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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휴리스틱의 선택

손헌수

손헌수

큰 공을 세운 신하가 있었다. 왕은 그에게 100명의 여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을 아내로 맞을 수 있는 기회를 상으로 준다. 여인들을 모두 만나보고 그 중에 한 사람을 고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왕이 제시한 조건은 조금 특별했다. 신하는 밀폐된 공간 안에서 대기한다. 그리고 100명의 여인들은 한 명씩 차례로 이 공간으로 가서 신하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신하는 어떤 여인이 프로포즈를 하는 순간, 받아들이든지 거절해야만 한다. 한번 거절한 여인을 나중에 다시 선택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이 신하가 열번째 여인을 만났다면, 그는 이미 앞선 아홉명의 프로포즈를 거절한 것이다. 열번째 여인의 프로포즈마저 거절한다면, 열한번째 여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열번째 여인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와 결혼해야 하고 남은 90명은 얼굴도 볼 수 없다.
 
우리 인생의 많은 경우, 선택의 폭은 이 신하와 같이 제한적이다. 신하는 어떻게 해야 가장 마음에 드는 여인을 고를 수 있을까? 수학자들이 계산한 가장 확률이 높은 답은 이렇다. 신하는 37명의 여인까지 순서대로 만나본다. 물론 이렇게 37명의 여인을 만나보려면 처음 37명의 프로포즈를 모두 거절 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본 37명의 여인들 중에 누가 가장 나은지를 떠올리면서 남은 63명의 여인들을 추가로 만난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63명 중에서 앞에서 만난 37명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여인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을 고르면 된다. 이렇게 할 경우에, 신하가 100명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를 수 있는 확률이 37퍼센트로 가장 높다고 한다.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라면 모든 인간은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이렇게 합리적이지가 않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열명쯤 보고, 선택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70명쯤 만나 본 후에 80명이 넘어가면서 조급해하다가, 허둥지둥 한 명을 고를 수도 있다. 앞서 놓쳐버린 여인들에 대해서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기존의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이었다. 모든 것을 따져보고 어떠한 순간에도 가장 옳은 결정을 하는 인간이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합리적인 인간을 호모 이코노믹스(Homo-economics)라고 부른다. 줄여서 이콘(Econ)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세상은 정보가 불완전하고 인간은 생존을 위해 효율적으로 진화된 요인들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전통경제학이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해왔다. 그래서 최근에 나온 학문이 심리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킨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휴리스틱(Heuristic)’에 근거한 것으로 본다. 휴리스틱형 인간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각자 자신만의 경험으로 체득한 나름대로의 방법에 따라서 행동한다. 어떻게 보면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행동하는 비합리적인 인간이다.
 
인간을 놓고 시행한 많은 실험에서 사람들은 휴리스틱한 의사결정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단품으로 파는 상품보다 묶음으로 진열해 놓은 상품이 더 쌀 것이라고 가정하고 구체적인 가격을 비교해 보지도 않고 사는 행위, 이익보다 손해에 지나치게 민감한 행위, 매몰비용에 집착하는 행위 등은 대표적인 휴리스틱한 행동이다. 휴리스틱을 이용한 기업의 마케팅과 정부정책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미 많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이 조금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직관이나 감정에 따른 휴리스틱한 행동을 경계해야 한다. 조금 피곤하고, 시간이 들더라도, 내가 하는 행동이나 결정이 ‘감’이나 ‘느낌’으로 하는 습관적인 휴리스틱한 행동은 아닌가, 잠시 고민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조금 더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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