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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닮은꼴 포틀랜드 르포] 판매세도 없던 도시가 노숙자 세금 징수

포틀랜드는 오리건주의 중심 도시다. 주 전체 인구(424만 명) 중 약 15%(63만 명)가 이곳에 몰려 산다. 원래는 ‘보스턴’이 도시명이 될 뻔했다. 1845년이었다. 도시를 세우기 전 두 개의 이름을 놓고 동전을 던져 결정된 게 포틀랜드다. 벽화 등 곳곳에서 흔히 보이는 유명 문구는 독특한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포틀랜드만의 개성은 이 한 문장에 응축돼있다.   ‘Keep Portland Weird (별난 포틀랜드를 그냥 두어라)’   포틀랜드의 오늘은 LA와 닮은 데가 많다. 도시는 신음하고 있다. 하나둘씩 사람이 떠나면서 생기가 없다. 그 자리는 노숙자가 메웠다. 지난달 21일 포틀랜드를 찾아갔다. LA에서 보던 광경이 그대로 펼쳐졌다.    10월의 포틀랜드는 우기로 접어드는 시기다.   도시를 동과 서로 가르는 윌라메트강의 브로드웨이 다리 위다. 포틀랜드 중심가인 올드타운으로 향하고 있다. 먹구름이 잔뜩 낀 이곳엔 비가 내린다. 저 멀리 다가오는 올드타운은 잿빛 색채가 짙다.   올드타운 내 유니언 스테이션 앞이다. 기차역에는 노숙자 텐트가 즐비하다. 포틀랜드도 LA와 마찬가지로 마리화나가 합법이다. 심지어 소량의 마약 소지도 가능하다.    마리화나 냄새는 차치하고 악취가 코를 찌른다. 주변 잔디밭은 사실상 화장실이다. 아랫도리를 벗은 채 아랑곳하지 않고 용변을 보는 노숙자도 눈에 띈다.   그들 사이로 걸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한 남성이 입에 뭔가를 물고 라이터로 ‘탁탁’ 불을 붙이고 있다. 비가 와서인지 불이 잘 안 붙는 모양이다.   가까이 가서 보니 담배는 아니다. 구깃구깃 접은 은박지에 뭔가를 말아 불을 붙이는 중이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눈이 풀린 남성은 어눌한 발음으로 연신 뭐라고 웅얼댄다.   “페티, 페티, 페티”.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의 은어(fetty)다.    김미경 사장은 이곳에서 부한마켓을 20년째 운영 중이다.   김 사장은 “포틀랜드시는 노숙자 세금을 떼가는데 오히려 상황은 더 안 좋아지고 있다”며 “1994년에 이곳에 왔는데 그렇게 아름다웠던 도시가 이토록 엉망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판매세도 안 걷는 포틀랜드는 노숙자 세금을 걷는다. 노숙자 지원 명목으로 지난 2021년부터 소득의 1%를 징수한다.   결과는 물음표다. 포틀랜드시가 소속된 멀트노마카운티 정부에 따르면 현재 노숙자 수는 6297명이다. 노숙자 세금을 걷는데도 전년(5228명) 대비 되레 20% 이상 늘었다.     사람도 줄고 있다. 센서스에 따르면 포틀랜드는 지난해 전국에서 인구 감소가 심한 도시 중 6번째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이곳의 주민들은 정치 지형을 바꾸지 않았다. 채도 높은 푸른색을 고집했다. 뚜렷한 정치색은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 자료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FEC 최근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4년 간(2018~2021) 포틀랜드 지역 민주당은 총 2651만7426달러가 기부금을 모았다. 반면 공화당은 525만652달러에 그쳤다. 선거가 열릴 때마다 양당의 득표 비율 역시 ‘6대 4’ 또는 ‘7대 3’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가 계속되면 외면하기 어렵다. ‘별난 포틀랜드를 그냥 두자’던 이곳은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차이나타운 게이트웨이가 있는 번사이드 스트리트와 4가 교차로다. 대형 벽화가 눈길을 끈다. 40피트에 달하는 빌딩 벽면에 참다못한 울분이 새겨져 있다. 문구는 선명하다.     ‘Billions spent, Problems worse (수십억 달러를 썼지만, 문제는 악화했다)’   이 벽화는 포틀랜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지난 2021년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해 출범한 단체 ‘포틀랜드의 사람들(People for Portland)’이 내건 벽화다.   이 단체는 벽화에서 두 명의 얼굴을 지목하고 있다. 멀트노마카운티의 검사장(마이크 슈미트)과 의장(제시카 베가 피더슨)이다. 노숙자 문제를 비롯한 보석금 없는 석방 추진, 범죄율 증가 등을 두고 지탄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다.   포틀랜드에서 34년째 사는 김영자(70)씨는 “특히 지난 2020년 ‘BLM’ 시위가 폭력적으로 번지면서 이곳에 수많은 상점이 큰 피해를 보았다”며 “이후 공권력에 대한 반감 때문에 경찰 인력까지 줄이면서 길거리에는 마약 하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이제는 정치가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올드타운을 걷는데 저 멀리 군중의 함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아우성이 치는 브로드웨이 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다. 약 1000여 명이 운집해 있다.     시위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갈망하는 팻말 외에 뜬금없이 성 소수자의 인권을 강조하는 팻말도 많다. 동성애자끼리 키스하는 퍼포먼스도 펼쳐진다. 트럼프를 향한 욕설이 적힌 팻말도 보인다.     다음날 같은 장소에서는 친이스라엘 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주최 측은 이날 “위협과 안전 문제로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대립과 갈등도 첨예하다.   포틀랜드는 LA와 닮은 데가 많다. 노숙자, 마약, 사법권 축소, 시위 등으로 얼룩져 있다. 윌라메트 강의 차가운 바람처럼 체감되는 현실이다. 오랜 시간 왼쪽으로만 기운 탓이다.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관련기사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3)] 공감대 있어야 이민역사 보존…한인사회도 숙제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2)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1) 지워질 뻔한 묫자리…굴곡의 땅 지켜낸 이민자포틀랜드 닮은꼴 포틀랜드 포틀랜드 지역 노숙자 세금

2023-11-01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3)] 공감대 있어야 이민역사 보존…한인사회도 숙제

희미해진 이민사의 흔적을 보존하는 일은 지난한 투쟁이다.   두 번이나 지워질 뻔했던 포틀랜드 론 퍼 묘지의 ‘블록 14’를 지켜낸 건 보존의 공감대가 다방면에 걸쳐 형성됐기에 가능했다.   포틀랜드에 뿌리내린 중국계 이민자들은 이미 그들의 언어를 잃은 지 오래다. 단, 정체성을 지키려는 의지는 그대로다. 이는 한인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계 혼혈로 4세대인 마커스 리(70·포틀랜드리패밀리협회) 이사는 “초기 이민자가 겪어야 했던 희생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는 “우리보다 먼저 온 이민자들이 많은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그들이 이룬 것을 누리고 있다”며 “공로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잊히기 때문에 그 기억을 살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 보존의 투쟁은 중국계만 홀로 나선 게 아니다. 묘지가 속한 버크먼 지역 주민들, 묘지 관리 봉사 단체인 ‘론 퍼 묘지의 친구들’, 정부 기관 등이 모두 역사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지했다.   묘지는 지역 사회의 역사다. 론 퍼 묘지도 포틀랜드를 세웠던 아사 러브조이, 오리건 정신병원을 개원해 정신 질환자를 돌봤던 제임스 호손 박사 등 유명인의 무덤이 많다.    블록 14에 묻혔던 2892명의 중국계 이민자 역시 이들과 함께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블록 14’만 없애는 것은 이민자를 미국 역사에서 배제하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2004년 멀트노마 카운티가 블록 14 개발 계획을 발표했을 당시에도 중국 커뮤니티가 아닌 지역 주민들이 먼저 움직였다.   정부 기관인 메트로의 한나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그때 지역 주민들도 블록 14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개발을 반대했었다”며 “반대 여론보다는 오히려 블록 14를 추모 공간으로 만드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좌절감을 느낀 사람이 많았다"고 전했다.   개발은 막았지만, 추모 정원 추진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자금이 없었다. 중국계 커뮤니티는 자체적으로 기금을 모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중국계미국인시민연합(CACA) 헬렌 잉 회장은 “선출직은 임기가 있어 정치인이 바뀔 때마다 그들이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그래서 우리는 공무원을 계속 만났고 설득하며 교육했다”고 말했다.   결국 2019년 유권자들은 공원 및 자연 보존을 위해 4억7500만 달러의 채권 발행을 승인하면서 추모 정원 설립이 가시화됐다. 개발을 막은 후 15년의 세월이 흘러 맺은 결실이었다.   메트로는 추모 정원 조성이 시작되자마자 역사 조사 기관(Dudek)부터 고용했다. 블록 14의 역사를 재정리하기 위해서다.    당초 블록 14에 묻힌 중국인이 1113명이 아닌 2892명이었다는 점, 과거 철도 회사가 블록 14의 소유주라는 것은 잘못 알려진 역사라는 점 등을 밝혀냈다.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곧 블록 14의 역사적 사실을 담은 보고서가 나올 것”이라며 “연구팀이 매장 기록을 모두 검토하고 오래된 중국어 필체 기록을 해석하고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추모 정원 조성의 기대는 중국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포틀랜드 주민 모두가 염원하는 프로젝트가 됐다. 블록 14에서는 지난해부터 무덤 청소를 위한 중국 청명절 행사도 진행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함께 나서 묘지를 가꾼다.   추모 정원 디자인을 맡은 넛 스튜디오(Knot Studio)의 마이클 연 대표는 중국계 혼혈이다. 그는 “디자인에 이민 역사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했다.   연 대표는 “우리 할머니의 경우 상하이를 떠날 때 다시는 형제자매를 못 볼 거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민자가 살던 땅을 떠날 때 그리고 동시에 반대편 나라에서 경험하는 정신적 외상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늘졌던 곳에 볕이 들자 지워진 역사가 다시 싹트고 있다.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관련기사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2)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1) 지워질 뻔한 묫자리…굴곡의 땅 지켜낸 이민자포틀랜드 역사 보존 초기 이민자 역사 재정리

2023-10-31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2)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흔적은 오랜 세월을 내포한다. 역사는 흔적 너머의 사실이다.     론 퍼 묘지의 ‘블록 14’ 보존〈본지 10월 30일자 A-1면〉 은 이민자의 발자취가 지워져선 안 된다는 아시안 커뮤니티의 열망에서 비롯했다. 근저에는 지워짐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 21일 오후 2시, 포틀랜드 번사이드 스트리트와 4가 앞 차이나타운. 론 퍼 묘지에서 서쪽으로 불과 2마일 떨어진 곳이다. 높이 38피트의 거대한 중국식 게이트웨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차이나타운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추모 정원 건립의 기대감이 가득했던 ‘블록 14’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북적대야 할 주말임에도 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차이나타운 내 3가와 카우치 스트리트에서 올드타운 그로서리 델리를 운영하는 김영자씨는 이곳에서 20년째 가족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이 포틀랜드에서 가장 번화가였다고 한다. 관광객도 많았고 주말이면 각종 이벤트가 펼쳐졌던 지역이었다. 김씨는 “지금은 차이나타운이라 불리는 게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이 없다”고 말했다.     색바랜 낡은 한자 간판들은 희미해진 차이나타운을 보여준다. 그 앞의 거리는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점령하고 있다. 입구에 묵직하게 자리잡은 청동 사자상의 위엄이 무색하다.   포틀랜드리패밀리협회마커스 리(70) 이사는 “지금 차이나타운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며 “중국인 이민자들은 중국의 흔적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낮인데도 문을 연 식당은 찾아볼 수 없다. 영업 중단 표지와 자물쇠로 굳게 닫힌 업소뿐이다.   3가에서 미니마트를 운영 중인 중국계 쑤 슈 사장은 “건너편 중국 식당 몇 곳만 빼고 모두 이곳을 떠났다”며 “이런 현상이 10여년 전부터 본격화됐는데 차이나타운의 옛 모습이 사라지면서 대신 노숙자가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차이나타운 복판을 향해 걸었다. 사람은 드물고, 이민자의 흔적만 곳곳에 남아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한 낡은 건물 앞이다. 더는 사람이 살지 않는 듯했다. 유리 벽면 너머로 한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물이 보인다.     유리 벽면에 가까이 눈을 대고 글을 읽었다. 우리 한인들의 이야기와 닮은 데가 있다. 1930년대부터 이곳에 자리 잡고 세탁소를 운영했던 유 이(You Yee) 가족의 이민사다.     한의사였던 남편(카이 영 웡)을 일찍 여의고 홀로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운 한 어머니의 일생이다. 고객이 수선을 요구한 부분 외에도 약해진 다른 솔기까지 꿰맬 정도로 근면하게 일했다는 내용도 있다.   글은 “이 건물은 여러 세대에 걸쳐 중국계 이민자들의 인내와 이 사회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끝을 맺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메아리를 잃은 지 오래다. 오가는 이가 없으니, 보는 이도 없다.     이곳에는 오리건중국인통합자선협회(CCBA)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연방 내무부가 국가 유적지로 지정한 건물이다. 1911년부터 이민자가 드나들었다.   이젠 중국계 이민자들도 예전처럼 차이나타운에 몰려 살지 않는다. 이곳저곳으로 점점 흩어지는 추세다.     CCBA 닐 리 회장은 “그만큼 이민 역사를 보존하는 것 역시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 자료를 이곳에 그대로 보관해두고 있으며 ‘블록 14’도 그러한 마음으로 지켜냈다”고 말했다.   빈 건물의 벽면은 마치 이민 역사의 전시장과 같다. 오리건주의 태동은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금광을 찾기 위한 ‘골드러시’에서 비롯됐다.   한 벽면에는 “1851년은 골드러시와 맞물려 중국인 100여명이 처음으로 도착한 해”라는 기록물이 내걸려 있다. 변발의 중국인 이민자가 포틀랜드 콜롬비아 강가에서 낚시하는 모습, 철도 위 노동자들, 중국 전통 의상을 입은 남성이 표지에 등장한 1890년의 잡지 등 사진 자료도 여럿 보인다.     주정부 기관인 메트로의 한나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중국계 이민자들은 철도 부설 외에 도로와 강둑까지 건설했다”며 “그들의 노동력, 전문성, 추진력이 없었다면 오리건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디선가 중국 전통 악기인 ‘얼후(erhu)’ 소리가 들려왔다. 가락이 흘러나온 곳은 작은 상점 크기의 포틀랜드 차이나타운 박물관이다.    유리창 너머로 중국인 노인 서너 명이 연주를 하고 있다. 얼후 소리가 텅 빈 이곳의 분위기와 맞물린다. 주름진 그들의 얼굴은 차이나타운의 오늘이다.   시들어가는 이곳엔 아름다운 정원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수저우시와 포틀랜드시가 손잡고 지난 2000년에 개장한 ‘란 수(LanSu)’ 중국 정원이다. 정원 투어는 물론 차, 서예, 문학 등 중국 문화를 알리는 이벤트도 매일 열린다.   중국계미국인시민연합(CACA) 헬렌 잉 회장은 “우리는 계속해서 이민 역사를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 각종 표식과 구조물 등을 남기고 있다”며 “란 수 정원 인근 부지에 중국 문화 유산센터도 짓는 중”이라고 말했다.   론 퍼 묘지의 ‘블록 14’ 보존은 절실함의 산물이다. 희미해진 차이나타운은 이를 더 부각한다.    관련기사 지워질 뻔한 묫자리…굴곡의 땅 지켜낸 이민자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jang.yeol@koreadaily.com포틀랜드 이민사 포틀랜드 차이나타운 이민사 전시장 포틀랜드 콜롬비아

2023-10-30

모퉁이로 내밀린 아시안(1) 지워질 뻔한 묫자리…굴곡의 땅 지켜낸 이민자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묘지는 삶이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이다. 묘비는 이야기다. 인생을 함축한 흔적이다. 후세는 거기에서 앞서간 이들을 기린다. 이 당연한 일이 아시안에겐 사치였다. 이방인으로 여겨진 이민자는 죽어서도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는 아시아계 이민자의 그늘진 역사가 있다. 서러운 망자들의 이야기가 영원히 지워질 뻔했던 곳이다.     포틀랜드의 하늘은 푸른색을 잃었다. 땅은 부슬비로 젖고 있다. 파란 풀 내음만 도드라진다.   21일 오전 10시, 포틀랜드의 론 퍼(Lone Fir) 묘지다. 1855년 조성된 이곳(약 30에이커)엔 2만 명 이상이 잠들어 있다. 진녹색 이끼가 묘비에 새겨진 이름마저 가렸다. 육중한 시간의 무게를 품은 공간이다.   빈 땅이 시야에 들어왔다. 가득한 잿빛 묘비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가까이 가니 손바닥 두 개 크기 정도의 돌 표식(사진)이 땅의 존재를 알린다. 'Block 14'.     돌 표식은 무성한 잡초 사이에 박혀 있다. 무릎을 꿇고 봐야 할 정도다. 표지판이 뒤에 세워져 있다.     '이곳은 버려진 땅이 아닙니다. (This is not an empty field)'     현재 론 퍼 묘지의 땅은 오리건주 정부 기관인 메트로(Metro) 소유다.   메트로의 한나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한때 이곳은 한자가 새겨진 묘비석으로 붐볐던 구역"이라고 소개했다.     한자는 곧 중국계를 가리킨다. 그는 이어 "14구역은 1867년부터 1927년까지 오리건주에서 철도 노동, 통조림 공장, 광산, 농장 등에서 일했던 중국계 이민자 2892명이 묻혔던 장소"라고 말했다.   철조망 너머는 찻길이다. 모리슨 스트리트와 20가 교차로에 있는 14구역(약 1에이커)은 론 퍼 묘지에서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다. 가장 구석진 자리다.   오전 11시, 고요했던 이곳에 하나둘씩 주민이 몰려들었다.   메트로가 오리건중국인통합자선협회(CCBA), 중국계미국인시민연합(CACA) 등과 함께 진행하는 공청회에 온 이들이다.   이곳에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추모 정원이 조성된다. 공청회는 정원 디자인 두 개를 놓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19년 유권자들이 채권 발행을 승인하면서 메트로가 400만 달러를 투입,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14구역은 굴곡의 땅이다. 1948년이었다. 론 퍼 묘지를 소유했던 멀트노마 카운티 정부가 구획 변경을 위해 CCBA에 유해 발굴을 요청한 뒤 땅을 갈아엎었다. 당시 256구의 유해가 발굴됐다.     카운티 정부는 더는 유해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 위로 정부 건물(모리슨 빌딩.1953년 완공)과 주차장이 들어섰다. 14구역은 건물이 철거(2005년)되기까지 무려 50년 이상 콘크리트로 덮여 있었다.     카운티 정부는 지난 1997년 14구역 부지만 제외하고 묘지 소유권을 메트로에 넘겼다. 이어 2004년에 이곳에 있던 정부 건물을 허물고 콘도 단지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엔 중국인 커뮤니티가 가만있지 않았다.   포틀랜드리패밀리협회 마커스 리(70) 이사는 중국계 혼혈로 4세대 이민자다. 추모 정원은 중국계 커뮤니티의 숙원이었다. 이민 선조의 역사를 보존하려는 열망이었다.   그는 "중국인 커뮤니티가 모두 나서 '유골이 남아 있을 수 있다'며 부지 개발을 강력히 반대했다"고 말했다. 역사가 두 번이나 지워지는 것을 바라만 볼 수 없었다. 땅을 지켜내야 했다.   포틀랜드 지역 CCBA는 설립(1890년) 때부터 중국인 이민자들의 매장을 도왔다. 전통 관습에 따라 유해를 상자에 담아 고국에 보내는 일도 했다. 14구역에 아직도 유해가 남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건 기록뿐이다.     CCBA 닐 리 회장은 "포틀랜드엔 1800~1900년대 서부에서 두 번째로 큰 중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었다"며 "우리 단체는 역사적으로 장례를 도왔기 때문에 이곳에 묻혔던 중국인 이민자들의 목록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카운티 정부는 반발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지난 2005년 1월 자체적으로 전문가들을 섭외해 고고학 분석을 진행했다. 중국계 커뮤니티의 주장이 결국 옳았다. 한자가 새겨진 도자기 및 묘비 조각 등 유물은 물론이고, 더는 없을 것이라던 유해까지 발견됐다.   CACA 헬렌 잉 회장은 "그때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유해가 나왔다"며 "이는 14구역 개발이 중단돼야 한다는 점을 모두에게 확인시켰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이곳은 개발이 아닌 보존 돼야 할 땅이 됐다. 카운티 정부는 즉각 개발 계획을 중단했다. 14구역의 소유권도 메트로에 넘겼다. 2007년의 일이다.     에릭슨 마케팅 담당자는 "14구역 이야기는 미국 역사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그들의 공헌이 지워지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추모 정원 프로젝트는 어쩌면 역사가 지워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지역 정치인과 주민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메모지에 주민들이 손수 세세하게 적은 의견들을 살펴봤다.     알로(Arlo)라는 다섯 살짜리 아이는 작은 손으로 이렇게 썼다.     '뭔가 아이들도 놀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어요.'     아시안의 묫자리는 가장자리였다. 그렇다고 삶까지 모퉁이는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 역시 존중받아야 할 미국의 역사다. 관련기사 보는 이 없는 기록물…낡은 벽이 이민사 전시장   포틀랜드=장열 기자ㆍ사진 김상진 기자  jang.yeol@koreadaily.com  이민자 포틀랜드 오리건주 포틀랜드 아시아계 이민자

2023-10-29

포틀랜드…소박한 일상의 행복을 만나다

자연친화적이며 느리게 사는 삶을 일컽는 '킨포크(Kinfolk) 라이프 스타일'이 태동한 포틀랜드는 지금  미 전국에서 가장 힙한 도시다. 스산한 가을 햇볕을 닮은 코펜하겐과 런던 그 경계 어디쯤 위치한 이 도시만의 특별한 분위기와 감성은 여행자들에게 특별한 울림과 영감을 건넨다. 그래서 이 특별한 킨포크 감성을 만나고자 전세계 여행객들이 포틀랜드를 찾는다.     ▶언제 가면 좋을까   포틀랜드는 연중 LA 보다 훨씬 선선하다. 특히 9월과 10월 초까지는 쾌적한 초가을 날씨가 이어져 여행하기 가장 좋은 때다. 그러나 10월 중순부터는 우기가 시작돼 예측할 수 없는 날씨가 봄까지 이어지므로 10월 초 전에 여행을 가는 것이 좋다. 포틀랜드 9월 평균 기온은 최저 53도에서 최고 76도를 넘지 않는다.     ▶가기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   포틀랜드는 최근 미식의 도시로 급부상 중이다. 특히 전통적으로는 맥주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엔 커피 로스터 수가 맥주 양조장 수를 앞지를 만큼 훌륭한 커피맛으로 무장한 커피숍들이 즐비하다. 현재 이 작은 도시의 커피 로스터 수는 80여곳이 넘는다. 또 와이너리 투어도 빼놓을 수 없는데 포틀랜드 남쪽 윌라메트 밸리(Willamette Valley)에는 80여개의 와이너리가 몰려있다. 또 오리건 주는 알래스카, 델라웨어, 몬타나, 뉴햄프셔 주와 함께 판매세를 부과하지 않는 5개 주중 하나다.     ▶뭘하며 놀까   이 아름다운 도시를 둘러보는데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훨씬 더 유용하다. 바이크 타운으로 알려진 포틀랜드에서는 자전거 공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마일당 요금을 지불하면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만약 전문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자전거 투어 전문업체인 페달 바이크 투어(pedalbiketours.com)나 포틀랜드 바이시클 투어(portlandbicycletours.com)를 이용하면 시티 투어부터 양조장, 식당과 푸드트럭 같은 맛집 투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49달러부터 시작한다. 또 이 업체들에서는 자전거 대여도 가능한데 이용료는 1일 26달러. 예약은 웹사이트에서 할 수 있다.     포틀랜드 감성을 제대로 느껴보려면 세계에서 가장 큰 독립서점으로 알려진 파월스 시티오브북스(Powell's City of Books)에 들러보자. 이곳은 새책은 물론 중고책과 희귀본 등 100만권 이상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의 인기 코너는 에스프레소 북머신(Espresso Book Machine)인데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동안 개인 책 출판이 가능한 기계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멀트노마 위스키 라이브러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아이슬란드 버번셰리(bourbon sherry), 스모키 와하카 에스파딘 메즈칼(smoky wahaka espadin mezcal), 볼스테드 보드카(Volstead vodka) 등 흔히 볼 수 없는 증류주를 포함해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위스키 2000여종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위스키 애호가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또 웨스트 힐스에 위치한 프랑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피톡 맨션(Pittock Mansion)도 가볼만하다. 내부에 위치한 맨션 박물관도 좋지만 맨션 앞 잔디밭에 앉아 커피 한 잔 들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어디서 먹을까   최근 포틀랜드는 미식의 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파인 다이닝은 물론 유기농 전문 식당, 비건 푸드, 푸드트럭, 커피숍에 이르기까지 외식산업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도시로 전세계 식도락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일단 도넛 시식을 빼놓을 수 없다.     부두 도넛(voodoodoughnut.com)은 인스타 감성 듬뿍 담긴 도넛 가게로 사랑받고 있는데 특히 사람 머리 크기 만한 대왕 도넛이 베스트 셀러. 또 포틀랜드에 왔다면 푸드트럭도 빼놓을 수 없다. 고급 이탈리안 다이닝을 푸드트럭으로 가져와 대박을 친 검바(gumba-pdx.com)는 파스타 애호가라면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또 여행 중 한식이 그리울 때 김종 그릴(Kim JongGrillin)에 들려보길. 불고기, 갈비,제육볶음 등 메인 메뉴에 밥과 반찬, 달걀 프라이를 한 박스에 담아주는 '비빔 박스' 메뉴로 히트를 쳤다.   또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 출신 셰프가 운영하는 버거 스티븐슨(burgerstevens.com)에서는 치즈 버거를 먹어보자. 블랙 앵거스 소고기와 아메리칸 치즈, 프란츠 빵에 셰프 특제 소스가 곁들여진 이 치즈 버거는 포틀랜드는 대표하는 명물 버거로 자리잡았다.  이주현 객원기자포틀랜드 행복 포틀랜드 바이시클 포틀랜드 남쪽 정보 포틀랜드

2023-09-07

이민 애환 깃든 '포틀랜드 첫 한인교회' 철거

포틀랜드 한인사회 이민 1세대의 역사와 추억이 깃든 유서 깊은 교회가 철거돼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최근 지역매체 오리거니아는 포틀랜드 도심에서 지은 지 117년 된 교회가 방화로 불에 타 철거됐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교회 철거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인사회 이민 1세대와 자녀들, 한인 입양인과 그 가족들이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이 교회는 1905년 독일 이민자들이 세운 교회였다. 특히 1978년부터 2010년까지 32년 동안은 ‘포틀랜드 한인교회(Portland Korean Church)’였다.   1970년대 포틀랜드 한인 1세대는 이민자가 늘자 돈을 모아 이 교회 건물을 매입했다. 지역 최초의 한인교회였다. 이후 30년 넘는 세월 동안 한인 역사, 문화, 음식을 나누며 민족 정체성 계승을 돕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한인 1세대는 이 교회가 이민 초기 정착 서러움과 힘겨움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안식처였다고 회상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이 교회를 다녔다는 김태선씨는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일주일에 단 몇 시간 동안이라도 우리의 정서를 나눌 수 있었던 유일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한인 교인들은 당시 포틀랜드 등 오리건 지역사회에서 아시안, 특히 한인에 대한 인식은 저조했다고 말한다. 백인과 흑인이 주류인 문화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한인 이민자의 삶과 애환을 나누며 자신의 뿌리를 기억하도록 독려한 곳도 교회였던 셈이다.   또한 1980~1990년대를 거치며 포틀랜드 한인교회는 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이민 1세대가 자녀를 낳았고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한인도 늘었다. 이 교회는 자연스레 한인 2세와 입양아의 유년시절 놀이터가 됐다.   김씨는 “아이들은 정규 학교에 가도 아시안 아메리칸을 위한 롤모델은 찾기 어려웠다”며 “하지만 한인 2세들은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교회에 나와 자신과 같은 배경의 친구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한인끼리 어울리고 성장하면서 큰 변화를 이끌었다”고 전했다.     포틀랜드 한인교회 설립자(김관규-김승규 형제)의 자녀이자 조카인 티모시 김씨도 “교회가 신앙을 위한 곳이기도 했지만, 한인들이 서로 모여 이민생활의 경험 등을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누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포틀랜드 한인 입양 가정도 이 교회를 ‘오아시스’처럼 여겼다고 한다. 한국어는 물론 한국 문화도 모르던 영어권 양부모는 한인 입양아를 위해 이 교회를 찾았다. 한인들은 입양아와 양부모를 따뜻하게 맞아줬고, 입양아가 자라면서 본인의 뿌리를 기억하게 했다. 포틀랜드 한인교회는 2세와 입양아가 늘자 예배도 한국어와 영어로 제공했다고 한다.   한편 포틀랜드 한인교회는 다른 한인사회처럼 부침을 겪었다. 1997년 교인 상당수가 영락장로교회를 설립해 이탈했다. 2015년에는 이번에 철거된 포틀랜드 도심 교회마저 팔렸다. 이후 방치된 교회는 27세 용의자의 방화로 소실, 건립 117년 만인 지난 6일 철거됐다. 김형재 기자포틀랜드 한인교회 포틀랜드 한인교회 포틀랜드 한인사회 한인사회 이민

2023-01-19

오리건주 최초 한인교회 건물 전소…방화로 118년 만에 철거

오리건주 최초의 한인교회로 사용된 건물에 화재가 발생, 철거가 결정됐다. 교계와 한인사회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포틀랜드 사우스웨스트 10가와 클레이 스트리트에 위치한 구 포틀랜드 영락교회에서 불이 난 것은 지난 3일 오후 5시 30분쯤으로 80여명의 소방대원이 출동해 1시간 만에 진화했다.     1905년 건축된 이 건물은 3층 3000스퀘어피트 규모로 1978년 이후 포틀랜드 영락교회와 포틀랜드 한인교회 성전으로 사용됐다.   그러던 2015년 지역 치과의사에게 매각된 뒤 빈 상태로 방치됐고 지난 2020년 9월에 첫 불이 난 뒤 시 정부로부터 출입하기 위험한 건물로 지정된 상태였다.   이날 화재는 방화로 알려졌다. 경찰은 27세 용의자를 붙잡아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그러나 인근 업소 관계자들은 “홈리스들이 들락거리며 위험하게 방치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이날 불로 인명피해는 없었고 주변 건물로 번지지도 않았지만 4일 이뤄진 안전점검에서 철거 승인이 내려졌다. 시 당국은 교회 건물에 대한 철거를 5일부터 시작했으며 철거 기간 중 주변 교통통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한인언론 ‘시애틀엔’은 교계와 한인사회가 비통함에 빠졌다고 전했다. 구 포틀랜드 영락교회 초창기에 출석했던 음호영 장로는 “오리건 최초의 이민교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돼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류정일 기자오리건주 한인교회 포틀랜드 한인교회 건물 전소 포틀랜드 영락교회

2023-01-05

아들 잃은 김치 엄마, 다시 뛴다…포틀랜드 '최가네 김치' 최종숙씨

"미국에서 '최가네 김치'(Choi's Kimchi)가 김치의 대명사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뛸 것입니다."   포틀랜드주를 기반으로 오리건주 등 미국 각지에 김치를 유통하는 '최가네 김치' 창업자 최종숙(67) 씨의 포부다. 최 씨는 2011년 오리건대를 졸업한 아들 매슈 최와 함께 집에서 직접 담근 김치를 포틀랜드 파머스 마켓에 판매하면서 '최가네 김치'를 시작했다.   최 씨 모자가 만든 김치는 포틀랜드 전역 식당이나 식료품점 진열대에 오르며 현지 주요식품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미국 전역 100여 개 매장에 납품될 정도로 성장했다.   청경채 김치, 깍두기, 백김치, 양배추김치, 매운 배추김치 등 6종류의 김치는 아마존에서도 판매된다. 백김치는 2016년 미국 '굿 푸드 어워즈'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최 씨는 그러나 2020년 10월 25일 공동창업자인 아들 매슈(당시 33세)가 아파트에 침입한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현지 주류 언론들도 이 사건을 크게 다뤘다. 일간지 오리거니언은 2020년 연말 '올해 세상을 떠난 히어로'에 매슈를 선정해 소개하기도 했다.   최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한동안 사업에 전념하지 못했지만 범인이 무기징역형을 받는 걸 보고 다시 기운을 내서 사업에 열중하기로 했다"며 "곁에 없는 아들 몫까지 더해 두 배로 뛰겠다"고 말했다.   43년 전 미국에 이민온 '서울 토박이' 최 씨는 김치 사업 확장을 위해 최근 한국을 찾았다. 국내 김치 생산 공장 등을 돌아보면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K-드라마와 영화 등의 인기에 힘입어 김치가 더욱 알려지면서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해 버지니아주 등 6개주에서 '김치의 날'(11월 22일)을 선포했다. 김치는 건강한 발효음식으로 소개된다.   최 씨는 "연방의회에서도 '김치의 날'이 선포된다면 김치 판매가 날개를 달 것"이라면서 "미국 젊은이들의 입맛을 공략하는 김치도 생산해 차별화하겠다"고 말했다.   최가네 김치는 현재 월평균 4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처음에는 젓갈을 사용했지만, 미국 젊은이들이 냄새에 민감해 지금은 젓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 시원하고 맛있다"고 그는 자랑했다.   포틀랜드의 유명잡지 'KINFOLK'와 영국 BBC 방송 등에도 최가네 김치가 소개됐다고 한다. 이에 힘입어 2년 전 쉐이크쉑(shake shack) 버거에 들어가는 김치를 납품했다가 공급 물량이 달려 지속하지는 못했으나, 내년부터 다시 제공하기로 했다.   그는 "김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자동화 시설의 확충이 시급하다"고 전망했다.   김치 판매와 함께 간간이 고추장과 양념 소스를 만들어 마켓에 내놨던 그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한식을 판매할 계획도 세웠다. 잡채, 불고기, 떡볶이 등을 만들어 마켓에 납품할 예정이다.   그는 처음 사업 발판이 됐던 파머스 마켓에 애정이 많다. 세상을 떠난 아들도 그 시장에 애착이 컸던 만큼 앞으로 어려운 농부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아들이 피습된 이후 주변에서 모금 운동을 펼쳤고, 5만 달러가 모였다. 최씨는 이 기금을 종자돈으로 '매슈최 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   그는 정기적으로 이 재단에 수익금의 일부를 기금으로 낸다. 기금은 어려운 농부와 젊은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는 데 쓸 예정이다.   최 씨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잠시 주춤했지만, 이제 더 열심히 미국에 김치를 알리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전했다.김치 포틀랜드 최가네 김치 백김치 양배추김치 김치 판매가

202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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