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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수련의들의 파업 선언

한국에 있는 의과대학 동문 가족 한 분이 중환자실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상태가 됐다. 친구는 몇년 전 의업을 마무리하고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끔 시골 풍경이나 인근에서 보이는 들짐승의 사진을 보내오곤 한다. 느슨한 생활에는 평안함이 배어 있었다. 동문은 가족의 위중한 치료를 종합병원이나 모교 대학병원이 아닌 동네 작은 병원에 의뢰했다. 의아했다.   다른 동문들은 수련의가 있는 도시 병원으로 친구의 아픈 가족을 옮기도록 충고하고, 그 일을 도왔다. 대학병원은 아니었다. 그래도 병원 규모에 상관없이 수련의들이 있는 병원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수련의를 얕보는 환자들도 있고, 거추장스러워하는 나이든 선배 의사들도 있다. 그러나 수련의 프로그램이 있는 병원은 장점이 단점보다 많다. 수련 과정 동안 풋풋한 젊은 의사들은 머리에 저장해 놓은 학구적 지식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서,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환자인 사람을 통해서 가슴으로 문제를 푼다. 그들은 이때 비로소 탈바꿈한다. 숙련된 의사들이 환자를 경솔하게 대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수련 의사들의 삶은 고달프고 가난하다. 이들은 하루에 장시간, 그것도 미친 듯이 100%가 아닌 200% 신경을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 날들이 많다. 어떤 경우는 일주일에 80시간 환자를 돌보기도 한다. 미국 노동법은 일주일에 40시간 일하고, 그 이상 일하게 되는 경우 일상적 임금의 1.5배로 오버타임을 계산하도록 하고 있다. 수련 의사들은 노동자도 아니고, 사무직원도 아니다. 그들은 이런 체제 안에 들어 있지 않고 애매한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2021년 미국 수련의 평균 연봉은 6만4000달러이다. 세금 공제하기 전에 일주일에 1200달러 정도 집에 가져간다. 7월 1일부터 LA시는 최저 임금이 시간당 16.04달러로 조정된다. 대체로 LA카운티 병원은 시간당 18달러다. 학자금 대출한 빚도 갚아야 하는 그들의 고단하고 어려운 생활이 피부로 느껴진다.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려고 뉴욕 의과대학은 학비 전액 면제를 결정했던 것 같다.   경제적인 어려움 외에 수련의들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사제 관계를 바탕으로 배우면서 일해야 한다. 흔히 의업은 생계를 유지하려고 갖는 직업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일이라고 한다. 훌륭한 멘토를 만나면 이보다 더 좋은 천직은 없을 터이다. 그러나 게으르고, 책임감 없고, 파렴치하고, 공정하지 않고, 도덕성이 없는 사람이 멘토의 위치에 있게 되면 배움의 나날은 힘들고 고달프다.     개선의 여지가 많은데도 시스템을 개선할 의지가 없는 병원 행정가들과 교수들에게  갇혀 있는 수련의들이 많다. 내가 레지던트를 시작했던 때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이민자 차별을 방지하는 장치가 없었다. 나도 여러 가지가 겹친 차별 대상이었기에 불쾌한 날들이 꽤 있었다. 유색인종이라서, 여자 의사라서, 외국 이민자이라서 그랬다.     수련의들이 단결해서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레지던트 노동조합이 올해 3월에 스탠퍼드, USC, 버몬트 의과대학에 생겼다. 천직이라는 애매한 덤터기를 씌워서 소방대원, 경찰, 간호사, 교사, 수련의들을 부당하게 대우해도 된다면 이들의 목소리는 노동조합을 통해 알리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난달 UCLA 부속 병원인 하버-UCLA 메디컬 센터 수련의를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수련의는 처우가 개선 되지 않을 경우, 파업을 단행하기로 했다. 1300명 이상의 수련의가 참여하는 노동조합이다. 파업 전에 수련의 요구가 받아들여져 파업은 하지 않아도 됐다.     최선을 다해 일하며 공부하는 젊은 전공 의사들이 그들이 택한 일이 천직임을 알게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수련의 파업 교사 수련의들 모교 대학병원 수련 의사들

2022-06-22

[오픈 업] 과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오래전 영화 ‘귀향(Coming Home)’은 베트남 전쟁 중에 제작됐지만 8년을 기다린 후에야 상영됐다. 영화에서 상이용사 존 보이트는 신체는 불편했지만 다른 환자들을 도우며 보람을 찾는다. 장교 부인으로 병원에서 봉사를 하던 여인( 제인 폰다 분)은 이 상이군인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는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전장에서 돌아왔다. 겉으로 상처가 없었지만 그는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거나 사랑을 할 수 없었고 악몽에 시달렸다. 여인은 자신을 멀리하는 남편을 떠나간다. 마음의 상처(trauma)가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됐던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라는 책이 있다. 부제는 ‘두뇌, 마음, 몸의 치유’다.     네덜란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하버드 의대 외상 클리닉(Trauma Clinic)에서 30여년간 연구를 한 베셀 반 데어 콜크 박사가 저자이다. 그가 가장 먼저 진료했던 톰이라는 환자가 저자의 일생 연구진로를 결정해 주었다. 고교를 1등으로 졸업한 톰은 가풍을 따라 해병대를 지원한다. 항상 명랑하고 인기가 많은 그가 베트남전에 나가서도 리더가 된 것은 당연했다. 어느 날, 논을 지나다가 그의 부대는 적군의 기습을 받았다. 그의 휘하에 있던 8명의 전우들이 사망 또는 큰 부상을 입었다.     명예제대 후 법과 대학을 이수한 그는 잘나가는 변호사가 됐고 두 아들과 사랑하는 부인을 둔 가장으로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자신에 대한 끝없는 죄책감과 사소한 일에도 솟아나오는 분노를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두 아들이 조금만 소리를 내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집을 뛰쳐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들을 해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밤이면 동료들이 죽는 장면이 생생하게 악몽으로 나타났다. 술을 마시면서 악착 같이 잠을 쫓으려고 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삼촌이 벌컥 화를 내며 아이들과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를 후에 알았다. 젊은 시절에 아버지는 반나치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던 경험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됐던 삼촌은 노동자로 미얀마에 팔려가 고통을 받았다. 새벽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던 아버지와 느닷없이 고함을 지르던 삼촌의 모습을 어릴 적 저자는 보았다.     자신의 경험과 동료들의 연구를 통해 저자는 외상이 두뇌와 육체의 반응을 바꾸어 놓는 것을 알았다. 연기가 나면 스모크 알람이 울리듯이, 두뇌에 있는 경보장치에 이상이 오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다량 생산되며 상관관계를 구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린 시절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 받았던 사람들, 엄마가 아버지의 폭력에 학대 당하는 장면을 보았던 사람들, 지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가족을 잃었던 사람들… 하지만 이런 사람 모두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져도 흠집이 많이 생긴 사과가 있는 반면 온전한 사과도 있다. 증세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유전이나 환경에 따라 차이가, 사랑하고 염려해주는 보호자의 유무로 상처 크기가 달라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한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들 중에 심각한 음주문제나 가정폭력, 자녀학대, 인간관계 문제 등이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 PTSD를 치료 받기를 권한다. 자신이 힘들게 겪었던 이야기를 함께 하며, 주위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처럼 좋은 치료는 없다. 저자는 외상 당시의 분노를 몸으로 다시 한 번 경험해 보며, 기억을 떠올려 극복하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용기를 갖고 과거를 마주해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용기 가정폭력 자녀학대 일생 연구진로 유무로 상처

2022-06-02

[오픈 업] 여권 신장의 전환점 ‘타이틀 나인’

얼마 전 딸네 부부 대신에 운동 경기가 있는 학교에 손녀를 데리러 갔다. 운동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경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스포츠에 열중하는 남녀 다인종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와 경쟁 상대 선수에게도 응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0여년 전, 뉴욕타임스는 스포츠 활동이 여학생들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도했다. 여학생들의 교육열을 높여 학교 성적이 좋아진다고 한다. 자신감도 생기고, 취직률도 높아지는 반면 비만증, 10대 임신, 우울증 등은 대폭 내려간다고 한다.     지금은 각종 스포츠나 경기에서 남녀의 차별이 없다. 많은 여성들이 여러 스포츠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하고 있다.     남녀가 평등하게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공정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선구자들 덕분이다. 그들이 겪은 시련은 적지 않았고, 불공평이 시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국대학스포츠연합(NCAA)의 보고서에 따르면 56년 전인 1966~1967년 사이에 등록된 여자 대학생 운동선수는 1만5182명에 지나지 않았고, 남자 선수들은 10배나 되는 15만1918명이었다.     1972년 제정된 남녀교육평등법인 ‘타이틀 나인(IX)’ 덕분에 이 같은 불균형은 많이 개선됐다. ‘타이틀 나인’은 50년 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한 법이다. ‘1964 민권법’인 ‘타이틀 세븐(VII)’을 보강한 것이다. 인종, 민족, 출신국, 종교, 성별 등에 대한 차별을 불법화한 기념비적 법안 ‘타이틀 세븐’에는 아쉽게도 기회균등의 교육에 관한 조항이 빠졌다. 그래서 8년 후 1972년 교육 수정안이 만들어졌다. 그  일부가 타이틀 나인이다.     타이틀 나인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기관은 어떠한 형태로도 성차별을 할 수 없다는 법이다. 초안은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상원의원이었던 일본계 3세 펫지 다케모도 밍크가 이디트 그린과 함께 발의했다.     하와이 출신인 그녀는 여러 차례 상원의원을 지냈다. 원래 희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지만 원서를 제출한 22개 의과대학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여자 또는 아시안이라서 거절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결국 그녀는 불평등한 세상을 고치려고 법학대학에 진학했고 법조인으로서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색인종 여성들의 리더십이 돋보이고 있다.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233년 만에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연방대법관이 된 커탄지 브라운 잭슨, 109년 전 설립된 연방준비제도에 최초로 영입된 흑인 리사 쿡 미시간대학 교수가 바로 그들이다.     어쩌면 카말라 해리스, 커탄지 잭슨, 리사 쿡 세 여성들은 ‘타이틀 세븐’과 ‘타이틀 나인’의 수혜자일지도 모른다. 이 두 법안으로 미국은 많은 발전을 할 수 있었고 현재도 발전하고 있다. 지금은 단순히 남녀의 평등성만 뜻하는 타이틀 나인이 아니라 지난 50년 동안 변화되어 온 사회상에 걸맞게 성소수자 보호를 포함하는 평등성이 이 법의 또 다른 해석이다. 조만간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대에 맞는 조항을 넣어 보강할 것이라고 한다.   다인종 여학생들이 참여했던 손녀의 운동 경기는 더욱 공평해질 미래 사회의 모습을 암시했다. 남녀, 인종에 상관없이 앞으로 더 많은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될 것이다. 또 운동으로 단련된 우수한 인재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류모니카 / 종양방사선전문의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전환점 타이틀 타이틀 세븐 타이틀 나인 유색인종 여성

2022-05-22

[오픈 업] ‘대인공포’의 굴레를 벗어난 소녀

사회불안장애(social anxiety disorder) 또는 대인공포증은 대개 8세부터 15세 사이(평균 13세)에 많이 생기는 불안 증세다. 사람이 많은 곳이나 모르는 사람이 있는 곳에 가면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을 사람들이 발견해 흉을 보거나 또는 나쁜 소문을 낼까 두려워 피하는 장애다. 선천적으로 수줍음이 많거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기질은 이 병과 다르다. 기질은 자라면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과 질환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앓는 음주벽과 우울증 다음으로 사회불안장애는 흔하다.     백인의 7%에서 사례가 발생하지만 아시안은 훨씬 빈도가 낮다. 아시안은 고통을 받으면서도 불평을 하지 않기 때문에 통계에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카이저 병원에서 근무할 때 15세의 중국인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찾아온 적이 있다. 대부분 미성년 환자는 엄마와 동행하는데 소녀는 늘 아버지와 함께 왔다.     머리가 비상하고 매사에 열심인 그녀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1년 전부터 도시락을 손도 대지 않고 집에 가져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먹는 모습을 다른 아이들이 보고 흉을 볼까 봐 먹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도서실이나 다른 장소에서 혼자 먹는 것을 부모가 권하자 딸은 “친구가 없어서 혼자 먹는 모습을 누가 보면 너무 창피하다”며 울었다.     수업 발표시간에는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흐르며 말을 더듬게 돼 학교생활이 괴로웠다. 발표할 과제가 주어지면 열심히 준비하지만 정작 발표 날에는 너무 무섭고 불안해 결국 결석을 했다.   그 후 계속되는 등교 거부로 학교에서 정신과 감정을 요구하게 됐다. 가족력을 보니, 가정주부인 소녀의 어머니는 심한 사회공포증으로 고생하고 있고, 외할머니는 고소공포증을 호소했다. 친족에게 이 병이 있는 경우 2~6배로 발병 위험이 높다.   필자는 우선 어머니가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글쓰는 모습을 보고서 흉을 볼까 봐 수표에 사인하는 것도 거부한다고 한다.     소녀의 학교에 병명과 치료 계획을 알린 뒤 우선 학교가 환자를 위해 할 일들을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환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는 동안 최대한 협조할 것 ▶학교 상담사로부터 정기적인 상담 치료를 받게 할 것 ▶악물 치료에 의한 부작용이나 증세의 악화 등이 있을 경우 치료팀과 연락하고 대화를 나눌 것 ▶숙제의 분량을 증세에 맞추어 조절해 줄 것 ▶심한 불안감 때문에 교실에 못 있는 경우 도서실이나 간호실을 이용하도록 허락할 것 등이다.     환자와 부모의 허락을 받은 뒤에 항우울 제 겸 항불안제인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중에서 렉사프로를 매일 일주일간 복용하도록 했다. 아무런 부작용이 없고 환자가 잘 적응하는 것을 보고 2배로 올려서 매일 복용하자 약 2주  지난 뒤에 약간의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상담 치료사에게 알아보니 출석률도 좋아졌고 가장 기쁜 것은 친구가 생겨서 같이 점심식사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환자에서 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불안증세는 치료에 잘 반응한다. 바람직한 치료 방법은 심리적, 신체적, 환경적, 영적  등 모든 분야를 동시에서 시행하는 것이다.     소녀의 경우 상담치료로 자존감을 높이고, 친구 사귀는 방법도 배우며, 신체적으로는 운동과 함께 건강한 식단을 권했다. 또한 두뇌 화학물질의 균형을 맞추어 주는 항우울증제와 항불안제 약물치료, 중요한 환경인 가정에서 어머니의  행복한 감정 상태 유지, 학교 생활의 정상화, 마지막으로 영적인 안정감을 갖게 해주는 요가나 명상의 기회를 갖도록 했다.     6개월간의 치료를 거쳐 소녀는 다시 웃음은 물론 친구와 좋은 성적을 되찾았다. 필자가 젊은 수련의들에게 아동 및 청소년 정신과 전공을 택하라고 추천하는 이유 중에는 이 소녀 같이 자랑스러운 환자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대인공포 굴레 상담 치료사 항불안제 약물치료 가정주부인 소녀

2022-05-11

[오픈 업] 연명의료 의향서와 준비하는 죽음

드디어 미루었던 일을 했다. 숙제를 끝내고 나니 후련하다.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숙제는 우리 부부가 지낼 마지막 ‘집’을 사는 일이었다.     집을 사기로 마음을 먹고 어느 동네에 살지, 어떤 크기로 살지 의논하고, 직접 방문해 보니 좋았다. 즉시 계약서에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쁘기까지 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노력하면 대부분 해낼 수 있는 것 또한 세상 일이다. 그러나 부모가 나에게 묻지 않고 나를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일, 세상과 하직하는 날짜를 조물주께서 나에게 의논하지 않고 정하시게 될 상황, 그런 일이 벌어진 다음, 영이 떠나버린 나의 몸을 내 자신이 처리하고 떠날 수 없다는 불가피한 사건…. 이 세 가지는 이리저리 들여다보아도 불공평하다.     모든 사람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세상에 온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한다. 간혹 피할 수 없는 불상사를 당하기도 한다. 내가 당할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건강할 때 정신이 있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를 만들어 놓는 것은 강조가 필요 없을 만큼 중요하다.   예기치 않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고, 뇌출혈이나 뇌일혈로 기억상실증, 실어증이 올 수 있고, 때로는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 의향서가 있으면 배우자나 자녀들뿐 아니라 의료진이 큰 부담 없이, 지체하지 않고 의향서에 명시한 대로 원하는 치료를 할 수가 있다.     만약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치자. 사고로 또는 4기 뇌암에 걸려서 불치 상태일 경우, 생존 확률이 낮아도 몇 달 동안이지만 코에 낀 고무 호수를 통해 배달되는 음식으로 연명하는 것을 원할 것인가? 답은 물론 여러 가지다. 많은 경우 가족들의 의견 또한 다르다. 100% 동의를 받아내기 어렵다.     장기이식 기부자로 등록된 것을 가족들이 모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의향서가 의료진의 치료 방침을 결정해 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어의 선택이 조금씩 달라 사전 의향서, 사망선택 유언장, 건강관리 의향서, 항구적 대리 위임장 등으로도 불리는데 기본적으로 뜻은 같다. 변호사에게 위임해서 종이로 작성해 의료 차트와 유언장에 함께 철해 놓는 것이 상례다. 또 가족들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곳에 놓아 두는 것을 추천한다.     건강상태는 변하기 때문에 적어도 매 10년마다 아니면 변동사항이 있거나 가족 상황이 바뀔 때 새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상황의 변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혼이나 가족 구성원이 사망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참고로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온라인 서류를 작성해서 공증 받아 보관해도 된다. 한국어로 된 서류도 온라인에 있다.   내가 마지막 누울 ‘집’을 마련하는 것에 오랜 시간을 끈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성인 37%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준비해 놓았고(2000~2015년 79만6000명 대상 설문 조사), 55%가 유언장 없이 죽는다고 한다. (2016년 기준)   사망 후, 유족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장례절차이다. 장지가 준비되지 않았을 경우, 유족들은 서둘러 마땅한 장소를 찾아야 하고 목돈을 지불해야 하는 등 세부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목록이 적지 않다.     숙제로 남아 있던 내가 영원히 쉴 집, 나의 새집은 지금 살고 있는 LA에 위치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가깝다. 겨우 길이 12인치에 폭 24인치의 작은 봉안당이다. 내가 쉴 집을 산 것은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연명의료 의향서 연명의료 의향서 사전 의향서 가족 상황

2022-05-04

[오픈 업] 연명의료 의향서와 준비하는 죽음

드디어 미루었던 일을 했다. 숙제를 끝내고 나니 후련하다.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숙제는 우리 부부가 지낼 마지막 ‘집’을 사는 일이었다.     집을 사기로 마음을 먹고 어느 동네에 살지, 어떤 크기로 살지 의논하고, 직접 방문해 보니 좋았다. 즉시 계약서에 서명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기쁘기까지 했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지만 노력하면 대부분 해낼 수 있는 것 또한 세상 일이다. 그러나 부모가 나에게 묻지 않고 나를 세상으로 데리고 나온 일, 세상과 하직하는 날짜를 조물주께서 나에게 의논하지 않고 정하시게 될 상황, 그런 일이 벌어진 다음, 영이 떠나버린 나의 몸을 내 자신이 처리하고 떠날 수 없다는 불가피한 사건…. 이 세 가지는 이리저리 들여다보아도 불공평하다.     모든 사람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세상에 온다. 그래도 우리 모두는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한다. 간혹 피할 수 없는 불상사를 당하기도 한다. 내가 당할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건강할 때 정신이 있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를 만들어 놓는 것은 강조가 필요 없을 만큼 중요하다.   예기치 않던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고, 뇌출혈이나 뇌일혈로 기억상실증, 실어증이 올 수 있고, 때로는 치매에 걸릴 수도 있다. 의향서가 있으면 배우자나 자녀들뿐 아니라 의료진이 큰 부담 없이, 지체하지 않고 의향서에 명시한 대로 원하는 치료를 할 수가 있다.     만약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치자. 사고로 또는 4기 뇌암에 걸려서 불치 상태일 경우, 생존 확률이 낮아도 몇 달 동안이지만 코에 낀 고무 호수를 통해 배달되는 음식으로 연명하는 것을 원할 것인가? 답은 물론 여러 가지다. 많은 경우 가족들의 의견 또한 다르다. 100% 동의를 받아내기 어렵다.     장기이식 기부자로 등록된 것을 가족들이 모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의향서가 의료진의 치료 방침을 결정해 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단어의 선택이 조금씩 달라 사전 의향서, 사망선택 유언장, 건강관리 의향서, 항구적 대리 위임장 등으로도 불리는데 기본적으로 뜻은 같다. 변호사에게 위임해서 종이로 작성해 의료 차트와 유언장에 함께 철해 놓는 것이 상례다. 또 가족들이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곳에 놓아 두는 것을 추천한다.     건강상태는 변하기 때문에 적어도 매 10년마다 아니면 변동사항이 있거나 가족 상황이 바뀔 때 새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 상황의 변화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혼이나 가족 구성원이 사망한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참고로 변호사에게 의뢰하지 않고 온라인 서류를 작성해서 공증 받아 보관해도 된다. 한국어로 된 서류도 온라인에 있다.   내가 마지막 누울 ‘집’을 마련하는 것에 오랜 시간을 끈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성인 37%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준비해 놓았고(2000~2015년 79만6000명 대상 설문 조사), 55%가 유언장 없이 죽는다고 한다. (2016년 기준)   사망 후, 유족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장례절차이다. 장지가 준비되지 않았을 경우, 유족들은 서둘러 마땅한 장소를 찾아야 하고 목돈을 지불해야 하는 등 세부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목록이 적지 않다.     숙제로 남아 있던 내가 영원히 쉴 집, 나의 새집은 지금 살고 있는 LA에 위치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자주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가깝다. 겨우 길이 12인치에 폭 24인치의 작은 봉안당이다. 내가 쉴 집을 산 것은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연명의료 의향서 연명의료 의향서 사전 의향서 가족 상황

2022-05-02

[오픈 업] 아직도 남아 있는 4·29의 상흔

 2001년 9월 11일, 뉴욕 시민들은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비행기 테러 공격으로 무너져 내리는 장면이었다. 건물 붕괴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가 2996명이었고 부상자도 약 2만5000명에 달했다.     이 같은 참극이 발생하면서 많은 정신과 의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우려했었다.     외상성 사건(trauma) 이후에 반복적으로 침습하는 고통스러운 기억, 그와 관련된 악몽, 똑같은 사건이 재연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행동하게 되는 해리성 반응( Flash back), 더 이상 행복·만족·사랑을 경험할 수 없는 부정적인 기분 등이 PTSD의 주요 증상이다.     테러 이후 정신과 의사들은 뉴욕 초등학교들을 찾아갔다. 종이와 크레용을 주고서 아이들에게 그 당시의 장면을 기억나는 대로 그려 보라고 했다. 이는 아이들이 당시의 기억을 ‘회피’하는 대신에 그 힘들었던 사건 속으로 들어가 재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건물이 무너질 당시의 무섭고 공포스러웠던 감정들을 꾹 눌러 감추는 대신에 아이들이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교사와 사랑하는 친구들, 전문의 등의 격려 속에서 그 끔찍했던 장면들을 그리며 자신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30년 전 4월 29일을 우리 한인들은 잊지 못한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 친구들이 땀흘려 마련한 생활의 터전인 업소와 건물들이 아무 이유 없이 폭도들에 의해 불에 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폭도들로부터 주민들을 지켜주어야 할 경찰은 방관했다. 파괴와 방화가 일어나고 도난이 자행되는 현장에 경찰은 없었다. 경찰은 폭도들의 파괴 행위가 없는 백인 지역을 예방 차원에서 지키고 있었다.     당시 총성이 요란했던 LA다운타운에서 신발 소매업을 했던 필자의 시동생은 30대의 가장이었다. 준비한 총을 들고 어렵게 마련한 가게의 지붕으로 올라가 방화범으로부터 업소를 지켜야만 했다. 경찰이 보호해주지 않는 무법천지의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는 자구책이었다.     많은 한인들이 자신의 업소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이러한 행동을 주류언론은 한흑간의 갈등으로 왜곡해 보도했다. 4·29폭동 이후 많은 한인들이 LA에 환멸을 느껴 타주로 이주하기도 했다. 한인들은 혈압과 맥박이 심하게 오르고, 얼굴에 진땀이 흐르며, 소화불량이 심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증상을 경험했다. 작은 소리에도 기겁을 하며 놀라 공포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자기 몸에서 떠나 천장에서 내려다 보는 것 같은 해리 현상을 경험한 한인도 있었다. 자신이 항상 있던 곳이 마치 다른 사람의 집 같이 느껴지는 비현실감을 경험하기도 했다.     가게가 불타고 있을 때의 뜨거운 열기가 마치 현재에 다시 일어나는 것처럼 몸에 뜨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즉 과거에 자신도 모르게 느꼈던 생리적, 감정적 반응이 그대로 다시 느껴지는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이나 타인, 세상에 대한 믿음을 갖기 힘들기 때문에 ‘세상 아무도 믿을 수 없어’ ‘내가 바보야’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커져 공포, 경악, 화, 죄책감, 수치감을 느끼기도 한다. 간혹 공격적이 되어 가정폭력을 일으키거나 싸움을 한다.     4·29폭동 30주년이 다가온다. 아직도 당시의 기억 때문에 PTSD를 겪는 환자들이 있다. 함께 모여서 자신들의 상처를 이야기 하거나, 연극으로 표현하거나, 그림이나 글로 나누는 것은 어떨까. 정신상담 전문가와의 개인 또는 집단 치료를 통해 당시의 기억을 극복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같은 항우울제도 크게 도움이 되니 전문의를 찾아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30년 전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남아 상흔 해리성 반응 친구들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

2022-04-20

[오픈 업] 늘어나는 나이, 줄어드는 신체

 언니를 반년 만에 만났다. 10년 손위인 언니는 미국 밖에서 1년 중 몇 달을 지낸다. 언니가 갑자기 작아 보였다. 내가 성인이 됐을 때, 언니는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컸다. 형제 중에 키가 제일 작았던 나는 가끔 ‘스라소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언니가 늘 나를 내려다보곤 했는데, 이번에는 언니와 내가 비슷한 높이에서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스라소니’는 식구들이 내 체구에 빗대 불렀던 별명이었다. 평안도에서 이 말은 ‘못난 호랑이 새끼’를 뜻한다. 스라소니는 중형 고양잇과에 속한 포유동물로 중앙 유럽, 동아시아에 살고 있다.     부모님이 평안도 출신이어서 언어, 음식을 포함한 생활 문화가 평안도 식이었다. 평안도 식이란 이 경우 직설적이고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키 작고 못 생기고, 암팡지다고 나를 그리 불렀을 것이다.     나를 스라소니라고 놀리던 언니가 스라소니만큼 키가 줄었다. 나는 언니가 칼슘과 비타민D를 먹는지, 운동은 하는지 궁금했다. 언니는 골다공증으로 키가 줄고 허리가 굽은 것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오고 있었다. 골다공증은 뼈가 부러지거나, 허리가 굽거나, 허리가 아프게 될 때까지 인식하지 못하는 병이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병(silent disease)’이라고 부른다.   코로나19가 지난 2년 동안 세계적으로 약 4억7000만 명을 감염시켰다. 골다공증도 이와 다를 바 없이 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50세 이상 여성의 21%, 남성의 6%가 골다공증을 갖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세계 평균보다 많아, 여성의 35.5%, 남성의 7.5%가 골다공증이다.     골다공증은 골절의 전조이다. 세계적으로 골다공증 인구 5억 명 중, 890만 명이 한 해에 골절돼 수술을 받기도 한다. 또한 한 번 골절상을 겪은 사람들이 1년 안에 약 6.6%가, 2년 안에 12%가, 4년 안에 20.9%가 또 뼈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겪는다. 흔히 골절되는 부위는 엉덩뼈, 등뼈, 손목뼈 등이다.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로 겪는 고통은 심하다. 수술 후 재활에도 시간이 무척 걸리고 힘들 뿐 아니라 삶의 질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치료와 재활에 들어가는 재정적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조금 오래된 통계(2008년~2013년)이지만 골절 환자 1인당 메디케어 비용은 평균 4만5000달러로 나타났다.     골다공증은 칼슘과 비다민D 섭취, 활동적인 생활습관, 과음이나 흡연 자제 등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기저질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를 장기간 복용해야 한다거나, 소장의 흡수기능이 저하된 경우, 가족력이 있는 경우 잘 걸린다. 체중이 평균치에 못 미치게 마른 사람, 백인 여성, 70세 이상의 남성도 위험 그룹에 속한다.   골다공증 예방에 앞장선 메디컬 그룹으로 카이저 병원이 모범 케이스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이 발표한 논문을 간추려 정리해 보면 주치의는 예외 없이 50세 이상 환자들에게 골밀도(bone density) 테스트를 받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치료 또는 예방 프로그램에 보낸다. 치료는 주사로 하는 경우도 있다. 골다공증의 예방은 획기적인 예방 의학의 성공적인 사례로 보인다.   남한의 현재 남성 평균키는 100년 전 조선 때보다 15㎝가 더 큰 174.9cm이고, 여성은 20cm 더 큰 162.4cm라고 한다. 참고로 조선 시대의 키에 대한 정보는 서울대학 해부학팀이 16세기부터 19세기 동안 살았던 썩지 않은 성인 116명의 대퇴골 길이를 기본으로 예측한 숫자이다.   한국인에게서 스라소니는 점점 사라지는 것 같지만 골다공증의 예방과 홍보는 절실해 보인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나이 신체 골다공증 예방 골다공증 인구 예방 프로그램

2022-04-11

[오픈 업] “우울증 아내에게 어떤 책이 좋을까요”

 우울병을 보이는 아내를 위해 이런 질문을 하는 착한 남편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 우울병은 본인은 물론 가족을 힘들게 만드는 고약한 병이다. 우울증 환자는 희망을 잃고, 슬픈 기분이 거의 매일 2주 이상 계속되며 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의학적 원인이 없는 상태에서 기력이 약해져 피곤하고, 입맛이 떨어지며 잠을 잘 수가 없다.(청소년이나 중년 여성에서는 반대로 식욕이 왕성해지고, 너무 많이 잠을 자는 바람에 비만이 되기도 한다)     마음과 몸의 변화뿐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에도 지장을 준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이나 공부를 못하고 쉬운 결정도 내릴 수 없다. 단순히 ‘정신과적 병’이 아니라 온몸의 질병인 셈이다.     이런 아내를 둔 남편들의 경우 직장 생활에 종종 지장을 받는다. 아이들은 “내가 엄마에게 무얼 잘못했을끼?” “엄마는 항상 찡그리며 나를 보고 있어. 미워하나 봐”등 자기중심적인 의문을 가지며 우울증세를 보일 수 있다.   아내의 병을 이해해 환자를 돕겠다는 남편을 만날 때 내 기쁨은 크다. 이럴 때 나는 데이비드 번스 박사의 ‘필링 굿(Feeling Good)’이라는 책을 권한다. 그는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인지행동치료법(CBT)의 창시자 에런 벡 박사로부터 인간의 생각이 감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할 때 환자의 감정에 좋은 변화가 오는 것을 목격했다.     책의 한 사례다. 소아과 의사가 심한 우울증세와 자살 충동 때문에 그를 찾아왔다. 최근에 자살한 자기 동생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심한 죄의식을 느끼며 자신도 따라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고 있었다. 번스 박사는 환자에게 “자신의 잘못으로 동생이 죽었다”는 생각 대신에 “원인 모를 이유로 동생이 죽었다”라고 생각을 바꾸라고 했다. 그 후 환자는 우울증세가 많이 호전됐다.     CBT, 상담치료와 함께 정신과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많다. 우울병 때문에 식욕을 잃거나(또는 많아지거나), 전해질이나 지방대사에 이상이 오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약물치료는 필수다.     그러나 많은 정신과 환자들은 잘못된 정보나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약물사용을 거부한다. 30대 초반의 여성 환자가 극심한 공황장애와 우울병으로 번스를 찾아왔다. 그녀는 항우울제나 다른 약품들을 거부했다. 그녀는 빨간색과 노란색의 두 가지 약을 번스 박사로부터 받았다. 하나는 진짜 약이고, 하나는 밀가루로 만든 위약이었다. 의사는 두 가지 다 천천히 양을 올리며 복용하라고 지시했다.     몇 주 후 어느 날 그녀는 심한 부작용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았다. 그간 두통, 구역질 등으로 고생했다는 환자의 불평에 번스는 두 가지 약 모두가 위약이라고 말했다. 즉 환자는 자신이 상상했거나 잘못 들었던 부작용 등에 집착하면서 이를 몸의 증상으로 경험한 것이다. 정신과 약품에 대한 자신의 불안감을 깨달은 후에 환자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됐다.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나는 ‘다중 치료(biological-psychological-social- spiritual)’를 권한다. 육체적(약물, 운동, 식사), 심리적(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함), 사회적(가정, 직장, 학교, 지역 사회 협조) 그리고 영적인 도움을 동시에 받으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우울증 아내 우울증 아내 우울증 환자 정신과 환자들

2022-03-16

[오픈 업] '국제 여성의 날'을 맞으며

 오늘(8일)은 ‘국제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친숙한 기념일은 아니지만 세계 인구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여성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업적을 기리는 날이다.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찾고, 남성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분투해서 이뤄낸 역사적인 날이기도 하다.     국제 여성의 날의 출발 동기는 지역별로 다르다. 미국의 경우는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작업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러시아와 독일은 정치적인 행사에서 여권의 중요성을 선포하면서 여성 권익 옹호 역사가 시작됐다.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체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모든 국가에서 여성의 권리를 외치는 '여성의 날'행사 개최를 제안했다.     투표권이 여성의 권리를 공인하는 중요한 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여성투표권은 주었다가 빼앗은 경우도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여성 투표권을 일찍이 허용했던 뉴질랜드, 하와이 왕국, 미국의 와이오밍주가 그랬다. 참고로 북한은 1945년, 남한은 1948년, 중국은 1947년에 여성 투표권이 주어졌다고 기록돼 있다.     여권이 종교적인 의미에서 현대화하지 못한 이슬람 국가들은 최근에 와서 여성의 투표 권리를 허락했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은 사실상 투표의 의미가 거의 없다. 모두 왕국이기 때문이다. 지방행정에 관련된 사항을 투표로 결정하는 경우가 있지만 드물다.     정치 이외에도 과학, 의학, 예술에 기여했던 훌륭한 여성들을 기억해 보자. 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들, 손주들과 이런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이다.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 이민자가 된 물리학자 마리 큐리가 있다. 그녀의 공적으로 오늘날 방사선을 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암을 완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참으로 획기적인 공헌이다.   또 현대 간호학의 선구자이었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가 소명을 이행하는 기본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동시에 통계학자이기도 했다. 몬테소리 교육 제도를 만든 이탈리아 출신의 마리아 몬테소리가 있다. 그녀는 의사이기도 했다. 또 DNA 이중나선을 찾아 낸 로잘린드 프랭클린, 신생아의 건강도를 재는 '아프가' 점수의 창시자 버지니아 아프가가 있다.     대단한 것을 발견하거나 발명하지 못한 필자이지만 과거의 여성들이 겪었던 것과 달리 나는 의학계에서 차별대우를 받은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것은 선배 여성들의 노고와 분투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라고 불이익을 당했다기보다는 여자라는 것이 장점이 되어 전문직 활동과 사회활동을 순조롭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 여성의 날은 3월 8일 하루지만 하루 만을 기념하지 말고, 매일 매일을 축하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집에서는 할머니 엄마, 딸, 손녀의 존재에 감사하면서, 집 밖에서는 여성 동료, 여성 선후배 등과 성별과 상관없는 동등한 협력을 통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겠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국제 여성 국제 여성 여성 투표권 여성 섬유노동자들

2022-03-07

[오픈 업] “우울증 아내에게 어떤 책이 좋을까요”

“우울병 아내에게 어떤 책이 좋을까요.”   우울병을 보이는 아내를 위해 이런 질문을 하는 착한 남편을 보면 감동을 받는다. 우울병은 본인은 물론 가족을 힘들게 만드는 고약한 병이다. 우울증 환자는 희망을 잃고, 슬픈 기분이 거의 매일 2주 이상 계속되며 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의학적 원인이 없는 상태에서 기력이 약해져 피곤하고, 입맛이 떨어지며 잠을 잘 수가 없다.(청소년이나 중년 여성에서는 반대로 식욕이 왕성해지고, 너무 많이 잠을 자는 바람에 비만이 되기도 한다)     마음과 몸의 변화뿐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에도 지장을 준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이나 공부를 못하고 쉬운 결정도 내릴 수 없다. 단순히 ‘정신과적 병’이 아니라 온몸의 질병인 셈이다.     이런 아내를 둔 남편들의 경우 직장 생활에 종종 지장을 받는다. 아이들은 "내가 엄마에게 무얼 잘못했을끼?" "엄마는 항상 찡그리며 나를 보고 있어. 미워하나 봐"등 자기중심적인 의문을 가지며 우울증세를 보일 수 있다.   아내의 병을 이해해 환자를 돕겠다는 남편을 만날 때 내 기쁨은 크다. 이럴 때 나는 데이비드 번스 박사의 '필링 굿(Feeling Good)'이라는 책을 권한다. 그는 펜실베니아대학에서 인지행동치료법(CBT)의 창시자 에런 벡 박사로부터 인간의 생각이 감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고 행동할 때 환자의 감정에 좋은 변화가 오는 것을 목격했다.     책의 한 사례다. 소아과 의사가 심한 우울증세와 자살 충동 때문에 그를 찾아왔다. 최근에 자살한 자기 동생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심한 죄의식을 느끼며 자신도 따라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고 있었다. 번스 박사는 환자에게 "자신의 잘못으로 동생이 죽었다"는 생각 대신에 "원인 모를 이유로 동생이 죽었다"라고 생각을 바꾸라고 했다. 그 후 환자는 우울증세가 많이 호전됐다.     CBT, 상담치료와 함께 정신과 약물치료가 필요한 환자도 많다. 우울병 때문에 식욕을 잃거나(또는 많아지거나), 전해질이나 지방대사에 이상이 오거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환자들에게 약물치료는 필수다.     그러나 많은 정신과 환자들은 잘못된 정보나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약물사용을 거부한다. 30대 초반의 여성 환자가 극심한 공황장애와 우울병으로 번스를 찾아왔다. 그녀는 항우울제나 다른 약품들을 거부했다. 그녀는 빨간색과 노란색의 두 가지 약을 번스 박사로부터 받았다. 하나는 진짜 약이고, 하나는 밀가루로 만든 위약이었다. 의사는 두 가지 다 천천히 양을 올리며 복용하라고 지시했다.     몇 주 후 어느 날 그녀는 심한 부작용을 호소하며 응급실을 찾았다. 그간 두통, 구역질 등으로 고생했다는 환자의 불평에 번스는 두 가지 약 모두가 위약이라고 말했다. 즉 환자는 자신이 상상했거나 잘못 들었던 부작용 등에 집착하면서 이를 몸의 증상으로 경험한 것이다. 정신과 약품에 대한 자신의 불안감을 깨달은 후에 환자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고 증상이 호전됐다.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나는 ‘다중 치료(biological-psychological-social- spiritual)’를 권한다. 육체적(약물, 운동, 식사), 심리적(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함), 사회적(가정, 직장, 학교, 지역 사회 협조) 그리고 영적인 도움을 동시에 받으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우울증 아내 우울증 아내 우울증 환자 우울병 아내

2022-03-06

[오픈 업] 개빈 뉴섬 주지사의 ‘난독증’

 노스할리우드의 한 초등학교에 얼마 전 낯선 남자가 찾아 왔다. 멋지게 생긴 이 남자는 ‘Ben and Emma’s Big Hit’라는 책을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나도 어릴 때 책을 읽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무리 천천히 읽어도 자꾸 틀리고, 또 소리 내 읽어도 끝나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고, 너무 창피해서 나중에는 학교에 가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어른이 된 지금도 무엇을 읽으려면 반드시 밑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그려서 표시를 하고, 다른 종이에 다시 정리해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공부를 해야 되는 셈이지요.”   아이들은 이 책을 쓰고, 또 자신들을 찾아온 남자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자기들이 보기에는 ‘바보 같고, 너무 부끄러움을 타서, 학교에서 늘 왕따를 당하는’ 개빈이라는 아이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를 그런대로 영리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서른 다섯살이 넘어서였습니다. 늘 열등감으로 시달렸어요.”     뉴섬 주지사가 어머니가 숨겨둔 학교 통지서에서 자신이 난독증(Dyslexia) 환자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그가 5학년 때였다. 그는 책 읽는 것을 죽도록 싫어했다. 인쇄된 글자를 발음하기가 어려웠고, 읽고 있는 동안에도 자꾸 딴 생각이 들었다.     14개월 어렸던 그의 여동생은 오빠 숙제를 도와 주려던 엄마와 오빠가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가 오빠가 울며 화를 내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엄마가 난독증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개빈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차별을 받거나, 아니면 그 병을 핑계로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까봐였다고 한다.   난독증은 특수학습장애(Specific Learning Disorder)의 일부로 정확하고 유창하게 단어를 읽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해독과 철자 능력의 부진을 특징으로 한다. 이 같은 학습장애는 생물학적 근원이 있는 신경 발달장애이며 유전적 영향이 크다.   말하기나 걷기가 뇌발달에 따라 자연이 획득되는 것과는 달리 학업기술(읽기, 쓰기 등)은 지도를 받아야 한다. 난독증을 포함한 특수학습장애는 정상적 형태로 학업 기술을 습득하는 것을 방해한다.   졸업 후 서너 가지 직종을 거친 후에야 뉴섬은 자신에게 다른 면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처럼 난독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금융인 찰스 슈왑, 버진그룹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등을 롤모델로 삼았다. 포도주 농장과 가게, 식당, 바, 호텔 등을 경영했다. 사업이 잘 돼도 그는 머리가 좋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2004년 최연소 샌프란시스코 시장에 될 때까지도 그는 열등감에 시달렸다.     뉴섬 주지사의 하루 일과는 아침 6시 그의 방에서 시작된다. 비서가 준비해둔 하루 일과를 먼저 한 번 읽는다. 그리고 나서 두 번 읽는다. 다시 세 번째  읽는다. 그 후 서서히 걸으면서 읽고, 밑줄을 그어 둔다. 약 두 시간을 이렇게 예습(?)을 한다. 그리고 노란 카드에 중요한 일정을 다시 옮겨 적는다. 차를 타고 목적지에 가는 동안에 다시 읽어보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기 때문에 다른 장애자들의 힘든 처지를 잘 이해한다. 그는 난독증 장애를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이제는 축복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장애자들을 찾아 여러 학교를 방문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난독증이나 수학 특수학습장애, 주의 산만 및 과잉행동 장애, 자폐증 등은 해당 어린이나 부모의 잘못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두뇌의 유전적인 영향 때문에 고통을 받을 때에는 즉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받게 해 아이 스스로 자신을 미워하거나, 세상을 멀리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 주어야 하겠다. 개빈 뉴섬 주지사에게 난독증이 축복이었던 것처럼 학습장애를 겪는 모든 어린이들에게도 극복의 축복이 내려지기를 바란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주지사 난독증 난독증 장애 수학 특수학습장애 학교 통지서

2022-02-23

[오픈 업] 한국어가 유엔 공용어가 됐다고?

“축하해, 한국어가 유엔 공영어로 채택됐대. 한국어 클래스를 정규학교에 넣느라 애써온 한국어진흥재단의 노력이 보탬이 된 것 같구나.”   한국 친구가 보낸 메시지다. 글과 함께 한글이 유엔 공용어로 추가됐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도 보내왔다. 기쁜 마음에 재빨리 동영상을 열었다. 아나운서의 말투와 소식의 전개방식에 전문성이 없었다. 한 시간 만에 또 다른 지인들이 같은 영상을 올렸다.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요즘처럼 난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쉽게 정보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고, 일반인들의 분별력도 높아지고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나도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영상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유엔이 채택한 공식 언어가 6개다. 유엔은 공식 언어와 활용 언어를 구별한 적이 있다. 1945년 초창기 유엔은 국제연합 헌장에서 5개의 공식 언어로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채택했고 그 후 아랍어가 더해져 6개가 됐다. 유엔 총회가 있을 때 연설 내용이 6개의 언어로 동시 통역되고 문서로도 작성된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처럼 공용어 이외의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6개 언어 중 하나로 미리 번역해 제출해야 한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것은 ‘보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부나 기관이 이를 쉽게 규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슈는 거짓 소식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짓 뉴스와  정보를 강력히 막고 정정해야 하는 곳은 의료 분야다. 증명되지 않은 거짓 의학 상식이 사기꾼과 돌팔이 의사들을 부추기고, 순진한 일반인들에게 해를 입힌다. 때로는 생명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횡행했던 거짓 정보, 특히 백신에 대한 유언비어가 좋은 예이다. 백신을 거부했던 유명 인사 중에는 코로나로 숨진 사람도 있다.     내가 경험했던 어린 환자의 슬픈 사연도 있다. 키모테라피는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백혈병을 완치시킨다. 한 젊은 부부가 백혈병에 걸린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다. 키모테라피로 하는 정통적 치료를 거부하고, 그들은 아이에게 레아트릴 (laetrile)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아이를 멕시코로 데리고 갔다. 레아트릴은 1845년 러시아에서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미국에는 1920년대에 알려졌다. 연방식품의약국(FDA)은 이 약물에 사이안화물이 들어 있어 일찌감치 사용을 금지했다. 소아암 전문의사가 법원에서 레아트릴 치료 금지 명령까지 받아냈지만 아이는 효과 없는 레아트릴 치료를 받다가 악화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젊은 부부가 당시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다. 요즘은 신문, 라디오, TV 이외에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북, 트위터, 틱톡, 핀터레스트, 스냅샷, 링크드인, 레딧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근거 없는 정보가 돌고 있다.     정보의 정확도를 판단하는 것은 그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중요한 결정과 관련된 정보를 접했을 때에는 귀찮고 힘들어도 시간을 내어 꼼꼼히 내용을 검토해 보기를 권한다. 류 모니카 / 한국어진흥재단이사장오픈 업 한국어 공용어 유엔 공용어 유엔 공영어 한국어 클래스

2022-02-16

[오픈 업] 한국어가 유엔 공용어가 됐다고?

“축하해, 한국어가 유엔 공영어로 채택됐대. 한국어 클래스를 정규학교에 넣느라 애써온 한국어진흥재단의 노력이 보탬이 된 것 같구나.”   한국 친구가 보낸 메시지다. 글과 함께 한글이 유엔 공용어로 추가됐다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도 보내왔다. 기쁜 마음에 재빨리 동영상을 열었다. 아나운서의 말투와 소식의 전개방식에 전문성이 없었다. 한 시간 만에 또 다른 지인들이 같은 영상을 올렸다. 가짜 뉴스였다.     가짜 뉴스, 거짓 정보가 요즘처럼 난무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예전보다는 쉽게 정보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는 장치들이 있고, 일반인들의 분별력도 높아지고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나도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영상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유엔이 채택한 공식 언어가 6개다. 유엔은 공식 언어와 활용 언어를 구별한 적이 있다. 1945년 초창기 유엔은 국제연합 헌장에서 5개의 공식 언어로 중국어,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채택했고 그 후 아랍어가 더해져 6개가 됐다. 유엔 총회가 있을 때 연설 내용이 6개의 언어로 동시 통역되고 문서로도 작성된다. 지난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처럼 공용어 이외의 말이 사용되는 경우는 6개 언어 중 하나로 미리 번역해 제출해야 한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것은 ‘보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부나 기관이 이를 쉽게 규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슈는 거짓 소식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짓 뉴스와  정보를 강력히 막고 정정해야 하는 곳은 의료 분야다. 증명되지 않은 거짓 의학 상식이 사기꾼과 돌팔이 의사들을 부추기고, 순진한 일반인들에게 해를 입힌다. 때로는 생명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횡행했던 거짓 정보, 특히 백신에 대한 유언비어가 좋은 예이다. 백신을 거부했던 유명 인사 중에는 코로나로 숨진 사람도 있다.     내가 경험했던 어린 환자의 슬픈 사연도 있다. 키모테라피는 부작용이 많기는 하지만 백혈병을 완치시킨다. 한 젊은 부부가 백혈병에 걸린 네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왔다. 키모테라피로 하는 정통적 치료를 거부하고, 그들은 아이에게 레아트릴 (laetrile)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아이를 멕시코로 데리고 갔다. 레아트릴은 1845년 러시아에서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미국에는 1920년대에 알려졌다. 연방식품의약국(FDA)은 이 약물에 사이안화물이 들어 있어 일찌감치 사용을 금지했다. 소아암 전문의사가 법원에서 레아트릴 치료 금지 명령까지 받아냈지만 아이는 효과 없는 레아트릴 치료를 받다가 악화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젊은 부부가 당시 어디에서 정보를 얻었는지 알 수 없다. 요즘은 신문, 라디오, TV 이외에도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북, 트위터, 틱톡, 핀터레스트, 스냅샷, 링크드인, 레딧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근거 없는 정보가 돌고 있다.     정보의 정확도를 판단하는 것은 그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중요한 결정과 관련된 정보를 접했을 때에는 귀찮고 힘들어도 시간을 내어 꼼꼼히 내용을 검토해 보기를 권한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이사장오픈 업 한국어 공용어 유엔 공용어 유엔 공영어 한국어 클래스

2022-02-13

[오픈 업] 사소할 수 없는 ‘마이너 필링스’

 미국 뉴욕시로 와서 정신과 1년차 수련을 마쳤을 때가 1974년이었다. 마취과 수련을 시작하려는 남편을 따라서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 시로 이사를 갔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툴레인 대학(Tulane University)의 정신과 2년차 수련의 과정을  지원했다. 대학에서도 빨리 수련의 숫자를 채울 목적에서였는지 인터뷰도 없이 받아들였다. 학교 옆에 위치한 대규모 군 재활병원 입원 병동에서 환자를 인터뷰했다. 진단이 끝나면 치료 계획을 세운 뒤 간호사, 사회 사업가 음악 및 미술 치료사 등의 전문가들과 함께 치료팀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툴레인 대학 교수와 함께 세미나를 열어 내가 담당한 환자에 대한 보고와 함께 다양한 정보를 나누었다.     어느 날 재활병원의 비서가 물었다. “닥터 정은 툴레인에서 2년차 수련의로 선발됐는데 왜 1년차의 일을 하세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같이 듣고 있던 이 대학 마일즈 교수가 정신과 과장에게서 알아본 결과는 너무나 황당무계한 인종차별 행위였다.     막강한 권위를 가졌던 정신과 과장은 정신과 및 신경내과 전문의로 정신분열증 분야의 대가였다. 과장의 비서인 남부 출신 백인 여성은 한번도 아시안 수련의를 본 적이 없었기에 1년차 위치로 나를 강등시켜 놓은 것이다. 닥터 마일즈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나는 2년차들이 일하는 툴레인 대학병원의 정신과 외래로 옮겨졌다.     그때 내가 느꼈던 불쾌하고 씁쓸하고 슬픈 감정들을 한인 2세 시인이며 수필가인 캐시 박 홍이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란 책으로 2020년 출판했다. 마이너 필링스는 ‘소수적’ 또는 ‘사소한’ 감정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차별의 감정들을 표출하고 있다. 그녀는 올해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2년차 수련의로서의 권리를 박탈해, 3개월이라는 기간을 다른 5명(모두 백인 남성, 남부의 하버드라 자칭하는 툴레인 대학 출신들)보다 뒤떨어지게 한 후에도 그들은 내게 사과 한마디 없었다. 그 뒤 나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감정이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솟아 올랐다. 이 책에 나온 몇 구절을 옮겨본다.     “미국에 사는 아시안들은 연옥(purgatory)을 방황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백인이 될 수도, 흑인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흑인으로부터는 불신을 받고, 백인으로부터는 무시를 당한다. 단 흑인을 억누르는 데에 사용되지 않는 한.” “우리는 수학 잘하는 중간 매니저로서 자본가들의 공장이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이다. 그러나 절대로 승진은 없다. 리더다운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시안은 이 나라에 1587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내전이 끝나고, 흑인들이 노예제도로부터 해방되자, 중국의 쿨리들이 들어왔다. 그들에 대한 기록이 없고, 인권이 없었으니, 그들은 없었다.”   아시안은 차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고 아직도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시선은 남아 있다. 아시안은 힘없고, 멸시당하는 인종이었으나 이제는 미국 사회에 우뚝 섰다. 인종에 상관없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간적 권리를 함께 향유하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마이너 아시안 수련의 정신과 과장 정신과 외래

2021-12-26

[오픈 업] 끊이지 않는 교내 총기난사

 학생 시절, 인권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세계 의학 연구를 선도하는 미국을 동경했다. 베이비붐 세대가 활발히 활동하던 1970년대에 도미했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미국의 어두운 일면을 이제서야 본다. 넘쳐나는 자유와 부유함이 굳건하지 못한 가정을 좀 먹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 공동체에서 건실한 시민이 되도록 차세대를 교육하지 못했기에, 이해할 수 없는 총기 사건이 학교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사건들은 우리 기성세대를 향해 부모로서의 자격이 미달이라고 질책하고 있다.     총기가 자동차 운전면허도 받을 수도 없는 연령대의 소년의 손에 쥐어지고, 소년은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동료 학생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지난달, 미시간주 고등학교에서 일어났던 총기 살인 사건이다. 14살, 16살, 그리고 두 명의 17살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빼앗긴 삶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   뉴욕타임스는 사건의 뒷이야기를 지난 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총을 쏜 15세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블랙 프라이데이에 총기 쇼핑을 갔다고 한다. 총기를 구입한 아버지는 소년에게 총을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넸다고 한다. 이 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총기를 아이에게 선물한 것일까. 더욱 끔찍한 것은, 이 소년이 범행을 저지르는 동안 엄마가 아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엄마는 ‘난 너에게 화나지 않았어’, ‘너는 걸려들지 않는 방법을 배워야 해’라고 썼다고 한다.     인간이 무기를 만든 것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때의 무기는 화살이나 칼이었다. 애초에는 동물이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정말 무기가 생계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나 하는 의심이 많이 든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화살은 양궁이라는 운동 종목에서 볼 뿐 사람을 위협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최첨단 살생 기구들이 사람들을 죽였고, 다치게 했다. 인류 역사에서 갖가지 명분으로 총기를 사용한 대량 살상이 정당성을 부여 받았다. 전쟁과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대량학살이 대표적이다.     미국에서는 자유롭게 총기 구매가 가능하고, 소유를 허용하다 보니 정신질환자 등에 의한 총격 사건이 발생하고 많은 희생자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총기소유 금지는 여전히 불가능하고 총기사건 예방책도 뚜렷한 것이 없다.     미국 인구가 약 3억3000만 명인데 무기는 사람 숫자보다 많은 3억9000만 정이라고 한다. 인구 100명당 120정의 무기가 있는 셈이다.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등에서는 일반 시민이 총을 소유하는 것이 헌법적 권리로 되어 있다. 총기폭력은 하루에 대략 300건 발생하고 약 100명이 목숨을 잃는다. 1년에 약 3만8000명이 죽는다. 이 숫자는 한국전 전사 미국인 3만3686명보다 더 많다. 3분의 1은 의도적인 총기살해이고 20%는 총기자살이다. 실수는 1%도 되지 않는다.     회계감사원(GAO)은 1년에 평균 10억 달러의 비용이 총기사고 부상의 초기 치료에 소요된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이는 재입원, 장기간 관리, 의사 비용 등을 포함하지 않는 액수다. 보험이 없는 경우로 계산해 보면, 미국인 1인당 250달러 정도를 이들의 치료에 지급해야 한다. 응급치료 후 장기간 치료와 재활에 필요한 액수를 합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귀중한 생명을 앗아갔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총기사고를 막기 위한 철저한 규제가 절실하다.  류 모니카 / 종양 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총기난사 교내 총기소유 금지 총기사건 예방책 총기가 자동차

2021-12-20

[오픈 업] 팬데믹에 고통 받는 청소년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13세 소년은 팬데믹 기간 동안 새벽 3~4시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누군가와 채팅을 했고 유튜브를 넘나들었다. 다음날 간신히 10시가 넘어 엄마의 성화로 일어나지만 줌으로 하는 학교 공부 시간에 졸기가 일수였다. 그러니 공부가 될 리 없었다.   등교가 가능해졌지만 소년은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부모와 언쟁을 하다 못해 결국에는 기물을 집어던지거나 방문을 부수었다. 공연히 말 잘 듣는 동생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위협을 일삼았다. 중간 이상을 지켜오던 학과 성적도 떨어졌다.     방과 후에 하던 운동이나 밴드 활동도 팬데믹 때문에 그만둔 뒤로는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으니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그러니 밖에 나가는 것을 더욱 꺼린다. 방에만 틀어박혀 있고 가족들과의 식사도 피한다.     지난 2년간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많은 청소년들이 부모에 이끌려 가정상담소로 필자를 찾아 왔다. 이들 중에는 부모로부터 주의 산만 및 행동 항진 증세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청소년들이 많았다. 부모나 자녀 모두 자신들에게 이런 질병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팬데믹 이전에는 매일의 생활에 규칙이 잘 형성돼 있었다. 등교하면 스케줄에 맞춰 체육, 일반 수업, 점심, 중간 휴식 시간 등이 빽빽하게 짜여져서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별문제가 없었다. 빈틈없는 규범에 맞추어서 몸도 마음도 긴장을 한다. 충분한 양의 뇌전파물질들, 특히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등이 분비된다. 게다가 방과 후에는 수영이나 축구, 오케스트라 연습 등으로 비어 있는 시간이 없다.     여아의 경우 10~12세, 남아는 12~14세에 사춘기를 맞는다. 이때 다른 포유류 동물처럼 인간도 성호르몬과 성장호르몬이 분비된다. 키도 큰다. 개중에는 1년에 4인치 이상 크는 변화로 성장통이 오기도 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급격한 변화는 극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휘몰아치게 한다. 예민해진 소녀들은, 쉽게 우울과 불안에 빠뜨리는 여성 호르몬(에스트로젠)의 분비로 월경도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과도한 감정들을 억제해주며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전두엽은 아직도 미숙한 상태다. 25~30세가 돼야 전두엽이 충분히 제구실을 하게 된다.     청소년들은 어정쩡하게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게 된다. 서구 문화는 청소년들이 독립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정체성을 찾느라 혼란스러운 청소년들에게 불어 닥친 팬데믹은 이들을 고립과 방황으로 내몰고 있다.     비벡 머티 연방 의무총감은 미국 청소년(젊은 어른들, young adults)의 심각한 정신 상태를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강조한다.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는 자살 미수 소녀의 숫자가 작년 봄에 비해 51%가 늘었다. 이들 4명 중 1명이 우울증상으로 고생하며, 5명 중 1명은 불안 초조를 느낀다고 한다. 머티 의무총감은 또한 주의산만증을 가진 젊은이들이 과도한 충동성과 분노조절 불능의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열쇠는 바로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데에 있다. 그동안 학교 교장실이나 정신과 의사의 오피스, 한숨 쉬는 엄마들이 있는 부엌에서 보이던 문제들이 이미 국가 전체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심리학자나 가정 치료사, 정신 치료 간호사, 정신과 의사, 학교 상담자 등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한인 이민자들을 위해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전문가이면 더욱 좋겠다.     마지막으로,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정신과 약물을 부모들이 덮어 놓고 기피해서 자녀들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차단하는 경우가 없기를 바란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청소년 고통 학교 공부 정신 상태 컴퓨터 게임

2021-12-13

[오픈 업] 한국어 배우기와 칠면조 굽기

 추사감사절에 우리 부부는 혼자 있는 조카, 다른 주에서 이날을 함께하려고 온 사위의 부모와 함께 큰 딸네 집에서 보냈다. 내가 젊었을 때는 큰오빠와 언니네가, 내가 중년이 됐을 때는 직접 추수감사절 상을 차렸다.   이때가 되면 갓난아이 큰딸과 우리 부부가 맞이했던 미국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이 생각난다. 남편과 나는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 의과대학에서 수련 과정을 이수하려고 도미했다. 매칭 프로그램으로 첫 번째 파견된 병원이 실망스럽게도 뉴욕 주에 있는 존슨시티라는 시골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 출신인 나에게 미국의 시골 생활은 상상했던 멋진 미국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또 친구나 친지가 가까이 없었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추수감사절이었지만 칠면조 요리, 호박파이는 만들 줄도 몰랐다.   덩그러니 우리 식구 셋이 맞이했던 첫 추수감사절은 서러울 정도로 쓸쓸했다. 그때 경험한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뼛속 깊이까지 골을 팠던 것 같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노숙자들에게 칠면조 요리 등을 제공하는 기관이 많다. 그러나 길에 나앉지는 않았지만 가난으로, 또는 가족 없이 홀로 살아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들고, 또 나누면서 지내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명절 때 오는 외로움은 타향살이 이민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계층에 많다. 우리 가족 중에도 객지에 나가 있는 조카네와 둘째 딸네가 타향살이 중이다. 마음에 걸렸다.   이들과 함께 지내려 추수감사절 이전에 더블린과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로 걱정이 많은 여행이었다. 다행히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코로나 감염 정도는 미국보다 낮았다.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 ‘EPIC’이라는 뮤지엄에 들렀다. 이민역사를 테마로 만든 곳인데, 내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어진흥재단이 새로 만든 이중언어(영어와 한국어) 교과서 이름과 같아서 반가웠다. 괜스레 우연 같지는 않았다. 이 방문 중에 더욱 놀란 것은 더블린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 반을 이끌고 있는 교사를 만났다. 7개의 정규 학교에서 400여명에게 한국어를 세계언어로서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우뚝 서는 기상이 있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라가 힘을 잃고, 속국이 될 때, 지배국이 속국의 말과 글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통상이다. 말과 글은 민족의 얼이기 때문에 말과 글을 말살시키면 민족정신은 약해지게 된다. 정체성은 흔들리고 지배국의 통제는 쉬워진다. 한국민은 일제 강점기 때 이에 저항해서 끈질기게 싸워왔다. 해방 이후 우리의 글과 말을 자유로이 쓰고 발전시키면서 부강한 나라가 됐다. 지금은 한글을 세계화할 때이다. 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의 노력은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를 넣는 일이다.   유럽에 살아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한민족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을 지닌 그들이지만 이민 1세들이 칠면조 굽는 문화를 익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습득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스페인에서 외로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1세들이 칠면조 문화에 적응하는 것과 2세들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것은 어쩌면 같은 맥락인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더블린 여행이었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과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배우기와 한국어 한국어 배우기와 한국어 클래스 칠면조 문화

2021-12-01

[오픈 업] 한국어 배우기와 칠면조 굽기

 추사감사절에 우리 부부는 혼자 있는 조카, 다른 주에서 이날을 함께하려고 온 사위의 부모와 함께 큰 딸네 집에서 보냈다. 내가 젊었을 때는 큰오빠와 언니네가, 내가 중년이 됐을 때는 직접 추수감사절 상을 차렸다. 몇 년 전부터 이 축제의 의무가 자연스럽게 큰딸에게 넘어갔다.     이때가 되면 갓난아이 큰딸과 우리 부부가 맞이했던 미국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이 생각난다. 남편과 나는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 의과대학에서 수련 과정을 이수하려고 도미했다. 매칭 프로그램으로 첫 번째 파견된 병원이 실망스럽게도 뉴욕 주에 있는 존슨시티라는 시골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 출신인 나에게 미국의 시골 생활은 상상했던 멋진 미국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또 친구나 친지가 가까이 없었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추수감사절이었지만 칠면조 요리, 호박파이는 만들 줄도 몰랐다.     덩그러니 우리 식구 셋이 맞이했던 첫 추수감사절은 서러울 정도로 쓸쓸했다. 그때 경험한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뼛속 깊이까지 골을 팠던 것 같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노숙자들에게 칠면조 요리 등을 제공하는 기관이 많다. 그러나 길에 나앉지는 않았지만 가난으로, 또는 가족 없이 홀로 살아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들고, 또 나누면서 지내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명절 때 오는 외로움은 타향살이 이민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계층에 많다. 우리 가족 중에도 객지에 나가 있는 조카네와 둘째 딸네가 타향살이 중이다. 마음에 걸렸다.     이들과 함께 지내려 추수감사절 이전에 더블린과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로 걱정이 많은 여행이었다. 다행히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코로나 감염 정도는 미국보다  낮았다.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 ‘EPIC’이라는 뮤지엄에 들렀다. 이민역사를 테마로 만든 곳인데, 내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어진흥재단이 새로 만든 이중언어(영어와 한국어) 교과서 이름과 같아서 반가웠다. 괜스레 우연 같지는 않았다. 이 방문 중에 더욱 놀란 것은 더블린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 반을 이끌고 있는 교사를 만났다. 7개의 정규 학교에서 400여명에게 한국어를 세계언어로서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우뚝 서는 기상이 있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라가 힘을 잃고, 속국이 될 때, 지배국이 속국의 말과 글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통상이다. 말과 글은 민족의 얼이기 때문에 말과 글을 말살시키면 민족정신은 약해지게 된다. 정체성은 흔들리고 지배국의 통제는 쉬워진다. 한국민은 일제 강점기 때 이에 저항해서 끈질기게 싸워왔다. 해방 이후 우리의 글과 말을 자유로이 쓰고 발전시키면서 부강한 나라가 됐다. 지금은 한글을 세계화할 때이다. 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의 노력은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를 넣는 일이다.     유럽에 살아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한민족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을 지닌 그들이지만 이민 1세들이 칠면조 굽는 문화를 익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습득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스페인에서 외로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1세들이 칠면조 문화에 적응하는 것과 2세들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것은 어쩌면 같은 맥락인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더블린 여행이었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배우기와 한국어 한국어 배우기와 한국어 클래스 칠면조 문화

2021-11-29

[오픈 업] 의사, 돌팔이, 사기꾼

코로나를 핑계로 진료 일선에서 물러나니 좋은 점이 많다. 예전에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빴다. 오락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거의 꼴찌에 자리했다. 나뿐 아니라 활동하는 연령대의 많은 여성이 그랬을 것이다.     이젠 크고 작은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사회봉사에 신경과 시간을 쓴다. 좋은 친구도 생겼다. TV다. 컴퓨터로 글을 쓰고, 일 처리를 하지만 TV는 다른 방법으로 나를 세상과 연결해준다.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넷플릭스를 통해 보았다. 데스게임이 소재인 드라마는 폭력과 욕설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빚에 쫓기는 신용불량자와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노인 등 소수자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드라마에는 빚을 지고 게임에 합류한 의사가 살인과 장기 매매의 하수인으로 나온다. 대부분 영화나 드라마는 의사들을 정의롭고 박애심이 많게 그린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장기 밀매에 협조하는 의사에 관한 내용이 현실성이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슬프지만 전혀 없는 일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의료 사고는 의도적이 아니고, 진단이나 치료과정 중에 생긴 사고로 생명을 잃거나 정신적·육체적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를 뜻한다. 한국말로 의인병(醫因症), 영어로는 ‘iatrogenic disorder’라고 한다. ‘iatro’는 의사처럼 치료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1920년대에 생긴 단어이다. ‘-genic’은 단어의 끝에 붙어 의미를 부여하는 말로 ‘생기다’, ‘발생하다’의 뜻이다. 합치면 ‘치료에 관련된 사람으로 인해 생긴’이라는 뜻이 된다.     이와 달리, 실력 없는 의사가 능력의 한계를 넘는 의료 행위를 하거나 이익을 목적으로 환자를 모으고 부정 의료행위를 하는 경우 전자는 돌팔이, 후자는 사기꾼이라 부른다.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고, 환자를 속이거나 악용해서 상처를 주는 불법행위를 하는 부류는 의사의 탈을 쓴 사기꾼이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소셜워커도 종종 법망을 피해 사기 행각을 한다. 최근에 개봉돼 호평을 받은 ‘퍼펙트 케어(I Care a Lot)’가 이 같은 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료 범죄를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인데, 재미있기보다는 불쾌했다.     며칠 전에 CNN은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거짓 정보를 퍼뜨린 유명 의사 4명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들이 퍼뜨리던 거짓 뉴스는 무서운 속도로 퍼졌다. 의료사기는 연방수사국(FBI)이 주와 지방 경찰, 사설 기관, 의료사기 예방단체, 보험회사 의료사기 적발 부서 등과 협력해서 수사한다. 올해 10월 한 달 동안 11건을 적발했다고 한다. 사기꾼에게 병원도 메디컬 그룹도 환자도 쉽게 속는 세상이다.     캐나다 맥길 대학교 ‘과학사회 사무실(Office for Science and Society)’은 이러한 거짓 과학·의학 정보를 분석해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이미 올해 1월에 코로나 백신 관련 거짓 정보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이들의 모토는 ‘난센스에서 센스를 분리한다’는 것이다. 개인들도 ‘난센스’를 구별하고 ‘센스’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돌팔이 사기꾼 의료사기 적발 의료사기 예방단체 유명 의사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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