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어부바!’
놀랍게도 그 필름에는 오래전 조선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필름의 주인공은 조선에 선교사로 나갔던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였다. 베버 신부는 1911년 조선을 방문해 4개월간 머물며 조선과 사랑에 빠졌다. 그는 조선의 아름다운 전통과 문화가 일본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조선 사람들의 일상과 풍습, 명절과 전통 예식에 이르기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조선을 방문하고 와서 낸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제목의 책에서 그는 조선 사람들의 특징을 품앗이로 대표되는 공동체 문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적 가치와 조상과 부모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표현하는 ‘효’ 문화라고 정리했다.
조선을 향한 그의 사랑은 10여 년 후인 1925년, 두 번째 조선 방문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독일에서 영상 촬영 장비를 가져가 조선 최초의 기획 영상을 제작했다. 그가 찍은 영상은 조선의 전통과 문화, 풍경,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115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유럽 전역에서 상영됐다.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던 베버 신부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부모를 유난히 공경하는 ’효‘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베버 신부는 그 질문의 답을 자신이 찍은 필름에서 찾았다. 그가 찍은 영상에 나오는 조선 아이들은 대부분 누군가에게 업히거나 안겨 있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는 할머니의 등을 거쳐 또 다른 어른의 품으로 옮겨갔다.
부모에 대한 사랑은 부모가 자식을 업어 키우면서 베푼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베버 신부는 조선에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과 함께 ‘아이의 발이 땅에 닿지 않는 나라’라는 또 하나의 별명을 붙였다.
그렇다. 우리 민족은 아이의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안고 업어서 키우는 민족이었다. 예전에 자주 쓰던 말인데 요즘은 듣기 힘든 ‘어부바’라는 말이 있다. 그때는 엄마가 아기를 업으면서 ‘어부바!’라고 했다. 아이들은 집에 들어오는 아빠에게 업어달라고 매달리면서 ‘어부바!’를 외쳤다.
학교를 졸업하는 자식들은 그동안 키워주신 어머니 아버지를 업으며 고마움을 전했다. 결혼식을 올릴 때면 신랑이 신부를 업는 것은 물론이고, 짓궂은 친구들은 신부에게 신랑을 업으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부바!’는 생명을 향한 배려이고,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이제는 자녀 세대에게 ‘효도’를 기대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자녀 세대도 문제겠지만, 자식을 업으면서 했던 ‘어부바!’라는 말이 먼저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옛 기억을 떠올리며 ‘어부바!’ 하면서 업어보자. 등에 업힌 사람의 무게가 낯설게 느껴지는 만큼 그 사람을 향한 사랑과 감사도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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