 제중원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었다. 에비슨 박사가 미국에 귀국, 카네기 홀에서 조선의 상황을 설명하자 감명을 받은 한 사업가가 그를 찾아왔다. 새 병원을 지을 수 있는 돈을 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세브란스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는 등 정치적 사정으로 병원 건축은 지연되었고, 필요한 자금 규모도 늘어만 갔다. 그러나 세브란스는 그때마다 필요한 자금을 추가로 기부했다고 한다. 에비슨 박사는 1910~1911년 사이 선교 본부에 자신이 지향하는 세브란스 병원의 목표를 다음의 10가지 항목으로 기술하였다고 한다.   1. 세브란스 병원은 현재 미국에 있는 병원과 동일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2.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선 많은 미국 의사들이 일해야 한다. 3. 그러는 동안 한국인 의사들을 열심히 가르쳐서, 미국 의사들이 떠난 뒤에도 높은 의료 수준을 유지하게 한다. 4. 훌륭한 교수들이 있어야 한다. 5. 학생들은 충분히 훈련을 받아야 한다. 6. 의료 시술만이 아니라, 의학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7. 치과 대학이 세워져야 한다. 8. 약학 대학과 , 제약 사업이 있어야 한다. 9. 안과 질환 치료와 안경 제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10. 약품, 안경 제조 등의 사업을 통해서 병원은 독립이 가능해야 한다.   그가 이런 편지를 보낼 당시 한국은 많은 문제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은 1908년 6명의 1회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2회 졸업생은 그로부터 3년 후인 1911년에야 가능하였다. 교실과 교수의 부족 문제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선교사들의 반대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세브란스 병원은 에비슨 박사가 목표했던 10가지 항목을 모두 달성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받았던 사랑과 은혜를 세계의 저개발 국가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현재 90여명의 세브란스 졸업생들이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아시아,중동 지역 등에서 인술을 펼치고 원주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 다른 특수한 의료 선교 프로그램은 이들 국가의  젊은 의사들을 세브란스로 초청해 이들이 마음 놓고 현대식 대장 검사, 복막경을 이용한 수술 등 여러 가지 최신 의료 시술법과 진단 방법 등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500여 명의 의사가 초청됐고, 그들은 이렇게 배운 의술로 자기 나라에서 많은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아직 평화봉사단으로부터 받았던 혜택을 다 갚지는 못했지만 한국은 한층 더 진화된 방법으로 이를 갚아가고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은혜 한국 세브란스 병원 한국 최초 시절 한국

2024-10-08

[오픈 업] 정신 질환은 기도만으로 치료 안 된다

최근 아주 반가운 책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 목사, 선교사 등 4명이 공동 집필한 ‘목회자와 성도를 위한 정신 질환 이해’라는 책으로 정신 질환 환자를 대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현재 한국의 정신 장애 유병률이 27.8%라고 하니 한국 교회도 교인 4명 중 1명은 정신 장애의 경험이 있는 셈이다.     정신 장애인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8배나 높다고 한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연간 자살자 숫자가 26.0명이나 된다. 미국의 14명에 비해 거의 배에 가깝다. 미국도 과거의 12명에서 높아진 것이다. 이에 미국에서는 중·고교 학생들의 학생증에는 자살 방지 센터의 전화번호가 있다. 미국 15~25 세 사이 젊은 층의 사망 원인 첫째가 사고, 둘째가 자살, 셋째가 피살임을 생각하면 정말 잘한 결정이다.   이에 반해 자살률이 높은 한국의 대책인 미흡하다. 통계를 보면 정신 건강 예방 및 조기 개입을 위해서 치료 서비스를 찾은 이용률은 고작 12.1%이고, 지역 사회의 정신 건강 증진 교육에 참여한 비율은 3.0%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들은 외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정신병에 걸릴 수 있지?’ 같은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대신 ‘정신 질환은 병이지 죄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라.”   “정신 질환은 생물학적인 요인( 유전, 신경 전달 물질 오류 등)과 환경적인 요인(상처, 스트레스 등)에 의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입니다. 정신 질환은 불신앙의 증거가 아닙니다.” (전인 성장 연구소 대표/ 예향 교회, 강하룡 목사)   저자들은 교회 안에서 정신 질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교우에게 약을 끊고 기도만 하자는 목회자, 성경을 잘 보고 기도하면 낫는다는 잘못된 신념을 길러주는 목회자들은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세계와 비종교적인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보고, 기도하고 말씀 보는 것은 선한 것이고,의사를 찾고 병원에 가고,약을 먹는 것은 믿음이 없는 행위로 보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한국은 국가의 정신 건강 지원 체계가 많이 부족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한국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 신뢰도를 높이고, 새로운 선교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저자들은 외친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2007년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버지니아텍 총기 난사 사건을 기억했다. 범행을 저지른 조모 군은 여덟 살에 부모, 누이와 함께 이민 온 한인 1.5세였다. 이민자인 그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 끔찍한 사건 후에 수십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모여서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 을 했다. 그 결과는 아마 이  한인 청년이 자폐증이나 조현병을 앓았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즉, 정신과 질병을 앓고 있던 소년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분노와 고독의 구렁텅이에 빠져 몸부림치다가 결국 자신과 많은 사람을 파멸시킨 것이다.   패서디나시에 위치한 훌러 신학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의 목사들에게 DSM 4 (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열람) 책 한권을 강의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그들이 보여준 깊은 통찰과 배움의 열망에 감동하기도 했었다.   그분들은 정신 질환이나 그 치료법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질병을 가진 분들을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어했다. 따라서 정신병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게 된다면 정신 질환을 죄에 대한 벌이라거나, 의지력의 부족 또는 사탄의 짓이라는 믿음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육체적, 정신적, 환경적, 그리고 영적(Bio-psycho-socio-spiritual) 치료’가 정신 질환 치료에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종교가 중요한 한 면을 담당하지만, 다른 분야의 치료들도 동시에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리고 목회자들도 이를 깨닫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날이 빨리 와야 할 때이다.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라는 수치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목회자와 교인들은 주위의 아픈 사람들을 돌아보고 ,받아들여주며,생명의 도움을 찾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미국에 있는 한인 교계도 마찬가지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정신 질환 정신과 의사들 정신 장애인 정신 질환

2024-09-24

[오픈 업] 시니어 활동의 중요성

올해 들어 유난히 내 나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뒷방 늙은이’로 보였나? 그런데, 비슷한 활동을 함께 했던 미국인들은 내 나이를 묻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직장 후배들은 내가 건강하고 젊어 보인다고 칭찬해 주었다.     특이하다. 어쩌면 한인 1세들은 삼강오륜의 장유유서를 지키는 문화에 깊숙이 배어 있어서, 상대방의 나이를 눈치로 알아채고, 에티켓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나이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우리 문화는 상대편에 대한 호칭도 까다롭다. 성(性)에 따라, 직업에 따라 호칭의 뉘앙스를 이해하고, 신경을 써서 적절한 단어를 골라 사용해야 한다. 혹시 실수라도하게 되면 버릇없다, 싹수없다고 찍힐 수도 있다.     지난달 8월 참석했던 한인 문학 축제에서 연세 든 문인들을 많이 만났다. 평균 연령도 65세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연령 외에 문학 축제의 또 다른 특성도 볼 수 있었다. 첫째, 한국을 떠나 살고 있지만 한글로 소설, 수필, 시, 시조, 동화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한다는 점이다.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두 번째로 동인지(同人誌)를 만들어 작품들을 기록하고 보존해 왔다는 것이었다. 동인지에 실린 작가들의 소중한 삶이 이민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분단된 탓에 지금은 한반도 북쪽의 문학세계를 모르는 채 살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굴욕적인 패망의 시대는 조선 말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후 광복때까지, 거의 반세기 가깝게 많은 우리 조상들은 러시아, 멕시코, 중국,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후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들은 서로를 찾아 나섰고, 함께 모여 살았으며, 정보를 교환하고 도왔다. 신문을 발간해 조국과 동포 간의 소식을 나누었다. 한글을 통해 모국과의 명(命)줄을 놓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조국에도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언론기관들이 있었다.     다시 문학 축제로 돌아간다. 미국에도 한국문학 단체들이 있다. 어느 단체에서든지 작품이 선정되면 특수 장르의 신인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작가 중에는 문학을 전공한 분들도 있고, 본업과 문학 활동을 병행하는 분들도 많다. 한국의 김훈,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 미국의 헤밍웨이도 기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나도 본업과 문학을 병행하는 사람 중 하나다. 환자를 보는 틈틈이, 여가에 통계를 확인하고, 칼럼을 준비하는 의사의 삶을 살아왔다. 희귀 질환을 가진 환자에 대한 정보, 암을 극복한 투병기, 그리고 삶을 마감하는 호스피스 환자 이야기 등을 글로 전했다. 나는 ‘글쟁이’로 생을 마치고 싶다는 생각이다.     2018년 자료에 의하면 한국 작가의 평균 등단 나이가 29세(최연소 16세, 최고령 90세)라고 한다. 하지만 이십 대, 삼십 대가 선호하는 웹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압도적으로 늘면서 등단 평균 연령도 낮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통계청 (KOSIS)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2.7세( 여자 85.6세, 남자 79세)라고 한다. 시니어들이 꼽는 주요 활동으로는 취미·오락(49.6%)과 휴식(52.7%)이 압도적이다. 반면, 문화·예술 활동 참여는 5%에 지나지 않았다. 창작 분야에서 활동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또 한국에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시니어 인구는 2.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원봉사 시간은 월평균 6.3시간이라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시니어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25%에 이른다. 연방정부 주도하에 자원봉사를 장려하는 기관과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국제사회보장 리뷰: 2023 가을호, 강은나, 류병주).   우리 세대의 평균 수명은 부모님 세대보다 훨씬 길어졌다. 시니어층에 입문한 후에도 일 할 능력이 있다면 직업을 찾아보고, 참여하면 좋을 것이다. 꼭 수입을 창출하는 직업이 아니라도, 봉사 활동이나 여가 활용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신 건강, 육체 건강, 정서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는 시니어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혹시 영어 소통이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한인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뒷방 늙은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엔 ‘노년병’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도와 달라고 손 내미는 곳에, 도움을 주자. 도움을 주는 삶이 축복의 삶이 아니겠는가. 류 모니카, M.D.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시니어 중요성 문학 활동 한국문학 단체들 한인 문학

2024-09-17

[오픈 업] ‘조우네 마음 약국’

‘조우네 마음 약국’ 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조증과 우울증이 있는 40대 가장이 자신에게 붙인 별명이 ‘조우’다. 사랑하는 가족과 5년째 채널을 운영하며 용감하게 자신의 증상과 치료 과정을 나누는 채널이다. 정신병은 수치스럽고 숨겨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샛별처럼 빛나는 가족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있는 ‘아둘람 공동체’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인 조울증 환자와 가족이 모여든다. 필자도 지난 4월 이분들을 방문했다. 필자가 지난 2년간 ‘수잔 정 마음건강 열린 상담실’이라는 정신과 교육용 유튜브를 만든 이유는 어떻게 해서라도 한국인의 자살률을 낮추고 싶어서였다. 조울증은 정신과 질환 중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병이다.   1990년대 이후 두뇌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정신 질환 치료 약물 개발에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그중 가장 성과가 있었던 것이 항우울제다. 항우울제는 우울 증상과 정상 감정이 교차하는 ‘주요 우울증(Major Depressive Disorder)’이나 불안 증상에 효과가 탁월한 약품이다. 이 질병은 일명 ‘일극성 우울 질환(Unipolar Depression)’ 이라고도 불린다. 조울증을 ‘양극성 질환( Bipolar Disorder)’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비한 것으로 ‘조증(북극)’ 과 ‘우울증(남극)’을 오르내리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성의 30%가 경험할 수 있다는 일극성 질환은 흔하게 나타나다 보니 ‘정신 질환의 감기’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우울한 감정과 주요 우울증을 구별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비유를 잘못한 것이다. 주요 우울증은 적어도 2주일간 우울하며, 모든 흥미를 잃은 채,수면의 변화, 식욕의 변화,성욕의 감퇴, 집중 불가능,결정 능력 상실과 함께 죽음에 대한 수동적 기원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 자살 기도까지 이른다. 정신병의 감기가 아니라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환자 가운데 약 10%가 자살 기도를 하지만 대부분 약물치료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남자는 약 15%의 유병률을 보인다고 한다.   이에 비해 조울증, 즉 양극성 질환의 우울 증상은 거의 일극성 우울과 비슷하거나 더 심각한 상태다. 조증( mania), 또는 경조증(hypomania) 증세가 오는 병이다. 조증이란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고 의욕이 넘치는 상태다. 말이 빨라지고 업무나 학업 등에 놀랄 만큼 집중을 한다. 그런데 과소비,도박,무모한 투자,문란한 성생활 등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도 집착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대부분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을 하게 된다. 조증 동안에는 잠도 거의 자지 않는다. 필자가 치료하던 한 환자는 새벽 3시에 로스앤젤레스 시장과의 통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하루 3시간만 잠을 자도 피곤하지 않다고 한다.     필자가 카이저 병원에서 일할 당시 젊고 아름다운 신장 전문의사(kidney specialist)가 자기 환자의 상담을 부탁한 적이 있다. 그 환자는 중년 남성으로 신장 이식 수술을 한 후 매일 사랑을 고백하는 시나 편지를 보낸다는 하소연이었다. 상담 결과 그는 수면 감소, 성욕 증가 증세가 있는  조울증 환자였다. 이런 환자는 대부분 지적 능력이나 인지 작용에는 큰 지장이 없고 정서적 변화만 심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조증 상태에서는 절대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울 증상이 심할 때 정신과를 찾는 경우, 자신이 과거에 조증이나 경조증이 있었다는 것을 의사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주요 우울증으로 진단이 되기 쉽고, 항우울제 처방을 받게 된다. 조울증 환자들이 정서 안정제를  동시에 복용하지 않는 상태에서, 항우울제만을  복용하는 경우 정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mood shifting) 화가 심해지거나 ,더 우울해지고, 자살 충동이 커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항우울제에는 ‘자살 위험이 있다’는 경고문이 있다. 이런 유형의 환자 3명 중 1명은 자살 기도를 하는데 투신 등 사망 확률이 높은 방법을 선택한다. 그래서 치료가 중요한 질병이다.   조울증은 진단이 어려운 심각한 우울 질환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NIMH(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Disorder)가 “3년 내에만 진단을 받으면 치료 효과가 크다”고 하겠는가.   이 질환에 효과적인 리튬, 항경련제,그리고 항정신제의 사용으로 일반인은 물론 많은 예술가,작가, 과학자들이 행복하고 생산적인 생을 영위하고 있다.   ‘조우네’의 두 형제가 좋은 예다. 이 병에 대해서 공부하고, 조기 진단과 치료를 받아 자살이라는 파괴적 길로부터 자신과 주변 사람을 보호하자.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조우네 마음 조우네 마음 정신과 질환 주요 우울증

2024-09-04

[오픈 업] 자살하는 선생님들

미국 뉴스에도 한국 선생님들의 자살 사건이 크게 보도됐다. 한국 언론을 통해 알고 있던 터라 놀라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의 자살 소식이 세계로 퍼져 나간다니 찹찹한 심정이다.   무엇보다 좋지 않은 일로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처럼 되려고 노력 하면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많은 초등학생이 선생이 되고 싶어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으려면 ‘집행 기능 능력(executive function)’이라 불리는 사고 기능이 필요하다. 이 기능은 태어날 때부터 두뇌 안에 가능성이 존재한다. 마치 언어 습득 가능성이 두뇌 안에 존재하는 것과 같다.       갓난아기는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큰 소리로 울어댄다. 존재의 위협에 반응하는 본능적 행동이다. 그러다가 생후 6개월이 되면, 엄마를 찾아 울기 전에 엄마가 마지막으로 있던 곳을 쳐다본다고 한다. 즉,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서 잠깐 참았다가, 그래도 엄마가 안 보이면 울기 시작한다. 아기는 이미 감정 조절을 할 수 있는 집행 기능 능력을 길렀고, 이것은 두뇌 전두엽의 발달이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갓난아기의 두뇌에는 어른 두뇌의 90%에 해당하는 뇌세포(neuron)가 이미 존재한다. 뇌세포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크기에 변화가 오고, 뇌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의 숫자가 증가한다.   6개월 된 아기는 ▶반응 억제(response inhibition) ▶주의 집중 (sustained attention) ▶기능에 필요한 기억(working memory) ▶감정 조절(emotional control) 등 4가지 집행 기능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능력에 의해서 아기는 가까이 가거나 피하는 행동(Approach/Avoidance behavior)이 가능해진다. 어린이는 집행 기능인 ‘반응 시작/반응 억제(Responnse initiation/ Response inhibition)’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배우고,이는 학교 교육에 중요한 기능이 된다. 부모가 이 기능을 잘 길러준 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만 학대를 받았거나 다른 상처로 인해 이 기능을 훈련받지 못한 아이는 뇌 구조에 변화가 올 수 있다. 집행 기능 능력이 떨어진 어린이나 청소년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이런 학생에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보조 교사, 카운슬러, 또는 특수 교육반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도움이 없이 선생님 혼자서 문제아와 일반 아이들을 동시에 가르치기는 어렵다.     필자가 카이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의료 보험이 없는 한인들을 위해 교회 사무실에 ‘라이프 케어 센터’라는 정신과 클리닉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한인 환자의 약 70%가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질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에게 이런 질병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알코올중독 또는 심한 우울 증상으로 찾아 왔다가, ‘들어본 적도 없는 이상한 병’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간혹 자녀 문제로 왔다가 자신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에 감정 조절, 주의 집중, 반응 억제 등 집행 기능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선생님은 적당한 체벌과 칭찬을 통해 문제 학생을 통제하며 다른 학생도 교육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생님을 비난하기보다 학교나 교육청 차원에서 아이들이 집행 기능을 기르도록 도와야 마땅하다. 만약 아이의 문제가 ADHD라는 두뇌의 질병이면 정신과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한인 부모들도 선생님들이 자녀의 정신과 진단과 치료를 권하면, 그중 반 정도만 이를 따른다. 그리고 아이의 행동에 대한 질문지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또는 “아주 조금 있다”로 표시한다. 한국의 부모들도 자녀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아이들의 두뇌는 25세까지 계속 성숙한다. 비록 어린 시절에 어떤 이유로 집행 능력을 키우지 못했었더라도 좋은 선생님이나 상담사를 만나면 좋아질 수 있다. 부모와 교육 관계자들이 힘을 합해 아이들의 집행 능력을 길러주자. 선생님은 아이들이 존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역할 모델이다. 그들이 행복하고 희망에 찬 모습으로 아이들의 등불이 될 수 있게 하자.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자살 선생 집행 기능인 한국 선생님들 문제 행동

2024-08-13

[오픈 업] 우리에게 필요한 친구와 동지

얼마 전 한국 출장 중에 1.5세인 한인 교수에게서 문자를 받았다. 방학을 이용해서 서울에 연구차 나와 있는데, 혹시 한국에 있다면 청계천 산책로에서 만나 ‘치맥’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그와는 몇 년 전 한국에 대한 어떤 연구 과제를 계기로 알게 되었다. 그는 의학계나 한인 단체에 속한 사람은 아니다. 진지하고 겸손한 성품의 학자다. 내가 그의 부모님과 연령대가 비슷한 것 같아  편히 대화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내 딸들과 비슷한 또래다. 이민 1세대와 그 자녀 사이의 견해차로 쉽게 생길 수 있는 갈등을 소재로 즐겁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 출장 일정은 청계천 치맥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빡빡해 섭섭했다.     출장 일정을 마친 후 간신히 하루를 비워서 어릴 적 친구들과 전라남도 땅끝마을을 다녀왔다. 한국에 3000개가 넘는 섬들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사수했던 남해이다. 수려한 곳이었다.     흔히 한국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표현한다. ‘리’는 과거 거리의 단위로 마을과 마을 사이 약 400미터, 360보 정도라고 태종신록에 기록되어 있다.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1000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가 2000리여서 삼천리라고 한다.   한 나라의 영토에는 바다도 포함된다. 육지를 둘러싼 바다에서 여러 국가적 활동이 있을 수 있고, 이 영역 안에서 개발권, 무역권, 교통로, 국가 안보를 행사한다. 섬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는 대륙 밖의 바다에 있는 땅인 섬들을 연결하는 선이 국가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섬들을 연결해서 그은 선(線) 안쪽의 12해리((海里: neutical mile)에서는 관세, 출입국 관리, 보건, 위생 등 국내법이 적용되어, 이를 접속수역으로 보면 된다. 그곳에서부터 200해리는 유엔이 규정한 배타적경제수역(EEZ: Exclusive Economic Zone)으로 국가가 지원 탐사, 개발 등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곳이다. 얼마 전에 한국 정부는 동해에서 원유 자원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그곳이 한국 영토라 개발이 가능한 것이다. 몇 년 전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캠페인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을 때, 어떤 네티즌이 ‘그까짓 조그만 섬 갖고, 왜?’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영토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친구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삼천리 금수강산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고 노력했다. 휴전선 인근 통일전망대에서는 오두산 너머, 우리가 갈 수 없는 북한 땅을 함께 바라보았다. 한 친구는 전쟁기념관 동판에서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삼촌의 이름을 열심히 찾았다. 내가 6·25전쟁 때 전사한 큰오빠 이름을 찾았듯이…. 우리의 우정은  때때로 서로를 응원하는 문자로, 전자우편으로, 전화로 배달될 것이다.     여행을 함께 했던 이들은 10대 초반에 만난 친구들이다. 하지만 나는 치맥을 하자던 젊은 교수도, 이번에 한국에서 함께 활동한 젊은이들도 친구로 생각한다. 내가 영역 없이 넘나들며 쓰는 ‘친구’라는 말에는 ‘동지’와 ‘벗’이라는 뜻이 함께한다. 어려서 썼던 ‘동무’라는 따뜻한 말이 쓰이지 않는지 꽤 오래되었고 ‘동지’ 또한 이념의 색이 칠해진 단어가 됐다. 어떻게 보면, 미국이 이런 점에서는 편하다. 친구라면 ‘프랜드’ 또는 ‘베스트 프랜드’ 정도로 표현하니 말이다.   퓨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과반수는 한 명에서 네 명 정도의 친구가 있다고 한다.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비율도 8%나 된다. 성별에 따라, 인종과 민족성에 따라 친구의 분포도(分布圖)도 다르게 나타났다고 한다. 우리 삶의 정서적 안전지대는 동족, 동성, 동향, 동문 등 ‘같은 어떤 것’에 있는 것 같다. 같은 인종끼리의 만남이 더 편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주변의 누구도 친구 없는 8%에 속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이민 사회인 한인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일이다. 류 모니카 / 종양 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 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친구 동지 한국 출장 전라남도 땅끝마을 한국 정부

2024-08-07

[오픈 업] 정신병에도 단계가 있나요?

최근 한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28%가 정신과 질환이 있다고 한다. 이 결과는 미국과 거의 동일하다. 즉, 한국이나 미국이나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진단이 가능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병은 걸리지 않는 것이 최상이고, 만일 걸렸다면 조기 진단을 통해 신속히 치료하는 것이 본인은 물론 가족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방법이다. 비록 늦게 발견이 되었다 하더라도,병의 정체를 알면 치료도 쉽고 환자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OECD 국가들의 평균 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미국 정신과 교과서에서 발견한 것이 2년 전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에 따르면 본인의 환자들 가운데 불면증, 공황장애,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정신과 치료를 권하면 대부분 강하게 거부한다고 했다.     “누구를 미친 사람 취급하느냐?”며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펄펄 뛰면서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는 내게 정신과 질병에 관한 교육용 유튜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환자나 가족들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필요한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이라는 필자의 유튜브 채널이다.     정신과 질병을 위험도 순위에 따라 세 개의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신증(psychosis), 소위 “미쳤다”라고 불리는 단계로 개인의 생각과 외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매우 위험해질 수 있는 단계다. 예를 들어 자동차 가 지나가며 경보음을 울렸다고 가정하자. 일반인이라면 친구나 이웃이 반가워 보내는 신호이거나, 차도에 너무 가까이 있어 위험하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증 환자라면, ‘나를 감시하는 경찰들끼리 서로 보내는 신호’라고 믿어 무기로 방어 태세를 취하거나 급히 도망을 갈 수도 있다. 조현병, 조울증, 심한 주요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에게 이런 증세가 올 수 있다. 그리고 이 상태는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이다. 빨리 입원을 시키든지,  적당한 약물 치료와  상담, 그리고 병에 대한 교육을 환자와 가족에게  해야 한다.     이 밖에 술이나 다른 중독 물질 때문에 오는 금단  증상, 또는 환각 상태에서도 비슷한 정신증을 일으킨다. 이 경우에는 정신적인 치료와 함께 내과적 응급 처치도 필요하다. 만성적 간 질환이나 신부전증 때문에 체내 노폐물이 축적되어 두뇌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알츠하이머나 순환성 치매 환자들의 경우에도 두뇌 세포의 병변에 의해서 정신증이 올 수 있다. 판단이나 감정 조절 등을 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단계는 ‘노이로제’라고도 불렸던 각종 불안이나 강박 증세, ‘신병’으로 불리는 컬처 바운드 신드롬(culture-bound syndrome)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원인은 모르지만 세상의 종말이 올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를 경험한다. 어린 시절부터 예민했던 경우도 있고, 각종 정신적 ,육체적 외상 경험을 한 후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이 단계의 환자들은 상담 치료나, 약물치료에 잘 반응한다.   셋째는 ‘적응 문제(Adjustment Disorder)’로  새로운 환경이나, 어려움에 부딪힌 경우 경험하는 불안감, 우울감, 또는 행동의 변화 등이 여기에 속한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두려웠던 감정이나, 자신감 결여, 결정에 대한 후회 등 온갖 감정의 회오리나, 육체적인 행동까지도 기억이 날 것이다. 그러다가 취직을 하고 말도 통하게 되면 본래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개인에 따라 이 기간이 몇 개월이 걸리지 않거나 혹은 일 년을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이나 우울 상태가 오래 계속되며, 일상에도 많은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라면 적응 증세가 아닌 ,불안 장애나 우울 장애 가능성이 높아 적당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일 반사회성 인격 장애나 경계성 인격 장애 등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런 시기에 우울함이나 불안한 감정 외에 가정 폭력, 아동 학대 등의 범죄나 자살 기도 등 파괴적 행동도 보일 수 있어 정신과적 치료를 필요로 한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 아니면 순번을 거꾸로 하면 첫 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는 평상시의 정신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정신증은 두뇌라는 장기의 병이니 빨리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와 함께 다른 도움도 받아야 한다. 불안이나 우울이 주요 증세인 둘째 단계도 생활에 지장을 느낄 정도라면 빨리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정신 질환은 자신을 존중하고 주위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며, 규칙적인 운동과 끊임없이 지식을 탐구하는 생활을 하면 예방이 된다.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의 일지를 쓰는 것도 좋은 예방법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정신병 정신과 치료 정신과 질환 정신과 질병

2024-07-23

[오픈 업] 의학이 바꿔 놓은 가정과 가족

7월로 들어선 지금은 대부분의 각급 학교가 긴 여름방학 중이다. 거의 100일에 가까운 기간이라 부모들의 고민이 적지 않다. 학과목 보충의 의미에서 자녀를 여름학교에 보내거나, 음악 또는 스포츠 캠프에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설로 운영되는 이들 캠프는 가격이 비싸고 기간도 1~3주 정도에 불과해 완전한 해결 방법은 되지 못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다른 주에 사는 손주들이 집에 와 3주를 함께 보냈다. 분주하기는 했지만 한국 음식을 변형해 식사 메뉴를 짜는 등 여러 가지로 즐거웠다. 손주들이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데려다주는 것, 함께 쇼핑하는 것 등도 즐거움이었다.         어느 날은 작은 손주가 친구 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고 해서 그 집에 데려다주게 되었다. 그런데 딸이 말할 것이 있다고 했다. “엄마,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있어서 말씀드려요. 셋째의 친구 부모는 동성애자인데, 세 아이 모두 아빠는 같다고 해요.”   딸은 내가 성 소수자에 대한 선입관을 갖고, 혹시라도 손주 친구의 부모를 무례하게 대하지나 않을까 걱정한 것 같았다. 딸은 손주 친구의 부모는 생물학적으로 두 명의 여성이고, 이들은 ‘자궁 밖 수정(IVF)’ 방법으로 아이 세 명을 낳아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알려줬다.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공식화하고, 자궁 밖 수정, 정자 기증 등을 통해 출산이 가능해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더는 놀랄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손주의 친구가 동성애 부모와 살고 있고, 부모 중 엄마라 불리는 여성이 생물학적 친모이고, 이 엄마가 낳은 두 형제도 생물학적으로 같은 엄마와 아빠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일을 계기로 가족과 가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족이라는 말의 어원(語原)은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 가(家)는 친족 집단을 이르는 말이고, 족(族)은 나부낄 언(?)과 화살 시(矢)가 합쳐진 회의자로 사람이 ‘모이다’에서 온 것이다. 한국의 민법은 가족이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가정(家庭)은 생활을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더 많다.     손주의 친구가 태어나고, 사는 환경은 현대 의학을 이용해서 이룬 가족관계다. 손주 친구처럼 특수한 가족 구성원 관계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왜 그러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손주 친구의 부모는 동성 가족으로 ‘자궁 밖 수정’ 방법을 택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경우이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임신 가능한 연령대의 여성이나 남성이 항암 치료를 받을 경우 생식기관의 어린 세포들도 죽거나 유전자 변형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 이로 인해 앞날을 위해서 미리 정자나 난자를 얼려 보관한다. 적절한 때가 되면 자궁 밖에서 수정해서 자궁에 안착시켜 태아를 기르면 된다. 이때 자궁의 주인은 본인이거나, 대리인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 수정된 배아를 기증하가도 한다.     미국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미국 내 신생아는 367만여 명이다. 미국 전체 인구가 약 3억3000만 명이므로 출생률은 1000명에 11명 꼴이다. 이 중에 2.3%(약 8만6000명)가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대략 한 달에 한 번 있는 여성의 배란 시기에 맞추어 최첨단 의료 기술을 이용하여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 리포트에 의하면 450여 개의 클리닉에서 1년에 약 41만 번의 사이클을 시도했고, 이 중 25% 가 성공적으로 임신했다고 한다.     미국에는 약 70만5000쌍의 동성 부부가 있고 이 중 약 16%인 11만4000 커플은 자녀가 있다. 자녀를 둔 동성 커플의 68%가 생물학적 부모로 남성 부부, 여성 부부의 분포는 비슷하다.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 성전환자) 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정신적, 정서적, 문화적 상태는 다른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된 바 있다. 오히려 이 아이들은 홀대받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많고 이들을 차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포용하면서 도움을 주는 태도로 산다고 한다. 하지만 동성의 부모가 이혼하게 되는 경우, 통상적 부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양육권 이슈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손주에게 친구의 특이한 환경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 애는 의학이 변경시켜 놓은 가족의 정의라던가 가정의 영역에 관한 분석 과정을 거치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난 나잇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류 모니카, M.D.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의학 가족 손주가 친구 친구 부모 손주 친구

2024-07-16

[오픈 업]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조기 치료가 중요한 이유

많은 사람이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는 그저 어린아이가 요란스럽게 행동하고, 공부도 하지 못하다 철이 들면 저절로 없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필자가 1977년 수련의를 마칠 때까지도 이런 병명은 없었다. 그러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인류는 두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딱딱한 머리 속에 들어있는 두부 같은 뇌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뿐인가. 한 사람의 뇌에 200억개 이상 존재한다는 신경세포( neuron)들이 수천개의 가지를 통해 다른 뇌세포들과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화학 물질을 만들어 중간에 있는 시냅스로 흘려보냈다가, 임무 수행 후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고의 정보 전달 장치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두뇌의 십년’이라 불리는 1990년대 이후 인류는 말썽꾸러기 사내아이가 ‘나쁜 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뇌세포에서 도파민이나 노어 에피네프린이 잘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들도 본인이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TV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면 두세 시간도 꼼짝하지 않고 100% 집중한다는 것도 알았다. 의사가 본인 아들에 대해 “주의 산만…”이라고 말하면 당장 부모님이 귀를 막아버리는 이유다.   귀한 자녀를 도와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대부분 두뇌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이 없고, 자녀 교육도 본인 부모님의 방식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녀가 아무리 야단을 쳐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다른 애들에 비해 두세 살 어리게 행동하지만 정은 많고, 공부도 일대일로 가르쳐야 효과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의 사무실에 6세 자녀를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다. 3명의 선생님이 정신과 감정을 받아보라고 해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불편했다.      여섯 살짜리도 엄마나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기는 왜 수업 시간에 말을 많이 하고,걸핏하면 싸움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할머니 의사가 두뇌 모형을 보여주고 자신의 앞이마를 툭 치며 “이 속에 너의 전두엽이 들어있어, 공부나 숙제하는 걸 도와준단다. 어떻게 도와주는지 알고 싶니?”하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모형 두뇌를 잘라 감정뇌(변연계)가 잘 보이게 그려진 도형을 아이 손에 쥐여 준 후 “이 아래층에 있는 뇌는 강아지나 호랑이 같은 동물도 갖고 있어. 어느 날 이 뇌에서 화가 나 싸움을 하려고 하면 전두엽이 스톱하고 소리치며 막아준단다”라고 말해 줬다.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이번엔 뇌 전파 물질이 나오는 그림을 보여줬다. “엄마가 재미있는 게임을 사주면 친구에게 이야기해 주니?” “네, 학교에 가서 이야기해요” “그런데 여기 보이는 신경 세포들(neuron)도, 옆에 있는 다른 세포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정보를 보내려면 스스로 눈물 같은 화학 물질을 만들어 그쪽으로 보낸 데. 그 물질은 모두 다르고 ,하는 일도 각각이야. 이 중에 도파민이라는 물질은 너의 전두엽에 가서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하라고 도와준단다. 그런데 이렇게 고마운 도파민이 공부처럼 지루한 것을 할 때는 나와 주지 않는 게 바로 ADHD 라는 병이야. 이 병은 네 잘못도 아니고, 엄마 아빠의 탓도 아니야. 유전 때문이라고 해. 요즘은 특별한 약이 있어서 그 약을 먹으면, 30분이나 한 시간 후에 도파민이 전두엽에 많이 생겨 정신을 차리고 숙제를 빨리 끝낼 수 있게 도와줘.”   이때쯤 아이는 손을 번쩍 들게 된다.  “저도 그 약 주세요.” “ 그럼 이제 엄마에게 여쭤보자.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부분의 엄마는 이때쯤에는 이해가 되어서, 먼저 결정해준 자녀에게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치료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자신을 존중할 줄 알고, 대인 관계도 원만하다. 그러나 치료를 받지 못하면 성인 ADHD 환자가 돼 특히 다음의 3가지 문제로 힘든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 문제란 ▶불안 질환 ▶우울증이나 조울증 ▶술을 비롯한 물질 사용 장애(특히 대학생의 경우 담배 사용 장애가 높다) 등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과잉행동장애 주의력 주의력 결핍 물질 사용 화학 물질

2024-07-09

[오픈 업] 한국어 교육에도 AI가 온다

최근 열린 한국학 학회를 통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어 학자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홍보하는 단체의 대표들, 또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연구하는 타인종 교수도 많이 만났다. 학회 참석자 중에는 아일랜드에서 온 선생님, 미국에서 한인 교육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 정부 기관 관계자들도 있었다.     학회는 두 가지가 열렸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는 ‘오하이오 월드 랭귀지 코리안 서밋’이, 인디애나 주립대학에서는 ‘북미한국어교육학회(AATK: American Association of Teachers of Korean)’가 각각 진행됐다.     오하이오 주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왠지 친근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큰오빠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큰오빠는 조종사의 꿈을 안고 공군에 입대했지만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대신 오하이오 주에 있는 ‘미국 공군 과학기술 학교’에서 공부한 후 한국 공군 창설 요원으로 활동했다.     오하이오 주립대는 1870년, 인디애나 주립대는 1865년 개교한 유서 깊은 대학들이다. 두 대학 모두 회색 화강암 빌딩과 초현대식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옛것과 새것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방문은 미국 대학교육 시스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도 됐다. 미국 최초의 대학은 1636년 신학대학으로 개교했던 하버드 대학이다. 하버드 대학 설립 200여 년이 지난 1862년, 노예를 해방했던 링컨 대통령은 모릴 상원의원이 발의한 토지 부여법에 승인한다. 이 법은 연방정부 소유의 땅을 주 정부에 기부하고, 주 정부는 이 토지 매매 수익으로 공립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인 이민 선조들이 첫발을 내디딘 것이 1902년이니 토지 부여법 통과 40년 후였고, 그로부터 또 1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가 인디애나와 오하이오 주에서 만난 한인 학자들은 1세와 1.5세, 그리고 2세들이다. 그들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대학에서 한국어, 한국학, 한국문화, 한국 관련 디지털 아트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하이오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타인종 선생님과 학생들이 호남사물놀이, 동살풀이, 본삼채, 연풍대를 장구로 연주하기도 했다. 사명감을 갖고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멋있고 놀라웠다.     인디애나 주립대 블루밍턴 캠퍼스에서 열린 ‘북미한국어교육학회’에서는 국제한국어교육학회 이준호 회장이 ‘한국어 표준 교육과정의 이해와 현지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오하이오 주립대 그레그 케슬러 교수는 ‘언어교육의 미래’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모두 디아스포라가 직면할 수 있는 언어적  문제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여러 논문이 발표됐는데  AI(인공지능)와 ChatGPT 관련 내용이 흥미로웠다.   AI는 우리의 우려와 관계없이,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침범한 상태다. 학생들도 너무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AI이다. AI에게 논문을 쓰라고 명령하면, 아주 멋지게 1분도 걸리지 않고 문장을 구성해서 써준다.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면, 그것은 AI의 책임이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나의 책임이다.     앞으로 한국어 교육에도 AI의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유용한 기구를 최대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비해 새로운 규정이나 지침을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한국학 학회 참석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많았다. 이번 기회에 나를 포함해 미 전국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리기 노력하는 사람들과 고유의 언어 교육을 위해 애쓰는 모든 디아스포라에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류 모니카, M.D.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한국어 교육 오하이오 주립대학 인디애나 주립대학 대학교육 시스템

2024-06-25

[오픈 업] 성인 ‘주의산만증’

몇 달 전 한국 방문 중에 재미있는 신문 기사를 읽고,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주의산만증(ADHD)’ 문제로 병원을 찾는 젊은 층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20대는 4배, 30대는 무려 7배가 늘었다고 한다. 30대가 급증한 것은 아무래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많은 문제를 겪기 때문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ADHD가 어린이나 청소년에게서만 나타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ADHD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행동 조절이 어렵고 충동적이며, 주의가 산만하고 오랫동안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물론 20~30의 ADHD 증상은 어린이나 청소년 때처럼 행동 항진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inner restlessness, 또는 mental restlessness)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콜로라도 대학에서 소아 및 청소년 정신과 교수로 오래 일했던 폴 웬더 교수는 성인이 된 후에도 ADHD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주장했다. 어린이 ADHD 환자 가운데 대략 50-60%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증상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증상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어떤 일을 할 때, 중요한 부분을 끝내고도 마무리를 못 해 결국 완전히 끝내는 것에 실패한다.   2. 정리정돈(Organization)이 필요한 일을 하는 데에 문제가 많다.   3. 약속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다.     4. 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 손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꼼지락거린다.   5. 심사숙고해야 되는 일이 있으면 피하거나 뒤로 미룬다.   6. 마음이 급해 무엇인가 해야 할 것처럼 느낀다.   7. 상대방 말에 집중하기 어렵다.   8. 힘들거나 지루한 일을 할 때 부주의한 실수가 잦다.   9. 집에서나 직장에서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10. 회의나 모임에서 오래 앉아있기 힘들어 자리에서 떠난다.   11.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집중을 못 하고 산만해진다.   12. 자주 안절부절 한다.   13. 혼자 있을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14. 여러 사람과 있는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을 많이 한다.   15. 대화 도중,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 전에 끼어들어 대화를 끝내 버린다.   16.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   17. 다른 사람이 바쁘게 일 할 때 방해하는 적이 많다.   여러 해 전 태국 여행 당시 현지 가이드의 말에 놀란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빨리빨리“를 외칩니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아주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 지원으로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한국어와 문화를 배운 적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한국 성인들에게 주의산만증 증세가 만연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ADHD증상이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자녀 3명 중 1명은 ADHD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10%에서 주의산만증이 진단되는데, 치료를 받는 사람은 그중 10%뿐이라고 한다. 즉, 나머지 90%는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현대처럼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UN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몇 년 전 세계 10개국에서 성인 주의산만증 환자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성인의 ADHD 증상은 다음의 세 가지 문제를 초래해 본인은 물론, 가정이나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가 심한 불안 증세이고, 두 번째는 정서의 문제, 즉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동반해 오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불안하거나 우울한 경우, 담배나 술 등으로 자가치료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술은 초기에는 안정감을 주는 듯하지만, 결국 내성이 생겨 점점 양이 늘게 된다. 그리고 음주를 중단하면 금단 현상 때문에 손발이 떨리고,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잠을 이루지 못해 결국은 다시 마시게 된다. 이런 경우라도 전문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술은 우울 증상을 증가시켜 사고나 범죄 또는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파괴적인 물질이다. 성인 주의산만증 증상이 있는 대학생은 흡연자가 많다고 한다. 이런 20대의 환자들이 치료를 통해서 물질 사용 장애나 불안감, 또는 심한 우울함이나 조울 증세로부터 해방돼 행복한 앞날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주의산만증 성인 성인 주의산만증 주의산만증 증세 한국 성인들

2024-06-12

[오픈 업] 조울증 환자에 가해진 무지한 폭력

양극성 질환이라고도 불리는 조울증은 두뇌라는 장기의 병이다. 도파민,세로토닌 같은 두뇌 세포에서 분비되는 뇌전파 물질의 불균형 때문에 기분이 하늘 높이 올라가거나, 땅바닥까지 떨어져 마치 북극과 남극을 오르내리는 듯해 양극( bipolar)이라는 말을 쓴 것 같다. 조울증이 이처럼 주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임에 비해 과거 정신분열증이라고 했던 조현병은 사고의 변질로 망상이나 환각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얼마전 조울증을 앓던 한인이 경찰 총격에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경찰의 과잉 대응 논란도 일고 있다. 현장에 출동한 경관들이 조울증에 관해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있었고, 조울증 환자를 다루는 방법을 훈련받았더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양극성 질환은 본인 잘못이나, 부모의 탓이 아니다.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 만약 친척 중에 자살 기도를 했거나 심각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경우, 혹은 알코올 중독자 등이 있다면 진단에 도움이 된다.   약 4일간 이유 없이 에너지와 의욕이 넘치고, 평소에 하지 않던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고, 도박이나 쇼핑 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말이 빠르고 많아지며, 수면 시간이 줄어드는 경조증( hypomania) 증세를 보이다가 심한 우울 증세에 빠져들어 자살 위험이 높아지는 경우를 제2형 조울증이라 부른다. 또 들뜬 기분이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상태가 약 7일 계속( 대부분은 그 이전에 병원에 강제 입원이 필요함)되며, 계속 주제를 바꿔가며 쉼 없이 말을 하고, 잘못된  자신감에 들떠서 큰돈을 낭비하거나 위험한 성관계 등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조증(mania) 뒤에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경우를 제1형 조울증이라고 한다.  자살의 위험은 제2형이 더 높다. 조울증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30% 이상의 환자가 자살을 기도하고, 5명 중 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무서운 병이다.   양극성 환자들은 심한 우울감 이외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술이나 약물에 중독되기 쉽다. 게다가 원인 모를 분노의 감정 때문에, 자신이나 주위 사람에게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양극성 질환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이유는 조절 불가능한 우울, 불안, 분노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 관찰하기 위함이다. 그 후 진단이 내려지고, 양극성 질환이 확정되면 리툼·데파콧같은 항경련제, 약효가 빨리 나타나는 항정신제 등을 투약해 정서를 안정시키고 사고 기능을 충분히 사용하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런데 증세가 심한 환자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신(과대망상증이라고도 함)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통한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 대화, 즉 말이라는 기능은 뇌의 전두엽에서 행해지는 높은 위치의 사고 기능이고, 인간은 이를 통해 동물과 달리 감정 조절을 할 수 있게 된다.   경찰 총격에 숨진 한인 피해자는 하이킹을 좋아했다고 한다. 만일 정신과 상담사가 기록이나 부모님과의 대회를 통해 환자의 취미가 하이킹이라는 것을 파악해 이를 경찰에게 알려 대화 유도의 소재로 활용했다면  피해자의 감정 조절을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포유동물은 생존에 위험을 느끼는 순간 ‘투쟁도피반응(Fight or Flight)’을 보인다. 즉, 목숨을 걸고 투쟁을 벌인다는 의미다. 자신이 싫어하는 병원이나 의사에게 ‘끌려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환자였다면 밖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하는 대신, 부드러운 말이나 위로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조울증의 유병률은 50명 중 1명이나 된다.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빈부와 상관없고, 남녀 비율은 비슷하다. 조울증 환자는 선천적으로 심신이 예민해 몸도 자주 아프고,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를 쉽게 받는다. 약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의료진은 환자에게 맞는 약을 찾아내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영적 도움을 받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경찰 총격에 숨진 한인 조울증 환자는 감정을 조절해 위기를 넘기고, 의미 있는 삶을 찾기 위해 입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무지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정신과 환자들에게 또 이런 야만적인 폭력이 행해져서는 안 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조울증 환자 조울증 환자 양극성 환자들 얼마전 조울증

2024-05-14

[오픈 업] ‘조부모의 날’과 한국어 클래스

너무 늦게 세상에 온 나는 양가 조부모님을 뵙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연로해 보였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큰오빠의 딸이 함께 살았고, 나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조카가 연상(年上)이었기에, 우리 집안의 가족관계를 주위에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부모 회의가 있을 때, 나는 아버지나 엄마가 학교에 오시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친구들은 ‘야, 월화야, 너희 할머니 오셨다’라고 큰 소리로 알려주곤 했다. 피하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조모(祖母)가 된 지 오래되었다. 큰딸의 막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조부모의 날 축하연에 초대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5학년 학생들이 강당에서 환영 공연을 할 것이고, 공연 후에 조부모들은 손주들의 교실로 안내되어 교육환경을 살펴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조부모들은 가정에서 아끼는 아이템을 가져와 손주들과 함께 물품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어 주기 바란다는 내용도 있었다. 집안에 가보는 없지만, 의미 있는 물건이 있는지,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다.   큰 딸네가 가주를 떠나 정착한 곳은 당일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손주들은 할머니가 해 주던 한국 음식도 먹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는 제대로 요리를 배우지 못했지만, 의과대학을 다닌 관계로 실험하는 것에는 익숙하다. 그래서 손주들과 가끔 음식 만드는 실험을 하곤 했다. 음식의 유행, 흐름은 어쩌면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들은 ‘퓨전’ 즉, 이것저것 섞였다는 것도 아이들은 잘 안다.     콩나물 같은 음식 재료와 애들이 필요할 것 같은 라면,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챙겨 자동차로 다녀왔다. 서둘지 않고 하는 자동차 여행이 나쁘지 않았다. 가보는 없지만, 골동품인 ‘목수용 줄 금이(line marker)’를 가져갔다. 눈금 긋는 기구가 없던 조선시대 목수가 썼다는 까만색의 길이 7인치 정도의 나무로 만든 것이다. 먹물을 담는 동그랗게 패인 미니 우물 같은 부분이 있다. 먹물을 갈아 넣고, 흰 실 뭉치를 담가 까맣게 물감을 들인 후, 미니 쇠 손잡이를 돌리면 반대쪽에 있는 못대가리만큼 작은 구멍을 통해서 실을 잡아당길 수 있다. 먹물에 젖은 실을 이용해서 벽이나 땅에 눈금을 그으면 된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천재적인 기구이다.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기회이므로, 한 면은 진한 빨간색, 다른 한 면은 진한 바다 색깔의 한국산 보자기에 쌌다. 골동품과 보자기를 보여주면서 조선시대 발달한 문명과 역사를 설명했다. 다른 조부모들이 가져온 귀중품 중에는 세계대전 참전 사진도 있었다.     손주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아시아계 학생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백인 계통으로 보이는 조부모들의 증언을 듣다 보니 흥미롭게도 모두 다민족, 다국적의 사람들이었다. 아시아 계통이 없었을 뿐이었다. 행사 후, 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아, 윈트의 할머니는 한국분이시군요. 나의 부모님, 증조부님들은 여러 나라 출신인데, 나의 1/8이 아시아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상체 1/8? 아니면 몸의 왼편 1/8이요? 어느 부분이 아시아에서 받은 것인지 궁금합니다”라고 농담처럼 물었다.     뉴멕시코 주 교육청 웹사이트에는 40여 개의 교육구/학교들이 이중문해력인증서(Seal of Biliteracy)를 발급한다고 되어있다. 한국어 이중문해력인증서는 두 군데 학교에서 2015~2016년에 발급하였다. 한국어가 아직은 정규 과목으로 채택되지 않고 있다. 뉴멕시코 주 인구의 2%가 아시아계고, 한인으로 분류되는 숫자는 아시아계의 10%가 넘는 4800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LA교육원 통계에 의하면 이곳에는 한 개의 한글학교(주말학교)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한글학교가 있어서 고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시아계가 많지 않은 뉴멕시코 주 학교들에도 한국어 클래스를 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류 모니카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조부모의 한국어 한국어 클래스 아시아계 학생 양가 조부모님

2024-04-10

[오픈 업]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극동 러시아와 만주의 한인 ,1895-1937’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마침내 다 읽었다. 저자 이혜옥 박사로부터 책을 받아 읽으며 가끔 덮어버리기도 하고, 한숨도 쉬고, 주먹도 불끈 쥐었었다.   책 제목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 클레어몬트 대학원에 진학한 이 박사의 학위 논문 제목이기도 하다. 영어 원문을 번역한 각주만 59쪽에 달한다. 일본국립보관소,미국정부공문자료,러일 전쟁 정부 보고서,외교관 보고서,서양인 여행기 등 출처도 다양하다.   책에 빽빽하게 기록된 역사 자료들을 보다 서양인이 상투를 틀고 조선인 사이에 서 있는 ‘내 친구들…’ 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1904년에 러일 전쟁을 취재하러 한국에 와 5개월간 일본군을 따라 종군했던,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소속 잭 런던 기자가 남긴 기사와 사진들이었다. 그는 조선의 ‘게으른 양반들’, ‘가난한 일꾼들’,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글로 남겼다. 그보다 앞서 한국을 네 번이나 방문해 3년간 머물렀던 영국 귀족 출신의 이사벨라 비숍은 여행기에서 한국인에 대해 ‘체력이 강하고 외모가 뛰어나다’고 기록했다는 내용도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비참했다. 이로 인해 목숨을 걸고 러시아나 만주로 떠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마을 전체가 이주하기도 했다. 계속된 홍수와 기근에도 농민들에게는 ‘백골징포’라는 무서운 세금이 있었다. 세금을 갚지 못하고 숨지면 자녀나 친척, 이웃에게까지 그 부담이 넘겨졌다. 또 1894-95 청일전쟁,1904-05 러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전국이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집권 세력은 고종 황제를 둘러싸고 파벌 싸움만 벌였다. 이때 일본은 이미 한반도 지도를 만들어 수탈과 징용 등의 자료로 활용했다.     책에는 흥미 있는 내용도 나온다. 잭 런던은 일본군과 함께 이동하며 간단한 한국어도 익혔다. 그는 ‘어서!(Osau!), 바삐(Papee), 얼른(Ol-run), 속히(Sok-kee), 얼핏(Oil-ppit), 급히(Koop-hee), 냉큼(Ning-kom), 빨리(Bal-lee), 잠깐(Cham-kan)’ 등의 방법으로 한국어를 영문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또 1894~1897년 사이 조선을 방문했던 이사벨라 비숍은 나룻배를 개조해 강을 따라 여행하며 ‘조선의 관리들은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기록했다.     조선인들은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로,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떠나갔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중국인도 많았는데 조선인들은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고유의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 이 지역의 조선인 디아스포라 형성과 유지에 여성의 역할이 컸다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시베리아에 러시아인을 정착시키기 위해 이주자에게 땅과 돈을 주기까지 했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돌아갔다고 한다. 특히 금광에서 중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조선뿐이었다. 1897년에 러시아를 찾은 비숍이 발견한 것은 비록 타향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감과 긍정적인 모습의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은 피부색으로 인해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아르메니아 등에서 온 러시아인, 그리고 유대인이나 독일인처럼 지역 사회에 쉽게 융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조인인들은 주로 군기지 근처에 거주하며 육류와 채소 조달 사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만주에서 여윈 소를 사다 살을 찌운 후 양질의 소고기를 파는 등 사업 수완도 남달랐다. 비숍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국에서의 소심하고, 의심 많고, 움츠린 모습과 달리 솔직하고,남성적인 독립심을 보였다’고 썼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많은 디아스포라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 수백만 명의 디아스포라들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 한국에서 재외동포청도 출범한 만큼 한국인 디아스포라 역사도 발굴해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아리랑 민족 아리랑 민족 조선인 사이 조선인 디아스포라

2024-03-26

[오픈 업] 조울증의 여러가지 얼굴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심한 우울 증세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대학생을 치료중이다. 그런데 그 학생이 처음 만났던 상담사는 필자의 ‘조울증’ 진단이 틀렸다며, 이 대학생의 증상은 ‘주요 우울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학생이 많은 돈을 낭비하고, 위험한 성적 행동을 하며, 3시간 수면만으로도 힘이 펄펄 나는 등 자신이 배운 조울증 증상이 없는데 어떻게 조울증이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그가 배운 증상은 조증 증세로 약 일주일(환자가 입원하면 그 이전) 정도 나타났다 심한 우울 증상이 따라오는 ‘제 1형 조울증( 양극성 질환)’이다. 이럴 때 환자는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 기분이 좋은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이럴 때는 강제 입원을 시켜서라도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 대학생처럼 과거 경조증 증상이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하거나, 즐거운 감정 대신 심한 분노 폭발을 어린 시절에  경험했다가 우울 증상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경조증을 약 4일간, 아니면 그보다 짧은 기간 경험한 후에 심한 우울 증세가 오는 경우를 제 2형 조울증이라 부른다. 그리고 제 2형 조울증의 우울 증상은 더 심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비율이 30%나 되기 때문에 1형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데 조울증 환자를 ‘주요 우울증’으로 오진할 경우 치료에 큰 문제가 된다.(정부 기관인 국립정신건강국의 통계에 의하면 정확한 조울증 진단에는 약 10년이 걸리고, 초진에서 오진 확률이 2/3나 된다고 한다.) 조울증도 심한 우울병의 하나다. 따라서 환자 스스로가 자신을 존중하도록 도와주고, 운동과 원만한 대인관계 등 건강한 생활방식을 유지해 고립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가 이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 치료가 늦어지거나 조울증의 무서운 합병 현상인 극단적 선택 기도로 이어질 수 있다.     우울증에 많이 사용하는 항우울제들은 우울이나 불안 증세를 치료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며 중독 현상도 없다. 그러나 간혹 조울증 치료 약물인 리티윰, 항정신제(antipsychotics), 또는 간질 치료제(anticonvulsants)등과 같이 쓰지 않는 경우, 항우울 약물만을 조울증 환자가 복용하면, 우울 증상을 거꾸로 악화시킬 수 있어서 모든 항우울제 약품에는 이 때문에 ‘위험  경고(black box warning)’가 붙어 있다. 청소년 환자 부모들이 자녀의 우울 치료제 복용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울 장애는 ‘주요 우울증’ 이외에 다른 이유로도 올 수 있다. 즉, 생리전 불쾌감이나 간이나 췌장 등 내과 질환과 함께 올 수도 있다. 또 술이나 다른 물질 사용 후, 혈압약 등 치료제 사용 후 우울 장애가 오기도 한다.   우울 장애는 여성이 남성보다 비율이 높지만 조울증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비슷하다. 대부분의 남성은 오랫동안 감정을 참고 표현하지 않다가 아주 힘들어지면 음주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 장애는 ‘주요 우울증’ 환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약물보다 더 치명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로 인해 유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큰 아픔을 남기는 것이다.  따라서 조울증은 조기 진단과 충분한 치료가 중요하다.     요즘 한국에서는 다행히 조울증 환자 진단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듯하다.   일년 반 전 시작한 필자의 유튜브 채널에도 조울증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고, 구독자들의 약물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높다. 머지않아 한국이 ‘자살률 세계 1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희망도 가져 보는 요즘이다.     -수잔 정 박사의 정신건강 강의는 유튜브 채널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youtube.com/@dr.susanchung)’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조울증 얼굴 조울증 증상 조울증 환자 조울증 치료

2024-03-12

[오픈 업] 한국 의사들의 파업은 정당한가

얼마 전 한국 정부는 의과대학 입학생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약 3000여 명이 의과대학에 입학했다고 하니 입학생 수를 65% 증원하겠다는 뜻이다. 1989년과 비교해 한국 인구는 22% 증가했고,특히 65세 이상 인구는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각종 만성질환자도 더 많아지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20, 2021년 월드 뱅크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비율이 한국은 2.5명, 일본 2.6명, 미국 3.6명, 독일 5.4명, 인디아 0.7명, 에티오피아 0.1명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2017년이 마지막 자료로 3.7명이다. 가끔 의사 증원과 관련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숫자 외에 문화적 관점과 생활방식의 차이 등도 고려해 풀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결정에 전공의들과 의사협의회는 반대 의사를 표했다. 대부분의 전공의는 사직서를 쓰고 직장을 떠났다. 그들은 입학생 증원에 따른 인프라 부족을 걱정한다. 정부가 전공의를 수용할 병원, 신입생을 교육할 교수진 확보 방안을 미리 세워두고 의과대학생 수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 나도 걱정이 된다. 질적인 관리 부족으로 실력 없는 의사, 즉 ‘돌팔이’ 의사가 늘어 제대로 국민 건강을 돌볼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의료계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업’과 다르다. 의료사업에는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2023년 한 해 동안 의료사업에 투입된 자금만 8조 달러나 된다.     의사 숫자의 급증은 과열 경쟁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 같다. 의료업계의 치열한 경쟁이 ‘박리다매’식으로 흘러가 ‘서로 살기’가 아닌 ‘서로 죽이기’ 식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도(醫道)는 무엇일까? 의사들이 걷는 길? 의사들은 어떤 길을 걷기에 그들을 일반인과 다르게 대우하는지 생각해 본다. 한국의 한 언론은 ‘병원은 의사가 권력을 행사하는 공간’이라는 유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통령도, 재벌기업 회장도 병원에 가면 의사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푸코는 지식과 권력의 복잡한 상대성을 연구한 프랑스 철학자다.     미국도 오래전부터 의사가 부족했다. 인구와 노년층 증가 때문으로 한국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유명한 인재 수입국인 미국은 외국 출신 의사들에게도 이민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공의 부족 대책안 2023(Resident Shortage Reduction Act of 2023)을 발의하기도 했다. 수련병원의 공석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7년에 거쳐, 서서히 1만4000명의 자리를 채운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2006년에 의과대학 입학생 수를 30% 늘렸다. 하지만 빈 전공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실책에도 전공의의 파업은 없었다. 의사들은 노동조합이 없다. 또 파업 위협을 하기는 하지만 실상은 협상을 통해 이를 피해 간다. 의사가 아닌 의료계 종사자들 즉, 간호사, 기계 조립사, 호흡기관 테크니션 등은 노동조합이 있고 파업을 통해 그들의 요구 조건을 관철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 정부와 의료계는 미국의 실수를 참고해 미래의 종합 계획을 세우고 이를 서서히 실천해 나가는 참을성과 끈기, 지혜가 필요하다. 전공의, 의사협의회, 병원협의회 등 의료계와 정부는 대화로 여러 가지 이슈를 탁상 위에 올려놓고 함께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정부의 권위, 의사의 권위 같은 것은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과제를 들여다본다면 해법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류 모니카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한국 의사 의사 증원과 의사 숫자 반대 의사

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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