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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고 민병수 변호사의 미완성 프로젝트

장연화 사회부 부국장

장연화 사회부 부국장

고 민병수 변호사에 대한 첫 기억은 묘지가 시작이다. LA한인타운 인근 워싱턴 불러바드에 있는 ‘안젤루스 로즈데일 묘지’가 기억의 장소다.
 
민 변호사는 매주 토요일이면 몇몇 젊은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한인 이민 선조들이 묻혀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미주한인재단이라는 이름의 비영리재단을 세우고 ‘미주 한인의 날’ 제정에 성공한 민 변호사가 생각해 낸 또 다른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민 변호사와 함께 한 일행들은 그가 늘 ‘친구’라고 부르던 한인 1.5세와 2세 젊은이들이었다.  당시 LA통합교육구에서 커뮤니티 담당관으로 일하던 홍연아씨와 알렉스·마가렛 차 변호사 부부, 베렌도중학교 수학교사였던 존 공, 윌튼플레이스 초등학교 교사였던 린지 이, 그 외에 애나 정, 안드레아 나, 토니 등이다.  
 
토요일 아침 눈 뜨자마자 달려오는 ‘친구’들의 빈 속을 위해 민 변호사는 늘 삶은 달걀과 구운 고구마 등을 챙겨왔다. 그리고 정오가 될 때까지 함께 쭈그려 앉아 묘비명을 확인하고 한인 이름을 찾으면 위치를 기록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들은 그렇게 일제 강점기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동지회의 이순기씨와 김영옥 대령 부모의 묘지 등을 찾아냈다. 이순기씨는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인 새미 리 박사와 한인 첫 여성 교육자인 메리 손 여사의 부친이기도 하다.  또 그동안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한인 독립유공자들의 묘비를 발견해 그들의 유해가 한국 현충원으로 옮겨지는 길을 마련했다.
 
민 변호사가 로즈데일 묘지에 그렇게 공을 들인 건 그곳에 묻혀 있는 한인 선조들 때문이다. 민 변호사는 늘 이민 초창기 인종차별로 인해 죽어서도 갈 곳이 없던 한인들을 유일하게 받아주던 로즈데일에 있는 한인 선조들을 후손들이 기억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하곤 했다.
 
대한인국민회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곳에는 280여 명의 한인 선조들이 잠들어있다. 앞에 언급된 인물들 외에 재미한인사약 상·중의 저자 노재연, 강익두, 김관유, 김중수 목사, 마춘봉, 박리근, 윌리 송, 멕시코에 이민을 갔다가 미국으로 온 후 100세 장수를 누린 선우 로사, 임준기 목사 등이 있다.
 
민 변호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민 선조들의 이야기를 가능한 자세히 남기려 애를 썼다. 그는 종종 “이야기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한인 선조들의 이야기가 곧 한인 이민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120년을 맞은 한인 이민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곧 한인이 대통령이 되는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걸 누가 상상했겠는가. 1세들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다. 한인 후손도 반드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는 그 날을 보지 못하지만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인 선조들이 묻힌 위치를 기록한 묘지 지도를 남기는 이 프로젝트는 간단한 것 같았지만 끝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 넓은 곳에 묻혀 있는 한인의 이름을 일일이 확인해야 하는 작업이었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주말마다 묘지에 가서 말 그대로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해야 하는 탓에 1세들의 참여는 미미했다. 그런데도 민 변호사는 암 수술을 받기 전까지 꾸준히 혼자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민 변호사가 고인이 되면서 이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게 됐다.  
 
지난 1일 별세한 민 변호사의 추모예배가 남가주새누리교회에서 지난 10일 진행됐다. 유족과 친지를 제외하면 한인 조문객은 100여 명 남짓에 불과했다.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항상 앞장서 봉사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의 업적과 공로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큰 이별이었다.  
 
그의 희망과 비전이 실현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민 변호사는 떠났지만 그의 바람대로 한인 사회가 우리의 역사를 기억 속에서 잊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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