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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는 밤   숨소리 같은, 이어지는 초침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며 바다로 갔어       사막의 긴 그림자를 안았지   온기가 남아있는 모래 톱으로   두발을 재촉하는 손짓을 보았어   떼어지지 않는 발이 천근이었어   긴 그림자의 아침을 깨우는 노래   마주 보는 하나로 다 가진 빈들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어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 펼치고 / 삼층천을 품은 비밀의 정원에서 / 소리없는 울음 후 찿아온 한줌의 햇살 / 난생 처음 가진 소박한 꿈 / 빈들의 기적은 이렇게 시작되었지 / 비우고서야, 내려 놓은 후에야 / 들을 수 있는 바람의 소리, / 별들이 내려앉은 꿈의 들꽃 / 바람따라 흔들리는 들풀의 춤 사위 / 주고만 싶은 들녘의 가슴은 타오르는데 / 지친 허리를 펴서라도 너를 안아야했어 / 언제, 어디에서, 어디쯤 우린 기억될까 / 한잎 단풍속으로 가을 발자국 들려 오는데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고   사라져 가는 그의 숨소리 같은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는   바다로 갔어       계피향 가득한 Oat creamer를 잔뜩 넣은 커피 한모금에 온몸이 따뜻해진다. 하루가 밝아오는 새벽은 늘 다시 세상을 맞이하는 조용한 기대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층 계단을 내려오며 먼저 눈이 가는 곳은 하늘이다. 구름이 덮혀 있나? 아니면 한점 떠 있지 않나? 밝아오는 하늘색을 살핀다. 아직은 붉은 먼동이 번진다. 커피 한잔 들고 덱크로 나와 뒤란을 걷는다. 눈이 마주친 꽃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씨를 뿌려 모종부터 키운 백일홍이며, 스스로 도생한 과꽃도 살랑 흔들며 눈맞춤을 한다.   하루가 지고 하루가 열리는 것. 아직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빈들에 문이 열리고, 지나간 시간들의 아득한 기억으로 문이 닫힌다. 일상 맞이 하는 하루라는 시간. 무심한 초침의 기계음처럼 반복해 오고,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 꿈속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하루의 시간이 열린다. 덱크의 문을 열고 나오면 하루가 열리듯, 부지런한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 숲이 되어진다.     나의 어깨에도 날개가 자라나 깊은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도 숲이 되고 싶다. 바람의 소리며, 바닥까지 눕는 들풀의 순종을 배우고 싶다.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을 이어 빈들은 거대한 켄버스가 된다. 햇살의 따스함으로 생명이 자라 각색의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울창한 숲을 이룬다.     우리의 날들도 그러했다.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으면 자랄 수 없는 한줌의 씨앗이었다. 제 일어나라는 바람의 소리와 햇살의 따뜻한 위로가 없었다면 빈들로 문을 열고 빈들로 문을 닫아야 했다. 보상이 없는 선물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은 시간, 생각하지 못한 장소에서 매일 매일 감춰진 행복의 두루마리를 내려주었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이끄는 그곳으로 손을 잡기만 하면 비밀의 정원과 손짓하는 호수를 만나게 된다. 행복하여야 하리. 그리하여 들꽃이 되고, 붉은 노을 언덕이 되고, 출렁이는 바다가 되어야 하리.       문이 닫히고 한밤이 될 때 /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없을 때 / 아무도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 선물로 받은 그 시간을 빠짐없이 기억해내 / 목이 좁은 호리병에 넣어 바다로 갈꺼야 / 거기서, 흔들리는 파도에 떠내려 / 작은 오두막, 당신의 손에 닿을꺼야 / 나는 다시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 되어, / 작고 하얀 들꽃이 되어 / 당신의 손에 드리워진 선물이 될꺼야 / 출렁이는 파도에 내려 앉은 붉은 노을이 될꺼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리병 바다 퀼트 조각 커피 한모금 노을 언덕

2024-09-1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보다 힘이 있고   움직이는 것이   정지된 것보다 강하다       부드러운 싹이 동토를 뚫고   가느다란 뿌리가   바위를 무너트린다       강한 바람은   옷을 여미게 하지만   부드러운 햇살은   겉옷을 벗게 한다       움켜쥔 꽃봉오리를 피운 것은   외압의 힘이 아니라   내면의 자율이다       부드러운 깃털을 가진 새는   날갯짓의 수고보다   바람에 기대어 날기에   두려움이란 힘을 빼고   나를 맡기면   더 높이, 더 멀리 날 수 있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경계를 긋거나   담을 세우지 말라   이것들은 돌아서 당신을 가두고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을 것이다   마침내 당신의   언어를 빼앗기게 된다      어떤 강한 말보다   조용한 문필의 힘이 강하다   그리고 명사보다 동사가 강하다   그리하여 명명되지 않은 시간에   바보 갈매기 *알바트로스는   바람에 기대어 긴 날개를 펴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갔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새       미시간 호수를 산책하다 여러 무리의 새들을 보았다. 하얀 깃털이 불어오는 바람에 한껏 부풀어 있다. 바다 갈매기도 보이고 작은 물새도 간혹 눈에 띄었다. 모래 위 세 갈래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덩치가 꽤 큰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다. 호수 가까이 날다가 하늘을 향해 비상하는 새를 보면서 두 발로 디딘 땅을 떠나 결코 날 수 없는 내가 초라해 보였다. 수면 위 높은 하늘로 날아간 새는 한동안 날갯짓을 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편안히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인가? 이 물음은 나에게 던진 물음이기도 하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향해 걷고 있냐고.    독서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방과 후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깜깜한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보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때 읽은 책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빠져 몇 번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 속에 나왔던 신의 이름, ‘아프락사스’를 기억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새는 힘겹게 싸운다. 마침내 나를 감싸고 있는 알, 세상을 벗어나 신에게로 날아가는 한 마리 새의 날갯짓을 상상해 보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수고와 노력도 이와 같지 않은가.     바보 갈매기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 바보 갈매기의 이름은 알바트로스이다. 조류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가진 새는 타조이지만 타조는 날 수 없는 새이기에 세상에서 날 수 있는 짐승 중에 가장 큰 것은 단연 알바트로스이다.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무려 3미터가 넘는다. 길고 폭이 좁은 날개를 편 채 바다 표면에 생기는 풍속 차를 이용해 날아오르는 알바트로스는 날갯짓을 하지 않고서도 어느 새보다 더 멀리 날고 더 높이 오른다. 커다란 날개로 미끄러질 듯 날아오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단 한 개의 알을 낳아 암수 교대로 알을 품는다. 새끼는 성장이 느리지만 수명은 30년 이상이나 산다. 한 마리의 짝과 평생 어울려 다니는 독특한 생태가 특이하다. 아마도 함께 기대어 하늘을 나는 데에는 한 마리의 짝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알바트로스가 지상에 내려앉으면 큰 날개가 오히려 장애가 되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일단 하늘에 오르면 폭풍우 속에서도 가공할 만한 용기와 담력으로 고도의 추진력과 힘을 얻어 속도와 높낮이를 자율 하는 능력도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볼 때 시련과 어려움의 연속이었고 삶은 그 속에서 견디며 단련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에게 찾아온 어떤 시련과 폭풍우 속에서도 다듬어지고 단단해져서 더 높이 더 멀리 역경을 헤치며 날아오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바보새 알바트로스처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알바트로스 갈매기 바보새 알바트로스 바보 갈매기 바다 갈매기

2024-09-09

[음악으로 읽는 세상] 바다 교향곡

‘바다 교향곡’은 영국 작곡가 랠프 본윌리엄스가 미국 시인 휘트먼의 시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이다. 휘트먼은 민주주의의 시인, 자유와 평등의 시인, 인도주의의 시인으로 통한다. 그는 자유와 평등에 바탕을 둔 개인주의의 찬미자이며, 복종을 혐오하고 저항의 복음을 소리 높이 외친 시인이었다.   랠프 본윌리엄스는 복종과 귀환, 안정을 거부하는 그의 시 정신에 깊이 매료되었고, 자신도 자유와 방황, 탐험을 지향했다. 특히 인간의 삶과 영혼, 자유와 평등, 개척 정신을 바다와 항해, 배에 비유한 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이에 영감을 받아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바다 교향곡’이라는 바다 찬가를 작곡했다. 금관악기의 팡파르로 시작해 곧바로 합창으로 이어지는 이 교향곡의 도입부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보라. 바다를! 끊임없이 요동치는 가슴, 그 위에 떠 있는 배들을! 보라! 바람 속에 부풀어지며, 초록빛과 푸른빛으로 점점이 부서지는 그 하얀 항해를! 오늘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거친, 짧은 레치타티보. 사납게 흩어지는 물살과 포효하는 소리로 불어 제치는 바람. 모든 나라의 뱃사람의 노래. 펄펄 날려라! 오! 바다여. 너희 나라의 국기를! 펄펄 날려라! 모든 용감한 선장들! 슬퍼하라! 그들의 의무를 다한 배와 더불어 침몰한 모든 뱃사람들!”   단조로 시작한 금관악기의 팡파르가 바로 “보라. 바다를”이라는 합창으로 이어지는데, ‘바다’라는 단어에서 화음이 장조로 바뀌는 것이 인상적이다. 단조로 에너지를 응축해서 장조에서 거대하게 분출하는 것이다. 바다가 연출하는 강렬한 에너지를 이처럼 도발적으로 묘사한 음악이 또 있을까. 휘트먼과 랠프 본윌리엄스는 낭만주의자이자 탐험가, 개척자였다. 그들의 배는 거친 파도와 싸우며 늘 바다 위에 떠 있었다. 그리고 영원히 항구로 돌아오는 것을 거부했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교향곡 바다 교향곡 오늘 바다 작곡가 랠프

2024-08-05

[문화산책] 물처럼 낮은 곳으로…

하늘의 별이 된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는 새벽마다 ‘아침이슬’이 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이슬, 아주 작고 영롱한 물이다.   ‘좋은 사람’ 김민기가 남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스스로를 ‘뒷것’으로 낮추는 마음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매우 절실하다. 아무 데서나 앞에 나서서 설쳐대는 쓰레기 인간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김민기의 낮고 굵은 목소리는 엄청난 죽비다.   ‘뒷것’이라는 낱말을 대하면 ‘노자 도덕경’의 물이 떠오른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섭리하면서도, 자기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같은….   상선약수 편을 찾아 읽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나도 물처럼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양한 해설이 있는데, 김민기가 아버지처럼 모신 장일순 선생은 이렇게 풀이했다.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장일순 선생이 강조한 가르침 중에 “밑으로 기어라”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들 밑으로 기면서 섬겨 모시는 마음 없이는 참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노자의 물이나 민기의 ‘뒷것’과 같은 뜻이다.   물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그렇게 물의 덕성을 닮으려 애쓰며 산다면 세상이 한결 푸근하고 촉촉해질 텐데….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 더러움을 받아내는 포용력,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바위도 뚫어내는 인내와 끈기, 폭포와 같은 용기, 유유히 흘러 바다에 이르는 대의 등을 물의 칠덕(七德)이라 부른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지혜롭고 훌륭한 가르침이다.   물의 덕성은 도가사상의 중요한 핵심이다. 그래서 ‘노자 도덕경’ 여러 곳에서 물을 이야기한다. 가령,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지만, 단단하고 힘센 것을 치는데 물을 이길만한 것이 없다는 가르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여린 물이 화를 내면 대단히 무섭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세월호 참사, 해병대 채상병 비극을 둘러싼 추잡한 소용돌이…. 이런 비극을 극복하고 물의 화를 달래기 위해서는 모두가 서로 다투지 말고 스스로를 낮춰야 한다. 그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다.   혹시 가장 낮아지려고 서로 다투는 희비극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천만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가장 낮은 곳의 물은 평평하다. 다툴 필요가 없다.   세상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기 공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낮은 데로만 흐르는 겸손,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 지극히 당연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몸 바쳐 희생하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 사람, 그런 지도자가 그립다.   김민기의 ‘뒷것’이라는 낱말이 새삼스레 감동으로 스며드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 우직스러운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 세상이 돌아간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산다. 물이나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세상은 그런 사람다운 사람을 바보나 미련한 자로 낮잡아보며 함부로 대한다. 나도 그랬다. 부끄럽다.   아무튼,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시간이 그립고 아쉽다.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끝으로 실없는 농담 한마디. 나는 스스로를 낮추는 데 유리하다. 키가 매우 짧기 때문에….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노자 도덕경 고인 바다 장일순 선생

2024-08-01

[문예 마당] 한국, 실버타운으로 떠나며…

  스물아홉에 캐나다에 이민 해 10년, 그 후 미국에서 40년, 오랜 북아메리카에서의 삶을 접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려 한다. 인생극 3막, 파이날 챕터를 고국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50년 살아온 터전을 옮기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2년 전 아내를 잃은 게 큰 몫을 차지했다. 아들 둘은 다 가정을 꾸렸고 막내딸도 혼인 날짜를 잡는 일만 남았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아 때때로 아내가 나타날 것 같은, 그래도 좋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하면서 고독이랄지 외로움을 실감하곤 했다. 처음엔 두렵고 낯설었지만 이것도 익숙해졌는지 나는 어느덧 홀로 있음을 즐기고 있었다. 우울할 필요도, 후회할 일도 없었다. 서자 막대기 휘둘러봐도 걸칠 게 없다. 오히려 일요일 법회에서 108대 참회문을 봉독할 때면 짜증이 났다. ‘지금껏 살면서 충분히 후회도 많이 했는데 뭘 또 108가지씩이나 참회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난해 가을 한국 방문 길에 강원도 동해시의 실버타운에서 일주일간 체험 숙박을 했다. 실버타운 5층 방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동쪽으로 난 넓은 창문으로 짙푸른 동해가 파노라마로 펼쳐졌고, 새소리를 들으며 숲속을 25분쯤 걸어 내려가면 망상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이른다. 풀러튼 캐슬우드 트레일에서처럼 매일 맨발로 젖은 모래를 밟으며 걸었다. 철석이는 파도 소리에 갈매기들은 울음소리를 내며 내 머리 위로 날아갔다. 가끔 스치는 바닷바람은 지난 것들은 다 잊고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곳에 깨어 머무르라고 나를 흔들었다.     실버타운의 세 끼 식사는 매일 생일 잔칫상 같았다. 늘 색다른 반찬에 생선이나 고기 등 단백질이 많이 함유된 음식도 빠지지 않았다. 점심 후에는 운동실에서 운동하고 저녁엔 노래방에서 어울려 목청을 높였다. 약천온천수 목욕탕엔 사우나가 다섯 종류나 있었다. 평소 일광욕이나 사우나가 체온을 높여 땀으로 몸의 독소를 빼주고 엔도르핀이나 세레토닌, 도파민 같은 70여 가지의 좋은 호르몬은 많이 생성한다고 믿고 실행해온 터라 행운이다 싶었다. 과일이나 인삼을 햇빛에 말리거나 수증기에 찌면 당분이나 영양분의 수치가 높아지는 원리와 같다.     나는 이런 시설과 숲길, 바다 등의 환경이 맘에 들어 바로 정했다. 그뿐만 아니라 스키장이 가까이 있어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어 좋을 것 같았다. 또 속초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65번 동해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처럼 부산스럽고 복잡하지도 않았다. 차만 있으면 설악산이나 오대산 월정사, 무릉계곡, 울릉도행 여객선이 있는 묵호항 등 청정지역을 쏘다닐 수 있을 것 아닌가?     서울이나 수원 등 복잡한 도심의 고급스러운 고층 타워의 실버타운은 내 관심을 끌지 못했다. 풀러튼에서 LA에만 가도 번잡함이 싫었는데 노후생활에 대도시가 웬 말이냐는 느낌이 있어서였다. 사무실에 이듬해 12월쯤 들어오겠다며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 집을 정리하고 미국을 떠나는 데에는 1년여의 시간은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풀러튼으로 돌아와 집 안과 밖에 직접 페인트를 하고 욕조도 바꾸고 정원에는 꽃을 사다 심었다. 2월에 마음과 주변 정리가 끝나자 실버타운의 맛있었던 식사와 숲길, 바다의 파도 소리, 모래밭 맨발 걷기 등이 그리워졌고 예약한 12월까지 기다릴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3월에 집을 내놓으며 실버타운에 전화했다. 집을 내놨는데 7월 초순이면 다 정리하고 갈 수 있으니 몇 달을 당겨달라고 했더니 보름 후에 준비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 여기를 정리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이사를 가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살림살이를 정리해야 했는데 가구는 물론이고 책, 오디오 시스템, CD, LP 음반 등은 처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자녀들과 주위에 나눠주고도 남은 것들은 2주에 걸쳐 거라지세일을 했다. 어디서 그렇게 물건들이 꾸역꾸역 나오는지, 치우면서도 계속 놀래야만 했다.     사진과 앨범, 비디오 영상 같은 마음속의 짐들도 오래전에 버리고 태워 없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난 과거가 없는 사람인 셈이다. 아들 둘과 딸, 8명의 손주도 벌써 내려놓았다. 평소 집착 없이 서로 독립적 삶을 살자고 실행해온 터라 자식이나 손주들이 눈에 밟혀서 전전긍긍하는 일 없이 자유스러웠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지난 주말, 가족 15명이 모인 송별 파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에 집 판 돈이 들어있고 3남매 앞으로 리빙트러스트를 해놓았지만 아빠 빨리 죽기를 기도하지 마라, 나 그거 다 쓰고 죽을 거다.”     여기서 반 백 년을 살다 보니 이제 미국생활이 별 불편 없이 익숙해졌다. 이민 중반쯤엔 자리가 잡혀서 그랬는지 정치적 성향도 진보에서 보수로 바뀌었고, 영어는 손짓 발짓을 면하고 불편 없이 구사하게 되었다. 군대에서 군 생활 알만해지자 제대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지금 미국생활을 병장으로 만기제대하는 기분이다. 이민 올 때 낯선 땅, 서툰 영어, 다른 문화에 대한 불안과 기회의 나라라는 기대가 범벅이었던 때에 비하면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가는 역이민은 내게 달콤한 회귀의 설렘이 있다.     미국을 떠나는 지금 미련이나 후회도 없다. 오늘 아침에, 살던 집에 가 앞뒤 정원의 꽃과 과일나무에 물을 주면서 작별인사를 했다. 이제 살던 집과 거리, 도시가 생각나기도 하겠지만 어쩌겠나 이제 그리워하지 말아야지, 지나간 꿈이었던 것을…. 김윤기 / 수필가문예 마당 실버타운 한국 소리 모래밭 숲길 바다 강원도 동해시

2024-08-01

국보 입고 필드, 바다, 산으로 가자

  미 동부 한인 최대 의류매장인 ‘국보(KUKBO)’가 최대 40% 세일을 실시한다. 멤버십 가입 고객에게는 추가 10% 할인.   국보 여성매장은 새롭게 입고된 기능성 티셔츠, 바람막이 점퍼, 기능성 바지 등 한국 최신 아웃도어 제품들을 할인 판매하고 있다.     국보는 "골퍼들을 위한 봄·여름 필수 아이템인 이너웨어는 아이스 쿨냉감 원단으로 한여름에도 입기 좋은 찰랑찰랑한 원단으로 제작되었으며 깔끔한 디자인으로, 단독으로 입어도 좋고 레이어드 용으로도 입기 좋은 아이템"이라며 "특별히 올해는 더욱 업그레이드된 제품으로, 신축성이 좋아 종일 편한 착용감의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고, 골프 티셔츠도 세련된 디자인과 컬러로 고르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들 제품 중 국보의 대표 인기 상품인 아이스 냉감 바지는 한국 최고 기능성 제품으로, 입은 듯 안 입은 듯한 편안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제공, 명실상부 국보에서 최대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더욱 청량한 촉감과 깔끔한 핏으로 베이직 무지 스타일부터 일자 통바지, 자수 포인트 바지, 격자무늬와 클래식함을 더한 제품 등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국보는 최근 진행되는 세일 기간 중에 가장 핫한 제품에 대해 "지금 가장 활용성 높은 바람막이 재킷도 한층 더 가볍고 실용적으로 업그레이드 됐고 접어서 주머니에 쏙 넣을 정도로 가벼우며, 모자는 탈부착이 가능하다"며 "가볍게 들고 다니기에 딱 좋은 제품으로 가정의 달을 맞아 고마운 분께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국보 여성매장은 연중무휴 주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영업하고 있다.   ▶주소: 158-01 Northern Blvd, Flushing, NY 11358 ▶전화: 718-886-3353 박종원 기자 park.jongwon@koreadailyny.com국보 필드 국보 여성매장 명실상부 국보 필드 바다

2024-05-28

[사진의 기억] 바다 건너 찾아오는 봄

바람이 분다. 수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온 고목은 남쪽 바다를 건너오며 한결 순해진 바람 소리를 기억한다. 때가 이르렀음을 아는 나무는 조용히 제 속의 것들을 흔들어 깨운다. 말랑말랑해진 흙 속으로 힘차게 뿌리를 뻗어 서서히 물을 빨아올린다. 겨우내 참았던 오랜 목마름을 풀어줄 수액이 수관을 따라 실개천으로 흐른다. 서너 아름이 넘는 굵은 기둥을 지나 줄기를 타고 가지 끝에 물이 오르면 비로소 딱딱한 표피를 뚫고 부드럽고 여린 새잎들이 다투어 나올 것이다. 그러면 나무는 몸속에 사계절을 지나왔음을 알리는 나이테 하나를 완성한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동네 어귀에 마을의 수문장처럼 동구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나무의 나이가 몇 살인가에 따라 그 마을의 역사도 가늠되었으므로 수령 수백 년의 멋진 동구나무는 마을의 자부심이었다. 나무를 타고 놀던 아이들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나무와 함께 나이를 먹어갔다. 또한 집에서 멀리 떠났다가 오래간만에 귀향하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주는 것도 동구나무였다. 타향에서 거칠게 혹은 서럽게 살아왔다면 나무를 보며 슬그머니 위로받고, 자랑스럽게 잘 살아왔다면 당당하게 어깨를 펼 것이다. 이때 나무 아래 평상에 모여있던 노인들은 “누구네 집 자식이구만!” 묵은 기억을 끄집어내고, 숨바꼭질하며 놀던 동네 개구쟁이 중에는 “삼촌~”하고 뛰어오는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고향의 문지방을 넘어선 것이다.   전남 강진에서 허리 굽은 노인처럼 ㄷ자로 구부러져 자라는 웅장한 고목을 보았다. 남쪽 바다를 향해 몸을 한껏 내민 나뭇가지는 반갑게 봄을 부르는 손짓 같았다. 그 손끝마다 새순이 돋아나면 겨울과 막 이별한 잿빛 고목은 점차 연둣빛으로 물들고 늦가을 이후 성장을 멈췄던 나무는 싱싱한 계절을 다시 펼칠 것이다. 또한 나무처럼 나이테를 하나 더 그린 사람들도 새봄을 맞이하여 농부는 밭으로, 어부는 바다로, 거침없이 삶의 한가운데로 나아갈 것이다. 어느새 봄이다. 김녕만 / 사진가사진의 기억 바다 남쪽 바다 바다 건너 나이테 하나

2024-03-07

[이 아침에]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

“로렌 엄마가 돌아가셨대.” 딸아이는 가장 친한 친구 엄마의 죽음을 허망한 목소리로 알려왔다. 이웃에 살던 로렌과 딸은 같은 중학교에 다니면서 친해졌다. 아침에는 우리 집에서 두 아이를 학교까지 태워줬고, 집에 올 때는 로렌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로렌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멀리 이사 갔다. 로렌의 부모가 일하는 마켓이 토팽가이기에 진작에 이사를 하였어야 했는데, 로렌이 대학 갈 때까지 기다렸단다. 대신에 그동안 로렌 부모는 토런스에서 토팽가까지 매일 그 먼 거리를 출퇴근해야 했다. 샌타모니카를 지나 말리부로 이어지는 태평양 연안 도로에서 우들랜드힐스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동네가 토팽가다.     로렌의 부모도 여느 한인 이민자들처럼 토팽가에 있는 마켓에서 성실히 일했다. 그 가게는 일 년 열두 달 문 닫는 날이 없었다. 추수감사절에도, 성탄절에도, 새해 첫날에도 그 마켓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바깥출입을 삼갈 때도 그 가게에만 가면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지런히 일한 덕에 집도 장만했고, 로렌도 대학생이 되어 조금 삶의 여유를 누릴 만 하게 되었는데 암이 발견됐다. 수술을 받기에 너무 늦었다고 했다. 병원에 몇 번 들락거리는 사이에 손쓸 틈도 없이 로렌 엄마는 남편과 두 아이를 두고 황망하게 하늘나라로 떠났다.     장례 예배의 집례를 맡았다. 가족들은 장례식장에 그리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장례를 조촐히 치르길 원했다. 그러면서 혹시 토팽가에서 가게 손님들 몇 명이 올 것 같은데,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막상 장례 예배가 시작되자 예배당은 토팽가에서 온 가게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장례 예배 중간에 혹시 고인과의 기억을 나눌 분이 있으면 나누어 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사람이 나와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었다. 그들은 대부분 로렌 엄마가 일하던 마켓의 손님들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로렌 엄마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고 했고, 자신들을 손님이 아니라 가족으로 대해주었다고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들이 고마웠다. 토팽가에서 장례 예배가 드려지는 로즈힐까지 한 시간 넘게 달려와서 평생 열심히 일만 하다 떠난 한 이민자의 삶을 기억해 주는 그들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들에게 가족을 대신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당신들 때문에 그녀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알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로렌 엄마가 일하던 토팽가는 태평양 연안에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 부족의 언어로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토팽가가 샌타모니카 산맥 중간에서 태평양 바다를 마주 보고 있기에 그런 멋진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마흔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로렌 엄마에게 토팽가는 산과 바다가 만나는 곳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만나는 곳은 아니었을까? 아니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자리가 삶과 죽음이 만나는 경계일지도 모른다. 삶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죽음으로 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 경계를 지나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야 마땅하다. 인생의 가장 큰 신비인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두고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도 삶과 죽음의 경계인 인생길을 잘 걸어야겠다.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바다 로렌 엄마 태평양 바다 대부분 로렌

2024-01-31

[수필] 몽생미셀

아침 일찍 파리 서부 몽파르나스 역에서 렌(Rennes)으로 가는 TGV를 탔다. 몽파르나스 역은 파리 중심에 있는 북역과 크기는 비슷하다. 그곳만큼 복잡하지 않아서 방송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다. 파리 서쪽 도시들로 가는 테제베는 모두 이 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안내 방송을 잘 들어야 한다.   오늘 목적지는 몽생미셀이지만 파리에서 렌까지 가는 프랑스의 북서부 지방은 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어서 기대가 크다. 새벽부터 서두르느라 몹시 피곤했던 동생은 기차가 출발하자 곧 졸기 시작한다. 안개가 걷히며 연도에 농촌 풍경이 스친다. 넓고 푸른 초원에 양 떼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멀리 구릉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는 아스라한 모습은 마치 오래전에 떠나 온 고향을 마주한 느낌이다.   두 시간 가까이 달려 기차는 렌에 도착했다. 운 좋게 시간이 꼭 맞아떨어져 곧장 몽생미셸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차는 이번엔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노르망디 해안을 향해 달린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렸는가 싶었는데 눈앞에 불쑥 몽생미셸의 위용이 나타났다.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신비한 천 년의 수도원.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사막에 피라미드가 있다면 바다에는 몽생미셀이 있다”라고 찬탄한 곳이다.   노르망디 해안에서 1km 떨어진 조그만 바위섬인 몽생미셀은 만조가 되면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 된다. 바닷물이 빠지면 모래 위를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바위섬에 서기 708년, 아브랑슈의 주교 오베르가 수도원을 세우고 대천사 미카엘에게 봉헌했다고 한다. 성당의 첨탑에는 미카엘 천사상이 조각되어 있다. 갯벌 위에 걸린 다리를 걸어서 건너 섬에 들어섰다.     섬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왕의 문을 지나 맨 위의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양옆으로 11세기에 형성되었다고 하는 상가와 식당과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중세의 돌길에서 아이러니하게 현대 사람들이 만든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고색창연한 중세의 건물에서는 천 년의 향기 대신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음식을 조리하는 냄새가 풍겨 나온다.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진 곳,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거리. 태고로부터 이어져 온 인간 삶의 긴 고리 어느 시점에 어떤 의미로 나는 지금 서 있는 것일까.     초기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을 위한 간편식으로 이곳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는 명물 오믈렛과 크레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동생과 호텔에서 마시려고 드미 부떼이유(demi bouteille-반병 짜리 포도주)를 한 병 샀다. 이 지방이 주산지인 보르도산 적포도주로 골랐다. 병 생김새가 작고 앙증맞아서 빈 병은 짐 속에 꾸려가기로 했다.   호텔 방에 짐을 풀고 바다 쪽의 창문을 열었다. 창턱 바로 아래에 무덤 하나가 있어서 무척 놀랐다. 모래에 반쯤 파묻힌 비석을 훑어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무덤의 주인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백 년이 됐기 때문이다. 이곳의 오래된 무덤들은 유해는 없고 이제는 비석만 남아 있다고 한다. 짧은 향년을 끝으로 이곳에 갇혀 모래가 된 젊은 넋이 안쓰럽다. 어쩌면 그는 넓은 바다를 건너 바람처럼 물결처럼 항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호텔을 나왔다. 섬의 상층부로 향하는 좁은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오랫동안 내 여행 리스트에 있던 노르망디 해안이 발아래 꿈결처럼 펼쳐진다.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유타 비치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상륙전 첫날 하루에만 만 명이 넘는 연합군이 목숨을 바친 바다는 지금은 망망대해로 푸르게 물결치고 있을 뿐, 전쟁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곳곳에 탑을 세우고 방어용 벽을 쌓아 전략상 훌륭한 요새 역할을 했던 이 섬은 백년전쟁(1337-1453) 시기에도 적에게 빼앗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백년전쟁은 영국의 에드워드 3세와 프랑스의 필립 6세 때 영토와 왕위 계승 문제로 시작된 전쟁이다. 영불해협을 피로 물들이며 5대 116년간 간헐적으로 치러진 전쟁의 끝 무렵에 신의 계시를 듣고 잔 다르크가 나타나 프랑스를 구한다.     섬의 곳곳에 잔 다르크의 동상이 여럿 세워져 있다. 한결같이 남장을 하고 창과 방패를 들고  씩씩하게 서 있다. 그것은 프랑스 국민이 기억하고 싶은 잔 다르크의 모습일 것이다. 그 너머로 남성들의 전쟁에서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한 여인이 떠오른다. 프랑스군에 의해 영국 측에 넘겨져 끝내는 화형대의 불꽃으로 스러져 간 여인이다. 먼 나라와 손잡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은 지구상에 국가라는 체제가 존재하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새 해가 지고 바다는 섬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아름다운 노을이 바람을 타고 일렁이며 수채화가 되어 밀려온다. 일 일 관광객들은 썰물처럼 뭍으로 빠져나갔고 아침에 멀리 나갔던 바다는 수런거리며 일몰 후의 잠자리를 향해 귀가를 서두른다.     이제 바다는 천만 가지로 출렁이며 내 안에 파문을 일으킨다. 물결이 되어 바람이 되어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박유니스 / 수필가수필 몽생미셀 노르망디 해안 바다 한가운데 보르도산 적포도주

2024-01-25

노량: 죽음의 바다…이순신 3부작의 피날레 '노량: 죽음의 바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발발 후 7년,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완벽하게 섬멸하기 위한 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전투를 그린 전쟁 액션 대작이다.     대한민국 최고 흥행의 역사를 기록한 영화 '명량'과 2022년 여름 최고 흥행작 '한산: 용의 출현'을 이은 세 번째 작품이자,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12월 마침내 공개를 확정했다. 이로써 지난 10년간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를 향해 달려온 김한민 감독 이하 스태프들의 대장정이 막을 내린다.   명량을 기획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는 업계의 의견이 많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성웅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세계 해전 역사상 손꼽히는 전투를 스크린에 옮긴다는 것에 대해 실현 가능성과 실현 불가능성 사이, 의견이 분분했던 것. 그러나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시작으로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시리즈, 세 명의 캐스팅이라는 획기적인 기획을 영화로 완성해냈다.     준비 기간까지 포함하면 10년이 훌쩍 넘는 여정의 마지막 작품인 노량: 죽음의 바다는 1598년 노량 해협의 겨울 바다에서 살아서 돌아가려는 왜와 전쟁을 완전히 끝내려는 조선의 난전과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를 압도적 스케일로 펼칠 것을 예고한다.   명량의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의 박해일에 이어 이번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배우 김윤석이 노량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이순신 장군 역할을 맡아 압도적인 연기로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이처럼 역사적인 한 인물을 두고 서로 다른 배우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그 캐릭터를 해석한 경우 역시 한국 영화 사상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가 최초다. 최후의 전투를 앞둔 이순신 장군 역으로 분한 김윤석은 좁고 깊은 노량 해협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현명한 장수, '현장'(賢將)의 모습으로 몰입해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현장감과 함께 그간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스펙터클한 재미와 더불어, 왜와의 전쟁을 끝내려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전투를 압도적 스케일로 스크린에 재현해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전투를 더욱 성대하게 채울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노량: 죽음의 바다는 1598년 최후의 전투의 현장으로 돌아가 관객들에게 장엄한 승리의 전투의 쾌감을 선사할 것이다.업계 죽음 바다

2023-12-24

[글마당] 바다의 외침

올해도 이변은 없다   마지막 한장의 날개   바다의 얼굴이 보인다   하늘이 재색 빛이다       그래도   친구 따라 강남 가고   계절의 물고기가 부른다   한 보따리 싣고 밤을 달렸다   없어지는 뒷 발자국이 무서웠고   앞에 비친 그림들을 보면   여유가 없는 선택, 쫒김이 마음을 흔들었다       항구의 바램을 두고   어두운 물길에 밤새도록 새우잠을 잤다       아침을 두드린다   아침의 꽃을 볼 수 없는 파도의 안개를 헤치며   SEA BASS *에게 안부를 묻는다   대답이 없는 얼굴   불청객 기타 등등, 잡어들의 행렬이 지나갔다   바다는 심상치 않았다   비가 뿌려지고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파도의 골목에 산맥이 막고 있었다       풍랑을 만났다   가늠이 안 되는, 떨어지고, 깨지는 불안 속에   출렁거리며 왈츠를 추었다   파도를 달래는 선장과 승무원, 안전에 만전을 취하고   비바람에 지친 낚시꾼들이   배를 깔고 누워 풍랑을 재운다       무사히 회항을 염원하며   놓친 물고기, 풍랑의외침으로,   숨죽이고돌아온 바다의 길손들   안도의 숨 쉬며 이젠 그만 올 결단을 했는데       바다는 다시 손을 흔들고 있었다       *sea bass, 바다의 검은색 농어 오광운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바다 외침 물고기 풍랑의외침 sea bass 선장과 승무원

2023-12-08

[수필] 수상스키를 접으며

바람이 분다. 한창 여름이어야 할 날씨가 아직 높은 기온을 만들지 못한다. 게다가 바람까지 세차다. 물속에 들어가긴 좀 차다. 더 기다릴까? 아무리 7월이라 해도 물 온도가 차고, 바깥 온도가 낮고, 바람이 있으니 수상스키 타기엔 별로 좋은 조건은 아니다. 마침 독립 기념일 연휴라서 케스테익 호수엔 사람이 붐비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호수에 들어서며 주차비를 내는데 11달러란다. 언제 그렇게 올랐느냐니까 대단히 미안하단다. 하기야 정부에서 손들고 나간 후 개인이 인수해서 왕창 올린 모양이다. 호수를 닫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그나마 열어 주니 고맙게 생각해야 할거나?     그냥 돌아서고 싶었다. 두어 시간 주차에 11달러는 좀 심하다. 아니 너무 아깝다.  기분이 썩 내키지 않지만 약속을 하고 왔으니 오늘은 그냥 타자. 스쿠버다이빙 할 때 입는 웻수트로 무장을 하니 춥지 않아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보트 주인도 차와 보트의 주차비가 엄청 오른 데다 기름값마저 하늘 높은 줄 모르니 한 사람당 100달러씩 받는다.     나까지 세 사람이 보트에 올랐다. 셋 정도라면 기운이 지치도록 탈 수 있겠단 생각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순간 돈 생각은 다 잊고 나보다 먼저 와서 타고 있던 두 사람과 순서대로 스키를 신었다.  일 년 만에 신는 스키는 언제나처럼 내게 설렘을 준다. 잘 될까? 일 년을 더 늙었으니 기운이 떨어지진 않았을까. 그동안 가벼운 운동도 게을리했던 탓에 물에서 올라올 수나 있으려나. 약한 두려움마저 동반하며 던져진 줄의 삼각형을 잡는다.     웻수트 속으로 스며드는 물의 차가움이 심장을 멈추게 할 듯 두려움을 더해 준다. 내가 이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두렵고 떨릴 거면 오지 않았으면 될 터인데. 호수를 꽉 채운 신선한 공기를 뱃속 저 아래까지 들이킨다. 다시 한번 심호흡이 이어지면서 차츰 안정된다. 됐다. 출발!     그렇다. 난 언제나 잘한다. 공연히 잠깐 떨었다. 균형을 잡을 수 있으려나, 잘 올라올 수 있으려나, 힘들어 줄을 놓치지나 않을까. 이 모든 것은 기우였다. 작년이나 다름없이 의젓하게 물에 서서 유유자적 물 위를 미끄럼 탄다. 달려오는 맞바람도 내게 와선 고개를 숙인다. 끄떡없다. 그 정도 바람에 비틀할 내가 아니다. 오랜만에 나를 포옹하는 바람이 억세게 파도를 몰고 왔다. 그 파도를 넘자니 양다리가 휘청인다. 아니 벌써 이러면 안 되는데. 살짝 점프해서 파도를 보내면 그냥 이어서 달려들 온다. 난 아직 몸도 안 풀렸는데 초장부터 맹공격이네.     10여분을 매달렸더니 팔도 다리도 뻐근하다. 안 되겠다. 손 신호로 스톱을 주고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이쿠. 역시 나이 탓인가. 생전 이렇게 힘이 들다 헉헉 된 적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건가.     수상스키? 지난 5년 동안 매해 여름이면 미친 듯이 멕시코 바다로 달려갔다. 열대성 기후여서 바닷물은 따스하니 자쿠지 물을 연상시킨다. 마음이 안정되고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도 겁이 안 난다. 색색의 물고기들이랑 맑고 아름다운 바다가 속살을 내보이니 물속의 화려한 색깔에 취해 수상스키를 타곤 했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렁여도 빠지면 저 어여쁜 바다의 품 일터 겁낼 이유가 없다.       새파랗고 고운 연두색을 섞어 내 앞에 옷을 벗는 바다는 간혹 진한 푸르름으로 파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게 기쁨을 주던 수상스키가 지금은 내게 질문을 한다. 운동? 좋다. 진짜 운동이 많이 된다. 그런데 꼭 수상스키만 운동인가? 더구나 난 수상스키의 진수를 맛보지 못했다. 도저히 한 발로 서는 것이 안 된다. 두 발로 타다가 슬그머니 한 쪽 스키를 버리고 한 발이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한 발로 시작을 못 한다. 올해엔 꼭 해야지. 내년이면 되겠지. 그러다 결국 가을을 맞곤 했다.     지금도 그렇다. 두 발로 시작해서 아직 한 발로는 엄두도 못 내고 난 벌써 지치고 있다. 다시 도전해도 이건 아닌 성싶다. 내 나이가 몇인가? 제발 위험한 운동은 그만두라는 친구의 간곡한 충고가 귓가를 돈다. 어차피 한 발로 일어서지 못한다면 수상스키의 참맛은 없다. 언제까지 초짜 노릇으로 만족할 수 있겠나. 그래. 버리자. 이젠 그만두자. 비용도 이렇게 많이 드는 운동이라면 누군가에게 아주 많이 미안하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배를 곯는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바다야, 난 네가 좋아. 겁나지도 않아. 그렇지만 네 곁을 수상스키를 타며 지키기가 싫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고운 색의 물이 좋고 파도가 좋으니 영영 떠날 순 없다. 모래사장에 배 깔고 누워서라도 너를 가까이하면 된다. 내 속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잠재우자. 보트가 끌어 주는 속력에 쾌감을 느끼며 발바닥을 쳐대는 물의 애무가 나를 자꾸 유혹해도 이 건 이제 끝내자.  비장한 결심을 하곤 두 번째 스키를 신었다. 첫 번 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탔다. 시간도 길어졌다. 한쪽 스키를 벗어 보겠다고 했더니 보트 주인이 도리질이다. 벗어 버린 한쪽 스키 찾으러 다니는 것도 사실 짜증 나는 일이지만 몹시 귀찮아하는 눈치다. 게다가 투덜대기까지. 어째 그리 힘이 좋으세요? 이를 악물고 누가 이기나 자신과 싸우시는 듯 지칠 줄을 모르시네요.     그래.  이것이 마지막이다. 진짜로 마지막이다. 이쯤 탔으면 그동안 많이 즐겼고 행복했다. 앞으론 돈 안 들이고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아보자. 일도 그만둔 처지에 분명 사치가 심했다. 내가 좀 젊었다면 이렇게 내 욕망을 쉽게 버리진 않았을 거다. 사실 쉽게 버리는 건 아니다. 가슴이 싸하니 많이 아쉬운 상태다.아쉬울 때 접는다는 것도 용기일 수 있다. 나이에 맞게, 형편에 맞게 살자. 그래야 아름다운 삶이 내 것이 될 것 같다. 버리는 일도 때를 맞춰야 행복이 될 것이다. 노기제 / 수필가수필 수상스키 수상스키 타기 한쪽 스키 멕시코 바다

2023-11-09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칙칙폭폭~ 단풍 바다를 달리다

노동절 연휴도 지났으니 이제 금방 가을이다. 가을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단풍에 있다. 예부터 단풍은 캐나다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워낙 단풍나무숲이 우거지다 보니 국기에 단풍잎이 들어갈 정도로 캐나다에서 단풍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가을이 무르익는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한 달간 캐나다의 광활한 숲은 붉고 노란 단풍 바다를 이룬다. 캐나다 단풍 중에서도 특히 토론토부터 몬트리올, 오타와, 퀘벡까지 쭉 뻗은 메이플 로드가 하이라이트다.     메이플 로드는 아름다운 붉은 단풍잎이 그야말로 만산홍엽을 이루며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단풍 숲을 꺼내 보인다. 그중에서도 수생마리(Sault Ste. Marie)는 혼이 쏙 빠질 정도로 화려한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수페리어호와 휴런호가 마주하고 강 건너 미시간 주와 접해 있다. 이곳 수생마리는 캐나다 메이플로드 중에서도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어서 특별함을 더한다.   수생마리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거리에 아가와 캐년(Agawa Canyon)이 위치한다. 지금으로부터 12억 년 전 단층작용으로 형성된 후 강물과 바람, 세월에 깎이고 다듬어진 협곡이 단풍으로 붉게 타오르는 장관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아가와 캐년의 명물인 낭만 열차 또는 단풍 열차로 불리는 아가와 캐년 열차에 올라서 말이다. 아가와 캐년 열차는 왕복 8시간 동안 그림 같은 호수와 강을 지나며 아가와 협곡을 누빈다. 유유자적 달리는 단풍열차의 창문은 그대로 액자가 되어 차창 너머 자연이 부리는 색채의 마법이 펼쳐진다. 이 마법은 단 풍열차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명장면이다. 아울러 기관차 앞에 부착된 카메라로 송신되는 풍광을 좌석 화면을 통해서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윽고 아가와 협곡에 도착하면 열차에서 내려 전망대, 신부의 면사포 폭포, 검은 수달 폭포도 관람할 수 있다. 열차에서 보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전망대까지 올라가면 아찔한 협곡을 뒤덮은 단풍의 바다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수생마리 외에도 전 세계 셀레브리티들의 별장이 모인 무스코카 호수와 150년 전통의 증기 유람선, 온타리오에서 가장 넓고 오래된 자연공원인 알곤퀸 주립공원, 새콤달콤한 사우전드 아일랜드 소스의 고장인 킹스턴의 천섬, 캐나다 메이플로드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로렌시아 고원, 198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퀘백 등이 대표적인 메이플 로드다.   올가을, 아가와 캐년 열차에서 눈부신 단풍을 감상하고 싶다면 여행 준비를 서두르는 것이 좋다. 작년에는 좌석이 한정된 관계로 기차표가 모자라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벌써 단풍이 저만치서 오고 있다. 올가을에는 단풍의 바다에 풍덩 빠져봐도 좋겠다.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단풍 바다 단풍 바다 캐나다 단풍 단풍 열차

2023-09-07

결혼 50주년 선물로 '이 꽃' 120만 송이 준비

    한 농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아 아내를 위한 깜짝 선물로 120만 송이의 해바라기를 준비해 화제다.   캔자스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리 윌슨은 그의 아내가 해바라기를 좋아하는 것에 착안해 자신의 땅에 해바라기를 심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80에이커를 해바라기로 가득 채운 것이다.     에이커당 대략 1만5000송이가 심겨 있으니 전체로 따지면 120만 송이에 달한다.   윌슨은 아들의 도움을 받아 지난 5월에 해바라기를 심었다. 이후 지금까지 아내에게는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윌슨은 "오는 8월 10일이면 결혼 50주년을 맞는다. 무엇을 해줄까 엄청 고민하다 아내가 항상 해바라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윌슨 부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50년 동안 서로의 동반자로 삶을 함께 하고 있다.   윌슨의 아내 르네는 깜짝 선물을 받은 뒤 "정말 특별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면서 "해바라기로 채워진 밭 이상으로 완벽한 결혼기념 선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현재 이 지역에는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물결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바라기는 빨리 시들기 때문에 해바라기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기간은 2주 정도에 불과하다.  김병일 기자결혼 선물 결혼기념 선물 해바라기 바다 해바라기 물결

2023-07-31

[이 아침에] 바다의 빛, 바다의 울음

고향은 두메지만 나이 들면서 바다가 곁으로 자꾸 다가왔다. 기회 있을 때마다 바닷가에 나갔고, 여름 휴가철에는 어김없이 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방송사 특파원으로 장기 체류한 곳도 두 군데나 해안 도시였다.     홍콩은 빅토리아 해를 해자로 두르고 보석처럼 반짝거렸고, 태평양의 배꼽 같은 로스앤젤레스도 길고 아름다운 해안선을 끼고 융성하고 있었다. 바다는 늘 거대한 수정체로 시야를 가득가득 채웠고, 살가운 바람은 살갗을 문지르고 폐와 뇌를 청소해 지친 심신의 생기를 살려내 주었다. 태양이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여명에는 심부로부터 파토스가 치솟았고, 낙조가 현란한 수채화를 그려내면 그 예술에 홀려 무아의 지경에 잠기곤 했다.   방송사를 사직하고 자영업을 시작하면서는 아예 바닷가로 이사해 바다와 밀월기를 보냈다.  남 캘리포니아의 뉴포트코스트, 배산임수(背山臨水) 언덕의 거실에서 내려다보는 바닷가 경관은 대형 화폭이었다. 하늘이 코발트색이면 바다도 짙푸르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으면 덩달아 거무스름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면 회색으로 변해 물장구를 쳤고, 해무(海霧)가 짙게 드리우면 바다는 희뿌연 이불을 덮고 숨었다.                해변의 바위 턱에 걸터앉아 있으면 여기가 오늘에 재현된 ‘에덴’의 서쪽이라는 착각에 취하기도 했다. 뭍 쪽으로는 해송(海松)과 삼나무들이 촘촘히 도열해 있고, 아래로는 모래밭이 곡선으로 휘어지며 끝없이 달리고 있었으며, 육지의 가장자리는 바다의 혀가 부단히 핥아서 보얗게 씻어주었다. 그 위의 광활한 창공을 사다새와 가마우지, 갈매기, 비둘기, 제비들이 무정형으로 이리저리 바쁘게 날아다녔다. 큰 떼를 지어 군무를 춰도 서로 부딪지 않으니 자유와 질서의 진수를 보여주는 장관이었다. 새들의 울음소리는 파도 부딪는 소리와 물결 이는 소리,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정교한 교향곡이거나, 불협화음이 뒤섞여 이루는 웅장한 화음처럼 들렸다. “신의 작품이다” 라는 탄성이 입안에서 우물거렸다.       샌디에이고 쪽에서 샌프란시스코 방향으로 순양함급의 군함 한 척이 느리게 지나가고 있었다. 검고 큰 선체에 여러 개의 포신을 사방으로 겨누고 있어서 괴물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망막에 닿자 시야는 급변해 군함색으로 물들고, 푸르던 바다의 색깔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하늘에서는 빛의 향연이, 바다에서는 검은 해신의 유령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거실로 돌아와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흉측한 어둠 속에서 띄엄띄엄 작은 불빛들이 가물거렸다. 밤바다의 풍랑과 무서움을 이겨내는 인간들의 의지가 아닌가. 그 형상 위에 동방에서 바다를 건너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존재, 그 삶의 궤적이 겹쳐졌다. 내면에 잠재해 있는 나의 작은 세상은 바다의 빛깔과 바닷소리의 변주 속에서 흔들리는 작은 조각배였다. 송장길 / 언론인·수필가이 아침에 바다 울음 뉴포트코스트 배산임수 바닷가 경관 방송사 특파원

2023-07-11

빅토리아호 선상에서 정전 70주년 추모음악회

6·25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역사를 알리기 위한 '6·25전쟁 정전 70주년 추모음악회'가 오는 22일(토) 개최된다.  추모음악회는 현재 LA 샌피드로 항에 정박 중이며 역사박물관으로 활용 중인 ‘레인 빅토리아호’ 선상에서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열린다.  레인 빅토리아호는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 작전에 참여해 피란민 7000여 명의 목숨을 구한 군수 물자 수송 상선이다. 이번 음악회를 총괄하는 레인 빅토리아호 박물관 이사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크리스토퍼 리 감독은 "6·25전쟁 중 혁혁한 공을 세운 역사적인 수송선 빅토리아호 선상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게 됐다"며 "미래의 평화를 위해 전·후 세대가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여름 음악회 준비했으니 모든 세대가 함께 즐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정전 70주년 추모음악회는 소프라노 김종숙과 테너 오위영, 클레식 기타리스트 그레고리 코버 이외에도 다수 음악인의 공연으로 꾸며진다. 또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전달식 순서도 마련됐다.   스카렛 엄 전 LA한인회장은 이번 6·25전쟁 정전 70주년 추모음악회의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예향문화센터 회장이기도 한 그는 이번 음악회에 대해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의 역사를 후세들에게 알림과 동시에 우리 문화 지킴이 역할을 하는 의미에서 준비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정전 70주년 추모음악회는 22일 오전 11시부터 레인 빅토리아호(BERTH 52, 2400 Miner St., San Pedro, CA 90731)에서 진행된다. 입장료는 점심을 포함해 50달러다.  ▶문의: (213)819-0192, (213)925-3003 장수아 기자    장수아 jang.suah@koreadaily.com추모음악회 바다 추모음악회 준비위원장 25전쟁 정전 수송선 빅토리아호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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