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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도 꿈도 없는 미국, 그래도 여인은 꿋꿋하다

‘앨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는 남성성의 상징적 영화들을 만들어온 현대 미국영화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보기 드문 여성 주연의 로맨스 드라마다. 남성에 의존하면서도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여주인공 앨리스가 여러 남자들을 거치면서 자아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다룬다.     이 영화는 ‘내 문을 두드리는 자는 누구인가’(1969), ‘비열한 거리’(1973) 등의 독립영화로 비평가들의 관심을 모아오던 스콜세지의첫 번째 스튜디오 영화다. 이후 스타로 떠오른 조디 포스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로라 던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콜세지 영화의 단골 배우 하비 카이텔과 다이앤 래드도 모습을 보인다.     1974년 개봉된 대작들 ‘대부2’와 ‘차이나타운’에 밀려 아카데미상에서는 엘렌 버스틴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데 그쳤지만, 영국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스콜세지는 2년 후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불멸의 명작 ‘택시 드라이버’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 그는 네 작품 만에 거장의 대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의 나이 34세에 불과했던 시기의 일이다.     35세의 평범한 가정주부인 앨리스(엘렌 버스틴). 12세 아들 토미를 옆에 태우고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사막을 달리고 있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살림을 정리한 후 고향 몬터레이로 가는 중이다.     트럭 운전을 하던 건달 남편은 아들이 앨리스의 이전 남자의 아이라며 토미를 학대했다. 앨리스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아들을 새 학교에 입학시키고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가수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이들의 여정은 두 모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앨리스는 집으로 가는 도중 돈을 벌기 위해 술집 밤무대 가수로 취직하고 술집 주인 벤(하비 카이텔)을 만나 사귀기 시작한다. 그러나 곧 벤이 유부남인 사실이 드러나고 이에 실망한 앨리스는 사이코 기질이 농후한 벤을 피해 목장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연하남 데이비드(크리스 크리스토퍼슨)를 만난다. 그녀는 셔츠 단추도 제대로 끼지 못하는 데이비드의 신사다운 매너와 친절함에 호감을 느낀다. 앨리스에게 ‘완벽한 남자’로 다가온 데이비드와 함께 이제 그녀는 고통스러웠던 지난 삶을 뒤로 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가 있을까.     사회의 모순이나 부정적 현실에 비판적 시각이 강했던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의 성향이 강한 이 영화는 영웅도, 신화도, 꿈도 없는 미국 사회의 실상을 통해 남녀 관계 속에서 억압 받는 여성을 동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일부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영화의 통속적인 결말에 대해 스콜세지가 할리우드와 타협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남편을 잃고 미망인이 된 한 여인의 홀로서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녀야 하는 두 모자의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 ‘앨리스는 여기 살지 않는다’는 엘렌 버스틴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주었다. ‘레퀴엠’, ‘엑소시스트’ 등의 작품으로 당시 ‘여자 잭 니컬슨’으로 평가받던 버스틴은 최고조에 오른 감정 표현 연기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의 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아들 토미 역의 아역 배우를 리드하며 엄마와 아들이 서로에게 짜증을 내는 즉흥적이고 웃픈 장면들을 연출해냈다.   연기파 배우 다이앤 래드의 조연 연기에도 찬사가 이어졌다. 가시가 돋친 말로 앨리스를 골탕 먹이는 동료 웨이트리스 플로렌스를 연기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래드의 딸 로라 던이 영화 속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여자아이 역으로 출연한다.   엘튼 존의 ‘다니엘’, 돌리 파튼의 ‘I Will Always Love You’ 등의 노래들이 앨리스의 지치고 고달픈 인생 여정을 묘사하는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1976년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한 시트콤 TV 스핀오프가 기획되어 로버트 앨트만 감독의 연출로 9년 동안 CBS를 통해 방영됐다. 김정 영화평론가미국 여인 스콜세지 영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여주인공 앨리스

2024-09-04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휴리스틱의 선택

큰 공을 세운 신하가 있었다. 왕은 그에게 100명의 여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을 아내로 맞을 수 있는 기회를 상으로 준다. 여인들을 모두 만나보고 그 중에 한 사람을 고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왕이 제시한 조건은 조금 특별했다. 신하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 대기한다. 그리고 100명의 여인들은 한 명씩 차례로 이 공간으로 가서 신하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신하는 어떤 여인이 프로포즈를 하는 순간, 받아들이든지 거절해야만 한다. 한번 거절한 여인을 나중에 다시 선택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이 신하가 열번째 여인을 만났다면, 그는 이미 앞선 아홉명의 프로포즈를 거절한 것이다. 열번째 여인의 프로포즈마저 거절한다면, 열한번째 여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열번째 여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와 결혼해야 하고 남은 90명은 얼굴도 볼 수 없다.   우리 인생의 많은 경우, 선택의 폭은 이 신하와 같이 제한적이다. 신하는 어떻게 해야 가장 마음에 드는 여인을 고를 수 있을까? 수학자들이 계산한 가장 확률이 높은 답은 이렇다. 신하는 37명의 여인까지 순서대로 만나본다. 물론 이렇게 37명의 여인을 만나보려면 처음 37명의 프로포즈를 모두 거절 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본 37명의 여인들 중에 누가 가장 나은지를 떠올리면서 남은 63명의 여인들을 추가로 만난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63명 중에서 앞에서 만난 37명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여인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을 고르면 된다. 이렇게 할 경우에, 신하가 100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를 수 있는 확률이 37퍼센트로 가장 높다고 한다.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면 모든 인간은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이렇게 합리적이지가 않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열명쯤 보고, 선택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70명쯤 만나 본 후에 80명이 넘어가면서 조급해하다가, 허둥지둥 한 명을 고를 수도 있다. 앞서 놓쳐버린 여인들에 대해서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기존의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이었다. 모든 것을 따져보고 어떠한 순간에도 가장 옳은 결정을 하는 인간이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합리적인 인간을 호모 이코노믹스(Homo-economics)라고 부른다. 줄여서 이콘(Econ)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세상은 정보가 불완전하고 인간은 생존을 위해 효율적으로 진화된 요인들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전통경제학이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해왔다. 그래서 최근에 나온 학문이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킨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휴리스틱(Heuristic)’에 근거한 것으로 본다. 휴리스틱형 인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각자 자신만의 경험으로 체득한 나름대로의 방법에 따라서 행동한다. 어떻게 보면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행동하는 비합리적인 인간이다.   인간을 놓고 시행한 많은 실험에서 사람들은 휴리스틱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품으로 파는 상품보다 묶음으로 진열해 놓은 상품이 더 쌀 것이라고 가정하고 구체적인 가격을 비교해 보지도 않고 사는 행위, 이익보다 손해에 지나치게 민감한 행위,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행위 등은 대표적인 휴리스틱한 행동이다. 휴리스틱을 이용한 기업의 마케팅과 정부정책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미 많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이 조금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직관이나 감정에 따른 휴리스틱한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조금 피곤하고, 시간이 들더라도, 내가 하는 행동이나 결정이 ‘감’이나 ‘느낌’으로 하는 습관적인 휴리스틱한 행동은 아닌가, 잠시 고민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조금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휴리스틱 선택 휴리스틱형 인간 열한번째 여인 아홉명의 프로포즈

2024-05-30

[삶의 뜨락에서] 쓰지 못한 소설

4월 2일 아침, 바닷가 낚시터에서 제물을 발견했다. 사과 한 접시, 쿠키 한 접시가 잡은 고기를 손질하는 도마 위에 차려져 있었다. 바나나 접시는 바람에 날려 바닥에 떨어져 있고 새가 먹다 만 과자도 흩어져 있었다. 약 2년 전부터 낚시터에는 이름 모르는 남자의 사진과 함께 조화가 꽂혀 있었다. 오늘이 그가 운명한 날인지도 모른다.   로잘린 하버 바닷가에 아침마다 기도하는 아시아계 여인이 있다. 그녀는 추운 날씨에도 10분 정도 엎드려 절을 한 후 작은 배낭을 메고 달린다. 언젠가 굿모닝 인사를 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벌써 5년은 되었을 것이다. 베트남 여행 중 하노이 근처에 있는 작은 사당을 찾았다. 한 젊은 여인이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향을 피우며 절을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실해 보여 유심히 바라보았다. 여인은 처연하도록 아름다웠다.   베트남은 긴 나라다. 남쪽 호지명 시티(사이공)에서 북쪽 하노이까지는 1100마일, 인구도 8000만이나 된다. 호지명 시티는 태평양에 인접해 스페인, 포르투갈 해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피부색, 언어도 다르고 문화적으로도 유럽에 가깝다. 중국과 붙어 있는 수도 하노이는 중국의 영향권에 속하고 중국계 후손이 많다. 문화적으로도 불교, 유교 전통이 강하다. 도로변 주택에는 한 집에 3대가 기거하고 있고, 마을 입구에 귀신 먹으라고 음식을 차려 놓은 것을 목격했다.   베트남 여행이 끝날 무렵, 나는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하는 소설을 영어로 쓰고 싶었다. 기념품 가게에서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인의 사진을 사 왔다. 책의 표지로 디자인할 생각이었다. 소설의 줄거리를 구상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장교와 미군 장교 친구가 있었다.   한국 장교는 주말에 미군 장교와 어울렸다. 어느 날 카페에서 두 베트남 여자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한 여자는 하노이 근처에서 내려온 사람, 조용한 미소, 수수한 차림, 수심에 찬 얼굴에는 신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다른 한 여자는 화려한 옷차림에 발랄한 성격, 유럽 피가 섞였는지 이국적이었다. 두 여인 모두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두 장교는 어느 여자가 더 마음에 드는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한국 장교는 화려한 베트남 여인을, 미군 장교는 전통적인 북쪽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들의 데이트는 계속된다. 미군 장교는 어느 날 여자가 사는 마을을 찾아간다. 그녀는 집에 없었다. 사당에서 향불을 피우고 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먼발치에서 심각하도록 경건한 그녀를 바라본다. 여인에게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 있었다. 남자는 왜 그렇게 절을 하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매일 절을 합니다. 전쟁에서 숨진 아버지의 영혼을 위해, 참전 중인 오빠의 무사 귀환을 위해 빕니다.” 미군 장교는 충격을 받고 그녀의 무속을 받아들이고 그녀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한국 장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런 여자가 싫다. 서구적인 베트남 여자가 훨씬 좋다. 그런데 결혼은 어려울 것이다. 부모님이 월남 여자와의 혼인을 절대 승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 장교는 의아해했다. 우리 부모는 내 결정을 존중할 것이다. 내가 그녀를 택한다면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전쟁이 끝나고 미군 장교는 그녀의 믿음을 존중하고 아름다운 베트남 여인과 결혼, 미국에서 행복하게 산다. 한국 장교는 베트남 여인을 부모에게 선보였다가 큰 야단을 맞고 헤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구상만 했을 뿐 소설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소설을 쓰려면 다시 베트남 전쟁 현장을 찾아다니고, 미국과 한국, 베트남에서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1~2년 준비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시도할 수 있겠지만 건강이 허용할지 알 수 없다.   바닷가 공원에는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수많은 사람이 드나든다. 해를 바라보고 돗자리 깔고 절하는 무슬림들, 물가에 모여 세례받는 기독교인, 아침 해를 바라보고 기도한 후 조깅하는 여인, 제물을 차려놓고 비는 사람들,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다. 모두는 모두의 믿음과 사생활을 존중한다.     이날 비가 내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머리 숙이고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모두가 모두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소설 베트남 여자 베트남 여인 베트남 전쟁

2024-04-09

[신 영웅전] 김옥균을 위해 몸을 던진 여인

한말의 정객 김옥균(1851~1894)은 명문가 출신으로 인물 좋고 온갖 재주도 타고났다. 서예는 망명지에서 글씨를 팔아 생활할 정도로 뛰어났다. 1886~1887년 태평양의 절해고도 오가사와라(小笠原) 섬 유배 시절 일본의 바둑 최고수 본인방(本因坊) 슈에이(秀榮·1852~1907)가 바둑판을 메고 방문해 네 점을 두고 대국했을 정도로 바둑에도 능했다. 그는 대인관계도 폭이 넓었으나 훌륭한 참모를 만날 인연은 없었다.   김옥균이 1884년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일본에서 낭인으로 생활할 때 일본이 보기엔 이미 용도 폐기된 인물이었다. 고종이 자객을 네 명이나 보냈고, 김옥균을 위시한 개화파의 정적 리훙장이 절치부심하고 있었으니 그의 죽음은 시간문제였다. 그렇다고 일본은 당시 우익적 분위기에서 그를 죽일 수도 없어 1888~1890년엔 홋카이도로 유배 보냈다.   그때 김옥균에게 다마(玉)라는 한 여인이 있었다. 절세미인도 아니었고 명문가의 딸도 아니었다. 야망을 품었거나 무슨 계산을 하지도 않은 평범한 여인이었다. 숭모하는 사이라 해서 살을 대는 깊은 관계도 아니었다. 그저 곁에서 김옥균을 도왔다. 홋카이도로 유배되자 다마도 따라가 그림자처럼 김옥균을 돌봤다. 그런데 김옥균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한 자객이 따라붙고 있었다. 대단한 야심이나 이념 없이 그저 공명심에 들뜬 무명의 낭인(浪人)이었다.   다마는 김옥균을 죽일 기회를 엿보던 낭인에게 접근해 몸을 허락했다. 다마는 어느 날 잠자리에서 그 자객을 죽이고 사라진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김옥균은 아무런 영문도 몰랐으나 이 이야기는 이후 낭인의 죽음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만약 김옥균이 재기했더라면 이 사건은 큰 이야깃거리가 됐겠지만, 김옥균은 6년이 지나 상하이에서 자객 홍종우에게 피살돼 기구한 삶을 마쳤다. 살면서 이런 연정을 만난 적 있으신지.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김옥균 여인 정객 김옥균 그때 김옥균 자객 홍종우

2024-01-28

[이 아침에]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뉴욕시 맨해튼 북쪽에 있는 유대교 신학교의 한 교수에게 어떤 젊은이가 찾아왔다. 젊은이는 교수에게 훌륭한 랍비가 되고 싶다며 조언을 구했다. 유대교의 종교 지도자이자 존경받는 스승인 랍비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찾아온 젊은이에게 교수는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교수의 질문은 랍비가 되려는 젊은이의 소명과 인생 여정을 묻는 물음이 아니라 그날 신학교까지 온 경로였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한 젊은이는 70번가에서 신학교가 있는 120번가까지 브로드웨이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왔다고 답했다. 그러자 교수가 물었다. “96번가에 있는 노숙자 여인을 보았나요? 도움을 청하는 작은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여인 말입니다.” 젊은이는 못 보았다고 말했다. 교수가 다시 물었다. “그럼 117번가에 서 있는 퇴역 군인을 보았나요? 야구 모자를 쓴 사람 말입니다.” 이번에도 젊은이는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학교 앞에서 손을 들고 기도하는 키 큰 남자를 보았나요?” 계속되는 질문에 할 말을 잃고 그저 고개만 가로젓는 젊은이에게 교수는 한심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지 않으면서 랍비가 되겠다는 것입니까?”   랍비가 되겠다고 찾아온 젊은이에게 따끔한 질문을 던진 이는 유대교의 신학자이자 저명한 랍비인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이다. 그는 삶의 자리를 지키느라 올 한 해 열심히 달려온 우리를 향해서도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덧붙여 이렇게 묻는다.     ‘한 해 동안 살면서 주위에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을 보았는가?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부르짖는 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는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이들의 신음을 들었는가? 홀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이들의 탄식을 들었는가? 따뜻한 밥 한 끼 먹지 못해 굶주리는 이들의 비쩍 마른 몸을 보았는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자연을 보았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들의 눈물을 보았는가?’   그런 질문 앞에 우리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런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런 세상의 모든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습니까? 나라도 행복하게 잘 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속으로 읊조리는 볼멘소리는 핑계일 뿐이다. ‘어떻게 주위에 있는 사람과 세상을 눈여겨보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까?’라는 또 다른 꾸짖음만이 귓가에 맴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우리가 다 해결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세상을 향해 눈을 감고 귀를 막지는 말아야 한다. 누군가 내 아픔을 알고 있고, 누군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만으로도 용기와 격려를 받는 게 사람 마음이다.     이제 2023년도 얼마 안 남았다. 한 해 동안 우리 곁을 스친 이들이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면 지금이야말로 주위를 살필 때다. 내년 이맘때쯤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는 질문에 세상의 모든 아픔을 끌어안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눈물 흘리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며 살았다는 답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맞는 새해에는 희망의 해가 떠오를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유대교 신학교 그날 신학교 노숙자 여인

2023-12-20

[이 아침에] 사과 두알과 김 세봉지

어른 섬기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논밭 뙈기 받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다. 사랑은 축복이다. 사랑은 베푸는 사람이 더 기쁘고 행복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연세 많고 독거하시는 분,  장기간 투병하시는 몇 분께 요리해서 배달한다. 미리 나와 기다리시며 얼마나 반갑게 맞아 주시는지 황송할 따름이다. 내 인생에 이처럼 날 기다린 사람이 있었던가.     내 요리 실력은 ‘꽝’이다. 사실 꽝이었다. 레이철 레이쇼에 출연하던 둘때 딸이 인터뷰에서 자기가 요리를 잘하게 된 건 (나를 건너뛰고) 할머니 덕분이라고 해서 나를 물 먹였다. 그뿐이랴! 엄마가 잘 하는 건 단 두 가지, 추수감사절 터키와 빈대떡뿐이라고 해서 날 난감하게 했다. 화랑과 창작예술센터 운영하며 여섯 식구 건사하는 동안 식사도 흡입식으로 해결한 내 고충을 알 리가 없다.     다행히 어머니는 종갓집 요리 솜씨 뽐내는 분이셔서 생전에는 차려주신 밥상을 받아먹는 호강을 누렸다. 그러다 보니 한식 요리는 뒷전이고 여태 김치도 잘 못 담근다. 양식은 요리책 보고 그럭저럭 흉내 내는데 한식은 당초 무개념에 기본기가 없어 젬병이다. 김치야말로 고난도의 비법과 손맛이 필수라서 김치 장인 어른들과 물물교환, 반찬 갖다 드리고 얻어먹는다.     기댈 곳이 없으면 홀로서기가 정답이다. ‘노력은 모든 난관을 이긴다’는 목표를 정해 놓고 유튜브 보면서 유명 세프들의 레서피를 학습한 결과 일취월장, 믿거나 말거나 요리 솜씨 좋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매달 색다른 메뉴를 개발해 다양하게 공수하는 데 성공했다.     나는 소문난 ‘파티 퀸’이다. 30년 동안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유명화가들을 초청해 고객들을 위한 작품 전시와 리셥선을 기획했다. 감미로운 음악과 아름답게 장식한 식탁, 국제적 감각의 메뉴로 차려진 파티는 상류층 인사들을 전시장으로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천방지축, 밥도 서서 삼키던 내가 ‘상류층 여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장군과 결혼한 프랑스 대령 크라우스부인 덕분이다. 흉내를 내려면 꽁지보다는 한걸음 앞서가는 게 모양새가 좋다   상류층의 차별에 밀리지 않기 위해선 ‘손자병법’이 고난도 작전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패 (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상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 가장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으로 승부수를 던지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쪼그라들고  비겁해지면 짓밟히고 무시당한다. 사태를 잘 파악하고 올인하면 승부는 내 쪽이다.     나이 들면 사는 게 엄숙해진다. 정갈하고 소박한 내 반찬을, 가장 맛있게 먹을 분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른들께는 배달 간다고 미리 알리면 안 된다. 빈손으로 안 보내고 한 개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부엌 살림을 뒤지시기 때문이다.     그저께는 도착 5분 전에 전화드렸다. 할머니는 사과 두알과 김 세 봉지를 주신다. 얼마나 주고 싶어셨으면 황급하게 사과 두알과 겉봉지 뜯어진 김을 주실까. 보물보다 더 귀한 선물을 곁에 두고 시동을 건다. 뜨거운 눈물이 핑 돈다. 사는 동안 이토록 뜨겁고 가슴 아린 귀한 선물을 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가 멀어질 때까지 할머니는 손을 흔들고 계신다.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할 사람이 있는 세상은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세봉지 사과 한식 요리 상류층 인사들 상류층 여인

2022-12-19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과 두 알과 김 세 봉지

어른 섬기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논밭 뙈기 받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다. 사랑은 축복이다. 보답 없는 친절이다. 사랑은 베푸는 사람이 더 기쁘고 행복하다.   한 달에 한 두 번 연세 많고 독거하시는 분, 장기간 투병하시는 몇 분께 요리해서 배달한다. 미리 나와 기다리시며 얼마나 반갑게 맞아 주시는지 황송할 따름이다. 내 인생에 이처럼 날 기다린 사람이 있었던가.     내 요리 실력은 ‘꽝’이다. 사실 꽝이였다. 레이쳘 레이쇼에 출연하던 둘째 딸이 인터뷰에서 자기가 요리를 잘 하게 된 건 (나를 건너 뛰고) 할머니 덕분이라고 해서 나를 물 먹였다. 그뿐이랴! 엄마가 잘 하는 건 단 두 가지, 추수감사절 터키와 빈대떡 뿐이라고 해서 날 난감하게 했다. 화랑과 창작예술센터 운영하며 여섯 식구 건사하는 동안 식사도 흡입식으로 해결한 내 고충을 알 리가 없다.     다행히 어머니는 종가집 요리솜씨 뽐내는 분이셔서 생전에는 차려주신 밥상을 받아먹는 호강을 누렸다. 그러다 보니 한식요리는 뒷전이고 여태 김치도 잘 못 담근다. 양식은 요리책 보고 그럭저럭 흉내 내는데 한식은 당초 무개념에 기본기가 없어 젬병이다. 김치야말로 고난도의 비법과 손맛이 필수라서 김치 장인 어른들과 물물교환, 반찬 갖다 드리고 얻어먹는다.     기댈 곳이 없으면 홀로서기가 정답이다. ‘이대로 반풍수로 살 순 없다’를 모토로  ‘노력은 모든 난관을 이긴다’는 목표를 정해 놓고 유튜브 보면서 유명 세프들의 레서피를 학습한 결과 일취월장, 믿거나 말거나 요리솜씨 좋다고 칭찬(?)이 자자 하다. 매달 색다른 메뉴를 개발해 다양하게 공수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소문난 ‘파티 퀸’이다. 30년 동안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유명화가들을 초청해 고객들을 위한 작품 전시와 리셉션을 기획했다. 감미로운 음악과 아름답게 장식한 식탁, 국제적 감각의 메뉴로 차려진 파티는 상류층 인사들을 전시장으로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천방지축, 밥도 서서 삼키던 내가 ‘상류층 여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장군과 결혼한 프랑스 대령 크라우스부인 덕분이다. 흉내를 내려면 꽁지보다는 한걸음 앞서 가는 게 모양세가 좋다   상류층의 차별에 밀리지 않기 위해선 ‘손자병법’이 고난도 작전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패(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상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 가장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으로 승부수를 던지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쪼그라들고 비겁해지면 짓밟히고 무시당한다. 사태를 잘 파악하고 올인 하면 승부는 내 쪽이다.   나이 들면 사는 게 엄숙해진다. 정갈하고 소박한 내 반찬을, 가장 맛있게 먹을 분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른들께는 배달 간다고 미리  알리면 안 된다. 빈손으로 안 보내고 한 개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부엌 살림을 뒤지시기 때문이다.   그저께는 도착 5분 전에 전화드렸다. 할머니는 사과 두알과 김 세봉지를 주신다. 얼마나 주고 싶으셨으면 황급하게 사과 두알과 겉봉지 뜯어진 김을 주실까.     보물보다 더 귀한 선물을 곁에 두고 시동을 건다. 뜨거운 눈물이 핑 돈다. 사는 동안 이토록 뜨겁고 가슴 아린 귀한 선물을 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가 멀어질 때까지 할머니는 손을 흔들고 계신다.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할 사람이 있는 세상은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과 봉지 종가집 요리솜씨 상류층 인사들 상류층 여인

2022-12-13

[그 영화 이 장면] 카사블랑카

시간이 지나도 의미와 가치가 꾸준히 발견되는 작품을 클래식이라 한다면, 최근 재개봉한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카사블랑카’(1942)는 그 전형일 것이다.   개봉된 지 80년이 지난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있다면, 이 영화엔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카사블랑카’는 사실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다. 멜로드라마의 판에 박힌 설정으로 가득 찬, 진부함의 집대성 같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형성이 오히려 이 영화를 위대하게 만든다. 사랑하는 남과 여, 전쟁의 급박한 상황, 예상치 못한 이별, 더욱 예상치 못한 재회, 다른 사람의 연인이 된 그녀, 그리고 또 한 번의 이별. 이 스토리라인은 동서고금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지녔던 서사이며, ‘카사블랑카’는 이 뻔한 이야기를 가장 멋있고 세련되고 아름답게 전달한다.   특히 공항의 이별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잊을 수 없다. 릭(험프리 보가트)은 사랑했던 여인 일자(잉그리드 버그먼)를 떠나 보내려 한다.   릭의 표정은 무심한 듯 비장하고, 일자의 눈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이때 릭은 말한다. “이렇게 지켜보고 있잖아(Here’s looking at you, kid).” 우리에겐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이라는, 거의 창작에 가까운 번역으로 알려진 이 대사는 영화에서 네 번에 걸쳐 반복되는 그들 사이의 밀어이자 암호 같은 문장이다. 그리고 일사에 대한 릭의 이별사이기도 하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카사블랑카 잉그리드 버그먼 험프리 보가트 여인 일자

202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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