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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정신병에도 단계가 있나요?

최근 한국의 한 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28%가 정신과 질환이 있다고 한다. 이 결과는 미국과 거의 동일하다. 즉, 한국이나 미국이나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진단이 가능한 정신적 문제를 가진 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병은 걸리지 않는 것이 최상이고, 만일 걸렸다면 조기 진단을 통해 신속히 치료하는 것이 본인은 물론 가족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방법이다. 비록 늦게 발견이 되었다 하더라도,병의 정체를 알면 치료도 쉽고 환자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인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OECD 국가들의 평균 보다 두 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미국 정신과 교과서에서 발견한 것이 2년 전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에 따르면 본인의 환자들 가운데 불면증, 공황장애,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정신과 치료를 권하면 대부분 강하게 거부한다고 했다.     “누구를 미친 사람 취급하느냐?”며 환자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펄펄 뛰면서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는 내게 정신과 질병에 관한 교육용 유튜브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환자나 가족들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필요한 정신과 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이라는 필자의 유튜브 채널이다.     정신과 질병을 위험도 순위에 따라 세 개의 단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신증(psychosis), 소위 “미쳤다”라고 불리는 단계로 개인의 생각과 외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매우 위험해질 수 있는 단계다. 예를 들어 자동차 가 지나가며 경보음을 울렸다고 가정하자. 일반인이라면 친구나 이웃이 반가워 보내는 신호이거나, 차도에 너무 가까이 있어 위험하다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정신증 환자라면, ‘나를 감시하는 경찰들끼리 서로 보내는 신호’라고 믿어 무기로 방어 태세를 취하거나 급히 도망을 갈 수도 있다. 조현병, 조울증, 심한 주요 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에게 이런 증세가 올 수 있다. 그리고 이 상태는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이다. 빨리 입원을 시키든지,  적당한 약물 치료와  상담, 그리고 병에 대한 교육을 환자와 가족에게  해야 한다.     이 밖에 술이나 다른 중독 물질 때문에 오는 금단  증상, 또는 환각 상태에서도 비슷한 정신증을 일으킨다. 이 경우에는 정신적인 치료와 함께 내과적 응급 처치도 필요하다. 만성적 간 질환이나 신부전증 때문에 체내 노폐물이 축적되어 두뇌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또 알츠하이머나 순환성 치매 환자들의 경우에도 두뇌 세포의 병변에 의해서 정신증이 올 수 있다. 판단이나 감정 조절 등을 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단계는 ‘노이로제’라고도 불렸던 각종 불안이나 강박 증세, ‘신병’으로 불리는 컬처 바운드 신드롬(culture-bound syndrome)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원인은 모르지만 세상의 종말이 올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상태를 경험한다. 어린 시절부터 예민했던 경우도 있고, 각종 정신적 ,육체적 외상 경험을 한 후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이 단계의 환자들은 상담 치료나, 약물치료에 잘 반응한다.   셋째는 ‘적응 문제(Adjustment Disorder)’로  새로운 환경이나, 어려움에 부딪힌 경우 경험하는 불안감, 우울감, 또는 행동의 변화 등이 여기에 속한다.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두려웠던 감정이나, 자신감 결여, 결정에 대한 후회 등 온갖 감정의 회오리나, 육체적인 행동까지도 기억이 날 것이다. 그러다가 취직을 하고 말도 통하게 되면 본래의 마음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개인에 따라 이 기간이 몇 개월이 걸리지 않거나 혹은 일 년을 넘기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이나 우울 상태가 오래 계속되며, 일상에도 많은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라면 적응 증세가 아닌 ,불안 장애나 우울 장애 가능성이 높아 적당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일 반사회성 인격 장애나 경계성 인격 장애 등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런 시기에 우울함이나 불안한 감정 외에 가정 폭력, 아동 학대 등의 범죄나 자살 기도 등 파괴적 행동도 보일 수 있어 정신과적 치료를 필요로 한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마지막 단계, 아니면 순번을 거꾸로 하면 첫 번째 단계라고 볼 수 있는 평상시의 정신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   정신증은 두뇌라는 장기의 병이니 빨리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와 함께 다른 도움도 받아야 한다. 불안이나 우울이 주요 증세인 둘째 단계도 생활에 지장을 느낄 정도라면 빨리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정신 질환은 자신을 존중하고 주위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며, 규칙적인 운동과 끊임없이 지식을 탐구하는 생활을 하면 예방이 된다. 행복한 마음으로 감사의 일지를 쓰는 것도 좋은 예방법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정신병 정신과 치료 정신과 질환 정신과 질병

2024-07-23

[오픈 업] 의학이 바꿔 놓은 가정과 가족

7월로 들어선 지금은 대부분의 각급 학교가 긴 여름방학 중이다. 거의 100일에 가까운 기간이라 부모들의 고민이 적지 않다. 학과목 보충의 의미에서 자녀를 여름학교에 보내거나, 음악 또는 스포츠 캠프에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사설로 운영되는 이들 캠프는 가격이 비싸고 기간도 1~3주 정도에 불과해 완전한 해결 방법은 되지 못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다른 주에 사는 손주들이 집에 와 3주를 함께 보냈다. 분주하기는 했지만 한국 음식을 변형해 식사 메뉴를 짜는 등 여러 가지로 즐거웠다. 손주들이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데려다주는 것, 함께 쇼핑하는 것 등도 즐거움이었다.         어느 날은 작은 손주가 친구 집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고 해서 그 집에 데려다주게 되었다. 그런데 딸이 말할 것이 있다고 했다. “엄마,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있어서 말씀드려요. 셋째의 친구 부모는 동성애자인데, 세 아이 모두 아빠는 같다고 해요.”   딸은 내가 성 소수자에 대한 선입관을 갖고, 혹시라도 손주 친구의 부모를 무례하게 대하지나 않을까 걱정한 것 같았다. 딸은 손주 친구의 부모는 생물학적으로 두 명의 여성이고, 이들은 ‘자궁 밖 수정(IVF)’ 방법으로 아이 세 명을 낳아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알려줬다.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공식화하고, 자궁 밖 수정, 정자 기증 등을 통해 출산이 가능해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더는 놀랄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손주의 친구가 동성애 부모와 살고 있고, 부모 중 엄마라 불리는 여성이 생물학적 친모이고, 이 엄마가 낳은 두 형제도 생물학적으로 같은 엄마와 아빠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일을 계기로 가족과 가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족이라는 말의 어원(語原)은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 가(家)는 친족 집단을 이르는 말이고, 족(族)은 나부낄 언(?)과 화살 시(矢)가 합쳐진 회의자로 사람이 ‘모이다’에서 온 것이다. 한국의 민법은 가족이란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가정(家庭)은 생활을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의미가 더 많다.     손주의 친구가 태어나고, 사는 환경은 현대 의학을 이용해서 이룬 가족관계다. 손주 친구처럼 특수한 가족 구성원 관계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왜 그러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손주 친구의 부모는 동성 가족으로 ‘자궁 밖 수정’ 방법을 택해서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경우이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임신 가능한 연령대의 여성이나 남성이 항암 치료를 받을 경우 생식기관의 어린 세포들도 죽거나 유전자 변형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 이로 인해 앞날을 위해서 미리 정자나 난자를 얼려 보관한다. 적절한 때가 되면 자궁 밖에서 수정해서 자궁에 안착시켜 태아를 기르면 된다. 이때 자궁의 주인은 본인이거나, 대리인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 수정된 배아를 기증하가도 한다.     미국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미국 내 신생아는 367만여 명이다. 미국 전체 인구가 약 3억3000만 명이므로 출생률은 1000명에 11명 꼴이다. 이 중에 2.3%(약 8만6000명)가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대략 한 달에 한 번 있는 여성의 배란 시기에 맞추어 최첨단 의료 기술을 이용하여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데, 실패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 리포트에 의하면 450여 개의 클리닉에서 1년에 약 41만 번의 사이클을 시도했고, 이 중 25% 가 성공적으로 임신했다고 한다.     미국에는 약 70만5000쌍의 동성 부부가 있고 이 중 약 16%인 11만4000 커플은 자녀가 있다. 자녀를 둔 동성 커플의 68%가 생물학적 부모로 남성 부부, 여성 부부의 분포는 비슷하다.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 성전환자) 부모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정신적, 정서적, 문화적 상태는 다른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보고된 바 있다. 오히려 이 아이들은 홀대받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많고 이들을 차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포용하면서 도움을 주는 태도로 산다고 한다. 하지만 동성의 부모가 이혼하게 되는 경우, 통상적 부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양육권 이슈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손주에게 친구의 특이한 환경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 애는 의학이 변경시켜 놓은 가족의 정의라던가 가정의 영역에 관한 분석 과정을 거치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난 나잇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류 모니카, M.D.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의학 가족 손주가 친구 친구 부모 손주 친구

2024-07-16

[오픈 업]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의 조기 치료가 중요한 이유

많은 사람이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는 그저 어린아이가 요란스럽게 행동하고, 공부도 하지 못하다 철이 들면 저절로 없어지는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필자가 1977년 수련의를 마칠 때까지도 이런 병명은 없었다. 그러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인류는 두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됐다. 딱딱한 머리 속에 들어있는 두부 같은 뇌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뿐인가. 한 사람의 뇌에 200억개 이상 존재한다는 신경세포( neuron)들이 수천개의 가지를 통해 다른 뇌세포들과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화학 물질을 만들어 중간에 있는 시냅스로 흘려보냈다가, 임무 수행 후에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최고의 정보 전달 장치가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두뇌의 십년’이라 불리는 1990년대 이후 인류는 말썽꾸러기 사내아이가 ‘나쁜 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뇌세포에서 도파민이나 노어 에피네프린이 잘 분비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들도 본인이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TV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면 두세 시간도 꼼짝하지 않고 100% 집중한다는 것도 알았다. 의사가 본인 아들에 대해 “주의 산만…”이라고 말하면 당장 부모님이 귀를 막아버리는 이유다.   귀한 자녀를 도와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대부분 두뇌에 대한 공부를 한 적이 없고, 자녀 교육도 본인 부모님의 방식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녀가 아무리 야단을 쳐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다른 애들에 비해 두세 살 어리게 행동하지만 정은 많고, 공부도 일대일로 가르쳐야 효과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의 사무실에 6세 자녀를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다. 3명의 선생님이 정신과 감정을 받아보라고 해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불편했다.      여섯 살짜리도 엄마나 선생님을 기쁘게 하고,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기는 왜 수업 시간에 말을 많이 하고,걸핏하면 싸움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할머니 의사가 두뇌 모형을 보여주고 자신의 앞이마를 툭 치며 “이 속에 너의 전두엽이 들어있어, 공부나 숙제하는 걸 도와준단다. 어떻게 도와주는지 알고 싶니?”하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모형 두뇌를 잘라 감정뇌(변연계)가 잘 보이게 그려진 도형을 아이 손에 쥐여 준 후 “이 아래층에 있는 뇌는 강아지나 호랑이 같은 동물도 갖고 있어. 어느 날 이 뇌에서 화가 나 싸움을 하려고 하면 전두엽이 스톱하고 소리치며 막아준단다”라고 말해 줬다.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이번엔 뇌 전파 물질이 나오는 그림을 보여줬다. “엄마가 재미있는 게임을 사주면 친구에게 이야기해 주니?” “네, 학교에 가서 이야기해요” “그런데 여기 보이는 신경 세포들(neuron)도, 옆에 있는 다른 세포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정보를 보내려면 스스로 눈물 같은 화학 물질을 만들어 그쪽으로 보낸 데. 그 물질은 모두 다르고 ,하는 일도 각각이야. 이 중에 도파민이라는 물질은 너의 전두엽에 가서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하라고 도와준단다. 그런데 이렇게 고마운 도파민이 공부처럼 지루한 것을 할 때는 나와 주지 않는 게 바로 ADHD 라는 병이야. 이 병은 네 잘못도 아니고, 엄마 아빠의 탓도 아니야. 유전 때문이라고 해. 요즘은 특별한 약이 있어서 그 약을 먹으면, 30분이나 한 시간 후에 도파민이 전두엽에 많이 생겨 정신을 차리고 숙제를 빨리 끝낼 수 있게 도와줘.”   이때쯤 아이는 손을 번쩍 들게 된다.  “저도 그 약 주세요.” “ 그럼 이제 엄마에게 여쭤보자.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부분의 엄마는 이때쯤에는 이해가 되어서, 먼저 결정해준 자녀에게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치료받은 아이들은 나중에 자신을 존중할 줄 알고, 대인 관계도 원만하다. 그러나 치료를 받지 못하면 성인 ADHD 환자가 돼 특히 다음의 3가지 문제로 힘든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 문제란 ▶불안 질환 ▶우울증이나 조울증 ▶술을 비롯한 물질 사용 장애(특히 대학생의 경우 담배 사용 장애가 높다) 등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과잉행동장애 주의력 주의력 결핍 물질 사용 화학 물질

2024-07-09

[오픈 업] 한국어 교육에도 AI가 온다

최근 열린 한국학 학회를 통해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어 학자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홍보하는 단체의 대표들, 또 영어가 아닌 외국어를 연구하는 타인종 교수도 많이 만났다. 학회 참석자 중에는 아일랜드에서 온 선생님, 미국에서 한인 교육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 정부 기관 관계자들도 있었다.     학회는 두 가지가 열렸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는 ‘오하이오 월드 랭귀지 코리안 서밋’이, 인디애나 주립대학에서는 ‘북미한국어교육학회(AATK: American Association of Teachers of Korean)’가 각각 진행됐다.     오하이오 주를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왠지 친근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큰오빠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큰오빠는 조종사의 꿈을 안고 공군에 입대했지만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대신 오하이오 주에 있는 ‘미국 공군 과학기술 학교’에서 공부한 후 한국 공군 창설 요원으로 활동했다.     오하이오 주립대는 1870년, 인디애나 주립대는 1865년 개교한 유서 깊은 대학들이다. 두 대학 모두 회색 화강암 빌딩과 초현대식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옛것과 새것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방문은 미국 대학교육 시스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도 됐다. 미국 최초의 대학은 1636년 신학대학으로 개교했던 하버드 대학이다. 하버드 대학 설립 200여 년이 지난 1862년, 노예를 해방했던 링컨 대통령은 모릴 상원의원이 발의한 토지 부여법에 승인한다. 이 법은 연방정부 소유의 땅을 주 정부에 기부하고, 주 정부는 이 토지 매매 수익으로 공립대학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한인 이민 선조들이 첫발을 내디딘 것이 1902년이니 토지 부여법 통과 40년 후였고, 그로부터 또 1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가 인디애나와 오하이오 주에서 만난 한인 학자들은 1세와 1.5세, 그리고 2세들이다. 그들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대학에서 한국어, 한국학, 한국문화, 한국 관련 디지털 아트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오하이오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타인종 선생님과 학생들이 호남사물놀이, 동살풀이, 본삼채, 연풍대를 장구로 연주하기도 했다. 사명감을 갖고 한글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멋있고 놀라웠다.     인디애나 주립대 블루밍턴 캠퍼스에서 열린 ‘북미한국어교육학회’에서는 국제한국어교육학회 이준호 회장이 ‘한국어 표준 교육과정의 이해와 현지화 방안’이라는 주제로, 오하이오 주립대 그레그 케슬러 교수는 ‘언어교육의 미래’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모두 디아스포라가 직면할 수 있는 언어적  문제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었다. 그 이외에 여러 논문이 발표됐는데  AI(인공지능)와 ChatGPT 관련 내용이 흥미로웠다.   AI는 우리의 우려와 관계없이,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침범한 상태다. 학생들도 너무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AI이다. AI에게 논문을 쓰라고 명령하면, 아주 멋지게 1분도 걸리지 않고 문장을 구성해서 써준다.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면, 그것은 AI의 책임이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나의 책임이다.     앞으로 한국어 교육에도 AI의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유용한 기구를 최대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비해 새로운 규정이나 지침을 만드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한국학 학회 참석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많았다. 이번 기회에 나를 포함해 미 전국에서 한글과 한국문화를 알리기 노력하는 사람들과 고유의 언어 교육을 위해 애쓰는 모든 디아스포라에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류 모니카, M.D.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한국어 교육 오하이오 주립대학 인디애나 주립대학 대학교육 시스템

2024-06-25

[오픈 업] 성인 ‘주의산만증’

몇 달 전 한국 방문 중에 재미있는 신문 기사를 읽고,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주의산만증(ADHD)’ 문제로 병원을 찾는 젊은 층이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내용이었다. 20대는 4배, 30대는 무려 7배가 늘었다고 한다. 30대가 급증한 것은 아무래도 직장이나 가정에서 많은 문제를 겪기 때문 아닐까 싶다.     과거에는 ADHD가 어린이나 청소년에게서만 나타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ADHD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행동 조절이 어렵고 충동적이며, 주의가 산만하고 오랫동안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물론 20~30의 ADHD 증상은 어린이나 청소년 때처럼 행동 항진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inner restlessness, 또는 mental restlessness)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콜로라도 대학에서 소아 및 청소년 정신과 교수로 오래 일했던 폴 웬더 교수는 성인이 된 후에도 ADHD 증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주장했다. 어린이 ADHD 환자 가운데 대략 50-60%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증상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증상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어떤 일을 할 때, 중요한 부분을 끝내고도 마무리를 못 해 결국 완전히 끝내는 것에 실패한다.   2. 정리정돈(Organization)이 필요한 일을 하는 데에 문제가 많다.   3. 약속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다.     4. 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 손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꼼지락거린다.   5. 심사숙고해야 되는 일이 있으면 피하거나 뒤로 미룬다.   6. 마음이 급해 무엇인가 해야 할 것처럼 느낀다.   7. 상대방 말에 집중하기 어렵다.   8. 힘들거나 지루한 일을 할 때 부주의한 실수가 잦다.   9. 집에서나 직장에서 물건을 잘 잃어버린다.   10. 회의나 모임에서 오래 앉아있기 힘들어 자리에서 떠난다.   11.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집중을 못 하고 산만해진다.   12. 자주 안절부절 한다.   13. 혼자 있을 때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14. 여러 사람과 있는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을 많이 한다.   15. 대화 도중,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 전에 끼어들어 대화를 끝내 버린다.   16.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힘들다.   17. 다른 사람이 바쁘게 일 할 때 방해하는 적이 많다.   여러 해 전 태국 여행 당시 현지 가이드의 말에 놀란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빨리빨리“를 외칩니다. 그리고 차례를 기다리는 것을 아주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 지원으로 한국에서 3개월 동안 한국어와 문화를 배운 적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한국 성인들에게 주의산만증 증세가 만연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문제는 ADHD증상이 있는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자녀 3명 중 1명은 ADHD 환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10%에서 주의산만증이 진단되는데, 치료를 받는 사람은 그중 10%뿐이라고 한다. 즉, 나머지 90%는 치료도 받지 못한 채 현대처럼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결론이었다. UN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몇 년 전 세계 10개국에서 성인 주의산만증 환자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성인의 ADHD 증상은 다음의 세 가지 문제를 초래해 본인은 물론, 가정이나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가 심한 불안 증세이고, 두 번째는 정서의 문제, 즉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동반해 오기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불안하거나 우울한 경우, 담배나 술 등으로 자가치료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술은 초기에는 안정감을 주는 듯하지만, 결국 내성이 생겨 점점 양이 늘게 된다. 그리고 음주를 중단하면 금단 현상 때문에 손발이 떨리고, 불안하고 초조해지며, 잠을 이루지 못해 결국은 다시 마시게 된다. 이런 경우라도 전문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해진다.     술은 우울 증상을 증가시켜 사고나 범죄 또는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파괴적인 물질이다. 성인 주의산만증 증상이 있는 대학생은 흡연자가 많다고 한다. 이런 20대의 환자들이 치료를 통해서 물질 사용 장애나 불안감, 또는 심한 우울함이나 조울 증세로부터 해방돼 행복한 앞날을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주의산만증 성인 성인 주의산만증 주의산만증 증세 한국 성인들

2024-06-12

[오픈 업] 조울증 환자에 가해진 무지한 폭력

양극성 질환이라고도 불리는 조울증은 두뇌라는 장기의 병이다. 도파민,세로토닌 같은 두뇌 세포에서 분비되는 뇌전파 물질의 불균형 때문에 기분이 하늘 높이 올라가거나, 땅바닥까지 떨어져 마치 북극과 남극을 오르내리는 듯해 양극( bipolar)이라는 말을 쓴 것 같다. 조울증이 이처럼 주로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것임에 비해 과거 정신분열증이라고 했던 조현병은 사고의 변질로 망상이나 환각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얼마전 조울증을 앓던 한인이 경찰 총격에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경찰의 과잉 대응 논란도 일고 있다. 현장에 출동한 경관들이 조울증에 관해 최소한의 지식이라도 있었고, 조울증 환자를 다루는 방법을 훈련받았더라면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양극성 질환은 본인 잘못이나, 부모의 탓이 아니다.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 만약 친척 중에 자살 기도를 했거나 심각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경우, 혹은 알코올 중독자 등이 있다면 진단에 도움이 된다.   약 4일간 이유 없이 에너지와 의욕이 넘치고, 평소에 하지 않던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고, 도박이나 쇼핑 등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며, 말이 빠르고 많아지며, 수면 시간이 줄어드는 경조증( hypomania) 증세를 보이다가 심한 우울 증세에 빠져들어 자살 위험이 높아지는 경우를 제2형 조울증이라 부른다. 또 들뜬 기분이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상태가 약 7일 계속( 대부분은 그 이전에 병원에 강제 입원이 필요함)되며, 계속 주제를 바꿔가며 쉼 없이 말을 하고, 잘못된  자신감에 들떠서 큰돈을 낭비하거나 위험한 성관계 등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조증(mania) 뒤에 심각한 우울 증세를 보이는 경우를 제1형 조울증이라고 한다.  자살의 위험은 제2형이 더 높다. 조울증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30% 이상의 환자가 자살을 기도하고, 5명 중 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무서운 병이다.   양극성 환자들은 심한 우울감 이외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술이나 약물에 중독되기 쉽다. 게다가 원인 모를 분노의 감정 때문에, 자신이나 주위 사람에게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   양극성 질환 환자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이유는 조절 불가능한 우울, 불안, 분노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호 관찰하기 위함이다. 그 후 진단이 내려지고, 양극성 질환이 확정되면 리툼·데파콧같은 항경련제, 약효가 빨리 나타나는 항정신제 등을 투약해 정서를 안정시키고 사고 기능을 충분히 사용하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런데 증세가 심한 환자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신(과대망상증이라고도 함)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통한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 대화, 즉 말이라는 기능은 뇌의 전두엽에서 행해지는 높은 위치의 사고 기능이고, 인간은 이를 통해 동물과 달리 감정 조절을 할 수 있게 된다.   경찰 총격에 숨진 한인 피해자는 하이킹을 좋아했다고 한다. 만일 정신과 상담사가 기록이나 부모님과의 대회를 통해 환자의 취미가 하이킹이라는 것을 파악해 이를 경찰에게 알려 대화 유도의 소재로 활용했다면  피해자의 감정 조절을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포유동물은 생존에 위험을 느끼는 순간 ‘투쟁도피반응(Fight or Flight)’을 보인다. 즉, 목숨을 걸고 투쟁을 벌인다는 의미다. 자신이 싫어하는 병원이나 의사에게 ‘끌려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환자였다면 밖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하는 대신, 부드러운 말이나 위로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조울증의 유병률은 50명 중 1명이나 된다.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빈부와 상관없고, 남녀 비율은 비슷하다. 조울증 환자는 선천적으로 심신이 예민해 몸도 자주 아프고,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를 쉽게 받는다. 약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의료진은 환자에게 맞는 약을 찾아내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영적 도움을 받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경찰 총격에 숨진 한인 조울증 환자는 감정을 조절해 위기를 넘기고, 의미 있는 삶을 찾기 위해 입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무지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정신과 환자들에게 또 이런 야만적인 폭력이 행해져서는 안 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조울증 환자 조울증 환자 양극성 환자들 얼마전 조울증

2024-05-14

[오픈 업] ‘조부모의 날’과 한국어 클래스

너무 늦게 세상에 온 나는 양가 조부모님을 뵙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은 연로해 보였다. 6·25 전쟁에서 전사한 큰오빠의 딸이 함께 살았고, 나와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다. 조카가 연상(年上)이었기에, 우리 집안의 가족관계를 주위에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부모 회의가 있을 때, 나는 아버지나 엄마가 학교에 오시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친구들은 ‘야, 월화야, 너희 할머니 오셨다’라고 큰 소리로 알려주곤 했다. 피하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조모(祖母)가 된 지 오래되었다. 큰딸의 막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조부모의 날 축하연에 초대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5학년 학생들이 강당에서 환영 공연을 할 것이고, 공연 후에 조부모들은 손주들의 교실로 안내되어 교육환경을 살펴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조부모들은 가정에서 아끼는 아이템을 가져와 손주들과 함께 물품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어 주기 바란다는 내용도 있었다. 집안에 가보는 없지만, 의미 있는 물건이 있는지, 한참 동안 생각해 보았다.   큰 딸네가 가주를 떠나 정착한 곳은 당일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손주들은 할머니가 해 주던 한국 음식도 먹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는 제대로 요리를 배우지 못했지만, 의과대학을 다닌 관계로 실험하는 것에는 익숙하다. 그래서 손주들과 가끔 음식 만드는 실험을 하곤 했다. 음식의 유행, 흐름은 어쩌면 그렇게 해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만드는 음식들은 ‘퓨전’ 즉, 이것저것 섞였다는 것도 아이들은 잘 안다.     콩나물 같은 음식 재료와 애들이 필요할 것 같은 라면,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챙겨 자동차로 다녀왔다. 서둘지 않고 하는 자동차 여행이 나쁘지 않았다. 가보는 없지만, 골동품인 ‘목수용 줄 금이(line marker)’를 가져갔다. 눈금 긋는 기구가 없던 조선시대 목수가 썼다는 까만색의 길이 7인치 정도의 나무로 만든 것이다. 먹물을 담는 동그랗게 패인 미니 우물 같은 부분이 있다. 먹물을 갈아 넣고, 흰 실 뭉치를 담가 까맣게 물감을 들인 후, 미니 쇠 손잡이를 돌리면 반대쪽에 있는 못대가리만큼 작은 구멍을 통해서 실을 잡아당길 수 있다. 먹물에 젖은 실을 이용해서 벽이나 땅에 눈금을 그으면 된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만든 천재적인 기구이다.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기회이므로, 한 면은 진한 빨간색, 다른 한 면은 진한 바다 색깔의 한국산 보자기에 쌌다. 골동품과 보자기를 보여주면서 조선시대 발달한 문명과 역사를 설명했다. 다른 조부모들이 가져온 귀중품 중에는 세계대전 참전 사진도 있었다.     손주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아시아계 학생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백인 계통으로 보이는 조부모들의 증언을 듣다 보니 흥미롭게도 모두 다민족, 다국적의 사람들이었다. 아시아 계통이 없었을 뿐이었다. 행사 후, 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아, 윈트의 할머니는 한국분이시군요. 나의 부모님, 증조부님들은 여러 나라 출신인데, 나의 1/8이 아시아에서 온 것이라고 합니다.”  나는 “상체 1/8? 아니면 몸의 왼편 1/8이요? 어느 부분이 아시아에서 받은 것인지 궁금합니다”라고 농담처럼 물었다.     뉴멕시코 주 교육청 웹사이트에는 40여 개의 교육구/학교들이 이중문해력인증서(Seal of Biliteracy)를 발급한다고 되어있다. 한국어 이중문해력인증서는 두 군데 학교에서 2015~2016년에 발급하였다. 한국어가 아직은 정규 과목으로 채택되지 않고 있다. 뉴멕시코 주 인구의 2%가 아시아계고, 한인으로 분류되는 숫자는 아시아계의 10%가 넘는 4800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LA교육원 통계에 의하면 이곳에는 한 개의 한글학교(주말학교)가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한글학교가 있어서 고맙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시아계가 많지 않은 뉴멕시코 주 학교들에도 한국어 클래스를 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류 모니카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조부모의 한국어 한국어 클래스 아시아계 학생 양가 조부모님

2024-04-10

[오픈 업]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아리랑 민족의 디아스포라, 극동 러시아와 만주의 한인 ,1895-1937’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마침내 다 읽었다. 저자 이혜옥 박사로부터 책을 받아 읽으며 가끔 덮어버리기도 하고, 한숨도 쉬고, 주먹도 불끈 쥐었었다.   책 제목은 칠십이 넘은 나이에 클레어몬트 대학원에 진학한 이 박사의 학위 논문 제목이기도 하다. 영어 원문을 번역한 각주만 59쪽에 달한다. 일본국립보관소,미국정부공문자료,러일 전쟁 정부 보고서,외교관 보고서,서양인 여행기 등 출처도 다양하다.   책에 빽빽하게 기록된 역사 자료들을 보다 서양인이 상투를 틀고 조선인 사이에 서 있는 ‘내 친구들…’ 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1904년에 러일 전쟁을 취재하러 한국에 와 5개월간 일본군을 따라 종군했던,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소속 잭 런던 기자가 남긴 기사와 사진들이었다. 그는 조선의 ‘게으른 양반들’, ‘가난한 일꾼들’,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글로 남겼다. 그보다 앞서 한국을 네 번이나 방문해 3년간 머물렀던 영국 귀족 출신의 이사벨라 비숍은 여행기에서 한국인에 대해 ‘체력이 강하고 외모가 뛰어나다’고 기록했다는 내용도 있다.   19세기 말 조선은 비참했다. 이로 인해 목숨을 걸고 러시아나 만주로 떠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마을 전체가 이주하기도 했다. 계속된 홍수와 기근에도 농민들에게는 ‘백골징포’라는 무서운 세금이 있었다. 세금을 갚지 못하고 숨지면 자녀나 친척, 이웃에게까지 그 부담이 넘겨졌다. 또 1894-95 청일전쟁,1904-05 러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전국이 초토화되었다. 하지만 집권 세력은 고종 황제를 둘러싸고 파벌 싸움만 벌였다. 이때 일본은 이미 한반도 지도를 만들어 수탈과 징용 등의 자료로 활용했다.     책에는 흥미 있는 내용도 나온다. 잭 런던은 일본군과 함께 이동하며 간단한 한국어도 익혔다. 그는 ‘어서!(Osau!), 바삐(Papee), 얼른(Ol-run), 속히(Sok-kee), 얼핏(Oil-ppit), 급히(Koop-hee), 냉큼(Ning-kom), 빨리(Bal-lee), 잠깐(Cham-kan)’ 등의 방법으로 한국어를 영문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또 1894~1897년 사이 조선을 방문했던 이사벨라 비숍은 나룻배를 개조해 강을 따라 여행하며 ‘조선의 관리들은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기록했다.     조선인들은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로,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 떠나갔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중국인도 많았는데 조선인들은 가족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고유의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 이 지역의 조선인 디아스포라 형성과 유지에 여성의 역할이 컸다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시베리아에 러시아인을 정착시키기 위해 이주자에게 땅과 돈을 주기까지 했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돌아갔다고 한다. 특히 금광에서 중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조선뿐이었다. 1897년에 러시아를 찾은 비숍이 발견한 것은 비록 타향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감과 긍정적인 모습의 조선인들이었다. 그들은 피부색으로 인해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아르메니아 등에서 온 러시아인, 그리고 유대인이나 독일인처럼 지역 사회에 쉽게 융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책에 따르면 조인인들은 주로 군기지 근처에 거주하며 육류와 채소 조달 사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만주에서 여윈 소를 사다 살을 찌운 후 양질의 소고기를 파는 등 사업 수완도 남달랐다. 비숍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국에서의 소심하고, 의심 많고, 움츠린 모습과 달리 솔직하고,남성적인 독립심을 보였다’고 썼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많은 디아스포라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 수백만 명의 디아스포라들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다. 한국에서 재외동포청도 출범한 만큼 한국인 디아스포라 역사도 발굴해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아리랑 민족 아리랑 민족 조선인 사이 조선인 디아스포라

2024-03-26

[오픈 업] 조울증의 여러가지 얼굴

명문대에 진학했지만 심한 우울 증세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 대학생을 치료중이다. 그런데 그 학생이 처음 만났던 상담사는 필자의 ‘조울증’ 진단이 틀렸다며, 이 대학생의 증상은 ‘주요 우울증’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 학생이 많은 돈을 낭비하고, 위험한 성적 행동을 하며, 3시간 수면만으로도 힘이 펄펄 나는 등 자신이 배운 조울증 증상이 없는데 어떻게 조울증이냐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그가 배운 증상은 조증 증세로 약 일주일(환자가 입원하면 그 이전) 정도 나타났다 심한 우울 증상이 따라오는 ‘제 1형 조울증( 양극성 질환)’이다. 이럴 때 환자는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듯 기분이 좋은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이럴 때는 강제 입원을 시켜서라도 환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 대학생처럼 과거 경조증 증상이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하거나, 즐거운 감정 대신 심한 분노 폭발을 어린 시절에  경험했다가 우울 증상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경조증을 약 4일간, 아니면 그보다 짧은 기간 경험한 후에 심한 우울 증세가 오는 경우를 제 2형 조울증이라 부른다. 그리고 제 2형 조울증의 우울 증상은 더 심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비율이 30%나 되기 때문에 1형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데 조울증 환자를 ‘주요 우울증’으로 오진할 경우 치료에 큰 문제가 된다.(정부 기관인 국립정신건강국의 통계에 의하면 정확한 조울증 진단에는 약 10년이 걸리고, 초진에서 오진 확률이 2/3나 된다고 한다.) 조울증도 심한 우울병의 하나다. 따라서 환자 스스로가 자신을 존중하도록 도와주고, 운동과 원만한 대인관계 등 건강한 생활방식을 유지해 고립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가 이를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 치료가 늦어지거나 조울증의 무서운 합병 현상인 극단적 선택 기도로 이어질 수 있다.     우울증에 많이 사용하는 항우울제들은 우울이나 불안 증세를 치료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며 중독 현상도 없다. 그러나 간혹 조울증 치료 약물인 리티윰, 항정신제(antipsychotics), 또는 간질 치료제(anticonvulsants)등과 같이 쓰지 않는 경우, 항우울 약물만을 조울증 환자가 복용하면, 우울 증상을 거꾸로 악화시킬 수 있어서 모든 항우울제 약품에는 이 때문에 ‘위험  경고(black box warning)’가 붙어 있다. 청소년 환자 부모들이 자녀의 우울 치료제 복용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울 장애는 ‘주요 우울증’ 이외에 다른 이유로도 올 수 있다. 즉, 생리전 불쾌감이나 간이나 췌장 등 내과 질환과 함께 올 수도 있다. 또 술이나 다른 물질 사용 후, 혈압약 등 치료제 사용 후 우울 장애가 오기도 한다.   우울 장애는 여성이 남성보다 비율이 높지만 조울증은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비슷하다. 대부분의 남성은 오랫동안 감정을 참고 표현하지 않다가 아주 힘들어지면 음주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 장애는 ‘주요 우울증’ 환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약물보다 더 치명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로 인해 유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큰 아픔을 남기는 것이다.  따라서 조울증은 조기 진단과 충분한 치료가 중요하다.     요즘 한국에서는 다행히 조울증 환자 진단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듯하다.   일년 반 전 시작한 필자의 유튜브 채널에도 조울증에 관한 질문이 가장 많고, 구독자들의 약물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높다. 머지않아 한국이 ‘자살률 세계 1위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희망도 가져 보는 요즘이다.     -수잔 정 박사의 정신건강 강의는 유튜브 채널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youtube.com/@dr.susanchung)’에서도 볼수 있습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조울증 얼굴 조울증 증상 조울증 환자 조울증 치료

2024-03-12

[오픈 업] 한국 의사들의 파업은 정당한가

얼마 전 한국 정부는 의과대학 입학생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약 3000여 명이 의과대학에 입학했다고 하니 입학생 수를 65% 증원하겠다는 뜻이다. 1989년과 비교해 한국 인구는 22% 증가했고,특히 65세 이상 인구는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각종 만성질환자도 더 많아지고 있을 것이다.   참고로 2020, 2021년 월드 뱅크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비율이 한국은 2.5명, 일본 2.6명, 미국 3.6명, 독일 5.4명, 인디아 0.7명, 에티오피아 0.1명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2017년이 마지막 자료로 3.7명이다. 가끔 의사 증원과 관련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는 내용이 보도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숫자 외에 문화적 관점과 생활방식의 차이 등도 고려해 풀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결정에 전공의들과 의사협의회는 반대 의사를 표했다. 대부분의 전공의는 사직서를 쓰고 직장을 떠났다. 그들은 입학생 증원에 따른 인프라 부족을 걱정한다. 정부가 전공의를 수용할 병원, 신입생을 교육할 교수진 확보 방안을 미리 세워두고 의과대학생 수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 나도 걱정이 된다. 질적인 관리 부족으로 실력 없는 의사, 즉 ‘돌팔이’ 의사가 늘어 제대로 국민 건강을 돌볼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의료계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업’과 다르다. 의료사업에는 엄청난 자금과 인력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2023년 한 해 동안 의료사업에 투입된 자금만 8조 달러나 된다.     의사 숫자의 급증은 과열 경쟁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 같다. 의료업계의 치열한 경쟁이 ‘박리다매’식으로 흘러가 ‘서로 살기’가 아닌 ‘서로 죽이기’ 식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의도(醫道)는 무엇일까? 의사들이 걷는 길? 의사들은 어떤 길을 걷기에 그들을 일반인과 다르게 대우하는지 생각해 본다. 한국의 한 언론은 ‘병원은 의사가 권력을 행사하는 공간’이라는 유명한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을 인용하면서 대통령도, 재벌기업 회장도 병원에 가면 의사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푸코는 지식과 권력의 복잡한 상대성을 연구한 프랑스 철학자다.     미국도 오래전부터 의사가 부족했다. 인구와 노년층 증가 때문으로 한국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유명한 인재 수입국인 미국은 외국 출신 의사들에게도 이민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공의 부족 대책안 2023(Resident Shortage Reduction Act of 2023)을 발의하기도 했다. 수련병원의 공석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7년에 거쳐, 서서히 1만4000명의 자리를 채운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2006년에 의과대학 입학생 수를 30% 늘렸다. 하지만 빈 전공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실수를 저질렀다. 이런 실책에도 전공의의 파업은 없었다. 의사들은 노동조합이 없다. 또 파업 위협을 하기는 하지만 실상은 협상을 통해 이를 피해 간다. 의사가 아닌 의료계 종사자들 즉, 간호사, 기계 조립사, 호흡기관 테크니션 등은 노동조합이 있고 파업을 통해 그들의 요구 조건을 관철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 정부와 의료계는 미국의 실수를 참고해 미래의 종합 계획을 세우고 이를 서서히 실천해 나가는 참을성과 끈기, 지혜가 필요하다. 전공의, 의사협의회, 병원협의회 등 의료계와 정부는 대화로 여러 가지 이슈를 탁상 위에 올려놓고 함께 풀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정부의 권위, 의사의 권위 같은 것은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과제를 들여다본다면 해법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류 모니카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한국 의사 의사 증원과 의사 숫자 반대 의사

2024-03-05

[오픈 업] 배아는 인간인가?

며칠 전 공영방송인 NPR이 ‘냉동 배아(frozen embryo)’를 땅에 떨어뜨려 망가트린 피고에 대한 앨라배마주 고등법원의 판결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법원은 1872년 제정된 주 법에 따라 ‘배아’를 ‘사람’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배아를 파괴했으면  살인죄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의학계에서도 이견이 많은 ‘배아 vs 인간’ 엔티티가 법적인 제제를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덧붙여진 판결이다. 낙태의 권리, 즉 ‘프로 초이스’와 태아 보호 의무, ‘프로 라이프’가 대권 주자들의 표심 모으기 핵심 아이템 중의 하나로 도마에 올려진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커다란 불씨가 될 전망이다.   앨라배마 주법은 생명의 시작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는 의학계에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이 딜레마를 해결해야 하는 곳에서는 윤리관, 종교관까지 충돌하며 쉽게 결론이 날 수 없게 된다.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일률적인 해석을 기대하기는 더 어렵다. 의사가 많은 집안조차 어느 쪽도 과반을 점하지 못하는 50대 50 정도로 낙착되는 것이 바로 이 이슈다.     먼저 사건 내용을 들여다보면, 약 4년 전 어느 환자가 냉동 배아를 저장하는 ‘모빌 인퍼머리 메디컬 센터(Mobile Infirmary Medical Center)’ 회사에서 배아 여러 개를 꺼내 갔다. 그가 어떻게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곳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는 그만 배아가 들어 있는 시험관을 떨어트렸다. 당연히 시험관이 파손되면서 배아들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배아들이 ‘못 쓰게 되었다’라는 것은 미래의 생명체들이 죽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배아’를 그냥 몇 개의 세포라고 본다면, 못 쓰게 되었다고 크게 열을 낼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 ‘배아’들이 생명이고, 미래의 인간으로 본다면 미래의 아이들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도대체, 배아(胚芽)란 무엇인가? 임신중절 수술 때 흔하게 거론되는 태아(胎兒)와는 무엇이 다른가? 배아의 ‘아’는 싹이라는 뜻으로, 어원은 나무 목(木)자이다. 태아의 ‘아’는 아이라는 뜻으로 어원은 물 수(水)이다. 사람의 경우, 배아는 난자와 정자가 접합한 후, 세포분열을 시작한 단계로써 임신 8주 이전의 상태를 말한다. 8주 이후에는 태아(胎兒)라고 부른다.   세상은 공평하지 못해 한쪽에서는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불임 치료 방법으로 시험관아기를 낳고 있다. 불임 부부가 고아들의 부모가 되어주면 좋으련만, 진정한 나의 핏줄을 갖고 싶어서 시험관아기를 택한다는 테스티모니얼을 읽은 적이 있다.   시험관아기는 1978년 영국에서 최초로  태어났다. 한국은 그보다 7년 후인 1985년에 성공적으로 시험관아기를 출산했다. 시험관아기 만드는 과정을 IVF(In Vitro Fertilization)이라고 부르는데, 라틴어에서 온 것이다. 인 비트로(in vitro)는 인 비보(in vivo)의 상대적인 단어로, 몸 밖이라는 뜻이다. 즉 몸 밖의 수정을 말한다.   간단히 그 과정을 설명해 보면 몸 밖, 즉 자궁의 환경이 만들어진 시험관에서 임신 준비가 된 난소와 정자를 합성시켜 배아를 만든다. 실패를 예상해서, 여러 개의 배아를 만든다. 그중 건강한 몇 개를 자궁에 정착시킨다. 이 때문에 체외수정의 경우 쌍둥이가 많다. 이 과정에서 쓰이지 않은 배아들은 얼려서 보관하게 된다.   이런 배아를 냉동 보관하는 회사들이 있다. 첫 번째 시험관아기 출생에 성공한 후,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임신을 시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때로는 임신을 원하는 부부에게 배아를 기증하는 경우도 있다. 생물학적으로 다른 여인의 몸을 빌려서 같은 혈통의 형제가 태어나는 경우이다. 또 이들은 사실 모두 같은 때에 만들어졌으니 쌍둥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정보는 거의 모두 가려져 있고, 본인들은 알 길이 없다. 무슨 이유로든지, 우연히 DNA 테스트를 해서 알게 된다면 모를까 말이다.   혈통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혈통을 강조하는 사회에 던져보는 정답이 없는 고민스러운 질문이다. 류 모니카. M.D.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배아 냉동 배아 시험관아기 출생 임신중절 수술

2024-02-25

[오픈 업] 의료 방해와 의료사고 예방

친구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얼마 전 갓 중년에 들어선 남동생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숨을 거뒀기 때문이다. 슬픔은 그녀의 분노에 가려져 있었다. 동생의 죽음은 의료체계의 모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전화기 너머에서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생각은 질주했고, 말은 빨랐다. 이야기는 초점을 잃고 이리저리 튀었다. 한 시간 가까이 위로의 순간을 포착하지 못했던 나는 전화를 끊을 때쯤 몹시 지쳐있었다.     나는 병원에서 그녀에게 내린 ‘접근금지’ 명령을 조금씩 이해해 나갔다. 사연은 이랬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비혼주의자인 남동생의 법적 보호자는 그녀였다. 만약의 경우, 동생이 판단 능력을 잃게 되면, 동생에게 필요한 테스트, 치료, 나아가 필요한 법적 절차 등에 관한 모든 결정이 친구의 의무가 된 것이었다.     이렇듯 법적 보호자를 명시하는 시스템은 병원과 법이 요구 또는 추천하는 사항이다. 상담이 필요할 때, 지정된 보호자뿐 아니라 다른 가족도 초대된다. 만약 상담 때 함께 하지 못했던 가족이 있다면 참가했던 가족, 또는 보호자로 지정된 가족(어떤 경우는 친지가 보호자로 지정되기도 한다)에게서 내용을 듣고 이해하는 것이 좋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재상담을 요청하면 된다. 약속 없이, 불쑥 아무 때나 의료진에게 전화하거나 방문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자는 보통 가족 중 한 사람이 주된 역할을 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보호자를 등록할 것을 권한다.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도 보호자가 될 수 있다. ‘사전의료의향서(Advanced Directive)’에 명시해 놓으면 된다. 보호자와 ‘사전의료의향서’는 평소 환자가 원한 방식으로 임종을 맞이할 수 있게 하는 법적, 윤리적, 문화적인 길잡이다.     물론 보호자가 있어도 환자가 평소 원하던 대로 모든 것이 이행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어떻든, 친구가 원했던 치료 방법과 병원 입장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이견은 분쟁으로 번진 모양이다. 그 후 친구의 질문이나 행동은 의료 방해로 간주하였고, 병원은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 그녀의 방문을 막았다. 일차적으로 누나의 방해 없이, 의료진이 동생에게 필요한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녀가 입원실을 출입할 때는 시큐리티 가드가 동행했다. 동생이 숨진 시간에 그녀는 병원에 있었지만, 병실 방문 시간이 아니어서 병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안타깝다. 그러나 모든 것은 법대로 이행되었을 뿐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친구가 꼭 그렇게 화를 내고 싸웠어야 했을까? 또 병원은 ‘접근금지’ 명령 없이 그녀를 받아 줄 수는 없었을까?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은 증상을 듣고, 진찰함으로써 치료의 첫 방향을 잡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환자가 회복하지 못하거나 사망하는 피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지난달 미국 의사협회 저널(JAMA)이 보도한 자료가 이런 실정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2019년 29개 학술의료기관에 입원했던 2428명의 성인 환자 가운데 550명(23%)에 진단 오류가 있었고, 17.8%는 사망하거나 불구가 됐다.      아직 사전의료의향서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만들 것을 권한다. 그리고 병원을 방문할 때는 가족과 의논해서 방문 스케줄을 만드는 것이 좋다. 병원 방문 시에는 환자와 의료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예의를 지키자. 감정이 북받쳐 울어야 한다면, 조용히 울자. 히스테리를 부려서 본인이 환자로 돌변해서야 되겠는가? 객관적으로 행동하자.     환자와 가족도 의료사고 예방에 한몫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의료사고 의료 의료사고 예방 법적 보호자 친지가 보호자

2024-02-11

[오픈 업] 불면증과 Z 약물

92세에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니는 생전 심한 천식과 기관지염 때문에 밤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단 잠이 들면 그 무서운 기침 발작 없이 하룻밤을 편하게 지내셨다. 그러나 더욱 증상이 악화하자 주치의는 5mg의  졸피뎀(Zolpidem·상품명 Ambien)을 처방해줬다.     천사처럼 편안하게 잠이 든 어머니를 보며 ,우리 형제들은 의사 선생님과 Z 약물에 큰 감사를 했다. 그러나 며칠도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5mg의  용량으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치의는 중독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우리는 약의 용량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10mg을 복용해야 간신히 잠이 들었고 기침 발작도 줄어들었다. 주치의는 가능하면 약의 용량을 줄이자고 권했지만  어머니는 끝내 5mg으로 줄이지 못한 채 세상을 뜨셨다.   이런 가슴 아픈 기억이 있기에  필자는 Z약물(Z-drugs)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런데 최근 오하이오 주에 있는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수면제로 많이 쓰이는 Z 약물의 팬데믹 이전과 이후 판매량을 비교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연구에 의하면, 18세 이상 성인 조사 대상자 가운데 최근 한 달간 한 번이라도 수면제를 복용했다는 응답이 18.4%로 집계됐다. Z 약물은 과거 항불안제 가운데 Benzodiazepine(아티반, 제넥스 등) 계통의 항불안제를 썼다가 5명 중 1명이 중독 문제로 고생하자 나온 것들이다.     Z 약물은 ‘중독성이 없는 수면제’라는 광고와 함께 등장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약물에도 중독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호흡수 감소,어지러움,인지 능력 감소, 몽유병(sleep walking) 등 이상 수면, 낙상으로 인한 골절 등과 함께 금단 현상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장기간 사용 시 가장 무서운 합병증이 낙상으로 인한 골절이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에는 2020년 3월 24일부터 12월31일까지 약 50만 명의 환자가 방문했다고 한다.(오하이오 주는 2020년 3월24일부터 락다운(Lock-Down)을 실시했다) 그리고 이 중 약 1.5 %가 Z 약물을 처방받았다. Z 약물에는 Zolpidem(  Ambien), Zalepion ( Sonata),Zopiclone ( Imovane), Eszopiclone ( Lunesta) 등 4가지가 있다. 환자의 1.5%가 이 중 한 가지를 처방받았다는 것인데 이는 팬데믹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처방약 가운데는 Ambien이 87%로 가장 많았고 Lunesta 10%, Sonata 2 %, Imovane 0.7%  등의 순서였다.   처방을 받은 사람 가운데는 시니어 여성, 백인, 부유층이 많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들이 가진 질병은 알코올 중독, 조울증(양극성 질환), 코카인 또는 다른 항진제 남용, 불안 장애, 항불안제 중독(벤조 약물의 중독자), 우울증, 아편계 물질 남용, 공황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증세 등이었다.   팬데믹 기간에는 시니어 남성, 부유층,  4번 이상 주치의 방문 기록이 있는 사람들의  Z약물 처방이 많았다. 이들은 불안 장애, 우울증, 마약 중독 등이 많았다.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열람’ 5권에  의하면,  불면증이란 잠의 양이나 질에 문제가 있는 경우인데, 다음 중 한 가지가 일주일에 3번 이상, 적어도 3개월간 계속된 경우를 말한다. 즉, 잠들기가 어렵다(initial insomnia), 잠들었다가 자주 깬다(intermittent insomnia),  새벽에 너무 일찍 깬다 (terminal insomnia) 등이다.   연구 학자들은 불면증 치료 방법으로 약물보다는 행동 치료를 권하는데 수면 장애는 65세 이상 시니어들에 많기 때문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불면증 약물 장애 항불안제 기침 발작도 과거 항불안제

2024-01-30

[오픈 업] 세모에 지키면 좋은 에티켓

올 한 해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동문, 직장 동료, 단체 회원, 그리고 친척들을 만나 한 해의 회포를 푼다. 설레기도 하지만 종종 귀찮을 수도 있는 만남이다. 그러나 연락을 통해 손을 뻗고,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우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 신문 지면에는 거의 매일 동문회, 단체들의 연말 모임 사진들이 게재된다. 다양한 모임 가운데는 초등학교 동문 모임도 있어 눈길을 끈다. 모임의 형태도 오찬, 만찬, 디너-댄스파티 등 여러 가지다.     연말 모임에는 음주와 여흥 순서가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도 최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무리 스스럼없는 사이라도 구분 없이 행동하게 되면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나친 음주는 삼가하는 것이 좋다. ‘한국인의 술 사랑’은 잘 알려져 있다. 음주량과 빈도 면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에 뒤지지 않는다. 그뿐인가. 술잔을 주고받는 에티켓, 폭탄주 등 독특한 문화도 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라는 단편이 실렸던 기억이 난다.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려운 환경을 마주하다 보니 술을 마시게 되는, 또 술을 강요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물론 한국인만 술을 마시는 것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 통계에 의하면 매년 200만 명 이상이 알코올 중독으로 숨진다. 알코올 중독자의 직접적 사망 원인은 음주로 인한 사고, 간경화, 췌장염, 심장병, 전염병 등이다.     가장 술꾼이 많은 국가는 헝가리로 국민의 21%가량이 알코올 중독자라고 한다. 한국도 만만치가 않아 알코올 중독자 수가 국민의 13.9% ( 남성 21%, 여성 6.8%)나 된다. 이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에 술꾼이 많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과거 추수가 끝나고 농번기가 될 때까지 농부들의 일거리가 없어, 술을 빚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요즘은 어떤가? 한국의 많은 직장인에게 퇴근 후 음주는 업무의 연장이거나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이 되고 있다.     모임은 즐거워야 하는데 술에 취해서 분위기를 망치거나 불미스러운 일을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술은 정상적인 뇌의 기능을 잃게 된다. 그 결과가 술주정(酒酊)으로 나타난다. 주사(酒邪), 주벽(酒癖), 후주(?酒)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술을 많이 마신다고 모두 술주정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제가 필요한 이유다.     또 한인 연말 행사의 여흥 순서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춤이다. 흥이 나서 음악에 맞춰 율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춤인데, 사실 ‘춤’과 ‘무용’의 차이점을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보니 춤이나 무용은 역사적으로,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종교적으로 기원과 종류가 다양하다.     한국인의 춤은 태평무처럼 남녀가 한 쌍을 이루어 함께 추는 경우도 있긴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율동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혼자란, 상대방과 신체 접촉을 하면서 추는 춤이 아니라는 뜻이다. 서로 마주 보거나, 여러 명이 둘러서서 추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강강술래가 그 예이다.     모임에서 사교댄스를 추어야 할 때, 아무리 부부 또는 연인 관계라 하더라도 신체를 밀착하는 것보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추는 것이 더 멋있다. 사교댄스를 출 때는 배우자나 연인 관계가 아닌 파트너는 피하는 것이 좋다. 필자가 반세기 동안 몸담고 있던 메디컬 그룹의 연말 파티는 댄스 순서가 오랜 시간 이어지는데 배우자나 연인이 아닌 사람을 파트너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건강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세모가 되었다. 많은 연말 행사가 열리는 시기다. 아무리 허물없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이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는 있다. 모두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기를 기원한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에티켓 세모 알코올 중독자 에티켓 폭탄주 연말 모임

2023-12-20

[오픈 업] 높아진 노인 자살률

최근 LA타임스에 미국 시니어의 자살률이 1941년 이후 가장 높다며 이를 우려하는 기사가 소개된 적이 있다. 인구 숫자가 많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들 가운데 우울증이나 불안증, 술이나 마약 남용으로 감정 조절이 힘든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시니어 인구는 지속해서 늘고 있다. 1900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300만 명(인구의 4%) 수준이었지만, 2012년에는 4300만 명(인구의 13%)으로 급증했다.     지금 추세라면 202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7200만 명, 2050년에는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하는 84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51~70세를 중년(middle age), 71~90세는 ‘젊은 노인( Young Old)’, 90세 이상은 ‘특별 노인(exceptionally old)’으로 부르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인구 증가 속도가 빠른 연령대는 바로 85세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니어들이 ‘그냥 나이 든 사람’이 아니라 저마다 개성이 다르고, 심지어 심장,폐,위 등 인체 장기의 노화 속도나 과정도 다르다는 것이다.      연방정부는 지난 1980년 LA, 볼티모어, 세인트루이스 등 5개 지역에서 시니어 정신 건강 조사를 위한 ECA(Epidemiological Catchment Area)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연구 대상자의 13%에서 각종 정신 질환이 발견됐다고 한다. (알츠하이머는 제외) 65세 이상 시니어의 약 10%가 알츠하이머 가능성이 있으니 둘을 합치면 약 20%의 시니어가 이런저런 종류의 정신 질환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셈이었다.     알츠하이머란 두뇌에서 계속 진행되는 병변으로 인해 기억 상실, 인식능력 저하, 비정상적 행동 등의 증세를 보이는 정신 질환을 말한다. 이 병은 60세가 넘으면  5년이 지날 때마다 유병률이 두 배로 늘어나는 특징을 보인다.  즉, 60~64세에는 1%, 65~70세엔 2%, 70~74세에는 4%, 75~80세 8%. 80~85세에 16%, 85세 이상에서는 30~45%가 발병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불안 증상인데, 대부분 우울증과 동시에 나타난다. 시니어들은 우울증을 부끄럽게 생각해 우울 증상을 마치 육체적인 문제인 양 말하기도 한다.     시니어 우울증의 조기 진단이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울증을 ‘노화 과정’의 일부로 오해하기 때문이다. 또 우울 증상이 젊은이들과 다른 원인도 있다.     주요 우울증은 9가지 증상 중 5가지가 있으면 진단이 되는데, 시니어의 경우 3, 4 가지의 증상만 보이는 ‘서브신드롬(subsyndrome)’ 상태의 사례가 많다. 이런 경우 술이나 항불안제, 특히 벤조 다이아제핀 계통의 약물에 중독이 되기 쉬워 자살의 위험성이 더 높아진다.     연구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비해 노년에 행복감과 인생의 만족감을 더 느끼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침팬지나 오랑우탄을 돌보는 사람들에 의하면, 이들도 중년기 이후에는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를 보인다고 한다. 이런 변화는 두뇌의 생리적 변화에 의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한다.   젊은 층과 달리 시니어는 자살과 관련 사전 징후가 거의 없고 정신과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자살 성공률이 높은 이유다.     한국의 어느 정신과 의사가 제안한 자살 방지법이 있다. 그 방법이란 ‘보기, 듣기, 말하기’라는 것이다. 과거에 자살 기도를 했던 사람이 갑자기 과음한다거나 아끼던 물건을 남에게 주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면’ 그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준’ 후, 자살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치료를 받자고 ‘말한 후’ 직접 병원으로 데리고 가라는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지난 20여년 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과거 러시아와 리투아니아가 몇 번 세웠던 기록들이다. 가족은 물론 지인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보고, 듣고, 말하며 돕자. 정신과 치료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수잔 정 박사의 정신건강 강의는 유튜브 채널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youtube.com/@dr.susanchung)’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자살률 노인 시니어 인구 시니어 정신 이상 시니어

2023-12-12

[오픈 업] 이중언어교육의 광장을 다녀오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매년 자신의 뿌리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시기가 10월이 아닐까 싶다. 이달에 개천절, 한글날 등 특별한 날들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도 LA총영사관, LA한국교육원, 재외동포청, 한국국제교류재단, LA한국문화원 등은 10월에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한인들에게는 더 없이 뜻 깊은 일이다.   미국에는 매년 11월 열리는 배움의 기회가 있다. 보통 추수감사절 한 주 전에 열리는데 ‘미국외국어교육위원회(ACTFL: American Council on Teaching of Foreign Language)’라는 콘퍼런스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교수, 언어학자들의 모임으로 이 행사를 통해 새로운 연구 논문들이 선보인다.     한국학 학자들도 참여한다. 올해도 교수들을 만나고 그들의 강의도 들었다. 한국국제교류제단 초대로 교수들이 모이는 자리에도 함께했다.   ACTFL은 외국어를 가르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표준을 수정하거나 강화한다. 새로운 외국어 교과서를 편찬할 때, 예를 들면 정규교육에 들어갈 한국어 교과서를 만든다고 할 때, 이 단체가 권고하는 기준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외국어 교육의 기준에는 다섯 가지 ‘C’가 있다. 주입식을 넘어서서 대화(Communication), 문화(Cultures), 연계(Connections), 비교(Comparisons), 커뮤니티(Communities) 등이다. 이런 기준에 따르지 않으면 외국어, 이중언어 교육이 불완전하다는 의미다. 이런 기준은 56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재외동포청 집계에 따르면 미국에는 세계 700만 명 재외동포의 37%인 260만 명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한국말과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차세대를 위한 한국어 주말학교의 역할이 크고 중요한 이유다. 또한 한글이 세계 언어로 인정받아 많은 정규 학교에서 교과 과목으로 채택되는 것도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올해도 시카고에서 열린 이 콘퍼런스에 참석했다. 추수감사절 엿새 전에 시작해 사흘 전에 폐막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올해는 6000명이 약 100가지 언어를 대표해 참석했다고 한다. 콘퍼런스는 100여 개 언어에 관련된 크고 작은 모임들이 시작되기 전 기조연설자의 연설로 개막했다. 올해  기조연설은 교육계 인사가 아닌 저술가며 배우이자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공공연락국 부국장을 역임한 칼 펜(Kal Penn: 본명 Kalpen Suresh Modi)이 맡았다.     40대인 그는 인도계 미국인으로  스스로를 ‘브라운 페이스(황인종)’라고 자주 표현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백인이 주류인 곳에 들어가 활동하기까지의 일들을 재미있게 소개했다. 달변(達辯)인 그의 강연은 지루하지 않았다.   칼 펜은 인도말을 할 줄 알까?  그는 자신의 이중언어 능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인 차세대를 생각하게 한 그는 듬직한 모습이었다. 백인이 아니라도 인정받을 수 있는 나라, 100여 개의 언어를 포용하는 교육 시스템을 보면 미국은 희망적인 국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로 창립 140년이 된 미국현대어문학협회(Modern Language Association)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 각 대학에 개설된 외국어 코스는 1965년 약 100만 개에서 2009년 100만6000개로 피크를 이뤘다. 하지만 이후 다소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한국어, 미국수어(美國手語)와 성서용 히브리어 코스는 오히려 증가하거나 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어 코스는 증가 폭이 가장 큰 언어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한인 차세대들이 한국어는 기본이고 다른 언어들도 터득하도록 응원했으면 한다. 이는 그들이 세계인으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인 차세대와 한국어에 관심 있는 타 커뮤니티 학생들이 정규학교에 한국어반이 없는 곳에서도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추진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류모니카, M.D. / 미국 종양방사선학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이중언어교육 광장 외국어 이중언어 한국어 교과서 외국어 교과서

2023-11-29

[오픈 업] 피난하는 자연

독일의 젊은 저널리스트가 쓴 ‘기후변화 시대 생명의 피난 일지’를 착잡한 마음으로 읽었다. 나에게 슬픈 생존의 상처를 남겼던 6·25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벤야민 브라컬의 상세한 기록은 모든 어른이 읽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앞으로 50년 후쯤 닥쳐올 지구의 재난을 맞닥뜨릴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서.    41세의 이 저널리스트는 어느 날 한류성 어종인 대서양의 대구 떼들이 따뜻한 물을 피해 이동하고 있다는 논문을 읽었다. 그러면 다른 물고기들은? 그리고 다른 육지의 생물들은? 갑자기 불안해진 그는 페루의 열대 산악 지역으로 날아갔다. 생물들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코넬대학교 조류연구소 연구원인 바비라는 젊은이를 만난 것이 2019년이었다.     바비는 그의 스승이 1985년 이곳에서 했던 연구를 다시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30년 전보다 새의 숫자가 많이 감소한 것을 알아냈다. 당시와 비교해 유일한 차이점은 이 지역의 온도가 섭씨 0.42도 정도 올랐다는 것뿐이었다. 기온 상승으로 새의 서식지는 더 높은 곳으로 이동했고 산 정상에 있던 새들은 사라졌다. 1985년 연구 당시 해발 700-800m 높이에 서식했던 새들은 이제 1170m 미터에서 발견됐다. 서늘한 곳을 찾아서 올라간 것이다. 바비의 조사에 의하면, 30년 사이 새의 숫자는 4분의 3이나 급감했다.   최근 몇 년간 일본 어부들의 어획량이 줄고 바다에서는 해조류 숲이 사라졌다. 해초 숲이 만들어 주는 시원한 그늘은 많은 물고기의 서식처였다. 1997년에 일본 토사만의 해조류 숲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지역 해수가 10년에 0.5도씩 상승한 것이 원인이었다. 홋카이도 지역 해수 온도도 약 10도나 올라 이 지역 해초 서식지도 위기를 맞고 있다.   학자들은 코끼리부터 아주 작은 바다 생물까지 북반구에서는 북극으로, 남반구에서는 남극을 향해 점차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자연 보호 지역을 정해 생물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제공하며,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은 북극의 원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북극여우가 사라지고, 주 식량원인 고래들이 자신들의 거주지 주변을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가 지날수록 바다는 따뜻해졌다. 바다 위 얼음이 녹으면서 바다의 면적은 더 넓어지고 햇빛을 반사하는 대신 흡수하고 있다. 알래스카 연안에서 많은 바닷새가 죽었고 고래들은 수 백 년 전부터 사용하던 이동 경로를 이탈했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020년 “인류는 현재 자연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된 연설을 통해 인간은 지구를 여러 생물 종들과 공유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30% 계획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지구  표면의 30%를 보호 구역으로 만드는 것이다.   브리컬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발견했던 이끼가 많고 온도가 낮았던  숲속의 장소, 마이크로 레퓨지 (micro refuge)를 생각해 냈다. 이런 곳이라면 많은 동식물이 서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일부 학자들은 호주 동부의 우림 지역에서 이런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장소 몇 군데를 찾아 지역 정부에 인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믿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정부가 그 지역의 땅을 사들여 국립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과학자들은 또 세계 자연 기금과 함께 피지 제도, 솔로몬 제도, 동티모르를 포함한 6곳의 산호초 보호 일을 시작했다. 그러자 마을 주민 등도 협조에 나섰다. 매트릭스란 보호 구역의 외부 지역을 보호하는 전문 용어이다. 브뤼셀은 도시에 숲을 만들고, 가로수를 심었다.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 지역은 남아메리카에서 북극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중간 휴식처 역할을 한다. 철새 이동 시기가 되면 농부들은 농지 바닥에 물을 저장해 새들이 마실 수 있게 했다. 이런 노력에는 자연과 화해하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2020년에 영국, 캐나다, 한국, 일본, 중국은 기후 중립국이 될 것을 결정했다. 마이크포 레퓨지의 중요성은 지금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야생 꽃밭도 만들고 있다.      인간도 외부 온도가 체온에 가까워질수록 신체 기능이 저하된다.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2070년이 되면 35억 명의 열대 지역 인구는 살 곳이 없어진다.   ▶수잔 정 박사의 정신건강 강의는 유튜브 채널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youtube.com/@dr.susanchung)’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피난 자연 자연 보호 지역 해수가 지역 해초

2023-11-21

[오픈 업] 1등과 2등 사이, ‘햇빛 교육’

큰 딸네가 고심 끝에 가주에서 다른 주로 이주했다. 자녀 교육 관련 이유가 가장 크다. 손주들이 전학한 학교는 대학처럼 넓다. 아도비식의 나지막한 건물이 여럿 보인다. 건물 사이사이에는 벤치가 마련된 정원들이 있고, 어떤 정원은 몇 개의 건물 통로들로 둘러싸인 ‘아트리움’ 형태다. ‘아트리움’은 중앙 홀이라는 뜻인데, 의학에서의 ‘아트리움’은 심방을 일컫는다. 학생들의 동선과 조경 모두를 염두에 둔 설계로, 학생들은 건물 유리 벽을 통해 자연을 보면서 복도를 지나다닌다. 어떤 정원의 중간에는 아담한 관목들로 둘러싸인 연못도 있다. 이 연못에는 거북이가 살고 있단다.       정원은 학생들의 침묵과 묵상의 공간이다. 틴에이저들이란 철없는 세대라는 편견을 갖고 있던 나는 그들이 삶과 학업 문제로 고심하는 긍정적인 너드(nerd)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들도 나름의 고민거리가 있는 것이다.       건물 밖을 나서니, 나이깨나 먹은 꺽다리 플라타너스 고목들이 샛노란 이파리를 달고 있다. 잊고 있던 학창시절 가을날 같다. 나의 기억에 가을이란 고민의 계절이다. 의과대학 재학 시절의 가을은 새빨간 단풍잎들이 복잡한 사고를 정리해 주지 못했다. 미래를 향한 걱정과 희망은 가을 계절병의 농도를 부추겼다. 이곳 시골스러운 중고교에도 LA의 유수 학교들과 다를 바 없이 고심해야 할 일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교정 한편에 있는 축구 경기장으로부터 들려오는 응원 함성이 실없는 고민은 그만하라고 한다. 아이들은 듬직하다. 그들의 열중한 모습이 싱싱하고 아름답다.     이곳에서 동급생은 경쟁자가 아니라 친구다. 함께 화학 실험을 하고, 함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면서 각자의 악기로 음악을 만들어 내고, 햇빛 속에서 달린다. 무럭무럭 자라는 봄날의 푸른 나뭇잎처럼 싱싱하다. 이것이 내가 늘 부러워했던 ‘햇빛 교육’이 아니던가!   나는 모국에서 모든 정규 교육 과정을 끝내고 뉴욕주립대학 의과대학에서 수련의 과정을 마친 후 전문의가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두어 해 전쯤 부터인가, 치맛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치맛바람이 왜, 어떻게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심하게 불었다. 대백과사전이 정의한 세 종류의 치맛바람 중, 가장 심하게 불었던 바람이 교육제도를 흔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세 종류의 바람이란 계 모임처럼 경제계를 흔들던 치맛바람, 춤바람 등을 말한다.       치맛바람은 매사에 최고가 돼야 한다며 자녀들의 학구열을 부추겼다. 1등과 2등, 또는 일류와 이류로 나누고,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니 하는 ‘수저 계급’을 의미하는 말까지 등장한 것은 ‘1등병’ 교육의 병폐가 아닌가 싶다.       그런 가운데, ‘1등병’도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클래스가 있었다. 중학교 때 미군 장교의 부인이 잠깐 영어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하나뿐인 최고’라는 표현은 옳지 않고, ‘여러 최고 중의 하나(One of the Best)’라는 표현이 바르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개념을 소개한 것이다. 우리가 전전긍긍하며 도달하려는 정점에 한 명이 먼저 도달할 수 있지만 여럿이 함께 도달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 준 것이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교육을 ‘인간 형성의 과정이며 사회개조의 수단이다…. 사회발전을 꾀하는 작용’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반면 영어 참고서에는 교육이란 지식, 기술과 형질, 특질의 전수라고 되어 있다. 나아가서는 한 인간이 비판적 사고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한국적 정의는 사회에 귀결되고, 서양적 정의는 개인의 성장을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손주들을 비롯한 차세대들이 동서양의 철학이 함께하는 ‘햇빛 교육’의 주인공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건강하고 긍정적인 상황이 된다면 공부벌레가 된다 해도 상관 없겠다.     류 모니카 / 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종양 방사선학 전문의오픈 업 햇빛 교육 햇빛 교육 자녀 교육 정규 교육

2023-11-14

[오픈 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의 메시지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로 우리에게 친숙한 역사 학자, 유발 하라리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10대 무렵 고민이 많았고, 세상에서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이나 세상에 왜 그토록 고통이 많은지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고통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 진실을 찾을 수 있을지도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해서도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한 그는 중세 기사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 사이에 수많은 철학책들을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찾는 진정한 대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다 그의 친구 론이 소개해 준 명상법 즉 ‘코를 통해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는 10일 동안 명상법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관찰하면서 인간 일반에 대한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실체를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2000년부터 매일 2시간씩 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한두 달 동안 긴 명상 여행을 했다.  그는 이를 현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었다고 말한다.     명상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가 한 ‘위빠싸나’ 명상은 부처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수행이란 몸의 감각과 감각에 대한 정신적 반응을 객관적인 방식으로 지속해서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기본 패턴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자기 관찰이라는 것은 쉬운 적이 없었지만, 세대가 지날수록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아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별생각 없이 매일을 살아가던 필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에 의하면 과거 파시즘, 공산주의, 자유주의 등 세 가지 이야기에 익숙해 있던  인류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파시즘을 물리쳤고, 20세기가 끝날 즈음에는 공산주의도 제어했다. 이렇게 자유주의의 압도적 승리로 귀결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민주적 정치와 인권, 시장, 자본주의가 세계를 정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 자유주의는 곤경에 처했다고 진단한다. 정보 기술과 생명 기술 분야의 쌍둥이 혁명이 일어나면서 자유주의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영국의 브랙시트 결정과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이 이를 증명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것이 정신없이 빨리 변해가는 이때 우리는 자신과,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지금 태어나는 아이는 2050년이 되면 20대 후반이 된다. 그 때의 세상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과거에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것이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서 부모는 많은 것을 따라가기조차 힘들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저자는 4C를 강조한다. 그것은 ▶비판적 사고( 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 Communication) (의사소통) ▶협력(Collaboration) ▶창의력(Creativity)을 말한다.     변화에 대처하고, 새로운 것을 학습하며, 낯선 상황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반복해서 재발명 해내야 할 것이다.     인간은 15세가 되면 자신을 발명하느라 바쁘다. 그러다 50세가 되면 안정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세상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쇄신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저자가 15세 소년에게 하는 충고는 “어른들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다. 어떤 어른이 알고리즘이나, 아마존, 정부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면 모르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알고, 어떤 이야기를 모르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희망의 이야기를 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변화를 주시하며,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메시지 제언 자유주의가 신뢰 동안 명상법 정신적 균형

2023-11-07

[오픈 업] “대마초가 뭐가 나쁜데요?”

한인들의 높은 자살률을 조금이라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고자 ‘수잔 정 마음 건강 열린 상담실’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한 지 13개월이 됐다. 내용을 분석해 보면 조울증(양극성 질환) 관련 내용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다. 감정 기복이 남극과 북극을 오르내리듯 심한 조울증은 가족력의 영향이 크다. 또 조울증 환자 5명 중 1명은 자살로 생을 마감할 정도로 심각한 질환이다. 그러나 조기에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적합한 치료를 받으면 치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리화나(대마초) 관련 내용에 관심을 보이는 구독자가 부쩍 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싸움을 하자는 듯한 내용의 댓글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대마초를 사용해 본 적도 없는 노 의사가 어떻게 이에 대해 논할 수가 있느냐?”,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가 보면, 이런 소리는 들을 수가 없을 텐데…”(참고로 필자가 인용하는 책은 미국 의대생과 수련의들이 사용하는 교과서), “세계 만인이 사용하는 대마초를 가지고, 이처럼 호들갑을  떠는 나라는 한국뿐일 것이다”(필자는 LA에서 유튜브를 제작함) 등등.   댓글 작성자들은 한국 정부가 대마초 사용을 불법화한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을 필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듯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은 과학적인 정보나 지식 대신 ‘아무 문제 없는 물질’이라는 애매한 말만 되풀이한다.     미정신과학회는 최근 ‘정신 질환의 진단 및 통계 열람 ,제 5판’에서 10가지 물질을 장애를 일으키는 물질로 규정했다. 여기에는 알코올, 담배 ,대마초, 카페인,아편계 자극제, 수면제,진정제, 항불안제, 환각제 등이 포함된다. 이런 물질이 우리 뇌에 들어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이해하면 중독 현상을 이해하기가 쉽다.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의 뇌에는 ‘보상회로(Circuit of  Reward)’또는 ‘환락회로( Circuit of Pleasure)’라는 것이 있다. 이 회로는 음식을 보거나, 성적 상대를 대하면 활성화되고, 이 회로 안에 있는 모든 뇌세포에서 도파민이 급격하게 분비돼 기쁨과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이 회로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중요하다.      도파민은 사랑에 빠졌을 때, 칭찬이나 상을 받을 때, 아니면 친구와 재미있는 게임을 할 때 등에 많이 분비되는 뇌전파 물질이다. 그런데 술이나 코카인 등이 몸 안에 흡수돼 ‘보상회로’를 활성화하면 그 특별한 기분에 익숙해진 후에는 다른 자극들은 더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된다. 그 후에는 그 물질을 구해 체내에 주입해 그 황홀감을 경험하려는 생각에만 집중하게 된다.  생계나 학업에 문제가 생기고 가정이 파괴되고 질병이 생기더라도 끊기가 어렵다.  실험실의 동물에게 마약이 분비되는 펌프와 음식이 나오는 펌프를 마음대로 쓰도록 내버려 두면,  그 동물은 마약 펌프만 사용하다가 결국은 굶어 죽는다.     최근에는 화학 변화를 첨가해 효과를 강화한 대마초들도 나왔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메탐페타민(Methamphetamine)이라는 마약도 한 일본 화학자가 1941년 중국에서 많이 생산되는 마황(Ephedrine)에 화학적 변화를 줘 만들었다. 그리고 이 메탐페타민은 2차 세계대전 중 군인들에게 많이 사용됐다. 그 후 하와이를 통해서 미 서부 등으로 퍼졌다.     현재 필자가 치료하고 있는 한 중년 환자도 매일 약에 취해 살고 있다. 디자이너 드럭, 또는 클럽 드럭이라는 낭만적인 이름과는 딴판으로 이들 약물은 범죄에도 많이 사용된다. (원래의 약물에 화학적 변화를 줘 만들어진 물질을 디자이너 드럭이라 하는데 코카인을 크렉으로 변화시킨 것이 좋은 예다)   GHB라는 약물은 냄새도, 색깔도, 맛도 없어 성범죄에 사용되기도 한다. 분말로 된 이 약물을 술이나 물에 타서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 지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억조차 없애기 때문에 범인을 찾아내기도 힘들다. 로힙놀(Rohypnol) 이라는 약물도 데이트 성폭행 범죄(date rape)에 많이 사용되는 약물이다. 냄새나 색깔이 없는 가루이기 때문이다.     대마초는 8000년 전부터 인도나 중동·아시아 지역에서 재배된 식물이며, 암컷 식물의 진으로부터 추출되는 물질 속의 THC가  향정신(mind-altering)기능을 한다. 암 환자 등 일부 의료용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대마초가 대마초 사용 마약 펌프 화학적 변화

202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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