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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앤디 김이 가야할 길

앤디 김(42) 연방 상원의원이 지난 9일 취임했다. 한인 최초의 상원의원 선서식은 120여년 한인 이민사에 큰 획을 긋는 감격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전례없는 첫걸음에 한인들 역시 전례없는 기대를 걸고 있다. 처음이라는 상징성을 업고 시작한 과거 한인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감이 그 기대에 녹아있다. 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오를 덮어주기는 어렵다는 씁쓸한 경험을 한인사회는 종종 겪어왔다.   그의 마음가짐이 궁금하던 차에 지난 6일 NBC 방송이 그와 인터뷰로 묻고 싶은 질문과 듣고 싶은 답을 보도했다. 14분 분량의 방송에서 난처한 질문들이 이어졌지만 그는 단호했고, 막힘없었다.   무엇보다 돋보인 점은 현실에 대한 공감 능력과 균형잡힌 시각이다.   공화당과 어떻게 합의점을 도출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국민 모두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서 “치솟는 집값, 의료 문제 등이 주요 현안이라는 건 공화당도 공감하고 있지 않나. 서로의 의견에 다 동의하진 않겠지만, 상원이 제 임무를 다하고 있는 것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비상계엄에 대한 그의 시각은 한국을 경험하지 못한 한인 2세임에도 정확했다.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처음엔 번역이 잘못됐나 싶었다”면서 “여당조차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했고, 한 시간여 만에 국회가 계엄을 뒤집었다. 민주주의의 놀라운 회복력이다. 미국 정부가 기대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스러운 상황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비현실적이고 정상이 아니다(crazy).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친지들로부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역대 최저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을 묻자 그는 친정 눈치를 보지 않았다.     “정치에 실망한 국민의 불신 때문이다. 정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그래서 주요 현안들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우리 모두 유권자들이 화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바꿔야 한다.”   패거리 정치가 아닌 바른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신념을 확인한 것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사면이 국민 신뢰를 깨지 않을까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된 사면 남발을 국민은 많이 봐왔다. 유권자들의 불신이 높아질 것이다. 선을 넘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면이 계속된다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제 기능을 할 수 있겠나. 우린 예측 불가능한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숨쉬기도 어렵다는 유권자들이 있다. 이보다 나아야 한다. 정부도 의원들도.”   부디 그가 지금의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걷는다면 270만 한인 모두가 그의 편이다.사설 한인 이민사 국민 신뢰 패거리 정치가

2024-12-11

[대한인국민회재단 간담회] 차세대 이민사 교육과 사적지<기념관> 등재에 주력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이사장클라라 원, 이하 재단)이 한인 이민사 보전과 계승을 위한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재단은 19일 언론인 간담회를 열고 재단의 미래 활동에 대한 청사진을 발표했다.     이날 클라라 원 재단 이사장은 ‘지속 가능한 미주 사적지 운영 방향’이라는 제목의 향후 운영 계획을 공개했다. 이번 발표에서 그는 “대한인국민회기념관은 독립애국자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미주 사적지”라며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원 이사장은 ‘한인 역사 보전 플랫폼(Korean American History Preservation Platform)’을 구축해 미주 한인 이민사 계승과 사적지 보전에 앞장설 것을 밝혔다. 그는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여러 아시아계 커뮤니티는 자신들의 이민사를 보전하는 플랫폼이 있는데 한인사회만 없다”며 “한인 역사 보전 플랫폼은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를 지키는 데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원 이사장은 한인사회가 이민사 연구와 사적지 보존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면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주 한인 단체들이 한국 정부나 기관에 계속 의존할 수는 없다”며 “한인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이민사 연구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재단은 대한인국민회기념관이 연방 정부 사적지로 등재되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원 이사장은 “대한인국민회기념관의 연방 정부 사적지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연방 정부 사적지로 등재되면 보조금 조달이나 기념관 운영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방 정부 사적지 등재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우선 대한인국민회기념관 소유 주체가 재단이 아닌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다. 헤리티지스마트컨설팅그룹 소속 임종현 박사는 이날 간담회에서 “연방 정부 사적지가 되기 위해서는 사적지 등재 희망 기관 측이 장소를 소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임 박사는 연방 정부 사적지 등재를 위해 미국 사회의 보편적인 공감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연방 정부 사적지로 등재된 한인 문화 유적지는 워싱턴DC에 위치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유일하다. 임 박사는 “공사관은 한미외교사와 한미관계를 대변하지만, 대한인국민회기념관은 한인 이민사와 독립 운동 역사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연방 정부 사적지 등재가 더 까다로울 수 있다”고 밝혔다.     재단은 차세대 한인 인재 육성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원 이사장은 “지난 9월 발간한 ‘국민회 100년사’ 책을 영문으로도 편찬해 차세대를 위한 역사 교과서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인 역사 보전 플랫폼을 통해서도 차세대 한인 인재를 양성해 그들이 한인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 미주 한인 이민사를 계승 및 보전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재단은 지속성 있는 운영을 위해 외부 기관들과 협력을 이어갈 전망이다. 이날 재단은 화랑청소년재단(총재 박윤숙)과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원 이사장은 “화랑청소년재단과 도산역사학교, 국경일 행사 등 2년간 함께 해왔는데 협력 지속성을 제고하기 위해 MOU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의 청소년, 역사 등 유관기관들과 협력해 차세대 청소년 교류 캠프도 추진할 예정이라고도 밝혔다. 또 재단은 포스코와 협력해 기념관 안내 현판을 증정받기도 했다. 원 이사장은 “내주 중으로 설치하고 제막식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준 기자대한인국민회재단 간담회 차세대 이민사 사적지 등재 사적지 보전 정부 사적지

2024-11-19

한인 이민사 다큐 공립학교서 본다

미주 한인 이민사를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무지개 나라의 유산’과 ‘하와이 연가’가 교육용 콘텐츠로 제작돼 미주 공립학교와 주말 한글학교에 배포된다.   두 다큐 영화를 제작한 나우프로덕션필름(대표 이진영)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주최한 ‘2024 한국 바로 알리기 교육 콘텐츠 개발 및 활동 지원 사업 공모’에 선정됐다고 6일 밝혔다.   이에 따라 나우프로덕션필름은 초중고 공립학교와 전 세계 한글학교 수업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맞춤형 웹사이트 및 전자책 개발에 착수한다.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영화 편집본을 비롯해 토론 주제와 퀴즈 등도 제공한다. 또 학생들이 직접 자기 가족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도록 돕는 ‘무지개 나라의 유산 템플릿’도 만든다.   웹사이트와 전자책은 한국어, 영어로 각각 제작되며 내년 상반기에 공개한다.   교육 콘텐츠 제작에는 다니엘 수에히사 하와이 카이 초등학교 교사, 한국사 교과서 저자인 최태성 역사 전문가, 이진영 인하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장, 다이애나 김 조지타운대 아시아학과 교수 등이 공동 연구진으로 참여한다.   다큐를 제작한 감독이기도 한 이진영 대표는 “자랑스러운 우리 이민 역사를 전 세계 학생들과 더 많이, 더 재미있게 나눌 수 있게 돼 기쁘다”며 “K-콘텐츠의 세계화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 콘텐츠 제작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나우프로덕션필름은 이번 공모를 기회로 꾸준히 이민사 자료를 취합하고 기록하여 미래 세대를 위한 유산 남기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편, 미주 한인 이민 120년 역사를 담은 음악 단편 영화 ‘하와이 연가’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바이올리니스트 이기장·장지연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지난해 10월 제43회 하와이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처음 관객을 만났다. 오는 5월 미국, 6월 한국에서 개봉 예정이며 PBS-TV 하와이를 통해서도 방송된다.   ▶문의: www.theRainbowWords.com공립학교 게시판 한인 이민사 미주 공립학교 초중고 공립학교

2024-03-07

[중앙칼럼] 우리도 자부심 느낄 이민사 있다

한인 초기 이민자의 묘소를 취재하러 지난달 하와이를 다녀왔다. 단지 한인 이민 120주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사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다. 실제 그곳에서 본 이민사의 흔적은 세월에 의해 닳고 닳아 희미해지고 있었다. 한인 선조들의 묘비는 부서지거나 방치된 채 잡초와 수풀 속에 가려져 있다.   한인 이민사는 오늘날 완전히 양상이 변했다. 102명으로 시작됐던 한인 이민 역사는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숫자적으로만 봐도 200만 명을 넘어섰다. 곳곳에 한인 사회가 형성돼 있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한인도 많다. 어디를 가나 한국 제품, 음식, 콘텐트 등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이민 생활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으로 풍족해졌다. 단, 이민 역사의 뿌리를 알고 보존하려는 의식이 부족한 건 아쉬움이다.   하와이에 앞서 중국계 이민자들의 지워질 뻔한 묫자리 이야기를 취재하기 위해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갔었다. 〈본지 10월30일자 A-1·3면〉 당시 취재 중 만난 중국계 대부분은 이민 3세, 혹은 4세들이었다. 겉모습만 아시안일 뿐이지 사고방식이나 행동은 완전히 미국화된 이들이다.   그들에게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중국어를 잃은 지는 오래됐지만, 뿌리(정체성)와 이민 선조의 역사를 지키려는 강력한 의지였다. 오리건 주는 중국계 이민자들이 첫발을 내디딘 땅이다. 그들은 그 땅에서 철도를 부설하고 도로와 강둑을 건설했다. 중국계 후손들은 이민 선조들의 노동력, 전문성, 추진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리건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것이 곧 이민 역사에 대한 그들의 자부심이다.   그 때문에 중국계 커뮤니티는 콘도 단지로 개발될 뻔했던 선조들의 묘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이들은 유대인 커뮤니티처럼 체계적인 뿌리 교육을 받아 이미 미국화된 후손이라 해도 ‘차이니스-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었다. 이는 모두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인 사회는 어떤가. 우리에게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민 역사가 있다. 1900년대 초였다. 오늘날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모든 게 열악한 시기였다. 당시 유교문화권에서는 조상 대대로 살던 땅을 떠난다는 건 뿌리를 들추어내는 일로 생각했다. 그 뿌리를 이역만리 땅에 옮겨 심으려고 종일 땡볕에서 고된 농장 노동을 감내했던 이들이 한인 초기 이민자들이다.    당시 사회적 하층민들이 농장 노동자로 온 것 같지만, 행적을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선각자였다. 당시 노동자 월급은 약 16달러에 불과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때 돈으로 무려 2000달러를 마련했다. 그들은 당시 300명 이상의 한 달 치 봉급과 맞먹는 액수를 모아 학교부터 세웠다. 또 광복 전까지 독립운동 자금의 2/3를 조달했다.   한인 초기 이민자들은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미국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 노력했다. 훗날 그들의 자녀는 미군으로도 복무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에 기여했다.         한인 이민 역사가 한 세기를 지났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차세대는 한국어를 잃어가고 있다. 언어뿐 아니라 뿌리 의식을 심어주려는 노력 역시 약화하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 기사를 한글판뿐 아니라 영문판으로도 제작했던 이유다. 다양한 역사적 자료를 토대로 기사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인 2세 자녀를 둔 부모라면 본지의 아시안 역사 기획 시리즈 기사를 자녀들과 꼭 공유했으면 한다. 이민 역사, 이민자의 미국 사회 발전에 대한 기여, 한인의 정체성 등에 대한 내용이 2세들의 뿌리 찾기 과정에 첫 단추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뿌리를 안다는 것, 곧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자부심이다. 장열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자부심 이민사 한인 이민사 이민 선조들 한인 사회

2024-01-15

“문학으로 이민사 한 축 이룰 것”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현숙 회장

재미수필문학가협회(회장 이현숙·사진)는 올해도 한글 지킴이를 목표 삼아 꾸준히 창작 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협회는 줌을 통한 화상회의와 대면 모임, 지역 모임에서 문학 활동과 친목을 다지고 있다. 지난해 창립 25주년 행사 및 문학 세미나에 다트머스대학교 김성곤 교수를 초빙해 한국문학의 번역과 해외 출판 등 강의로 번역문학과 영문 창작 활동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올해 주요 활동은 번역문학 줌 강의, 지역별 월례회 조성, 디아스포라 웹진 ‘너머’ 작품 출품, 한국 언론사 기고, 영문 에세이 활성화 등이다.     올해도 계간지인 ‘퓨전수필’로 협회 소식, 회원 활동, 작품을 나누고 협회지인 ‘재미수필’을 통해 회원들의 작품을 모아 출간할 계획이다. 그 안에 이민 역사와 미래의 희망을 담아 디아스포라 문학의 탑을 쌓고자 한다. ‘퓨전수필’은 1년 4번 발행해 지금까지 84호가 나왔고 ‘재미수필’은 지난해 25집이 발간됐다.     지난해 읽어주는 유튜브 채널 ‘재미수필’을 개설했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수필 문학의 독자층을 넓히고 작품 발표 기회를 늘리며 공감대를 나누고 있다. 방문자 수가 2만명이 넘었고 참여 작가와 콘텐츠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 안에 지켜야 하거나 바꿔야 할 가치를 작품에 풀어내 역사를 이끌어가는 일이 작가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재미 수필가들은 한인이민사에 문학작품으로 한 축을 이루고자 한다. 이은영 기자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민사 회장 이현숙 번역문학과 영문 문학 활동

2024-01-14

[문화산책] 이민사 연구와 예술적 감동

“아부지”   하와이의 한 공동묘지에 쓸쓸하게 놓여있는 묘석에 새겨진 ‘아부지’라는 한글 세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한장의 사진이 참 많은 것을 말해준다. 중앙일보의 연재 기획기사 ‘한인 이민 선조의 비명(碑銘)을 찾아서’의 한 부분이다.   우리의 뿌리를 확인하는 이런 기사가 참 반갑다. 수고해준 취재기자들과 신문사에 감사하며, 앞으로 이런 기사가 많이 실리기를 희망한다. 지난 2023년은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여 관심이 높았고 행사도 많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앞으로도 그런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역사를 제대로 갈무리하고 정신을 이어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자긍심을 확립하는 일은 다인종 다문화로 이루어진 미국 사회에도 큰 보탬이 된다. 캘리포니아 주가 ‘소수인종학’을 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는데, 여기에 미주한인사 7개를 포함한 것도 그런 때문이다. 이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을 할 수 있다니, 그만큼 역사 공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미주 한인이민사 연구와 관련해서 몇 가지 개인적 소견을 말하고 싶다. 간단히 간추리면, 한국 정부의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지원과 미주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점, 이런 연구와 사업은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 학자는 물론이고 작가나 예술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 2세 전공자 등 폭넓은 연령층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 등이다.   재외동포청이 지난해 의욕적으로 출범했다. 물론,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많겠지만, 이민 역사 갈무리와 정리도 중요한 사업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민사 연구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각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고, 그 성과를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하나로 묶어나가는 작업은 개인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 연구는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문기관이나 학자의 층과 연구주제도 넓어졌고, 많은 책과 연구논문, 작품도 발표되었다. 특히 도산이나 박용만, 올림픽 영웅 새미 리, 김영옥 대령 등 인물 탐구와 독립운동사 연구는 꽤 깊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 다각적 시선과 예술적 상상력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초기 이민사 분야의 학자와 연구가로는 UC리버사이드의 장태한 교수, 역사 자료 정리와 저서 집필에 힘쓰고 있는 민병용 관장, 도산 연구가 윤병욱, 자료 수집 전문가 안형주, 멕시코 이민 연구가 이자경, 한국의 조규익 교수, 이구홍 등을 꼽을 수 있고, 기관이나 단체로는 하와이이민연구소와 하와이역사재단, 장태한 교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미주한인사 학회’ 등이 있다.   예술 쪽에서도 제법 많은 작품이 나왔다. 가장 많은 것은 문학작품으로 이언호 희곡 ‘사진신부의 사랑’, 장소현 장시집 ‘사탕수수 아리랑’, 한우성의 전기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박경숙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 이상묵의 ‘칼의 길’, 권소희 장편소설 ‘하늘에 별을 묻다’ 등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다. 한국 작가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춘원 이광수의 ‘도산 안창호’,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희곡 ‘애니깽’ 등이 떠오른다.   영화로는 이진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 ‘하와이 연가’ 등이 있고, 연극으로는 극단 시선의 뮤지컬 ‘도산’이 눈길을 끈다.   역사와 정신적 유산을 오늘에 생생하게 되살리는 힘은 역시 감동에서 나온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참여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인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이민사 연구 이민사 연구 미주 한인이민사 연구논문 작품

2024-01-11

이민사 기록 지켜야 한인 존재 미국사에 선다

당시 초기 이민자들은 묘비로라도 뿌리를 기록했다.   그 어렵던 시절에도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의 부평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명(碑銘)을 찾아다닌 이유다.   당시 지역 신문도 첫 한인 이민단을 태운 갤릭호가 호놀룰루에 도착한 날의 기록을 남겼다.   1903년 1월 13일 자 ‘더 하와이안 스타(The Hawaiian Star)’ 1면 기사다. 큰 제목(Koreans Arriving) 밑에 이런 부제가 달렸다.   ‘One hundred and Two Subjects of the Hermit Kingdom Reach Here to Try Their Luck at Plantation Labor(은둔의 왕국에서 온 102명이 농장 노동에 도전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120년 전만 해도 그들은 은둔의 나라에서 온 이방인으로 여겨졌다.     하와이 민주평통 하와이협의회 박봉룡 회장은 “한인들이 초기 이민사에 무관심해서 안타깝다”고 운을 뗐다.   박 회장은 “내가 1970년대에 100불 들고 이민을 왔을 때도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가 많았는데 지금은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며 “흑인, 아메리칸 인디언 등의 역사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도 엄연히 미국 역사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미주 한인 인구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 존재감은 과거와 달라졌다. 단, 뿌리를 알아야 ‘우리’를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한의준 목사는 “70~80년대 김포공항에서 이민 가던 광경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한 목사는 “그때만 해도 공항에서 울고불고했는데 하물며 아무것도 없던 1900년대 초반 그 시절 이민자의 심경이 어떠했겠는가”라며 “그들이 이역만리 땅에서 개척자 정신으로 살며 한인 이민사의 초석을 다졌기 때문에 오늘의 한인 사회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일은 단순히 추모를 넘어 한인사회의 위상을 미국 사회에 각인시키는 일이다. 역사를 계승한다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   해외 최초의 한인 교회인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이를 위해 역사 편찬 사역부(담당 신찬재 권사)까지 두고 있다. 초기 이민사를 정리한 책(알로하 하와이 120년을 걷다)은 인쇄 과정에 있다. 하와이 곳곳의 초기 이민자의 자취를 코스로 개발해 내년부터는 역사 투어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진영 감독은 지난 2005년부터 하와이에서 살고 있다. 한인 이민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과 ‘하와이 연가’ 등을 제작했다.   이 감독은 “초기 이민자의 후손 중에는 문대양 하와이주 대법원장, 해리 김 전 하와이 시장 등 각 분야에서 저마다의 모습으로 미국 사회에 공헌한 한인이 너무나 많다”며 “뿌리를 안다는 건 이민자로서 자부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경계인(境界人)과 같은 삶을 사는 게 이민자다. 한인 2~3세들이 언어를 잊어도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이유다. 초기 이민자가 살았던 상황에서는 어려움이 더 많았을 터다.   그런 시대적 배경 가운데 한인 초기 이민자들은 모국까지 가슴에 품고 살았다. 이역만리 땅에서 월 20달러도 안 되는 봉급을 쪼개고 또 쪼개서 한국의 독립운동 자금까지 모았다.   호놀룰루총영사관 이서영 총영사는 “하와이 초기 이민자들은 해방이 될 때까지 독립자금의 2/3 정도를 조달했는데 그들이 아니었다면 독립운동의 역사도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와이의 한인 이민사는 곧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 건국 역사, 전 세계 재외 동포의 이민 역사로까지 연결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역사의 흔적은 의식하지 못해도 늘 주변에 있다. 일례로 초기 이민자들의 유산 중 하나가 교회다. 이민 교회는 그동안 종교 기관 이상의 역할을 했다.   힐로연합감리교회 이말용 은퇴 목사는 “심지어 힐로 지역에는 미국 교회 통틀어서 감리교회 자체가 없었는데 한인들이 와서 감리교회를 처음 세운 것”이라며 “우리가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이민 교회가 미국에 미친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잊히지 않으려면 더 선명하게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남은 자들의 몫이다. 뿌리가 있다는 건 곧 자부심이다. 관련기사 세월 견딘 비석엔 절절한 한글 "아부지" 묻힐 땅도 없던 그들, 묘비는 삶의 기록이었다 오아후=장열 기자ㆍ사진=김상진 기자 [email protected]미국 온라인용 한인 이민사 이민사 기록 초기 이민사

2023-12-28

애너하임 통합교육구 한인 인종학 수업, 정체성·다문화 이해 높여

“꿈나무가 크게 자라려면 여러분의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 고등학교 최초로 애너하임 통합교육구에서 시작한 ‘한인 인종학(Korean American Studies)’ 수업이 한인 청소년의 정체성 함양에 효과를 내고 있다.     13일 온라인매체 LA이스트는 애너하임 통합교육구 한인 인종학 수업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한인 등 여러 고등학생이 그동안 몰랐던 한인 이민사 배우기에 한창이라고 전했다. 한인 인종학 수업이 한인 차세대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정신적 유산의 중요성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매체에 따르면 현재 한인 인종학 수업을 이끄는 제프 김 교사는 매주 월요일 저녁 7시30분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수업은 애너하임 통학교육구 7개 고등학교 학생 약 40명이 듣고 있다. 학생 중 상당수는 한인이다.   제프 김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인 이민사 120년 역사를 1년(2023~2024학년도) 과정으로 가르친다. 어바인통합교육구 교육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 교사는 지난해 최초로 만들어진 K-12용 한인 인종학 커리큘럼 교재를 활용한다.     매체는 지난 8월 9일 미국 고등학교 최초로 개설된 한인 인종학 수업이 학생들을 120년 전 과거로 인도한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1903년 1월 13일 최초 한인 이민선 갤릭(Gaelic)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한 이민선조 102명 이야기부터 일제강점기 조국독립과 한인 2세 자녀교육에 헌신한 한인 이야기를 배운다.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활약한 김영옥 대령,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 박사 등 미국을 빛낸 한인 2세 활약상도 빠지지 않았다. 최근 전 세계를 휩쓰는 K팝 등 한국 문화 열풍은 자부심도 심어준다. 학생들은 한인 이민사의 아픔으로 기록된 1992년 4.29 폭동 역사도 배우고 있다.   수업을 이끄는 김 교사는 한인 이민사를 가르치며 “뿌리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그는 한인 인종학 커리큘럼 교재 내용과 함께 “이민자 후손인 여러분 가족의 ‘이야기’도 찾아보라”고 말한다. 학생들의 부모, 조부모가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면서 겪은 과정과 도전 자체가 곧 한인의 역사여서다.   9학년인 시온 이는 “한인 인종학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졌다”며 변화된 모습을 전했다.     한인 인종학 수업은 다민족·다문화 구성원 간 이해를 높이는 효과도 내고 있다. 현재 수업을 듣는 학생 4명 중 1명은 비한인으로 이들은 한인 이민사와 한국 문화에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10학년인 길레모 카스트로는 “한인 이민사는 한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위대한 미국 역사”라며 “이 수업을 통해 여러 문화가 미국의 역사를 일궈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mail protected]미국 다문화 한인 인종학 한인 이민사 한인 이야기

2023-12-13

“선조 유산 차세대에 전할 것”…‘무지개 나라의 유산’ 이진영씨

“선조들에게 많이 받은 것들이 있으니 이제 우리가 미래세대를 위해 돌려줄 차례죠.”   지난 2021년 6부작 연작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을 발표해 리버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신인 감독상을 받은 이진영(사진)씨의 다짐이다.   이 감독은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하와이로 이주해 한인 신문사, 방송사 기자 및 하와이의 KBFD-TV 앵커를 지냈다.   이후 영화에 도전해 미주한인 이민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무지개 나라의 유산’과 미주한인 120년사를 음악으로 담은 장편영화 ‘하와이 연가’를 제작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의 이민사를 다룬 작품으로 국제 영화제에서 큰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지금부터 우리는 그들이 남긴 사랑의 흔적을 찾아가 보려 합니다.’ 이 말은 영화 ‘하와이 연가’ 도입부에 나오는 문장으로 모든 작품에 일관되게 녹아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민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도 이러한 정서가 전달된 게 아닌가 싶다.”   -하와이에서 한인들의 위상은 어떤가.   “‘무지개 나라의 유산’에는 문대양 하와이주 대법원장이나 해리 김 전 하와이 시장을 비롯해 주류 사회에서 다양한 기여를 해온 이들이 많다. 많은 한인이 다른 커뮤니티와 조화를 이루며 존중받고 산다. 하와이는 한인 이민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고 사회 곳곳에 한국의 문화가 녹아 있다. 하와이에서는 고기 부침개를 ‘미트(Meat, 고기) 전’이라 부르는 등 한식에서 유래한 음식이 많이 퍼져있다.”   -영화 제작 실패에 대한 걱정은 없었나.   “내 목표는 성공이 아니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 금전적인 수익을 내지 않아도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으니 이미 성공한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1인 독립영화사를 차려 제작하는 거라 ‘끝까지 잘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은 있었다. ‘무지개 나라의 유산’에 출연한 해리 김 시장이 '정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면 후회가 없다'고 말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재외동포들이 자기 뿌리를 인식하는 게 왜 중요한가.   "나무를 알려면 뿌리부터 들여다보라는 영어 속담처럼 뿌리는 정체성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2005년 하와이를 선택해 이주했지만, 이민자로 사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한인 이민사에 대해 취재하다 보니까 하와이는 단순히 풍광이 아름다운 남의 나라가 아니라 120년에 걸쳐서 우리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고 뿌리를 내린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어디에도 속하기 어려운 경계인의 삶이지만 또 선조의 뿌리를 찾아보고 이민사를 알게 되면 어디에든 속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로 만들면서 확신이 들었다."   -뿌리를 이어 나가기 위해 현세대의 역할은.   "우리는 선조의 사랑과 헌신을 후대에 물려줘야 하는 책임이 있다. 나라마다 고유의 한인 디아스포라가 있으므로 어떤 사랑을 어떻게 받았는지 알기 위해 이민사를 공부해야 한다. 뿌리를 아는 것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미래세대나 뒤에 오는 이민자들에게 어떻게 돌려줄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 모국의 독립운동을 돕고 한국 전쟁 지원에도 발 벗고 나섰던 하와이 한인사가 증명하듯이 해외에 살아도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으면 좋겠다."게시판 하와이 장편영화 하와이 하와이 시장 미주한인 이민사

2023-11-26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2)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흔적은 오랜 세월을 내포한다. 역사는 흔적 너머의 사실이다.     론 퍼 묘지의 ‘블록 14’ 보존〈본지 10월 30일자 A-1면〉 은 이민자의 발자취가 지워져선 안 된다는 아시안 커뮤니티의 열망에서 비롯했다. 근저에는 지워짐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포틀랜드 번사이드 스트리트와 4가 앞 차이나타운. 론 퍼 묘지에서 서쪽으로 불과 2마일 떨어진 곳이다. 높이 38피트의 거대한 중국식 게이트웨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차이나타운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추모 정원 건립의 기대감이 가득했던 ‘블록 14’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북적대야 할 주말임에도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차이나타운 내 3가와 카우치 스트리트에서 올드타운 그로서리 델리를 운영하는 김영자씨는 이곳에서 20년째 가족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이 포틀랜드에서 가장 번화가였다고 한다. 관광객도 많았고 주말이면 각종 이벤트가 펼쳐졌던 지역이었다. 김씨는 “지금은 차이나타운이라 불리는 게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이 없다”고 말했다.     색바랜 낡은 한자 간판들은 희미해진 차이나타운을 보여준다. 그 앞의 거리는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점령하고 있다. 입구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청동 사자상의 위엄이 무색하다.   포틀랜드리패밀리협회마커스 리(70) 이사는 “지금 차이나타운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며 “중국인 이민자들은 중국의 흔적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낮인데도 문을 연 식당은 찾아볼 수 없다. 영업 중단 표지와 자물쇠로 굳게 닫힌 업소뿐이다.   3가에서 미니마트를 운영 중인 중국계 쑤 슈 사장은 “건너편 중국 식당 몇 곳만 빼고 모두 이곳을 떠났다”며 “이런 현상이 10여년 전부터 본격화됐는데 차이나타운의 옛 모습이 사라지면서 대신 노숙자가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 복판을 향해 걸었다. 사람은 드물고, 이민자의 흔적만 곳곳에 남아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한 낡은 건물 앞이다.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듯했다. 유리 벽면 너머로 한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물이 보인다.     유리 벽면에 가까이 눈을 대고 글을 읽었다. 우리 한인들의 이야기와 닮은 데가 있다. 1930년대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세탁소를 운영했던 유 이(You Yee) 가족의 이민사다.     한의사였던 남편(카이 영 웡)을 일찍 여의고 홀로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운 한 어머니의 일생이다. 고객이 수선을 요구한 부분 외에도 약해진 다른 솔기까지 꿰맬 정도로 근면하게 일했다는 내용도 있다.   글은 “이 건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중국계 이민자들의 인내와 이 사회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끝을 맺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메아리를 잃은 지 오래다. 오가는 이가 없으니, 보는 이도 없다.     이곳에는 오리건중국인통합자선협회(CCBA)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방 내무부가 국가 유적지로 지정한 건물이다. 1911년부터 이민자가 드나들었다.   이젠 중국계 이민자들도 예전처럼 차이나타운에 몰려 살지 않는다. 이곳저곳으로 점점 흩어지는 추세다.     CCBA 닐 리 회장은 “그만큼 이민 역사를 보존하는 것 역시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 자료를 이곳에 그대로 보관해두고 있으며 ‘블록 14’도 그러한 마음으로 지켜냈다”고 말했다.   빈 건물의 벽면은 마치 이민 역사의 전시장과 같다. 오리건주의 태동은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금광을 찾기 위한 ‘골드러시’에서 비롯됐다.   한 벽면에는 “1851년은 골드러시와 맞물려 중국인 100여명이 처음으로 도착한 해”라는 기록물이 내걸려 있다. 변발의 중국인 이민자가 포틀랜드 콜롬비아 강가에서 낚시하는 모습, 철도 위 노동자들,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이 표지에 등장한 1890년의 잡지 등 사진 자료도 여럿 보인다.     주정부 기관인 메트로의 한나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중국계 이민자들은 철도 부설 외에 도로와 강둑까지 건설했다”며 “그들의 노동력, 전문성, 추진력이 없었다면 오리건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선가 중국 전통 악기인 ‘얼후(erhu)’ 소리가 들려왔다. 가락이 흘러나온 곳은 작은 상점 크기의 포틀랜드 차이나타운 박물관이다.    유리창 너머로 중국인 노인 서너 명이 연주를 하고 있다. 얼후 소리가 텅 빈 이곳의 분위기와 맞물린다. 주름진 그들의 얼굴은 차이나타운의 오늘이다.   시들어가는 이곳엔 아름다운 정원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수저우시와 포틀랜드시가 손잡고 지난 2000년에 개장한 ‘란 수(LanSu)’ 중국 정원이다. 정원 투어는 물론 차, 서예, 문학 등 중국 문화를 알리는 이벤트도 매일 열린다.   중국계미국인시민연합(CACA) 헬렌 잉 회장은 “우리는 계속해서 이민 역사를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 각종 표식과 구조물 등을 남기고 있다”며 “란 수 정원 인근 부지에 중국 문화 유산센터도 짓는 중”이라고 말했다.   론 퍼 묘지의 ‘블록 14’ 보존은 절실함의 산물이다. 희미해진 차이나타운은 이를 더 부각한다.    관련기사 지워질 뻔한 묫자리…굴곡의 땅 지켜낸 이민자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email protected]포틀랜드 이민사 포틀랜드 차이나타운 이민사 전시장 포틀랜드 콜롬비아

2023-10-30

[중앙시론] 동포청, 한인 이민사 교육에도 관심을

인천광역시 해외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필자는 한미동맹 및 인천상륙작전 73주년 행사에 초대되어 인천광역시를 방문하고 왔다. 인천광역시는 이번 행사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는데 특히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상륙작전이 한국전쟁의 전환점이었으며 대한민국 발전의 발판을 마련해준 역사”로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광역시를 방문하면서 최근 송도에 설립된 재외동포청(동포청)을 방문했다. 이기철 초대 청장을 만나 재외동포청 출범 100일이 지나며 그동안의 성과와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듣는 기회도 가졌다.   재외동포청의 기본 미션은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공동발전을 통해 글로벌 중추 국가 실현과 인류의 공동번영에 기여한다’로 되어 있다. 특히 재외동포청은 과거 재외동포재단과는 다른 방식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할 것을 천명했다.     이 청장은 과거 재외동포재단이 단순히 정부 정책을 추진했던 것과 달리 동포청은 재외동포와 호혜적인 동반 성장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책 수립과 이행으로 이원화되어 있던 동포정책을 일원화해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또 그동안 국내 거주 재외동포는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앞으로는 정책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계획도 전했다. 마지막으로 이 청장은 여러 부처로 나뉘었던 민원서비스를 통합민원서비스로 통합해 재외 한인들의 편의도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궁극적으로 해외 거주 재외동포들도 동일한 수준의 민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특히 동포청은 한글학교 지원 강화 정책으로 운영비를 대폭 증액하고 교사연수 지원을 통해 한글학교 교사 역량 강화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미주 지역 한글학교와 한국어 강좌는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필자는 이제 방법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싶다. 수강생들에게 미주 한인사회 역사와 문화도 함께 가르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차세대들에게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고, 타인종 학생들은 한인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포청은 재외동포와 대한민국의 공동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다만 차세대 동포에게 한국 발전상을 교육해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정체성을 함양시킨다는 계획이다.     차세대들이 모국의 발전상에 대해 알면 분명 자긍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주 한인’이라는 의식이 전제되어야 모국에 대한 관심과 자긍심도 생긴다. 따라서 미주 한인사와 모국의 발전상을 동시에 교육 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인천광역시가 운영하는 재외동포 웰컴센터도 동포청과 같은 빌딩에 입주해 재외동포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동포청과 인천광역시가 잘 협조해 성공적인 재외동포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길 바란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다소 불쾌한 경험을 했다. 별로 크지 않은 캐리온 가방을 들고 송도에서 서울 강남으로 가는 버스에  타려고 하자 운전기사가 큰 소리로 “이런 가방 들고 타면 안 돼요”라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버스 어디에도 캐리온 가방 휴대를 금하는 문구는 없었다. 그 운전기사는 “이번은 봐 주지만 다음부터는 안 된다”며 선심 쓰듯 말했다.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진 듯 망신스러웠다. 모처럼의 한국 방문이라 필자가 모르고 한 실수일 수 있지만 운전기사의 반응은 지나쳤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억울함도 들었다.     한국을 방문하는 한인 가운데는 필자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재외동포 민권 서비스 시스템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동포청 이민사 재외동포청 출범 과거 재외동포재단과 미주 한인사회

2023-10-09

[김상진 기자의 포토 르포] ‘이민사 박물관’ 묘지

사흘 뒤면 광복절이다. 이맘때면 한번쯤 가봐야 할 곳이 로즈데일 묘지(Rosedale Cemetery)다. 한인 초기 이민자 280여명과 함께 독립유공자 18분이 잠들어 있는 '한인 국립묘지' 다. 일제 강점기 태평양을 건너온 한인 초기 이민자들은 이 땅에 정착하기 위해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러면서도 당시 한인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고국의 독립운동에 보탰다. 그 중 일부는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펼쳐 고국의 정부로부터 사후에 독립 유공자로 지정됐다.   또한 로즈데일 묘지는 야외 이민사 박물관이기도 하다. 수백개의 묘비에 새겨진 한글은 당시 문법과 철자법에 의해 쓰였다.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고 새미 리 박사의 부친 이순기씨 묘비가 눈길을 끈다. 묘비에는 '사랑하는 사랑허난 우리 아바님 쳔당 복락 누리십씨요. 리순기씨' 철자법이 지금과는 다르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세상을 떠난 가족을 향한 애틋함이 배어 있는 묘비 문이 즐비하다.     LA한인들에게 로즈데일 묘지는 과거이자 현재다. 그리고 미래이기도 하다. (1) 손덕인 (2) 손덕인의 부인  손마리아 (3) 차상달 (4) 차상달의 부인 엘리스 이 (5) 이순기 (6)장일만(사진이 훼손됐다). 묘지에 박힌 생전의 모습들이다. 김상진 사진부장 [email protected]김상진 기자의 포토 르포 이민사 박물관 이민사 박물관 한인 국립묘지 로즈데일 묘지

2023-08-11

[중앙칼럼] 고 민병수 변호사의 미완성 프로젝트

고 민병수 변호사에 대한 첫 기억은 묘지가 시작이다. LA한인타운 인근 워싱턴 불러바드에 있는 ‘안젤루스 로즈데일 묘지’가 기억의 장소다.   민 변호사는 매주 토요일이면 몇몇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한인 이민 선조들이 묻혀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미주한인재단이라는 이름의 비영리재단을 세우고 ‘미주 한인의 날’ 제정에 성공한 민 변호사가 생각해 낸 또 다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민 변호사와 함께 한 일행들은 그가 늘 ‘친구’라고 부르던 한인 1.5세와 2세 젊은이들이었다.  당시 LA통합교육구에서 커뮤니티 담당관으로 일하던 홍연아씨와 알렉스·마가렛 차 변호사 부부, 베렌도중학교 수학교사였던 존 공, 윌튼플레이스 초등학교 교사였던 린지 이, 그 외에 애나 정, 안드레아 나, 토니 등이다.     토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달려오는 ‘친구’들의 빈 속을 위해 민 변호사는 늘 삶은 달걀과 구운 고구마 등을 챙겨왔다. 그리고 정오가 될 때까지 함께 쭈그려 앉아 묘비명을 확인하고 한인 이름을 찾으면 위치를 기록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들은 그렇게 일제 강점기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동지회의 이순기씨와 김영옥 대령 부모의 묘지 등을 찾아냈다. 이순기씨는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인 새미 리 박사와 한인 첫 여성 교육자인 메리 손 여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또 그동안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한인 독립유공자들의 묘비를 발견해 그들의 유해가 한국 현충원으로 옮겨지는 길을 마련했다.   민 변호사가 로즈데일 묘지에 그렇게 공을 들인 건 그곳에 묻혀 있는 한인 선조들 때문이다. 민 변호사는 늘 이민 초창기 인종차별로 인해 죽어서도 갈 곳이 없던 한인들을 유일하게 받아주던 로즈데일에 있는 한인 선조들을 후손들이 기억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곤 했다.   대한인국민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곳에는 280여 명의 한인 선조들이 잠들어있다. 앞에 언급된 인물들 외에 재미한인사약 상·중의 저자 노재연, 강익두, 김관유, 김중수 목사, 마춘봉, 박리근, 윌리 송, 멕시코에 이민을 갔다가 미국으로 온 후 100세 장수를 누린 선우 로사, 임준기 목사 등이 있다.   민 변호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민 선조들의 이야기를 가능한 자세히 남기려 애를 썼다. 그는 종종 “이야기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인 선조들의 이야기가 곧 한인 이민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20년을 맞은 한인 이민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곧 한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걸 누가 상상했겠는가. 1세들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 한인 후손도 반드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날을 보지 못하지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인 선조들이 묻힌 위치를 기록한 묘지 지도를 남기는 이 프로젝트는 간단한 것 같았지만 끝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 넓은 곳에 묻혀 있는 한인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었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주말마다 묘지에 가서 말 그대로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해야 하는 탓에 1세들의 참여는 미미했다. 그런데도 민 변호사는 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 꾸준히 혼자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민 변호사가 고인이 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지난 1일 별세한 민 변호사의 추모예배가 남가주새누리교회에서 지난 10일 진행됐다. 유족과 친지를 제외하면 한인 조문객은 100여 명 남짓에 불과했다.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항상 앞장서 봉사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의 업적과 공로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큰 이별이었다.     그의 희망과 비전이 실현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민 변호사는 떠났지만 그의 바람대로 한인 사회가 우리의 역사를 기억 속에서 잊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프로젝트 민병수 한인 이민사 민병수 변호사 변호사 부부

2023-06-13

“전시회에 가족 이민사 30년 담았죠”

부녀가 함께 가족 전시회를 개최해 화제다.     대학 시절 사진부 동아리를 할 정도로 사진을 좋아했던 아버지 마이클 권 씨를 위해 아트를 전공한 두 딸 마리 씨와 캐서린 씨가 전시회를 마련했다.     캐서린 씨는 “사진 찍는 것을 참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삶의 소소한 풍경을 기록해 자녀들에게 삶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했다”며 “이민 이삿짐에서 앨범이 가장 많았다”고 말했다.     60년대 후반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아버지 마이클 권 씨는 사진부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전국대학생 콘테스트에서 몇 차례 입상도 했다. 90년 말 이민 와서는 봉제업과 치과기공업을 하면서 한국디지털사진가협회 해외지부에 가입해 틈틈이 사진을 찍어왔다.     2021년 말 은퇴한 권 씨는사진 작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권 씨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캡처하고, 그 캡처된 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며 “소소한 삶 속에서 발견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려하지 않지만, 심미가 묻어있는 흑백사진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권 씨는 이번 전시회에서 데스밸리, 라호야 코브, 비숍, 에코파크 등 남가주 아름다운 명소를 담은 흑백 사진 10여점을 선보인다.     “세상에 있는 자연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정원 같다”는 권씨는히즈 가든(His Garden)이란 이름으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활동도 하고 있다.     첫째 딸 마리 씨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라구나 아트앤드디자인 칼리지에서 아트를 전공하고 미술치료 특수교육도 공부했다. 마리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민 온 미국에서의 삶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아트를 통해 치유를 받았다”며 “그동안 그림으로 기록해온 가족 인물화를 전시한다”고 설명했다.     팬데믹동안 아버지와 어머니의 암 수술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한 셋째딸캐서린 씨는 아버지 칠순을 기념해 가족전시회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캘스테이트 롱비치(CSULB)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캐서린 씨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유화, 일러스트레이션 등 총 10여점을 선보인다.     캐서린 씨는 “가족미술전에는 우리 가족의 이민 30년 역사가 담겨 있다”며 “그 역사는 딸 세 명에게 공평하고 기회의 삶을 주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희생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권 씨 부녀의 ‘가족미술전’은 E2 갤러리(관장 문두현)에서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주소:1215 W Washington Blvd. LA   ▶문의:(213)741-0014 이은영 기자전시회 이민사 가족 전시회 가족 이민사 이번 전시회

2023-03-26

‘파차파 전시’에 멜론재단 85만불 지원

도산 안창호 선생이 리버사이드에 일군 초창기 한인 공동체 ‘파차파 캠프(Pachappa Camp)’와 미주 한인 120년사를 미전역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UC리버사이드(UCR)는 13일 산하의 김영옥연구소(소장 장태한 박사)가 멜론 재단에서 85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파차파 캠프와 지역 한인사를 알리는 순회 전시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리버사이드에는 현재 미주도산기념관 설립도 추진 중이다.관계기사 3면   지난 2021년 10월부터 3개월 동안 ‘파차파 캠프: 미국의 첫 한인타운’이라는 주제로 남가주에서 미니 순회 전시회를 진행했던 김영옥연구소는 이번에 받은 멜론 재단의 지원금으로 내년 하반기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시작으로 뉴저지, 워싱턴DC, 시카고를 차례로 방문해 당시 파차파 캠프와 각 지역에서 살던 한인들의 이민사를 사진 전시와 물품 등을 통해 주류사회에 보여주게 된다.   또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전시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파차파 캠프는 1904년 리버사이드 이스트사이드, 14가와 커머셜가 인근에 오렌지 농장에서 일한 한인 이주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공동체 이름이다.   오프라인 순회 전시회는 각 지역의 한인 커뮤니티 단체와 함께 진행하며, 세이브 아워 차이나타운 위원회, 하라다 하우스 재단, 미주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 남가주 민권연구소 등 리버사이드 소재 아시아계 미국인 및 민권단체 컨소시엄과도 협업한다.   김영옥연구소는 또 멜론 기금 중 20만 달러를 전시회가 열리는 한인 커뮤니티 단체에 각 5만 달러씩 기부할 예정이다.   멜론 재단은 예술, 인문학, 고등교육, 문화 등 사회·과학·인문학 분야를 지원하는 개인 자선 단체로 1969년 설립됐다. 주로 박물관 및 도서관 프로그램과 사회 정의 이슈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 문화유산의 보존 및 디지털화 프로그램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멜론 재단이 한인 이민사 보존과 홍보를 위해 지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장태한 소장은 “파차파 캠프와 지역 한인 이민사를 순회 전시회를 통해 주류 사회에 처음으로 또 정식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됐다”며 “이는 UC리버사이드와 김영옥 연구소뿐만 아니라 한인 사회에 큰 경사다. 파차파 캠프와 한인 이민사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금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이민 역사가 오래됐지만, 아시안을 겨냥한 증오범죄가 증가하면서 주류사회도 아시안에 대한 인식을 재점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더 많이 다양한 방법으로 한인사를 주류사회에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대럴 윌리엄스 UCR 인문·예술·사회과학대학 학장은 “장태한 박사의 한인사회 연구는 역사적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다. 순회 전시회를 통해 지역 사회를 연결하고 성장시키며 배울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연화 기자 [email protected]한인사 미주 미주 한인 순회 전시회 한인 이민사

2023-02-14

"아메리칸 드림 위해 '같이 갑시다'"

1903년 오늘(1월 13일)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민 선조들의 노고 덕분에 정확히 120년이 지난 오늘, 한인사회는 연방의회의 뜨거운 축하를 받게 됐다.     전국 각급 정부 기관과 의회에서 ‘미주 한인의 날’을 맞아 일제히 한인들의 이민사를 기리고 더 많은 발전을 기원하는 목소리가 퍼져나가는 하루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2일 성명을 통해 “120년 전 오늘 102명의 한국인이 하와이에 도착해 새로운 날을 시작했다”며 “나라와 민권을 지키며 새로운 과학, 스포츠, 의료와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열고 있는 한인들의 기여는 국가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같이 갑시다(Katchi Kapshida)’”라고 축하 메시지를 마무리했다. '같이 갑시다'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했다.     연방하원에서는 영 김 의원(가주 39지구)이 11일 자유 발언을 통해 이민 120주년과 한인의 날에 경의를 표시했다.     김 의원은 “한인들은 1903년 노동자로서 미국 땅을 처음 밟아 지금 이곳 연방 의회까지 영향력을 넓혀왔다”며 “특히 더 나은 기회를 위해 한국전쟁을 겪었던 많은 한인이 새로운 삶을 위해 미국에 와 고생한 것에 대해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고 전했다. 다음 날인 12일에는 미셸 박 스틸 의원(가주 45지구)이 한복을 입고 하원 회의장에서 한인의 날을 기념해 눈길을 끌었다.     스틸 의원은 “주민을 대표하는 한인 하원의원으로서 한인사회가 일궈온 성공적인 이민 역사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며 “앞으로도 미국의 성공을 위해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LA한인타운이 지역구인 지미 고메즈 하원의원(가주 34지구)은 “한인 이민사의 역사적인 날인 한인의 날을 축하하며, 동료 의원들과 함께 세대에 걸친 한인들의 열정과 노력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연방의회 인근에서는 12일 앤디 김 의원(뉴저지), 매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 주디 추(가주) 등 의원들이 참석한 한인의 날 축하 리셉션이 열렸다.     앤디 김 의원은 연설에서 “부모와 조부모님들의 용기와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에 있다”며 “앞으로의 120년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고 우리 모두 역할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동시에 브라이언 샤츠 연방 상원의원(하와이), 댄 설리번 연방 상원의원(알래스카) 등 한국연구모임 소속 의원들이 일제히 한인의 날과 이민 120주년을 축하 메시지를 냈다. 김치의 날 선포로 한인들에게 익숙한 캐롤린 멀로니(뉴욕) 연방 하원의원도 한인들의 노고를 위로한다고 전했다.   이들은 메시지에서 미국의 발전에 기여한 수많은 한인을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한미 우방 관계도 더욱 돈독해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고 덕담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오늘 오전 LA 시의회에서는 존 이 시의원 주최로 제임스 안 LA한인회장, 이병만 미주한인재단 LA회장, 김영완 총영사 등 주요 한인사회 인사들이 초대된 가운데 축하 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최인성 기자미국 아메리칸 아메리칸 드림 한인 이민사 한인 하원의원

2023-01-12

“120년 이민사 보존하는 역사 의식 중요” 장태한 UCR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

“지금까지 한인사회가 발전할 수 있던 건 희생과 고난을 감수한 이민 선조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노력을 돌아보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UC리버사이드(UCR) 산하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인 장태한(사진) 박사는 “초창기 이민 선조들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받았고 2등 시민 취급을 받았다”는 말로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를 설명했다.     장 박사는 “한인들이 주류사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건 2차 세계대전 당시 김영옥 대령을 포함해 1000여명의 한인 2세들이 미군에 입대해 미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운 후부터”라며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주 한인사는 여전히 한인들에게는 낯선 기록이다. 장 박사가 최초로 발견한 리버사이드 파차파 캠프에 대한 역사와 기록도 오히려 주류사회에서 더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부터 뉴욕, 뉴저지, 워싱턴DC, 시카고, 샌프란시스코를 순회하는 파차파 캠프 전시회 진행을 준비할 예정이라는 장 박사는 “한인들은 여전히 경제 중심의 실용적인 교육만 중시하고 있지만,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는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며 “120년을 맞은 한인사회가 이제는 이민 역사를 가르치는데 좀 더 관심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연화 기자이민사 보존 역사 의식 미주 한인사 이민 선조들

202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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