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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 해결 의지도 전략도 없는 북한

삐걱거리는 경제, 당 간부의 충성에 대한 불안, 코로나 감염자 폭증. 북한 정권이 직면한 난제들이다. 지난 8~1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5차 전원회의에서 이를 타개할 계획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북한 정권은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만 보여줬다.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경제 회생 기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긴 연설 내내 숫자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대 현안인 코로나 방역을 놓고 김 위원장은 일장연설을 했다. 하지만 당국 차원의 명확한 대책을 제시하진 않았다. 북한은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지침과 함께 “땅과 하늘, 바다를 철저히 막아 코로나 변이의 침략을 막자”고 한다. 국경을 봉쇄해도 이미 들어온 오미크론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일시 재개된 국경 무역을 막으면 북한 경제에 더 큰 피해만 가져올 것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달 29일 평양시 봉쇄를 해제했다. 배고픈 주민들을 가두어둘 때 발생하는 경제·사회·정치적 대가가 바이러스 재확산보다 더 크다는 셈법에서 봉쇄를 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원회의 다음 날 북한은 감염자 격리와 치료에 대한 방역 지침을 발표했지만 ‘어떻게’ ‘무엇으로’를 빼놓았다. 대규모 백신 지원을 받기엔 너무 늦었을지라도 코로나 치료제와 진단키트는 지금이라도 큰 도움이 된다.   북한의 코로나 판단 기준은 발열뿐이다. 외부에 요청만 하면 지원받을 수 있는데, “항체 진단 시약과 신속 테스트지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 “조선인 몸에 맞는 항바이러스 물질을 개발”하자고 한다. 북한 정권의 의료적 무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2일 코로나 사망률이 0.002%라고 했다. 영양실조에, 백신도 접종받지 못한 북한 주민의 코로나 사망률이 한국의 60분의 1이란 얘기다. 체면 때문에 북한 당국이 고안해 낸 수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부의 비판이 무서워 실무급 간부들이 실태를 축소 보고하고 지도부가 이를 그대로 믿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북한 당국은 코로나 팬데믹을 과소평가하는 거짓 통계에 기반해 정책 결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전원회의는 북한 정권이 다른 나라와의 상호교류로 펜데믹이나 다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음을 확인시켰다. 당 통일전선부장에 이선권 전 외무상을 앉혔는데 한국의 새 정부와 건설적 교류에 관심이 있다면 할 수 없는 인사다. 미국 외교관들에게 험담을 일삼아 온 최선희를 외무상에 임명한 것도 미국과 서둘러 관계를 개선할 뜻이 없다는 신호다.   북한을 분석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북한 내부를 명확히 들여다볼 순간이 가끔 찾아오는데, 이번 전원회의가 그렇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관련된 전략도 내놓을 수 없음을 보여줬다. “전례 없는 국가적 위기”라고 인정하는 그 순간에도 정작 필요한 정책 변화를 단행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정권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서도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도움을 요청하지도, 심지어 자체적인 코로나 대응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캄캄한 밤길 다가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앞에 주저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토끼 같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기고 북한 코로나 코로나 방역 코로나 치료제 코로나 사망률

2022-06-27

[기고]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국가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형성되는 세계의 압축현상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의식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접촉하고 교류하고 충돌하고 동화되면서 자문화가 타문화가 되고 타문화가 자문화가 된다. 이 과정에서 부각되는 문제는 개별 국가의 민족문화를 보장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 다문화 상황에서 우리가 우려하는 문제는 개별 문화들이 배타적으로 자기 특성만을 주장하는 것, 다른 문화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 그럼으로써 인류 공동체 전체가 문화적으로 조화와 공존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심화되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자기 문화 정체성 모색은 ‘차이의 존중’ 원칙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사고 능력은 상호간에 의도를 공유하는 능력이다. 의도 공유라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은 문화 학습 즉, 무엇인가를 타인으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문화 학습은 사회 학습과 소통 능력이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준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의식과 문화 안에는 서로의 다름을 배타적으로 구분하고 배척하기보다 전체적으로 포용하고 존중하려는 조화와 공존의 특성이 존재한다. 이런 특성은 현대 다종교 상황에서 극단적 갈등과 대립 양상이 드러나는 것과 달리, 서로 다른 종교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조화와 공존을 가능하게 했다.     한국인의 대인관계를 기술함에 있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있다면 ‘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은 대인관계적 정서다. 이러한 개념은 흔히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목적으로 많이 거론됐으나 점차 사회심리학적 이해가 시도되고 있다.   최근에 심리학자들이 정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아울러 우리의 정서를 인내의 경험으로 접근하던 이전의 시각에서 탈피해, 정서를 문화와 언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부상했다. 즉, 정서를 개인 안의 것에서 끌어내어 사회의 언어와 대인 교류의 경험에 의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사회의 구성적 심리상태로 보는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단일 민족이라는 특성은 끈끈한 정과 한을 형성해 냈다. 유교 문화권으로 효와 예를 중시하면서도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잘 형성된 나라로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적 심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생각하는 것은 외국과는 다르다. 만들어지고 교육된 충성심이 아니라 잠재된 심리적 특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감정은 한국인의 내재적 국가관이라든가 공동체 의식, 집단주의에 잘 나타난다. 우리의 이런 모습은 국가적 위기에 강하게 나타나 근성의 대한민국이라고 한국사회를 정의 내릴 수 있다.   세계화 시대 다문화 상황에 적합한 문화 정체성은 자신의 독특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전체적으로 다른 문화와 갈등, 대립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지닌 자연스러운 조화와 공존의 특성은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한국 문화의 정체성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긴밀하게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차이 때문에 위협을 느끼는 대신 자신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송조이 / 정신건강상담사기고 인정 사회 사회문화적 맥락 사회심리학적 이해 문화 학습

2022-06-27

[기고] 시샘, 우리들의 어두운 본성

“도공은 도공과 원한을 맺고, 공예사는 공예사를, 거지는 거지를, 시인은 시인을 시샘한다." 헤시오도스(기원전 7세기 그리스 시인)   맞는 말이다. 내가 빌 게이츠를 시샘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정신과 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와 경쟁의식을 느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조지가 생떼를 부린다. 전날 롤랜드가 극심한 난동을 피웠던 일이 부러웠다고 말한다. 주사를 놓는 병동 직원들의 관심을 자기도 받고 싶다는 것. 조지와 롤랜드는 썩 좋은 사이가 아니다. 간간이 서로 트집을 잡고 주먹다짐도 한다. 그들의 불행은 시기와 질투에서 출발한다.   신데렐라의 계모와 의붓자매는 차갑고 모질고 악질적이다. 콩쥐팥쥐의 팥쥐도 저질의 극이다. 유교의 '칠거지악(七去之惡)', 가톨릭의 '7개 대죄(Seven Deadly Sins)'에서도 질투와 시샘이 두각을 나타낸다.   아담과 이브의 아들, 카인과 아벨은 어떠했는가. 야훼께서 곡식을 예물로 바친 카인보다 양 떼 가운데서도 ‘맏배의 기름기'를 골라 바친 아벨의 예물을 더 반기셨다는 기록은 불가사의한 데가 있다. 카인은 질투에 몸을 떨며 동생 아벨을 들로 데리고 가서 돌로 때려죽인다.   시샘 당하는 일은 공격 받는 일이다. 겸손의 미덕은 시기의 표적을 피하기 위함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든 수상자가 나열하는 ‘Thank you!'의 연발은 자신의 공을 남의 은덕으로 대치하는 작업이다. 감사하는 사람과 감사 받는 사람들 사이에 기쁨과 환희가 넘쳐 흐르고 질투 어린 표정은 어디에도 없다.   로버트 그린의 저서에 ‘인간 본성의 법칙(원제: The Laws of Human Nature)'이 있다. 저자 그린은 인간의 본성 중 나르시시즘을 위시한 여러 어두운 면을 가차 없이 파헤친다. 우리가 모두 얼마나 허술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   우리는 누구나 인정받고 남들의 관심사가 되고 싶다. SNS에 웃고 있는 프로필 사진, 다듬어진 글, 경치, 꽃, 명화, 좋은 접시에 담긴 음식 등을 보라. 당신도 나도 부지불식간 부러운 마음이 들지 않는가.   로버트 그린은 우리가 시샘으로 괴로울 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나보다 잘난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보다 안 잘난 사람을 생각하며 위안을 받는 디펜스가 통할 때가 많다. 남의 우수성을 본보기로 삼아 자기를 발전시키고 승화하는 아주 훌륭한 방법도 있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상대에게 심리적으로 더 가깝게 접근하는 기법도 유효하다. 부러운 여건과 상황은 그의 일부분일 뿐, 잘 보면 그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측은지심이 솟고 모종의 공감 현상이 일어나면서 시샘이 사라진다.   오래전에 ‘envy'가 ‘envision'과 말의 뿌리가 같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이제 그와 달리 ‘envy'가 ‘in'과 ‘vie, 경쟁하다'가 합쳐진 단어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vie'는 16세기경 도박에서 상대방에게 도전한다는 뜻이었고 이 말은 또 ‘invite, 초대하다'와 같은 어원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초대는 응당 도전의식을 겸비한다.   스포츠맨 정신은 건전한 도전과 다툼이다. 시기심은 동종 경기에서만 발생한다. 정치인은 권투 선수를 시샘하지 않고 정치가를 시기한다. 국가는 국가를, 종교는 종교를 선망하고 질투한다. 저급한 이념이 월등한 이념을 음으로 양으로 물어뜯는다. 서량 / 정신과 의사·시인기고 시샘 본성 시샘 우리들 인간 본성 로버트 그린

2022-06-27

[기고] 불황 타개를 위한 경영 전략

제임스 갬블은 신시내티의 비누제조 전문가 윌리엄 벨 공장에서 8년간 견습공으로 일하면서 사업에 눈을 뜨게 된다. 그 후 갬블은 나이 양초제조업자인 알렉스 노리스의  딸 엘리자베스 앤 로리스와 결혼한다.     윌리엄 프록터는 영국에서 출생해 양털모직물 상점을 운영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와 신시내티에서 7년간 양초상점에서 일을 했다. 공교롭게도 프록터도 알렉스 노리스의 딸 올리비아 노리스와 결혼한다. 엘리자베스와 올리비아는 자매였다.     1837년 10월 31일 프록터와 갬블은 비누와 양초제조를 공동사업으로 시작하기 위해 ‘프록터 앤 갬블사(Procter & Camble Company)’를 세웠다. 갬블은 제조와 생산을 감독하고 프록터는 판매와 사무 감독을 책임지기로 합의했다.     그들은 사업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7192달러로 회사를 설립했다. 프록터는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아끼던 두 개의 4륜짐차, 마차, 두 마리 말을 팔았다. 마차와 말은 시내를 다녀야 했지만 자금 마련을 위해 모두 팔아야만 했다.     30대 중반의 두 사람은 신시내티의 작은 점포의 뒤뜰에서 쉴새 없이 일을 했다. 대형 철제 솥에 장작불을 피어 비누와  양초의 재료를 만들었고 이를 외바퀴 손수레로 소형 제조 공장으로 운반했다. 제품이 완성된 후에는 배달도 나갔다.     경기침체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신시내티에서 18개의 비누와 양초 제조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1944년 P&G는 연방정부에 세제 특허를 냈다. 그간 실험을 통해 흰옷은 더욱 희게, 색깔 옷은 색을 더 밝게 하는 세제를 만들었다. 하지만 세계 2차대전으로 2~3년간 세제 제조를 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제조 공장을 신축할 수 없었고 기구나 기계의 확보도 어려웠다. 특히 생산에 필요한 적절한 원료 조달이 불가능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신제품 개발도 주저하게 됐다. 전쟁 기간 중 회사 수익이 줄어 들었고 연구 인력도 확보하기 힘들었다.     전쟁이 끝나자 회사는 ‘세탁의 날 기적(Washday Miracle)’을 표방하며 새로운 상품을 위한 팀을 구성했다. 제품명은 ‘Tide’라는 간단한 이름으로 짓기로 결정했다. 1946년 ‘Tide’ 제품을 시험하기 위해 뉴욕을 비롯해 여섯 개의 도시를 선정했다. 제품의 상품광고도 필요했지만 소비자의 반응도 중요했다. 직원들은 정규 제품을 만들어 각 가정을 방문해 무료로 배포하고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세제는 소비자의 입에서 입으로 효과가 전해지면서 인기가 높았다. 제품의 성공에 힘입어 1980년대에는 제조공장이 미 전국에 40개로 늘었고 24개국으로 진출했다. 자산은 최초 7192달러에서 65억 달러로 불어났다.   창업 후 P&G는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지속적인 명성을 이어갔다. 양초와 비누 제조에서 시작해 현재는 샴푸, 칫솔, 기저귀 등 다양한 소비제를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발전했다.   P&G의 성공은 새로운 제품 개발과 철저한 품질 관리에 있다. 또한 1, 2차 세계대전의 어려운 시기에도 경영진과 직원들이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해 왔다. 여기에 미래의 시장을 예측하는 경영자들의 안목도 회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김기천 / LA카운티 중소기업 자문관기고 불황 타개 양초 제조공장 비누제조 전문가 윌리엄 프록터

2022-06-26

[기고] 결혼을 꿈꾸는 이들에게

2012년 7월, 해남 땅끝 미황사에서 ‘청년출가학교’라고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때 나는  스님·금강 스님과 함께 지도법사로 참여했다.     10년이 지난 얼마 전, 청년출가학교 때 함께했던 한 청년이 자신의 배우자가 될 사람과 함께 청룡암에 찾아왔다. 그리고 청하기를,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요. 스님, 주례를 좀 서주세요”했다. 장례식장도 아니고 결혼식장에 와 달라고 하다니, 그것도 아직 젊은 독신 비구니에게, 뭐? 주례를?   순간 결혼식장의 아찔한 풍경이 뇌리를 스쳤다. 다시 생각해 보라며 만류했다. 우리는 각자 한 달의 기한을 두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만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이 다 좋다고 하면, 그땐 나도 거절하지 않고 주례를 봐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후 설마 하던 일이 현실이 됐다. 주위에서 다 좋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마음을 달리 먹는 수밖에.     “그래 뭐, 생각해보니 독신 비구니 스님이라고 장례식만 가라는 법은 없지, 결혼식에도 가서 행복한 가정의 탄생을 축복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언약을 보증하는 증명법사가 되어주면 좋지. 아니, 이참에 그냥 주례 전문 스님으로 나서볼까?”   드디어 지난 일요일 신랑 신부 못지않게 긴장한 상태로 생애 첫 주례를 섰다. 가기 전 머릿속을 헤집던 아찔한 풍경도 지금은 행복한 여운으로 가득하다. 아마 남은 생 동안 나는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때때로 기도할 것이다.     그간 주례를 약속한 후 일생 관심 밖이던 ‘결혼’에 대해 참 많이도 생각했다.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았다. 얼마나 많은 이유로 헤어지는지, 왜 결혼은 어렵고 이혼은 쉽게 하는지, 독신이나 비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문득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절에 들어올 당시만 해도 고향 마을에서는 비구니가 된다는 것에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여학생이 머리 깎고 비구니가 되겠다 하니, 어머니는 가슴을 쳤고 아버지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무셨다.     출가하겠다는 여성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1990년 당시를 떠올려 보면, 여자가 일생 독신으로 산다고 하면 뭐 크게 하자 있는 사람이겠거니 할 정도로 섬뜩한 선입견이 주변에 수시로 작동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이야 주변 반응이 그나마 괜찮다. 결혼적령기의 남녀는 서로 합의로 혼인을 하고 가정을 구성할 권리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이젠 비혼이건 독신이건 상관없다는 생각이 점차 확산된 듯하다.   사실 결혼적령기가 되면 이제 다 성인인데, 아무리 가족이라 해도 누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삶에 끼어들거나 간섭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만들곤 한다.     더군다나 결혼연령이 점점 더 늦어지는 추세라서 이제는 ‘결혼적령기’라는 말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절에 오시는 보살님들도 자식들이 나이는 상관없으니 언제라도 가정을 꾸렸으면 하고 바라거나, 그도 아니라면 편하게라도 살면 좋겠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바람보다도 본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첫 주례 기념으로 오늘은 결혼을 꿈꾸거나 결혼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덧붙일까 한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는 충분히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고, 우리는 모두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이러한 우리가 아득히 먼 시간부터 서로를 그리며 찾아와 이 땅에서 누군가를 만나 인연을 맺었다면, 수천생의 인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사랑을 담아 말 한마디, 손길 하나에도 정성으로 대하십시오. 서로를 존중하면서 일생 온화한 부부로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기고 결혼 사실 결혼적령기 순간 결혼식장 스님 주례

2022-06-24

[기고] 다문화 사회의 아이들

이번 가을에 입학연령이 된 딸을 위해 입학서류를 써넣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도시의 입학서류 상단에 있는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가정에서 쓰는 언어는 무엇인가요?’ ‘아이가 처음 말하기 시작한 언어는 무엇인가요?’ 내 대답은 물론 한국어다.   미국 학생의 10%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온 ‘영어학습자’로 분류된다. 많은 이민자 부모가 영어에 익숙하지 않고,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가정에서 모국어를 쓰게 한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입학할 때 언어 실력이 또래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이 잠재력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어 실력이 단일언어 사용자와 비슷해진다는 13세 정도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사회의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금 어눌한 영어를 이해해주는 관대함이 필요하고, “두 개 언어를 할 줄 알다니 대단해”라는 격려가 도움이 된다.   요즘에는 미국에서 인종 다양성이 특히 강조되는 추세이다 보니 동화책이나 TV 프로그램에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주인공 역할로 나와서 부모의 말을 쓰는 장면이 등장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책이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부모로서 남들과 다른 우리 아이가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또 아이들이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안심하게 된다.   아예 이민자로 이루어진 미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는 해도,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것도 이미 오래되었다. 한국은 어느새 150만 명의 체류 외국인이 거주하는 나라이고, 700만 명에 이르는 재외 동포들이 뿌리로 여기는 나라이다.   올해 입학한 한국 초등학교 학생의 4%는 이주 배경 아동이라고 하고, 저출산 사회에서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의 아동용 콘텐트들이 이 아이들을 포용하고 있는지, 학교에서 이 아이들의 감정과 상황이 충분히 배려받고 있는지는 의문이 많다.   지난 4년간 에누마는 이주배경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부가기능이 있는 한글학습 제품을 보급하면서 많은 교사와 부모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해외에서 건너온 외할머니가 이주민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기르는 가정, 장애가 있는 이주민 가정 아이, 해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다수로 이루어진 학교, 부모와 아이들과 구글 번역기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선생님의 이야기 등등.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 매일 접하고 듣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이라는 배경에서는 새롭게 들렸다.   그러면서 아직도 사회적 편견이 이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학습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해외 이민자로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필자와 동료들은 이주배경 가정이 교육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우리가 배우고 느낀 것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아이들을 모두 같은 살색으로 칠하지 않는 것은 어떤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글자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위해서 교재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나이를 조금 늦추면 어떨까. 다른 나라의 역사와 상황에 대해 바르게 알고, 혹시라도 잘못된 편견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이주 배경의 아이들이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 반에 한두 명에 해당할 만한 적은 수라고 소홀히 여길 것이 아니다. 다문화 사회인 한국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나 한국어 이중사용자에 대한 경험과 연구는 세계 안에서의 한국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줄 것이다.   한국을 세계와 연결하는 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들의 존재가 사회 안에서 환영받는다고 느낄 만한 배려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이수인 / 에누마 대표기고 다문화 사회 다문화 사회 저출산 사회 한인 사회

2022-06-22

[기고] 잊히지 않는 전쟁의 악몽

6.25전쟁 발발 72주년이다. 전쟁의 악몽은 일상의 생활을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날을 맞아 기념할 때마다 그때 싸우다 전사한 군인들을 생각하고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아직 새벽잠에서 꿈을 꾸고 있을 때 김일성 일당은 소련제 탱크 242대를 앞세워 38선을 뭉개고 남한을 침공해 왔다. 농사를 짓다 말고, 학교에서 학기를 다 마치지도 못한 채 가족을 집에 남겨두고 떠난 집안의 아들, 오빠, 동생, 형제들이다. 소총 하나로 힘겹게 싸웠다. 한강에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지만 피로 얼룩진 강토에서 죽기 살기로 싸워 3개월 후 수도 서울을 수복했다.     전쟁으로 국군 13만8000명이 전사했고 45만 명이 부상 당했으며 2만5000명이 실종됐다. 100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사망, 학살, 부상 등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10만 명이 고아가 돼 거리에 나왔고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이 발생했다. 320만 명이 고향을 떠나고, 1000만 명의 국민이 이산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후퇴했고, 모두에게 경제적으로도 참혹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도시와 산업 시설은 파괴됐고 국민의 재산은 잿더미가 되었다. 사회 경제의 기반과 국민 삶의 터전이 폐허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과 북은 긴 세월 휴전선을 마주한 채 냉전의 최전방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다. 국방에 국력을 소모하면서도 6.25전쟁을 극복한 세대에 의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전쟁이 끝난 1953년 당시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전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됐고 세계 6위권의 군사대국으로 우뚝 섰다. 최근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의 존재 가치를 체감하면서 국민들의 애국심은 고양됐고 평화의 소중함도 자각했다.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도 6.25전쟁이란 민족 수난을 겪으면서 생겨났다.     휴전 후 참전 용사들은 전쟁을 이겨낸 자부심과 군에서 익힌 기술로 전후 재건의 주축이 돼 경제대국의 선도적 역군이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전쟁은 전선에서 흘린 용사들의 피로, 후방 건설은 재건의 용사들이 흘린 구슬 같은 땀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고 전쟁을 반대한다. 그러나 누구라도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한다면 단호히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일전에 윤석열 대통령도 “연명도 포격과 같은 북한의 도발은 사과가 아니라 원점을 타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때 자유민주주의가 훼손하고 국군의 위상이 실추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국가 안보 없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다는 건 진리다.     6.25전쟁은 자유와 평화, 번영의 뿌리가 된 수많은 희생에 대한 기억과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다. 아직도 한반도 북녘에는 전쟁의 원죄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으로 이어진 인민에 대한 폭정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수없이 미사일 대남 도발도 감행하고 있다.     총소리가 멎었다고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평화는 전쟁을 대비하는 국가에게 오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전쟁 악몽 25전쟁이란 민족 전쟁 미망인 세월 휴전선

2022-06-22

[기고] 호주머니 속 인공지능

매년 최신 스마트폰이 출시된다. 하지만 혁신적 변화를 찾기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대부분 기술이 도입 초기에는 급격한 혁신이 이루어지다 점차 그 발전 속도가 더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최근 스마트폰에는 이제 막 가파르게 성장하기 시작한 혁신적 기술이 숨어 있다. 바로 ‘인공신경망 전용 처리장치’다. 최근의 스마트폰에는 인공지능 계산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칩이 포함돼 있다. 얼굴 인식을 통해 스마트폰을 잠금 해제하거나, 사진이나 동영상 화질을 개선하거나, 인공지능 비서가 음성을 인식하거나, 통화할 때 배경 소음을 제거하는 등 다양한 작업에 활발히 활용된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기술은 아직 ‘있으면 좋은(Nice-To-Have)’ 기능에 가깝다. 주로 사진·영상·음성 처리를 개선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기술이 초창기에는 ‘있으면 좋은’ 것에서 시작해서 점차 ‘꼭 필요한(Must-Have)’ 것으로 발전한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출시했을 때 스마트폰은 그저 ‘있으면 좋은’ 제품이었지만, 이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 되었다. 그러면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도 ‘꼭 필요한’ 기능이 될 수 있을까.   최근의 인공지능 발전 속도나 응용 분야가 확대되는 경향을 생각해 보면, 인공지능이 스마트폰에서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질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메타버스에서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인공지능 기술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속 세상은 새롭게 창조된 상상의 공간일 수도 있고,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복제한 디지털 쌍둥이 공간일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이든 메타버스 속에서는 인공지능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메타버스 속 이용자 경험을 원활하고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필수 요소로 작동한다.   그러면 막강한 성능을 가진 대규모 서버 컴퓨터에서 계산을 처리해서 스마트폰으로 전송해 주면 되지 않을까. 굳이 스마트폰에서 복잡한 인공지능 계산을 직접 수행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최첨단 초고성능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규모로 인공신경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그러면 스마트폰들이 계속해서 대규모 서버 컴퓨터에 접속해서 처리된 결과를 내려받아야 한다. 이런 처리 방식은 오히려 성능상의 병목을 가져온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인공지능 계산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처리 방식을 ‘엣지(edge) 컴퓨팅’이라고도 부른다. 엣지 컴퓨팅이 점차 확산되고 발전하면 스마트폰 속의 인공지능 처리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흔히 인공지능이라 하면 고성능 대규모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미래의 인공지능은 우리의 호주머니 속에서 주로 실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한 것과 비슷하다. 개인용 컴퓨터의 도입 초기에는 확산 가능성에 회의적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전망과 달리 이제 개인용 컴퓨터는 집집마다 ‘꼭 필요한’ 제품이 되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속 인공지능 처리장치도 ‘있으면 좋은’ 기능에서 ‘꼭 필요한’ 기능으로 발전할 수 있다. 아직은 기술적 제약이 많다. 인공지능 성능 개선뿐만 아니라 경량화·저전력화도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발전 속도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미래에는 소비자들이 인공지능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기준으로 스마트폰을 고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스마트폰을 ‘AI폰’이라 부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김병필 /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기고 호주머니 인공지능 인공지능 기술 인공지능 발전 인공지능 계산

2022-06-21

[기고] 놀이공원서 지도하는 자녀 재정교육

방학이 되면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갈 계획을 세운다. 놀이공원은 하루 나들이지만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다. 일단 놀이공원에 가면 자녀들이 부모를 졸라서 모자나 풍선, 장난감 등을 사게 된다. 그런데 이런 기념품 가격들이 만만치가 않다. 놀이공원을 다녀 온 후 며칠이 지나면 대부분 장난감들은 고장이 나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이런 저런 이유로 놀이공원을 다녀오면 항상 예산을 웃도는 지출이 발생한다.     필자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이러한 낭비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볼까 고민하다가 대학에서 가르치는 ‘프로젝트 관리(Project Management)’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하루 프로젝트 관리(One-day Project Management)’를 아이들에게 적용해 보기로 했다.   당시 큰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우선 큰 아이에게 ‘하루 프로젝트 매니저’ 역을 맡기기로 했다. ‘하루 프로젝트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첫번째 규칙은 가족 모두가 프로젝트 매니저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두번째 규칙은 프로젝트 매니저가 관리를 잘 해서 절약한 돈은 자신의 돼지 저금통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정했다.   놀이공원으로 가는 날이 결정되면 필자가 준비한 예산 액수를 프로젝트 매니저인 큰 아이에게 주고 혼자서 계획을 세우게 했다. 큰 아이는 출발부터 귀가할 때까지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뿐 아니라 지출할 금액도 스스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단 큰 아이가 계획서를 가족들 앞에 발표하면 어느 누구도 계획서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었다. 첫번째 프로젝트에서 큰 아이는 이전에 엄마 아빠가 하던 방식을 따라하느라 큰 절약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하루 프로젝트를 끝낸 후 자신의 돼지 저금통에 40달러를 넣으며 만족스러워 했다.     두번째 프로젝트는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이 맡았다. 이전에 형이 만든 프로젝트 계획서를 참고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계획을 세웠다. 놀이공원으로 떠나기 3일 전, 둘째가 자신이 준비한 계획서를 발표했다. 첫번째, 엄마 아빠의 커피는 집에서 만들어서 가지고 간다. 두번째, 아침 식사는 집에서 하고 조금 늦게 출발한다. 세번째, 점심 식사는 맥도널드에서 조금 일찍 한 후에 놀이공원에 입장한다. 네번째, 저녁 식사도 놀이공원에서 하지 않고 귀갓길에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에서 한다. 이런 돌발적인 계획서에 큰 아이는 불만이 많았다. 왜 놀이공원 안에서 점심과 저녁을 안 먹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평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첫번째 규칙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동생에게 따지지는 못했다.   출발부터 불만이 많았지만 규칙을 지키느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아이들이 자랑스러웠다. 놀이공원 안에서 불필요한 기념품을 사달라고 한다든지 아니면 군것질 하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오로지 절약을 해서 자신의 돼지 저금통에 더 많은 돈을 넣는 것이 목표였다. 놀이공원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도착했을 때 둘째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80달러를 절약해서 자신의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     ‘하루 프로젝트 관리’를 자녀들과 함께 시도하면서 배운 점은 부모가 모든 결정을 내리는 것을 점차 줄이고 상담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린 자녀들은 스스로 계획하고 결정하는 것을 연습하게 되고, 부모는 그들 곁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며, 비록 결정이 쓰라린 결말로 나타나더라도 위로하며 바로 잡아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재정교육은 재산상속보다도 더 소중하며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기고 놀이공원 재정교육 프로젝트 계획서 자녀 재정교육 프로젝트 매니저

2022-06-20

[기고] 세계화 후퇴시키는 권위주의

연방하원 특별위원회는 작년 의사당 폭동을 조사해 권력 유지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뒤집기 작전을 폭로했다. 지난 10년간 트럼프와 같은 권위주의 정치인들이 세계적으로 득세했다. 그 결과 이제는 다른 패러다임의 세상이 됐다.     현재는 세계화에 등을 돌리고 미국, 중국, 러시아를 필두로 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 경쟁하고 대결하는 시대다. 특히 자원 확보와 신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40년 동안 진행된 글로벌 현상에 쐐기를 박았다. 한국전쟁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냉전이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결이다.     세계는 2, 3개 그룹으로 재편됐다. 미국과 서방,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제3 세계다. 민주주의 국가는 우방과 연대하고, 권위주의 국가는 ‘미국에 대적한다’는 공동 목표를 갖고 있다. 그래서 정치, 안보, 경제 동맹을 따로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러시아와 중국은 세계대전 후 미국 주도 질서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 미국과 서방을 엘리트 국가로 규정하고, 서구 문화를 퇴폐 문화로 칭하며, 지난 굴욕의 역사에 대한 보복을 시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합병하고 벨라루스를 진압했다. 중국은 공해인 남중국해에 군사 기지를 건설했고 물자 지원으로 아프리카와 남미를 공략한다. 또 캄보디아에 비밀 해군기지와 남태평양 섬나라에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서방에 대한 문화적 분노를 장기집권 도구로 쓴다. 자신들이 무오류 지도자임을 주장하며 테크놀로지를 권력 유지에 이용한다. 사이버 장비, 드론, 안면인식 기술, 소셜미디어 등으로 국민을 감시한다. 언론은 법과 가짜 뉴스로 통제한다. 푸틴은 자신을 러시아의 첫 황제 피터 대제와 견주어 무오류임을 주장하고 헝가리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민주주의를 공격해서 장기집권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프랑스의 마린 르펜 국민제헌의회 대의원은 엘리트에 대한 분노를 부추긴 대표적 정치인이다.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 대롱령과 헝가리의 빅토르 총리는 보수 권위주의를 표방하며 유럽연합 단결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인도 모디 총리는 힌두 민족주의 이념과 정책 실현을 위해 수시로 인터넷을 차단한다. 이들의 공통점이 포퓰리즘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권위주의 정치인으로 플로리다 론 드산티스 주지사가 있다. 그는 성정체성 교육을 비판한 월트디즈니사의 세금 혜택을 박탈했다. 디즈니사는 플로리다의 가장 큰 규모의 기업으로 매년 주와 시에 50억 달러 세금을 내고, 관광객 5000만명을 끌어들이며, 고용한 로비스트가 38명이나 된다.     브렉시트, 외국인 혐오, 포퓰리스트 정치인 등장이 반 세계화 흐름이다. 자유, 민주주의, 개인의 존엄성과 같은 보편적 가치가 더 이상 보편적이 아니다. 권위주의 정치인들은 권력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타락한 서구문화 온상으로 비난하며 소외 커뮤니티를 집중 공격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권과 국가 자긍심을 내세워 냉혈한 힘을 휘두르는 정치인에게 끌린다. 보상심리, 대리만족, 보호 받는 기분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국민을 섬기지 않고 자신의 영광을 추구한다. 반대자에게 정치적 보복을, 추종자에게 경제적 보상을 준다. 자유 민주국가만이 개인 존엄성과 성취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권위주의자들을 대적하기에 힘이 부치는 것 같다.  정 레지나 / LA독자기고 권위주의 세계화 권위주의 정치인들 권위주의 국가 민주주의 국가

2022-06-20

[전문가 기고]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국가 사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전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형성되는 세계의 압축현상과 세계를 하나로 보는 의식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들이 접촉하고 교류하고 충돌하고 동화되면서 자문화가 타문화가 되고 타문화가 자문화가 된다. 이 과정에서 부각되는 문제는 개별 국가의 민족문화를 보장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 다문화 상황에서 우리가 우려하는 문제는 개별 문화들이 배타적으로 자기 특성만을 주장하는 것, 다른 문화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 것, 그럼으로써 인류 공동체 전체가 문화적으로 조화와 공존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심화되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자기 문화 정체성 모색은 ‘차이의 존중’ 원칙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가장 중요한 사고 능력은 상호간에 의도를 공유하는 능력이다. 의도 공유라는 인간의 독특한 능력은 문화 학습 즉, 무엇인가를 타인으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게 해 준다. 이런 문화 학습은 사회 학습과 소통 능력이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준다.     한국인의 전통적인 의식과 문화 안에는 서로의 다름을 배타적으로 구분하고 배척하기보다 전체적으로 포용하고 존중하려는 조화와 공존의 특성이 존재한다. 이런 특성은 현대 다종교 상황에서 극단적 갈등과 대립 양상이 드러나는 것과 달리, 서로 다른 종교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조화와 공존을 가능하게 했다.     한국인의 대인관계를 기술함에 있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있다면 ‘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정은 대인관계적 정서다. 이러한 개념은 흔히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목적으로 많이 거론됐으나 점차 사회심리학적 이해가 시도되고 있다.     최근에 심리학자들이 정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아울러 우리의 정서를 인내의 경험으로 접근하던 이전의 시각에서 탈피해, 정서를 문화와 언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시각이 부상했다. 즉, 정서를 개인 안의 것에서 끌어내어 사회의 언어와 대인 교류의 경험에 의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사회의 구성적 심리상태로 보는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특별하다. 유일한 분단국가이며 단일 민족이라는 특성은 끈끈한 정과 한을 형성해 냈다. 유교 문화권으로 효와 예를 중시하면서도 세계에서 기독교가 가장 잘 형성된 나라로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적 심리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생각하는 것은 외국과는 다르다. 만들어지고 교육된 충성심이 아니라 잠재된 심리적 특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감정은 한국인의 내재적 국가관이라든가 공동체 의식, 집단주의에 잘 나타난다. 우리의 이런 모습은 국가적 위기에 강하게 나타나 근성의 대한민국이라고 한국사회를 정의 내릴 수 있다.   세계화 시대 다문화 상황에 적합한 문화 정체성은 자신의 독특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전체적으로 다른 문화와 갈등, 대립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지닌 자연스러운 조화와 공존의 특성은 이 시대에 가장 적합한 한국 문화의 정체성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긴밀하게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차이 때문에 위협을 느끼는 대신 자신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송조이 / 정신건강상담사전문가 기고 인정 사회 사회문화적 맥락 사회심리학적 이해 세계화 과정

2022-06-19

[기고] 무한복제 시대의 고유성

녹슨 칼이나 낡은 시계, 오래된 모터사이클에 이르기까지 한눈에도 고물에 가까운 물건들을 수리해서 새것처럼 만들어 내는 동영상을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금손을 가진 손재주가 좋은 장인의 솜씨와 벽에 못 하나 제대로 박는 것도 어려운 나를 비교하며, 혹여 재난이라도 일어나면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불안감까지 듭니다.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것은 도구의 인간이라 불리는 우리 종의 유용한 형질임에 틀림없습니다.   손재주로 시작한 인류의 문명은 산업혁명 이후 컨베이어 벨트를 거쳐 로보틱스와 인공지능의 결합으로 공진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능화와 자동화라는 새로운 생산수단으로 인간의 노동을 제거한 무한복제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릴 적 방문했던 박물관의 관람은 선사시대 유물에서 시작했습니다. 돌을 떼어내어 만든 칼과 도끼의 거친 표면이 섬세하게 갈아 매끈해지기까지도 긴 시간이 걸렸다 했습니다. 이제는 밀리미터 이하의 단위까지 조절되고 제어되는 사회로 진입하며 품질이 상향 평준화돼 제품 간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집니다.     자연스레 소비자들은 품질을 넘어 다른 차원의 욕망을 갖게 됩니다. 물질적 필요에 의한 욕구를 넘어 상징으로서의 소비로 확장되는 것이죠.   가방을 예로 들어 볼까요? 튼튼하고 물건을 잘 담을 수 있는 본연적 기능은 이제 당연합니다. 여기에 심미성을 갖는 디자인과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는 색상이 요구됩니다. 제로 플라스틱이나 업사이클링과 같이 환경을 고려한 소재의 선택은 필수적이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 환경의 제공을 원칙으로 세우고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는 생산자에 대한 배려가 고려됩니다.   여기에 머무른다면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시절 동안 대중에게 선망받는 이들로부터 유래된 이야기들이 촘촘히 자리 잡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에서 왕비가 된 배우와의 일화로 유명해진 가방은 그 이름 자체가 전설이 되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물건이 쏟아지는 낭패를 경험한 가수에게 주머니가 있는 실용적인 가방을 디자인해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전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일화가 모여 쌓인 역사는 오랫동안 검증된 신뢰로 자리 잡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나와 가까운 이들과 공유한 매우 사적인 소중한 일상 속, 그 가방이 함께 한 기억으로부터 내 삶의 고유한 의미를 추억합니다. 겨울이 채 가시기 전, 봄의 햇볕이 아직은 아쉬운 3월의 입학식에 운동장에 모인 여덟 살 꼬마를 기대와 걱정으로 바라보던 어머니의 손에 들린 가방 속에는 혹여 흐르는 콧물을 닦아주려는 손수건이 들어있었습니다.   이렇듯 제품의 소재, 형태, 일화, 역사, 대상, 관계, 일상의 경험에 이르기까지 낱낱의 고유함이 켜켜이 쌓이며 브랜드는 극단의 고유함을 만들어 나갑니다. 무한복제의 시대, 이제 우리는 더 깊은 고유함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정말 소중하기 때문이기도, 기능적 필요는 누구나 만족할 만큼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고유함에 나와 우리가 관여하며 다시 새로운 고유함을 만들어 나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유한 내가, 고유한 이 행성 위에서, 고유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나의 일생은 그 어떤 삶과도 중첩되지 않습니다. 그 작디작은 흔적이 덧없이 스러져 잊히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각자는 더욱 큰 고유함을 꿈꾸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인류라는 생명체가 쉼 없이 우리 종의 고유함을 만드는 일에 본능처럼 매진하기에, 그 일원인 나 또한 그 거대한 역사에 자연스레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무한한 복제가 가능해질수록 우리는 더 정교하고 복잡한 다차원의 고유함을 끊임없이 만들고 발신해 나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기고 무한복제 고유성 무한복제 시대 노동 환경 소재 형태

2022-06-17

[기고] 코로나 해결 의지도 전략도 없는 북한

삐걱거리는 경제, 당 간부의 충성에 대한 불안, 코로나 감염자 폭증. 북한 정권이 직면한 난제들이다. 지난 8~1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5차 전원회의에서 이를 타개할 계획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북한 정권은 이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만 보여줬다.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경제 회생 기미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긴 연설 내내 숫자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대 현안인 코로나 방역을 놓고 김 위원장은 일장연설을 했다. 하지만 당국 차원의 명확한 대책을 제시하진 않았다. 북한은 손 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지침과 함께 “땅과 하늘, 바다를 철저히 막아 코로나 변이의 침략을 막자”고 한다. 국경을 봉쇄해도 이미 들어온 오미크론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일시 재개된 국경 무역을 막으면 북한 경제에 더 큰 피해만 가져올 것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달 29일 평양시 봉쇄를 해제했다. 배고픈 주민들을 가두어둘 때 발생하는 경제·사회·정치적 대가가 바이러스 재확산보다 더 크다는 셈법에서 봉쇄를 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원회의 다음 날 북한은 감염자 격리와 치료에 대한 방역 지침을 발표했지만 ‘어떻게’ ‘무엇으로’를 빼놓았다. 대규모 백신 지원을 받기엔 너무 늦었을지라도 코로나 치료제와 진단키트는 지금이라도 큰 도움이 된다.   북한의 코로나 판단 기준은 발열뿐이다. 외부에 요청만 하면 지원받을 수 있는데, “항체 진단 시약과 신속 테스트지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 “조선인 몸에 맞는 항바이러스 물질을 개발”하자고 한다. 북한 정권의 의료적 무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2일 코로나 사망률이 0.002%라고 했다. 영양실조에, 백신도 접종받지 못한 북한 주민의 코로나 사망률이 한국의 60분의 1이란 얘기다. 체면 때문에 북한 당국이 고안해 낸 수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부의 비판이 무서워 실무급 간부들이 실태를 축소 보고하고 지도부가 이를 그대로 믿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북한 당국은 코로나 팬데믹을 과소평가하는 거짓 통계에 기반해 정책 결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전원회의는 북한 정권이 다른 나라와의 상호교류로 펜데믹이나 다른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는 전혀 없음을 확인시켰다. 당 통일전선부장에 이선권 전 외무상을 앉혔는데 한국의 새 정부와 건설적 교류에 관심이 있다면 할 수 없는 인사다. 미국 외교관들에게 험담을 일삼아 온 최선희를 외무상에 임명한 것도 미국과 서둘러 관계를 개선할 뜻이 없다는 신호다.   북한을 분석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북한 내부를 명확히 들여다볼 순간이 가끔 찾아오는데, 이번 전원회의가 그렇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북한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관련된 전략도 내놓을 수 없음을 보여줬다. “전례 없는 국가적 위기”라고 인정하는 그 순간에도 정작 필요한 정책 변화를 단행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정권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서도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도움을 요청하지도, 심지어 자체적인 코로나 대응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캄캄한 밤길 다가오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앞에 주저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토끼 같다. 존 에버라드 /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기고 북한 코로나 코로나 방역 코로나 치료제 코로나 사망률

2022-06-16

[전문가 기고] 지구온난화와 수은방출 위험

북극은 세계 어느 곳보다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최전선이다. 이는 기온의 상승에 따른 지상 얼음(빙하와 해빙)과 지하 얼음(동토)의 녹는 정도가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로 다가 온다.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23개를 채울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수은 매장지가 북반구 동토층이라고 한다. 즉, 약 5700만 리터의 수은이 캐나다, 알래스카, 시베리아, 중국 티베트고원의 동토층에 매장돼 있다. 이는 전 세계 토양, 공기, 바다 등에 있는 수은 양의 2배에 해당되는 것이다.  매년 약 200t의 수은이 북극해로 유입된다는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석탄을 태우고, 금속을 채굴하고, 쓰레기를 소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활동으로 대기 중으로 수은이 방출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동토층이 자연 환경에서 ‘중요한 수은 공급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사실 이들 연구 전까지 동토층에 무엇이 얼마나 저장되어 있는지 또한 동토의 융해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수은은 자연적으로 발생해 순환하는 독성 오염물질이다. 토양에 축적되고, 철이나 마그네슘과 같은 영양소를 통해 식물에 유입되고, 유기물에 결합해 존재하기도 한다. 즉, 식물이 죽어 토양에 묻혀 동토층에 얼어 저장되면 수은은 시간과 함께 점차 축적되어 간다.   수은은 메틸수은 형태일 때 사람과 동물에게 위험할 수 있다. 동토층에 얼마나 많은 메틸수은이 갇혀 있다가 융해로 빠져나가는지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토양 미생물은 메틸수은을 함유한 유기물을 섭취해 수은을 체내 흡수한다. 동토 융해로 북극해로 유입한 수은은 먹이사슬을 통해 직접인 피해를 사람과 동물에게 준다. 이로 인해 운동 장애 및 선천적 기형과 같은 신경학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알래스카 원주민 연합회의 과학 책임자는 “(수은 문제는) 원주민 사회와 어로 식량 자원에 의존하는 부족에게 매우 큰 관심사이자 생존문제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동토층에서 침출되는 수은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동토층이 얼어 있는 한 이러한 문제는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 변화 및 북극 온난화로 동토가 융해될 때는 얼마나 많은 수은이 언제, 어디서 방출될 것인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동토층의 융해로 얼어 있던 메틸수은이 강을 통해 북극해로 유입되고 있다. 알래스카 내륙 인디언은 강을 역류한 연어 등의 어류를 훈제해 긴 겨울철 단백질을 보충하고 연안의 에스키모는 고래와 바다 동물을 수렵한다. 이들 원주민은 육상 동물도 수렵해 식용한다. 조상 대대로 어로와 수렵활동으로 살아 온 이들 원주민들에게 동토층 융해로 인한 수은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얼마나 큰 해를 가져다 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인간뿐만 아니라 북극곰, 파일럿고래, 일각고래, 흰돌고래, 물개, 바닷새 등의 동물이 고농도 수은에 노출되는 것도 우려할 만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전문가 기고 지구온난화 수은방출 수은 문제 수은 매장지 알래스카 원주민

2022-06-15

[기고] 다문화 사회의 아이들

이번 가을에 입학연령이 된 딸을 위해 입학서류를 써넣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도시의 입학서류 상단에 있는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것이다. ‘가정에서 쓰는 언어는 무엇인가요?’ ‘아이가 처음 말하기 시작한 언어는 무엇인가요?’ 내 대답은 물론 한국어다.     미국 학생의 10%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온 ‘영어학습자’로 분류된다. 많은 이민자 부모가 영어에 익숙하지 않고,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위해서도 가정에서 모국어를 쓰게 한다. 그러다 보니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입학할 때 언어 실력이 또래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이 잠재력을 잘 발휘하기 위해서는 언어 실력이 단일언어 사용자와 비슷해진다는 13세 정도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사회의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조금 어눌한 영어를 이해해주는 관대함이 필요하고, “두 개 언어를 할 줄 알다니 대단해”라는 격려가 도움이 된다.   요즘에는 미국에서 인종 다양성이 특히 강조되는 추세이다 보니 동화책이나 TV 프로그램에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주인공 역할로 나와서 부모의 말을 쓰는 장면이 등장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책이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부모로서 남들과 다른 우리 아이가 환영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또 아이들이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안심하게 된다.   아예 이민자로 이루어진 미국과는 사정이 다르다고는 해도,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것도 이미 오래되었다. 한국은 어느새 150만 명의 체류 외국인이 거주하는 나라이고, 700만 명에 이르는 재외 동포들이 뿌리로 여기는 나라이다.   올해 입학한 한국 초등학교 학생의 4%는 이주 배경 아동이라고 하고, 저출산 사회에서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 아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의 아동용 콘텐트들이 이 아이들을 포용하고 있는지, 학교에서 이 아이들의 감정과 상황이 충분히 배려받고 있는지는 의문이 많다.   지난 4년간 에누마는 이주배경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부가기능이 있는 한글학습 제품을 보급하면서 많은 교사와 부모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해외에서 건너온 외할머니가 이주민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를 기르는 가정, 장애가 있는 이주민 가정 아이, 해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다수로 이루어진 학교, 부모와 아이들과 구글 번역기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선생님의 이야기 등등. 미국의 한인 사회에서 매일 접하고 듣는 이야기이지만 한국이라는 배경에서는 새롭게 들렸다.   그러면서 아직도 사회적 편견이 이 아이들의 학교생활과 학습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해외 이민자로 살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필자와 동료들은 이주배경 가정이 교육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우리가 배우고 느낀 것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아이들을 모두 같은 살색으로 칠하지 않는 것은 어떤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글자를 배워야 하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위해서 교재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나이를 조금 늦추면 어떨까. 다른 나라의 역사와 상황에 대해 바르게 알고, 혹시라도 잘못된 편견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이주 배경의 아이들이 우리가 사는 동네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한 반에 한두 명에 해당할 만한 적은 수라고 소홀히 여길 것이 아니다. 다문화 사회인 한국의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나 한국어 이중사용자에 대한 경험과 연구는 세계 안에서의 한국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줄 것이다.   한국을 세계와 연결하는 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들의 존재가 사회 안에서 환영받는다고 느낄 만한 배려를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이수인 / 에누마 대표기고 다문화 사회 다문화 사회 저출산 사회 한인 사회

2022-06-15

[전문가 기고] 커피는 억울하다

그럴듯한데 의미 없는 식품 이야기가 많다. 캔커피 뚜껑을 따고 2분 기다리라는 말이 좋은 예다. 캔커피 속 퓨란 함량을 낮추기 위해 개봉 후 2분에서 5분 정도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퓨란은 식품을 고온으로 가열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향기 물질이다. 캐러멜·과일·견과류를 떠올리게 하는 달콤하고 구수한 향기를 낸다. 아직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는 없지만 동물 실험 결과에 근거하여 잠재적 발암물질로 간주된다.   캔커피 뚜껑을 따고 2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기다리는 동안 퓨란이 휘발하여 함량이 낮아진다. 2017년 동국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4℃ 냉장 조건에서는 2%, 60℃ 온장고에서 최대 14%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캔커피 뚜껑을 따고 2~5분을 기다릴 이유는 없다. 캔커피는 원두커피와 출발 지점 자체가 다르다. 캔커피나 인스턴트 커피는 제조 과정에서 퓨란이 줄어들기 때문에 원두커피보다 퓨란 함량도 낮은 편이다. 커피메이커로 내린 원두커피의 퓨란 함량은 평균 110.73ng/mL, 캔커피는 28.08ng/mL, 제조사 설명대로 물을 탄 인스턴트 커피는 8.55ng/mL이다. (1ng은 10억분의 1g이다)   커피 향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나 캔커피의 향기는 방금 내린 원두커피나 에스프레소에 비교하면 보잘것없다. 반대로 향기가 더 잘 보존되는 캡슐커피의 경우 퓨란 함량이 에스프레소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이다. 캔커피에는 원래부터 원두커피의 4분의 1 수준으로 퓨란이 적게 들어있다.   하지만 원두커피나 에스프레소, 캡슐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걱정해야 할 이유도 없다. 퓨란은 커피 속 다양한 물질 중 하나일 뿐이다. 커피 속에는 1000가지가 넘는 화합물이 들어있다. 커피를 마시면 그중 한 성분이 아니라 모두를 섭취하게 된다. 1991년 세계보건기구는 커피를 잠재적 발암물질로 분류했지만 2016년에 커피를 목록에서 뺐다. 커피와 암의 연관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됐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 결과를 봐도 하루 2~3잔의 커피가 건강에 유익하다는 쪽이 대다수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간암, 전립선암, 2형 당뇨병, 심장병, 파킨슨병의 위험이 낮게 나타난다. 2022년 5월 31일 영국 성인 17만 명 자료를 분석하여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하루 1.5~3.5잔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안 마시는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30%까지 낮았다. 커피 한 컵에 설탕 1티스푼(5g)을 넣어 마셔도 사망 위험 감소가 나타났다. 이런 연구로 인과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커피 때문에 암을 걱정해야 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나무를 보다가 숲을 놓치지 말자. 우리는 단일 성분이 아니라 전체 식품을 먹는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전문가 기고 커피 캔커피 뚜껑 에스프레소 캡슐커피 인스턴트 커피

2022-06-14

[전문가 기고] 지구온난화와 수은방출 위험

북극은 세계 어느 곳보다 지구온난화 및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최전선이다. 이는 기온의 상승에 따른 지상 얼음(빙하와 해빙)과 지하 얼음(동토)의 녹는 정도가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로 다가 온다. 올림픽 규격의 수영장 23개를 채울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수은 매장지가 북반구 동토층이라고 한다. 즉, 약 5700만 리터의 수은이 캐나다, 알래스카, 시베리아, 중국 티베트고원의 동토층에 매장돼 있다. 이는 전 세계 토양, 공기, 바다 등에 있는 수은 양의 2배에 해당되는 것이다.  매년 약 200t의 수은이 북극해로 유입된다는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석탄을 태우고, 금속을 채굴하고, 쓰레기를 소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활동으로 대기 중으로 수은이 방출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동토층이 자연 환경에서 ‘중요한 수은 공급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사실 이들 연구 전까지 동토층에 무엇이 얼마나 저장되어 있는지 또한 동토의 융해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수은은 자연적으로 발생해 순환하는 독성 오염물질이다. 토양에 축적되고, 철이나 마그네슘과 같은 영양소를 통해 식물에 유입되고, 유기물에 결합해 존재하기도 한다. 즉, 식물이 죽어 토양에 묻혀 동토층에 얼어 저장되면 수은은 시간과 함께 점차 축적되어 간다.   수은은 메틸수은 형태일 때 사람과 동물에게 위험할 수 있다. 동토층에 얼마나 많은 메틸수은이 갇혀 있다가 융해로 빠져나가는지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토양 미생물은 메틸수은을 함유한 유기물을 섭취해 수은을 체내 흡수한다. 동토 융해로 북극해로 유입한 수은은 먹이사슬을 통해 직접인 피해를 사람과 동물에게 준다. 이로 인해 운동 장애 및 선천적 기형과 같은 신경학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알래스카 원주민 연합회의 과학 책임자는 “(수은 문제는) 원주민 사회와 어로 식량 자원에 의존하는 부족에게 매우 큰 관심사이자 생존문제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동토층에서 침출되는 수은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동토층이 얼어 있는 한 이러한 문제는 무시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 변화 및 북극 온난화로 동토가 융해될 때는 얼마나 많은 수은이 언제, 어디서 방출될 것인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동토층의 융해로 얼어 있던 메틸수은이 강을 통해 북극해로 유입되고 있다. 알래스카 내륙 인디언은 강을 역류한 연어 등의 어류를 훈제해 긴 겨울철 단백질을 보충하고 연안의 에스키모는 고래와 바다 동물을 수렵한다. 이들 원주민은 육상 동물도 수렵해 식용한다. 조상 대대로 어로와 수렵활동으로 살아 온 이들 원주민들에게 동토층 융해로 인한 수은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얼마나 큰 해를 가져다 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가 필요하다.     인간뿐만 아니라 북극곰, 파일럿고래, 일각고래, 흰돌고래, 물개, 바닷새 등의 동물이 고농도 수은에 노출되는 것도 우려할 만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동토의 해빙은 생태계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수은 방출이다. 기후변화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대처하는 전 인류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그스 교수전문가 기고 지구온난화 수은방출 수은 문제 수은 매장지 수은 공급원

2022-06-13

[기고]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

“인간적”이라는 말을 따져보자. 그러려면, 가장 밑바탕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해명해야 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문명을 건설하는 존재이다. 인간을 이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말해보기 바란다. 불가능할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호모 파베르(homo faber),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등도 모두 문명을 건설하는 활동들의 특징을 잡아 규정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뭘 가지고 문명을 건설하는가? 생각이다. 우주선도 생각의 결과이고 칫솔도 생각의 결과이며 민주주의, 사회주의, 철학, 과학 어느 것도 생각의 결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없다. 문명을 건설하면서 사는 사람은 생각하고, 문명을 수입해서 사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명적인 삶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잣대이다.     생각은 말이나 문자나 숫자나 음표로 표현되므로 문명은 말이나 문자나 숫자나 음표로 조직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문명을 읽는 높은 시선을 가진 사람은 말이나 문자나 음표나 숫자를 다루는 데 능숙하다. 이것들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질서와 체계를 갖추면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고 한다.     여기서 또 지식의 생산자인가 수입자인가로 문명의 주도권을 갖느냐 못 갖느냐가 결정된다. 문명에서 주도권을 굳이 가지려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다소 경박하게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덜 주체적이고, 덜 독립적이며, 덜 자유스러운 삶도 자기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 문명이 말이나 문자나 숫자나 음표로 조직되어 있다면, 문명의 확실성이나 견고성은 무엇이 지켜주는가? 어차피 이것들은 신이 내려준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그것을 지키자고 한 약속의 체계이므로, 약속을 지키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의무가 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 정도로 절대적이다. 이처럼 문명의 견고성을 지켜주는 것은 신뢰이다. 신뢰는 문명의 주춧돌이다.     춘추전국 시대를 평정하고 소위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는 당시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을 성공시킴으로써 나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여 국력을 키웠다. 천하를 통일할 힘을 가지게 한 근원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상앙이란 재상이 출현하여 진나라 전체에 신뢰의 기풍을 회복한 것이었다.     진나라에게 패배하여 천하통일의 제물이 되었던 다른 나라들도 개혁을 시행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제도나 정책의 숨구멍이 신뢰임을 아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화폐제도, 정당제도, 교육제도, 법률제도, 의회제도 등등도 문명의 한 형태인 이상 모두 ‘신뢰 제도’이며 신뢰가 지켜져야만 유지될 수 있다. 신뢰가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문명은 길을 잃는다.   그렇다면, 신뢰를 지키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강제력은 또 무엇일까? 제도일까? 규정일까? 이익일까? 모두 제한적인 역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외부적인 그것들이 아니라 내부적인 염치이다. 염치는 신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매우 민감한 자각 능력이다. 수치심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염치를 모르거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민감성이 없으면, 제도나 법은 어느 정도의 세력만 갖추면 얼마든지 멋대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이미 많이 봤다. 진영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인간으로 살게 하는 힘이자 문명의 지킴이인 염치를 포기한다면, 격을 갖춘 인간으로 자신을 지켜내기 어렵다. 자신을 지키는 일에 실패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의 진보를 뒤틀고 막아 버린다.   왜 지식인들이 쉽게 부패하는가? 왜 창의적 기풍이 더딘가? 왜 정치가 줄곧 실패하는가? 왜 진영에 갇혀 꼼작 못하는가? 왜 천박해지고도 당당한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사전에 먼저 배웠어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양심, 염치, 수치심 등과 같은 ‘인간적인 것’들이다.     이런 보물들이 담긴 상자가 바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인생 짧다. 잠시 멈춰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인간적으로 살다 가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최진석 / 새말새몸짓 이사장기고 신뢰 제도 모두 문명 교육제도 법률제도

2022-06-10

[기고] 전쟁과 코로나가 스쳐간 ‘올림피아드’

주로 국제정치에 관한 무거운 글을 써 왔는데, 이번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려 한다. 지난달 마지막 며칠을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Odyssey of the Mind World Championships)가 열리는 아이오와주 에임스에서 보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열린 이래 세계 청소년들이 모여 과학과 퍼포먼스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법을 내놓는 장으로 자리 잡은 행사다. 필자의 아이들도 메릴랜드주 대표로 미 전역의 주 대표 및 각국 대표팀과 겨뤘다. 코로나19 이후 처음 대면으로 열렸는데, 아이오와주립대 강당에 모인 수천 명이 각 팀 구호를 외치면서 다른 팀을 응원했다. 바닥에 타월을 깔고 각 팀이 디자인한 핀도 서로 교환한다.   올림픽경기처럼 희망찬 기쁨은 있지만 스캔들이나 정치적 논쟁은 없었던 이 행사에서 지정학이 드리운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러시아와 매년 대규모 팀을 보내던 중국과 홍콩, 그리고 독일·일본이 불참했다. 코로나와 국제정세 중 무엇이 더 영향을 줬을까. 주최 측은 내년엔 만나길 바란다는 성명만 내놓았지만, 러시아의 불참은 지정학적 이유가 클 것이다. 다른 팀과 즐겁게 핀을 교환하던 러시아 아이들. 이들의 부모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떠난 친서방 자유주의자 수만 명 중에 포함된 건 아닐까. 대러 경제제재로 해외여행 경비를 대기가 어려웠을까. 아니면 러시아인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게 부끄러웠을까. 어찌 됐건 이번에 못 온 러시아 청소년은 푸틴 대통령에 의한 피해자다.   중국팀 불참도 시진핑 주석의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도시 봉쇄 탓에 함께 모여 준비하는 것도, 해외여행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중국 대표팀은 늘 씩씩했고 목소리도 크고 핀 교환에도 열정적이었기에 올해 그 빈자리가 특히 눈에 띄었다. 중국공산당은 방역이란 미명 아래 자국민을 전 세계로부터 차단했다. ‘동방은 뜨고 서방은 지고 있다’는 운동까지 펼친다. 프로파간다 담당자는 창의력올림피아드 속 우스꽝스러운 모자와 풍자극·발명품 등을 서구 쇠락의 증거로 보려 하겠지만, 최종전에 미항공우주국(NASA) 관계자들이 와서 미래의 발명가·과학자들을 독려하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중국의 중산층 규모는 미국 인구와 맞먹는다. 이들은 ‘시진핑 사상’ 앱 사용을 강요받지만, 자신의 자녀는 전 세계와 연결되길 바란다. 내년 올림피아드엔 중국팀이 참가할 수도 있다. 30년 후 여기서 경쟁한 미·중 청소년들이 더 평화롭고 생산적인 시대에 각자 분야를 대표하는 리더로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지정학적 상황과 코로나로 국제사회가 쪼개졌지만, 이 행사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상호거래를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다. 수만 개의 핀과 다채로운 팀 마스코트(버지니아주 팀의 메두사, 한국의 한복과 나비,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등)를 교환한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암묵적 규칙 속에 이뤄지는 핀 교환식을 통해 청소년들은 우애를 다진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실험장이다.   한국도 여러 팀이 참가했는데, ‘Seven Best Kids’ 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미국 아이들이 “한국팀 배지 받았어!”라고 자랑하며 다닐 정도로 인기가 높았는데, 특히 세 개의 핀을 맞추면 한반도 모양이 완성되는 핀이 그랬다. ‘김일성 사상’을 외우는 북한 청소년도 참가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전 세계가 자유 한국을 칭송하는 것을 보고 놀라면서도 자긍심을 가질 것이다.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는 지정학이 아닌 창의력을 겨루는 곳이지만, 세상을 다시 조화롭고 번영하며 상호 연결된 곳으로 만들 기회가 미래 세대에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마이클 그린 /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기고 올림피아드 코로나 내년 올림피아드 제로 코로나 러시아 청소년

2022-06-08

[기고] 독재자의 심리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독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독재자들은 사이비 교주들과 심리적으로 유사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만 증후군이다. 오만함은 전문용어로 자아팽창이라고 한다. 오만 증후군은 증세가 갈수록 악화하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 단계,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한다.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 ‘감정 인지 불능증’이란 신경증이 있다. 자신의 감정도, 다른 사람의 감정도 모른다. 그래서 현실 판단 능력이 상실되고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하며 비현실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 번째, 편집증적 망상이 심하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제거한다. 푸틴을 비롯한 전 세계의 독재자들은 언론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억압하고 심지어 없애려고까지 한다.   세 번째,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거나 혹은 국가가 자신의 개인 자산인 양 착각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권력자가 자신의 거처를 아방궁처럼 지으려 하거나, 뉴스 첫 자리를 차지하려 하거나, 나라 전체를 자신의 초상화로 도배하려고 할 때 조심할 것을 경고한다.     네 번째, 국민을 획일화하고 싶어 한다. 어록을 만들어 전 국민이 외우게 하거나 국가 시책에 무조건 동조하도록 강압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크메르 루즈를 이끌었던 폴 포트이다. 전 국민이 모두 똑같이 입고 먹고 일하게 하려고 했던 인물. 다양성을 부정하고 획일화를 꿈꾸는 자들은 가학적 평등의식을 가진 정신병자들이다. 이들은 결국에는 나라 전체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고,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다섯 번째, 국민을 노예화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국민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다. 국민이 무지해야 지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국민을 빈민 수준으로 만들어 아예 교육에 대한 의지를 꺾어 버리는 후진국형 독재 국가들도 아직 존재한다. 심지어 국민의 노예화를 위해 군인들이 자국민을 살상하게 하는 권력집단도 있다. 미얀마 군부가 그렇다.   여섯 번째, 오만 증후군의 마지막 단계로, 스스로 신을 자처하는 신격화 단계이다. 나라가 신정 체제로 전환되며 지도자 우상화·신격화 작업이 진행된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독재자의 정신 상태는 거의 분열증 환자의 수준에 도달해서 애꿎은 사람들을 잡아 고문하고 살해하며, 자신의 부정적 자아의 투사인 사람들을 혐오하는 혐오증을 기반으로 사회적 약자들에게 증오심을 품는다. 또한 무속적인 것에 집착하여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하거나, 혹은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거의 정신병 말기 상태이다.   독재 체제의 후유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사람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독재자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가져올 후유증을 경고했다. 사람들이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타인을 심각하게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은 악의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지시에 따라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또한 독재체제가 장기화하면 부정부패가 심각해지고 빈부격차가 심화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사례가 알려 준다. 빈부격차는 국민 사이의 격차를 벌려 놓는다. 고급교육을 받는 상류층과 교육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서민층의 계층화가 갈수록 심해진다. 그로 인해 국민의식은 하향평준화 되어 가고 이등 국민론, 삼등 국민론을 비롯한 사대주의적인 생각들이 사회를 오염시킨다.   독재자는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러시아의 푸틴이 보여주고 있다. 독재자는 암 덩어리 같아서 언젠가 다른 나라에도 전이될 수 있다. 그래서 암처럼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노예로 사는 것을 당연시하며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홍성남 /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기고 독재자 심리 이후 독재자들 이등 국민론 심리학자 스탠리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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