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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까방권

마블의 첫 중국계 히어로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개봉 후 흥미로운 리뷰들이 줄을 이었다. 주인공 샹치의 아버지 웬우 역을 맡은 중국 배우 양조위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들이다.     39년 연기 인생 최초로 악역을 맡은 그가 여전히 아련한 눈빛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자 “샹치 보러 갔다가 양조위에 입덕” “마블이 양조위를 데려온 건 신의 한 수” “제일 생각나는 건 양조위 눈빛” 등의 리뷰가 SNS에 연이어 올라왔다.     특히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피의 복수를 감행하는 로맨틱한 악당 캐릭터에 양조위 특유의 매력이 더해져 “양조위가 빌런이라면 빌런이 이길 때도 된 거 같다” “양조위는 세상을 부숴도 무죄” 등의 ‘까방권’ 리뷰까지 등장했다.   ‘까방권’이란 까임 방지권의 줄임말이다. 평소 모범적인 행동을 보였거나 주목할 만한 큰 활약을 보여준 유명인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비난·악성댓글을 면제받을 권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박찬호·박세리·박지성·손흥민·김연아·김연경은 스포츠계 ‘6대 까방권 스타’로 꼽힌다. 모범생 이미지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유명한 유재석·K팝 전도사 방탄소년단(BTS) 등도 연예계 대표 까방권 스타들이다.   물론 ‘까방권’은 스타들의 선한 영향력에 대한 팬들의 무한 애정과 지지의 표현일 뿐, 실제로 잘못을 저지른다면 당연히 비난을 면치 못한다. 평소 바른생활 사나이로 불렸던 가수 유노윤호가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어긴 것에 팬들이 실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연예인이든, 정치인이든 신뢰를 저버리는 일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까방권’은 받는 것보다 지속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 서정민 기자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양조위 눈빛 배우 양조위 양조위 특유

2023-05-15

[삶의 뜨락에서] 마주친 눈빛 2

지난해 늦은 여름 39년을 지켜온 제비 가족들이 겨울을 넘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두 번째 부화한 새 생명의 가족들은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사람이나 동물들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까. 떠날 날이 촉박한데 비행 연습에 쫓기고 있었던 네 마리의 아기 제비가 참으로 가엽고 안쓰럽게 보였던 그 모습, 나와의 마주친 눈빛, 기억이 생생한 지난해 모습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초가을 그들은 떠나고 겨울을 넘기는 이곳에는 이상 기후로 따뜻한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12월에 핀 동백꽃이 빨간 입술의 겨울을 넘다가 이틀 동안  한파가 몰려와 동백꽃을 초토화한 계절을 넘기는 수난이 있었다. 이상 기후의 겨울을 넘기며 차고에 텅 빈 그들의 둥지를 보며 항상 집 떠난 그들을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봄의 기운들이 싹을 틔우고 꽃들은 계절을 속이지 않고 찾아오고 있었다. 만 가지의 봄들이 기지개를 켜는 자연의 질서들을 지키면서 차고 속의 제비 둥지는 고향 떠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9년의 자연의 약속을 지켜온 그들은 과연 40년을 완성할 것인가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매년 4월 20일이 지나면 찾아오는 집 떠난 자식이 돌아오는 기다림과 설렘, 기쁨처럼 올해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겨우내 따뜻한 날들이 지나고 봄은 이상하게도 추운 바람을 몰고 왔다. 걱정되었다. 이 차가운 봄날에 그들이 돌아오면 얼마나 춥게 견딜까 걱정되었다. 물론 그들은 우리 인간보다 앞을 내다보는 삶의 지능이 발달 되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돌아올 자식 걱정하듯 염려스러웠다. 그런 속에 봄의 시간이 지나는데 매일매일같이 둥지를 살폈다.   4월 28일이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아침이면 차고 문을 열면서 하늘을 본다. 오늘도 내일도 소식이 없어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근 1만5000km 긴 여로 상상이 안 되는 거리다. 혹시 지난해 강남 가는 길목에 변이라도 아니면 가족에 이상이라도, 인솔자의 문제라도, 혹시 명물의 지혜? 우리 가족의 노년기를 알고 이사를 한 것인지, 별별 추측을 다 했다.     5월이 시작되었다. 한 번도 4월을 넘긴 적이 없다. 인근 농장에 가 보아도 그곳에도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기다림은 더 커지며 불안까지 엄습하여 다시 농장에 5월 2일 전화를 했다. 그곳에 제비가 1일 날에 왔단다. 그럼 내 식구들은 어떻게 됐다는 것인가, 더욱더 초조해졌다. 별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면서 그래도 기다리는 마음은 오늘도 변함이 없이 차고 문을 일찍 열어주고 어디 외출할 때도 활짝 열어놓고 다녔다. 39년을 같이 한 지붕 밑에 살아 본 사람은 우리의 심정을 알 것이다.     기다림과 서운함의 길목에서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5월 3일, 4일, 기다림 속에 모처럼 바다에 가면서 집 식구에게 아침에 차고 문 일찍 열고 외출 시에도 열어 놓도록 당부를 하고 집을 나서면서 속마음의 기다림과 만남, 무언의 약속 속에 들려온 카톡 소리 “기다리던 제비가  돌아왔습니다.” 제비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상상만 해도 꿈같은 비상, 여기서 거기가 얼마인가 수많은 것들을 보고 헤치며 날아온 명물 중의 명물이다.   그 먼 길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만 리길 뒤에 두고 날개를 수십만 번 휘저으며 그 작은 눈망울 속에 옛 그림 지붕 아래 둥지를 생각하며 날아온 내 식구, 보고 싶었던 기다림의 전설 같은 실화의 40년 지기 가족의 역사는 이루어졌다. 도착한 일행은 우물쭈물할 여지 없이 처음 지은 둥지에 몸을 담는다. 기특한 명물의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둥지 속의 따스함 속에 그들은 자손만대를 위한 보금자리를 폈다. 온종일 어디에선가 먹이 활동과 일가친척들과의 하루를 보내며 가끔 둥지를 살피고 저녁엔 꿈의 보금자리에 깊은 잠을 잔다. 밤에는 차고 문을 내린다. 그들은 알고 있다. 두 노인네의 차고 문지기를, 아침이면 문을 열라고 지지배 요란을 떤다. 차고 문을 열면 꿈의 하루를 시작한다. 날쌘 제비는 곧 알을 가슴에 품고 새 생명의 역사를 시작할 것이다. 오늘 아침 후속대와의 만남, 창공에 수를 놓으며 안도와 기쁨의 마주친 눈빛은 다시 빛나고 있었다. 오광운 / 시인삶의 뜨락에서 눈빛 제비 둥지 제비 가족들 눈빛 기억

2023-05-11

[삶의 뜨락에서] 마주친 눈빛

늘 그랬듯이 매년 4월의 마지막 주일이면 집 떠난 자식이 돌아오는 것처럼 기다리는 설렘이 있다. 올해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다시 오리라 믿는 38년의 연륜이 말해 주고 있지만 세상이 너무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현대 문명의 부산물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또 오는 길이 이웃집이 아닌 이역만리의 먼 길이 아닌가.     그들의 날개는 정말 놀라운, 믿어지지 않는 힘이다.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은 자연의 질서를 지키는 위대한 힘이다. 매일 같이 차고 문을 지켜본다. 그들의 모습이 드디어 4월 26일 약속처럼 39년의 둥지를 찾아 왔다. 항상 한 마리가 선발대로 왔지만 올해는 두 마리가 짝을 짓고 같이 왔다. 그들은 이미 계획된 일들을 하나씩 시작했다. 우린 알 수 없지만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먼저 둥지 수리가 시작되었다. 어디에선가 진흙을 묻혀 온다. 지난해에 쓰였던 둥지를 보수하였고 또 다른 가족들은 새 둥지를 지었다.     따스한 봄의 기운은 짝짓기를 재촉했다. 5월 10일경부터 기쁨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알을 품었다. 이따금 수놈과 암놈은 잠시 임무 교대를 한다. 무릎과 다리의 피로감을 풀고 돌아온다.     약 2주일이 지났다. 암놈의 자세가 어색함을 볼 수 있었다. 알이 부화가 되었음을 뜻한다. 아주 작은 털도 없는 불그스레한 새끼를 조심해야 하니까, 가끔 자세를 바꾼다. 6월 5일 어미는 새끼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먹이 나눔을 시작했다. 부지런한 어미와 아빠는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250번 정도나 들락거린다고 한다. 속히 보고 싶은 몇 마리의 새 생명이 태어났을까 궁금했다. 일주일 후 그들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아직 하얀 털이 보실보실 귀엽게도 생겼다. 분명히 다섯 마리였다. 대부분 네 마리가 태어나지만 이번에는 오랜만에 대가족이 생겼다. 다섯 마리를 키워야 하는 믿기지 않는 어미의 날개는 무척이나 바쁘다. 우리의 해충을 처리하는 유익한 새 제비다.     어느덧 그들은 제 모양새를 갖추었다. 바깥세상 하늘은 두렵고 신기하다. 하지만 날아야 하는 본능, 드디어 날개를 폈다. 하늘을 정복했다. 얼마나 기뻤을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다시 또 두 번째 짝짓기를 시작했다. 이번엔 시간을 계산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다. 지난해에는 두 번째 부화를 도중에 멈추고 떠난 마음 아픈 일이 있었다. 새끼가 나와도 키워서 돌아갈 시간이 없는 상황 판단을 하고 포기했던 가슴 아픈 일이었다. 공연히 신경이 쓰였다. 드디어 두 번째 종족 보존을 위한 위대한 본능은 시작되었다.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은 같았지만 그들의 계산이 정확했다. 하루 이틀… 7월 23일 드디어 네 마리 새끼의 모습이 보였다.     여름의 그림자는 가을의 예쁜 색으로 물들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고난과 기쁨의 교차 속에 네 마리의 쫓기는 강남길 강행군, 어미의 생존법은 강인했다. 아침부터 몰고 어디에선가, 그리고 고공의 행진, 어미는 강훈련을 했다. 아니면 낙오되는 그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을 게다. 하루는 새끼들이 지친 채 지붕 위에 앉아있는 처진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렇게 훈련이 마무리되는 듯했고 8월 21일 아침 온 가족이 모여 재잘대며 차고에서 소란을 피웠다. 작별인사를 했을까? 그리고 23일 차고에서 마주친 한 마리와 나의 눈빛은 무엇을 주고받았을까? 차고 문을 열어 주었다. 남쪽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난 그들이 일주일 늦게 떠날 것을 예상했는데 그들은 5일 정도 먼저 떠났다. 역시 그들의 판단은 놀랍다. 차고에서의 그 눈빛. 고향 집 뒤에 두고 떠난, 특히 마지막 태어난 네 마리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오광운 / 시인삶의 뜨락에서 눈빛 둥지 수리 종족 보존 남쪽 하늘

2022-09-26

[수필] ‘윈디’와 이별하기

“더는 너의 희생을   요구할 수가 없구나 몸 지탱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고   숨쉬기가 그렇듯   힘이 드는데 어찌 널   사랑한답시고   그 상태로 견디라고…”     밤새 비몽사몽간에 윈디의 상태를 살피며 잠을 설치는 날들. 숨소리가 안 들린다. 벌떡 일어난다. 윈디도 기척을 느끼곤 움칠한다. 아직 살았구나.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면 살아있는 윈디를 보게 해주심에 먼저 감사드린다. 이어 윈디에게도 고맙다 말한다. 행복한 하루의 시작을 허락 받았음에 마음 뜨거워지며 일상을 시작한다.   이렇다 할 병은 없지만 늙어 기운 떨어지고 특히 소화기관이 작동을 게을리 하는 듯하다. 가끔 토하고 안 먹고 사흘 정도 끌면 남편과 난 윈디의 마지막이라 믿고 온갖 필요한 준비를 다하곤 했다. 남편 출근한 후 나 혼자 윈디를 간호하다가 진정 이별할 시간이라 생각되어 사진도 찍고 울며불며 이별 준비하기를 대여섯 번. 그러다 물 마시기 시작하고 조금씩 밥도 먹기 시작하면서 2~3주 살아낼 기운을 얻어 거짓말처럼 소생하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숨죽이고 윈디의 숨소리를 듣고자 가까이 간다. 다리를 쭉 뻗으며 기척을 보인다.     “에구 우리 이쁜 윈디, 잘 잤지요? 사랑해요. 나도 알아요. 윈디가 나를 사랑하는 거.”   이젠 혼자 일어나 바깥 잔디밭까지 걸어 나가지 못한다. 안아서 데리고 나가  잔디밭에 내려 놓고 배 둘레에 긴 띠를 둘러 잡아 들고 있으면 다리를 휘청거리며 간신히 볼 일을 본다. 그런대로 작은 볼 일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큰 볼 일은 좀 걸어야 나올 터니 20~30여 발자국 떼어 놓기가 여간 힘에 부치지 않는다. 힘들어 하는 윈디를 보는 나도 힘든다. 이제 그만 이 상황에서 헤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을 친다. 그러나 뒤 따르는 미안한 마음. 아마도 윈디는 이렇게라도 우리 곁에 있기를 원하겠지. 뒷바라지가 귀찮다는 엄마를 원망할까.   아니다. 윈디의 눈은 이렇게 말한다. 내 일상에 어느 순간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 이쁘다는 감탄사를 쏟아 놓을 상대가 있느냐고. 자기라도 있어 줘야 내가 기뻐할 수도 있고, 사랑한다 말 할 수도 있고, 쓰다듬어 주며 행복해 할 수도 있는데, 자기가 죽으면 엄마는  어찌 사느냐며, 버티기 힘들어도 나를 위해 윈디가 살아 있기를 애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 일상이 그렇게 바삭 말라 있다. 윈디 눈빛이 말하는 그 거, 다 맞는 소리다. 그렇다고 숨이 곧 끊어질 듯 몰아 쉬는 괴로운 숨소리 어디가 아픈지 아파서 내는 신음소리 먹기는 잘 먹었는데 소화 못 시키고 누런 물까지 토해내는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 다리에 근육 다 빠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심지어 잠시 서 있기도 힘겨워 하는 모습, 죽은 듯 축 처져 밤낮을 가쁜 숨 몰아 쉬며 시간을 헤아리는 소리, 이젠 분 초를 헤아리고 있다.     윈디는 내게 기쁨을 준다. 윈디의 존재 만으로도 난 행복하다. 밥 달라고 미동도 않으며 줄 때까지 서 있는 끈질긴 모습에도 난 웃는다. 볼 일 보러 밖에 나가야 한다고 문 앞에 서서 조르는 모습도 이뻐서 어쩔줄 모른다. 힘겨워 할딱이며 축 처져 자는 모습도 내겐 감사함이니 엔도르핀 생성 조건이다. 건강할 때와는 달리 포옥 안겨 고개 떨구고 따끈한 체온 전해주는 것도 가슴 뛰게 하는 사랑 나눔이다.   이렇듯 내 욕심만 생각하며 적당히 일상을 조절해서 스키도 가고, 암벽등반도 가며 윈디를 집에 두고 다녔다. 그러나 이젠 잠시도 내 손길을 거둘 수 없이 윈디의 몸 상태가 나빠진다. 이런 상태라면 곁에 없는 나를 원망하며 홀로  아픔과 외로움으로 마지막 호홉을 몰아 쉬게 되겠지.     윈디에게도 최선이 되고, 나에게도 최선이 되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내게 기쁨이 되고자 애쓰는 윈디의 사랑을 크게 확대해서 내 마음에 담자. 윈디가 없어도 그 마음을 가슴에 안고 살면 여전히 난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윈디야, 많이 많이 고마워. 분양하는 사람 집에 가서 ‘Show Dog Champion’ 종자인 너를 첨 봤을 때, 낯가림도 없이 내 목에 매달리던 이쁜 것. 그 순간 넌 내 딸이다 선언하고 입양을 결정했지. 그 후, 준비되는 한 달을 기다렸다  집에 데려온 후 오늘까지 넌 내 기쁨의 샘이었고 행복의 근원으로 너의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단다. 그래서 윈디야,  더 이상은 너의 희생을 요구할 수가 없구나. 몸 지탱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고, 숨쉬기가 그렇듯 힘이 드는데 어찌 널 사랑한답시고 그 상태로 견디라고 내 욕심만 주장하겠니.       그래서 하나님께 부탁드렸어. 윈디가 가장 편안하게, 고통 없이 잠들게 해 주십사고. 그렇다고 내가 내 생활을 모두 접고 너만 지키며 살 수도 없으니 이쯤에서 우리 손을 놓자. 나와 너를 이어주던 단단하고 따스한 끈을 놓고 돌아서자. 내가 먼저 놓을게.   윈디 너도 마음 준비하고 편히 자렴. 고마워. 엄청나게 행복한 너와의 추억이 있어 앞으로도 넉넉하게 잘 살아갈 테니까.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 네 곁을 지키지 못하는 시간 말고, 이렇게 내가 네 곁을 지키고 있을 때, 내게 마지막 네 온기를 주고 편히 잠들면 제일 좋겠다. 하나님께서 그리 해 주시겠지.”   단단히 마음 준비하고 윈디가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련다. 그래도 윈디 뜻을 존중하며 인위적 이별 방법만은 피하고 싶다. 여전히 밥 먹을 시간 되면 배고프다 조르고, 억지로 힘을 내서 홀로 일어서려는 저 살고자 하는 의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다 읽고 있는 나와 남편의 마음이 사랑임을 윈디가 느끼게 하리라. 노기제 / 수필가수필 윈디 이별 윈디 눈빛 인위적 이별 이별 준비하기

2022-06-09

[기고] 봄날, 고양이의 눈빛

완연한 봄이다. 도시 암자에서 맞이하는 몇 번째 봄이던가? 화려한 도시의 봄도 계절의 무상을 느끼기는 매일반이다.     내일(8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절에선 여러 가지 준비로 부산하다. 부처님 가르침대로라면 더 열심히 정진해야 할 테지만 온전한 수행자의 모습은 간 데 없고, 3년 만에 치러질 행사 준비에만 온통 신경이 가 있다.     그래서인가? 봄이 오면 이상의 소설 ‘봉별기’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스물세 살이요- 삼월이요- 각혈이다”라던.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 20세기 초의 유치한 분위기에 잠겨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곤 한다.     누가 말했던가? “변화무쌍하여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오뉴월의 구름이요, 둘째는 고양이 눈, 그리고 세 번째는 여자의 마음”이라고.   언젠가부터 까만색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이따금 내가 사는 암자를 들락거렸다. 허락도 없이 나지막한 벽을 타고 넘어와 눈치를 보며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조그만 툇마루에서 제집인 양 늘어지게 졸곤 했다. 이 녀석은 빨리 달리는 법도 없지만, 한편 항상 조심스럽게 굴었다. 무료하여 조는 듯해도 가느다랗게 반개한 눈에는 긴장을 감추고 있다. 길고양이라 그런지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저 혼자 치열하게 생존의 노력을 하는 듯했다.   마음에 거리를 두고 ‘도시의 외로운 사냥꾼’을 가끔씩 지켜보다가, 추운 겨울나기가 저나 나나 힘들지 싶어 사료를 사서 먹였다. 공양 시간 맞추어 나타나는 저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하기는 할까? 근데 뭔가 응시하는 듯한 저 눈! 꺼림칙하다. 겨우 밥을 주며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표정도 눈빛도 보이기 시작했다.   장자의 ‘추수편’ 이야기 잠깐! 장자와 혜자가 호수의 다리에서 거닐다가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로이 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일세.” 이에 혜자가 대꾸하기를 “자네는 물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겠는가?” 다시 장자가 반박하기를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사람과 동물이 서로 심리적 교감을 할 수 있을까? 언어학자에 의하면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한다는데, 저 고양이에게는 언어도 없는데 어떻게 저런 눈빛을 할 수 있지? 꼭 뭔가 사색하는 것처럼. 하긴 강아지나 송아지의 눈도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다만 알 수 없을 뿐이다. 장자에 의하면, 사람도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니 말이다.   불교의 한 학파에서는 “모든 존재는 물질, 마음, 개념, 유형, 무형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고, 그 다섯 가지 유형에 속하는 세부 존재들은 총 100가지가 있으며, 이를 오위백법(五位百法)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마음’이 67개다. 전체 100가지 중 3분의 2가 넘는다. 그만큼 마음에 대한 탐구가 많다는 뜻이다. 과연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부름 직하다.   그런데 불교가 말하는 67개의 마음으로 변화무쌍한 봄날과 고양이 눈빛을 포착할 수 있을까? 한순간도 머물지 않는 내 마음을 알 수 있을까? 물도 흘러가고 배도 흘러가는데, 배에서 빠뜨린 칼을 뱃전에 그은 표식으로 찾을 수 있을까?   불교는 모든 것을 회의적 눈으로 살피면서 무상과 무아라는 ‘자유와 외로움의 세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따뜻한 자비를 행하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따져 이해되는 범주 내에서만 살 수는 없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잠시라도 타인의 보살핌과 도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니, 사람들은 평생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게 마련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할 이유가 될 터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저 고양이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 많은 시간을 자력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밥을 찾긴 해도 일견 힘 있어 보이는 인간에게조차 비굴한 표정으로 호의를 구하지 않는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고양이 특유의 삶의 태도인가보다.   하지만 이따금 남의 호의는 대범하게 수용하면서, 남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는 고양이의 삶이 왠지 차고 쓸쓸해 보인다. 봄날 절집 툇마루 한쪽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니, 무심한 듯 냉정한 눈을 가진 고양이의 외로움이 안쓰럽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저 고양이가 정말로 외로워하는지. 원영스님 / 청룡암 주지기고 고양이 봄날 고양이 눈빛 봄날 고양이 까만색 새끼고양이

2022-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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