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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액션] 40주년 40주간 모금 캠페인

1995년 밸런타인스 데이, 맨해튼에서 장미꽃을 팔았다. 딱 한 송이를 팔고 경찰에게 붙잡혔다. 불법 노점인 까닭이다. 하루 종일 갇혀 있다가 법원 출두 날짜를 받고 풀려났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에게 체포 소식을 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수 십여명이 잡히지 않고 곳곳을 누비며 꽃을 팔았다. 그 뒤 법원에서 판사에게 비영리단체 기금 마련을 위해 꽃을 팔았다고 했더니 다음에는 꼭 허가를 받으라며 그냥 보내줬다.   연말에는 기부받은 장난감을 길에서 팔았다. 이 또한 불법 노점이다. 다행히 카트를 밀고 다니며 멕시칸 음식을 파는 여성이 주변에 있었다. 그분만 잘 쳐다보고 있으면 걱정이 없었다. 경찰이 가까이 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담요로 음식을 덮었다. 그 순간 우리도 장난감을 숨겼다. 그렇게 하루 종일 팔던 중 막판에 한 고객이 100달러 지폐를 내밀었다. 90여 달러 거스름돈을 주고 장을 접었다. 그런데 돌아와 살펴보니 가짜 돈이었다. 하루 종일 고생한 봉사자들이 가여워 울고 싶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팔았다. 다행히 뉴욕시는 트리 판매를 단속하지 않았다. 후원자가 나무를 싼 가격에 사서 보내줬다. 일 년 중 가장 큰 기금을 마련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문제는 나무를 보관할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외투를 두툼하게 입고 차에서 잠을 자며 나무를 지켰다.   여름 주말에는 마당에서 기부받은 헌 옷을 팔았다. 옷 한 벌이 1달러였는데 그마저도 깎겠다는 주민들이 많았다. 한 주민은 바지를 50센트에 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했다. 그날 서너 번 계속 찾아와서 50센트를 고집했다. 결국 해가 질 때 남은 옷을 챙기고 있으니 또 와서 50센트를 불렀다. 쿼터 두 개를 받고 옷을 내줬다.   창피한 것도 같고, 좀 쑥스러운 민권센터의 옛날 기금 마련 이야기다. 1984년 설립 이래 1997년까지 민권센터는 그렇게 버텼다. 유급 직원도 없었고 모두 가난한 자원봉사자였다. 길에서 행사 전단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후배가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사 줄 돈이 없었다. 너무 미안했다. 그때 잡지에 칼럼을 쓰고 월 300달러를 벌면서 민권센터에서 풀타임 무보수로 일할 때였다. 다음 주에 원고료가 오니까 그때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는 잊어버려 사주지도 못했다.   그렇게 배를 곪아가며 기금을 마련해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저소득층 복지 혜택 신청 대행 서비스를 했다. 우리가 돕는 분들보다 우리가 더 가난했다. 그랬던 민권센터가 이제는 30명에 가까운 유급 직원이 있고, 뉴욕과 뉴저지 두 곳에 사무실을 두고 해마다 수만 여명을 돕는다. 지난해 무료 세금 보고 858명, 이민 법률 서비스 684명, 주택 법률 서비스 224명, 건강보험 신청 220명 그리고 1만1500여 명에게 식량 지원을 했다. 1만3813 가정이 민권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40주년을 맞은 민권센터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40주년 기념, 40주간, 40만 달러 모금 캠페인을 펼친다. 모인 기금은 한인사회를 위해 펼치는 이민자 권익, 정치력 신장, 사회봉사, 청소년 교육, 문화 활동에 알차게 쓰인다. 민권센터는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있다. 모든 지원금은 한 푼도 헛되지 않게, 값지게 쓰일 것을 약속한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캠페인 무료 법률상담 비영리단체 기금 옛날 기금

2024-03-21

할머니 입맛 간식, 타인종도 사로잡았다

한국에서 열풍이 불고 있는 ‘할매니얼’ 트렌드가 미국에도 상륙했다. 한인은 물론 타인종 젊은층에서 한국 전통 간식의 인기가 뜨겁다.     약과를 시작으로 쑥떡, 흑임자, 호두과자, 차, 옛날 과자 등을 찾는 젊은층이 크게 늘고 있다.   ‘할매니얼’은 할머니의 사투리인 ‘할매’와 ‘밀레니얼’의 합성어로, 할머니 세대의 취향에 열광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의미한다. 할매니얼 열풍에 발맞춰 LA한인타운에서도 할매니얼을 타깃으로 한 카페는 물론 빙수 전문점, 빵집, 떡집, 한인마켓 등에서 옛날 먹거리의 판매가 호조를 보인다.   한국 전통간식과 차를 판매 중인 다모는 점심시간과 주말에는 줄을 서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다모는 쑥와플과 찹쌀떡, 크림치즈호두곶감, 약과, 호두과자가 포함된 다과 세트가 인기 메뉴다.   다모의 테드 남 대표는 “젊은 세대의 비율이 90% 정도”라며 “타인종과 한인의 비율이 6대 4 정도로 타인종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또한, “전통 간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맛과 조합으로 선보인 것이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빙수 전문점인 옥루몽 역시 흑임자 빙수, 팥빙수, 인절미 빙수는 물론 아이스 오미자차, 단팥죽, 호박죽, 붕어빵 등 전통 먹거리도 잘 팔린다고 한다.   옥루몽의 한 관계자는 “요새 젊은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 전체 손님의 70%를 차지한다”면서 “특히 타인종 고객이 2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보아 한국 문화에 관심이 커진 것을 실감한다”고 설명했다.     코안도르 빵집은 한국 전통 간식과 프랑스 과자를 결합한 메뉴를 내놨다. 특히, 곶감, 약과, 대추를 올린 휘낭시에, 마들렌, 다쿠아즈는 고소한 맛과 달콤한 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휘낭시에와 마들렌은 한 개에 4.50달러, 4개 콤보는 10달러에 판매되고 있으며, 다쿠아즈는 4개 콤보가 20달러다. 또한 코안도르는 60년대 국민학교 급식에서 나왔던 옥수수빵을 그대로 재현한 초당 옥수수 카스텔라(개당 4.75달러)도 선보였다.     떡집에서도 젊은 세대의 발길이 잦아졌다. 떡집 관계자들에 따르면 젊은 손님층 비율과 타인종 고객 비율이 작년보다 10% 늘었다. 떡집에서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떡은 시루당의 백설기, 찹쌀떡과 서울떡집의 바람떡, 깨송편, 경단 그리고 지화자떡집의 무지개떡, 약식, 찰떡 등이 있다. 모든 떡은 10달러 미만에 구매할 수 있다.     한남체인 LA점은 작년보다 전통 간식의 매출이 15~20% 올랐다. 약과 도넛, 밤양갱·팥양갱, 곶감은 한 박스에 15달러 미만이며 호박엿, 가락엿, 땅콩엿, 쌀과자, 뻥튀기, 강냉이, 맛동산, 소라 과자는 4달러 미만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SNS를 보고 사진을 들고 와서 약과를 찾는 타인종 고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 한남체인의 설명이다.     시온마켓 버몬트점도 옛날 간식을 20% 할인하고 있다. 노브랜드 팥양갱, 찹쌀 손약과, 약과 도넛, 청우 종합 강정 모두 8달러 이하. 이외에도 강냉이, 파래맛 전병, 대롱과자, 자연나라 쌀과자 등은 4달러 이하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정하은 기자 chung.haeun@koreadaily.com할매 열풍 등옛날 간식 옛날 간식들 열풍 약과

2024-03-17

[문예 마당] 갑진(甲辰) 인사

‘문밖에는 함박눈 길이 막히고   한 시절 안타까운 사랑도 재가 되었다.   뉘라서 이런 날 잠들 수가 있으랴   홀로 등불 가에서 먹을 가노니   내 그리워 한 모든 이름들   진한 눈물 끝에 매화로 피어나라.’   -이외수, 〈매화 삼경(三更)〉       가난한 선비의 집일망정 방안에는 거문고가 있고, 창밖에는 매화 몇 그루가 심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100평 밭이 넓지는 않으나 그 반은 꽃을 심으려는(三頃 無多反種花) 선비의 마음입니다.   겨울의 한가운데 날인 동짓날 선비는 먹을 갈아 81송이 매화를 그려 창가에 걸어 놓습니다. 이를 이름하여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라 합니다. 그리고는 하루에 한 송이씩 붉은 칠을 해 나갑니다. 이렇게 81일이 되는 날은 대략 양력 3월 10일경, 절기로는 개구리가 기지개를 켠다는 경칩 무렵이 됩니다. 외로운 선비의 방에 81송이의 매화가 붉은 칠을 마친 날, 선비는 창문을 열어젖힙니다. 뒤뜰에 심어놓은 홍매가 바람결에 향기를 전합니다. 선비의 가슴 가득 봄이 만개합니다.       ‘오동나무는 천 년이 지나도 항상 그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남아 있고,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조선 중기 시인 상촌 신흠의 시입니다.   ‘桐千年老恒裝曲 梅一生寒不賣香, ’ 이 대련은 그냥 글씨로도 좋지만. 매화 한그루가 피어 있는 양지바른 방, 오동나무 거문고를 타는 선비가 있는 그림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일 겁니다. 매화는 세한삼우, 송죽매(松竹梅)의 표상이며 매란국죽(梅蘭菊竹) 사군자의 절개,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지조를 지닌 꽃이기에 이 땅의 선비인 양 많은 사람이 사랑한 꽃입니다.   옛날 선비들은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었습니다. 오동나무는, 심고 다음 해가 되면 아이들 키만큼 자랍니다. 그러면 밑동을 잘라줍니다. 다음 해 다시 아이들 키만큼 자란 나무를 또 베어냅니다. 이렇게 몇 년을 뿌리가 땅속 깊이 퍼져 나갈 때까지 베어내야 자라서 속이 꽉 찬 나무가 됩니다. 나무는 제 키만큼 뿌리를 내릴 줄 압니다.   10년이 훌쩍 지나 딸이 시집갈 때 그 오동나무를 베어 옷장을 만들어 혼수로 보냅니다. 남은 나무로 거문고를 만듭니다. 천 년이 지나도 제 곡을 지닌 명기가 됩니다.   여수 향일암이나 남해 보리암 양지 녘으로는 지금쯤 뜨겁게 동백이 피어 있을 겁니다. 바닷가로 우리나라에는 유별나게 관음 사찰이 많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한 번만 외치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와 우리의 영혼을 제도해 주시는 고마운 부처님도 그곳에 계실 텐데. 거기 가면 그냥 바다 냄새도 뭉클, 파도 소리로 반기면서 벌써 겨울은 다 물러갔노라 춘신을 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 여기 계시지 아니하나/ 그대 뜻에 따라/ 이 봄의 풀잎은 일어서고    꽃들은 하늘에다 오색 종이를 날린다.    일어선 풀잎 하나만 보아도/ 눈물 나는 이 봄에    황사는 자욱하게 하늘을 가리고/ 일어서라, 일어서라 일어서라고    누가 외치지 않아도/ 저 하찮은 들꽃들마저 일어서서      하늘에다 오색 등불을 매단다.(중략)    그대 여기 계시지 아니하나    그대 뜻에 따라/ 이 봄에 나도 풀잎으로 다시 일어서서      황사 흩날리는 하늘에다 새를 날린다.    아아 이름을 짓지 않은 한 마리의 새를’   - 김종해,〈이 봄의 축제〉       매화의 향기와 오동의 지조가 빛나는 새해, 돼지꿈 위에 있다는 용꿈 꾸소서.         약력: 서울문학 수필등단. 한국문협 미주지회 회원. 성균관대학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과 석사. 중국 옌타 이대학 교수역임.     저서: 떠나는 것에 대하여 외 다수 김붕래 / 수필가문예 마당 갑진 인사 오동나무 거문고 매화 삼경 옛날 선비들

2024-03-14

[오늘의 생활영어] that brings back memories; 옛날 생각이 나게 하네요

(Matt is talking to his friend Dave … )   (맷이 친구 데이브와 얘기한다 …)   Matt: Hey Dave come take a look at my new car.   맷: 데이브 와서 내 새 차좀 봐.   Dave: (looking at Matt's car) New car? You mean old car. That's a 1957 isn't it?   데이브: (맷의 차를 보며) 새 차라니? 오래된 차겠지. 그거 1957년생이지 안그래?   Matt: Yes it is. And it's in cherry condition.   맷: 그래. 게다가 상태도 아주 깨끗하잖아.   Dave: You must have paid a mint for it.   데이브: 돈 아주 많이 줬겠네.   Matt: Not really. I bought if off a man who is retired and he didn't want it anymore.   맷: 그렇지도 않아. 은퇴한 사람한테 샀는데 더이상 갖고 싶지 않았대.   Dave: 1957! That brings back memories.   데이브: 1957년이라니! 옛날 생각 나는군.   Matt: It does doesn't it? The early years of rock and roll.   맷: 정말 그렇지? 로큰롤 전성시대의 초기.   Dave: And life was a simpler time.   데이브: 삶이 훨씬 더 간단했지.   Matt: The world has changed since then hasn't it?   맷: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어 그렇지?   Dave: It sure has.   데이브: 정말.     ━   기억할만한 표현     * it's (or something) is in cherry condition: (구어체) 아주 좋은 상태 깨끗한 상태     "Wow look at that old bicycle. It's in cherry condition."     (와 저 오래된 자전거 좀 보세요. 상태가 아주 좋은데요.)   * to pay a mint for it (or something): 돈을 많이 주고 사다     "He paid a mint for his wife's ring for her birthday."     (그는 아내 생일 선물로 반지를 비싸게 주고 샀습니다.)   * a simpler time: (삶이 덜 복잡했던) 간결했던 (단순 순수) 시대     "Life is so complicated these days. I remember a simpler time when I was a kid."     (요즘은 삶이 아주 혼잡합니다. 제가 어릴적에는 훨씬 단순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오늘의 생활영어 memories 옛날 옛날 생각 back memories 친구 데이브

2024-02-20

[이 아침에] 열둘 보다 가벼운 하나

가벼워야 한다. 떠나보낸 열둘, 12월의 숫자에 비하면 해가 바뀌며 찾아온 2024년의 시작인 1월은 기필코 가벼워서 내 가슴을 짓누르면 안 된다. 그러기를 숨죽여 기대하며 새해를 열었다. 얼마나 가슴 떨며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내 소망 만으론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까칠한 인간관계의 오프닝(openning) 이다.    인간으로 인간들과 어우러지며 살아야 하는 나날들이, 매끈하게 흐르지 못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생각하는 것, 표현하는 말들의 향연에 자꾸 뾰족하게 날이 선 채로 오고 간다. 함께 어울리는 무리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공식 같은 것에 표적을 맞춘다. 듣고 흘려버려야 하는 경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은 곱게 유지될 수 있다.    내가 아닌 다른 개체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에,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느낌이 그럴진대 상대방 역시 그럴 것이다. 내가 원하는 토픽에 내가 원하는 억양으로 내가 마음 따스하게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며 내가 듣고 싶은 예쁜 말들만 서로 주고받고 싶다. 아니면 얼굴이 금방 일그러진다. 눈매가 매섭게 변한다. 얼굴을 돌린다. 시선을 돌려 지나가는 강아지를 불러대며 인사를 건네본다. 금방 순화되는 감성으로 행복한 톤이 되어 사랑이 묻어나는 고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무엇이 다르기에 사람과의 관계는 어렵고 강아지와의 감정 교류는 쉬운 것일까? 조건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예쁘다 말하고 사랑 한 스푼 넉넉히 준다. 그러나 사람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다. 돌아올 메아리가 항상 신경 쓰인다. 신경 안 쓰고 간단하게 듣고 넘기는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때론 날이 선 반응이 즉각 돌아오기도 한다. 말하면서 사는 삶이 새삼 버겁단 생각이 든다.    소위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경어가 빠지면 내 기분은 재빨리 움츠러든다. 어렵사리 반말로 대응하는 이유를 묻는다. 대뜸 나이 얘기를 꺼낸다. 결국엔 민증을 까자는 제안을 받게 되고 결과는 대부분 내가 숫자가 높다. 머쓱해 하며 뭔 나이가 그리 많냐고 투덜댄다. 보이긴 그리 안 보여서 아랜 줄 알았다고 설명까지 이어지면 나름대로 훈훈하게 가까워진다. 하나 가끔은 민증을 까고 위아래가 확실하게 드러났음에도 인정하기를 꺼리는 이도 있다. 믿기지 않는다나. 기분까지 나쁘다고 농담처럼 던진다. 젊게 봐주는데 슬그머니 지나쳐 볼까. 그렇게 마음 굳히면 애초부터 반말한다고 기분 상하지도 말고 모른 척, 몇 살 어린 입장으로 밀고 나가자. 괜스레 숫자에 예민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    새해도 어느새 첫 달을 잃어가고 있다. 매사를 둥글게 둥글게 다듬어 보자. 반말지거리로 내게 접근하는 어린 것들을 곱게 보자. 그냥저냥 섞이면서 다가올 세상을 보내자. 까마득한 옛날 사회 초년생 때부터 어리게 봐 주는 것, 젊게 대해 주는 것에 감사하며 즐겼더라면 지혜로운 인간관계를 쌓았을 텐데, 새로운 해 가볍게 시작하자.  노기제 / 전 통관사이 아침에 나이 얘기 옛날 사회 감정 교류

2024-01-30

[글마당] 사찰 가는 길

“돈 잘 버는 너희들도 경비 쓰며 엄마와 아빠 데리고 여행할 수 있지 않니?”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돈을 대고 여행하면 지금처럼 즐겁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분이 언짢아지며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대답이다. 나도 친정아버지와 여행할 때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었기에 누구를 탓하랴. 다 내 탓이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2시간 30분 만에 부산 서면에 갔다. 첫날부터 남편은 해물탕집으로 가자고 우겼다. 뉴욕서 맛본 해물탕과는 모습도 맛도 달랐다. 온갖 해물을 넣은 커다란 솥이 불에 올려졌다. 살아 숨 쉬는 해물들이 움직거렸다. 아줌마가 가위로 꿈틀거리는 낙지를 몬도가네식으로 마구 잘랐다. 우리는 식욕을 잃고 조용해졌다. 남편 혼자서 부어라 마셔라, 신나서 떠들었다. ‘아빠가 여행경비를 다 지불하니까.’ 아이들은 서로 말하며 아빠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KTX를 타고 30분 만에 경주에 갔다.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둥근 거대한 왕릉이 신기했다. 세상천지에 이런 모습의 고적지는 없을 것이다. 선조들과 지나친 전생을 둘러보는 느낌이랄까? 숙연해졌다. 안압지를 둘러보고 숲속에 누워 쉬려고 했다. 불국사는 꼭 봐야 한다고 급히 불국사로 향하는 남편 등에 대고 “아이고 여행은 고행이구나!” 내가 외쳤다.   불국사에 도착하자 엄마 따라 절에 들락거리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와 스님이 한동안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주고받고 나면 엄마가 시줏돈을 내밀었다. 스님은 우리 가족 이름이 적힌 등을 천장 밑에 매달았다. 나는 옆에서 엿듣다가 스님이 바쁜 틈을 타서 “엄마, 왜 스님에게 돈을 듬뿍 주는 거야?”하고 끼어들었다.     “어른들이 하는 일에 조그만 것이 참견이나 하고.”   야단맞고 사찰 마당으로 쫓겨나 반찬 두 가지와 국이 나오는 맛있는 절밥을 기다리며 우리 엄마 예쁜 하얀 고무신을 다른 사람이 신고 갈까 봐 지키며 놀았다.     그 옛날 엄마와 갔던 사찰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월 초파일도 아닌데 절 안이 무지개색으로 울긋불긋, 절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현란하다. 마당 이곳저곳에 신자들의 이름이 적힌 꼬리표가 달린 국화 화분이 널려있다. 지붕 밑은 말할 것도 없고 마당에 기둥을 세우고 화려한 깃발들이 하늘을 가렸다. 곳곳에 보살들이 앉아 시주받았다. 그들을 관리하는 우아한 보살이 시주할 만한 사람들을 눈여겨보는 모습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비즈니스 하느라고 바빴다.     어제 갔던 양산에 있는 통도사도 야단법석이어서 사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그나마 개울을 끼고 걷는 통도사 가는 길은 좋았다. 한적한 흙길을 신발 벗고 걸었다. 발바닥이 무척 아팠지만, 몸에 좋다길래 해봤다. 막상 사찰에 들어서니 불국사와 마찬가지로 무지개색 난발이 눈살을 찡그리게 했다. 물론 금전 없이는 사찰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건물이 가릴 정도로 시주를 받은 쪽지가 사방팔방에 나부끼는 데는 사진에서 본 고적한 사찰 모습과 전혀 달랐다. 하기야 그 오랜 수난의 세월을 버티며 향화를 지킨 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지?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사찰 사찰 마당 사찰 모습 옛날 엄마

2024-01-12

[열린광장] 크리스마스 카드

한 해를 보내며 지인들과 카톡 카드로 연말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카톡이 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예쁜 카드에 몇 글자 써서 보내드리고 싶다. 저승에서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배달할 수 있고 받을 수만 있다면 여러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하리다. 정성스러웠던 손길들. 오매불망 기도로 한 평생을 살아가신 분들. 내 성장을 지켜보며 격려를 보내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흔하고  쉬운 말들을 왜 못해 드렸던가?  뒤늦게 나마 저승행 우편 열차에 실어 보내고 싶은 말들이다.     어린 날 시골 마을에 있던 작은 교회에는 일요일이면 굵은 밧줄에 잡아당겨 진 쇠 종이 뎅그렁뎅그렁 울렸다. 교회 안 흰 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쌀이 든 작은 천 봉지들이 이름표 밑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흰색 한복과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교회에 들어간 어른들은 나라의 평안을 위해, 불행한 영혼들을 위해 뜨겁고 열렬한 기도를 했다.       어린이들은 유년 주일학교에서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언덕에 오르는 그림을 보고 슬퍼하기도 했다. 평소에 교회 마당은 동네 아이들이 어스름이 질 때까지 줄넘기하고 땅뺏기 놀이를 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때는 아주 특별한 곳으로 변했다.  교회 입구에 빨간색 리본과 녹색 소나무 줄기로 아치가 만들어졌다. 교회 안에는 산에서 베어온 아담한 소나무에 흰 솜이 눈처럼 여기저기 얹혀지고, 작은 방울이 달리고 꼬마 등이 반짝였는데 아주 낯설고 이국적인 정취로 우리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작은 교회의 마룻바닥은 늘 깨끗하고 반들거렸으나 난로는 없었다. 하지만 한 달 전부터 모여 노래를 부르고, 성모마리아가 되어 앉아 있는 자세를 연습하는 등 크리스마스 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날 밤이 되면 평소 교회에 오지 않던 마을 어른들도 교회에 왔다.  강도상 뒷벽에는 검은 우단 위에 금박 큰 별이 붙여지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선물을 들고 걷고 있었다. 우리는 천사의 날개 대신 어머니들 흰 속치마를 뒤집어쓰고 성극을 하는데 무대 옆 커튼에 숨어 대사를 속삭여 준 반사 선생님이던 친척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추워서도 떨었고, 실수할까 봐 긴장되어 떨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사슴이 달리는 설경에 뿌려진 반짝이와 교회 종탑이 그려진 카드를 보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크리스마스를 상상하고 동경했었다.     어른이 되어도 김종삼 시인의 ‘북치는 소년’ 시를 읽고 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羊(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먼 옛날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마당에서 마당으로,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던 새벽 송은 어둠과 밝음이 만들어 낸 멋진 코러스였던 것 같다. 여기는 미국이다. 밤이면 은하수가 흐르고 별이 하늘 가득 반짝이던 마을. 작은 교회의 창호지 안에서 불빛이 환하던 날의 지극히 순수하고 거룩했던 밤을 카드 속 풍경으로 떠올린다.    권정순 / 전직교사열린광장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카드 옛날 크리스마스 카톡 카드

2023-12-24

[열린광장] 지상의 예루살렘이 사라질 것인가?

“나 어젯밤 잠잘 때 한 꿈을 꾸었네. 그 옛날 예루살렘 성의 곁에 섰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처음 부르는 노래. 마치 저 하늘에서 천사들이 화답하는 소리 같네.  ‘예루살렘!  예루살렘! 그 문을 열고 노래하세.  호산나!  호산나! 부르세.”           에스 애덤스 곡 ’거룩한 성 (The Holy City)‘의 앞부분 가사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로 젊었을 때 교회 행사와 다른 종교의 모임이 있을 때 초청받아 부르던 노래다. 어린아이들이 예루살렘 성 곁에 있는 교회에서 불렀기 때문에 천사의 노래처럼 들린 다는 뜻이다. 이 노래의 앞부분은 지상의 예루살렘이고, 뒷부분은 낮과 밤이 없는 천국의 새 예루살렘으로 되어 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헌법상 수도다. 그런데 거룩한 성으로 불리는 예루살렘이 전쟁 국가가 되어가는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할 수 있을까?     애덤스가 꿈속에서 본 예루살렘의 거룩한 성의 이미지가 이젠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것 같다. 이스라엘은 이미 전쟁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간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한 예가 1980년대 초반 레바논과의 전쟁이다.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파였던 PLO의 도발이 이어지자 메나헴 베긴의 이스라엘 리쿠드 정부는 8만 명의 병력과 1200대의 탱크를 앞세워 레바논을 공격했다. 이 전쟁으로 레바논에서 사망자 1만7000명, 부상자 3만여 명이 발생했다. 승리한 이스라엘에도 큰 화를 불러 왔다.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의 기독교 민병대가 난민 캠프를 습격, 어린이와 노인, 여성 등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하루에도 수 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자지구에는 3만~ 4만 명의 하마스 대원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200만 명의 민간인들 사이에 섞여 있다. 날마다 쏟아지는 포탄에 애꿎은 어린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로 지금 가자 주민 200만 명은 식료품과 식수, 연료 공급이 끊긴 상태다.     다시 예루살렘 노래를 살펴보자. 애덤스가 다시 꾼 꿈속의 새 예루살렘은 낮과 밤이 없는 천국이었다. 이는 천국을 말한 것으로 이스라엘에 있는 예루살렘은 아니다. 이런 탓인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정부는 예루살렘 도시의 명성과는 아랑곳없이 가자지구에 포탄을 퍼부었다.   기독교인의 성지는 이스라엘이요, 그 거룩한 곳은 예루살렘이라고 믿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마스가 먼저 공격했으니 그  보복으로 가자지구에 포탄을 퍼붓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초등학생 수준의 생각이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반유대주의를 외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휴전을 요구하는 시위다.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시로 여기고 이를 통해 휴전의 실마리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아이들이 부른 노래처럼 거룩한 예루살렘을 부르게 될 때 이 노랫소리가 천사의 노래가 되어 이스라엘에 평화의 왕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만이 전쟁을 끝내는  길이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예루살렘 예루살렘 노래 예루살렘 도시 옛날 예루살렘

2023-11-24

[우리말 바루기] 왜 ‘처녀김치’는 없나?

김치는 배추김치뿐 아니라 무김치·파김치·열무김치·오이김치 등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에는 총각김치도 있다. 손가락 굵기만 한 어린 무를 잎과 줄기째 양념에 버무려 담근 김치가 총각김치다.   그런데 이 ‘총각김치’ 얘기를 할 때면 왜 하필이면 ‘총각’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또 총각김치가 있으면 ‘처녀김치’도 있을 법한데 왜 처녀김치는 없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옛날 아이들이 머리를 양쪽으로 갈라 뿔 모양으로 동여맨 것을 ‘총각(總角)’이라 했으며, 이러한 머리를 한 사람을 ‘총각’이라 불렀다고 한다. 총(總)은 모두를 뜻하는 말로 많이 쓰이지만 과거엔 ‘꿰맬 총’ ‘상투 짤 총’으로도 사용됐다. 각(角)은 뿔을 뜻한다. 한 줌 크기로 모아 잡아맨 미역을 ‘꼭지미역’ 또는 ‘총각미역’이라 하는 걸 보면 ‘총각’이 동여맨 것을 지칭하는 건 맞는 듯하다.   따라서 어린 무가 ‘총각’이란 머리 모양을 닮아 ‘총각무’가 됐고, 그것으로 담근 김치가 ‘총각김치’란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어린 무의 모양이 남성의 그것을 닮았다는 점에서 위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옛날 여인들이 총각김치를 담그면서 이런 잡담을 했으리라는 추측이다. 또 여자들이 김치를 담그기 때문에 ‘총각김치’만 있고 ‘처녀김치’가 없다는 것이다.우리말 바루기 처녀김치 옛날 여인들 줄기째 양념 손가락 굵기

2023-05-25

“뉴욕·뉴저지 오래된 성폭행 사건 해결됩니다”

수년 전부터 미국과 한국에서 과거의 성폭행 또는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이 확산되면서 뉴욕주와 뉴저지주가 법을 개정해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한인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소송을, 가장 잘 해결하는 변호사’로 알려진 김동민 변호사(대니얼 김 변호사)가 최근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로부터 집중적으로 소송 건을 접수하고 있어 이에 대해 알아봤다.     -뉴저지주 팰팍에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많은 한인들과 회사들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1986년에 뉴욕대(NYU)를 졸업하고, 크고 유명한 상해전문 변호사 사무실서 일하다, 1991년에 럿거스 로스쿨을 졸업하고 1992년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오랜 기간 상해 분야 소송을 맡아 일하면서 대한항공 괌 추락사건 등 큰 소송을 처리하면서 ‘맡으면 이기는 변호사’ ‘가장 끈질긴 변호사’ 등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1년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시 사무실이 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한 달간 그라운드 제로에서 연기가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당시 4명의 변호사를 데리고 450개 사건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중단하고, 이후 ‘잘 해결이 되지 않는 소송’ ‘남들이 잘 맡지 않는 소송’ ‘가장 어려운 소송’을 맡아 해결하는 변호사가 됐다.”     -최근 성폭행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이유가 있는가.   “수년 전부터 미국과 한국 등에서 성폭행이나 성추행 피해와 사례를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크게 확산됐다. 거기에 맞춰서 한인들이 많이 사는 뉴욕·뉴저지도 법이 많이 바뀌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된 환경으로 인해 과거 성폭행이나 성추행 등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보상 받을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성년자였을 때 성폭행을 당하면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어려서), 창피해서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것은 부모들도 잘 모른다. 문제는 대학에 가고,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 생활할 때 이런 나쁜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서 결혼도 못하고, 알코올이나 마약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주는 이런 말 못하는 피해자를 돕기 위해 그동안 세월이 많이 지나 시효가 끝난 사건들도 오는 11월 24일 전에 보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뉴저지주는 법을 바꿔서 어릴 때 성폭행을 당해 세월이 오래 지났더라도 55세가 될 때까지는 시효가 얼마가 됐든 가해자에게 보상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나이가 많은 어른도 아주 어릴 때 당한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 성폭행을 당했는데 어른이 되서 소송을 했다면 오랜 기간이 지났을텐데 보상을 받기 어렵지 않겠는가.   “쉽지 않지만 어렵지도 않다. 전문적인 내용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우선 오래 전에 성폭행을 가했던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는 것은 해당 가해자를 감옥에 보내자는 형사소송이 아니라 보상을 받자는 민사소송이다. 민사소송이 되려면 가해자가 집과 같은 일정한 자산을 갖고 있어야 한다. 만약 가해자가 일정한 자산을 갖고 있다면 가해자가 갖고 있는 보험을 통해 보상을 청구하는 방법이 있다. 고용주 또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할 수도 있다. 각각의 개별적인 상황에 맞춰서 소송 전략을 세우면 된다. 우선 개별적인 상담을 해봐야 판단할 수 있지만 오래 전에 성폭행을 당했고, 현재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해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저는 법률가로서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소송을 끌고 간다. 그게 저의 자존심이다.”   -중요한 것은 성폭행 피해자들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 이것 때문에 피해를 당했어도 소송을 하지 못하는 피해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성폭행 피해자가 보상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분을 보호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성폭행 소송 때는 피해자의 이름 전체를 밝히지 않고 이니셜(이름이나 성의 앞 글자)만 밝힌다. 또한 판사가 심리를 할 때도 법정에 나서지 않고, 폐쇄회로 영상을 통해 판사에게 단독으로 진술을 하는 방법도 있다. 변호사와 상담을 하고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의 신분은 철저하게 보장된다. 저는 직원을 통하지 않고 100% 의뢰인과 직접 소통한다. 전화도 직접 받는다. 신분 노출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쪼록 ‘미투 운동’ 확산으로 뉴욕·뉴저지에서 성폭행 피해자들이 소송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기에 문이 닫히기 전에 우선 개별적인 상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의뢰인에게 하고 싶은 말, 또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성폭행 소송의 중요한 부분은 지난 일이지만 피해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진실을 일관되게 이야기해야만 한다. 거짓을 이야기하면 안된다. 거짓은 결국 드러나고,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구현하기(피해를 증명하고 보상을 받기) 쉽다. 앞으로의 희망이라면 한국에서 미군 위안부들이 과거의 성적인 피해를 한국정부로부터 보상 받았기에, 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피해자들을 위해 미국에서 연방정부 또는 연방의회를 상대로 소송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   ◆김동민 변호사 사무실 ▶주소: 416 E. Central Blvd. #2Fl Palisades Park, NJ 07650 ▶전화: 201-741-1114 ▶e메일: danieldkimlaw@gmail.com 글·사진=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김동민 변호사 뉴욕 뉴저지 성폭행 성추행 사건 해결 미투 운동 옛날 성폭행 소송 성폭행 소송

2023-05-24

[글마당] 너희들은 내게 봄이야

학창 시절 함께 자주 어울렸던 친구 3명(J, Y, M)과 이따금 카톡을 한다. 지금 J와 Y는 서울에 M과 나는 미국에 산다. 안양에 살던 J와 Y가 방과 후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면 남겨진 M과 나는 자연스레 친해졌다. M은 성실하고 재능이 많았다. 간호사가 된 M은 주위 사람을 챙기고 보살피는 능력도 남달라서 내가 의지하며 쫓아다니다 친해진 것 같다.     친구 Y는 국어를, J는 전교 3등을 할 만큼 수학을 잘했다. M은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나는 그들 중 공부를 제일 못했다. M이 먼저 결혼했고 다음은 Y가, 나는 J와 어울려 다니다가 그녀가 결혼하자 한국을 떠났다.     늘그막에 우리는 카톡에서 만나 밀린 사연들을 주저리 늘어놓는다. 우리들의 옛 시절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짙은 안개 속에서 거리를 헤매듯 우왕좌왕한다. 이상한 것이 제일 학업이 뒤처졌던, 특히나 암기과목을 싫어했던 내가 옛날 기억을 제일 잘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결혼한다고 바쁠 때 한가한 노처녀인 나는 그들과 함께했던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신문에 글쓰기 시작하면서는 소재 거리를 찾기 위해 그럴싸한 기억이 없나 하고 어린 시절을 훑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생각나지 않던 것이 기억하려고 애쓰면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듯 나타난다. 우리가 어디를 갔었고 그날  입었던 옷 색과 그 당시 분위기도 떠오른다. 나는 내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너희들 기억나니?”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생각나지 않아. 너는 오래전 일을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하니? 천재인가 봐.”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글 소재를 찾으려고 옛 시절에 집중하니 기억의 커튼이 젖히면서 가려져 있던 것이 보이는 것이다. 글의 골격을 찾아내 살을 붙여 억지춘향식으로 문장을 만든다.     내가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마치 기억을 밀폐된 용기에 담아두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수시로 열어봐서가 아닐까? 거꾸로 친구들은 지나간 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일상에 묻혀 닳아 없어진 듯 희미해진 것은 아닐까?   “공부할 때 이렇게 들추고 알아내서 확인했더라면 우등생이었을 텐데. 그리고 지금의 내 처지가 바뀌지 않았을까?” 아쉬운 듯 남편에게 말했다.     “마누라가 공부를 잘했었다면 아마 나와는 만나지 못했겠지. 나도 못 했으니까.”     내가 공부 머리가 시원치 못해 자기를 만난 것이 얼마나 축복이냐는 투로 남편이 대꾸했다.   돈 없고 직장 없는 화가 만나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살다 보니 조그마한 좋은 일이 생겨도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오는 체질이 한몫한 듯하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옛날 기억 소재 거리 친구 y

2023-05-19

[수필] 어머니의 장맛

냉동고를 정리하다 작년 봄에 삶아 넣어둔 쑥 덩어리 하나를 꺼내 쑥국을 끓이려 하니 집에 된장이 떨어졌다. 한국 마켓에 가서 즐비하게 뽐내고 있는 장들을 세심히 살펴보았다. 성분표를 보려 했더니 글씨도 작고 그 위에 영어로 써진 종이가 덥석 붙여져 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지난번에 샀던 된장을 집어 들었다.   집에서 간장·된장을 담은 지가 까마득하다. 큰딸이 고2 때까지 친정어머니는 음력설이 지나면 메주를 서너 덩이 부쳐주셨다. 넓은 양푼에 적당량의 물에 천일염을 풀어 계란이 동전 하나만큼 보이게 떠오르도록 간을 맞춘다. 불순물이 가라앉도록 한나절 동안 뚜껑을 덮어둔다. 항아리에 체를 받혀 놓고 소금물을 항아리에 부은다음  씻어 말린  메주를 담근다. 붉은 고추 몇 개와 참숯 몇 개를 위에 얹는다. 날마다 아침이면 항아리 뚜껑을 열어놓고 햇볕을 쬐고 해가 넘어가면 뚜껑을 덮는다. 40일이 지나면 메주들이 모두 떠오르고 소금물도 간장 빛을 띄운다. 메주를  건져 간장에 버무려 된장을 담고 간장은 다려 놓는다. 이렇게  일년 먹을 간장 된장을 만들고 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주부가 된 것 같아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다.  부모님이 손수 기른 콩으로 쓴 메주이기에 간장도 된장도 신토불이 그 자체였다.   첫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니 공부를 제법 잘했는데도 걱정이 많았다. 언젠가 들은 말이 생각났다. 간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웃물 아랫물이 지면 집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 말이다. 괜히 간장을 담아서 신경을 쓰느니 아예 담그질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생각하면 어이없다. 그래도 이민 오기 전까지는 어머니 같은 언니가 계셨기에 별 아쉬움 없이 언니가 담은 간장·된장을 얻어 아껴 먹었는데 이민와서 부터는 이것저것 사서 먹고 있지만 살 때마다 힘이 든다.   올해는 유난히도 봄비가 많이 내렸다. 아무리 봄이라도 캘리포니아에 이렇게 비가 많이 온 것은 근래에는 드문 일이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란다. 아무튼 봄비를 충분히 맞고 나무들은 싹을 내기에 바쁘다. 우리 집 감나무도  며칠 전에 싹을 틔우더니 이제는 갓 낳은 아기 손바닥만큼 커져서 봄바람에 흔들리며 좋아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이태원 참사로, 튀르키예의 대지진으로 마음과 몸이 다 얼어붙었다.  미국 시인 엘리엇도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듯이 자연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따뜻한 봄을 부른다. 한국의 벚꽃 소식이  마음을 흔든다. 벚꽃뿐인가!  봄나물 소식도 싱그럽기만 하다. 어느새 마음은 어릴 때 고향으로 가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다.  곤히 자고 나면 봄비가 대지를 적시고 있다. 학교 갈 준비보다는 봄비를 맞고 싱싱할 쑥을 생각한다. 방문을 열고 “야, 오늘은 쑥이 참 잘 불겠다” 하고 신나하면  어느새 어머니도 덩달아 함빡 웃으시는데 왠지 그 웃음은 쑥을 썩 잘 캐지 못한 나에게  “뭘, 얼마나 캔다고” 하신 것만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서 우리는 쑥을 캐러 갈 약속을 한다.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와 내 손에 맞는 낫낫한 칼을 고르고 예쁜 바구니를 챙겨 동네 앞에 모인다. 논두렁 밭두렁이 온통 쑥밭이다. 우리는 쑥을 찾아 이리저리 다닌다. 친구 바구니와 내 바구니의 쑥을 비교하면서 열심히 쑥을 캔다. 나는 쑥이 쫙 깔린 곳은 피하고 풀 사이에서 깨끗이 고고하게 자란 쑥만 골라 캔다.     비를 맞은 뒤의 쑥은 펄펄 살아있다. 저녁때가 다 되어 집으로 온다. 겨우 바구니 반이나 채워온다.  쑥 바구니를 다 채우기가 쉽지 않다. 원래 왼손잡이인데 오른손으로 캐니 더디었다.  어머니는 웃으시며  “참, 깨끗하게도 캤다” 하시며 “우리 영희가 캔 쑥은 다듬을 필요도 없다”고 칭찬을 하셨다. 쌀 뜨물에 된장을 풀어 멸치 몇 마리 넣고 풋내가 나게 쑥을 씻어 쑥국을 끓이셨다. 쑥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 우리 집 쑥국은 정말 맛있었다. 어머니는 쑥국을 푸시면서도 내가 쑥을 깨끗이 캔다고 식구들 앞에서 또다시 칭찬하셨다. 신토불이 된장 맛이었을 텐데도 마치 내가 쑥을 깨끗이 캐서 국 맛이 좋은 듯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친구들보다는 양이 항상 적지만 깨끗이 캤다는 자부심으로 눈만 뜨면 방문을 열고 밤사이에 비가 오지 않았나를 살피곤 했다.     그뿐인가 여름방학이면 도시에 사시는 고모님 댁을 가끔 갔다. 오빠가 고모 집에서 하숙을 했기에 내가 가슴에 돈보자기를 차고 곧장 갔다 주었다. 고모가 일찍 홀로 되시어 고모는 4남매를 키우기 위해 도시 변두리에서 시금치·토마토·양파 등 채소 농사를 지으시고 여름에는 포도를 재배하셨다. 그러면서 젖소도 몇 마리 키우시며 무척 바쁘셨다.  사촌들도 학교에 다니면서 아침저녁 밥을 짓고 젖도 짜고 그야말로 작은 농장집이었다. 사촌 언니가 만든 반찬들이 다 맛이 있었다. 가게에서 사 온 진간장을 사용하여 만든 반찬들이 내 입에는 꿀맛이었다. 특히 검은 콩으로 만든 콩장은 어찌나 맛이 있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 집 콩장은 누런 콩에 조선간장을 넣으니 색도 희무끄레하고 짜고 맛이 없었다. 우리 집은 모두 우리가 농사지은 것만 사용하지 특별히 사서 하는 것이 없었다. 진간장도 사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내가 고모 집 반찬은 다 맛있다고 하면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그때는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우리 집은  농사를 많이 지으니 날마다 일꾼들도 많았다. 그들은 품삯을 된장으로 주라고도 하였다. 우리 집 된장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고 했다.  그 말에 어머니는 너무 기분 좋아하시고 품삯도 주고 덤으로 된장도 퍼주시는 것을 자주 보았다.     된장이나 간장 고추장을 살 때마다 나는 많이 망설여진다. 여러 나라에서 나는 것들로 만든 것을 사 먹어도 되는지 자신이 안 선다. 아무리 유명한 상표라도 옛날 어머니가 손수 담그신 장은 이제 어디를 가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나이가 돼서야 그때 어머니가 만드신 간장 된장 고추장이 진짜임을 깨닫는다. 그럴듯하게 광고를 해도 막상 성분표를 보면 우리 것은 1%단위다. 글로벌 시대에 살며 또 이민 와서 살면서 우리 것을 고집하는 것은 무리인 줄 안다. 그렇지만 겨울이 지나고 간장·된장 담글 때가 되면 그 옛날 고향 집의 장독대가 사뭇 그리워진다.  이영희 / 수필가수필 어머니 장맛 간장도 된장도 간장 된장 옛날 어머니

2023-04-20

[삶의 뜨락에서] 셸터(Shelter)

지난해 아이슬란드 여행 때, 여행사에서 마련해 준 첫 호텔은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약간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미국 도로변 모텔 수준으로 침대도 형편없었다. 보이는 것은 얼어붙은 땅, 멀리 말들이 추운 풀을 뜯고 있었고 보일 듯 말 듯한 먼 계곡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침 9시가 되자 찬란한 햇빛이 두꺼운 창을 뚫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고마웠다. 순간 어둡고 추운 광야에서 헤매다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을 발견하고 문을 두드린 옛날 아이슬란드인들을 연상했다. 문을 열어주니 얼마나 고마워했을까. 난방이 없어도, 침대가 없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눈바람을 막아주면 될 것이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졌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에 스코틀랜드 북해 근처의 한 여인숙 소개가 있었다. 이곳에 방을 예약하고 찾아가는 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겨우 자동차 한 대 지나갈 만한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는 바다에 붙어 있다. 파도가 자동차를 덮쳐 운전자나 승객은 물벼락을 맞고 자칫하면 바다에 빠질 수도 있다. 이 길을 몇 시간 운전해 무사히 통과해야 바닷가 언덕에 있는 여인숙에 도달한다. 사람들은 모험을 좋아해 크리스마스 연휴, 가장 춥고 어두울 때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산불을 감시하는 망루가 있다. 산 정상, 숲속에 외롭게 서 있는 초소, 밤이면 늑대의 울음,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이 외딴 산중에서 누군가가 산불이 나는지 지켜야 한다. 공원 관리국은 선별적으로 이 망루를 대여하고 있는데 값도 비싸고 신청자가 많다고 한다.   내가 자주 찾는 Harriman State Park 트레일에는 7~8개의 셸터가 있다. 험한 바위산을 타다가 쉬면서 점심을 먹는다. 누군가 배낭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내 나누고 가끔 라면을 끓인다. 이 셸터는 산중에서 길을 잃거나 지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나는 겁이 많아 어둡기 전에 하산하지만 가끔 밤에 산중에서 방향을 잃고 공포에 떠는 상상을 한다. 우선 동굴이 있는지 살필 것이다. 산짐승이 무서워 큰 나무로 앞을 가리고,  외투로 몸을 감싸며 동이 트기를 고대할 것이다. 하룻밤 살아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나에겐 비록 짧았지만 배고프고 추운 날들이 있었다. 몹시 춥거나 더운 날, 허기질 때는 옛날 생각을 한다. 잠자리 불평, 음식 타령은 가능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요즘같이 추운 날 밤에는 낮에 본 홈리스를 생각한다. 비바람 몰아치는데 허름한 지붕이라도 찾았을까. 몸이 얼지나 않았으면.   나이가 많아지면서 세상에 부러운 것, 무서운 것이 적어지고, 사람 사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느끼게 된다. 머지않아 현업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면 배낭 짊어지고 작품의 현장을 찾아가거나 지구의 외딴 마을을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시와 에세이를 쓰고 싶다. 나는 점점 ‘그저 그런 글’을 남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트레일에  발자국만 남겨야지 휴지를 버리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는 셸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 들어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들, 다시 일어설 때까지 쉬어갈 수 있도록 누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나의 셸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 사는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shelter 옛날 아이슬란드인들 옛날 생각 옐로스톤 국립공원

2023-01-17

[잠망경] 섶나무와 쓸개

어릴 적 배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한다. ‘정신상담’과 첫소리만 빼면 발음이 똑같고 뼈에 사무친 내 직업의식 때문인지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말이다.   대학입시 공부할 때 교감 선생이 멋모르는 우리에게 와신상담해서 꼭 좋은 대학에 붙으라고 언성을 높여 당부하던 말. 쓸개의 쓴맛이 입안에 느껴지는 말. 이빨을 득득 갈면서 마음을 독하게 먹고 노력해서 어떤 일을 성취한다는 뜻으로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말. 그 이상한 말의 내막을 공부한다.   때는 바야흐로 기원전 3, 4세기 춘추전국시대다. 오(吳)나라 왕이 월(越)나라와의 전쟁에 패배하고 전사한다. 아들이 원통해 하며 삐쭉삐쭉한 섶나무를 매일 밤 깔고 자는 아픔으로 아버지를 위한 복수를 다짐한다.   아들은 얼마 후 전쟁에 이겨 월나라 왕을 굴복시키지만 양국 신하들의 꼬임에 빠져 그의 목숨만은 살려준다. 월나라 왕은 그 굴욕감을 잊지 않으려고 매일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다시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섶나무를 침대로 삼았던 오나라 왕을 자살하게 한다.   나는 훌륭한 학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와신상담에 나오는 옛날 중국사람이 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입때껏 살아왔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둘이다. 그들은 복수의 화신, 집념의 사나이들이었다. 아픔과 굴욕이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스스로를 ‘알파 메일’이라 칭하면서 툭하면 다른 환자들과 주먹 다툼을 하는 병동환자 리처드는 자기가 고등학교 때 권투 선수였다고 자랑한다. 그때 남들에게 많이 맞았다며 어두운 표정으로 실토한다. 그래서 복수하는 마음에서 너는 지금 40이 넘은 나이에 맨날 남들을 때리고 싶어하느냐? 그는 고개를 떨구며 그렇다고 말한다. 생각이 다른 데로 번지지만, 아, 이놈도 그동안 와신상담을 해 왔구나. 내 생각이 틀렸나.   이상한 게 있다. 옛날 중국 오나라, 월나라 왕들은 그들 복수의 대상과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서도, 리처드는 왜 아무런 죄도 없고 관련도 없는 애먼 남들에게 복수하려고 덤벼드는가.   대답은 뜻밖으로 단순하다. 리처드뿐만 아니라 대체로 우리는 모두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라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모욕을 당한 자리에서는 아무런 반응을 못 하고 다른 곳에 가서 화를 내다니.   노갑이을(怒甲移乙), ‘갑에게 당한 노여움을 을에게 옮긴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어디가 종로인지 어디가 한강인지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잘 분별하지 못한다.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고생한 며느리가 못된 시어머니 노릇 한다’는 속담도 ‘노갑이을’의 좋은 예다.   우리 정신세계의 비주얼이 고화질, ‘High Definition’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상황판단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이유로 숱한 오류를 범하는 우리. 얻어맞는 것이 싫어서 권투부에 가입했던 리처드가 그때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병동을 복싱 링으로 착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revenge, 복수’는 원래 14세기 라틴어로 권리를 주장하거나 벌을 준다는 뜻이었다.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이 와신상담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집단현상이 일어난다. 춘추전국시대를 겪은 중국이며 오랜 세월을 실향민(diaspora)으로 사는 유대인들이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지. 육이오 후에 일어난 ‘한강의 기적’ 또한 그런 메커니즘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종로에서 뺨 맞고 미국에 와서 웃음 짓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섶나무 쓸개 병동환자 리처드 옛날 오나라 그동안 와신상담

2023-01-10

[삶의 뜨락에서] 셸터(Shelter)

지난 5월 아이슬란드 여행 때, 여행사에서 마련해 준 첫 호텔은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약간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미국 도로변에 위치한 모텔 수준으로 침대도 형편없었다. (두 번째 호텔은 위치도 편리하고 시설이 좋았다) 보이는 것은 얼어붙은 땅, 멀리 말들이 추운 풀을 뜯고 있었고 보일 듯말 듯 한 먼 계곡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침 9시가 되자 찬란한 햇빛이 두꺼운 창을 뚫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고마웠다. 순간 어둡고 추운 광야에서 헤매다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을 발견하고 문을 두드린 옛날 아이슬란드인들을 연상했다. 문을 열어주니 얼마나 고마워했을까. 난방이 없어도, 침대가 없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눈바람을 막아주면 될 것이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졌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에 스코틀랜드 북해 근처의 한 여인숙 소개가 있었다. 이곳에 방을 예약하고 찾아가는 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겨우 자동차 한 대 지나갈 만한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는 바다에 붙어 있다. 파도가 자동차를 덮쳐 운전자나 승객은 물벼락을 맞고 자칫하면 바다에 빠질 수도 있다. 이 길을 몇 시간 운전해 무사히 통과해야 바닷가 언덕에 있는 여인숙에 도달한다. 사람들은 모험을 좋아해 크리스마스 연휴, 가장 춥고 어두울 때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산불을 감시하는 망루가 있다. 산 정상, 숲속에 외롭게 서 있는 초소, 밤이면 늑대의 울음,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이 외딴 산중에서 누군가가 산불이 나는지 지켜야 한다. 공원 관리국은 선별적으로 이 망루를 대여하고 있는데 값도 비싸고 신청자가 많다고 한다.   내가 자주 찾는 Harriman State Park 트레일에는 7~8개의 셸터가 있다. 험한 바위산을 타다가 쉬면서 점심을 먹는다. 누군가 배낭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내 나누고 가끔 라면을 끓인다. 이 셸터는 산중에서 길을 잃거나 지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나는 겁이 많아 어둡기 전에 하산하지만 가끔 밤에 산중에서 방향을 잃고 공포에 떠는 상상을 한다. 우선 동굴이 있는지 살필 것이다. 산짐승이 무서워 큰 나무로 앞을 가리고,  외투로 몸을 감싸며 동이 트기를 고대할 것이다. 하룻밤 살아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나에겐 비록 짧았지만 배고프고 추운 날들이 있었다. 몹시 춥거나 더운 날, 허기질 때는 옛날 생각을 한다. 잠자리 불평, 음식 타령은 가능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요즘같이 추운 날 밤에는 낮에 본 홈리스를 생각한다. 비바람 몰아치는데 허름한 지붕이라도 찾았을까. 몸이 얼지나 않았으면.   나이가 많아지면서 세상에 부러운 것, 무서운 것이 적어지고, 사람 사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느끼게 된다. 머지않아 현업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면 배낭 짊어지고 작품의 현장을 찾아가거나 지구의 외딴 마을을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시와 에세이를 쓰고 싶다. 나는 점점 ‘그저 그런 글’을 남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트레일에  발자국만 남겨야지 휴지를 버리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는 셸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 들어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들, 다시 일어설 때까지 쉬어갈 수 있도록 누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나의 셸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 사는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shelter 옛날 아이슬란드인들 옛날 생각 옐로스톤 국립공원

2022-12-29

[그 영화 이 장면]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하 ‘올리 마키’)은 맑은 느낌을 주는 흑백 영화다. 1960년대 핀란드를 대표하는 복서였던 올리 마키에 대한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 이렇다 할 기교는 없지만, 올리 마키(자코 라티)와 라이야(우나 라이올라)의 모습을 통해 우린 잃어버렸던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시점에서 사랑에 빠져 버린 복서. 그에겐 더 이상 경기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며, 오로지 연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소박한 감성이 더욱 우리에게 각인되는 건, 그 질감 때문이다. ‘올리 마키’는 21세기 영화로는 매우 드물게, 16㎜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옛날 영화, 특히 ‘누벨 바그’가 유럽을 휩쓸던 1960년대를 연상시키며,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지닌 톤으로 기억되는 작품인 셈이다. 감독이 굳이 이런 선택을 한 건, 관객에게 그 시절로 오롯이 돌아가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저 인물을 따라갈 뿐이며, 결국은 사랑에 빠진 한 복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된다. 기승전결 구조 안에서 끝내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의 서사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꽤나 낯설 듯. 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화면이 그립다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행복 옛날 영화 흑백 필름 영화 전체

2022-11-25

[중국읽기] 중국의 푸틴 조롱…검려기궁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중국 인터넷 공간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찬사가 넘쳤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정당하다’는 주장을 담은 푸틴의 연설에 중국은 ‘눈물이 난다’며 공감을 표했다. 그런 중국의 태도가 최근 싹 바뀌었다. 러시아와 푸틴을 조롱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러시아는 반드시 진다! 푸틴은 반드시 패배한다!” “특별군사작전이 국가수호 전쟁으로 변한 건 2차 대전 이래 최대 웃음거리” 등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런 비아냥 중 중국 시사평론가 차이선쿤(蔡愼坤)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 수행 능력을 ‘검려기궁(黔驢技窮)’에 비유한 게 눈에 띈다. 검려기궁은 당(唐)대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우화(寓話) ‘검지려(黔之驢)’에 나온다. 검(黔)은 중국 구이저우(貴州)성의 별칭이고 려(驢)는 나귀라는 뜻이니 ‘구이저우의 나귀’로 해석할 수 있다. 우화에 따르면 옛날 구이저우엔 나귀가 없었다. 한데 한 사람이 나귀를 구이저우로 들여와 산아래에 풀어 놓았다. 이를 본 호랑이가 놀랐다. 처음 보는 데다 몸집도 크고 울음소리도 컸다.   한데 며칠을 살피니 뒷발질만 할 뿐 다른 재주가 없었다. 그 기량을 다 파악한 호랑이는 졸지에 나귀를 덮쳐 잡아먹고 말았다. 여기서 ‘구이저우에 사는 나귀의 재주’란 뜻의 ‘검려지기(黔驢之技)’란 성어가 나왔다. 쥐꼬리만 한 재주란 의미다.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재주가 바닥이 난 걸 ‘검려기궁’이라 한다. 호기롭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이 대단한 영웅인 줄 알았는데 별것 아니며, 그 재주가 바닥이나 망신살이 뻗치게 됐다는 조롱이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속이 터질 노릇이다. 우리가 주목할 건 중국의 민심 변화다. 중국의 여론이 순식간에 바뀐 건 지난달 1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이후다. 시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전쟁에 관한 ‘의문과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지자 중국의 민심이 홱 돌아섰다. 둘의 관계에 틈이 생겼다고 보고 푸틴 조롱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이처럼 시진핑 주석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입장이 바뀐다.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선 시주석의 마음부터 잡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중 간 사드(THAAD) 갈등도 시 주석 입장이 누그러져야 풀리지 그 아래 어떤 고위층이 나선다 해도 답이 나올 수 없는 구조다. 1인 체제의 시 주석 집권 기간 한·중 관계의 모든 문제가 이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니 우리로선 시 주석의 일거수일투족 연구에 전력을 다할 필요가 있겠다. 유상철 / 한국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중국읽기 중국 푸틴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침공 옛날 구이저우

2022-10-03

[그 영화 이 장면]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

201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하 ‘올리 마키’)은 맑은 느낌을 주는 흑백 영화다.   1960년대 핀란드를 대표하는 복서였던 올리 마키에 대한 실화를 토대로 한 이 영화에 이렇다 할 기교는 없지만, 올리 마키(자코 라티)와 라이야(우나 라이올라)의 모습을 통해 우린 잃어버렸던 ‘순수의 시대’를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시합을 앞둔 시점에서 사랑에 빠져 버린 복서. 그에겐 더 이상 경기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아 보이며, 오로지 연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의 소박한 감성이 더욱 우리에게 각인되는 건, 그 질감 때문이다. ‘올리 마키’는 21세기 영화로는 매우 드물게, 16㎜ 흑백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그러기에 이 영화는 옛날 영화, 특히 ‘누벨 바그’가 유럽을 휩쓸던 1960년대를 연상시키며, 특정 장면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지닌 톤으로 기억되는 작품인 셈이다. 감독이 굳이 이런 선택을 한 건, 관객에게 그 시절로 오롯이 돌아가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카메라는 그저 인물을 따라갈 뿐이며, 결국은 사랑에 빠진 한 복서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된다. 기승전결 구조 안에서 끝내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의 서사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꽤나 낯설 듯. 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화면이 그립다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행복 옛날 영화 영화 전체 흑백 필름

2022-09-16

[우리말 바루기] ‘개나리봇짐’

물건 가운데 특이하게도 ‘개나리’란 이름이 들어간 ‘개나리봇짐’이 있다. 이는 맞는 말일까? 언뜻 개나리 꽃구경을 하면서 짐을 둘러메고 가는 모습을 연상하며 이것이 맞는 말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메고 다니는 가방을 ‘개나리봇짐’이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 ‘개나리봇짐’이란 상호도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개나리봇짐’이 아니라 ‘괴나리봇짐’이 맞는 말이다. ‘괴나리’ 발음이 불편하다 보니 ‘개나리’라 발음하면서 ‘개나리봇짐’이란 말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괴나리봇짐은 걸어서 먼 길을 떠날 때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는 짐을 가리킨다. 특히 옛날 과거를 보러 갈 때 이 괴나리봇짐을 메고 다녔다고 한다.   ‘괴나리’의 어원에 대해선 확실하게 밝혀진 바 없다. 어떤 사람은 ‘끈 늘이 봇짐’에서 ‘끈 늘이’가 ‘끈느리’가 되고, 이것이 ‘끠느리’로, ‘긔느리’로 변하면서 최종적으로 ‘괴나리’가 됨으로써 ‘괴나리봇짐’이 된 것이라 추측하기도 한다.   ‘괴나리’의 ‘괴’ 발음이 어려워 ‘개’로 하듯이 비슷하게 잘못 발음하는 것이 적지 않다. 대체로 ‘ㅚ’나 ‘ㅟ’ 발음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방귀’를 ‘방구’라 하는 것이다. ‘뼈다귀’를 ‘뼈다구’, ‘아귀’를 ‘아구’라 하는 것도 이런 유형이다. 우리말 바루기 개나리봇짐 개나리 꽃구경 옛날 과거 물건 가운데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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