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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셸터(Shelter)

지난 5월 아이슬란드 여행 때, 여행사에서 마련해 준 첫 호텔은 허허벌판에 자리 잡은 약간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미국 도로변에 위치한 모텔 수준으로 침대도 형편없었다. (두 번째 호텔은 위치도 편리하고 시설이 좋았다) 보이는 것은 얼어붙은 땅, 멀리 말들이 추운 풀을 뜯고 있었고 보일 듯말 듯 한 먼 계곡에서 수증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침 9시가 되자 찬란한 햇빛이 두꺼운 창을 뚫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고마웠다. 순간 어둡고 추운 광야에서 헤매다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을 발견하고 문을 두드린 옛날 아이슬란드인들을 연상했다. 문을 열어주니 얼마나 고마워했을까. 난방이 없어도, 침대가 없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저 눈바람을 막아주면 될 것이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따뜻한 침대에 지친 몸을 던졌다.  
 
며칠 전 인터넷 뉴스에 스코틀랜드 북해 근처의 한 여인숙 소개가 있었다. 이곳에 방을 예약하고 찾아가는 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 겨우 자동차 한 대 지나갈 만한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는 바다에 붙어 있다. 파도가 자동차를 덮쳐 운전자나 승객은 물벼락을 맞고 자칫하면 바다에 빠질 수도 있다. 이 길을 몇 시간 운전해 무사히 통과해야 바닷가 언덕에 있는 여인숙에 도달한다. 사람들은 모험을 좋아해 크리스마스 연휴, 가장 춥고 어두울 때 이곳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산불을 감시하는 망루가 있다. 산 정상, 숲속에 외롭게 서 있는 초소, 밤이면 늑대의 울음,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이 외딴 산중에서 누군가가 산불이 나는지 지켜야 한다. 공원 관리국은 선별적으로 이 망루를 대여하고 있는데 값도 비싸고 신청자가 많다고 한다.
 
내가 자주 찾는 Harriman State Park 트레일에는 7~8개의 셸터가 있다. 험한 바위산을 타다가 쉬면서 점심을 먹는다. 누군가 배낭에서 따뜻한 커피를 꺼내 나누고 가끔 라면을 끓인다. 이 셸터는 산중에서 길을 잃거나 지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나는 겁이 많아 어둡기 전에 하산하지만 가끔 밤에 산중에서 방향을 잃고 공포에 떠는 상상을 한다. 우선 동굴이 있는지 살필 것이다. 산짐승이 무서워 큰 나무로 앞을 가리고,  외투로 몸을 감싸며 동이 트기를 고대할 것이다. 하룻밤 살아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나에겐 비록 짧았지만 배고프고 추운 날들이 있었다. 몹시 춥거나 더운 날, 허기질 때는 옛날 생각을 한다. 잠자리 불평, 음식 타령은 가능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요즘같이 추운 날 밤에는 낮에 본 홈리스를 생각한다. 비바람 몰아치는데 허름한 지붕이라도 찾았을까. 몸이 얼지나 않았으면.
 
나이가 많아지면서 세상에 부러운 것, 무서운 것이 적어지고, 사람 사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느끼게 된다. 머지않아 현업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면 배낭 짊어지고 작품의 현장을 찾아가거나 지구의 외딴 마을을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시와 에세이를 쓰고 싶다. 나는 점점 ‘그저 그런 글’을 남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트레일에  발자국만 남겨야지 휴지를 버리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는 셸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 들어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들, 다시 일어설 때까지 쉬어갈 수 있도록 누군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나의 셸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사람 사는 의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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