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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몽생미셀

아침 일찍 파리 서부 몽파르나스 역에서 렌(Rennes)으로 가는 TGV를 탔다. 몽파르나스 역은 파리 중심에 있는 북역과 크기는 비슷하다. 그곳만큼 복잡하지 않아서 방송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다. 파리 서쪽 도시들로 가는 테제베는 모두 이 역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안내 방송을 잘 들어야 한다.
 
오늘 목적지는 몽생미셀이지만 파리에서 렌까지 가는 프랑스의 북서부 지방은 한 번도 여행한 적이 없어서 기대가 크다. 새벽부터 서두르느라 몹시 피곤했던 동생은 기차가 출발하자 곧 졸기 시작한다. 안개가 걷히며 연도에 농촌 풍경이 스친다. 넓고 푸른 초원에 양 떼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끝없이 펼쳐진다. 멀리 구릉 위에 그림 같은 집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는 아스라한 모습은 마치 오래전에 떠나 온 고향을 마주한 느낌이다.
 
두 시간 가까이 달려 기차는 렌에 도착했다. 운 좋게 시간이 꼭 맞아떨어져 곧장 몽생미셸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차는 이번엔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노르망디 해안을 향해 달린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렸는가 싶었는데 눈앞에 불쑥 몽생미셸의 위용이 나타났다.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신비한 천 년의 수도원.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가 “사막에 피라미드가 있다면 바다에는 몽생미셀이 있다”라고 찬탄한 곳이다.
 
노르망디 해안에서 1km 떨어진 조그만 바위섬인 몽생미셀은 만조가 되면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 된다. 바닷물이 빠지면 모래 위를 걸어서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바위섬에 서기 708년, 아브랑슈의 주교 오베르가 수도원을 세우고 대천사 미카엘에게 봉헌했다고 한다. 성당의 첨탑에는 미카엘 천사상이 조각되어 있다. 갯벌 위에 걸린 다리를 걸어서 건너 섬에 들어섰다.  
 


섬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왕의 문을 지나 맨 위의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미로 같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양옆으로 11세기에 형성되었다고 하는 상가와 식당과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중세의 돌길에서 아이러니하게 현대 사람들이 만든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고색창연한 중세의 건물에서는 천 년의 향기 대신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음식을 조리하는 냄새가 풍겨 나온다. 중세와 현대가 어우러진 곳, 시간과  공간이 공존하는 거리. 태고로부터 이어져 온 인간 삶의 긴 고리 어느 시점에 어떤 의미로 나는 지금 서 있는 것일까.  
 
초기 수도사들과 순례자들을 위한 간편식으로 이곳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는 명물 오믈렛과 크레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 동생과 호텔에서 마시려고 드미 부떼이유(demi bouteille-반병 짜리 포도주)를 한 병 샀다. 이 지방이 주산지인 보르도산 적포도주로 골랐다. 병 생김새가 작고 앙증맞아서 빈 병은 짐 속에 꾸려가기로 했다.
 
호텔 방에 짐을 풀고 바다 쪽의 창문을 열었다. 창턱 바로 아래에 무덤 하나가 있어서 무척 놀랐다. 모래에 반쯤 파묻힌 비석을 훑어보고 한 번 더 놀랐다. 무덤의 주인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백 년이 됐기 때문이다. 이곳의 오래된 무덤들은 유해는 없고 이제는 비석만 남아 있다고 한다. 짧은 향년을 끝으로 이곳에 갇혀 모래가 된 젊은 넋이 안쓰럽다. 어쩌면 그는 넓은 바다를 건너 바람처럼 물결처럼 항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호텔을 나왔다. 섬의 상층부로 향하는 좁은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오랫동안 내 여행 리스트에 있던 노르망디 해안이 발아래 꿈결처럼 펼쳐진다.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유타 비치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상륙전 첫날 하루에만 만 명이 넘는 연합군이 목숨을 바친 바다는 지금은 망망대해로 푸르게 물결치고 있을 뿐, 전쟁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곳곳에 탑을 세우고 방어용 벽을 쌓아 전략상 훌륭한 요새 역할을 했던 이 섬은 백년전쟁(1337-1453) 시기에도 적에게 빼앗긴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백년전쟁은 영국의 에드워드 3세와 프랑스의 필립 6세 때 영토와 왕위 계승 문제로 시작된 전쟁이다. 영불해협을 피로 물들이며 5대 116년간 간헐적으로 치러진 전쟁의 끝 무렵에 신의 계시를 듣고 잔 다르크가 나타나 프랑스를 구한다.  
 
섬의 곳곳에 잔 다르크의 동상이 여럿 세워져 있다. 한결같이 남장을 하고 창과 방패를 들고  씩씩하게 서 있다. 그것은 프랑스 국민이 기억하고 싶은 잔 다르크의 모습일 것이다. 그 너머로 남성들의 전쟁에서 끝내 그 벽을 넘지 못한 여인이 떠오른다. 프랑스군에 의해 영국 측에 넘겨져 끝내는 화형대의 불꽃으로 스러져 간 여인이다. 먼 나라와 손잡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정책은 지구상에 국가라는 체제가 존재하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새 해가 지고 바다는 섬으로 가까이 다가온다. 아름다운 노을이 바람을 타고 일렁이며 수채화가 되어 밀려온다. 일 일 관광객들은 썰물처럼 뭍으로 빠져나갔고 아침에 멀리 나갔던 바다는 수런거리며 일몰 후의 잠자리를 향해 귀가를 서두른다.  
 
이제 바다는 천만 가지로 출렁이며 내 안에 파문을 일으킨다. 물결이 되어 바람이 되어 이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박유니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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