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소피아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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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a snowstorm, 2024, digital painting.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핍홀로 내다봤습니다. 소피아 딸 지니가 서 있었습니다.
“웬일이니?” “아줌마 집에 들어가도 돼요?”
“엄마가 찾지 않을까?” “엄마는 아침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갔어요.”
“어린 너를 두고 어딜가? 아빠는?” “어제 고모와 함께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았어요. 고모가 나를 데리러 왔나 봐요.”
세상이 온통 눈으로 수북이 쌓인 어느 날, 훤칠한 키와 뚜렷한 이목구비의 이국적인 여자가 내가 사는 건물 안을 기웃거렸습니다. 불안과 초조로 방황하는 애처로운 그녀의 눈빛이 나와 마주쳤습니다. 사시나무 떨듯 근심으로 가득 찬 시선은 구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눈 덮인 시베리아를 헤매는 주인공 라라를연상시켰습니다.
“한국에 파견된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미국에 와서 퀸즈에 살았어요. 신문사에서 일하던 남편이 갑자기 아파서 4년 전에 시집이 있는 오하이오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시누에게 아이를 맡기고 직장을 다녔지요. 제가 싫다는 데도 부득부득 시누 부부가 아이를 자꾸 입양하겠다는 거예요. 아이를 뺏길 것 같아 겁이 났어요. 마침, 온라인으로 아파트 렌트한다는 광고를 보고 야밤에 아이와 남편을 데리고 도망치다시피 왔어요.”
이사 오자마자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네 고모가 너를 예뻐했다며.”
“아니요. 때리고 야단쳤어요. 저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세요?. 저는 아줌마가 좋아요.”
한숨 쉬며 말하는 아이의 큰 회색 눈이 물기로 반짝였습니다.
“아이고, 불쌍한 것.”
나도 갑자기 눈가가 젖고 목멘 소리로 아이를 끌어안았습니다. 다섯 살인 아이는 백인 아빠를 닮아 금발 아래 회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른 흉내를 내는 제스쳐와 말씨로 쉬지 않고 떠들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 났습니다. 핍홀로 내다보니 아이 엄마 소피아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 지니를 보지 못했나요?” “우리 집에 있는데요.”
“너 여기서 뭐 하니? 얼마나 찾은 줄 알아. 말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문 열고 나가면 어떡해.”
아이는 어른처럼 꼰 다리 위에 손으로 턱을 바치고 생각에 잠긴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밖에 나갔다 오셨나요? 고모가 오셨다면서요?”
“고모요? 우리가 어디 사는 줄도 모르는데 고모가 어떻게 와요? 저는 온종일 집에 있었어요.”
나는 누구 말이 진실인지 헷갈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녀를 번갈아 쳐다봤습니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훌쩍 이사갔습니다.
어른들의 불안한 틈바구니에서 자란 아이의 눈물 젖은 회색 눈동자가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 날이면 떠오르곤 합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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