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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수상한 신부님

자신의 정체를 잊은 채 과학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수상한 신부님 몇 분을 소개한다.     신학 박사학위를 가진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의 한 고장에서 대주교를 지냈는데, 그렇게 신부님까지 했던 사람이 감히 지구가 더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절에는 세상의 중심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였고,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위임 받은 피조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에워싸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고는 반기독이며 신성모독이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유사 이래 변함없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 우주관을 하루 아침에 뒤집었다.     오스트리아의 시골에서 농부의 자녀로 태어난 멘델은 어렸을 적부터 농사일을 하며 자랐다. 그는 나중에 가톨릭 사제가 되었지만, 수도원 뒤뜰에 완두콩을 재배하면서 알아낸 것을 토대로 유전 법칙을 확립했다. 그의 업적은 살았을 때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후 그가 이룩한 유전 법칙은 다윈의 진화론에 못지않은 과학적인 성과였기 때문에 그는 인류 최초로 유전학을 시작한 과학자로 자리매김하였다.     멘델 신부는 어렸을 적에 했던 농사와 원예 일에 관심이 많아서 뜨락에 과일나무를 심고 더 많은 수확을 위해서 연구했다. 특히 수도원 뜰에서 가꾼 완두콩을 이리저리 교배시켜서 얻은 수많은 잡종을 분석한 결과 유전에는 어떤 원리가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유전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생전에 수도원 동료와 그 지방 사람들에게는 존경 받았던 신부님이었지만, 학계에서는 무시당했다. 조르주 르메트르는 벨기에 태생의 사제로 로마 교황청 과학원장을 지냈고 나중에는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이란 가톨릭에서 큰 공적이 있는 신부에게 주는 명예 칭호일 뿐 어떤 지위나 직책은 아니지만, 비록 추기경이나 주교 서품은 받지 않았어도 교회에 공을 세운 교황 직속 사제 정도의 호칭이다.     젊은 르메트르 신부가 그 유명한 솔베이 회의에 참관하러 갔을 때 아버지뻘 되는 아인슈타인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주창한 우주론을 역설했지만, 당시 한창 잘 나가던 아인슈타인의 빈축을 샀다고 한다. 시대의 천재 아인슈타인은 우주는 영원불변이라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젊은 천주교 신부가 우주는 큰 폭발로 생겨났으며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말에 화를 냈다. 르메트르 신부는 태초에 우주는 부피가 거의 없는 원시 원자가 폭발해서 생겼으며 그 후 계속해서 팽창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 출신의 술주정뱅이 천문학자 가모프가 그의 이론을 지지했지만, 르메트르의 생각이 워낙 진취적이어서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죽하면 유명한 천체물리학자 한 사람이 라디오 대담 프로에 나와서 우주가 '꽝' 하는 폭발로 시작했다더라는 비아냥으로 그의 이론은 '빅뱅(Big Bang)'이라는 우스갯소리로 전락했다.    르메트르 신부는 은퇴 후 요양 병원 신세를 지던 중에 벨 연구소 전기 기술자가 인공위성 수신 안테나를 정비하던 중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는 바람에 그의 빅뱅 이론은 현재 천체물리학의 대세가 되었다. 임종을 앞둔 르메트르 신부는 자기의 이론이 증명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면서 그런 훌륭한 공적을 남기신 수상한 세 분 신부님께 경의를 표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수상 신부 르메트르 신부 천주교 신부 멘델 신부

2023-12-22

"사랑한다는 건 고백 아닌 결심" 민광호 신부 취임미사

천주교 샌디에이고 한인(골롬바)성당에 민광호 요셉 신부가 새로 부임했다.   지난 3일 이 성당에서 취임미사를 집전한 민광호 신부는 "사랑합니다"는 첫 마디로 강론을 시작하며 "'사랑합니다'라는 것은 고백이 아니라 그렇게 살겠다는 결심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샌디에이고로 보내졌으니 순례하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취임 미사 후 진행된 환영식에서 이동희 유스티노 평협회장은 "샌디에이고 공동체 사목을 위해 오신 신부님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겠다. 새로운 만남을 기뻐하며  신부님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인사말을 했다. 이에 민 신부는 "양적 질적으로 성장하는 공동체, 젊고 활기찬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돈보스꼬 성인의 말씀대로 공동체를 위하여 일하고 봉사하겠다"고 화답했다.   민 신부는 2002년 1월 29일 사제서품을 받고 영운동, 사직동 등에서 보좌 신부를 역임한 후 미국 유학을 했고, 2012년 1월부터 청주교구 사직동 본당 주임신부를 역임했다. 그 후 청주교구 성소국장과 청소년 사목국장 겸 가톨릭청소년센터장으로 사목을 이어오다 이번에 샌디에이고 한인 성당으로 부임했다.취임미사 사랑 신부 취임미사 요셉 신부 보좌 신부

2023-09-05

[디아스포라 시선] 한미동맹 70주년 (2)-재외동포의 서사 '미군 신부'들

지난 7월 27일, 워싱턴DC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한쪽에서는 정전협정 체결 및 한미동맹 70주년 기념행사가, 다른 쪽에서는 종전과 평화를 염원하는 운동가. 시민들의 행진이 있었다. 전자는 한미동맹의 근간이 되는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고, 후자는 70년 간의 대북정책을 반추하고 무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며 미 의회에 발의된 한반도 평화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이 자라온 사회적 환경과 유전적 성향, 문화, 종교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대서사(master narrative)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해석한다. 이 서사는 어떤 면에서는 세상의 원리와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자신의 욕망과 시선을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기도 한다. 역사와 국제관계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요소들을 하나의 대서사만을 통해 지나치게 단순화할 경우 우리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라는 흑백론적 프레임에 갇히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필자는 지난 번 칼럼에서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통한 창조적 서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미동맹 70주년 행사들을 지배하는 대서사(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미국의 역할에 대한 무비판적 미화와 반공주의적 메세지)의 도덕적, 논리적 빈약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전쟁과 냉전시대를 겪은 세대의 숭고한 희생과 노고를 기리고 기억하는 행위는 중요하다. 하지만 미주 한인들은 국가적, 이념적 서사로 점철된 진영론에 동조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보편적 서사를 통해 한미관계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가 제작한 ‘초선’이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는 메릴린 스트릭랜드 연방하원의원의 가족사는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리는 또 하나의 대안적 서사가 될 수 있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한국전쟁 후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출생한 1962년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제도적 차별을 당했고, 타인종간 결혼은 불법이었다. 또 미국을 백인국가로 유지하려는 인종주의적 이민정책이 시행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은 1965년 이민법 제정 전까지는 미국으로의 공식 이민이 불가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미군과 결혼한 여성에 대한 편견, 사회적 낙인찍기가 심했다. 흔히 ‘전쟁 신부’ 혹은 ‘미군 신부’라고 불리던 한국 여성 모두가 기지촌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기지촌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한·미 양국의 공조에 의한 제도적 피해자로 볼 수 있다. 지난 2022년 9월 대한민국 대법원은 한국 정부가 군사동맹, 외화벌이를 위해 수 십년 동안 미군 주둔지 인근에 기지촌을 직접 설치·운영한 점을 공식 인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판결했다. 이 여성들은 미군 ‘위안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후 한미동맹이라는 명분아래 자행된 비인간적, 비민주적 행위를 가감없이 직면해야 할 책임은 우리의 몫이다.   스트릭랜드 의원이 두 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온 가족은 첫 날부터 흑인-한인 커플과 갓난아기를 받아줄 숙소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세계한민족문화대전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최소 10만 명 가량의 미군 신부들이 미국으로 왔고, 이들은 한국의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은 물론 추후 가족 초청 등을 통해 미국 내 한인 사회 형성의 토대를 닦았다. 미군 신부야말로 한국과 미국을 잇는 문화, 사회, 경제적 접점의 선두에 있었다. 그런데 한미동맹 70주년의 대서사에서 그들의 서사는 어디에 있는가?   스트릭랜드 의원은 인종차별과 한국전쟁이라는 양국의 비극 사이에서 잉태된 자신의 존재를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머니의 사랑과 가르침에서 찾는다. 용산 미군부대에서 태어난 그녀가 연방하원의원이 된 서사는 그 어떤 국가주의적 수사법도 흉내낼 수 없는 감동과 무게감을 지녔다.     사실 대부분의 미주 한인들은 한미양국 관계에서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 한인들은 양국 사이에서 다중적, 포괄적, 초월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역량도 갖췄다. 물론, 강남순 교수가 지적했듯 단순히 지리적으로 외국에 거주한다고 재외동포적(디아스포라적)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자신의 주변성 (marginality by imposition)을 비판적 주변성(critical marginality)으로 전환시키고 정체된 이념적, 국가중심적 사유 방식을 인류보편적, 혁신적 사유로 탈바꿈할 수 있어야 한다.   미주 한인들이 국가적 서사에 동조되는 수동적 객체가 아닌 적극적 주체가 될 때, 한미동맹 70주년의 의미는 더욱 빛날 것이다. 전후석 / 다큐멘터리 감독디아스포라 시선 한미동맹 재외동포 미군 신부 한미동맹 70주년 창조적 서사

2023-08-14

“주소·전화도 없는 노숙자 누가 써주나요”

# 과거 35년 동안 건축업을 해 온 석호영(66)씨는 도박에 손을 대면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한때 월셔와 세인트 앤드루스 거리에 머물며 깡통을 주워 판 돈 5~10달러는 매일 술값으로 탕진했다.   세인트 제임스 교회의 김요한 신부가 한인 홈리스들을 위해 마련한 집에서 6년째 머무는 석씨지만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꾼다. 다만 그는 “누구나 자기 일을 하며 살고 싶기 마련이지만 시작점을 찾기가 힘들다”며 말했다.   # 과테말라에서 30년을 살다 온 송영만(69)씨는 LA에 일거리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왔지만, 현실은 차가운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뿐이었다. 조현병을 앓는 아내의 병원비와 아들의 학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신분이 없는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재기를 꿈꾸는 한인 홈리스들을 위해 정책적 지원을 해줄 수 있는 한인 단체나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LA홈리스서비스국(LAHS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인타운 내 홈리스는 435명으로 집계됐다. 그중 셸터 거주자는 단 17명. 418명이 거리를 전전하고 있다.     한인 홈리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관계자들에 따르면 100~200명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LA시는 내년 전체 예산의 10%인 13억 달러를 홈리스 복지에 투입하기로 결정하며 막대한 규모의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한인 홈리스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홈리스의 세계에서도 한인은 여전히 소수계이기 때문이다.       지난 9일부터 본지가 한인타운에서 만난 5명의 한인 홈리스들은 모두 재기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홈리스 지원 정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거나 알더라도 언어적 장벽 때문에 도움받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들은 특히 구직활동 정보를 얻기가 너무 어렵고 체계적인 지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올림픽 불러바드와 세인트 앤드루스 플레이스에서 3개월째 노숙 중인 전선수(63)씨는 “주소도, 전화번호도 없는 홈리스를 써주는 사업체는 없다”며 “첫 단추를 끼울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단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주류 홈리스 지원 단체는 홈리스들을 일대일로 도와주는 케이스 매니저가 취업 알선은 물론 구직에 필요한 인적사항을 제공하는 지원도 하고 있다.     실제로 한인 홈리스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줄 한인 단체나 프로그램이 많지 않은 대표적인 이유는 저조한 통계상 수치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LAHSA의 홈리스 인종 분포를 보면 라티노 42%, 흑인 33%, 백인 20%다. 아시아계는 1%에 불과하다.   KYCC 스티브 강 대외협력 디렉터는 “한인 홈리스는 체면상 등의 이유로 자주 거처를 옮겨 카운트되기 쉽지 않다”며 “숫자가 적으니 정부에서는 투자할 필요성을 못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다.     KYCC는 LA카운티에서 유일한 공식 아시안 및 한인 홈리스 지원 단체로 알려져 있다. 비공식적인 홈리스 지원단체로는 K타운 포 올, 아버지 밥상 교회, 울타리 선교회 등이 있다.     강 디렉터는 “홈리스에 대한 정부 지원이 늘어나 자금은 문제없지만 적은 인력이 문제”라며 “한국어와 영어 이중언어를 사용하며 홈리스를 도울 젊은 층이 많지 않다”고 현실을 지적했다.   장수아 기자홈리스 홈리스 시리즈 김요한 신부 김상진 기자

2023-06-14

[이 아침에] ‘어부바!’

1970년대 말, 보수 공사를 하던 독일의 한 수도원 지하실에서 낡은 상자 하나가 발견되었다. 수북이 쌓인 먼지가 험악한 세월을 오랫동안 견뎌왔음을 보여주는 그 상자 안에는 1만5000미터에 달하는 35mm 흑백영화 필름이 들어 있었다.   놀랍게도 그 필름에는 오래전 조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필름의 주인공은 조선에 선교사로 나갔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였다. 베버 신부는 1911년 조선을 방문해 4개월간 머물며 조선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조선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가 일본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조선 사람들의 일상과 풍습, 명절과 전통 예식에 이르기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조선을 방문하고 와서 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는 조선 사람들의 특징을 품앗이로 대표되는 공동체 문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적 가치와 조상과 부모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효’ 문화라고 정리했다.   조선을 향한 그의 사랑은 10여 년 후인 1925년, 두 번째 조선 방문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독일에서 영상 촬영 장비를 가져가 조선 최초의 기획 영상을 제작했다. 그가 찍은 영상은 조선의 전통과 문화, 풍경,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115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유럽 전역에서 상영됐다.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던 베버 신부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부모를 유난히 공경하는 ’효‘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베버 신부는 그 질문의 답을 자신이 찍은 필름에서 찾았다. 그가 찍은 영상에 나오는 조선 아이들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업히거나 안겨 있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는 할머니의 등을 거쳐 또 다른 어른의 품으로 옮겨갔다.     부모에 대한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업어 키우면서 베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베버 신부는 조선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과 함께 ‘아이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나라’라는 또 하나의 별명을 붙였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아이의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안고 업어서 키우는 민족이었다. 예전에 자주 쓰던 말인데 요즘은 듣기 힘든 ‘어부바’라는 말이 있다. 그때는 엄마가 아기를 업으면서 ‘어부바!’라고 했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는 아빠에게 업어달라고 매달리면서 ‘어부바!’를 외쳤다.     학교를 졸업하는 자식들은 그동안 키워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업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결혼식을 올릴 때면 신랑이 신부를 업는 것은 물론이고, 짓궂은 친구들은 신부에게 신랑을 업으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부바!’는 생명을 향한 배려이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이제는 자녀 세대에게 ‘효도’를 기대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자녀 세대도 문제겠지만, 자식을 업으면서 했던 ‘어부바!’라는 말이 먼저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옛 기억을 떠올리며 ‘어부바!’ 하면서 업어보자. 등에 업힌 사람의 무게가 낯설게 느껴지는 만큼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감사도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조선 방문 오래전 조선 베버 신부

2023-06-07

[속풀이처방] 성인(聖人)이 필요한 시기

요즘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우리나라의 민낯을 보면 마치 도떼기시장 같다. 좁은 땅덩어리에 붙어살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대며 삿대질하고, 극단적인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반으로 나뉜 나라가 다시 반으로 동강 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든다.   고학력 해외유학파 경제 사기범들은 서민들의 피 같은 돈을 날로 먹고 튀질 않나,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고 강 건너 불구경하던 마약에 우리 아이들이 손을 대질 않나. 도떼기시장도 이런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정부는 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이다. 법으로 인성을 고치는 것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법집행자들의 윤리성을 신뢰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는 법치란 말이 비아냥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수라장 같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법이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다. 사회의 존경을 받는 대상이 국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가정에 어른이 없으면 콩가루 집안이 되듯이 나라에 어른이 없어도 같은 현상이 생긴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이 판을 치고 그 틈새에 사이비 종교들이 기세를 부린다. 그래서 법보다 존경받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존경의 대상을 성인(Saint)이라고 부른다. 성인은 사람에 대한 최대 존칭어이다. 성인들은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 안에서도 아주 중요한 존재 의미를 갖는다.   성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성인들은 쓰러져가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등대 같은 존재들이었다. 중세 유럽의 많은 신자가 부패한 성직자들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하여 교회에 등을 돌리려 하다가 다시 신앙의 길로 들어선 것은 수많은 선행과 기적을 일으킨 성인들 덕분이었다. 성인들은 대부분수도자이었고, 이들은 신자들의 신앙을 고취했을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한 학자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를 교황들의 교회라 하지 않고 성인들의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성인들을 머리 뒤에 후광을 두른, 세상과는 별개로 격리되어 사는 별종 인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톨릭의 많은 성인은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이다.   현대의 대표적인 성인을 소개하자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를 들 수 있다. 흙수저·금수저를 따지고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산다는 천민 철학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사는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어머니 역할을 한 것이 마더 테레사 수녀이다.   미국인 군종신부 에밀 카폰은 어린 동생 같은 미군들을 돌보려고 같이 포로로 잡히었고, 포로수용소에서 그들을 돌보다 병사한 신부이다. 그의 마음은 적군조차 감동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태석 신부는 의사의 신분으로 돈도 명예도 마다하고 내전 중인 남수단에서 그 사회의 가장 밑바닥인 나환자들과 함께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눈물을 모른다는 남수단 아이들의 눈에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이다. 불자인 구수환 감독은 자신과 종교도 다른 가톨릭의 이태석 신부에게 매료되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오염된 한국사회의 치유를 위해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알리고자 오랫동안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에 많은 관객은 ‘울지 마 톤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성인은 종교만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한 성인들은 세상의 희망이자 별이다. 이런 별들이 많을 때 암흑 속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고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중세 유럽 가톨릭 국가들이 정신적인 지주로 삼았던 성인들처럼 우리도 우리의 성인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살레시오회에서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강의를 하던 중 당혹감을 느꼈다. 아이들 중 절반은 잘 웃고 감정 표현도 잘하였는데, 나머지 아이들은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다. 수사들에게 물으니 무표정한 아이들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인데, 한 달 후면 다른 아이들처럼 건강한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법이 아니라 성인 같은 선한 사람들임을 그곳에서 보았다.   선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악한 자들이 발붙일 자리가 없는 세상이 진정한 민주사회이고, 진정한 의미의 하느님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불교·이슬람교 할 것 없이 모든 종교에서 성인들이 많이 나와서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고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등대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홍성남 /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속풀이처방 성인 시기 이태석 신부 천민자본주의 사회 군종신부 에밀

2023-05-29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허블-르메트르 법칙

과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가톨릭 사제가 종종 눈에 띈다. 지동설의 코페르니쿠스, 유전법칙의 멘델,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조르주 르메트르 신부가 그런 경우다. 코페르니쿠스와 멘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웬만한 것은 아는 사람이라도 르메트르 신부는 잘 모른다.     조르주 르메트르는 19세기가 막 저물 무렵 벨기에서 태어났다. 수학과 물리학에 두각을 나타낸 그였지만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29살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로마 교황청 과학원장을 지냈으며, 66세에는 몬시뇰이 되었다. 몬시뇰은 업적이 훌륭한 사제에게 주어지는 권위 있는 명예직이다.   르메트르는 평소 아인슈타인을 존경하여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토대로 우주팽창이론을 구상했다. 마침 솔베이 회의 참석차 브뤼셀에 온 아인슈타인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자기 이론을 설명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정적인 우주를 확신하던 아인슈타인은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역겹다는 막말까지 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이따금 만나기는 했지만 그런 일이 있어서인지 서로 불편해했다고 한다. 솔베이 회의란 벨기에의 부자 사업가 솔베이가 창립한 당시 최고 권위를 가진 물리학-화학 과학자 모임이었다. 1927년에 열렸던 제5차 솔베이 회의는 참석자 29명 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였는데 거기서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역학이 아인슈타인을 제쳤다. 어느덧 양자역학이 고전물리학을 대체하려는 전야에 와있었다.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문제가 생기고, 양자역학을 추종하는 후배들이 대놓고 덤벼들어서 기분이 언짢던 아인슈타인은 새파랗게 젊은 가톨릭 신부가 아버지뻘인 자기에게 팽창하는 우주에 관한 의견을 내자 불편했다. 나중에 아인슈타인은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고 르메트르의 이론에 동의했다고 한다.   우주의 팽창을 증명한 사람은 허블이었지만, 정작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사실 르메트르였다. 그는 허블보다 2년 먼저 허블 법칙을 알아냈고, 허블 상수를 추정했다. 가톨릭 신부였지만 그는 과학과 종교를 엄격히 구별하였는데 그는 최초의 우주는 부피는 없지만, 질량이 무한대인 한 점,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런 '원시 원자'가 폭발하고 팽창하여 지금의 우주가 되었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말하자면 빅뱅 이론의 창시자였다.     허블-르메트르 법칙이란 은하는 거리에 비례해서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천체물리학 박사학위 소지자만 모인 국제천문연맹 회의에서 '허블 법칙'을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바꿀 것을 의결했다.     1963년 빅뱅 이론의 결정적인 증거가 미국 AT&T 회사의 기술자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두 해 후에 논문으로 발표된 우주배경복사 소식은 벨기에 요양원에서 임종을 기다리고 있던 르메트르에게도 전해졌다.     그는 완전무결하신 하나님께 이 우주는 정지 상태인지, 아니면 그 시작부터 팽창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 했는데 다행히 죽기 직전에 자신의 이론이 증명된 것을 안 르메트르 신부는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빅뱅 이론은 현재 우주론의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그는 이미 백 년 전에 대폭발로 생긴 이 우주가 계속 팽창한다고 생각했던 진정한 선지자였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르메트르 허블 르메트르 신부 조르주 르메트르 르메트르 법칙

2023-03-24

[J네트워크] 중국 신부의 몸값 ‘차이리’

중국 국무원이 최근 내놓은 2023년 중앙 1호 문건이 흥미롭다. 올해 향촌 진흥 정책을 밝힌 것인데, 그 주요 내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차이리(彩禮)’ 관리다. 차이리는 결혼을 앞두고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보내는 재물, 주로 돈을 말한다. ‘21세기판 중국 신부의 몸값’인 셈이다. 얼마나 되길래 문제일까. 연초 장시(江西)성에서 ‘1888만 위안(약 270만 달러)’의 현금을 차이리로 요구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3만 위안과는 천양지차다. 조사에 나선 당국이 해당 글은 날조라고 밝혔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왜? 차이리가 중국 사회의 고질병이 됐기 때문이다. 이태 전 장시성의 한 약혼식에선 차이리로 26만 위안의 현금다발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영상이 돌아 화제가 됐다. 2019년엔 빚을 내 얻은 40만 위안을 차이리로 쓰고도 결혼이 성사되지 않자 화가 난 남성이 예비 신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쓰촨성의 한 부모는 최근 미성년인 16세의 딸을 26만 위안의 차이리를 받고 시집보내기로 했다가 딸이 도망치는 등 사회적 비극을 연출했다. 온갖 폐단에도 차이리가 없어지지 않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남녀 성비 불균형이다. 현재 중국엔 남성이 여성보다 4000만 명가량 많다. 한 자녀 정책 이후 남아선호 사상이 빚은 결과다. 20~40세 연령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2000만 명 정도 웃돈다.   두 번째는 체면이다. 다른 집 딸은 얼마 받았는데 하며 비교를 하다 보니 차이리는 계속 오른다. 처음엔 혼수 장만용으로 3만~5만 위안 하던 게 이젠 20만~30만 위안은 보통이고 많게는 60만~80만 위안으로 껑충 뛰었다. 세 번째는 신부 측에서 혼인을 계기로 한몫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신부 부모가 돈 욕심을 내는 경우도 있고, 신부는 훗날 결혼이 파경을 맞았을 때를 대비해 ‘보험금’ 성격으로 어느 정도 돈을 챙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차이리가 비싸지다 보니 농촌 총각의 경우 결혼은 사치가 되고 있다. 특히 장남이 아니면 장가가기는 더 힘들다. 집안 재력을 맏아들 차이리 마련에 쏟아붓다 보니 둘째 아들 몫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것이다. 차이리 문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중국의 남성 4000만이 아내를 얻지 못하니 인구는 더 가파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아울러 과다 남초(男超) 현상이 빚을 범죄 증가, 나아가 전쟁의 유혹 같은 위험성도 거론된다. 대만과의 긴장 고조에 차이리도 한몫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유상철 /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J네트워크 중국 신부 신부 부모 예비 신부 21세기판 신부

2023-03-10

[중국읽기] 중국 신부의 몸값 ‘차이리’

중국 국무원이 최근 내놓은 2023년 중앙 1호 문건이 흥미롭다. 올해 향촌 진흥 정책을 밝힌 것인데, 그 주요 내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차이리(彩禮)’ 관리다. 차이리는 결혼을 앞두고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보내는 재물, 주로 돈을 말한다. ‘21세기판 중국 신부의 몸값’인 셈이다. 얼마나 되길래 문제일까. 연초 장시(江西)성에서 ‘1888만 위안(약 35억6340만원)’의 현금을 차이리로 요구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중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3만 위안과는 천양지차다. 조사에 나선 당국이 해당 글은 날조라고 밝혔지만, 파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왜? 차이리가 중국 사회의 고질병이 됐기 때문이다. 이태 전 장시성의 한 약혼식에선 차이리로 26만 위안의 현금다발을 식탁 위에 올려놓은 영상이 돌아 화제가 됐다. 2019년엔 빚을 내 얻은 40만 위안을 차이리로 쓰고도 결혼이 성사되지 않자 화가 난 남성이 예비 신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쓰촨성의 한 부모는 최근 미성년인 16세의 딸을 26만 위안의 차이리를 받고 시집보내기로 했다가 딸이 도망치는 등 사회적 비극을 연출했다. 온갖 폐단에도 차이리가 없어지지 않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남녀 성비 불균형이다. 현재 중국엔 남성이 여성보다 4000만 명가량 많다. 한 자녀 정책 이후 남아선호 사상이 빚은 결과다. 20~40세 연령에선 남성이 여성보다 2000만 명 정도 웃돈다.   두 번째는 체면이다. 다른 집 딸은 얼마 받았는데 하며 비교를 하다 보니 차이리는 계속 오른다. 처음엔 혼수장만용으로 3만~5만 위안 하던 게 이젠 20만~30만 위안은 보통이고 많게는 60만~80만 위안으로 껑충 뛰었다. 세 번째는 신부 측에서 혼인을 계기로 한몫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신부 부모가 돈 욕심을 내는 경우도 있고, 신부는 훗날 결혼이 파경을 맞았을 때를 대비해 ‘보험금’ 성격으로 어느 정도 돈을 챙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차이리가 비싸지다 보니 농촌 총각의 경우 결혼은 사치가 되고 있다. 특히 장남이 아니면 장가가기는 더 힘들다. 집안 재력을 맏아들 차이리 마련에 쏟아붓다 보니 둘째 아들 몫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것이다. 차이리 문제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중국의 남성 4000만이 아내를 얻지 못하니 인구는 더 가파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아울러 과다 남초(男超) 현상이 빚을 범죄 증가, 나아가 전쟁의 유혹 같은 위험성도 거론된다. 대만과의 긴장 고조에 차이리도 한몫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유상철 / 한국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중국읽기 중국 신부 신부 부모 예비 신부 21세기판 신부

2023-02-27

'다민족 관할 사제'에 한인 임명…성공회 최초, 이문연 신부

한인 신부가 미국성공회 역사상 처음으로 다민족 교회의 관할 사제가 됐다.   미국성공회는 최근 가든그로브 지역 세인트 앤셈 성공회 교회의 관할 사제로 이문연(61·영어명 토마스) 신부를 임명했다. 취임식은 지난 22일 진행됐다.   100여명의 다인종이 출석하는 세인트 앤셈 교회는 현재 한국어를 포함, 베트남어, 스페니시, 영어 등 4개 언어로 감사성찬례(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LA성공회 교구는 지난 2020년 이 신부를 이 교회 관할 사제로 추천했다.     미국성공회 측은 “전국에서 4개 언어권이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는 많지 않다”며 “이처럼 다민족이 모인 교회에서 한인이 관할 사제로 임명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 신부는 “그동안 한인은 주로 한인 교회 관할 사제가 되는데 흔하지 않은 경우라서 자부심을 느낀다”며 “이름만 있는 교회가 아닌 지역사회 내 크고 작은 일에 관심을 갖고 응답하는 교회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본래 순복음 계열의 개신교 출신의 목회자였다. 1990년에 이민을 와서 테네시주 성공회 신학교에서 학업을 마친 뒤 성공회 신부(1996년)가 됐다. 이후 내슈빌 지역 한인성령교회에서 사역했고 이후 세인트 앤셈 성공회 교회에서 사제로 사역하다가 이번에 관할 사제가 됐다.   한편,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세인트 앤셈 성공회 교회는 할리우드 성공회 교회가 모교회다. 이민자의 유입으로 할리우드 성공회 교회의 교인 수가 늘자 지난 1982년 교인들을 나눠 가든그로브 지역에 새롭게 세웠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다민족 성공회 관할 사제로 성공회 신부 성공회 교회

2023-01-26

김정훈 라파엘 본당 신부 사제 서품 25주년

 덴버 성로렌스 한인성당은 지난 15일 김정훈 라파엘 본당 신부의 사제 서품 25주년을 맞아 은경축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김정훈 라파엘 본당 신부는 “어쭙잖게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교회, 하느님을 위해서 사제로 산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은 사제의 직분이 제게 얼마나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절실히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하느님은 하느님 안에서 제 신앙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저의 성정을 아시는 하느님이 보통사람보다 못한 제게 신부로 지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신 것 같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25년이 지났다” 면서 “과연 축하를 받을 만한지 반성하고 죄송스럽다. 사제직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더 좋은 신부, 더 훌륭한 신부님들도 계신데, 오늘따라 그렇게 살지 못한 마음의 짐이 커지면서, 여러분이 축하한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들린다. 오늘날까지 잘 참아주시고 인내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하느님을 필요로 하고, 교회를 필요로 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기도드린다”라면서 사제 서품 25주년을 맞은 소감을 밝혔다.        이 날 김 신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날, 아무런 마음 없이 저를 보내주시고 승낙해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며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도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덧붙였다. 또, 김 신부는 사도 바오르의 코린토 1서에 대해 강론하면서 “사도 바오르가 자신의 삶으로 예수님을 증언하고 드러낸 것처럼, 사제인 저도 예수님을 증언하고 끌어내는 삶으로, 이왕이면 아름답고 생각만 해도 고마우신 하느님을 끌어내는 그런 사제로, 부족하지만, 다시 열심히 살아가겠다”며 스스로에게도 다짐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이후 박찬인 미카엘 전 사목회장의 김 신부의 약력 소개, 임광익 클레멘스 전 사목회장과 김준섭 엘리야 현 사목회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임 전 회장은 “신부님의 은경축일을 축하드린다. 김 신부님은 사제가 되기 위해 무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신학대학, 군 복무와 사회복지시설 봉사 활동 등 다양한 현장체험을 하고 부제품을 받으셨고, 다시 1년 뒤에 사제품을 받았다. 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제품을 받으신 지 25년이 되었다.지난 26년간 매 고비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치유받고, 신부님 자신을 이겨내시어 오늘에 이르렀다. 저희로 말미암아 더없는 기쁨과 위안을 얻어 앞으로 금경축을 넘어 회경축까지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린다.”고 축사했다. 또 김준섭 엘리야 현 사목회장은 “오늘은 김정훈 라파엘 신부님께서 사제 서품을 받으신 지 25주년이 되는 은경축일로, 우리 본당에는 아주 뜻깊은 날이다. 은경축일을 맞으신 신부님께 존경과 축하인사를 드린다. 신부님께서는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시는 해결사다. 오늘 하루만이 아니라 신부님께서 사제직에 계시는 내내 선한 목자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기도드리자.  신부님은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사제로서 양떼들을 잘 보살피실 것이다. 앞으로도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어렵고 약한 분들에게 풍족히 나누어 주시는 사제로서 살아가시길 기도드린다. 사랑합니다”라고 축사했다.  미사 후 성도들은 친교실에 모여 케이크 커팅식과 함께, 성모회에서 준비한 점심 식사를 하면서 다함께 김 신부의 은경축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경진 기자김정훈 라파엘 신부 사제 김정훈 라파엘 교회 하느님

202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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