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과 두 알과 김 세 봉지
한 달에 한 두 번 연세 많고 독거하시는 분, 장기간 투병하시는 몇 분께 요리해서 배달한다. 미리 나와 기다리시며 얼마나 반갑게 맞아 주시는지 황송할 따름이다. 내 인생에 이처럼 날 기다린 사람이 있었던가.
내 요리 실력은 ‘꽝’이다. 사실 꽝이였다. 레이쳘 레이쇼에 출연하던 둘째 딸이 인터뷰에서 자기가 요리를 잘 하게 된 건 (나를 건너 뛰고) 할머니 덕분이라고 해서 나를 물 먹였다. 그뿐이랴! 엄마가 잘 하는 건 단 두 가지, 추수감사절 터키와 빈대떡 뿐이라고 해서 날 난감하게 했다. 화랑과 창작예술센터 운영하며 여섯 식구 건사하는 동안 식사도 흡입식으로 해결한 내 고충을 알 리가 없다.
다행히 어머니는 종가집 요리솜씨 뽐내는 분이셔서 생전에는 차려주신 밥상을 받아먹는 호강을 누렸다. 그러다 보니 한식요리는 뒷전이고 여태 김치도 잘 못 담근다. 양식은 요리책 보고 그럭저럭 흉내 내는데 한식은 당초 무개념에 기본기가 없어 젬병이다. 김치야말로 고난도의 비법과 손맛이 필수라서 김치 장인 어른들과 물물교환, 반찬 갖다 드리고 얻어먹는다.
기댈 곳이 없으면 홀로서기가 정답이다. ‘이대로 반풍수로 살 순 없다’를 모토로 ‘노력은 모든 난관을 이긴다’는 목표를 정해 놓고 유튜브 보면서 유명 세프들의 레서피를 학습한 결과 일취월장, 믿거나 말거나 요리솜씨 좋다고 칭찬(?)이 자자 하다. 매달 색다른 메뉴를 개발해 다양하게 공수하는데 성공했다.
나는 소문난 ‘파티 퀸’이다. 30년 동안 현대미술 화랑을 경영하며 유명화가들을 초청해 고객들을 위한 작품 전시와 리셉션을 기획했다. 감미로운 음악과 아름답게 장식한 식탁, 국제적 감각의 메뉴로 차려진 파티는 상류층 인사들을 전시장으로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천방지축, 밥도 서서 삼키던 내가 ‘상류층 여인’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장군과 결혼한 프랑스 대령 크라우스부인 덕분이다. 흉내를 내려면 꽁지보다는 한걸음 앞서 가는 게 모양세가 좋다
상류층의 차별에 밀리지 않기 위해선 ‘손자병법’이 고난도 작전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패(知彼知己 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상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능가하고,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 가장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으로 승부수를 던지면 내 쪽으로 다가온다. 쪼그라들고 비겁해지면 짓밟히고 무시당한다. 사태를 잘 파악하고 올인 하면 승부는 내 쪽이다.
나이 들면 사는 게 엄숙해진다. 정갈하고 소박한 내 반찬을, 가장 맛있게 먹을 분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어른들께는 배달 간다고 미리
알리면 안 된다. 빈손으로 안 보내고 한 개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부엌 살림을 뒤지시기 때문이다.
그저께는 도착 5분 전에 전화드렸다. 할머니는 사과 두알과 김 세봉지를 주신다. 얼마나 주고 싶으셨으면 황급하게 사과 두알과 겉봉지 뜯어진 김을 주실까.
보물보다 더 귀한 선물을 곁에 두고 시동을 건다. 뜨거운 눈물이 핑 돈다. 사는 동안 이토록 뜨겁고 가슴 아린 귀한 선물을 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차가 멀어질 때까지 할머니는 손을 흔들고 계신다.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할 사람이 있는 세상은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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