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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화려한 ‘천사 도시’의 이면

홍희정 JTBC특파원

홍희정 JTBC특파원

미국에는 ‘애시캔파(Ashcan School)’라는 화파가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집단이다. 1912년 조지 벨로스의 ‘부두의 남자들’이 대표적 작품이다. 그림만 봐도 코끝이 찡해지는 추위가 느껴지는 이 작품 속에는 외투를 걸쳐입은 남자들이 부둣가에서 서성인다.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는 이들은 일감을 기다리는 일일 노동자들이다. 정박한 배에 말과 화물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하는데, 적은 임금일지라도 그마저 일감을 얻기 위해 갈구한다. 그런데 강 건너로는 화려한 고층 빌딩들이 자태를 뽐내듯 서 있다. 노동자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모아도 결코 탐낼 수 없는 집들. 차가운 강물은 부유층과 도시 빈민을 그렇게 갈라놓는 역할을 한다. 벨로스의 작품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화려한 도시 뉴욕의 이면을 보여준다.
 
미국의 대표적인 화려한 도시엔 LA도 빼놓을 수 없다. ‘천사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뉴욕과 별다를 바 없다. 도로 양옆으로 텐트가 끝없이 줄지어 있고, 길바닥 털썩 주저앉아있거나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텐트촌 주변에는 쥐들이 나올 정도로 위생 상태도 심각하다. 빽빽이 들어선 화려한 고층 빌딩들과는 상반된 모습, 바로 LA시내 한복판에 있는 ‘노숙자 텐트촌’의 현실이다.
 
LA 신임 시장 캐런 배스가 업무 첫날 ‘노숙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지만, LA의 노숙자 문제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홈리스 지원단체 와인가트 재단의 미구엘 산타나 최고경영자는 “노숙자는 이제 화창한 햇살과 교통체증처럼 LA의 명물이 되어버렸다”고 지적할 정도다. 노숙자가 되는 이유에 대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노숙자를 돕는 단체들은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재정적으로 불안정할 경우 한 달만 수입이 없어도 노숙자가 될 수 있다.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 상승으로 한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한 예일대 졸업생도 있다고 한다.  LA다운타운 스키드로에서 만난 한 노숙자는 “LA의 한 회사에 채용돼 다른 주에서 왔는데, 갑자기 회사 재정이 어려워져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됐고 그때부터 노숙 생활을 한 게 27년째”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입자의 약 25%가 자신의 소득 절반 이상을 임대료로 지불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렇게 월세를 내고 나면 각종 공과금이나 페이먼트 납부에 급급하다 보니 저축이나 투자는 생각지도 못하게 되고, 그렇게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부족한 의료보험, 실업률 증가 등이 빈곤의 원인이 될 수 있고, 가정 폭력이나 정신 질환, 마약 등 개인적인 문제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LA다운타운 거리에서 마약 성분의 펜타닐로 인해 사망한 노숙자 수가 연간 7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사망한 노숙자 2000명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규모다. 스키드로우 노숙자들은 펜타닐, 헤로인 등 마약류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취재 도중 인터뷰에 응한 노숙자들 역시 마약은 다 경험해봤다고 했다. 다만 약에 쉽게 중독되기 때문에 손 쓸 틈도 없이 정신 질환자가 되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배스 신임 시장은 앞으로 1년 이내 노숙자 약 1만7000여 명에게 주거지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노숙자 문제 해결을 위해선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집값과 임대료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배스 시장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노숙자들을 위해 집만 지어야 할 것이다. 서민이 거주하지 못하는 도시, 중산층이 몰락하는 도시는 무늬만 도시일 뿐이다.

홍희정 / JTBC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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