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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윈디’와 이별하기

“더는 너의 희생을  
요구할 수가 없구나
몸 지탱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고  
숨쉬기가 그렇듯  
힘이 드는데 어찌 널  
사랑한답시고  
그 상태로 견디라고…”  


 
밤새 비몽사몽간에 윈디의 상태를 살피며 잠을 설치는 날들. 숨소리가 안 들린다. 벌떡 일어난다. 윈디도 기척을 느끼곤 움칠한다. 아직 살았구나.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면 살아있는 윈디를 보게 해주심에 먼저 감사드린다. 이어 윈디에게도 고맙다 말한다. 행복한 하루의 시작을 허락 받았음에 마음 뜨거워지며 일상을 시작한다.
 
이렇다 할 병은 없지만 늙어 기운 떨어지고 특히 소화기관이 작동을 게을리 하는 듯하다. 가끔 토하고 안 먹고 사흘 정도 끌면 남편과 난 윈디의 마지막이라 믿고 온갖 필요한 준비를 다하곤 했다. 남편 출근한 후 나 혼자 윈디를 간호하다가 진정 이별할 시간이라 생각되어 사진도 찍고 울며불며 이별 준비하기를 대여섯 번. 그러다 물 마시기 시작하고 조금씩 밥도 먹기 시작하면서 2~3주 살아낼 기운을 얻어 거짓말처럼 소생하곤 한다.
 
오늘 아침에도 숨죽이고 윈디의 숨소리를 듣고자 가까이 간다. 다리를 쭉 뻗으며 기척을 보인다.  
 
“에구 우리 이쁜 윈디, 잘 잤지요? 사랑해요. 나도 알아요. 윈디가 나를 사랑하는 거.”
 
이젠 혼자 일어나 바깥 잔디밭까지 걸어 나가지 못한다. 안아서 데리고 나가  잔디밭에 내려 놓고 배 둘레에 긴 띠를 둘러 잡아 들고 있으면 다리를 휘청거리며 간신히 볼 일을 본다. 그런대로 작은 볼 일은 쉽게 할 수 있지만 큰 볼 일은 좀 걸어야 나올 터니 20~30여 발자국 떼어 놓기가 여간 힘에 부치지 않는다. 힘들어 하는 윈디를 보는 나도 힘든다. 이제 그만 이 상황에서 헤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을 친다. 그러나 뒤 따르는 미안한 마음. 아마도 윈디는 이렇게라도 우리 곁에 있기를 원하겠지. 뒷바라지가 귀찮다는 엄마를 원망할까.
 
아니다. 윈디의 눈은 이렇게 말한다. 내 일상에 어느 순간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 이쁘다는 감탄사를 쏟아 놓을 상대가 있느냐고. 자기라도 있어 줘야 내가 기뻐할 수도 있고, 사랑한다 말 할 수도 있고, 쓰다듬어 주며 행복해 할 수도 있는데, 자기가 죽으면 엄마는  어찌 사느냐며, 버티기 힘들어도 나를 위해 윈디가 살아 있기를 애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내 일상이 그렇게 바삭 말라 있다. 윈디 눈빛이 말하는 그 거, 다 맞는 소리다. 그렇다고 숨이 곧 끊어질 듯 몰아 쉬는 괴로운 숨소리 어디가 아픈지 아파서 내는 신음소리 먹기는 잘 먹었는데 소화 못 시키고 누런 물까지 토해내는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 다리에 근육 다 빠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심지어 잠시 서 있기도 힘겨워 하는 모습, 죽은 듯 축 처져 밤낮을 가쁜 숨 몰아 쉬며 시간을 헤아리는 소리, 이젠 분 초를 헤아리고 있다.  
 
윈디는 내게 기쁨을 준다. 윈디의 존재 만으로도 난 행복하다. 밥 달라고 미동도 않으며 줄 때까지 서 있는 끈질긴 모습에도 난 웃는다. 볼 일 보러 밖에 나가야 한다고 문 앞에 서서 조르는 모습도 이뻐서 어쩔줄 모른다. 힘겨워 할딱이며 축 처져 자는 모습도 내겐 감사함이니 엔도르핀 생성 조건이다. 건강할 때와는 달리 포옥 안겨 고개 떨구고 따끈한 체온 전해주는 것도 가슴 뛰게 하는 사랑 나눔이다.
 
이렇듯 내 욕심만 생각하며 적당히 일상을 조절해서 스키도 가고, 암벽등반도 가며 윈디를 집에 두고 다녔다. 그러나 이젠 잠시도 내 손길을 거둘 수 없이 윈디의 몸 상태가 나빠진다. 이런 상태라면 곁에 없는 나를 원망하며 홀로  아픔과 외로움으로 마지막 호홉을 몰아 쉬게 되겠지.  
 
윈디에게도 최선이 되고, 나에게도 최선이 되는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내게 기쁨이 되고자 애쓰는 윈디의 사랑을 크게 확대해서 내 마음에 담자. 윈디가 없어도 그 마음을 가슴에 안고 살면 여전히 난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윈디야, 많이 많이 고마워. 분양하는 사람 집에 가서 ‘Show Dog Champion’ 종자인 너를 첨 봤을 때, 낯가림도 없이 내 목에 매달리던 이쁜 것. 그 순간 넌 내 딸이다 선언하고 입양을 결정했지. 그 후, 준비되는 한 달을 기다렸다  집에 데려온 후 오늘까지 넌 내 기쁨의 샘이었고 행복의 근원으로 너의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단다. 그래서 윈디야,  더 이상은 너의 희생을 요구할 수가 없구나. 몸 지탱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고, 숨쉬기가 그렇듯 힘이 드는데 어찌 널 사랑한답시고 그 상태로 견디라고 내 욕심만 주장하겠니.    
 
그래서 하나님께 부탁드렸어. 윈디가 가장 편안하게, 고통 없이 잠들게 해 주십사고. 그렇다고 내가 내 생활을 모두 접고 너만 지키며 살 수도 없으니 이쯤에서 우리 손을 놓자. 나와 너를 이어주던 단단하고 따스한 끈을 놓고 돌아서자. 내가 먼저 놓을게.
 
윈디 너도 마음 준비하고 편히 자렴. 고마워. 엄청나게 행복한 너와의 추억이 있어 앞으로도 넉넉하게 잘 살아갈 테니까.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 네 곁을 지키지 못하는 시간 말고, 이렇게 내가 네 곁을 지키고 있을 때, 내게 마지막 네 온기를 주고 편히 잠들면 제일 좋겠다. 하나님께서 그리 해 주시겠지.”
 
단단히 마음 준비하고 윈디가 결정할 때까지 기다리련다. 그래도 윈디 뜻을 존중하며 인위적 이별 방법만은 피하고 싶다. 여전히 밥 먹을 시간 되면 배고프다 조르고, 억지로 힘을 내서 홀로 일어서려는 저 살고자 하는 의지. 보이지 않는 눈으로 다 읽고 있는 나와 남편의 마음이 사랑임을 윈디가 느끼게 하리라.

노기제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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