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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크리스마스 카드

한 해를 보내며 지인들과 카톡 카드로 연말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카톡이 가지 못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 계신 분들에게 예쁜 카드에 몇 글자 써서 보내드리고 싶다. 저승에서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배달할 수 있고 받을 수만 있다면 여러 장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준비하리다. 정성스러웠던 손길들. 오매불망 기도로 한 평생을 살아가신 분들. 내 성장을 지켜보며 격려를 보내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흔하고  쉬운 말들을 왜 못해 드렸던가?  뒤늦게 나마 저승행 우편 열차에 실어 보내고 싶은 말들이다.  
 
어린 날 시골 마을에 있던 작은 교회에는 일요일이면 굵은 밧줄에 잡아당겨 진 쇠 종이 뎅그렁뎅그렁 울렸다. 교회 안 흰 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쌀이 든 작은 천 봉지들이 이름표 밑에 가지런히 걸려 있었고, 흰색 한복과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교회에 들어간 어른들은 나라의 평안을 위해, 불행한 영혼들을 위해 뜨겁고 열렬한 기도를 했다.    
 
어린이들은 유년 주일학교에서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배우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언덕에 오르는 그림을 보고 슬퍼하기도 했다. 평소에 교회 마당은 동네 아이들이 어스름이 질 때까지 줄넘기하고 땅뺏기 놀이를 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때는 아주 특별한 곳으로 변했다.  교회 입구에 빨간색 리본과 녹색 소나무 줄기로 아치가 만들어졌다. 교회 안에는 산에서 베어온 아담한 소나무에 흰 솜이 눈처럼 여기저기 얹혀지고, 작은 방울이 달리고 꼬마 등이 반짝였는데 아주 낯설고 이국적인 정취로 우리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작은 교회의 마룻바닥은 늘 깨끗하고 반들거렸으나 난로는 없었다. 하지만 한 달 전부터 모여 노래를 부르고, 성모마리아가 되어 앉아 있는 자세를 연습하는 등 크리스마스 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날 밤이 되면 평소 교회에 오지 않던 마을 어른들도 교회에 왔다.  강도상 뒷벽에는 검은 우단 위에 금박 큰 별이 붙여지고 동방박사 세 사람이 선물을 들고 걷고 있었다. 우리는 천사의 날개 대신 어머니들 흰 속치마를 뒤집어쓰고 성극을 하는데 무대 옆 커튼에 숨어 대사를 속삭여 준 반사 선생님이던 친척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추워서도 떨었고, 실수할까 봐 긴장되어 떨기도 했다. 그 시절 나는 사슴이 달리는 설경에 뿌려진 반짝이와 교회 종탑이 그려진 카드를 보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크리스마스를 상상하고 동경했었다.  
 
어른이 되어도 김종삼 시인의 ‘북치는 소년’ 시를 읽고 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이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羊(양)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먼 옛날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마당에서 마당으로,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던 새벽 송은 어둠과 밝음이 만들어 낸 멋진 코러스였던 것 같다. 여기는 미국이다. 밤이면 은하수가 흐르고 별이 하늘 가득 반짝이던 마을. 작은 교회의 창호지 안에서 불빛이 환하던 날의 지극히 순수하고 거룩했던 밤을 카드 속 풍경으로 떠올린다.   

권정순 / 전직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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