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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시선] 한미동맹 70주년 (2)-재외동포의 서사 '미군 신부'들

전후석 다큐멘터리 감독

전후석 다큐멘터리 감독

지난 7월 27일, 워싱턴DC에서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한쪽에서는 정전협정 체결 및 한미동맹 70주년 기념행사가, 다른 쪽에서는 종전과 평화를 염원하는 운동가. 시민들의 행진이 있었다. 전자는 한미동맹의 근간이 되는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되새기며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고, 후자는 70년 간의 대북정책을 반추하고 무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며 미 의회에 발의된 한반도 평화법안의 통과를 촉구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에 의하면, 우리는 자신이 자라온 사회적 환경과 유전적 성향, 문화, 종교 등을 기반으로 형성된 대서사(master narrative)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해석한다. 이 서사는 어떤 면에서는 세상의 원리와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자신의 욕망과 시선을 하나의 프레임에 가두기도 한다. 역사와 국제관계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요소들을 하나의 대서사만을 통해 지나치게 단순화할 경우 우리는 절대 선과 절대 악이라는 흑백론적 프레임에 갇히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필자는 지난 번 칼럼에서 ‘디아스포라’라는 개념을 통한 창조적 서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미동맹 70주년 행사들을 지배하는 대서사(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미국의 역할에 대한 무비판적 미화와 반공주의적 메세지)의 도덕적, 논리적 빈약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전쟁과 냉전시대를 겪은 세대의 숭고한 희생과 노고를 기리고 기억하는 행위는 중요하다. 하지만 미주 한인들은 국가적, 이념적 서사로 점철된 진영론에 동조하기 보다는 스스로의 보편적 서사를 통해 한미관계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가 제작한 ‘초선’이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는 메릴린 스트릭랜드 연방하원의원의 가족사는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리는 또 하나의 대안적 서사가 될 수 있다. 스트릭랜드 의원은 한국전쟁 후 한국에 주둔하던 미군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출생한 1962년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제도적 차별을 당했고, 타인종간 결혼은 불법이었다. 또 미국을 백인국가로 유지하려는 인종주의적 이민정책이 시행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은 1965년 이민법 제정 전까지는 미국으로의 공식 이민이 불가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미군과 결혼한 여성에 대한 편견, 사회적 낙인찍기가 심했다. 흔히 ‘전쟁 신부’ 혹은 ‘미군 신부’라고 불리던 한국 여성 모두가 기지촌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기지촌 여성’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한·미 양국의 공조에 의한 제도적 피해자로 볼 수 있다. 지난 2022년 9월 대한민국 대법원은 한국 정부가 군사동맹, 외화벌이를 위해 수 십년 동안 미군 주둔지 인근에 기지촌을 직접 설치·운영한 점을 공식 인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판결했다. 이 여성들은 미군 ‘위안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후 한미동맹이라는 명분아래 자행된 비인간적, 비민주적 행위를 가감없이 직면해야 할 책임은 우리의 몫이다.
 
스트릭랜드 의원이 두 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온 가족은 첫 날부터 흑인-한인 커플과 갓난아기를 받아줄 숙소를 찾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세계한민족문화대전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최소 10만 명 가량의 미군 신부들이 미국으로 왔고, 이들은 한국의 가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은 물론 추후 가족 초청 등을 통해 미국 내 한인 사회 형성의 토대를 닦았다. 미군 신부야말로 한국과 미국을 잇는 문화, 사회, 경제적 접점의 선두에 있었다. 그런데 한미동맹 70주년의 대서사에서 그들의 서사는 어디에 있는가?
 
스트릭랜드 의원은 인종차별과 한국전쟁이라는 양국의 비극 사이에서 잉태된 자신의 존재를 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를 어머니의 사랑과 가르침에서 찾는다. 용산 미군부대에서 태어난 그녀가 연방하원의원이 된 서사는 그 어떤 국가주의적 수사법도 흉내낼 수 없는 감동과 무게감을 지녔다.  
 
사실 대부분의 미주 한인들은 한미양국 관계에서 중간자적 위치에 있다. 한인들은 양국 사이에서 다중적, 포괄적, 초월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역량도 갖췄다. 물론, 강남순 교수가 지적했듯 단순히 지리적으로 외국에 거주한다고 재외동포적(디아스포라적)사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부여된 자신의 주변성 (marginality by imposition)을 비판적 주변성(critical marginality)으로 전환시키고 정체된 이념적, 국가중심적 사유 방식을 인류보편적, 혁신적 사유로 탈바꿈할 수 있어야 한다.
 
미주 한인들이 국가적 서사에 동조되는 수동적 객체가 아닌 적극적 주체가 될 때, 한미동맹 70주년의 의미는 더욱 빛날 것이다.

전후석 / 다큐멘터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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