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2)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중국인 묘지 보존 열망에는
지워지는 이민사 위기 반영
텅 빈 차이나타운, 명성 무색
“역사 지키는 일 점점 어려워”
론 퍼 묘지의 ‘블록 14’ 보존〈본지 10월 30일자 A-1면〉 은 이민자의 발자취가 지워져선 안 된다는 아시안 커뮤니티의 열망에서 비롯했다. 근저에는 지워짐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포틀랜드 번사이드 스트리트와 4가 앞 차이나타운. 론 퍼 묘지에서 서쪽으로 불과 2마일 떨어진 곳이다. 높이 38피트의 거대한 중국식 게이트웨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차이나타운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추모 정원 건립의 기대감이 가득했던 ‘블록 14’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북적대야 할 주말임에도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색바랜 낡은 한자 간판들은 희미해진 차이나타운을 보여준다. 그 앞의 거리는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점령하고 있다. 입구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청동 사자상의 위엄이 무색하다.
대낮인데도 문을 연 식당은 찾아볼 수 없다. 영업 중단 표지와 자물쇠로 굳게 닫힌 업소뿐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한 낡은 건물 앞이다.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듯했다. 유리 벽면 너머로 한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물이 보인다.
유리 벽면에 가까이 눈을 대고 글을 읽었다. 우리 한인들의 이야기와 닮은 데가 있다. 1930년대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세탁소를 운영했던 유 이(You Yee) 가족의 이민사다.
한의사였던 남편(카이 영 웡)을 일찍 여의고 홀로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운 한 어머니의 일생이다. 고객이 수선을 요구한 부분 외에도 약해진 다른 솔기까지 꿰맬 정도로 근면하게 일했다는 내용도 있다.
글은 “이 건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중국계 이민자들의 인내와 이 사회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끝을 맺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메아리를 잃은 지 오래다. 오가는 이가 없으니, 보는 이도 없다.
이곳에는 오리건중국인통합자선협회(CCBA)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방 내무부가 국가 유적지로 지정한 건물이다. 1911년부터 이민자가 드나들었다.
CCBA 닐 리 회장은 “그만큼 이민 역사를 보존하는 것 역시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 자료를 이곳에 그대로 보관해두고 있으며 ‘블록 14’도 그러한 마음으로 지켜냈다”고 말했다.
빈 건물의 벽면은 마치 이민 역사의 전시장과 같다. 오리건주의 태동은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금광을 찾기 위한 ‘골드러시’에서 비롯됐다.
한 벽면에는 “1851년은 골드러시와 맞물려 중국인 100여명이 처음으로 도착한 해”라는 기록물이 내걸려 있다. 변발의 중국인 이민자가 포틀랜드 콜롬비아 강가에서 낚시하는 모습, 철도 위 노동자들,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이 표지에 등장한 1890년의 잡지 등 사진 자료도 여럿 보인다.
주정부 기관인 메트로의 한나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중국계 이민자들은 철도 부설 외에 도로와 강둑까지 건설했다”며 “그들의 노동력, 전문성, 추진력이 없었다면 오리건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선가 중국 전통 악기인 ‘얼후(erhu)’ 소리가 들려왔다. 가락이 흘러나온 곳은 작은 상점 크기의 포틀랜드 차이나타운 박물관이다.
유리창 너머로 중국인 노인 서너 명이 연주를 하고 있다. 얼후 소리가 텅 빈 이곳의 분위기와 맞물린다. 주름진 그들의 얼굴은 차이나타운의 오늘이다.
중국 수저우시와 포틀랜드시가 손잡고 지난 2000년에 개장한 ‘란 수(LanSu)’ 중국 정원이다. 정원 투어는 물론 차, 서예, 문학 등 중국 문화를 알리는 이벤트도 매일 열린다.
론 퍼 묘지의 ‘블록 14’ 보존은 절실함의 산물이다. 희미해진 차이나타운은 이를 더 부각한다.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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