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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마주친 눈빛 2

지난해 늦은 여름 39년을 지켜온 제비 가족들이 겨울을 넘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두 번째 부화한 새 생명의 가족들은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사람이나 동물들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까. 떠날 날이 촉박한데 비행 연습에 쫓기고 있었던 네 마리의 아기 제비가 참으로 가엽고 안쓰럽게 보였던 그 모습, 나와의 마주친 눈빛, 기억이 생생한 지난해 모습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초가을 그들은 떠나고 겨울을 넘기는 이곳에는 이상 기후로 따뜻한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12월에 핀 동백꽃이 빨간 입술의 겨울을 넘다가 이틀 동안  한파가 몰려와 동백꽃을 초토화한 계절을 넘기는 수난이 있었다. 이상 기후의 겨울을 넘기며 차고에 텅 빈 그들의 둥지를 보며 항상 집 떠난 그들을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봄의 기운들이 싹을 틔우고 꽃들은 계절을 속이지 않고 찾아오고 있었다. 만 가지의 봄들이 기지개를 켜는 자연의 질서들을 지키면서 차고 속의 제비 둥지는 고향 떠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9년의 자연의 약속을 지켜온 그들은 과연 40년을 완성할 것인가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매년 4월 20일이 지나면 찾아오는 집 떠난 자식이 돌아오는 기다림과 설렘, 기쁨처럼 올해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겨우내 따뜻한 날들이 지나고 봄은 이상하게도 추운 바람을 몰고 왔다. 걱정되었다. 이 차가운 봄날에 그들이 돌아오면 얼마나 춥게 견딜까 걱정되었다. 물론 그들은 우리 인간보다 앞을 내다보는 삶의 지능이 발달 되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돌아올 자식 걱정하듯 염려스러웠다. 그런 속에 봄의 시간이 지나는데 매일매일같이 둥지를 살폈다.
 
4월 28일이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아침이면 차고 문을 열면서 하늘을 본다. 오늘도 내일도 소식이 없어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근 1만5000km 긴 여로 상상이 안 되는 거리다. 혹시 지난해 강남 가는 길목에 변이라도 아니면 가족에 이상이라도, 인솔자의 문제라도, 혹시 명물의 지혜? 우리 가족의 노년기를 알고 이사를 한 것인지, 별별 추측을 다 했다.  
 


5월이 시작되었다. 한 번도 4월을 넘긴 적이 없다. 인근 농장에 가 보아도 그곳에도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기다림은 더 커지며 불안까지 엄습하여 다시 농장에 5월 2일 전화를 했다. 그곳에 제비가 1일 날에 왔단다. 그럼 내 식구들은 어떻게 됐다는 것인가, 더욱더 초조해졌다. 별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면서 그래도 기다리는 마음은 오늘도 변함이 없이 차고 문을 일찍 열어주고 어디 외출할 때도 활짝 열어놓고 다녔다. 39년을 같이 한 지붕 밑에 살아 본 사람은 우리의 심정을 알 것이다.  
 
기다림과 서운함의 길목에서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5월 3일, 4일, 기다림 속에 모처럼 바다에 가면서 집 식구에게 아침에 차고 문 일찍 열고 외출 시에도 열어 놓도록 당부를 하고 집을 나서면서 속마음의 기다림과 만남, 무언의 약속 속에 들려온 카톡 소리 “기다리던 제비가  돌아왔습니다.” 제비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상상만 해도 꿈같은 비상, 여기서 거기가 얼마인가 수많은 것들을 보고 헤치며 날아온 명물 중의 명물이다.
 
그 먼 길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만 리길 뒤에 두고 날개를 수십만 번 휘저으며 그 작은 눈망울 속에 옛 그림 지붕 아래 둥지를 생각하며 날아온 내 식구, 보고 싶었던 기다림의 전설 같은 실화의 40년 지기 가족의 역사는 이루어졌다. 도착한 일행은 우물쭈물할 여지 없이 처음 지은 둥지에 몸을 담는다. 기특한 명물의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둥지 속의 따스함 속에 그들은 자손만대를 위한 보금자리를 폈다. 온종일 어디에선가 먹이 활동과 일가친척들과의 하루를 보내며 가끔 둥지를 살피고 저녁엔 꿈의 보금자리에 깊은 잠을 잔다. 밤에는 차고 문을 내린다. 그들은 알고 있다. 두 노인네의 차고 문지기를, 아침이면 문을 열라고 지지배 요란을 떤다. 차고 문을 열면 꿈의 하루를 시작한다. 날쌘 제비는 곧 알을 가슴에 품고 새 생명의 역사를 시작할 것이다. 오늘 아침 후속대와의 만남, 창공에 수를 놓으며 안도와 기쁨의 마주친 눈빛은 다시 빛나고 있었다.

오광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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