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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무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너무 더운 7월이다. 새벽에는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온다. 일어나서 뉴스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문학 거장 앨리스 먼로의 어두운 가족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두 달 전 봄쯤으로 기억한다. 캐나다 작가 먼로의 부고를 신문에서 읽은 것이. 앨리스 먼로는 올해 5월에 92세로 생을 마감했다. 2017년에 절필 선언을 했고, 마지막 십 년 동안은 치매를 앓았다. 그런데 작가가 죽은 지 두 달 후인 지금, 난데없이 이 문학 거장에 대한 기사가 또 나왔다. 그것도 그녀의 친딸에 의해서, 마치 어머니가 죽기를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내가 좋아했던 작가였다. 2013년에 캐나다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녀의 단편집 ‘디어 라이프(Dear Life)’를 읽으면서, 그 문체에 매료되기도 했었다. 그녀의 소설에는 캐나다의 척박한 시골에서 사는 일상인들이 등장한다. 집안일에 치여서 시름시름 죽어가는 병약한 어머니, 사양길에 접어든 농장을 운영하며 가끔 사냥하러 다니는 무뚝뚝한 아버지, 아버지의 사냥을 쫓아가서 딴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되고 어머니에게 입을 다무는 딸, 이런 시골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아들들은 키우는 말처럼 주목을 받지만, 딸은 이리저리 쫓겨 다니다가 먹히는 닭과 같은 처지다. 먼로의 주인공들은 주로 여자이며, 그들은 피폐한 삶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한다. 작가의 단편을 읽고 있으면, 회고록인지 소설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날 아침, 내 눈을 끌어당긴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어떤 기자가 쓴 글이다. 기자는 먼로의 딸이 캐나다 신문에 발표한 글을 바탕으로 다음의 내용을 7월 7일 자 신문에 기고했다.
 
‘엘리스 먼로는 딸이 어릴 적에 이혼했다. 딸 안드레아는 친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 9살 무렵에 안드레아는 어머니가 사는 온타리오를 방문했다. 그날 저녁, 어머니가 외출했을 때, 계부는 안드레아의 침대로 다가왔다. 소녀는 성추행을 당했고, 이 사실을 말했지만, 부모는 모른척했다. 어머니는 계부와 끝까지 함께 살았고, 친아버지 역시 침묵했다. 안드레아는 어른이 된 후에 상담 교사가 되었다. 자신처럼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당한 사람을 치유하는 직업을 선택했다. 현재 말 농장을 운영하면서 온타리오에 살고 있다.’    
 
앨리스 먼로는 의붓딸을 강간한 계부의 이야기를 단편 소설로 쓴 적이 있다. 소설 속의 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만, 현실 속의 딸은 조금 더 용감한 것 같다. 어머니 먼로는 문학계에서 정상에 올랐다. 캐나다 최초의 노벨상 수상은 시골 출신의 소녀가 이룬 세계적인 출세였다. 안드레아는 어머니의 명성에 흠집을 낼까 봐 몇십 년 동안 비밀로 간직했다. 명상으로 마음을 다독이고 사람들을 상담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평생을 두통과 불안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신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에다 고백하는 것이었을까? 계부도 친모도 세상을 떠난 지금,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신문 지상에 오르락 하는 것을 알 길이 없다.  
 
무덤 속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는 먼로가 이 사실을 안다면 작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을까?  
 
그녀의 허스키한 음성이 서늘한 새벽바람에 실려서 들려오는 듯하다.  
 
‘그게 사람이야, 사람이 사는 모습은 소설이나 현실이나 같아.’ ‘어쩌면 현실이 더 소설 같을지도 몰라. 흐흐흐…’  
 
열어놓은 창으로 나지막한 웃음소리도 들려온다.

김미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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