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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7월14일은 제 2의 광복절

지난 12일 LA한인타운에서 열린 제 1회 미주 탈북민대회서 만난 탈북민 권정순씨〈본지 7월 16일자 A-6면〉는 2007년 중국으로 탈북했다 붙잡혀 신의주 수용소로 끌려갔었다.     권씨는 “수용소에서 잠을 안 재우는 게 가장 버티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많이 맞았고, 얼음 구덩이에 앉는 고문도 당했는데 잠을 못 자서 그 순간에도 잠이 왔다”며 “잠을 못 자게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건 없었다”고 수용소에서 겪었던 고통을 설명했다.   또 다른 탈북민 고명옥씨는 6년간 중국에서 칩거 생활을 했다. 그는 함께 탈북한 아들, 3년 뒤 뒤따라 탈북한 딸과 함께 살았다. 고씨는 “매 순간을 북송의 두려움 속에 살았다”며 “경찰차가 보이기만 하면 숨고, 아무 일도 없이 무사한 하루가 최고의 날이었다”고 당시 생활을 설명했다. 그는 신분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당시의 고초도 털어놨다.   권씨와 고씨처럼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에게 ‘북한이탈주민의 날’인 7월 14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지난 5월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권익을 향상시키자는 취지에서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 탈북민들에겐 감격스러운 날이다.   12일 행사장에서 만난 탈북민 현춘삼씨는 “7월 14일이 우리에게는 제2의 광복절”이라며 “한국 정부 차원에서 우리를 인정해주고 포용해준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들이 말하는 두 번째 광복의 감격을 우린 이해하긴 어렵다. 경험하지 못한 ‘쟁취한 자유’의 기쁨이어서다.   그 감격에 탈북민들이 더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기대하지 않았던 일상 때문이기도 했다. 그들은 북한의 보복보다 한국과 미국에서 마주한 편견과 차별이 더 무섭다고 했다. 탈북민에 대한 이해는 격려나 배려를 넘어 사회적 의무다.   최근 한국에서는 탈북민 용어 자체가 부정적이라고 바꿔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다. 그래서 한 칼럼니스트는 그들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매년 7월 중순이 다가오면 한번쯤 되새김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광복절 한달 전쯤 감격에 차 있을 ‘먼저 온 통일’들을. 김경준 기자취재수첩 광복절 맞이 광복절 제정 미주 탈북민대회 보통 국가기념일

2024-07-17

[취재 수첩] 규탄 현장에 한인 단체장·기관장·정치인은 없었다

한인 정치인, 단체, 기관들의 존재 이유가 무색했던 하루였다.    지난 2일 한인타운 윌셔 잔디광장에서 열린 ‘양용 사건 규탄 집회’엔 이름 모를 시민들만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흑인, 히스패닉 등 타인종 주민까지 나섰다. 이번 사건을 한인의 죽음을 넘어 커뮤니티 전체의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정작 앞장서야 할 한인 단체, 기관, 정치인들은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LA총영사관(총영사 김영완)은 자국민의 생명을 빼앗은 미국 공권력에 대한 규탄 집회가 열리는데도, 영사 한 명 보내지 않았다.    김영완 총영사는 지난달 부임 2주년 인터뷰에서 “재외국민 보호 차원에서 피해자 중심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LAPD 측에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 요청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말 뿐이었다. 행동은 없다.   LA한인회(회장 제임스 안)도 마찬가지다. 유가족의 기자회견을 지원했던 한인회는 장례식장에 조화만 달랑 보냈을 뿐, 더 이상의 움직임은 없다.    선거 때만 되면 한인들을 찾는 존 이 LA시의원(12지구), 미셸 박 스틸 연방하원의원(45지구), 영 김 연방하원의원(40지구) 등도 공식 성명 하나 발표하지 않았다. 이들은 LA경찰국(LAPD)이 편집한 바디캠이 공개된 이후 침묵하고 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양용씨가 식칼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피격당했다는 점은 이번 사건의 본질이 결코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를 별다른 대응책 없이 극단의 상황으로 몰고 간 LAPD의 폭력적 시스템이 핵심이다.   정신질환으로 인한 폭력적인 상황 및 환자가 있을 경우 파견되는 비무장팀인 SMART도 출동하지 않았다. 무장경관들이 마치 범죄자를 잡듯이 들이닥쳤다. 환자를 그런 식으로 몰아붙인 과정은 LAPD의 비전문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분명 양용씨는 도움이 필요한 환자였다. 범죄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식칼을 부각시킨 바디캠 편집본엔 그를 마치 범죄자처럼 몰아가려는 LAPD의 의도가 보인다.   집회 참석자들은 그러한 시스템을 규탄했고, 개선을 요구했다. LA지역에서 지금도 계속 발생하는 경찰 총격에 의한 안타까운 비극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타인종까지 피켓을 들었다.   바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한인 단체들은 어디에 갔나. 심지어 일부 참석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왔다며, 자신의 단체명을 밝히지 말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입장이 난감하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지원금을 따야 하는 입장이어서 각 세우기가 난처하다는 걸까.   이번 사건으로 도미니크 최 LAPD 임시국장을 비롯한 정부나 정계의 한인들에게 부담을 주면 곤란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본말이 전도된 생각이다. 한인의 피해를 외면한다면,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정부나 정계에 진출한 건가.     과거 LA폭동 때처럼 한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조차 할 곳이 없었다. 지금은 경찰 국장, 연방의원, 검사 등 곳곳에 한인들이 진출해 있다. 그들에게 하소연할 수 없고, 도움도 받을 수 없다면 한인 사회의 정치력 신장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실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한  일요일 오후였다. 김경준 기자 / 사회부취재수첩 타인종 한인 LA 로스앤젤레스 양용 경찰 총격 LAPD LA총영사 김영완 LA한인회 제임스 안 도미니크 최 미주중앙일보

2024-06-03

[취재 수첩] 지하철 못 타는 3가지 이유

지난달 26일 본지가 보도한 LA메트로 지하철은 소리 없는 무법지대였다.〈본지 4월 30일자 A-1면〉 열차 안에서 약물을 투여하고 흉기가 될만한 공구를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하철역도 개선 사항이 많아 보였다. 지하철역이 지하철 이용 전부터 피하게 되는 혐오 장소가 되고 있다.     이날 본지는 버몬트역, 퍼싱스퀘어역, 웨스턴역 등 총 3개의 지하철역을 이용했다. 세 역에서 발견된 첫 번째 공통 문제점은 바로 역 앞 노숙자다. 지하철 이용객들은 역에 들어가는 것부터 난관이다. 역 입구 앞에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역 주변 미관이나 위생도 좋지 않다. 게다가 거동이 이상한 노숙자도 여럿 있다. 퍼싱스퀘어 역 입구 앞에서 한 노숙자는 소리를 지르고 다른 노숙자는 약에 취했는지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당장은 아니라도 잠재적 위협이 될 수가 있다.     두 번째는 안전이다. 앞서 지난달 25일 메트로 이사회는 ‘공공안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반면, 역 안에서는 비상사태 선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역내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 등 보안 인력은 없다. LA시가 행정 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고 하나, 최근 수차례 발생한 메트로 강력 범죄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모습이다. 위급한 상황 발생 시 신고할 수 있는 인터컴이나 신고 안내조차 보이지 않는다. 안전을 책임지는 인력이 없다면 이용객 스스로가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무방비 노출이다.     마지막으로 역내 위생도 좋지가 않다. 역 앞에서부터 지하철 탑승까지 악취의 연속이다. 화장실 냄새부터 역앞과 역내에서 대놓고 피우는 마리화나 냄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이날 웨스턴역 출입구 계단 중간에서 한 남성이 마리화나를 피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날 본지가 동행한 클라라 이(78)씨는 “승강장이나 지하철에 앉을 자리가 있어도 웬만하면 앉지 않는다”며 “노숙자들의 소변 자국으로 오염돼 있거나 악취가 진동한다"고 말했다. 만약 역이 쾌적한 환경을 유지했다면 이용객 수가 증가했을 것이다.     LA 메트로 측은 지난 2월 노후한 지하철 교체를 위해 현대로템과 6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지하철과 동일한 전동차가 LA 지하를 다닌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다만, 해당 지하철에 걸맞은 역이 필요하다. 2026년 FIFA 월드컵과 2028년 하계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행사를 앞둔 시점에서 더욱이 지하철역 개선이 필요하다.  김경준 사회부 기자취재수첩 지하철역 지하철역도 개선 지하철 이용객들 지하철 탑승

2024-05-01

[취재 수첩] ‘반전 드라마’ 재외선거…투표의 힘 보였다

대한민국 제22대 국회의원 재외선거가 끝나자 한국 언론과 정치권이 동포사회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1일까지 치러진 총선 재외선거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62.8%(기존 투표율 23~45%)를 기록해서다. 지난 2012년 재외선거제도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총선 투표율이다.     지난 3월 12일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노태악)가 재외선거 재외유권자 등록자를 발표할 때는 재외선거 회의론까지 나왔다. 등록률이 너무 낮아 선거비용이 아깝다는 딴지였다.     실제 이번 총선 등록 재외유권자는 총 14만7989명, 재외동포청 추산 재외국민은 246만 명 대비 유권자 등록률이 6%에 그쳤다. 등록 유권자도 2022년 제20대 대선과 비교 34.6%, 2020년 제21대 총선과 비교 14% 감소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 재외선거에서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졌다는 반응이다. 총선 재외선거를 바라보던 회의론은 환호로 바뀌었다. LA재외선거관리위원회 측은 고생한 투표사무원들에게 커피 한 잔 ‘한턱’을 쏘며 자축했다. 정치권은 높은 투표율이 어느 정당에 이득일지 표심 분석에 한창이다.   재외투표소를 찾은 유권자 연령대는 다양했다. 임태랑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LA협의회장은 “전에는 투표소에서 젊은층을 보기 어려웠다면, 이번에는 첫날부터 자녀까지 데려온 분들이 참 많았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긍정했다.     특히 먼 길을 마다치 않고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재외국민(동포) 권익신장’을 강조했다. 대부분 지난해 출범한 재외동포청 소식을 반겼다. 재외공관 민원서비스 편의증진, 재외국민 법적지위 향상, 재외동포를 위한 한국 정부와 국회의 관련법 제정 등을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한 유권자는 “우리가 아무리 정당한 대우를 요구해도 힘이 없으면 들어주지 않는다. 가장 큰 힘은 재외선거 참여”라고 일갈했다.   반면 재외선거 유권자 등록 고취와 편의증진은 풀어야 할 숙제다. 유권자 등록은 온전히 재외국민의 몫이다. 중앙선관위 온라인으로 쉽게 가능한 만큼, 한인사회 차원에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특히 미국에만 전체 재외국민의 44%(109만 명)가 거주한다. 미국에서는 연방우정국(USPS)을 통한 우편투표가 일상이다. 한국 중앙선관위와 국회는 미국에서라도 ‘재외선거 우편투표’를 시범도입하는 전향적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재외공관이 우편투표 발송과 회송을 1차 담당하면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중앙선관위는 재외선거관을 8명을 파견한 미국에서 선거법 단속에 따른 국제법 위반 소지도 풀어야 한다. ‘선거범죄 예방.단속’ 행위는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절차인 만큼 주권침해 시비를 자초해선 안 된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취재수첩 재외선거 재외선거 재외유권자 취재수첩 재외선거 재외선거 참여

2024-04-03

[취재수첩] 한미박물관…제2의 YMCA 되나

‘LA한인타운 커뮤니티센터’의 명칭을 기억하는 한인은 이제 거의 없다.   사실 건립된 적이 없으니 센터의 실체 또한 없다. 지난 2016년 한인 사회가 추진했던 센터 건립안은 그렇게 조용히 잊혔다.     〈본지 2월28일자 A-1면〉   지난 27일 버몬트 길에 문을 연 ‘코리아타운 YMCA’에는 본래 LA한인타운 커뮤니티센터 간판이 내걸렸어야 했다.   절호의 기회였다. 부지, 건립 비용, 운영 자금까지 확보했는데 구심점이 없어 끝내 물거품이 됐다. 숙원을 이루기 직전, 센터 운영권은 그렇게 어이없이 YMCA로 넘어갔다.   그때 센터 건립을 추진했던 ‘K-ARC’란 조직은 아직도 존재한다. 한인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10개 단체로 구성된 조직이다. 그들은 지금도 종종 한자리에 모인다. 당시 센터 건립에 쓰려고 했던 운영 자금(100만 달러)을 두고, 8년이 지난 지금도 그 용도를 여전히 고민만 하고 있다.   한 번으로 끝나야 할 한인사회의 시행착오는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진척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한미박물관(Korean American National Museum·이사장 장재민) 건립 프로젝트다.   한미박물관의 행보는 이번 YMCA 건물 사례와 닮은 데가 많다.  LA시는 한미박물관 건립을 위해 지난 2013년 건물 부지(601 S. Vermont Ave)를 한인사회에 거의 무상으로 장기 임대했다. 심지어 연방 기금도 받았는데 프로젝트는 10년 넘게 첫 삽도 뜨지 못했다.   그 사이 한인들 사이에서는 명칭(한미박물관) 마저 잊히고 있다. 박물관 웹사이트(kanmuseum.org)도 운영이 중단된 지 오래다. 가주 검찰 자료를 살펴보면 한미박물관측은 관련 서류조차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단체 등록도 ‘연체(delinquent)’ 상태로 표기(28일 기준)돼있다.   프로젝트는 깜깜 무소식인데 세금보고 서류에는 인건비 등 운영비가 지출되고 있다. 누군가는 일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수차례 이메일을 보내고 메시지를 남겨도 실무를 맡은 윤신애 사무국장은 묵묵부답이다.     이제는 프로젝트 진척 상황을 떠나 장재민 이사장이 이끄는 이사회의 실체가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다.   한미박물관 측은 진행 상황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만약 프로젝트 실현이 어렵다면 지금이라도 한인 사회가 다 같이 대안을 세워야 한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본다면 그자리에 또 다른 이름의 YMCA가 탄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한미박물관 취재수첩 LA 로스앤젤레스 장재민 YMCA 미주중앙일보 커뮤니티센터 윤신애 장열 한인타운

2024-02-28

[취재 수첩] 내 아이는 그가 누군지 안다

자폐 자녀를 둔 어머니 비아트리즈는 상대 학생을 ‘프레데터(Predator·포식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아이는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My child knows who he is)”고 말했다.   심지어 사건 당시 그 학생이 어떤 색 옷을 입고 있었는지, 인종이 무엇인지, 헤어스타일이 어땠는지 세세하게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학교 측은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한인 학생도 다수 재학 중인 풀러턴 지역의 명문 서니힐스 고등학교(교장 크레이그 바인리히)에서 동성 학생 간 성폭행 사건 의혹〈본지 1월18일자 A-1면〉이 불거졌다.   단순히 의혹으로 치부할만한 사안이 아니다. 피해 학생 어머니의 주장을 들어보면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문제는 피해 학생이 자폐아라는 점이다. 학교 측은 오히려 이 어머니에게 아이가 TV에서 본 것을 말하거나, 만들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는 식으로 치부했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가 SNS 영상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온라인에서는 학교 측의 대응을 두고 비난 여론이 거세다. 피해 학생 어머니의 영상, 청원 운동 웹사이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학교 하나를 두고 이토록 많은 댓글과 조회 수를 기록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급기야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들까지 나서고 있다. 댓글을 살펴보면 그동안 교내에서 각종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학교 측이 이런 식으로 무마하려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닌 듯하다.   본지는 지난 16일과 19일, 학교 측에 두 번에 걸쳐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물론 묵묵부답이다.   명문 공립학교인 서니힐스고교는 자체 교내 신문까지 두고 있다. 나름 ‘기자’ ‘에디터’ 등의 직함을 달고 있는 30여 명의 학생이 활동 중이다. 그들에게도 따로 질의서를 보내 입장을 물었다. 행여 기자 정신이 있는 학생이 있다면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분명 현재까지는 ‘의혹’이다. 실제 성폭행이 발생했는지도 아직 알 수 없다. 단, 피해 학생의 부모는 상세하게 사건 정황을 말하고 있다. 외부에서는 논란이 계속 확산 중이다.   그렇다면, 학교 측은 제기된 주장에 대해 어떤 식의 절차를 거쳐 조사를 진행했으며, 조사를 종결했다면 무슨 근거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상세히 밝힐 책임이 있다. 또한, 이런 문제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은 있었는지, 평소 학생의 안전을 위한 교내 정책이 어떠한 식으로 시행되고 있는지도 알려야 한다.   그동안 쌓아 올린 학교의 명성이 훼손되는 게 두려운가. 서니힐스고교는 명문 공립고등학교다. 삼류 학교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번 의혹을 소상하게 해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문이란 타이틀을 떼는 게 낫다.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취재수첩 타이틀 피해 학생 학교 측은 한인 학생

2024-01-21

[취재수첩] SMG 합병이 남긴 숙제

서울메디칼그룹(SMG)은 한인 의료계 성장사에 한 획을 그었다. 1993년 차민영 내과전문의 등 한국 의과대학 출신 1세대 의사 네트워크로 시작했다. 30주년을 맞은 현재 SMG는 미 서부, 뉴욕, 조지아, 하와이 등 7개 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SMG에 따르면 환자 7만여 명, 4800여 의료기관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SMG는 외적 성장면에서 명실상부 한인사회 최대 메디컬그룹이란 평이다. 특히 보험업계 한 에이전트는 “시니어 환자들은 우리가 SMG를 소개하기도 전에 먼저 이용하고 싶다고 말한다”며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SMG가 한미메디컬그룹(KAMG)과 더불어 한인사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연 1세대 의사들의 노력과 헌신 덕이다. 이들은 1970~80년대부터 한국에서 안정된 삶을 버리고 미국에 이민 왔다. 대부분 한국의 내로라하는 의대를 졸업했다. 고국에서 얼마든지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 셈이다.   덕분에 주요 도시 한인은 ‘우리말 진료와 상담’이 가능한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영어를 웬만큼 배운 사람도 몸이 아플 때는 한국어가 가능한 의사를 먼저 찾는다.   한인 의사는 대부분 최소 10분 이상(때론 30분 이상) 환자를 진료한다. 환자 증상을 듣고 알맞은 치료까지 제공해 만족도가 높다. 1세대 의사와 한인 메디컬그룹이 한인사회 건강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SMG가 한인 메디컬그룹 정상에 선 시점, 한인 차세대가 주축이 된 헬스케어 회사 어센드 파트너스와 합병했다. 대주주가 바뀌는 상황을 놓고 한인 의료계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1세대 의사 중심이던 메디컬그룹 운영방식 변화가 예고돼서다.   SMG와 어센드 파트너스 인수합병을 바라본 1세대 의사들은 ‘세대교체와 정체성 유지’를 강조했다. 이들은 한인 메디컬그룹에 참여하는 ‘젊은 의사’가 드물다고 걱정했다. 반면 1세대 의사 상당수가 60~70대로 ‘은퇴 시기’에 직면했다. SMG 인수합병을 이런 현장 분위기를 반영한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보는 이유다.   한 70대 내과전문의는 “요즘 젊은 (한인) 의사는 대형병원에서 페이닥터를 하려고 하지 병·의원 차리기를 꺼린다”며 “30~40년 키워온 한인 메디컬그룹은 한인사회에도 꼭 필요하다. 한인 차세대 경영진이 ‘정체성’을 유지해 한인 메디컬그룹을 공고히 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SMG 소속 30~40대 젊은 의사들도 “SMG가 걸어왔던 길을 유지하고, 의료진 대우강화 및 환자를 위한 서비스를 확대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메디컬그룹 경영에 참여한 어센드 파트너스를 이끄는 황인선·리처드 박(한국명 박준) 공동설립자의어깨가 무겁다. SMG에는 1세대 의사들의 땀과 헌신이 담겼고, 이민자의 건강이 달렸다. 헬스케어 투자전문 회사의 영리활동으로만 귀결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화요일자 서울메디칼 취재수첩 취재수첩서울메디칼 인수합병 한인사회 건강지킴이 한인 의사

2023-10-09

[취재 수첩] 총성 울리자 하나로 뭉쳤다

댈러스 인근 캐롤튼 지역은 신흥 한인타운이다.   한인 마켓, 식당, 은행, 미용실 등이 즐비하다. LA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그곳에서 식당 ‘맛객’을 운영 중인 정민규 대표는 “앨런 아웃렛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자 주말임에도 이곳이 순식간에 한산해졌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한인사회에 미친 충격은 그만큼 컸다.   댈러스 지역 한인사회는 최근 그 규모가 확장되고 있다. 가주 등 곳곳에서 한인이 몰리는 추세다.   에이스 부동산 앤디 오 대표는 “지난 수년간 인구 유입이 급격히 늘면서 요즘은 모르는 한인들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새롭게 유입되는 인구로 한인 간 유대감은 다소 약화할 수 있었겠지만, 총성이 울리자 응집력이 강화됐다.   피해 일가족과 일면식이 없어도 분향소를 찾아 조화를 놓고 간 한인만 수백명이다. 주류사회 곳곳에서 한인 사회와 접점 없이 활동하던 2세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1세대와 연대해 촛불 시위 등을 주최했다. 유가족이 관리 중인 기부 사이트에 십시일반 힘을 보탠 한인들도 많다.   한인들이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은 타인종과 다소 차이가 있다. 안타깝게도 피해자 중 절반(4명)이 한인 일가족 등 아시아계다.     이면에는 이민자로서 아픔을 이해하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한인들은 대체로 총기에 이질감을 갖는다. 총기 소유가 비교적 자유로운 텍사스주 분위기에 대한 심리적 반발도 한몫한다. 게다가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한 피해 의식, 두려움 등은 이번 사건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잣대로 사용됐다. 댈러스 모닝뉴스 등 지역 주류 언론들도 그러한 관점에서 한인 사회를 조명했다.   물론 댈러스 한인사회는 확장과 맞물려 목소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숙제도 안고 있다. 일례로 미술관은 지역사회를 나타내는 하나의 창구다. 댈러스미술관(DMA)의 아시아 전시관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등이 여러 아시아 국가의 전시품이 있는데 한국만 없다. 동아시아 지도를 보니 ‘일본해’가 명시돼 있다. 댈러스 한인문화회관 한편에 설치된 독도 실시간 영상관의 효과적인 홍보도 시급해 보인다.   성급할 필요는 없다. 발전과 성숙은 시간을 수반하고 함께 간다. 전국적으로 급부상하는 댈러스 한인사회는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을 계기로 그렇게 여물고 있다. 장열 기자ㆍ[email protected]취재수첩 여물어가 댈러스 한인사회 댈러스 지역 한인 사회

2023-05-15

[취재수첩] 타운 보궐선거 무산, 한인 정치사 수치

‘800만 달러와 헤더 허트’   지난달 30일 마크 리들리-토마스(MRT)의 유죄 평결이 나오자마자 캐런 배스 LA시장을 포함해 시의원들 대부분은 마치 짠 것(?)처럼 ‘보궐선거 불가’를 주장하며 이 두 단어를 반복했다.   유죄 평결이 기정사실로 되자 시장과 시의원들이 여러 차례 모임을 통해 선거 비용을 이유로 들며 허트를 재임명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내부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구동성으로 ‘허트 시의원 임명’을 외쳤을까. 그리고 그 낙점 과정에서 왜 10지구 내 토론이나 의견 수렴 절차를 과감히 생략하는 무리수까지 뒀을까. 왜 다른 방법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으며, 왜 11명의 시의원은 설득당했을까. 이런 질문에 아직 당사자들은 답이 없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은 확인된다. 일단 시의회는 지난 11일 허브 웨슨과 MRT로 이어지는 10지구 내 흑인계 정치 세력의 기득권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허트의 이력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2017년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당시 가주 연방상원의원으로 일할 때 가주 담당 디렉터 경력이다. 백악관 부통령과 핫라인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허트는 2021년 사우스 LA가 포함된 가주하원 54지구에 출마해 원로들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25% 득표에 그쳐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미 유권자의 심판을 받은 인물을 지역구가 겹치는 시의회에 의원으로 ‘임명’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억지스럽다.   결론적으로 11일 결정은 허트를 내년 선거의 선두 주자 자리에 앉혔다. 시의회는 그를 10지구 관리 담당자로 임명하고, 시의원으로 임명했으며 그 와중에 허트 본인이 출마 선언을 했고, 평결 이후 재임명됐으니 이보다 강력한 후보가 있겠나 싶다.     10지구 인구 구성에 맞게 시민들의 의견을 중립적으로 들을 수 있는 인물이거나 선거 출마 욕구가 없는 인물을 임명했어야 맞지 않을까.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한인사회가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이 커뮤니티 안에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우리가 ATM이냐’고 외쳤던 한인 원로들은 침묵했고, 한인 후보 선거 운동이 될 것이라며 거리를 둔 한인들도 한몫을 했다. 시의회의 욕심과 독단, 한인사회의 무관심, 리더를 배출하지 못한 커뮤니티가 '슬픈 삼박자'를 맞추며 11일 시의회 결정을 만들어낸 것이다.     2023년 4월 11일은 LA 한인타운 정치사에 가장 수치스러운 날로 기록될 것이다.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며 경찰이 시민을 끌어내야만 했던 LA 시의회를 뒤로하고 나오며 모니카 로드리게스가 내놓은 10분짜리 연설 말미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민들의 신뢰를 복구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시의원들이 포기해선 안 됩니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취재수첩 10지구 시의원 사진설명 그레이스 la시청 시의회

2023-04-12

[취재수첩] 공청회가 '별것' 아니라는 흥사단

흥사단 단소 사적지 지정을 위한 공청회가 1년여 만에 다시 열린다.   그동안 LA시는 특별한 이유조차 밝히지 않은 채 연기 방침만 통보해 오다 오는 21일 온라인 화상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문제는 흥사단 미주위원부(위원장 서경원) 측이 정작 이러한 공청회 개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유를 들어봤다.   서경원 미주 위원장은 “LA 흥사단 지부장이 (공청회 개최를) 알고 있었는데 미주위원부에 특별히 보고는 안 했다고 하더라”며 “3차 공청회는 어차피 별것 아니고, 4차 공청회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흥사단이 공청회의 경중을 판단하는 단체인가. 사적지 지정은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   이번 공청회는 토지이용관리계획위원회(PLUM)가 주최한다. 사적지로서의 활용도와 주변 환경 등을 검토하는 게 목적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2차 공청회 당시를 돌아보면 사적지 요건 부족 등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흥사단을 결성한 인물이 도산 안창호 선생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족들은 사적지로서의 가치가 미흡하다며 흥사단 단소 사적지 지정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난관은 또 있다. 이는 최근 한국 정부가 단소를 매입한 직후 열리는 공청회라는 점이다.     한인역사박물관 민병용 관장은 “LA시는 대개 외국 정부 기관 등이 매입한 건물에 대해서는 사적지로 지정하는 것을 꺼린다”며 “그 부분을 한인사회가 LA시에 어떻게 설득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흥사단은 2차 공청회 당시 준비 미흡 등으로 일부 한인 단체 관계자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단소 건물 매입 과정에서 자금도 마련되지 않아 한국 정부의 지원 여부에만 의존했고, 흥사단과 유관 단체 사이에서는 주도권 다툼 등으로 잡음이 일었다.   공청회가 진정 별것 아닌가. 행여 사적지 지정이 무산된다면 흥사단은 그것 역시 ‘별것’ 아니라고 할 태세다. 장열 사회부 기자취재수첩 공청회 흥사단 공청회 개최 흥사단 미주위원부 흥사단 단소

2023-02-16

[취재수첩] 이상민 장관의 '이상한' 방미

지난 1일(한국시간 1월 31일) LA총영사관은 ‘행정안전부 장관, 미국 재난관리 정책 현장 방문’이란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행안부가 작성한 보도자료는 “이상민 장관이 31일부터 2월 3일까지 캘리포니아주 재난 예방·대응 및 복구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새로운 재난 위험에 선제적 대응을 위한 상호협력 강화를 위해 출장길에 나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어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논의 중이다. 2일(한국시간)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이 장관 탄핵소추안 당론 추인을 결론 내지 못하고, 6일 의원총회에서 최종 방침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정치 상황 때문일까. 현지 도착 당일 장관의 미국 출장을 발표한 행안부의 보도자료는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졌다.  논란의 중심에 선 당사자가 미국 출장길에 오른 것은 그만한 이유도 있을 거라는 이성적 생각도 해봤다.   3일 올림픽 경찰서를 격려차 방문한 이 장관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1월 27일)한 만큼, 가주 재난대응 현장을 둘러본 결과를 한국 현장에 적용해보겠다고 말했다. 기획조정실 담당관은 “부처 차원에서 미국 방문은 오래전부터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 주요부처 장관의 미국 출장이 급조된 듯한 정황은 곳곳에서 포착됐다. 우선 한국의 주요부처 장관이 가주를 방문했지만, 내부에서 희망했던 개빈 뉴섬 주지사 면담은 불발됐다고 한다. 이장관의 이번 방미 일정에 참여한 정부 관계자는 “미국 행정시스템을 알지 않나. 이 사람들도 일정이 있는데 2~3주 전에 만나자고 하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갑자기 업무협조 요청을 받은 샌프란시스코·LA 총영사관은 지난 3주 동안 비상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장관의 출장 일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가주 위기대응청, 산불방지센터, LA시장 및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장 면담, LA 비상관리센터, LAPD 디스패치 센터 예약을 완료해야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다행히 일정은 성사시켰지만 이곳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했을까. 행안부가 이렇게 나온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장관 포함 미국을 찾은 출장팀은 총 14명. 장관의 해외 출장은 성과도 중요하다. 소방관제 담당관 등 실무진도 따라왔다. 부처의 정책 최고결정권자 출장인 만큼 행안부 보도자료대로 현지 기관과 향후 협력사업 조율을 실무진이 끝낸 줄 알았다. 장관은 보통 서명하듯 얼굴만 비치면 되는 이유기도 하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장관과 실무진은 출장 마지막 날 “현지 시스템을 잘 둘러봤다”는 말만 했다. 눈에 띄는 두 나라 또는 기관 사이 협력사업 계획이나 결과물도 없었다. 동포간담회 계획은 일정을 이유로 취소했다.   행안부가 현지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도 오해를 키운다. 이 장관이 누구누구를 만났다. 어디 어디를 방문했다는 사진뿐이다. 자칫 사진찍기용 출장이라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 이 장관과 수행원은 현지 기관당 1~4시간씩 둘러봤다. 한 관계자는 “장관의 해외 일정치곤 대규모 수행단이다. 비공식 다른 목적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취재수첩 이상민 장관 이상민 장관 주요부처 장관 장관 탄핵소추안

2023-02-03

[취재수첩] 한인 후보들 정치사 새로 썼다

하와이 주 정부(실비아 장 룩 부지사 당선자)부터 뉴욕주 하원(그레이스 이 당선자)까지 미대륙에서 한인 출마자들의 활약이 빛나는 선거였다.     중간선거라 관심과 투표율이 저조할 수 있었지만 한인 유권자의 투표율은 다른 커뮤니티를 망라해 높은 수치를 보였으며, 후보의 숫자도 전국적으로 최대 규모인 70여 명에 달했다. 여기에 개별 캠프에서 일한 한인들의 숫자도 역대 최대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당락을 떠나 전력을 다한 부지사부터 수도국 위원까지 한인사회 능력과 위상을 높인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모두 이민자이거나 이민 가정에서 자란 ‘평범한 우리’이어서 더 반갑다.   한인 이민사에서 선출직으로는 최고위인 주정부 부지사직에 오르는 실비아 장 룩(Sylvia Luke) 당선자는 9살 때 하와이에 온 ‘이민자’다.   그는 당선 확정 직후 “여러 면에서 첫 테이프를 끊어서 큰 영광”이라며 “가주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더 많은 한인 봉사자들이 나라와 지역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오래 일해온 그는 한인사회는 더 발전할 잠재력이 크다는 것을 이유로 제시했다.     당당한 ‘초보’도 있다. 그레이스 (영은)이 뉴욕 주하원의원(63지구) 당선자는 오랜 봉사활동을 했지만, 정치는 ‘초년생’이다.   개표 초반에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을 확정한 그는 “뉴욕주 하원 역사에 첫 한인 여성으로 당선돼 또 하나의 유리 천정을 깼다는 생각에 기쁘다”며 “무엇보다 맨해튼 주민들의 안전과 증오범죄 해결을 위해 힘차게 일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당락을 떠나 ‘정치력’도 한 단계 올라섰다. 한인들의 출마가 줄을 이으면서 한인 투표율도 오른 것이다.     폴리티컬 데이터 정보(PDI) 통계는 가주에서 전체 투표율이 23.3%를 기록한 가운데 한인의 투표율은 25%로 집계했다. 한인 집중 주거지역인 LA카운티에서도 전체 투표율 18%에 비해 한인들은 23.8%가 기표를 마쳤다. 정치의식도 높아졌지만 한인 후보들의 진출을 바라는 정서가 투표 참여를 끌어낸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2004년 OC에서 첫 시의회에 입성한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은 “2022년은 한인 정치사에서 획을 그은 굵직한 당선들이 나와 잔치라고 열고 싶어진다”며 “검증과 지원을 맡아줄 정치지원위원회를 커뮤니티가 함께 조직할 수 있다면 앞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 선거 캠프에서 일해온 한인은 “한인을 대표하는 후보보다는 미국 사회를 리드하고 대표할 수 있는 인력을 키워내는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며 “이제 2세들은 ‘우리만의 리그’에서 끝나지 않도록 잘 훈련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OC 지역에 출마한 한 한인 후보는 “경험과 수완도 중요하지만 아직은 ‘누구를 아느냐’ ‘누구와 가까우냐’가 더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며 “더 크고 넓은 그림을 그리려면 이제 제대로 된 리더를 배출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언급했다.     다음 선거는 2년 후다. 최인성 부국장·사회부취재수첩 정치사 한인 한인 후보들 한인 투표율 한인사회 능력

2022-11-10

“기대 이상의 한인축제, 더 많은 숙제 남겼다”

  2만명 다녀간 코리안 페스티벌 일단 성공적 짧은 행사 기간, 디테일 부족은 '옥의 티'       코리안 페스티벌이 끝났다. 대체적인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날씨에도 생각보다 많은 2만여명이 축제현장을 찾았고 진행 프로그램도 다채롭고 재미있었다. 돈을 내고 부스를 차린 업체들도 기대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타인종 방문객들이 80%에 이르렀다는 것도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주최 측은 이번 코리안 페스티벌의 주제를 ‘우리는 하나’라고 앞세워 홍보했다. 애틀랜타의 여러 다인종 커뮤니티를 고려한 표어였다. 하지만 그 많은 타인종 방문객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는 미흡했다고 보인다.     9일 전야제 행사에 행사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타 커뮤니티 사람들도 많이 방문했다. 하지만 그들을 안내하거나 배려하는 자리는 없어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참석 예약(RSVP)을 하고 온 사람조차 어디에 앉을지 몰라 헤매는 모습도 목격됐다. 본 축제 때도 공연이나 전시장에 영어 서비스가 좀 더 원활했더라면 축제 현장을 찾은 타인종들이 좀 더 우리 전통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이제는 한국에서조차 '음식 낭비'라는 비판 속에 자취를 감춘 '비빔밥 퍼포먼스'도 시대착오적이었다는 평들이 많았다. 200인분이 넘게 준비했다던 비빔밥은 사진은 그럴듯하게나왔지만, 실제 먹기에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어정쩡한 음식이었다. 물론 나눠 받은 비빔밥을 다 먹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쓰레기통에 그대로 버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프로그램의 다양성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주최 측은 행사 홍보를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들였다고 발표했었다. 실제로 기자가 만나본 10~20대 방문객 대부분은 소셜미디어나 홍보 콘텐츠를 보고 행사장을 찾아왔다거나 한인 친구를 따라온 타인종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온 젊은 층을 위한 이벤트는 부족했다. 앨라배마 어번에서 온 한 대학생은 "어린이와 시니어들을 위한 부스나 볼거리는 많은데 20대 젊은이를 위한 것은 부족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나마 장기자랑 무대와 씨름 대회는 10대 학생들에게도 반응이 좋아 앞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행사 후 여러 한인들로부터 장소와 기간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들었다. 행사장을 갔다가 주차장이 멀어 그냥 돌아왔다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일정 때문에 일요일에 가려고 했는데 토요일 하루 만에 끝나버려 가보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오랜 기간 정성들여 준비하고, 부스도 설치했는데 달랑 하루 만에 행사를 끝내는 것은 아깝지 않으냐는 지적은 다음에라도 꼭 고려해 봤으면 좋겠다.     행사 장소 역시 한인회관 외에 공원같이 좀 더 넓은 장소에서 축제가 이뤄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고 주차나 화장실 문제도 동시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지금부터 내년 축제를 위한 장기 플랜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코리안 페스티벌의 꾸준한 성공은 한인 모두의 자산이다. 한인사회의 활력이 될 뿐 아니라 타인종에게도 한인 커뮤니티에 신뢰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한인들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수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축제에 한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았다는 것은 마냥 좋아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코리안 페스티벌은 분명 기대 이상이었지만 더 많은 숙제를 안겨준 축제였다.     윤지아 기자     윤지아 기자취재수첩 코리안 페스티벌

2022-09-13

[취재수첩] 아리랑 노인아파트는 한인사회 공공자산

'본회의 이익이나 추진주체 세력의 편의를 위함이 아니고 1994년 현재 1000만 달러가 넘는 순수재산을 우리 후세들에게 유산과 교훈으로 남겨 이민 1세 노인들의 황혼기를 영예롭게 마무리하고자 한다'-1994년 3월 3일, 한국노인회 정관 제20조 ‘아리랑 노인아파트 건립목적’.   1995년 한인사회 최초의 정부 지원 프로젝트로 완공된 ‘아리랑 노인아파트’ 운영권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사실 아리랑 노인아파트 존재는 2010년 이후 잊혀져 있었다. ‘오래전 한국노인회가 주축이 돼 한인사회 성원으로 8층짜리 노인아파트를 할리우드에 지었다’는 말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아리랑 노인아파트의 의미와 한인사회 주인의식은 잊힌 셈이다.   발단은 재미한국노인회(회장 박건우)가 단체 재건을 계기로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재조명하면서 비롯됐다. 이에 한인사회 원로들은 “한쪽은 아리랑 노인아파트 재조명을 반기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어하지만, 한인사회 공익을 위해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인회는 정부 지원금과 한인사회 성금으로 건립한 노인아파트를 한인사회 공공자산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8일 기자회견에서는 “10년 동안 노인아파트 운영을 좌지우지한 찰스 김씨가 뒤로 숨어서는 안 된다. 김씨를 중심으로 구성된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 해체, 이사진 전원사퇴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박건우 회장 중심의 한국노인회가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재조명한 노력은 일단 긍적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내분으로 인한 갈등이 반복된 단체라는 점에서 공신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아리랑 노인아파트를 한인사회 공공자산으로 활용할 의지와 중장기 계획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박 회장은 “한인사회 간담회 등 여론 수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 아리랑 노인아파트 운영주체인 아리랑 하우징 이사회(이사장 안창해, 서기 찰스 김)는 2010년을 강조한다. 2010년 전후 당시 한국노인회 백춘학 회장 및 구자온 회장 지시로 ‘이사 자체 선임권까지 명시한 정관개정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더는 한국노인회 산하 단체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양측은 당사자들 서명이 담긴 동일한 서류를 두고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10년 이상 이사장을 맡았던 찰스 김씨는 “나는 이제 이사장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아리랑 노인아파트는 한인사회만의 것이 아니다. 한인사회 성금 30만 달러도 고 정의식 회장이 다 써서 많아야 2만~3만 달러만 들어갔다. (LA)저소득 노인을 위한 아파트”라고 강조했다.   아리랑 노인아파트 건립사업에 참여했던 원로 1세대들은 ‘상식과 염치, 주인의식’을 당부했다. 이번을 계기로 이 아파트가 한인사회 공공자산이란 사실도 분명히 하자고 주문한다.   이영송 전 LA한인회 이사장 겸 전 LA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은 “찰스 김씨는 영 김 연방 하원의원 남편이다. 원로들은 영 김 하원의원에게 행여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조심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아리랑 노인아파트는 노인과 우리 커뮤니티를 위한 공공자산이다. 한국노인회가 원로초청 간담회를 열고 진지한 대응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용태 전 LA한인회장은 “아리랑 노인아파트 건립 역사를 우리가 모두 알아야 한다. 한인사회 공공자산으로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형만 남가주한국학원 이사장은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해서는 안 된다. 한국학원 정상화 때처럼 서로 양보하고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면서 “특히 영 김 하원의원 역할이 중요하다. 김 하원의원이 입장을 밝히면 쉽게 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형재 사회부 기자취재수첩 노인아파트 한인사회 아리랑 노인아파트 한인사회 공공자산 동안 노인아파트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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