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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겨울 찬 바람이 불기 전에 Rosehill 어머니의 묘소를 찾았다. 비석 주변에 쌓인 낙엽도 쓸어주고 얼마 전에 묘 옆에 심은 작은 도장 나무 묘목에 물도 줄 겸 어머니와 인사를 나눴다. 무언의 대화였지만 역시 어머니는 내 속에 살아계셨다. 나를 안으실 땐 늘 내 손을 잡으시고 다른 손으로 등을 어루만져주셨다. 그 손이 무척 그립다. 어머니를 닮은 작고 동그란 돌멩이를 묘목 주변에 깔아주었다. 가져간 가위로 묘목을 동그랗게 멋도 내주었다. 어머니가 빙그레 웃으시는 것 같다. 떠나오면서 노을이 물든 서쪽 하늘을 보며 운전했다. 차가 신호등에 멈출 때마다 노을을 찍었다. 삶은 노을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검푸른 하늘에 영롱한 별들을 생각했다. 귀를 자르고도, 붕대를 얼굴에 감고도 웃을 수 있었던 화가의 생과 어린 네 자녀를 앞에 두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올곧은 어머니의 생이 오버랩되었다.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당신의 이름을 오는 내내 불러보았다.     명치끝이 아파와서     1   너에게 가는 길은   더딘 걸음이어도 좋았네   당신의 손에서 빚어낸 선물처럼   감추어진 무언가 찾아낸 아이처럼   마음과 몸으로 느끼는 향기   가을이, 낙엽이, 풍경이   선물인가 했었네   자리에 누워 생각해 보니   그건 바로 당신이었네     붉은 가을 앞에 서서   온몸이 붉어져도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시선을 견디어 내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었네   오늘은 꿈꾸고 싶은 것이 되어   돌아오는 노을이 되겠네     2   나는 속이 비워 넘어진 나무같아요 명치끝이 아파와서 손으로 문지르다 보니 손바닥에 묻어나는 얼굴 달도 많이 야위었어요 제 몸을 깎아 붙인 눈썹 같아요 잃어버린 것을 찾아 나선 저녁 엉켜진 덤불 아래서 파도가 머물고 간 모래톱에서 실핏줄같이 엇갈린 푸른 기억을 보았어요 서 있는 시간 내내 해는 기울고 지문처럼 찍힌 발자국이 서러워요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한 저녁 가던 길 돌아와 자세히 보면 아! 알고 계셨네요 당신의 시간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걸 그 길을 수도 없이 지나면서 지는 꽃잎에 눈물만 훔치던 당신 하루가 저무는 저녁 내내 붉은 노을로 돌아오고 있어요 오래전 당신이 걸었던 인생길같이 구불구불 그려놓은 당신의 무늬는 당신을 찾아가는 하늘길이 되었어요     3   고요는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도 오지   흙탕물의 침잠 시간에도 오고   낙엽 쌓인 보도블록 위에도 내려앉지   꼭 고요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어느 순간 지금이라고 명명되어진 그때   고요는 불현듯 오지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슬로비디오처럼   조용히 내려오지 소리도 없이   그것이 슬픔이듯 기쁨이듯   조용히 온몸을 채우며 오지   묵직하게 뻐근하게 그렇게 오지     4 남프랑스 아를에는 고흐의 숨결이 남아 있네 미시간 호숫가 *Rosehill에 당신의 숨결이 남아 있듯이 아를의 밀밭을 걸으면 흙바닥에 묻어나는 황색 물감 라 마르탱 광장 2번지 고흐의 노란 집엔 나무 침대, 베개 둘, 의자 둘, 탁자 하나 액자 6개가 걸려 있네 침대맡에 창문도 하나 있네 그 창문을 통해 아를의 기차역이 보이네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를 보네 그 창문에 서면 그의 중얼거림이 들리네 싸이프러스 나무위로 *별이 빛나는 밤이 오네 침묵이 대답이 되는 시간들이 별빛처럼 내리고 귀를 잘라버린 아픔과 참담히 거기 서있네 붕대로 싸맨 얼굴로 웃고 있는 막무가내가 뭉클하네 겨울 찬바람이 불기 전 어머니 묘소를 찾았네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등을 어루만지네 서쪽하늘 노을이 붉게 번지네 삶은 노을같이 아름답고도 처절했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처럼 별이 뜨고 별이 지는 일처럼 하루가 오고 하루가 지고 있네 Rosehill에 번지는 붉은 노을이여 멀리서 외로움과 맞설 아를의 푸른 밤이여 무슨 수로도 잊을 수 없는 당신을 부르네 낯설은 땅에 누운 고마운 당신과 아를의 밀밭 길을 걸어 사라지는 별빛 같은 당신 내 속에서 잠들고 눈을 뜨는 긴 숨 같은 이름들이네  *어머니가 묻힌 묘지 *정신병동에서 그린 고흐의 작품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서쪽하늘 노을 어머니 묘소 미시간 호숫가

2024-11-18

[어머니 선물] 마사지기·와인 오프너에서 핸드크림까지

연말은 누가 뭐래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기다. 추워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연말을 보내려면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족이 모인 장소에서 덕담에 더해 선물에 마음을 담는다면 더욱 좋다. 항상 선물을 마다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선물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MZ세대가 말하는 대로 ‘알아서 잘 깔끔하게 딱 센스있게’ 선물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이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지’라고 말할 만한 선물을 골라봤다.     -더 편리하게   ▶전동 와인 오프너: 집에서 가볍게 와인을 즐긴다면 가장 필요한 선물일 수 있다. 와인을 쉽게 열 수 있도록 해주는 전동 와인 오프너다. 팬데믹 이후로 집에서 가볍게 와인을 마시는 인구가 크게 늘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부담스럽지 않지만, 실용적인 제품이다. 코르크가 들어간 와인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 셀 수 없이 많은 회사에서 와인 오프너를 선보이고 있으며 합리적 가격의 제품은 아마존에서 30달러 정도에 만나볼 수 있다.     ▶커피 머그 워머: 최근 통통튀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제품이다. 머그잔을 올려놓으면 머그잔을 따듯하게 유지해준다. 커피나 차를 즐겨 마시는 어머니들에게는 필요한 제품이다. 차 한 잔의 여유도 없이 일하다 차갑게 식어버린 머그잔을 들 때의 서글픔은 더는 없다. 르랫 등의 회사에서 제품이 나오고 있으며 아마존에서 30달러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킨들 컬러소프트: 전자책 리더기는 주로 장년층이 사용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독서의 기쁨은 누리고 싶지만 작은 글씨로 된 책을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아마존은 사상 최초로 컬러 스크린을 탑재한 킨들 컬러소프트를 출시했다. 기존보다 높은 해상도의 컬러 스크린을 탑재하고 있고 더 빠른 페이지 넘김과 긴 배터리 수명을 가지고 있다. 아마존에서 279달러에 판매 중이다.     -더 젊어지게   ▶마스크팩: 햇볕이 따갑고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는 남가주에서는 피부 관리가 유독 어렵다. 매일 선블록을 꼼꼼히 발라도 급격한 노화가 찾아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남가주 주민들은 마스크팩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한다. 피부에 착 감기는 마스크팩을 부착하고 누워서 편히 쉬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날아가는 것 같다. 중앙일보 핫딜에서는 써니콘 마이크로바이옴 콜라겐 마스크 4매입 한 세트를 24달러에 판매 중이다.   ▶핸드크림: 살림을 하느라고 거칠어진 손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핸드크림은 어떨까. 최근 핸드크림 제품들은 기능성 원료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효과가 탁월하다. 거칠어진 손을 건강하고 부드럽게 되돌려줄 수 있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브랜드에 따라서 5달러부터 100달러에 이르기까지 가격대도 다양하기 때문에 예산에 맞게 고르기도 편하다. 버트비와 같은 전문 브랜드에서는 핸드크림 3종 셋트를 16.99달러 판매하고 있다.     ▶샴푸: 많은 뷰티 제품들이 그렇듯 샴푸 또한 최근에는 분화되고 있다. 두피 타입에 맞춰서 다양한 샴푸들이 선을 보인다. 자신이 건성 두피냐 지성 두피냐에 따라서 샴푸를 통해 공급돼야 하는 영양분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해한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 것 또한 소비자들의 선택기준이 되고 있다. 물론 고급스러운 향을 겸비하면 더욱 좋다. 이런 다양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샴푸를 어머니께 선물한다면 ‘이제 다른 샴푸는 못 쓰겠네’하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 현재 핫딜에서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는 산뜻 샴푸를 할인된 가격 24달러에 판매 중이다. 아쿠아포린이나 우유단백질처럼 좋은 성분은 넣고 벤조페논이나 파라벤 같은 유해한 성분은 뺐다. 프랑스 유학파 이새미 조향사가 직접 조향 한 고급스러운 향도 돋보인다.     -더 건강하게   ▶배스밤: 한국인만큼 ‘뜨끈한 목욕’을 좋아하는 민족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성업 중인 사우나나 찜질방을 보면 미주 한인들도 이런 ‘민족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배스밤은 목욕물을 향긋하게 만드는 목욕용품이다. 단순히 좋은 향기를 위한 제품이 아니고 라벤더부터 장미까지 다양한 향을 가지고 있어서 심신 안정에 도움을 주는 제품들도 많다. 향으로 치유를 하는 ‘아로마 테라피’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뷰티 관련 제품을 파는 세포라에서는 배스밤을 3달러에 판매하고 있다. 이 외에도 러쉬나 바디샵 같이 향기와 관련된 제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에서도 다양한 배스밤을 선보이고 있다.   ▶영양제: 재산을 잃으면 일부를 잃는 것이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다란 말이 있다.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것은 한결같은 자식의 마음이다. 특히 갱년기를 맞이한 어머니들에게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특히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골밀도 감소 예방에 필수인 칼슘, 불면증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 B, 혈액순환에 효과적인 오메가3, 머릿결에 도움을 주는 비오틴 등은 반드시 챙겨먹어야 하는 영양제로 꼽힌다. 가격이 부담될 경우에는 종합 영양제를 구입해 선물하는 것도 좋다.     ▶다리 마시지기: 최근 한국에서 가장 핫한 마사지 제품은 공기압을 이용한 다리 마사지기다. 바쁜 일상에 쫓겨 퉁퉁 부은 다리를 케어해주는 마사지기를 선물로 많이 주고 받는다. 공기압을 통해서 뭉친 다리를 시원하게 풀어줘 사용자들 사이에서 평도 높다. 마치 전문 마사지사가 주물러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현재 핫딜에서는 휴비딕 공기압 종아리 안마기를 47.99달러에 만날 수 있다. 상위 모델도 추수감사절 맞이 세일을 진행하면서 79.99달러면 구입할 수 있다. 조원희 기자어머니 선물 마사지기 핸드크림 와인 오프너 전동 와인 최근 핸드크림

2024-11-17

[발언대] 어머니의 한(恨)과 북한군 파병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수업이 끝나자마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달려와 방문을 열며 “엄마”하고 불렀다. 그런데 방안에는 평소와 달리 섬뜩한 고요함이 느껴졌다. 방 위쪽 구석엔 처음 보는 흰 광목천으로 덮인 것이 있었고, 엄마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를 본 엄마는 눈물을 닦고 순간의 침묵을 깨며 말했다. “네 형이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어머니는 광목천을 들어 올렸다. 거기에 숨진 형의 얼굴이 보였다. 전쟁터에 갔던 형이 시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우리 가족은 6·25전쟁이 한창일 때 피난길에 나서 대구를 지나 경산까지 갔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던 형은 학도병으로 징집됐다. 그 이후에는 소식이 없다가 낙동강 전투에서 심한 상처를 입고 대구 동산 육군병원으로 이송됐다가 끝내 숨졌다.     형이 숨지고 한동안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셨고, 얼굴에서는 삶의 의욕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그때부터 10여년 동안 어머니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가족이 함께 식사할 때도 기계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는 것 같았다. 어머니에게는 망각이라는 만병통치약도 효력이 없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뒷산에 뭍은 형을 생각하며 “얼마나 옷이 젖을까?” 괴로워하셨고, 눈 오는 겨울날이면  “나는 방에서 편안히 지내는데 너의 형은 뒷산에서 얼마나 추운 눈보라를 맞으며 누워있을까?”하며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는 것이 어머니의 일과였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고 일생을 지낸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북한군 1만여 명이 우크라이나 쿠르스크 지역에 러시아군의 총알받이로 파병됐다는 소식이다. 너무나 한심스럽고 참담한 심정이다. 6·25 전쟁 당시 김일성의 남침으로 국군 사상자가 50만 명이 넘었고, 북한 인민군도 6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렇게 많은 젊은이가 제대로 인생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희생되었다는 것은 잊지 못할 역사의 참극이다.      지난 1989년 3월 평양을 방문해 북한이 자랑하는 ‘능라도 체육관’ 건설 현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앳돼 보이는 인민군 병사들이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본 인민군 병사들의 모습이었다. 허름한 군복에 체격은 왜소했다. 그들의 나이가 18~21세 정도인데 남한의 또래 젊은이보다 체격이 훨씬 작았다. 체격이나 얼굴 모습은 한국의 중학교 3학년에서 고 1학년 정도의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듯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수줍고 약간은 두려워하는 듯한 순진하고 어린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북한 방문 당시 가까이서 보았던 순진하고 앳된 인민군 병사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동족이라는 연민 때문일까?  그들도 사랑하는 형제자매가 있을 것이고,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부모가 있을 것 아닌가.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대신해 아직 피어나지 못한 우리 동족 젊은이들이, 김정은 체제 유지를 위해 희생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지방으로 끌려간 북한의 어린 병사들의 어머니들도, 나의 어머니처럼 가슴에 피멍이 드는 한(恨)을 품고 사는 삶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영송 / 한미문화교류재단 회장발언대 북한 어머니 한동안 어머니 인민군 병사들 우크라이나 쿠르스크

2024-11-05

38년 만에 언니와 상봉 앞둔 입양아 “한국 가서 가족 찾을 것”

   펜실베이니아주에 거주하는 다라 해넌(38) 씨는 생후 8주차에 미국으로 입양됐으며, 25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최근 '마이헤리티지(MyHeritage)'를 통해 친언니를 찾았고, 이번 방문은 언니와 만나기 위해서다. 친언니 하지원 씨는 벨기에로 입양되어 현재 그곳에 거주 중이다.    해넌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언니와 자신 모두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라며,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13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지만, 38년 만에 처음 만나는 친언니와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DNA 검사를 통해 언니가 먼저 ‘우리가 자매인 것 같다’는 이메일을 보냈다고 들었다. “반신반의했다. 6년 전에 DNA 검사를 의뢰했기 때문에 솔직히 잊고 있었다. '자매인 것 같은데 이야기를 나눠보겠느냐'는 이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지난 5월 어느 평범한 목요일 아침, 출근 후 컴퓨터를 열고 이메일을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 놀랐던 순간이었다.”   -언니와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5월 이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나. “휴대폰 메신저 앱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시차가 6시간 정도 나서 조금 힘들었지만 괜찮았다. 전화도 하고 영상 통화도 자주 했다.”   -언니와 한국 방문 계획은 어떻게 세우게 되었나. “우리는 항상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 했다. 언니의 직장과 가족, 그리고 내 일정 등을 고려해 10월로 결정했다. 한국의 여름이 덥고 습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결정 요인 중 하나였다 (웃음). 이번 방문이 우리에게는 매우 의미가 크다. 한국에서 13일 동안 머무를 계획이다.”   -한국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다른 직계 가족이 있는지 찾아보고 싶다. (어머니를 포함해) 더 많은 가족이 한국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정보와 제한된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관건일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언니와 서로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다.”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매우 기뻐했다. 물론 나만큼 언니를 찾았다는 사실을 의심하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걱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언니와 여러 차례 영상 통화를 했고, 그 화면을 캡처해 가족에게 보여줬다. 사진을 보니 너무 닮아서 ‘아, 너희 자매 맞구나’ 하며 웃었다.”   -미국에서 입양돼 자라온 과정은 어땠나. “내가 자란 곳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많은 입양된 사람들이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도 있었고, 부모님은 이를 막지 않으셨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셨다. 가끔은 한국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가, 가끔은 전혀 관심이 없기도 했다.”   -생모에 대한 그리움이나 원망이 있었나. “한 번도 그리워한 적도, 원망한 적도 없다. 어머니가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 나를 포기했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 같고, 그로 인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머니의 선택을 원망하지 않는다.”   김영남 기자 [kim.youngnam@koreadaily.com]입양인터뷰 어머니 어머니 원망 현재 가족 한국 문화

2024-10-23

[독자 마당] 어머니

시월이 오면 나에겐 잊히지 않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백합처럼 우아하지도 않았지만 늘 수줍게 핀 노란 들국화처럼 조용한 미소를 보내주었습니다.     가을 운동회 날 코흘리개 소년이 2등 상품으로 받은 작은 공책 한권을 보며 대견해 하던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늦은 여름 어느 날 오후, 흙탕물을 헤치며 미꾸라지를 잡느라 흙 범벅이 된 옷을 벗기고 씻겨주던 그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을 앞 들판이 누렇게 변해 갈 무렵 논두렁 뛰어다니며 메뚜기 잡아 오면 가마솥 뚜껑에 볶아주던 그 여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꾸 벗겨지는 검정 고무신을 손에 쥐고 코스모스 핀 신작로를 내달려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가면, 읍내 장에 다녀오며 사 온 사탕 한 봉지를 두손에 꼭 쥐여주며 환하게 웃던 그 여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공놀이하다 발목을 삐어 누나 등에 업혀 이웃 마을 한의사 할아버지 집으로 갈 때 소년의 손을 꼭 잡고 달래던 그 여인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집 뒷산 과수원의 단감이 누렇게 익어 갈 때 제대한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그 여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을 앞 들판이 온통 황금빛으로 변해가던 24년 전, 미국으로 떠나는 아들을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며 눈물짓던 그 여인의 모습을 오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대문 옆 감나무에서 홍시가 툭툭 떨어지던 날, 그 여인은 떠났습니다.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을 이 땅에 남겨두고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하는 긴 이별을 고향 땅에서 기어이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여든네 해 동안 이 땅에서 아홉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며 지치고 상처받은 이 여인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고 거두어 주시옵소서.   어머니!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전명석독자 마당 어머니 버스 정류장 이웃 마을 코흘리개 소년

2024-10-22

[문예마당] 어머니는 나의 롤모델

  결혼 25년 차, 어느덧 나이가 50이 넘어가니 시어머니에게 이런저런 투정도 편하게 하는 그런 며느리가 되었다. 항상 “예”만 하던 ‘예스 며느리’였는데…,   시어머니와 오래 함께 살다 보니 날 낳고 키워주신 친정어머니보다 더 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의 인생관과 자녀에 대한 생각을 바로 옆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한마디로 참 지혜로운 분이다. 팔십대 중반의 적지 않은 연령이지만 여전히 뛰어난 판단력에 지식도 풍부하다. 그래서 무엇이든 시어머니에게 여쭤보게 되고 그럴 때마다 정답을 듣게 된다.   시어머니는 요즘도 매일 꼼꼼히 신문을 읽고 방송 프로그램을 챙긴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스크랩을 해두거나 메모를 하신다. 그러다 보니 특히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지식의 축적량이 상당하다. 시어머니의 캐비닛에는 오래전 스크랩을 해 둔 중앙일보 기사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처음 시집 왔을 때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잔소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든 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분이다 보니 외며느리가 불안하게 생각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 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100% 공감하게 된다. 나도 아이들이 배우자를 데려오면 뭔가가 불안해서 이런저런 것에 참견하고 가르쳐주려고 할 것 같다.   어떻게 처음부터 100% 만족감을 주는 사람이 있겠는가? 서로 맞춰가며 서로를 알아가며, 그렇게 시어머니와 23년을 함께 살았다. 돌이켜보니 참 금방이다. 아이들이 자란 것과 우리 부부의 눈가가 살짝 쳐진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듯한데 말이다.   시어머니는 자녀들을 참 잘 키우셨다. 1남 2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둘씩을 낳았다. 그리고 다들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모여 산다. 가끔 자녀들과 떨어져 살고 있다는 분들을 보면 시어머니는 참 행복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어머님처럼만 자식들을 키우면 시집장가 가서도 우리 집 옆에 모여 살겠지라는 상상도 해 본다.   게다가 자녀들 모두 별걱정 없이 신앙생활 잘하며 산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어머님은 참 복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님은 참 좋은 남편을 두셨다. 시아버님은 시어머님에게 딱 맞는 반쪽이다. 어머님은 항상 웃는 모습의 아버님과 가끔 토닥거리시기도 하지만 그렇게 사는 부부가 오래 해로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하지 않는가.     두 딸은 매일 번갈아 가면서 어머니에게 전화한다. 그날그날의 소식을 어머님에게 전하려고…. 아들도 어머님에게 할 말이 참 많다. 어머님이 이야기를 잘 받아주셔서 그런 거 같다.   우리 딸, 아들도 나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저렇게만 했으면 하길 바랄 뿐이다.   어머님은 신앙심도 깊다.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 충만하셔서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어머님의 기도는 항상 우리 자식들에 대한 간구뿐이다.   지금 사는 글렌데일로 이사 오면서 어머님은 거의 매일 동네 산들을 한 바퀴씩 돌고 오셨다. 체력이 참 좋으셨다. 한번 어머님을 쫓아갔다가 며칠을 걷지를 못해 끙끙 앓았는데. 저렇게 정정하시다니…. 평소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한 결과였다.   그런데 지난해 어머님은 폐암 진단을 받았고 그 후 빠른 노화가 시작됐다. 어머님 모습이 하루하루 작아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항상 기대고 싶고, 의논하고 싶던 어머님이었는데 이제는 우리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식들은 그런 모습에 익숙지 않아 그저 놀라고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게 된다.   하지만 어머님은 항상 밝은 모습으로 우리를 대하신다.   “얘야, 인생을 힘들게 살지 말아라. 살아보니 인생은 짧고 한순간이다. 너무 걱정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쉬엄쉬엄 편하게 살아라.”   현명하시고, 신실하시며 아름답게 나이 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나의 롤모델은 어머님, 그분을 닮으며 나이를 먹고 싶다.   “어머니, 걱정은 내려놓으시고 평안을 찾으세요. 고통이 없기를 기도할게요. 사랑합니다.” 이선경문예마당 어머니 롤모델 지난해 어머님 어머님 모습 어머님 그분

2024-09-2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하루 한 뼘씩 자라는 잎새들

무식이 하늘을 찌른다. 각종 모종 얻어 심은 한국 고추가 풍성하게 매달렸다. 요리책에 ‘홍고추’로 고명을 얹으라 해서 내년엔 빨간색 고추 모종 구해달라고 어르신께 부탁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요. 초록색 고추가 빨갛게 익을테니.” 웃으시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초록색 고추가 하나 둘 빨강색으로 물들었다.   올 여름 유기농 채소 가꾸느라 세월 가는 줄 모른다. 한인 어르신, 이웃 아저씨, 인터넷 뒤지며 연구에 몰두한다. 배우는 것만큼 기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는 것이 힘이다, 먹어야 산다’를 열창하며 그동안 아는 체하며 까불었던 과거에 고개 숙인다. 애들 키우며 사업하느라 발뒷꿈치가 갈라 터지도록 이리 뛰고 저리 달리느라 ‘흙 밟아 본 적이 없다’는 나의 처절한 변명.   근동에서 땅 부자로 소문난 아버지는 내가 두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논 밭에 나가 본 적이 없던 어머니는 그 때부터 혼신을 다해 농사일에 매달렸다. 머슴이고 집사인 삼만이 아재와 농사꾼들과 함께 하루 종일 밭고랑을 매고 풀을 뽑았다.   유년의 기억 속 어머니는 하얀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무명 소복을 입고 있다. 옥이언니 등에 업혀 밭고랑을 오락가락 하다가 칭얼대면 언니는 핑크색에 동백 꽃무늬가 새겨진 박음질이 촘촘한 포대기를 풀고 어머니 품에 날 내렸다. 어머니 가슴을 비집고 젖줄이 곤고한 젖무덤을 더듬으면 황토색 흙냄새가 스며 들었다.   “현풍댁은 저리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네. 일꾼들만 부려도 잘 먹고 살텐데.” 동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어머니 오른쪽 손목은 모진 호미질로 휘어졌다. 땅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삶의 터전이지만 남매의 미래를 약속하는 희망이였다. 어쩌면 어머니는 청상과부의 한많은 아픔을 매일 땅 속에 묻고 있었는지 모른다.   ‘애들은 자고 나면 한 뼘씩 큰다’며 대청마루 기둥에 어머니는 숯덩이로 금을 그어 키를 쟀다. 자식들이 흙에서 돋은 채소처럼 푸릇푸릇 건강하게 자라 땅 속 깊이 뿌리내리고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수양버들로 살아남기를 바랬다.   정말이지 텃밭의 채소들은 자고 나면 한 뼘씩 자란다. ‘호박꽃도 꽃인가’란 염려는 무식의 대참사다. 다섯 손가락 벌린 채 관능적으로 굽은 연노란 꽃잎을 밀어내고 매끄럽고 반질반질한 호박이 달린다. 조롱조롱 매달린 방울 토마토는 물주며 군것질 하듯 따먹고 삼만이 아재 주먹처럼 단단한 토마토는 너무 열심히 먹어서 얼굴이 빨게질까 걱정이다. 지중해식단에 몰입해 올리브오일 듬뿍 부어 오븐에 구워 얼리면 겨울내 양식이 된다. 소금에 살짝 간 한 가지는 구워 얼린 뒤 토마토 소스에 마쯔렐라 치즈 뿌려 오븐에 구워내면 멋진 이태리 요리가 된다.   어머니 생전에는 손가락 까딱 안하고 차려주신 음식을 잘 먹었다. 도와드리는 척 폼 잡다가 흡입식으로 퍼먹고 ‘피곤할 텐데 쉬어라’는 말 떨어지기 무섭게 소파에 늘부러졌다. 당신이 떠나면 ‘뭘 해 먹고 사나’ 걱정 되신 어머니는 요리 잘하는 분에게 요리 비법을 전수시키며 딸의 안위를 신신당부 했는데 파토가 났다.   추석이다. 갖은 나물과 전 부쳐 지인들과 나눠 먹던 엄마 생각에 콧등이 찡하다. 궁하면 통한다. 슬픔을 거두고 약식과 감주 만들어 친구들과 먹을 생각을 한다. 음식을 니눠먹는 것은 사랑의 향기를 가슴에 담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게으름 안 피우고 살게 되기를. 땅을 친구 삼아 머리 숙이는 일에 익숙해지면, 훗날 지구를 향해 홀가분하게 작별의 손 흔들 수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잎새들 어머니 가슴 어머니 생전 어머니 오른쪽

2024-09-18

"한인 어머니와 함께 즐거운 추석 잔치"…올림픽서 로드리게스 부서장

올림픽 경찰서 부서장이 한인 어머니와 함께 LA한인타운에서 열린 추석 잔치에 참석했다.   지난 6월 올림픽 경찰서에 부임〈본지 7월 11일자 A-4면 참조〉한 레이첼 로드리게스 부서장(캡틴1)은 한국계로, 12일 LA한인타운 시니어 커뮤니티센터에서 열린 추석 맞이 행사에 어머니 김윤숙씨와 함께 방문해 잔치를 즐겼다.   로드리게스 부서장은 시니어센터 초대를 받아 참석한 추석 행사에 특별히 한인 어머니와 히스패닉계 아버지를 모시고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림픽 경찰서 캡틴이 시니어 부모와 함께 회관을 찾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윤숙씨는 “시니어센터에서 열리는 추석 잔치에 참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딸 덕분에 오게 됐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인타운 관계자들과 시니어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특히 헤더 허트 10지구 LA 시의원은 지난 5월 마더스데이 행사에서 약속했던 시니어센터 프로그램 개발 지원금 10만 달러 체크를 신영신 이사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허트 시의원은 “열심히 준비한 기금이니 한인 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 발전에 유용하게 써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시니어센터 측은 센터 강당 재단장에 기여한 최영일 씨와 데비 정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번 추석 잔치 행사는 재외동포청, 왕글로벌넷, 서울메디칼그룹, 베스트 롤업 도어, LA 불교인상록회, 앤섬블루크로스 등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장수아 기자로드리게스 어머니 올림픽 경찰서 로드리게스 부서장은 한인 어머니

2024-09-12

[문예 마당] 슬픔과 함께 고향의 추억 속으로

어릴 적 친정아버지가 꾸민 서재에는 보물단지 책상 하나가 있었다. 큰오빠가 이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의예과에 수석으로 입학했기 때문이다. 그 연유로 고등학생이던 나의 두 사촌 오빠가 교대로 우리 집의 그 책상에서 공부하다 가는 날들이 있었다. 이들은 어머니 오빠의 아들들이었다. 그런데 큰집의 막내아들인 오빠는 서울대에 들어갔고 작은집의 오빠는 후기 대학에 합격했다. 최근 큰집 오빠의 부음을 작은집 올케로부터 들으며 둘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기도 했다는 사실도 알았다. 올케는 남편이 장례식에서 서럽게 울더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고인이 된 오빠는 자기 형처럼 유명한 농대를 졸업했지만 다른 길을 갔다. 그는 잘 난체도 열등의식 같은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목소리도 좋고 까무잡잡한 피부의 미남이었다.     큰 외갓집은 어머니 집안의 제사를 물려받은 양자로 들어오신 삼촌이다. 외조부가 돌아가신 1928년은 딸에게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찌어찌 어머니는 그 삼촌과 공동명의로 논밭 조금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불편한 관계가 있었지만 나는 큰 외사촌 언니와 오빠를 좋아했다. 시청 근처인 광산동에서 외삼촌은 삼천리 자전거 대리점을 오래 운영했다. 그리고 외삼촌 댁 이층에서 제사가 있는  날이면 초중고생 사촌들이 모였다. 차례로 교자상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추억을 쌓았다. 당시 오빠는 대학 졸업 후 서울의 유명회사에 지원했지만 잘 안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오빠는 결국 외삼촌처럼 자전거 대리점을 양동 상가에 차렸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결혼했다. 올케는 우리 동네 이웃의 착한 딸이라며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당시 올케도 나처럼 교사여서  퇴근길에 오빠네 가게에 들러 올케랑 이야기도 종종 나누며 정도 들었다. “아가씨, 오셨수?”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지. 고향에 가면 꼭 하루 자고 싶은 그 다정한 오빠와 올케네 집.     얼마 전 한국의 한 지인이 나에게 공진단을 보내준다기에 대신 그 오빠에게 선물해 달라고 했다. 오빠는 그때 간암 투병 중이어서 본인이 먹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오빠는 공진단을 보내준 지인에게도 감사 인사를 갔었다고 한다.     오빠의 병환 중에 가끔 안부를 전하곤 했는데 최근 내가 병원에 다니느라 잠시 소홀했더니 그사이에 별세한 것이다.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그래그래 잘 있냐, 애 아빠 잘 계시냐”고 말했던 오빠였다. 그가 나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는 “예쁜 동생아, 좋은 글 많이 써라”였다.  보고 싶은 오빠, 우리가 모르는 고민 다 떨구시고 좋은 세상으로 가시구려. 최미자 / 수필가문예 마당 고향 추억 어머니 오빠 막내아들인 오빠 오빠네 가게

2024-08-29

[문예마당] 어머니의 DNA가 또 나왔어요

아들 가족이 오랜만에 왔다. 그새 아이들이 훌쩍 자랐다. 틴에이져인  큰 손자와 둘째 손자의 머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파마를 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며느리가 “어머니, 어머니 닮아서 곱슬머리잖아요” 하며 웃었다. 어릴 때는 반질반질 윤이 나고 차분했던 손자들의 머리카락이 붕 뜨고 곱슬곱슬해졌다. 꼭 파마머리 같았다. 얼굴이 작은 데다 머리가 붕 뜨니 서양 아이들처럼 보였다. 내가 두 손자에게 괜찮냐고 물었더니 아주 만족스런 표정으로 좋다고 하였다. 난 마음이 놓였다. 미국 땅이다 보니 그들도 곱슬이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멋져 보였다.     우리 애들도 중·고등학교만 들어가면 곱슬머리가 되었다. 어릴 때는 머리카락이 윤기가 나고 반질반질해서 친하게 지낸 이웃이 잘 먹여서 그런가보다고 부러워했다. 거기다가 손자 둘은 혈액형도 나하고 같은 A형이다. 며느리는 셋째 아들을 낳고 “어머니, 어머니 DNA가  또 나왔어요”라고 했다. 생물을 전공하고 제약회사에서 근무한 며느리는 근거 있는 말을 애교 있게 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곱슬머리가 된 이유를 찾아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서 ‘성호르몬 등 체질의 변화로 인해 사춘기부터 곱슬머리가 된다’에 해당한 것 같았다. 그러한 현상이 유전된 것이다.   사진을 보면 내 머리카락도 역시 어릴 때는 윤기가 나고 반질반질했는데 여고 때 기숙사 생활하면서부터 감당할 수 없는 곱슬이 되었다. 나는 그때 기숙사 물이 수돗물이 아닌 지하수 펌프 물이고 비누가 나빠서 그런 줄만 알았다. 곱슬머리와 교복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칼라의 교복에 반듯한 직모를 한 친구들이 그렇게 부럽고 신기하게 보였다. 그런데다가  내 짝꿍도 나 같은 악성 곱슬이었다. 고3 때 입시 공부에 정신없다가도 우리 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파리만 날아가도 깔깔대고 웃을 때가 아닌가!  친구들은 공부하기 싫으면 부채꼴로 붕붕 떠 있는 우리 머리를 보고 늘 웃어댔다. 나 역시 친구 머리가 맘에 들지 않아서 같이 웃곤 했다.     어릴 때 친척 집에 가면 ‘누구와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기분이 많이 달라졌다.  어린 딸들은 자기 엄마가 젊고 예쁜데 늙은 할머니를 닮았다고 하면 좋을 리가 없다. 말하는 사람은 할머니의 젊은 모습도 알기에 좋은 뜻으로 얘기해도 어린 애들은 우선 시각적으로 늙은 할머니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 우리 손자들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곱슬머리도 좋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팬데믹으로 바깥출입도 줄이고 미장원을 갈 수가 없을 때 나는 내 머리카락을 손수 잘라 보았다. 좀 삐뚤거려도 티가 나지 않았다. 곱슬머리의 장점이 드디어 드러났다. 지금도 그때  사진을 보면 손색이 없다.  내 마음대로 모양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냥 싹둑 싹둑 잘라도 서로 조화를 잘 이루었다. 나는 비로소 내 머리카락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 속담에 ‘양지가 음지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된다’ ,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는 말이 있다. 무서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내 곱슬머리가 빛을 보게 되었다.         외적으로 유전은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얼마든지 노력하고 돈을 들여 바꿀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면적인 것은 문제가 된다. 며느리가 셋째를 낳고 “어머님의 DNA가 또 한명 나왔어요” 할 때 나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내 속에 있는 나쁜 습관 즉 끈기가 없는 점, 우유부단한 점, 자신감이 없어 항상 주저하는 점, 성실하지 못한 점, 이런 것들을 닮지나 않았을까 겁이 났다. 손주들을 어릴 때부터 보면 그들의 소양을 알 수 있다. 다행히 나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손주는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한다. 그리고 모두 끈기가 있다. 어릴 때 레고를 맞추는 걸 보면 기어이 완성하고야 만다.     한 번은 아들이 해외 출장을 다녀오면서 아주 복잡한 레고를 사 왔다. 큰 애는 큰 기선이고, 둘째는 날개가 크게 달린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큰 손자는 며칠을 걸려 조금씩 만들어 완성했고 둘째는 그날 저녁에 다 만들려고 낑낑거리다가 잘 안 되니 울기까지 했다. 옆에서 잠도 안 자고 지켜보던 막내가 둘째에게 “울지 말고 형한테 가르쳐 달라고 해” 하는데도 기어이 혼자서 이리저리 맞추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멋진 완성품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는 없는 끈기를 보고 마음이 놓여서 몇번이고 칭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손주들이 다섯인데 모두가 매사에 성실하다. 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인지! 나의 노년을 행복하게 해주신 창조주 하느님께 오늘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영희 / 수필가문예마당 어머니 수필 어머니 어머니 우리 손자들 양지가 음지

2024-08-22

[문예마당] 우리 어머니

옛날 옛적 어머니는   산 쌓이고 강 쌓이고 들에 쌓인   고요한 시골의 나라에서     먼 하늘 바라보며     꿈꾸며 살아오시고         아버지를 만나시고 아들들만 낳아서     주위에 부러움 사고 아버지께 사랑받고   아들들 건강하게 잘 키우시며     보람 느끼시던 우리 어머니       이제는 또 아들 덕에 미국 구경 하신다며   마음 부풀어 고대하며 손꼽아 기다리셨는데   날벼락도 유분수지     멀리 있는 아들에 소식 한번 말 한마디 없이     갑자기 쓰러지셔 눈만 감고 계시니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우리 어머니         이 미련한 아들은 우리 어머니가     천년만년 사실 줄만 알았고   우리 어머니에게 바칠 효도는   천년만년 남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쓰러지시고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끝내 저 하늘 저세상으로 떠나시니   하늘이 무너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이 아들의 찢어지는 마음은 어떡합니까 우리 어머니       불효자의 한은     이 세상에서는 풀 길이 없고   이 아들 육신의 효도는     천년만년 다 하여도 풀 길이 없는데       그러나 하늘나라 저 천국에서 편히 계실 것을   안심하고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부디부디 영생 복락 누리고 계시옵소서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이창수 / 시인문예마당 어머니 우리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아들 육신

2024-08-15

[살며 생각하며] 무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너무 더운 7월이다. 새벽에는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온다. 일어나서 뉴스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문학 거장 앨리스 먼로의 어두운 가족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전 봄쯤으로 기억한다. 캐나다 작가 먼로의 부고를 신문에서 읽은 것이. 앨리스 먼로는 올해 5월에 92세로 생을 마감했다. 2017년에 절필 선언을 했고, 마지막 십 년 동안은 치매를 앓았다. 그런데 작가가 죽은 지 두 달 후인 지금, 난데없이 이 문학 거장에 대한 기사가 또 나왔다. 그것도 그녀의 친딸에 의해서, 마치 어머니가 죽기를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였다. 2013년에 캐나다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녀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Dear Life)’를 읽으면서, 그 문체에 매료되기도 했었다. 그녀의 소설에는 캐나다의 척박한 시골에서 사는 일상인들이 등장한다. 집안일에 치여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병약한 어머니, 사양길에 접어든 농장을 운영하며 가끔 사냥하러 다니는 무뚝뚝한 아버지, 아버지의 사냥을 쫓아가서 딴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어머니에게 입을 다무는 딸, 이런 시골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아들들은 키우는 말처럼 주목을 받지만, 딸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먹히는 닭과 같은 처지다. 먼로의 주인공들은 주로 여자이며, 그들은 피폐한 삶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한다. 작가의 단편을 읽고 있으면, 회고록인지 소설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날 아침, 내 눈을 끌어당긴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어떤 기자가 쓴 글이다. 기자는 먼로의 딸이 캐나다 신문에 발표한 글을 바탕으로 다음의 내용을 7월 7일 자 신문에 기고했다.   ‘엘리스 먼로는 딸이 어릴 적에 이혼했다. 딸 안드레아는 친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 9살 무렵에 안드레아는 어머니가 사는 온타리오를 방문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외출했을 때, 계부는 안드레아의 침대로 다가왔다. 소녀는 성추행을 당했고, 이 사실을 말했지만, 부모는 모른척했다. 어머니는 계부와 끝까지 함께 살았고, 친아버지 역시 침묵했다. 안드레아는 어른이 된 후에 상담 교사가 되었다. 자신처럼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당한 사람을 치유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현재 말 농장을 운영하면서 온타리오에 살고 있다.’       앨리스 먼로는 의붓딸을 강간한 계부의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소설 속의 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현실 속의 딸은 조금 더 용감한 것 같다. 어머니 먼로는 문학계에서 정상에 올랐다. 캐나다 최초의 노벨상 수상은 시골 출신의 소녀가 이룬 세계적인 출세였다. 안드레아는 어머니의 명성에 흠집을 낼까 봐 몇십 년 동안 비밀로 간직했다. 명상으로 마음을 다독이고 사람들을 상담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평생을 두통과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신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에다 고백하는 것이었을까? 계부도 친모도 세상을 떠난 지금,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신문 지상에 오르락 하는 것을 알 길이 없다.     무덤 속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는 먼로가 이 사실을 안다면 작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을까?     그녀의 허스키한 음성이 서늘한 새벽바람에 실려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게 사람이야, 사람이 사는 모습은 소설이나 현실이나 같아.’ ‘어쩌면 현실이 더 소설 같을지도 몰라. 흐흐흐…’     열어놓은 창으로 나지막한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목소리 무덤 어머니 먼로 앨리스 먼로 어머니 사양길

2024-07-22

“모든 한인이 함께 즐기는 음악 축제”

“가곡, 아리아, 민요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어머니의 삶은 숙제가 아닌 축제입니다. 어머니들과 함께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오는 28일(일) 오후 5시 스코키 노스 쇼어 센터 퍼포밍 아트센터서 창단 10주년 콘서트를 갖는 시카고 어머니 합창단 박근배 지휘자를 비롯 신춘자 단장, 황춘옥 홍보부장이 17일 오후 롤링 메도우스 소재 시카고 중앙일보를 방문했다.     신 단장은 이날 “2012년 창단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등으로 인해 올해 10주년 콘서트를 갖게 됐다. 그 동안 박근배 지휘자님의 지도로 노래 실력이 많이 향상됐다. 단원 모두가 들뜬 상태”라며 “한인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춘옥 홍보부장도 “시카고 어머님들의 이름으로 공연한다. 함께 하면 무엇이든 가능하고 더 아름다운 성과를 낼 수 있다. 모든 열정을 다해 정성껏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근배 지휘자는 “지난 10여년 간 어머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참 기쁘다. 연세가 들면 소리가 바뀌는데 이번 공연은 소리가 바뀌지 않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단원들 스스로 소리 자체가 20년 젊게 느껴진다고 하실 때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비전공자는 전공자들이 느끼기에 한계가 있지만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며 노년을 즐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머니 합창단은 매주 수요일 오전 가나안교회서 2시간 연습을 갖고 있는데 공연을 앞두고는 주 2회로 연습을 늘릴 만큼 열정적으로 준비를 했다.     이번 공연은 시카고 아버지 합창단과 여성 합창단이 우정 출연하고 바리톤 이상열이 특별 출연한다.     이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가입을 원하는 분은 언제든지 환영한다. 특히 젊은 어머니들의 관심과 동참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어머니합창단 참여 문의 및 안내=(630)550-2542(박근배 지휘자).     J 취재팀한인 음악 어머니합창단 참여 음악 축제 어머니 합창단

2024-07-18

[고보임씨 피살사건 미스터리] "참혹한 어머니 죽음…이유라도 알았으면"

고보임(당시 56세)씨 피살 사건이 32년 만에 유력 용의자가 밝혀지면서 재수사 되고 있는 가운데, 본지는 유가족과 연락이 닿아 입장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오렌지카운티에서 거주하는 고씨의 딸 차모(68)씨는 처음에는 담담하게 그날을 회상했지만, 어머니 얘기를 하며 결국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날의 충격은 생생히 남아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차씨와의 일문일답.     -30여년 만에 재수사되고 있다.     “수사관에게 소식을 듣고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또다시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10년만 일찍 발견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아버지도 지난 2015년 돌아가셨고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다른 분들도 대부분 고령으로 돌아가셔서 더 얘기를 들을만한 분이 남아 있지 않다.”     -당시 상황 기억이 나나.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집에 경찰이 전화 와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믿기지 않았다. 충격적이면서도 머릿속에서'왜'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범인은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어머니에게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해줄 수 있나.     “어머니가 실종되기 이틀 전에 함께 밥을 먹었다. 이상한 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저 어머니가 지난 주말 교회에서 다 함께 가는 산기도를 다녀오셨고 ‘하나님을 영접했다’, ‘태어나 가장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하셨을 뿐이다. 그리고 실종 당일에 어머니가 은행 갔다가 부동산을 잠깐 들를 거라고 아버지한테 말했다고 들었다. 근데 거의 은행 문 여는 시간쯤 맞춰 가신 어머니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나는 샌타애나에서 마켓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 실종 신고를 했다는 걸 듣고 아버지 집으로 가서 같이 소식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틀 후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곧장 오빠와 아버지는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당시 나는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해서 어머니의 처참했던 상태는 보지 못했다.”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원동호씨는 아는 사람인가.     “얼굴도, 이름도 모두 처음 들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부모님이 생전 살아계셨을 때 이 사람에 대해 한 번도 언급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의문이다.”     -검찰은 원한 관계나 치정에 가능성을 두고 있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내가 7살 때 아버지와 한국에서 이혼하신 뒤 아버지가 1972년도에 미국에 먼저 오시고 3년 뒤 내가 미국에 와 시민권을 취득해 어머니를 초청했다. 어머니께서 여기 연고가 없으니 아버지와 함께 사셨는데 사이가 좋으셨던 거로 기억한다. (아버지 김승일씨가 한국에서 재혼한 김인선씨도 추후 딸이 미국으로 초청해 김승일씨, 고보임 씨와 같이 살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리고 어머니는 가디나에서 정비사였던 아버지가 하시던 주유소 및 정비소 건너편에서 조그맣게 도넛 가게(아발론/샌피드로)를 하셨고 몇년 동안 장사도 무난하게 잘돼서 좀 살아볼만 하던 차에 변을 당하셨다.”   -검찰은 오필훈씨와 모친과 밀접한 관계였다고 밝혔다.     “자세한 것은 모른다. 오필훈씨는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로 거의 매일같이 주유소를 들렀고 집에도 자주 와서 늦게까지 있다가 갔다는 정도밖에 모른다. 오씨는 당시 아내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와 그의 동생 폴 오씨도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들었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나.     “동네 은행에 가면 ‘너희 어머니한테 도넛을 안 받아본 직원이 없다’는 소릴 들을 정도로 베푸는 것을 좋아하시고 어디를 가나 빈손으로 가실 줄 몰랐다. 대인 관계가 넓진 않으셨다. 늦게 미국에 오셨기 때문에 지리도 잘 몰라 동선이라곤 주중에 가게와 은행, 주말에는 교회와 코스트코 가는 것이 전부여서 만나는 사람들도 한정적이었다. 영어도 못 하고 운전도 서툴러서 다른 곳에 가실 때면 내가 종종 동행했는데, 이런 어머니가 이런 큰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됐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사건이 어떻게 해결됐으면 하는가.     “용의자가 이미 사망했다고 들었다. 진범이란 것이 밝혀져도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수사를 통해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알고 싶다. 내가 살아있을 동안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장수아 기자고보임씨 피살사건 미스터리 어머니 이유라 어머니 얘기 어머니 실종 너희 어머니

2024-06-27

[문화산책] 말하기와 글쓰기

명랑한 아주머니들의 수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참으로 볼만하다. '만화방창 화란춘성' 거침이 없어서 도무지 막을 재간이 없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일단 재미있다. 잘 들어보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말만 줄기차게 하는데도 신통하게 잘 통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신기한 것이 또 있다. 그 수다의 달인 아주머니들에게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냥 날려버리지 말고, 글로 써서 남기면 좋겠다”고 권하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친다. 말과 글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삼팔선보다도 진한 선을 긋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말과 글은 하나이고, 말을 글자로 적어놓으면 글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주로 연극판에서 대사(말) 중심의 공연 대본을 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과 글은 별개일 수 없다.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 사람이 왜 글쓰기는 어렵고 거북하게 여기는 걸까?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장편 소설 몇 권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보통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별로 많지 않다. 말과 글은 전혀 다른 것이고,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깨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에는 역사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지배계층의 권력자들은 글공부를 독점했다. 일반 백성들이 글을 배워서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따로 공부해야 하는 특별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말과 글은 다르다고 여긴다. 물론, 문법이나 맞춤법 같은 기초적 공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크게 어렵거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글은 배워야 잘 쓰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보기에는 글쓰기의 형식에서 자유로운 보통사람들이 진솔하게 쓴 시나 글이 어설픈 문인의 작품보다 한결 감동적이고 울림이 크다. 거추장스러운 제약에 얽매이지 않기에 순수하다. 철들기 전의 어린아이 그림이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과 이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다. 이를 증명할 예들도 많다. 가령, 한국 경상북도 칠곡군 할매시인들도 좋은 예다. 평균 연령 78세의 할매시인들은 마을학당에 모여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주옥같은 글들이 참 많이 탄생했다. 김용택 시인이 100여명의 어머니가 쓴 감동적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엄마의 꽃씨’도 좋은 예다.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1911-2013)가 98세 때 펴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읽어봐도, 일상의 말을 그대로 글로 적은 것처럼 편안하다. 쉽고 편하지만 감동의 울림이 크고, 시에 담긴 유머 감각과 긍정적인 태도가 호평을 받으면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열도를 감동하게 했다.   말과 글은 본디 하나다. 역사적으로 보면, 태초에 먼저 말이 있었고, 한참 지나서 글자가 만들어졌다. 그 후에도 말의 힘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비문학, 신화와 전설, 노래, 민요, 민화 등의 서사구조와 정신세계는 오래 전승되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가령 어린 시절 들었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어머니의 자장가 같은 것의 영향은 평생 간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삶과 생각을 글로 썼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해보면 생각보다 쉽고 재미도 있다. 실제로는 이미 전 국민이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심각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꾹꾹 누르는 글자들이 곧 글이다. 금방이라도 세계 명작이 나올 것 같은 진지한 표정이다. 그 글에다 자기만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고, 좀 길게 쓰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모든 사람은 시인이요, 작가'인 시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글쓰기 옛날이야기 어머니 할머니 시인 달인 아주머니들

2024-06-27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길 옆의 샛길, 일탈을 꿈꾸며

큰길로 잘 가다가 종종 옆길로 빠진다. 옆길은 큰길 옆으로 난 작은 길이다. 살다 보면 크고 넓은 길보다 좁고 비탈진 길로 들어설 때가 있다. 옆길에서 또 옆길로 빠지면 본래 길로 돌아오기 어렵다.     각본이 없으니 사는 게 맨날 옆길로 새는 기분이다. 마음 먹은대로 뜻대로 되는 일이 없어 옆길이나 샛길로 빠진다. 본래 해야 할 일 이외에 다른 일을 하면 옆길로 샜다고 비유한다. 가야 할 고지가 저만큼 보이는데 슬그머니 돌아서거나 중턱에서 뱅뱅 돌다 하산한다. 용기 없음이 분명한데 들이댈 이유는 백만가지다.     큰길이 아니라도 정겹고 그리운 길이 있다. 마을을 거미줄처럼 엮은 동네의 좁고 아늑한 골목길은 좋아하는 사람과 어깨 스치며 지나갈 수 있어 좋다.     딴 길에서 옆으로 새는데 나보다 더 큰 명수가 있으랴!   내 초등학교 학적부(학교생활기록부)에는 ‘명랑쾌활 하고 솔선수범하며 주변을 돕고 창의력이 뛰어나며’까지는 좋은데 ‘산만하고 놀기 좋아한다’로 끝맺음 해서 어머니 보여드리기 민망했다. 매년 같은 문구로 쓰여있어 담임 선생님이 전 학년 기록을 베껴 쓴 게 아닌가 의심도 한다.     근데 그 기록은 진짜로 맞다. 아직도 나는 시시각각 수 십 가지의 생각이 떠올라 엉뚱한 일 벌이고, 산만하기 그지없고 끼가 넘쳐나 놀기 좋아한다. 사는 게 녹록지 않아 ‘놀기 좋아한다’가 ‘일하기 좋아한다’로 ‘일’이 ‘놀기’로 바뀌었을 뿐이다.  성격은 바뀌지 않는다. 부모 염색체를 고스란히 물려 받는다. 부모는 애꿎은 자식 닦달하지 말고 자신의 DNA를 원망해야 한다.     성격은 바꿀 수 없지만 성품은 바뀐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부모의 노력과 정성으로 성품은 바꿀 수 있다. 동으로 가라면 서로 달리고, 방랑기를 주체 못하는 딸 위해 어머니는 등잔불 돋우고 한석봉 어머니처럼 밤 새워 떡을 썰었다.         지금도 나는 옆길로 샐 궁리를 한다. 조금 더 다르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을 찾아 나선다. 길치라서 표지판이 붙은 길도 못 찾는 주제에 안 보이는 길을 찾다보면 캄캄한 숲 속에서 밤새 헤맨다.   이 일하며 저 일 벌이고, 저 일이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을 꿈꾸는 시간은 황홀하다. 사는 게 지루하지 않고 매일이 유쾌하다. 좋게 말하면 창의력 발동이고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 안 가본 길을 걸을 때는 돈 키호테처럼 짜릿한 쾌감을 즐긴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세계 최초 근대소설로 평가된다. 스페인 황금기의 대표적인 문학이자 문학사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시골뜨기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는 기사에 대한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점차 상상 속에 빠져들어 스스로 편력 기사라 생각하고 모험을 하는 떠돌이 방랑 기사다. 스스로 ‘돈 키호테 데 라만차’라 칭하며 농부인 산초를 꼬여 하인으로 삼고 모험을 즐기는 환상과 왜곡을 넘나드는 중세식 판타지 소설이다.     세월이 바퀴를 녹슬게 한다. 꽃길인 줄 알았는데 진흙탕에 빠져 허덕이고 인생의 축포는 불꽃놀이로 허공에 재가 되어 흩어진다.     일탈은 신선한 바람이다. 한번 스쳐간 바람은 다시 볼을 쓰다듬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길에서 꼬여진 생의 실타래가 풀리지 않아도, 매듭 자르지 말고 샛길이던 옆길이든 부지런히 가면 길의 끝에 도달한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샛길 일탈 샛길 일탈 맨날 옆길 한석봉 어머니

2024-06-25

[문화산책] 내 영혼의 집은 어딘가?

책을 읽다가 ‘영적 홈리스’라는 낱말 앞에서 딱 멈추었다. 나도 ‘영적 홈리스’가 아닐까? 라는 고약한 생각에 심각해진 것이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딘가?   노숙자 문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다. LA같은 대도시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골칫거리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는데 대책은 거의 없는 답답한 현실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낱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우스 리스’가 아니고 ‘홈 리스’다. 생존과 사랑의 문제, 생명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걱정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물질적 공간의 문제가 고작이다. ‘홈리스’의 아픔을 돌보기까지는 멀고도 멀었다. 정신세계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딘가? 현실적으로 가장 근본적이고 많은 대답은 신앙일 것이다.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절에 가서 절하는 일…. 하지만 그것으로 끝일까? 그럴까? 성직자가 아닌 사람이 언제나 절대자에 기대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 영혼의 집은 어디인가? 내 마음의 고향은? 혹시 예술이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야무진 꿈을 꾸어보지만 이 또한 충분치 않다.   내 영혼의 집,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인가?   “몸이 많이 아팠던 작년 겨울 어느 날, 그가 서재에 있는 어머니 사진 앞에 망연히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죽음이 바짝바짝 쫓아오는 그 암담한 시기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의 기댈 언덕이었던 모양이다. 아내도 자식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그런 절박한 시간에 그는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령 선생의 부인 강인숙 관장이 고인을 기리며 쓴 책 ‘만남’의 한 구절이다. 기독교 세례를 받기 전의 이어령 선생에게 어머니는 신성(神性)을 지닌 절대적 존재였다는 것이다. 선생의 어머니는 그가 11세 소년일 때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몸은 70년 전에 떠나가셨지만, 어머니는 평생 아들의 영혼의 집, 마음의 고향으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강인숙 관장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어느새 잊어가는 자신을 한탄하자, 이어령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감동적이다.   “걱정 마, 어머니는 다시 돌아와. 와서 영원히 안 떠나셔.”   어머니를 구원의 상징으로 그린 예술작품은 많다. 러시아 한인(韓人) 화가 변월룡(1916~1990) 화백의 어머니 초상화도 좋은 예다. 그는 죽기 얼마 전에 어머니를 그렸다. 이미 40년 전에 세상 떠나신 어머니를 그림으로 살려냈다. 울면서 그렸다, 미술전문가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이 그림은 변월룡 화백의 거의 마지막 작품이다. 화가는 이 그림을 그린 지 얼마 안 돼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5년 뒤 숨졌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어머니를 그린 것이다.   화가 변월룡은 러시아 최고의 레핀미술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이 대학의 정교수가 된 당대 최고 수준의 화가이며, 리얼리즘 미술에서는 단연 한국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존재였다.   그가 그리움을 담아 그린 ‘어머니’는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화가는 왜 말년에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렸을까? 그림 맨 밑 오른쪽 귀퉁이에 한글로 ‘어머니’라고 적었다. 평생 타향살이를 한 화가에게 어머니는 고국과도 같은 말일 것이다. 디아스포라 예술가에게 어머니는 조국 같은 존재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든다. 비틀비틀 흐느적거리며 거리를 헤매는 ‘홈리스’들에게 잠시라도 어머니를 떠올리게 해주면 정신 차리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예술이 그런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야무진 헛꿈인가?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영혼 어머니 초상화 어머니 사진 이어령 선생

2024-06-0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장편소설 ‘바람벽’을 집필하며

때(時)는 오고 간다. 애타게 그리워해도 지워진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마음 떠난 사람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때(時)는 시간의 어떤 순간이나 부분이다. 어떤 일을 하기에 좋은 기회나 알맞은 시기를 말한다.     베스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멸망한 폼페이에는 화산재가 덮칠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는 듯 죽은 사람들이 엉겨 붙어 있다. 연인들은 서로 껴안고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고, 만삭의 어머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바닥에 배를 깔고 웅크리고 있다. 너무 생생해서 금방이라도 화산재를 뚫고 걸어나올 것 같다.     참고 기다리면 때(Time)가 온다. 썰물처럼 떠내려 간 생의 편린들이 무채색의 바다를 거슬러 밀물처럼 몰려온다. 바다는 원래 푸른 빛이었을까? 자음과 모음이 엉겨 붙은 파도는 저녁 노을에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마지막은 찬연하다. 사는 것과 죽는 것은 순간의 불꽃놀이다. 성냥개비나 불쏘시개로 사라진다 해도, 스러지고 다시 일어나, 길 위에서 길이 되는 사람들의 언어를 진솔하게 적고 싶었다.     오래 전 자전소설 두 권과 자전에세이를 출간했다. 자전소설 ‘찔레꽃’은 소설의 형식을 갖추지 못해 서술에 가깝다.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은 이기희 삶을 그린 투영도(投影圖)다.   장편소설 두 권을 정말 쓰고 싶었다. 절망의 늪에서 희망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나락으로 꼬꾸라져도 목숨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싱싱한 언어를 담고 싶었다.   20년 가까이 한 주도 빠짐없이 미주중앙일보에 칼럼을 썼다. 사업하며 아이들 키우면서 밤잠 설치며 글쓰기 연습을 했다. 마감 시간 안 놓치려고 수술 받은 날은 가슴을 동여매고 글을 쓰고 어머니 장례식 날은 눈물로 자판기를 두드렸다.     인생의 반을 지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쓰고 싶은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문제는 구성 즉 플롯이다. E.M 포스트는 ‘소설의 이론’에서 플롯은 사건들 간의 필연적 연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스토리와 구분된다고 설명한다.     무식은 실력 부족으로 유식을 이기지 못한다. 소설다운 소설을 한 편도 쓴 경험이 없어 맨 땅에 헤딩하다 지렁이 잡는 실수를 범하게 될까 두렵다.   작가는 실제 있는 것들을 쓰지 않는다. 입히고 꾸미고 각색하고 분탕질하며 창작의 꽃을 피운다. 백마 탄 왕자와 결혼해 무명시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시나리오는 유명 영화감독 신춘문예 당선작의 소재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작품들 속에도 사랑을 버린 여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텃밭에 뿌린 씨는 싹이 트면 푸릇푸릇 잎이 돋아난다. 이방인으로 남의 땅을 떠돌아도 그리움이 얼룩진 씨앗 한 톨 땅 속 깊이 묻으면 수만 수천개로 번져나간다. 디아스포라는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의학적으로 파종은 다른 장기로 전이된 것으로 족보에서 종통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꿈 속에서 ‘바람벽(Wind wall)’이 소설 제목으로 떠올랐다. 바람벽은 집의 둘레나 방의 칸막이를 위해 흙을 발라 만든 벽이다. 진흙을 뭉개 바른 벽이라도 얼어붙은 몸 녹일, 따스한 구들목이 있는 땅을 찿아 얼마나 헤매였던가.     바람은 동에서 서로 서쪽에서 다시 동쪽으로 분다. 그대와 나,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벽을 허물 수 없다 해도, 바람은 수시로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장편소설 바람벽 베스트셀러 소설가 소설 제목 어머니 장례식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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