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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 영웅’ 랠프 퍼켓 별세…한·미서 모두 최고훈장

70년 전인 2021년 5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육군 레인저를 지휘한 공로로 뒤늦게 조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았던 랠프 퍼켓 육군 퇴역 대령이 지난 8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콜럼버스 국립보병박물관은 이날 퍼켓 대령이 조지아주 콜럼버스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립보병박물관의 자료에 따르면 육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그는 1926년 조지아주 티프톤에서 태어났다.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50년 6월 당시 중위였던 고인은 51명의 레인저와 한국 군인들로 구성된 제8 레인저 중대를 창설하고 훈련시키는 임무를 맡아 부산에 왔다.   고인은 그해 11월 25일 북한과 중국의 국경으로부터 약 60마일 떨어진 전략적 요충지인 평안북도 운산의 205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아 중대원들을 이끌고 중공군 6개 대대와 사투를 벌였다. 결국 고지를 점령했지만, 이 과정에서 허벅지에 수류탄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11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은 그는 제대를 택하는 대신 제101 공수사단 중령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등 계속 활약을 하다가 1971년 대령으로 전역했다.   이러한 공로를 기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고인에게 미국의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지난해 4월에는 미국을 국빈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한국 대통령이 외국 방문 시 현지에서 무공 훈장을 수여한 첫 사례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오찬에 참석한 그의 휠체어를 밀고 무대로 나아가, 직접 가슴에 훈장을 달아줬다. 장연화 기자 chang.nicole@koreadaily.com최고훈장 게시판 한국전 영웅 모두 최고훈장 한국전쟁 당시

2024-04-09

[열린광장] 한 세기의 삶을 산다는 건…

오래전에 100살을 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숼리 힐다 와인드롭이란 여성이 프랭크 시내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를 즐겨들었다고 한다. 그 노래의 ‘way’ 가 그녀의 삶의 방식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삶의 길을 택한 여인이었던 같다.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학자이며 외교전략가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지난달 100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기 마련인데 나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나이란 ‘생물이 태어나서 지낸 햇수’를 말하는데 사람도 생물이니 이 범주에 들어간다. 창조주가 만든 해를 지구 덩어리가 365일 걸려서 한 바퀴 돌아오면 한 해라 하니 그 도는 숫자가 사람에겐 나이가 되는 셈이다.   옛날 한국에서는 예순 살만 되면 오래 살았다고 환갑잔치를 요란스럽게 벌이곤 했으며, 일흔 살을 넘기기 어렵다보니 ‘70 고래희’란 말도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 여든 살을 살게 되면 더 오래 살고 싶다는 의미에서인지 망구순 (望九旬, 짧게는 망구)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 한다.  아무리 나이 든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이란 놈이 오래 살겠다는 늙은이의 기를 딱 꺾어 놓고 만다.  그래서 모세는 ‘세월이 제아무리 길다 해도 주의 목전에선 1000년이 지나간 어제 같고 밤의 한 점 같을 뿐’이라고 읊었다.     본인의 나이가 1000살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프랑스의 전쟁 영웅 나폴레옹이다. 프랑스군이 밀랑을 점령하기 전날, 그는 어느 부인으로부터 저녁 만찬에 초대받았는데 이 부인이 나폴레옹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장군님!  장군께서는 이미 많은 전쟁을 했고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는데, 도대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이 물음에 나폴레옹은 “부인!  나는 오늘 아직 이렇게 젊지만.  내일은 1000살이 됩니다.” 나뽈레옹은  ‘내일은 밀랑을 점령할 것’ 이란 말의 발음이 ‘내일은 1000살이 될 것’ 이란 말의 발음과 똑같은 데서 온 것을 재치있게 대답한 것이다.   오늘 한 세기를 넘게 사는 분이 있다.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다. 그는 “내가 아는 분들 가운데  일곱 분이 100세를 넘게 사셨는데 이분들의 공통점은 재산이나 명예엔 욕심이 없고,  화를 내거나 남을 욕하지 않는 감정이 아름다운 분들이에요”라고 말한다     위의 김 교수 말을 생각해 보면서 내 나름대로 그의 철학 사상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 높은 곳에 떠 있는 하얀 구름 사이로 밝게 보이는 달과 별, 그리고 푸른 하늘이 아름답고 착하고 참된 삶을 살라고 속삭이고 있지만, 그달과 별과 하늘이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구려!”    윤경중 / 연세목회자회 증경회장열린광장 연세대학교 김형석 전쟁 영웅 헨리 키신저

2023-12-24

[아메리카 편지] 영웅 만들기

얼마 전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캐나다 방문 기념으로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와 함께 의회에 참석했다. 그때 98세 우크라이나 출신의 퇴역 군인이 소개되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와 맞서 싸웠다는 영웅이라는 이유로 기립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나치 친위대 ‘갈리시아’의 제1 우크라이나 사단 소속 대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캐나다는 국제적 망신을 샀다. 트뤼도 총리는 공식 사과했고, 하원 의장 안토니 로타는 사임했다. 러시아는 캐나다를 맹비난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갈리시아 사단에 자원한 이들은 고국을 소련의 끔찍한 지배에서 독립시키기 위해 활동한 전쟁 영웅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복잡한 지정학적인 세력에 얽매인 피해자라는 사실은 한국인으로서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원전 6세기 말 아테네의 아고라에 세워진 조각상 ‘폭군 살해자들(Tyrannicides)’이 떠올랐다.   이는 그리스 역사상 처음으로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실재 인물을 기념하는 동상이었다. 젊은 청년 하르모디우스와 그의 연상 연인인 아리스토게이톤이 검을 내리치는 순간을 포착한 모습이다. 이들은 아테네의 폭군을 암살한 주인공으로, 민주주의를 일으킨 영웅으로 추대받았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기원전 5세기의 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이들 두 명의 영웅담을 개인적인 명분의 암살이라고 지적한다. 하르모디우스가 폭군의 아우 히파르코스에게 성희롱당한 것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된 사건이며, 폭군 히피아스가 아닌 그 아우를 암살했다고 상기시킨다. 새로운 민주정치 체제를 도입한 아테네는 시민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영웅이 필요했고, 이 두 인물이 퍼펙트한 모델로서 부상했던 것이다. 인류사에서 영웅이 만들어지고 취소되는 수많은 사례의 원천이라 볼 수 있겠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영웅 우크라이나 사단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 출신

2023-10-13

[아메리카 편지] 영웅과 죽음

코로나와 출산 휴가를 거치고 3년 만에 강의실에 돌아왔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이라는 제목으로 120여 명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마주 보며 강의하고 있으면, 내가 왜 굳이 교수 노릇을 해야만 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팬데믹 기간 동안 집에서 온라인수업 들으며 자란 아이들이다. 그래서인지 대면 수업을 기대하는 열렬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서양문화의 기층을 이루는 그리스 신화 영웅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 주제로 꼽히기 때문에 강의는 수월하게 진행된다. 도덕성이나 희생정신 같은 것이 안중에도 없는 그리스 영웅 특유의 성격이 우리가 생각하는 영웅이 갖춰야 할 성격과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좀 코믹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학기 첫 수업 들어가면서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비롯한 많은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영웅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가 ‘죽음’이라는 사실이 예전처럼 가볍게 설명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가 트로이 전쟁 때 싸움을 거부하고 있을 때 그의 어머니 테티스가 한 말이 영웅과 죽음의 관계를 정확히 포착한다.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너는 부와 건강을 누리고 오랜 삶을 살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너를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싸우면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만 대신 네 이름의 영광(kleos)은 영원할 것이다.”   고대인들에게는, 죽음을 통과해야만 영웅 추대를 받고 컬트가 생긴다는 관념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사춘기 시절 코로나 팬데믹을 겪고, 지난해 러·우크라이나 전쟁을 목격하며 큰 이 학생들은 벌써 죽음으로 둘러싸인 삶을 겪었다(특히 토론토는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많은 도시다). 죽음을 택한 아킬레우스를 영웅으로 추대하는 인류사의 경향을 가르치면서, 희생을 요구하고 죽음을 낭만화하는 가치전략이 고대사회에서 그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영웅 죽음 영웅과 죽음 그리스 영웅 영웅 추대

2023-09-29

[영화몽상] 모험 영웅의 마지막 귀환

1980년대의 영화 팬이라면 ‘인디아나 존스’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4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은 2008년인데, 1편 ‘레이더스’부터 3편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까지는 모두 80년대에 개봉했다.   개인적인 기억은 2편 ‘인디아나 존스’부터다. 중·고교마다 전교생 단체관람으로 ‘킬링 필드’를 보러 가던 때로 기억하는데, 이웃 학교 고학년들이 단체관람을 빠지고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업 대신 영화를 보는 자체가 좋았던 터라 그 이유를 몰랐다. 바로 그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였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배경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액션, 임기응변에 능한 주인공의 매력과 흥을 돋우는 음악까지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맛을 제대로 알려줬다. 주인공이 고고학자인지, 고고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정확히  알았던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요즘 처음 봤다면 감상이 좀 달랐을지 모르겠다. 서구 이외의 세계를 묘사하는 할리우드의 시선, 남의 나라 유물을 약탈했던 제국주의 역사를 의식하며 비판할 점부터 찾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새로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은 4편 이후 15년 만에 나온 5편. 30대에 인디아나 존스를 연기하기 시작한 해리슨 포드는 이제 80대 초반이다. 극 중 젊은 시절 묘사에 디지털 기술의 도움을 받을 거라는 건, 이미 알려졌던 터. 영화를 보면서는 엉뚱한 걱정을 혼자 했다. 대역 등이 있었더라도 액션 장면이 이 배우에게 과하진 않았을까, 이러다 인공지능으로 해리슨 포드를 만들어 시리즈를 이어가면 어쩌지 등등. 알고 보니 전편들의 설정에 따르면 인디아나 존스는 1899년생. 1969년이 주요 배경인 이번 영화에서는 아직 70대 초반이다. 또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영화사 디즈니는 이번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어찌 됐건 영화의 마지막 대목에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교수도 퇴임하고 아내와도 별거하던 인디아나 존스는 옛 동료의 딸 때문에, 나치 잔당에 맞서 고대 아르키메데스의 발명품을 찾으려는 모험에 나섰다가 무사히 집에 돌아온다. 명성을 얻는 대신 상처 많은 삶을 마주하며 회복을 꿈꾸는 결말이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아닌 다른 감독이 이 시리즈를 연출하는 건 처음인데, 각본에도 참여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이 시리즈의 미덕을 잘 아는 듯 보인다. 위치 추적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는 시대를 배경으로, 물론 실제는 디지털 기술을 많이 결합했겠지만, 아날로그 단서와 탈 것만으로 시리즈의 고전적 추격전을 펼친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할리우드에서도 실현되기를,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도 여기서 마무리되기를 바라게 된다. 이후남 /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영화몽상 모험 영웅 할리우드 오락영화 영화사 디즈니 추격전과 롤러코스터

2023-07-09

[열린광장]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세상이 마음과 몸의 질병을 키울 때/ 그리고 우리의 도시들을 괴롭힐 때/ 의식이 없는 유혈사태가 일어날 때/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우리의 미소가 갑옷 속에 가려질 때/ 그리고 우리의 소중하고 제한된 웃음이 숨막히고/ 그리고 다이아몬드와 같은 우리의 꿈이/ 압박에 무너져 그 재가 흩어질 때/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란 피부 때문에 두들겨 맞았을 때/ 우리 여성들이 괴롭힘을 당할 때/ 우리 남성들이 거세되고 굴욕을 당할 때/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푸른 수호자들이 우리를 버릴 때/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우리는 표적 된 사람들/ 역사 속 오점의 순교자들/ 영광과 순수함으로 반짝이는 도살된 어린 양들/ 우리가 무리 속에서 무기력하지만 싸우고 노래하는 방법은 바아 바아 바아’   지난해 말 뉴욕주 이민자 신분 차별 금지법 제정을 환영하는 회견장에서 민권센터 박우정 이민자 정의 활동가가 연설 대신 자신이 쓴 시를 읽었다. 뉴욕주 아시안 아메리칸 7명 가운데 1명이 서류미비자이며 박 활동가도 같은 처지다. 서류미비 청년 추방유예(DACA) 신분을 얻어 합법 취업을 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미국에서 쫓겨나는 것이 유예됐을 뿐이다. 2년에 한 번씩 DACA 신분을 갱신하고 있는 박 활동가와 같은 청년들이 지금 60만여 명이다.     DACA 신규 신청은 법원 소송으로 막혀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DACA 신분을 얻지 못하는 서류미비 청년들이 해마다 10만 명씩 늘어난다. 애초 DACA 규정인 16살 이전, 그리고 2007년 6월 15일 이전에 미국에 왔어야 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해 아예 DACA 신청도 못하는 서류미비 청년들까지 모두 합하면 200만 명에 달한다. 전체 서류미비자 1100만 명의 18%가 넘는다. 이 가운데 한인 청년이 5만여 명이다. 인구 조사 집계에 잡힌 전체 한인 서류미비자 13만8000여 명의 3분의 1이 넘는다.       이들은 대다수가 미국을 내 나라로 알고 살아온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미국에서 쫓겨나게 될지 날마다 떨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겐 지금 상황이 섬찟하기에 박우정씨가 쓴 시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영웅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영웅들은 바로 자신들이기에 싸우고 노래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비장함이 같은 처지에 놓여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색할 수 있다. 그만큼 서류미비 청년들의 삶이 다른 까닭이다.   새해에도 서류미비 청년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모으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국의 청년들이 모이고 있다. 민권센터가 함께 활동하는 전국 한인 이민자 권익운동 단체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는 매달 두 번째 주 목요일 온라인으로 서류미비자 커뮤니티 모임(문의 이메일 jenny@nakasec.org)을 열고 있다. 모임에서는 서로 격려하고, 기쁨을 찾고, 우애를 다지는 시간을 갖는다. 여러 활동가들이 새해를 맞아 새 길을 찾고 있다. 함께 어우러져 힘을 키우는 만남이다. 올해도 시민권자, 영주권자, 입양인 등 한인사회 모두가 이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 좋겠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열린광장 영웅 서류미비 청년들 서류미비자 커뮤니티 전체 서류미비자

2023-01-15

[커뮤니티 액션]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세상이 마음과 몸의 질병을 키울 때/ 그리고 우리의 도시들을 괴롭힐 때/ 의식이 없는 유혈사태가 일어날 때/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우리의 미소가 갑옷 속에 가려질 때/ 그리고 우리의 소중하고 제한된 웃음이 숨막히고/ 그리고 다이아몬드와 같은 우리의 꿈이/ 압박에 무너져 그 재가 흩어질 때/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노란 피부 때문에 두들겨 맞았을 때/ 우리 여성들이 괴롭힘을 당할 때/ 우리 남성들이 거세되고 굴욕을 당할 때/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푸른 수호자들이 우리를 버릴 때/ 누가 우리의 영웅들이 될 것인가/ 우리는 표적 된 사람들/ 역사 속 오점의 순교자들/ 영광과 순수함으로 반짝이는 도살된 어린 양들/ 우리가 무리 속에서 무기력하지만 싸우고 노래하는 방법은 바아 바아 바아”   지난해 말 뉴욕주 이민자 신분 차별 금지법 제정을 환영하는 회견장에서 민권센터 박우정 이민자 정의 활동가가 연설을 하는 대신 다소 섬찟한 자신이 쓴 시를 읽었다. 뉴욕주 아시안 아메리칸 7명 가운데 1명이 서류미비자이며 박 활동가도 같은 처지다. 서류미비 청년 추방유예(DACA) 신분을 얻어 합법 취업을 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미국에서 쫓겨나는 것이 유예됐을 뿐이다. 2년에 한 번씩 DACA 신분을 갱신하고 있는 박 활동가와 같은 청년들이 지금 60만여 명이다. DACA 신규 신청은 법원 소송으로 막혀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DACA 신분을 얻지 못하는 서류미비 청년들이 해마다 10만 명씩 늘어난다. 애초 DACA 규정인 16살 이전 그리고 2007년 6월 15일 이전에 미국에 왔어야 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해 아예 DACA 신청도 못하는 서류미비 청년들까지 모두 합하면 200만 명에 달한다. 전체 서류미비자 1100만 명의 18%가 넘는다. 이 가운데 한인 청년이 5만여 명이다. 인구 조사 집계에 잡힌 전체 한인 서류미비자 13만8000여 명의 3분의 1이 넘는다.       이들은 대다수가 미국을 내 나라로 알고 살아온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미국에서 쫓겨나게 될지 날마다 떨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겐 지금 상황이 섬찟하기에 박우정씨가 쓴 시도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영웅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영웅들은 바로 자신들이기에 싸우고 노래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비장함이 같은 처지에 놓여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색할 수 있다. 그만큼 서류미비 청년들의 삶이 다른 까닭이다.   새해에도 서류미비 청년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힘을 모으고 있다.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국의 청년들이 모이고 있다. 민권센터가 함께 활동하는 전국 한인 이민자 권익운동 단체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는 매달 두 번째 주 목요일 온라인으로 서류미비자 커뮤니티 모임(문의 이메일 jenny@nakasec.org)을 열고 있다. 모임에서는 서로 격려하고, 기쁨을 찾고, 우애를 다지는 시간을 갖는다. 여러 활동가들이 새해를 맞아 새 길을 찾고 있다. 함께 어우러져 힘을 키우는 만남이다. 올해도 시민권자, 영주권자, 입양인 등 한인사회 모두가 이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 좋겠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영웅 서류미비 청년들 서류미비자 커뮤니티 전체 서류미비자

2023-01-12

한국전 장진호 전투 영웅 별세

  ■  「   」   6.25 전쟁의 격전지였던 장진호 전투에서 활약했던 스티븐 옴스테드(사진)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92세.   24일 미국의소리(VOA)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일 버지니아주 애넌데일 자택에서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을 거뒀다. 뉴욕주 올버니 출신인 옴스테드 장군은 미국 해병 1사단 소속 병사로 6.25 전쟁에 참전해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에서 맹렬히 싸웠다. 장교로 진급한 뒤 1989년 3성 장군으로 예편하면서 41년간의 군 생활을 마쳤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부 부차관보를 지냈으며 장진호 전투 기념비 건립 추진 단체의 고문을 맡았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12월 미국 해병 제1사단이 함경남도 장진군과 함주군 일대에서 영하 30도 안팎의 혹한 속에서 중공군 제9병단과 맞붙은 전투다. 미 해병대는 당시 10배 가까이 많은 12만명 규모의 중공군을 상대로 성공적인 퇴각 작전을 수행했다.   옴스테드 장군은 2017년 6월 29일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박물관의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났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옴스테드 장군에게 고개를 90도 가까이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옴스테드 장군은 문 전 대통령의 양복 옷깃에 장진호 전투의 상징인 ''고토리의 별'' 배지를 달아줬다.   문 전 대통령은 미군의 도움으로 흥남 철수 때 월남한 실향민의 아들로서 미군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10만명의 피난민을 구한 흥남 철수는 미 해병대가 장진호 전투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면서 가능했던 작전이다.   고인의 장례식은 27일 콴티코의 해병대 기념 예배당에서 열리며 콴티코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철재 기자게시판 장진호 장진호 영웅 장진호 전투 한국전 장진호

2022-07-25

피겨 영웅 데니스 텐 사망

'의병장의 후손'인 남자 피겨스케이팅 데니스 텐(25·카자흐스탄)이 칼에 찔려 사망했다. 카자흐스탄 뉴스통신사 카즈인폼은 19일 "데니스 텐이 이날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병원에 후송됐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라고 보도했다. 아구르탄벡 무하메디울리 문화체육부 장관은 쿠르만가지-바이세이토바 거리에서 데니스 텐이 자신의 승용차 백미러를 훔치는 범인 두 명과 난투극을 벌이다 칼에 찔렸다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엘나르 아킴쿠노프 보건부 대변인은 텐이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범인 2명을 수배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출신인 텐은 고려인의 혈통을 이어받아 한국 피겨 팬들에게도 친숙한 선수다.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해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도 출전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와도 절친하고 김연아의 매니지먼트사인 올댓스포츠 소속으로 김연아의 아이스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텐은 구한말 의병장인 민긍호 선생의 외고손자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의 할머니 알렉산드라 김은 민긍호의 외손녀다. 그의 성씨인 텐은 한국의 정씨를 러시아어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2018-07-19

고 새미 리 박사…"인종차별 극복 아이콘이자 '한인 정치력 신장' 전도사"

"오렌지카운티의 큰 별이 졌다." 미국 최초의 아시아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 박사가 지난 2일 96세를 일기로 타계한본지 5일자 A-1면> 이후 그와 각별한 사이였던 한인 정치인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고 리 박사는 올림픽 영웅임은 물론 인종차별 극복의 아이콘이자 일찌감치 한인 정치력 신장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에 기여한 전도사였다는 것. 리 박사는 지난 2일 오후 9시30분쯤 뉴포트비치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38년간 리 박사 내외와 친하게 지내온 미셸 박 스틸 OC2지구 수퍼바이저는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신기하게도 2일 밤에 이 박사의 꿈을 꿨는데 그 다음날 부음을 들었다.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박사는 내가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선거 때마다 기금모금을 도와주고 내 홍보 사인을 받아가 이웃에게 나눠줬다. 내 수퍼바이저 취임식에도 참석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고 한인들의 정치력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대견해 한 분이다"라고 말했다.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도 "이 박사는 당신께서 과거 극심한 인종차별을 극복했기 때문인지 15년여 알고 지내는 동안 한인사회 정치력 신장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2008년 시장선거에 출마하며 지지를 부탁하자 '난 골수 공화당원이지만 한인사회를 위해 당신을 지지하겠다'고 말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여러 모임에서 날 위해 찬조연설도 했다. 이후 부부동반으로 만나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이 박사는 소수계 차별이 만연하던 시절, 자신감과 위트로 이를 극복한 영웅"이라고 말했다. 영 김 가주 65지구 하원의원은 지난 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고인은 나와 내 가족에게 많은 영감을 준 존재였다. 미망인 로즈와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박사를 알게 된 것, 그가 내 아이들의 롤모델이 됐던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언젠가 천국에서 그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한편, 고인은 지난 2009년 OC 주민 중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들의 이름을 별 문양에 새긴 화강암이 애너하임 리조트 디스트릭트 보도에 영구보존되도록 하는 프로젝트인 '애너하임·OC 워크오브스타'에 11번째 인물로 헌액돼 한인사회는 물론 OC지역사회에서도 자랑스러운 주민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그는 2006년 이래 헌액된 총 12명 중 유일한 한인이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

2016-12-05

다이빙 영웅 새미 리 별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나 편견과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올림픽 다이빙 2연패를 달성한 수영 영웅 새미 리 (사진)박사가 지난 2일 별세했다. 96세.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은 리 박사를 "미국을 대표하는 운동 선수"라고 표현하며 사망 소식을 일제히 보도했다. 1920년 프레즈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으며 수영을 배웠다. 그가 다닌 수영장은 매주 수요일 하루만 비백인 아이들에게 개방됐고 유색인종 아이들이 수영을 마치면 더럽다는 이유로 물을 갈았을 정도였다. LA 소재 옥시덴털칼리지에 진학한 그는 1942년 전국다이빙선수권에 출전해 10m 플랫폼과 3m 스프링보드 종목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유색인종이 미국 다이빙 챔피언이 된 것은 최초였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USC 의대에 입학한 후에도 46년 전국다이빙선수권에서 우승하는 등 리 박사는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40년과 44년 올림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무산되면서 리 박사는 의대 졸업 이듬해인 48년에야 첫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28세라는 늦은 나이에 출전한 런던올림픽 남자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우승, 아시아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4년 후 열린 헬싱키올림픽에서도 같은 부문 금메달을 따며 리 박사는 다이빙 역사상 첫 올림픽 2연패를 한 미국인이 됐다. 그는 이듬해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체육선수에게 주어지는 설리번상을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수상했다. 그는 53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3년 동안 미군 군의관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또 그렉 루가니스, 밥 웹스터 등 세계적인 수영 스타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 같은 공로로 리 박사는 68년 국제 수영 명예의전당과 90년 미국 올림픽 명예의전당에 올랐다. 김준영 기자

2016-12-04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박사…박 탄자시리 보건학 교수 '선구자상'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박사와 보건분야 권위자 소라 박 탄자시리 교수가 영 김 가주 65지구 하원의원이 수여하는 '선구자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아태계 문화유산의 달인 5월을 맞아 내일(23일)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부에나파크 커뮤니티센터(6688 Beach Blvd.)에서 열리는 아시안 커뮤니티 문화공연 행사 주최자인 김 의원은 21일 리 박사와 탄자시리 교수에게 선구자상(Trailblazers)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김 의원은 "리 박사와 탄자시리 교수는 차세대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온 선구자다. 두 분의 공로에 감사를 표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1948년 런던 올림픽과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다이빙 종목에 미국 수영대표로 출전, 금메달을 획득하며 다이빙 플랫폼 부문 첫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한인 2세 새미 리(92)박사는 한인사회는 물론 주류 커뮤티니에서도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지난 1990년에 미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으며 2013년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LA한인타운에 '새미 리 박사 초등학교'가 설립됐다. 지난 2013년 캘스테이트 풀러턴(CSUF)의 '올해 최우수 교수'로 뽑힌 바 있는 소라 박 탄자시리(50) CSUF 보건학 교수는 20여 년에 걸쳐 남가주 아태계(Asian Pacific Islanders) 주민의 유전적 차이와 암 등 질병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연구를 통해 연방 및 가주정부 관계기관으로부터 1500만 달러 이상의 연구기금을 지원받고 있다. 박낙희 기자

2015-05-21

[영웅 김영옥] 〈21> 사무라이 김 ②

구름에 가려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독일군 기관총 소리가 들리면서 서 있던 병사가 쓰러졌다. 총탄에 맞은 병사는 기어서 나머지 반을 건넜다. 합류한 병사의 부상이 종아리 관통상으로 비교적 경상임을 확인한 영옥이 다그쳤다. "명령에 불복종한 이유가 뭐냐?" "바닥에 돌이 많아 포복으로 건너자니 아플 것 같았고 모두 안전하게 건너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바보 같은…. 혼자 귀대할 수 있겠나?" "네." "지금은 한 명도 아쉬운 처지라 아무도 붙여 줄 수 없다. 한 번 기어 보라." 병사가 기는 모습을 지켜 본 영옥은 혼자 귀대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혼자 가라고 한 후 나머지 부하들을 점검해 방향을 틀어 산길을 더듬으며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지형을 보니 저 멀리 둔덕이 있고 그 둔덕을 넘으면 원래 독일군 기관총 여러 대가 동시에 불을 뿜는 것을 보고 길레스피 대대장이 걱정했던 산으로 이어졌다. 영옥이 갑자기 부대를 정지시키면서 말했다. "모두들 저 둔덕 보이지? 이 산과 저 산 사이에 있는 저 둔덕 말이야. 저기 분명히 독일군 기관총이 있다." "…" "…" "어둡고 거리도 멀어 우리 눈에는 둔덕도 잘 안 보이는데 소대장님 눈에는 독일군 기관총까지 보입니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못해도 50야드는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둔덕을 가리키며 영옥이 하는 말을 병사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농담조로 받았다. "눈에 보여야만 아나? 내가 적군이라면 분명히 저기 기관총을 배치했을 거다. 독일군은 아주 이론적이고 원칙에 충실하다. 분명히 저기 있다. 저것을 어쩌지 않고는 목적지로 갈 수 없으니 저것부터 손을 보자." 영옥은 1개 분대는 자기를 따라 정면에서 공격하고 다른 1개 분대는 우회해 뒤에서 협공하라고 지시한 후 몸을 굽히고 일단 앞에 보이는 덤불을 목표로 소리를 죽이고 신속히 움직였다. 덤불로 몸도 감추고 덤불 사이로 앞을 더 잘 보기 위해서였다. 덤불에 도착한 영옥이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덤불에 얼굴을 바짝 갖다대는 순간 갑자기 덤불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또 다른 얼굴 하나가 반대편에서 쑤욱 나왔다. 독일군이었다. 영옥은 심장이 멎는 듯 했고 당황한 독일군 병사는 무어라 두 마디 독일어를 내뱉었다. 얼떨결에 병사가 내뱉은 말이 아마도 그날 밤 암호일 것이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영옥의 머리를 스치는 순간 영옥의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스즈끼 대위가 주고 간 권총은 이번에도 방아쇠가 잘 당겨지지 않았다. 권총이 불발이라는 것을 직감한 영옥이 이번에는 왼쪽으로 몸을 날리며 구르는 순간 영옥의 등 뒤에서 총성이 일었다. 이번에도 다케바였다. 다케바가 총을 쏘자 독일군이 기관총을 쏴대기 시작했다. 영옥이 짐작했던 그 위치였고 덤불에서는 불과 10야드 정도밖에 안 떨어진 곳으로 기관총에서 쏟아져 나오는 예광탄들이 머리카락을 스치듯 영옥 위로 날아갔다. 전장의 병사들은 가끔씩 코미디언이 되곤 한다. 철모를 짓누르며 땅으로 기어들면서도 병사들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야 정말 기관총 아냐?" "우리 소대장은 마술사라니까…." 독일군 기관총은 100발 정도만 쏘더니 갑자기 잠잠해 졌다. 뒤로 돌아간 1개 분대가 등 뒤에서 총을 들이댄 것이었다. 여기서 영옥 일행은 기관총 1대를 노획하고 독일군 7명을 포로로 잡았다. 영옥은 부하 2명이 포로들을 대대본부로 데려가게 한 후 골짜기를 타고 원래 목표했던 산으로 올라갔다. 산꼭대기로 다가서고 있다고 느낄 때쯤 위로부터 꽤 많은 무리가 땅을 밟는 군화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골짜기를 벗어나 매복한다." 영옥은 부하들을 진정시키며 골짜기를 끼고 옆으로 난 오솔길 뒤로 부하들을 데리고 몸을 감췄다. "쏠까요?" 부하들이 물었다. "아냐. 그대로 기다린다." 영옥의 머리는 컴퓨터처럼 신속히 돌아갔다. 19명이 출발해 1명은 부상으로 돌려보내고 2명은 포로들을 데리고 갔으니 나머지는 16명이었는데 독일군은 우선 숫자가 훨씬 많은 것 같았다. 영옥 일행이 매복해 있고 적군이 앞을 지나기는 하지만 선두를 공격하면 후미가 반격해올 것이고 후미를 공격하면 사실상 대부분은 놓치게 된다. 매복대형도 일렬횡대로 자칫하면 부하들 반쯤은 희생될 수 있다. 그것도 적진 속이다. 한마디로 지형도 익숙하지 않고 포진도 나쁘고 중과부적이란 얘기다. 게다가 내려오는 무리는 아무래도 길레스피 대대장이 걱정하던 기관총을 쏘던 바로 그들 같았다. 쓸데없이 부하를 희생시키며 전투를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영옥 일행의 매복을 모르는 독일군은 무어라 큰 소리로 주고받으며 골짜기를 따라 산 아래로 내려갔다. 50명은 더 될 것 같은 독일군 무리를 보고 영옥은 아마도 기관총조 5~7개는 될 것이라고 계산하면서 두서없이 왁자지껄 주고받는 말은 제대로 상황파악을 못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짐작했다. 독일군이 완전히 빠져나가기를 기다린 영옥은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하며 부하들을 데리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와 독일군 7명을 포로로 잡고 기관총 1개를 제거했던 둔덕을 다시 지나 포복명령을 어긴 병사가 부상을 당했던 지점에 이르자 독일군 한 명이 서성대고 있었다. 잡고 보니 덤불을 헤치고 얼굴을 들이밀면서 암호 같은 것을 외쳤던 독일군이었다. 영옥은 부하들을 정지시키고 말했다. "우리는 임무를 완수했지만 적은 내일 다시 온다. 너희는 여기 있어라. 나는 대대본부에 보고하고 다시 오겠다." 영옥은 포로로 잡은 독일군 한 명을 앞세우고 대대본부가 있는 600고지로 돌아갔다. 길레스피 대대장은 오랫동안 위궤양으로 고생했는데 대대장이 된 후 병세가 더 악화됐다. 영옥이 길레스피 소령에게 갔을 때 그는 막 심한 통증에서 벗어나 간신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대대장은 얼굴을 찡그린 채 배를 움켜쥐고 엉거주춤 선 자세로 신음소리를 내며 영옥의 보고를 들었다. "수고했다. 막상 보내긴 했지만 참으로 어려운 임무였는데…. 네가 떠난 후 얼마 있다가 갑자기 독일군 기관총들이 잠잠해진 것을 보고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임무를 완수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래 부하들은 어디 있나?"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 "대대장님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군은 내일 아침 저 산을 다시 뺏기 위해 분명히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까 걱정하시던 똑같은 위험에 다시 빠지게 됩니다. 우리 뒤에 적군 기관총이 깔려 있는 상황이 됩니다." "음…" "…" "그래서?" "제가 남았으면 합니다." "좋다. 그렇게 하라." 영옥은 부하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갔다.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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