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글마당] 12시간의 딸꾹질

새벽 5시다. 발뒤꿈치를 들고 소리 나지 않게 살살 남편이 잠든 건넌방으로 갔다. 평상시에는 항상 열려 있는 방문이 닫혀있다.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따알꾹”     ‘딸꾹’이 아닌 바람 빠지는 ‘따알꾹’이다   소리가 멈췄나 하고 기다리면 또 한다. 조용히 문 열고 들어가 남편 가까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는지 움직거린다.     “아직도 하네. 일어나요. 안 되겠어. 이러다 사람 잡겠어.”     어제 남편은 저녁을 먹고 난 후 딸꾹질을 시작했다. 잠들기 전, 멈출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남편에게 다른 방법을 다시 해 보자고 재촉했다. 브라운 봉투를 두 손으로 입 가장자리에 틀어막고 숨 쉬라고 했다. 효과가 없다. 허리를 90도 숙이고 차가운 물이 든 종이컵에 입을 박으면 컵 바깥쪽으로 물을 마시게 된다. 내가 먼저 종이컵에 주둥이 처박고 물 마시는 시범을 보였다. 잘 안된다며 물을 서너 번 엎지르더니 남편은 내가 했던 대로 따라 했다. 딸꾹질이 멈췄다.     “드디어 멈췄다! 얼굴이 핼쑥하네. 그럼 푹 자요.”   등을 두들겨 주고 나도 잠에 빠졌다.     어제저녁 먹고 딸꾹질하기 시작해서 거의 12시간 만에 멈췄다. 헛구역질하고, 숨을 쉬지 않고, 찬물 마시고, 놀래주고, 콧속을 간지럽히고, 설탕을 한 수저 먹고, 바나나를 먹어도 멈추지 않던 것이 드디어 멈췄다. 구글에 있는 딸꾹질 해소 방법은 죄다 했다. 구글이 있는 세상이 고맙다.     아침 먹는 남편의 커다란 얼굴이 작아 보인다. 그 사이에 사람이 훅 갔다.   ‘딸꾸욱’   “아이고 깜짝이야! 또 해. 질기네. 다시 하자.”   남편은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물이 든 종이컵에 입을 처박고 컵 바깥쪽으로 물을 마셨다. 그런데 종이컵 안에 처박힌 입이 빠지지 않았다. 오리 주둥이로 나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나는 종이컵을 냅다 잡아당겼다. 남편의 주둥이가 빠지며 뒤로 자빠질 뻔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     다시 ‘딸꾹’ 소리가 날 것 같아 불안했다. 귀를 기울이며 나는 생각했다. 맞는 설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짓말을 하면 딸꾹질한다는데. 특히나 양심에 반하는 큰 거짓말을 하면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는데. 남편이 나에게 뭔가 잘못한 일로 찔리는 것이 있나?’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딸꾹질 딸꾹질 해소 어제 남편 오리 주둥이

2024-03-08

[글마당] 서울보다 더 멋진 부산

해운대 갤러리가 많은 달맞이 길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 해변 풍경을 감상하고 내려와 모래사장에 앉았다. 물색이 카리브해만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부산 사람들이 서울 사람들보다 옷을 심플하고 세련되게 입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녁에는 센텀 신세계 백화점에 갔다. 맨해튼 5번가에 있는 유명브랜드 스토어를 옮겨 놓은 듯 뉴욕에 있다고 잠깐 착각했다. 일 층에 찜질방이 있다. 시설이 어마어마해서 그야말로 신세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외국인에게는 한 사람당 달걀 세 개를 무료로 주는 쿠폰을 받았다. 아이들은 먹고 싶지 않다고 해서 내 것만 받아먹다가 체한 듯 목이 메었다. ‘달걀을 한 사람당 무료로 3개씩 먹여 놓고 음료수를 팔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음료수 가격이 비싸다.     부산에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갔다. 제주도 음식이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았다.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싸다. 그나마 아이가 운 좋게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했다는데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방 크기와 시설은 꽤 좋았다. 호캉스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알 것 같다. 호텔 밖에 나갈 필요 없이 모든 시설이 최고다. 야밤에 밖은 추운데 야외 온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자니 ‘돈이 좋긴 좋구나. 그래서 사찰도 찜질방도 돈을 벌려고 야단법석이구나.’ 나도 돈을 더 벌어야 하는 게 아닐까?     렌터카로 한라산 언저리와 바닷가 서너 곳을 드라이브했다. 파킹 자리가 너무 좁다. 차 옆면에 콕콕 찍은 것이 눈에 띄어서 차를 돌려줄 때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했다. 롯데 렌터카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젊은 남자가 쓱 둘러보더니 끝났다며 잘 가라고 했다. 일 처리를 빨리하는 놀라움에 감탄사가 나왔다. 8분마다 있는 공항으로 가는 무료 버스 서비스도 받았다.     한국에서는 일단 식당에 들어가면 그림이 있는 컴퓨터 화면으로 큰아이가 주문한다. 작은아이는 수저와 냅킨을 테이블에 붙은 서랍에서 꺼내 놓는다. 식당에 비치해 놓은 각자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기본 반찬은 깍두기를 많이 먹는 남편이 가져온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고집 센 남편의 기를 꺾지는 못하지만, 아이들과 남편 사이의 발란스를 유지하기 위해 추임새를 넣는다. 주문이 들어가면 벌겋게 달궈진 숯이 나온다. 숯에 구워 먹는 고기 맛이 일품이라며 아이들이 즐겼다. 내가 장단을 맞춘 덕에 해물을 좋아하는 남편도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자고 양보하고 아이들도 아빠가 좋아하는 생선과 해물을 먹자고 양보했다. 나는 김밥과 오뎅이 먹고 싶은데 남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기회만 보고 참다가 결국, 떡볶이와 순대는 먹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음식이 다 맛있다. 친절하다. 빠르다. 빵도 맛있고 커피는 진하다. 모든 시스템이 빨라서 “아니 벌써”를 연발하며 돌아다녔다.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조용히 살던 나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왜 친구들이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지 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시아나 비행기를 탈 때부터 빠른 친절함은 시작한 것 같다. 비행기에서 서울 갈 때는 비빔밥을 먹었다. 뉴욕으로 돌아올 때는 쌈밥을 먹었다. 쌈밥이라는 한국말이 뭔지 몰라서 먹지 못한 큰아이는 지금까지 아쉬워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서울 부산 서울 사람들 부산 사람들 사람당 무료

2024-02-23

[글마당] 훈이라는 흔적

바람처럼 빠져버린 그 지퍼 속 찬 언어는     통곡이지만 가을의 연적은 아니었네       피는 잎도 지는 꽃도 열매가 아니듯   잎도 꽃도 아닌 삶의 의미만 뒤적이다가 사계를 만났는가     오계를 당겼는가 부산한 세월만 나의 젊은 계절이었네         너에겐 익숙하지 않은 신기한 계절 하나가 있을 뿐이었는데   살아가는 일이 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아이는 책장에 눈물 쏟고 어미는 종아리에 푸른 줄 긋고   산새가 숨어서 울더냐 꽉 찬 하늘에 들판이 없더냐     물처럼 흘러가면 되는 것을   무거운 충족의 조건을 너무 일찍 배워버린 탓에     너의 입술은 없고 잔인하도록 끌어올린 끈기의 수액만이     눈부신 오늘을 숨 쉰다       기억의 자리에도 채찍이 서리는데     뛰는 맥박과 맞는 맷집에 우주는 있었을까     뜻 모를 주문만 외워준다고 그것이 훈육이었고 사랑이었을까     훈이라는 흔적 아래 어린 소매 끝은 해묵이요   어미의 부끄러움은 우주를 보는 날개 끝이라   매찬 어미는 지금 울고 너는 벌써 울었다       이 고백의 아픔에는 이름도 없어   겨울 내린 잎맥 하나 화려하지도 무성하지도 않아   가지 끝 바람에 그늘 없는 양지도 차다 손정아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흔적 흔적 아래 날개 끝이라 계절 하나

2024-02-16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