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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인생의 봄 5월

은방울꽃이 활짝 피는 5월이다. 영어의 ‘메이(May)’는 ‘인생의 봄’ 또는 ‘봄꽃을 따다’란 뜻인 걸 보면 5월은 봄꽃처럼 아름다우니 노래할만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요즘 가만히 앉아서 노래만 부를 수가 없으니 참 안타깝다. 미국 대학생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 중단 요구 시위를 크게 벌이고 있는가 하면,  한국에선 정부와 의사들과의 싸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봄을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5월은 푸르다.  하늘도 푸르고 땅도 푸르다. 그리고 바다도 푸르다. 이 푸른 5월은 인생의 봄인 어린이의 세상일뿐만 아니라 어질고 맑은 어머니의 마음을 기다리는 달이다.     5월은 아름답다. 새도 아름답게 지저귀고 꽃도 아름답게 피어난다. 5월에 잊히지 않는 이름 ‘메이플라워(Mayflower)’. 기독교인들에겐 매우 뜻깊은 그 배 이름이 아닌가!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의 선조들이 아메리카 땅으로 건너올 때 타고 온 배 이름이 메이플라워이기 때문이다.     5월에는 유명인이 많이 태어났고 역사적 사건도 많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란 낱말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아동 문학가 방정환이 1923년부터 매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지정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가곡 ‘봉숭아’를 작곡한 홍난파는 이 곡을 만든지 4년 뒤인 1924년 5월에 중앙기독교회관에서 멋진 바이올린 솜씨로 이 곡을 연주했다.      5월과 관계있는 유명인은 누가 있을까?  종교개혁의 꽃을 활짝 피우게 한 장 칼벵은 1564년 5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596년 5월에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이어 한참 뒤인 1818년 5월엔 ‘자본론’으로 유명한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태어났고,  2년 뒤인 1820년 5월엔 세계 최초의 간호학교를 세운 영국의 이름난 백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출생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840년 5월엔 러시아에서 피어 차이콥스키가 태어나 우리에게 그 장엄한 6번 교향곡 ‘비창(Pathetique)’을 선물했다.     미국에서는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ca)’의 노랫말을 지은 문학가 어빙 베르린이 1888년 5월에 태어났다.  또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태어난 것은 1917년 5월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 2년 만에 암살을 당해 마흔 여섯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편 영락교회를 섬기는 동안 기독교의 큰 별이 된 한경직 목사는 1963년 5월 18일 주옥같은 그의 설교문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한편 내 아내의 모교인 정신여학고를 한 알의 밀알처럼 아름답게 가꾼 김필레 교장은 1978년 5월 10일에 ‘제1회 송악봉사상’을 받았다. 이래저래 5월은 은방울꽃처럼 아름다운 달이다.    윤경중 / 목회학박사·연목회 창설위원열린광장 인생 블레스 아메리카 천사 나이팅게일 아동 문학가

2024-05-02

시니어센터, 몰려드는 기부행렬…의류 3000벌 창고 채워

앞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시니어센터에 온기를 전하는 한인들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30일 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 센터(이사장 신영신·이하 시니어센터) 회관 뒤쪽 창고방에는 3000벌이 넘는 의류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한인의류업체(KAMA) 소속 업체들이 모두 기부한 것들이다.     시니어센터 박관일 사무국장은 “리차드 조 전 KAMA 회장이 두 차례에 걸쳐 700여벌을 기부했고 조스타, 이화고전방, 미스 러브, 엣지마인, 리사 전씨 등 소속 회원들도 시니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옷을 보내왔다”며 “시즌이 지나 판매가 어렵거나 재고로 남은 것으로, 모두 얼마전까지 시중에서 판매되던 새 옷이다”고 설명했다.     기부된 의류는 실제 판매 가격도 한 벌당 평균 20~50달러에 이르는 것들로,  가격표가 붙어있는 것들도 많았다. 구성도 점퍼와 가디건, 티셔츠, 바지, 원피스 등 다양했다.     현재 시니어센터는 회원들에게 개당 단돈 3달러의 기부금을 받고 옷을 제공하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기부된 물건은 많은데 봉사자 일손이 적어서 공급이 어려울 정도다”며 “모인 수익금은 시니어센터 운영비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오는 2월 7일에 개최되는 ‘설날 큰 잔치’에도 한인 기업과 업체들이 온정의 손길을 보냈다.     이날 회관에서는 준비된 공연과 함께 초청된 시니어 300명에게 잔치 음식이 무료로 제공된다.     이번 행사를 위해 한식당 박대감네에서는 쌀 15파운드 300포를 기증했고, 페임액세서리 이은혜 대표는 겨울 고급스카프 300개를, 정관장에서는 홍삼톤 300박스를 기부했다.   또한 KLK 캐피탈 매니지먼트 LLC, 웰케어 보험, 서울메디칼그룹, PCB은행이 행사를 위해 금전적으로 후원했다.     한편, 이같은 기부 배경에는 시니어센터 이사장의 노력도한몫했다는 평가다.     임기 7개월째에 접어든 신영신 이사장은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현장형 리더십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KAMA의 기부도 30년간 의류사업을 해온 신 이사장이 특별히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은 부임 이후 ▶매일 시니어센터 직원 및 봉사자 점심 제공 ▶주차장 자동문 설치 ▶ 다울정 관리권 이관 ▶다울정 히터기 및 테이블 설치 등 그간의 밀린 숙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성과를 냈다.     시니어센터에 따르면 10년간 10만달러를 약정한 신 이사장은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기부를 통해 시니어센터의 생활비를 메꾸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영신 이사장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먼저 도움을 주시는 한인분들 덕에 시니어센터가 잘 운영될 수 있는 거 같다”며 “한인 시니어 분들을 섬기는 일에 동참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시니어센터 천사 시니어센터 운영비 현재 시니어센터 이하 시니어센터

2024-01-31

[발언대] ‘천사의 도시’ LA가 어쩌다

나는 LA 한인타운에 산다. 매주 산행도 하지만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7시부터 유니온에서 하바드 길 사이를 걷기도 한다. 그런데 아침마다 타운 거리를 걸으면서 실망과 함께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너무 지저분한 거리 모습 때문이다.     40년 전 LA에 처음 왔을 때는 그야말로 천사의 도시였다. 한국에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도 이렇게 좋은 곳에 살게 되다니, 정말 미국 오길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만 해도 가난했던 한국에 비해 그야말로 천당에 온 느낌이었다.   물가도 저렴해 그때 오렌지 한 자루 가격이 겨우 99센트였고, 마켓에서 50달러어치 장을 보면 고기와 생선을 포함해 자동차 트렁크로 한 가득이었다. 당시 막노동하는 사람의 일당이 20달러 정도였고, 도로에는 휴지나 쓰레기 하나 없었다. 물론 노숙자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물가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주변 생활환경은 너무나 열악해졌다. 한인타운에서 다운타운 쪽으로 길을 걷다 보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와 오물이 나뒹굴고 있다. 노숙자 숫자가 늘면서 그들의 배설물과 생활 쓰레기, 토악질해 놓은 것들로 인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로 역겹다.   불안한 치안 상황도 문제다.  LA는 저녁이 되면 집밖 출입을 꺼릴 정도로 위험한 도시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누구도 LA를 천사의 도시라고 말하지 않는다. LA가 이대로 방치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악마의 도시가 되고 말 것이다. 나부터도 이대로는 도저히 더는 LA에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아무리 자유가 좋고 노숙자의 인권이 중요하다 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부 소수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다수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LA시 당국은 주민들의 고충을 헤아려 어떠한 방법으로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예전처럼 어디든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 ‘천사의 도시’라는 명예를 되찾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중식 / 수요자연산악회 회장발언대 천사 도시 생활 쓰레기 노숙자 숫자 la 한인타운

2023-12-12

[열린광장] 누가 천사를 병들게 했나

그는 아름다운 혼을 가졌었다. 선하고, 명랑하고, 평생 누구에게 화낸 적 없고, 자신을 위한 통장에는 예금 한 푼 없었지만 약자 편에서 불의와 담대히 싸우며 평생 진정 예수의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김인용, 내 사촌 동생이다. 가냘픈 체구였지만 하얀 얼굴에 맑은 눈을 가진 그는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세운 상주 ‘양촌교회’에서 자랐다. 한신대 29회 졸업생인 그는 큰 교회의 부목사로 초청을 받았지만, 삼팔선이 가깝고 가난한 지역인 경기도 파주군 연다산리에 ‘반석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였다.     그가 가난한 교회를 선택했을 때, 나는 미국에서 의대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였다. 부패 정치인과 조폭들이 손잡고 500여 가구의 가난한 농민들 땅을 착취할 때 그는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그들과 함께 농사짓고 생활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투쟁하며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신학 공부를 위해 독일(당시는 서독)로 떠났다. 그곳에서 잠깐 한국인 이민자 교회를 맡아 목회하던 중 교인들 간 불화에 휩싸여 무척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까지 그를 도와주던 친구는 가족에게는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쇠약으로 사망했다고 전했지만, 내게는 그가 식사조차 못 하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그 후 며칠간 이상한 행동을 보이다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에서는 더 큰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보살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극복할 수 있었지만 낯선 외국 땅에서 모든 인간관계가 끊어진 상태가 그를 병들게 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잊고 있던 그의 죽음이 떠오른 건 최근 젊은 목회자가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뉴스 때문이다. 정신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스트레스에 너무 시달리게 되면 뇌 호르몬이라는 세로토닌이 떨어져 우울증이 생기고 이것이 심해지면 정신착란 증세까지 일으켜 충동적으로 정신 이상 행동을 보인다. 환청으로 인해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다며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고, 가족을 마귀의 모습으로 착각해 살해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끊기도 한다.   내 경험상 우울증과 정신 착란증에 걸리는 사람 대부분은 착한 마음을 지녔다. 나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고,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극단적 선택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극단적 선택은 뇌의 병 때문에 생긴 이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행동이므로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뇌 병사’라고 말해야 할 수도 있다. 뇌와 관련된 병으로는 뇌염, 뇌암, 뇌졸중, 정신이상 등 다양한 것들이 있다. 정신의학으로 이 모든 병을 사탄이 일으키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자연사가 아닌 모든 인간의 죽음에는 누군가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열린광장 천사 극단적 선택 정신착란 증세 경험상 우울증

2023-03-29

[삶의 뜨락에서] 그 천사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날 누가 나는 어느 소학교를 졸업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거침없이 “거제도에 있는 장승포 국민학교요”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건 내가 소학교 5학년 때 터진 6·25 전쟁 때문이다. 피난민들과 함께 우리도 고생 끝에 남쪽으로 피난을 간 것은 사실이지만 덕분에 남해에 다다르자 나는 난생처음으로 눈 앞에 펼쳐진 넓고 넓은 바다를 만났고 너무도 황홀해서 우리가 피난 온 신세인 것도 망각한 채 바다로 뛰어들어가 바다와 곧 친구가 되었다.     나는 제법 깊은 바닷물을 헤엄치면서 양쪽에 선 방파제 사이를 오가며 개구리 수영도 하고 때론 바위에 붙어 있는 굴도 따고 갯벌에서 조개를 주어서 구워 먹기도 하며 전쟁을 피해서 피난 내려온 나의 철없는 삶은 마냥 즐거움뿐이었다.   이렇게 철없이 피난살이를 즐기며 지내던 내가 다음 해에는 6학년이 되고 마침내 소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보다 앞서 상경한 우리 집 식구들과 합세하기 위해 혼자서 기차로 상경해야 했다. 그리고 겁도 없이 기차 편으로 부산을 떠나서 서울로 향해 왔다.   내가 타고 온 기차가 서울에 가까워지자 기차 안이 웅성거리면서 돌아보니 승객들이 일일이 도강증을 조사받는 시간이 된 것이었다. 미 8군 한 명이 한국인 통역관을 동반하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보내준 도강증을 별생각 없이 꺼내 보여주었다. 아- 그런데 미 병사가 내 나이가 이 도강증에 기록된 나이와 일치하지 않음으로 즉시 하차하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기차에서 쫓기다시피 내려서 그 시간에 서울역에서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시는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할 터인데 전화도 셀폰도 없는 시절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 순간 기차는 조금씩 움직이며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누가 다급히 내게 다가와서 나의 몸을 기차 안으로 밀어 넣어 주었다. 돌아보니 미 8군이 대동했던 그 한국인 통역관이었다. “너 혼자 혼났지? 이제 괜찮아. 이제 서울역에 도착할 때까지 여기 앉아있어”라고 말하고 그는 내 곁을 떠났다.   다음은 시편 91편 중에 있는 말씀이다.   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오늘도 가끔마음속으로 나는 그 천사를 찾고 있다. 물론 그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 모습도 기억에 없는 그 천사를 말이다.   그리고 나도 오늘 누구에겐가 천사가 되어줄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황진수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천사 기차 안이 한국인 통역관 소학교 5학년

2023-02-12

[기자의 눈] 화려한 ‘천사 도시’의 이면

미국에는 ‘애시캔파(Ashcan School)’라는 화파가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집단이다. 1912년 조지 벨로스의 ‘부두의 남자들’이 대표적 작품이다. 그림만 봐도 코끝이 찡해지는 추위가 느껴지는 이 작품 속에는 외투를 걸쳐입은 남자들이 부둣가에서 서성인다.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는 이들은 일감을 기다리는 일일 노동자들이다. 정박한 배에 말과 화물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하는데, 적은 임금일지라도 그마저 일감을 얻기 위해 갈구한다. 그런데 강 건너로는 화려한 고층 빌딩들이 자태를 뽐내듯 서 있다.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모아도 결코 탐낼 수 없는 집들. 차가운 강물은 부유층과 도시 빈민을 그렇게 갈라놓는 역할을 한다. 벨로스의 작품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화려한 도시 뉴욕의 이면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표적인 화려한 도시엔 LA도 빼놓을 수 없다. ‘천사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뉴욕과 별다를 바 없다. 도로 양옆으로 텐트가 끝없이 줄지어 있고, 길바닥 털썩 주저앉아있거나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텐트촌 주변에는 쥐들이 나올 정도로 위생 상태도 심각하다. 빽빽이 들어선 화려한 고층 빌딩들과는 상반된 모습, 바로 LA시내 한복판에 있는 ‘노숙자 텐트촌’의 현실이다.   LA 신임 시장 캐런 배스가 업무 첫날 ‘노숙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지만, LA의 노숙자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홈리스 지원단체 와인가트 재단의 미구엘 산타나 최고경영자는 “노숙자는 이제 화창한 햇살과 교통체증처럼 LA의 명물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할 정도다. 노숙자가 되는 이유에 대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숙자를 돕는 단체들은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재정적으로 불안정할 경우 한 달만 수입이 없어도 노숙자가 될 수 있다.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 상승으로 한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한 예일대 졸업생도 있다고 한다.  LA다운타운 스키드로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LA의 한 회사에 채용돼 다른 주에서 왔는데, 갑자기 회사 재정이 어려워져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됐고 그때부터 노숙 생활을 한 게 27년째”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입자의 약 25%가 자신의 소득 절반 이상을 임대료로 지불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렇게 월세를 내고 나면 각종 공과금이나 페이먼트 납부에 급급하다 보니 저축이나 투자는 생각지도 못하게 되고, 그렇게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부족한 의료보험, 실업률 증가 등이 빈곤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가정 폭력이나 정신 질환, 마약 등 개인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LA다운타운 거리에서 마약 성분의 펜타닐로 인해 사망한 노숙자 수가 연간 7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사망한 노숙자 2000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규모다. 스키드로우 노숙자들은 펜타닐, 헤로인 등 마약류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취재 도중 인터뷰에 응한 노숙자들 역시 마약은 다 경험해봤다고 했다. 다만 약에 쉽게 중독되기 때문에 손 쓸 틈도 없이 정신 질환자가 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배스 신임 시장은 앞으로 1년 이내 노숙자 약 1만7000여 명에게 주거지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해선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집값과 임대료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배스 시장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노숙자들을 위해 집만 지어야 할 것이다. 서민이 거주하지 못하는 도시, 중산층이 몰락하는 도시는 무늬만 도시일 뿐이다. 홍희정 / JTBC특파원기자의 눈 천사 도시 노숙자 텐트촌 노숙자 문제 도시 뉴욕

2022-12-13

[이 아침에] ‘오물도시’ 되어 가는 ‘천사의 도시’

벽에는 수준 있는 명화가 걸려있고, 코너에는 싱싱한 화분이 놓여있고, 화장도 고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휴식 공간까지 따로 갖춘, 향기 은은한 화장실에서 우린 ‘너무 좋다’ 깔깔대며 카메라를 눌러댔다. 주재원 가족으로 미국 온 첫해 다섯 가정이 함께 여행을 떠난, 웬만한 숙박업소 로비보다 깔끔했던 호텔 화장실 광경이다. 요즘 이 사진을 볼 때면 누리며 산다는 것의 수준 차이가 느껴져 왠지 좀 불편하다.     이렇게 멋진 화장실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장실 인심을 들라면 단연코 미국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오래전 그리고 몇 해 전 경험했던 유럽 몇 개국 여행길에서의 화장실 문화는 서글픈 콩트 감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색했다. 육신을 가진 자의 자연현상도 제때 해결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얼마나 강한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던 적이 있다. 미국은 큰 백화점부터 조그만 동네 가게까지 화장실은 언제나 열려있고 사용은 공짜.   화장실 인심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던 미국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세를 떨치는 동안은 화장실을 오픈하지 않는 가게나 레스토랑이 늘어났다.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그때는 정말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누구도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 중에도 여행하다 보면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화장실 인심의 보루처럼 개방되어 있었다. 남편 출장길을 따라나섰다가 배탈이 났는데 급해서 아주 진땀을 흘리며 찾아간 곳이 그 두 곳이라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요즘 이런 곳도 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도록 자기 손님에게만 개방하는 곳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코로나도 끝나가는데 왜 이러지 의아했다. 얼마 전 화장실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아 카운터에 가서 문이 고장 난 것 같다고 하는 중에 안에서 나오는 사람과 맞닥뜨렸다. 홈리스였다. 비슷한 경험을 두어 번 하면서 화장실을 단속하는 가게 주인의 입장을 헤아려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홈리스는 어디로 가야 하나. 옆 동네를 드라이브하다가 큰 길가에 예전에는 없던 RV가 최근 부쩍  늘어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은퇴하면 RV 하나 사서 미국 일주하자 얼마면 될까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옆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고 홈리스인 것을 눈치챘다. 아, 차에서 살고 있으면 홈리스가 아닌 게 아닌가. 아무튼 후미진 곳만이 아니다. 바닷가 부촌 트레일을 걷다가도 홈리스의 흔적이 널려있는 것을 보았다.     홈리스 해결의 근본 대책은 선거철 단골 메뉴처럼 귀를 간지럽힌다. 배설할 곳을 찾아 눈치작전을 펴는 그들과의 숨바꼭질이 얼마나 계속될까. 천사의 도시가 오물의 도시가 되기 전에 화장실만이라도 해결할 방안은 없는 걸까. 이달 초 타주에서 온 지인과 한국에서 온 손님을 내 차에 모신 적이 있다. 이분들 눈에도 지저분해진 거리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타주 분은 자신이 사는 주가, 한국분은 한국이 제일 깨끗하고 좋다며 음성을 높인다. LA가 얼마나 넓고 좋은 데가 많은데요? 보신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에요 해명해 보지만, 이대로는 아닌데 싶어 안타깝다. 오연희 / 시인이 아침에 오물도시 천사 화장실 인심 화장실 문화 호텔 화장실

2022-09-29

[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천사가 내려앉은 자이언 캐년

유타주에는 자이언(Zion), 브라이스캐년(Bryce Canyon), 캐피톨리프(Capitol Reef), 아치스(Archs), 캐년랜드(Canyonland) 등 5곳의 국립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자이언캐년 국립공원은 1847년 신앙의 박해를 피해 동부에서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 지역으로 이주를 했던 몰몬 교인들이 발견했다. 거대한 바위산과 계곡 사이를 흐르는 강을 목격한 그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시온(Zion) 성이라는 뜻으로 부르면서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자이언캐년은 장엄하고 성스런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     자이언캐년에는 다양한 트레일코스가 있다. 엔젤스 랜딩, 네로우 , 에메랄드 풀, 히든 캐년, 업설베이션 포인트 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포인트와 장시간이 소요되는 트레일 코스들도 많다.   특히 자이언캐년이 자랑하는 엔젤스 랜딩 트레일(Angels Landing Trail)은 미리 홈페이지에서 예약(go.nps.go/AngelsLanding)을 해야하는데 정말 최고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트레킹 코스 중 한 곳인 엔젤스 랜딩은 왕복 5.4마일 거리로 1488피트의 고도 차이 때문에 평균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천사들만이 정상에 내려앉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가파른 절벽을 따라 지그재그의 길을 따라 올라가는 힘든 코스지만 급하지 않게 걸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단 어린 자녀들에게는 힘든 코스가 될 수 있으니 참조하면 좋다. 또 충분한 식수도 준비해야 한다.     정상 도착 전 마지막 좁고 가파른 오르막길은 사고 방지를 위해 쇠줄 손잡이를 설치해 놓을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등산객들에게는 마지막 정상 코스가 무섭게 다가올 수가 있다. 하지만 정상 전의 스카우트 룩아웃(Scout Lookout) 까지는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오르면 500m 아래로 펼쳐지는 협곡의 숲과 그 사이를 흐르는 버진 리버(Virgin River)가 360도  파노라마 전망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이언캐년의 초보자를 위한 트레일은 로워 에메랄드 풀 트레일(Lower Emerald Pools Trails)코스다. 거리는 왕복 1.2마일 고도변경이 69피트로 비교적 쉬운 하이킹 코스다. 버진 리버를 따라 포장된 길을 걷다 보면 폭포가 보이며 에메랄드 풀밭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왕복 약 1시간이 소요된다. 폭포 안쪽의 어퍼 에메랄드 풀스(Upper Emerald Pools)까지 도달하려면 30분 정도가 더 필요하다.   자이언캐년은 매년 4월에서10월까지는 방문객이 급증하기 때문에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 자이언 국립공원 남쪽 입구에 위치한 방문객 센터에서 츨발하는 셔틀 버스로만 트레일 출발 포인트까지 접근할 수 있다. 셔틀버스는 5~25분 간격으로 새벽 5시30분에서 오후 11시까지 운행한다. 정호영 / 삼호관광 가이드정호영의 바람으로 떠나는 숲 이야기 자이언 천사 자이언 국립공원 트레일 코스들 트레킹 코스

2022-09-08

[이 아침에] 다운증후군을 가진 '천사'

리사는 천사다. 리사가 사는 세상은 늘 푸른 천국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한 마디도 남의 흉이나 험담을 하지 않았다. 나쁜 말이나 비속어를 쓰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온 식구가 리사에게 ‘세상에서 제일 착하고 예쁘고 똑똑한 천재야’라고 말했다. 그래서 리사는 착하고 똑똑한 천재로 자라났다. 리사는 의심하지 않고 누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 들은 대로 믿고 보이는 대로 보고 느낀 대로 정직하게 말한다. 리사에게 한 번 입력된 정보는 돌에 새긴 글자와 같이 지워지지 않는다. 새기는데 시간이 좀 걸릴 뿐 보통 아이와 다르지 않다. 반복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다. 다운증후군은 염색체 이상 질환으로 약 700~800명당 한 명의 빈도로 태어난다. 정상 세포의 경우 21번 염색체가 2개씩 있는데 다운증후군에서는 21번 염색체가 3개씩이다. 21번 염색체의 양적 과잉으로 지적 장애, 특징적인 얼굴 생김새, 유아기의 근육 긴장도 저하(저긴장증) 등의 증상과 징후가 나타난다. 유전되지는 않는다.     리사는 십이지장이 막힌 채로 태어나 출생 하루 만에 수술을 받았다. 당시 한국에는 체중 미달의 신생아 마이크로 수술을 담당할 의사를 찾기 어려웠다. 목숨은 어미 태반에 달린 탯줄처럼 생명을 주관하는 분의 손에 달려있었다. 다행히 미군부대로 파병 온 의사 집도로 목숨을 건졌다. 리사는 심장기능 장애로 7살 때 심장재생 판막수술을 받았다. 그동안 목을 가누지 못하고 자라지 않던 리사는 수술 후 무럭무럭 자라고 튼튼해져 지금은 나보다 힘이 세고 건강하다,   요즘 방송되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극본 노희경)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난 쌍둥이 언니를 부양하는 동생 영옥의 상처와 아픔, 주변사람들의 사랑을 잔잔한 감동으로 그린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불필요한 관심은 장애인과 그 가족을 고통 받게 한다. 너무 티 나게 잘 해주며 도와주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존중하면 된다. 우리 모두에게 ‘장애’는 있다. 조금 다를 뿐이다.   리사는 퍼즐 맞추기와 레고 조립에 박사다. 1000피스 퍼즐은 하루 만에 끝내고 아무리 복잡한 레고도 이틀이면 맞춘다. 영재인 아들도 감당을 못해 혀를 내두른다. 리사는 우리 집을 묶는 구심점이다. 아무도 리사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라도 어디서든지 무엇을 하든 리사는 우리 집 1순위다.     리사는 하늘이 내게 주신 ‘기적의 천사’다. 교만하지 않고 정직하고 아끼고 도와주며 살라고 보낸 천사다. 리사는 행복의 원천이다. 둥지 떠난 자식들이 그리울 땐 나를 지켜주는 리사의 짧고 통통한 손을 잡는다. 뉴스 보다가 졸면 담요 덮어주고 손에 든 휴대폰도 살그머니 빼내 충전해 준다.     기분 좋으면 5음계로 노래하고 쇠소리로 휘파람 분다. 높낮이가 오락가락 해도 참새 지저귀는 소리처럼 예쁘다. 리사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예쁘다고 말한다. 좋아하는 메뉴를 만들어 주면 “엄마는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멋져”라고 손가락을 치켜올린다. 리사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영국 여왕이다.     우리 식구는 항상 감사해 하는 리사를 보고 매일 행복을 배운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이 아침에 다운증후군 천사 심장재생 판막수술 염색체 이상 심장기능 장애

2022-06-06

[삶의 뜨락에서] 부엉이와 나!

저는 옛날얘기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이를 먹고 보니 앞을 내다보며 살 날들이 별로 남지 않았음을 체감합니다. 앞으로 더 무엇을 꿈꾸며 어떤 기대를 해 볼 수 있을까요? 우선, 이 철창 없는 감옥 비스름 살이가 길어지다 보니 어떤 계획이나 기대도 걸어 볼 수 없는 무의미한 그날그날을 너나 나나 건강만을 외치며 오늘 하루를 즐겁게 지내라 하네요. 젊은이들까지도 집콕 하면서 컴퓨터와 씨름하는 듯 보이는 것이 천만다행이다가 아니고 싶은, 그런 쓸데없는 걱정도 해 봅니다.     이렇게 우울증에 빠지다 보니 돌연, 옛날, 그때, 그날, 어디에서 누구와 이렇게 저렇게 지냈던 추억거리가 마음 어디에선가 스멀스멀 솟아오르며 기억력 게임을 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방향을 좀 돌려 오늘은 아주 비밀스러운 저의 ‘스멀스멀 스멀이’를 공개해 볼까 합니다.     기억을 하자면 6·25전쟁 바로 전, 제 나이 7, 8살이었겠지요? 놀기를 좋아하던 제가 다 늦은 저녁에 동네 친구 집으로 나섰습니다. 앗! 저의 대문 넘어 소나무에 엄청나게 큰 부엉새와 눈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놀란 토끼가 되어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저기! 저기! 부엉새가 있다고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 흥분에 아무도 반응이 없고, 믿지도 않았고, 시큰둥한 식구들의 표정이 나를 엄청 무안케 했습니다. 다시 뛰쳐나갔을 때는 올빼미마저 어두워 가는 밤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허망했던 제 작은 가슴이었습니다. 왠지 그 기억이 6·25 전쟁보다도 더 생생히 한 편의 영상으로 제 가슴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영상이 세월 따라 길게 시나리오로 쓰이며 가슴에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왠지 그 부엉새가 언제건 나를 다시 찾아와 주리라고 기다렸던 세월이었습니다. 살면서 그때 그 부엉이가 아니라도 진짜 부엉새를 만나봤으면 하는 기대로 살았습니다. 이는 어느덧 내 어린 시절에 신기했던 그 순간이 내 생에 행복과 행운을 가져다줄 수호 천사의 부적으로 가슴에 물들인 듯했습니다. 어렸던 제가 부엉새를 만났다는데 시큰둥했던 가족들에게 그 날이 얼마나 놀랍고 귀한 날이었나를 나 자신과 가족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자존감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엄마가 부엉새를 얼마나 만나고 싶어 하는 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밤에만 나타나는 부엉새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는 않지요. 밤이면 부엉새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들이 달려와 “엄마, 부엉새 소리 들려요?” 알려줍니다. 급히 나가도 절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도 애타게 기다려지는 그 부엉이가 언제고는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줄 Guardian Angel로 그 기다림이 안타까웠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믿을 수 없는 그 날이 왔습니다. 환한 대낮 저희 현관 화분 걸이에 두 마리의 어린 부엉새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너무도 놀라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금방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조심조심 숨어서 사진부터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기 형제 중 한 놈은 옆 나무로 왔다 갔다 노닐고, 점잖아 보이는 형님(?)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 두리번거림이 혹 나를 찾고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너무도 신기하고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아까워 재빨리 나만의 독백을 했습니다. “애들아, 혹 너희들 나하고 같이 우리 집에서 살려고 왔니? 그러면 얼마나 좋겠니?” 너희 어머니가 너희들을 나에게 보내 주셨구나? 아! 너희 엄마는 돌아가셨겠지? 그래, 내 엄마도 가셨단다. “얘들아! 참  반갑고, 기쁘고! 고맙다! 그래, 우리 같이 살자?” Okay! 이렇게  제마음을 전했습니다.     잠시 후 부엉이 형제는 어디론가  떠나버렸습니다. 마음이 허하고 눈시울이 뜨거워 왔습니다. 꼭 또 와 달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너무도 생생한 실화입니다. 이제 누가 나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옛날 어린 나에게 와 주었던 늠름한 그 부엉새는 그간 나의 삶을 곁에서 힘차게 밀어주었습니다. 어린 수호 천사를 대신 보내 주면서 나, 이 노인의 소원도 풀어주었습니다. 저의 진정한 실화입니다. 오늘 나는 그 깊은 굴속에서 나의 비밀을 조심스레 꺼내어 따스한 햇볕을 꽤 훨훨 날려 보낼 수 있었던 기쁨의 날이었습니다. 남순자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부엉이 부엉이 형제 기억력 게임 수호 천사

20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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