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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너희들은 내게 봄이야

학창 시절 함께 자주 어울렸던 친구 3명(J, Y, M)과 이따금 카톡을 한다. 지금 J와 Y는 서울에 M과 나는 미국에 산다. 안양에 살던 J와 Y가 방과 후 기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면 남겨진 M과 나는 자연스레 친해졌다. M은 성실하고 재능이 많았다. 간호사가 된 M은 주위 사람을 챙기고 보살피는 능력도 남달라서 내가 의지하며 쫓아다니다 친해진 것 같다.  
 
친구 Y는 국어를, J는 전교 3등을 할 만큼 수학을 잘했다. M은 영어 실력이 뛰어났다. 나는 그들 중 공부를 제일 못했다. M이 먼저 결혼했고 다음은 Y가, 나는 J와 어울려 다니다가 그녀가 결혼하자 한국을 떠났다.  
 
늘그막에 우리는 카톡에서 만나 밀린 사연들을 주저리 늘어놓는다. 우리들의 옛 시절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짙은 안개 속에서 거리를 헤매듯 우왕좌왕한다. 이상한 것이 제일 학업이 뒤처졌던, 특히나 암기과목을 싫어했던 내가 옛날 기억을 제일 잘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결혼한다고 바쁠 때 한가한 노처녀인 나는 그들과 함께했던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신문에 글쓰기 시작하면서는 소재 거리를 찾기 위해 그럴싸한 기억이 없나 하고 어린 시절을 훑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생각나지 않던 것이 기억하려고 애쓰면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듯 나타난다. 우리가 어디를 갔었고 그날  입었던 옷 색과 그 당시 분위기도 떠오른다. 나는 내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너희들 기억나니?”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생각나지 않아. 너는 오래전 일을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하니? 천재인가 봐.”  
 


한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글 소재를 찾으려고 옛 시절에 집중하니 기억의 커튼이 젖히면서 가려져 있던 것이 보이는 것이다. 글의 골격을 찾아내 살을 붙여 억지춘향식으로 문장을 만든다.  
 
내가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마치 기억을 밀폐된 용기에 담아두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수시로 열어봐서가 아닐까? 거꾸로 친구들은 지나간 일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일상에 묻혀 닳아 없어진 듯 희미해진 것은 아닐까?
 
“공부할 때 이렇게 들추고 알아내서 확인했더라면 우등생이었을 텐데. 그리고 지금의 내 처지가 바뀌지 않았을까?” 아쉬운 듯 남편에게 말했다.  
 
“마누라가 공부를 잘했었다면 아마 나와는 만나지 못했겠지. 나도 못 했으니까.”  
 
내가 공부 머리가 시원치 못해 자기를 만난 것이 얼마나 축복이냐는 투로 남편이 대꾸했다.
 
돈 없고 직장 없는 화가 만나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결혼했다. 그리고 남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살다 보니 조그마한 좋은 일이 생겨도 커다란 기쁨으로 다가오는 체질이 한몫한 듯하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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