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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오물도시’ 되어 가는 ‘천사의 도시’

벽에는 수준 있는 명화가 걸려있고, 코너에는 싱싱한 화분이 놓여있고, 화장도 고치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휴식 공간까지 따로 갖춘, 향기 은은한 화장실에서 우린 ‘너무 좋다’ 깔깔대며 카메라를 눌러댔다. 주재원 가족으로 미국 온 첫해 다섯 가정이 함께 여행을 떠난, 웬만한 숙박업소 로비보다 깔끔했던 호텔 화장실 광경이다. 요즘 이 사진을 볼 때면 누리며 산다는 것의 수준 차이가 느껴져 왠지 좀 불편하다.  
 
이렇게 멋진 화장실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장실 인심을 들라면 단연코 미국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오래전 그리고 몇 해 전 경험했던 유럽 몇 개국 여행길에서의 화장실 문화는 서글픈 콩트 감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인색했다. 육신을 가진 자의 자연현상도 제때 해결하기 어려운 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은 얼마나 강한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던 적이 있다. 미국은 큰 백화점부터 조그만 동네 가게까지 화장실은 언제나 열려있고 사용은 공짜.
 
화장실 인심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던 미국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세를 떨치는 동안은 화장실을 오픈하지 않는 가게나 레스토랑이 늘어났다. 시골 도시 할 것 없이 그때는 정말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누구도 그것에 대해 가타부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 중에도 여행하다 보면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는 화장실 인심의 보루처럼 개방되어 있었다. 남편 출장길을 따라나섰다가 배탈이 났는데 급해서 아주 진땀을 흘리며 찾아간 곳이 그 두 곳이라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그런데 요즘 이런 곳도 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도록 자기 손님에게만 개방하는 곳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코로나도 끝나가는데 왜 이러지 의아했다. 얼마 전 화장실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아 카운터에 가서 문이 고장 난 것 같다고 하는 중에 안에서 나오는 사람과 맞닥뜨렸다. 홈리스였다. 비슷한 경험을 두어 번 하면서 화장실을 단속하는 가게 주인의 입장을 헤아려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홈리스는 어디로 가야 하나. 옆 동네를 드라이브하다가 큰 길가에 예전에는 없던 RV가 최근 부쩍  늘어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도 은퇴하면 RV 하나 사서 미국 일주하자 얼마면 될까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가 옆에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고 홈리스인 것을 눈치챘다. 아, 차에서 살고 있으면 홈리스가 아닌 게 아닌가. 아무튼 후미진 곳만이 아니다. 바닷가 부촌 트레일을 걷다가도 홈리스의 흔적이 널려있는 것을 보았다.  
 
홈리스 해결의 근본 대책은 선거철 단골 메뉴처럼 귀를 간지럽힌다. 배설할 곳을 찾아 눈치작전을 펴는 그들과의 숨바꼭질이 얼마나 계속될까. 천사의 도시가 오물의 도시가 되기 전에 화장실만이라도 해결할 방안은 없는 걸까. 이달 초 타주에서 온 지인과 한국에서 온 손님을 내 차에 모신 적이 있다. 이분들 눈에도 지저분해진 거리가 눈에 들어온 모양이다. 타주 분은 자신이 사는 주가, 한국분은 한국이 제일 깨끗하고 좋다며 음성을 높인다. LA가 얼마나 넓고 좋은 데가 많은데요? 보신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에요 해명해 보지만, 이대로는 아닌데 싶어 안타깝다.

오연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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