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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템즈강에는 별이 뜬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 속엔 별이 뜬다. 세상 어느 곳이든, 멀고 먼 하늘에서도 별이 뜬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뼈마디 저리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이별의 상처로 총 맞은 짐승처럼 울부짖을 때도 고개를 들면 별은 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어둠이 먹물처럼 화선지를 적시는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별 하나의 사랑을 꿈꾸며 찿아 헤맨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윤동주 ‘서시’중에서.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며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사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고, 작별이 돌아올 수 없는 절망의 강이라도, 죽어가는 것들 앞에서 생명은 별빛으로 반짝인다.     삼년 반 동안 투병하던 남편을 얼마 전 떠나 보낸 선배는 해 뜨는 날과 캄캄한 밤, 바람 부는 날이면 잎새에 흔들리는 바람에도 운다. 꽃이 피면 꽃이 예뻐서 울고 꽃잎이 떨어지면 이별의 상흔이 아파 눈물 떨군다.     선배는 55년 전 100달러를 들고 사랑하는 사람 손잡고 이국 땅을 밟았다. 아들 딸 잘 키우고 손자 손녀 재롱 보며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었다.     낮에는 별이 안 보인다. 별은 어두울 때 잘 보인다. 내가 별을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땅끝이나 지구의 저 편에서 누군가 별을 바라본다. 사랑이 암호로 가슴 깊이 새겨지는 것처럼 별은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그대 머리 위에 떠 있다.     어깨동무 하고 보았던 고향마을 동산이나, 박넝쿨 흐드러진 담장에 매달린 박꽃들은 별이 뜨면 다문 입술을 벌리고 아침이 오면 고개를 숙인다.   템즈강에도 별이 뜬다.    템즈강(River Thames)은 영국 런던을 지나가는 강이다. 잉글랜드 남부에 있는 강으로 옥스퍼드, 레딩을 거쳐 영국의 수도 런던 도심을 서에서 동으로 가른 후 북해로 흐른다. 세월을 견딘 템즈강가를 거닐어 본적 없지만 어둠이 대지를 덮고 밤하늘에 별빛이 반짝이면 이국의 연인들은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일 것이다. 단 한 번의 눈 길로 운명처럼 사랑에 빠질 것이다.     그리운 사람들이 사는 곳. 이별과 눈물이 있는 곳에는 어디라도 별이 뜬다. 세느강이든 한강이든 비슬산을 등지고 구비구비 돌던 낙동강에도 별은 뜬다.     별 하나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은 억만리 길, 멀고 먼 타향, 지구의 끝이라 해도, 별 하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국의 땅에서, 사막이든 오아시스든, 지구의 끝이라 해도 별을 가슴에 품고 산다.   우리는 한갓 이름 없는 별이였을까. 추억 속에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었을까. 첫사랑의 뜨거운 키스가 별똥별로 사라진다 해도 사랑이 지나간 밤 하늘은 수 만개 수 억개의 은하수로 반짝인다.     별똥별은 지구의 중력에 이끌려 대기 안으로 들어오면서 꼬리를 불태우며 지구로 떨어진다. 목숨도 사랑도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별똥별처럼 소행성에서 떨어져 지구로 날아온 작은 티끌이었을까.     어머니는 가시가 무성한 고향집 민둥산 아버지 곁에 묻히고 싶어했다. 돌아갈 길이 아득해 묘비에 한글 이름 석자 남기고 이역만리 타국에 잠드신 어머니.     디아스포라는 살아있어도 죽어도 영원한 이방인이다. 어머니 젖줄 새긴 별 하나 가슴에 달고 살면 캄캄한 밤 어느 땅 어느 곳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템즈강 목숨도 사랑 타향 지구 이별과 눈물

2024-04-23

[열린광장] 재소자와 함께 흘린 눈물

형님, 아제들이 어디서 닭을 잡아 와 요리를 할 때 나는 가마솥에 장작불을 때 주고 얻어먹곤 했습니다. 좋게 말해 ‘닭서리’를 해 온 것이었습니다. ‘서리’ 중에는 참외서리, 수박서리, 호박서리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님이 “시절이 어수선하니 너희들 먼저 고향으로 가라”고 해 경북 문경의 집성촌으로 갔습니다. 그해에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얼마 후 6·25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서울, 평양, 심지어 도쿄에서 공부하던 친척들도 그곳으로 모였습니다. 그중에는 징집을 당해 군에 입대한 인척도 여럿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친척들이 밤엔 서리 판을 벌였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이런 ‘닭서리’를 하다 잡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즉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고 경범죄로 처벌을 받았겠지요.     미국에 정착해 아이들 잘 키우며 이런저런 혜택을 받고 살다 보니 많은 것을 빚지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어느 분으로부터 교도소 재소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신원조회 등의 절차를 마치고 1998년 교도소 사역을 시작해 지금까지 봉사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연방 교도소에서 말씀을 전하며 “한국에서 닭과 수박·참외 훔쳐먹고 50여 년 전에 미국으로 도망와 지금 여러분과 이렇게 있다”고 말하자 모두가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마음으로,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숨겨진 죄’가 왜 없겠습니까?‘  사법 기관에 적발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여러분은 형기를 마치면 다 죄의 해결함을 받으실 분들입니다. 교도소 형제자매들의 솔직한 간증은  나도 얼마든지 그런 죄와 가까이 있었고, 저지를 기회가 스쳐 지났음을 깨닫게 합니다.”      나는 예배가 끝나면 교도소 형제자매들에게 “내가 오래 교도소 선교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한 재소자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교도소로 이송됐다 제가 사역을 하는 교도소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성경책에 나를 만났던 날짜와 내 이름을 써 놓고 나를 위해 기도했다며 성경책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교도소에서는 목사라도 재소자들과의 신체 접촉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도 모르게 그 형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가슴에서 올라오는 눈물이 빰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도 함께 울었습니다. 물론 교도관이 멀리서 보고 있었지요. 그리고 헤어져 그는 수감자 방으로,  나는 프리웨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나 사이에서 누구이신가요? 변성수 / 교도소 목사열린광장 재소자 눈물 교도소 재소자 교도소 형제자매들 교도소 선교

2024-03-31

[세상만사] ‘눈물 한방울’

고 이어령 교수가 암 선고를 받고 2022년 88세로 별세하기 전까지 4년간 쓴 글을 모은 문집이 ‘눈물 한 방울’이다. 생전 160권의 저서를 남긴 우리 시대 최고 지성은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문으로 그 책을 정독했었다.   마지막 낙서는 누구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자.    “누구에게나 마지막 남은 말/사랑이라든가 무슨 별 이름이라든가 /혹은 고향 이름이라든가?/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시인들이 만들어낸 말은 아닐 것이다./이 지상에 없는 말, 흙으로 된 말이 아니라/어느 맑은 영혼이 새벽 잡초에 떨어진 그런 말일 것이다./하지만 그런 말이 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내 몸이 바로 흙으로 빚어졌기에 /나는 그 말을 모른다./죽음이 죽는 순간/알게 될 것이다.”    책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톤으로는 내생을 신에 기탁하며 부탁하는 논조의 말은 없다. 그 대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기구의 말은 있다. 또 53세의 젊은 나이로 갑상선암과 위암 진단을 받고 본인보다 먼저 세상을 등진 딸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그의 딸 이민아씨는 이혼 후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말년에는 신학교에 입학해 목사가 된 사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어느 세미나에서 이어령 교수는 신의 사랑은 아가페적인 것이 아니라 우정을 의미하는 ‘필리아’라고 했다. 바이오필리아는 생명 간에 공생하고자 하는 의지와 사랑으로 모든 생명체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지닌 대상으로 그 사랑이 중요하고,  또 포토필리아는 장소에 대한 사랑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말하는 것이고, 네오필리아는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영역을 탐구하여 서로 공생하는 세상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메멘토모리’, 즉 우리는 죽음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운명이기에  늘 숙명처럼 죽음을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책 서문에 인생에 대해 이렇게 썼다.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다.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다. 품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목도 있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란 걸 증명해준다. 이제 인간은 박쥐가 걸린 코로나도 닭이 걸린 조류인플루엔자도 걸린다. 그럼 무엇으로 짐승과 사람을 구별할 수 있을까? 눈물이다. 낙타도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 로봇이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한때 이어령 교수의 책을 닥치는 대로 사서 주마간산 격으로 읽고는 책장에 모셔두는 버릇이 있었다. 삼가 그분의 명복을 빈다. 김호길 / 시인세상만사 한방울 눈물 눈물 한방울 정서적 눈물 이어령 교수

2024-02-20

“회개와 용서 구한다… 두번째 삶 감사와 축복”

 30년만의 출소 눈물의 기자회견... “겸손한 자세로 커뮤니티에 봉사”   “오랜 기간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한인 동포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한인 여러분의 기도와 성원 속에 오랜 수감생활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이를 잊지 않고 앞으로 겸손한 자세로 조금이나마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9세 때인 지난 1993년 9월 시카고서 발생한 비극적 살인사건의 범인이자 피해자인 앤드루 서(50•한국명 서승모)가 2일 오전 9시30분 윌링 그레이스 교회서 기자회견을 갖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 26일 일리노이 서부 키와니교도소서 30여년 만에 출소한 지 1주일 만이다.     이날 그동안 자신을 후원해온 김성민 변호사와 함께 자리한 서 씨는 “열아홉 살 때 저지른 큰 잘못으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깊이 회개해왔다. 과거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켜 여러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사망한 오두베인의 가족에게도 “미안하다”고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서 씨는 이날 기자회견 내내 눈물을 닦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30년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좋은 마음으로 어둠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현재의 삶은 축복이고 감사할 뿐이다. 여전히 얼떨떨하지만 한번의 실수는 끝났고 이제 두번째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19살에 교도소에 가서 50대 아저씨가 돼 나왔다. 인터넷도 모르고 페이스북도 모른다”며 “차차 미래를 계획하겠지만 청소년들을 선도하고 커뮤니티에 봉사하고 싶다”고 밝혔다.     “출소 이후 1주일간 김치도 먹고 감도 먹어보았는데 맛있었다”는 서 씨는 “한인사회가 저를 버리지 않아주셔서 고맙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한인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며 “그레이스교회와 목사님, 선한 사마리아 분들, 아버지 김한철, 김성민 변호사님께 특히 감사하고 직접 교도소를 면회 와준 분들께도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서 씨는 이날 기자회견서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했는데 한국어는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한국말만 하라고 해서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 씨는 대학 2학년 때 누나 캐서린의 사주를 받고 누나의 동거남 로버트 오두베인(당시 31세)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1995년 재판에서 징역 100년형을 선고 받았고 이후 항소심에서 80년 형으로 감형됐다.     서 씨는 모범적인 수감 생활과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할 경우 감형 특혜를 주는 새로운 일리노이 주 법 덕분에 조기 출소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씨는 2살 때인 1976년 군 장교 출신 아버지•약사 출신 어머니를 따라 시카고로 이민했다. 그러나 이민 9년 만에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세탁소를 운영하며 남매를 키우던 어머니마저 2년 후 강도에게 살해당한 후 서 씨는 5살 위인 누나 캐서린에 의지해 살았다. 캐서린은 당시 서 씨에게 "오두베인이 엄마를 죽였다. 상속받은 재산을 도박 빚으로 탕진하고 학대한다"며 살인을 사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J 취재팀회개 용서 누나 캐서린 출소 눈물 김성민 변호사

2024-02-02

[수필] 맹 노인의 눈물

‘효도 효(孝)’자는 자식이 부모를 업고 있는 형상이다. 이 ‘효’자를 접할 때마다 이웃집에 살던 맹 노인이 떠올라 가슴이 아파진다. 그는 1980년대 초 여동생의 초청으로 미국에 이민을 왔다.그에게는 아들만 삼 형제가 있는데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 두 아들은 초등학생 때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 그의 사업이 번창해 아들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게 되었을 때는 집을 한 채씩 사 줄 능력까지 됐다.       저택에서 이민 오길 잘했다고 만족해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맹 노인은 “나중에 치매에 걸리면 재산을 상속해 주고 싶어도 못하게 되니 정신이 멀쩡할 때 집을 팔아서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지인들의 그럴듯한 말에 신경이 쓰였다.     어느 날, 그는 아들 삼 형제를 소집하였다. 그리고 이 집을 팔면 250만 달러 정도 받는데 너희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메디칼 혜택을 받기 위해 모아둔 현금도 똑같이 분배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들들은 좋은 생각이라며 효도를 다짐했다. 전 재산을 삼 형제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고 맹 노인 부부는 큰아들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그러다 아내가 중풍으로 쓰러졌다. 맹 노인은 주 정부에서 지원하는 가사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아내의 병간호를 하였다,   그런 생활이 일 년도 지나지 않아 큰아들 집에서 삼 형제가 가족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맹 노인이 알아들을 수 없게 영어로 진행됐고 점점 고성이 오가더니 급기야는 형제간에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다.  맹 노인은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눈치로 알아차렸다. 큰아들은 “나만 아들이냐? 너희들도 이제 부모님을 모시라”고 주장했고 두 동생은 “무슨 말이냐? 당연히 장남이 끝까지 모셔야 한다”고 맞선 것이었다. 그러자 큰며느리가 부모를 택하든, 본인을 택하든 둘 중 하나만 택하라고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결국, 맹 노인의 아내는 양로병원으로 옮겨졌고 맹 노인은 큰아들, 둘째, 셋째 아들네서 한 달씩 보내는 떠돌이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한숨으로 하소연을 시작해 눈물로 마무리를 지었다. 전 재산을 아들들에게 미리 준 것이 천추의 한이 된다고 하였다.   그 돈만 있으면 부부가 헤어지지 않고 양로호텔(실버타운)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막심하다고 했다. 평소 금실이 좋았던 그는 아내와 떨어져 사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했다. 큰아들 집 앞에 커다란 산이 있는데 그 산이 무너져내려 자신의 가슴을 덮치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부인이 생선회를 무척 좋아하는데 맹 노인이 문병 갈 때마다 광어회가 먹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 정부에서 한 달에 약 1000달러 정도 생활보조금을 받는 맹 노인으로서는 그 청을 들어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면회하러 가는 데 왕복 택시비로 한 달이면 400달러를 써야 하고, 운이 좋아 입주하게 된 노인 아파트 비용을 제하고 나면 그럴만한 여윳돈조차 없었던 것이다.     자식들은 일 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 시즌 때 마지못해 어머니를 찾아오는데 빈손으로 왔다 간다고 한다. 내가 친분이 있는 큰아들을 설득해 보겠다고 하면 그는 펄쩍 뛰며 가정사를 남에게 말했다고 자신이 더 큰 곤란을 겪게 된다며 극구 만류했다.   결국, 양로병원에 5년 넘게 입원해 있던 맹 노인의 아내는 펜데믹 기간에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는 90세가 넘는 맹노인이 삼 형제의 바람대로 양로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부모를 봉양하는 일이라면 자식이  의논해서 올바른 해법을 찾는 것이 타당한 일인데,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하고 ‘나 몰라라 ’ 하는 이기적인 사고가 안타깝기만 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준 것의 10만분의 1만 자식이 부모에게 하면 효자 소리를 듣는다는데…. 어떤 불효자라 하더라도 부모님 사후에는 자신이 했던 행동을 가슴 치며 후회하게 된다고 한다. 부모님 살아 계실 때 잘하고,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모부양이 문제가 된 이 시대. 재산을 미리 주지 않았다면 자식들이 그렇게 부모를 대우했을까?   요즈음은 부모세대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지금 ‘쓰죽회’란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단다.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고 ‘다 쓰고 죽자’ 라는 모임이다.   노인 문제 전문가들은 재산을 미리 물려주지 않아도 사후에는 자식들이 자동으로 갖게 되니 절대로 미리 물려주지 말고 비 오는 날을 대비하여 우산을 준비해 두라고 조언한다. 이진용 / 수필가수필 노인 눈물 노인 부부 노인 문제 노인 아파트

2023-05-25

[글마당] 죄의 눈물

  잠시 눈을 감으면 멀어진 것들은 더 멀리   그리움으로 쌓인다   미운 것 없이 밀려간 시간들도 잘라내지 못한 미움의 아픔도   온기 솟는 푸른 냄새 사이로 가만가만 또 천 리 길을 간다       갑갑한 기운은 행간마다 미끄러지는   혀의 시간 속으로 떨어지고   용서할 이유를 찾기보다는 미워할 이유를 먼저 찾는   모순투성이의 권한 속에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할 이유조차 놓쳐버린 지금   비정한 그 족보의 얼룩들이 죄악의 한으로 남아   숨을 곳이 없어야 죄가 없어질 거라는 수난의 길을 택한   그때 그 호랑나비의 새끼를 지금 나는 보고 있다       얼룩진 가루를 털어내며 홀로 떨고 있는   아주 작은 날개   폭풍이 몰려오는 바람 속에 먹이 사슬을 끊어내고   외로운 구원의 신비를 찾아 나선 새끼나비의 모진 고독이   피의 존속 앞에 꿇어 엎드린 증언으로 맺힌 고리를 풀어간다       온실 속을 빠져나와 고삐가 풀렸는데 갈 곳은 어디에   밤마다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어 돌다   스스로 몸부림치고 있는 죄의 뿌리에 갇힌 새끼 나비를 보며   억지의 숲속을 더듬게 했던 그때 그 사람들   잘린 숨 잘린 몸 맺힌 설음 어찌 삭아 들까서릿발친다       손 모아 우는 죄의 눈물 그 순환의 연속을 끊어내려   부르르 떠는 날개 만지며   다독이는 사랑을 전하는 장한 시대의 아픔을   지금 나는 보고 있다 손정아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눈물 나선 새끼나비 새끼 나비 냄새 사이

2023-04-28

“자꾸 눈물이…노래하고 싶었다”

 “여러분 많이 보고 싶었고, 무대가 그리웠고, 노래 부르고 싶었습니다. 10년 만에 ‘불후의 명곡’ 무대에 다시 서니 60여년 전 데뷔했을 때만큼 떨리고 긴장되고 흥분되고 행복합니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KBS공개홀 ‘불후의 명곡’ 무대에 오른 가수 패티김(84)의 목소리는 떨렸다. 10년 만에 방송에서 마이크를 잡고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1983)을 부른 그는 “자꾸 눈물이 나려 한다”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2012년 2월 공식 은퇴를 선언한 그는 이듬해 10월까지 이어진 전국투어 ‘굿바이 패티’를 마지막으로 55년 가수 인생을 정리했던 터였다. 패티김을 ‘불후의 명곡’ 무대로 부른 건 오랜 인연이었다. 당시 JTBC 15부작 ‘패티김 쇼’(2012~2013)를 함께 한 MC 신동엽과 작가 등 제작진이 미국에 살고 있는 패티김이 오랜만에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설득했다. 1958년 미 8군 부대에서 시작해 일찌감치 미국ㆍ일본 등 해외 활동을 펼친 그는 “K팝 가수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어서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며 “10년 전과는 또 다른 후배들이 그 오래된 노래를 어떻게 해석해서 불러줄지 궁금했다”고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패티김은 이날 무대에서 ‘9월의 노래’ ‘이별’ ‘서울의 찬가’까지 총 4곡을 불렀다. 그는 “10년 동안 깊이 잠들어있는 목소리를 끌어내기가 힘들었다”고 했지만 여전히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가 넘쳤다. 패티김은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길옥윤이 작사ㆍ작곡한 ‘9월의 노래’를 꼽았다. 두 사람은 1966년 결혼해 73년 이혼했으나 이후에도 음악적 동반자였다. 패티김은 “노랫말이 정말 시적이고 멜로디도 너무 좋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자기 음악에 도취해 노래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형근 PD는 “한국에 오신지 한 달 정도 됐는데 미팅만 3~4번 정도 진행했고, 거의 매일 같이 연습하셨다”고 말했다. 2018년 조용필 편 이후 처음으로 3주에 걸쳐 특별 편성되는 ‘불후의 명곡’이다 보니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 중인 16팀이 무대에 올랐다. 옥주현은 “어릴 적부터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며 “매번 뮤지컬을 할 때마다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데,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은 선생님의 특징을 담아 노래하면 완벽하겠다 싶어 참고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박기영ㆍ박민혜(빅마마)ㆍ서제이 등 여성 보컬리스트들은 “언제쯤 무대에서 뵐 수 있을까 싶었는데 선생님 앞에서 노래할 수 있어 너무 영광”이라고 입을 모았다. 패티김이 평소 아끼는 후배인 이선희가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오후 12시 30분부터 시작한 7일 녹화는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났다. 패티김은 11시간 넘게 이어진 녹화에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옛날에는 고음 잘한다고 뽐냈는데 여기선 명함도 못 내밀겠다”며 후배들이 준비한 무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날 녹화장은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이 함께했다. 보통 7~8대 1인 방청 경쟁률이 18대 1로 껑충 뛰었다. “‘이별’은 별거 도중 나와서 이혼송이 됐다” “‘사랑은 영원히’는 이혼식 후에 받았다” 등 패티김이 솔직담백하게 후일담을 털어놓자 젊은 관객 사이에서 ”그 시대에 정말 멋지시다”는 탄성이 쏟아졌다. 패티김 측은 “은퇴를 번복하거나 활동을 재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재회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패티김은 녹화를 마치며 “오늘 출연한 모든 팀과 한 번씩 컬래버레이션을 해서 앨범을 내고 싶다”며 “그중에서도 포레스텔라와 함께 하면 별같이 아름다운 화음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나의 운명이고, 내가 즐기는 노래를 여러분들이 즐기게 하는 것은 나의 숙명”이라며 “또다시 10년 후가 아닌 조금 더 빠른 시간 안에 다시 뵙기를 약속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날 녹화분은 26일, 다음달 3일과 10일, 세 차례로 나눠 방송된다. 민경원 기자  눈물 노래 가수 패티김 이날 무대 언제쯤 무대

2022-11-18

[시로 읽는 삶] 눈물의 효능

(…)“인간의 얼굴은 감정의 괄약근이다. 그것은 시도 때도 없이 자주 풀려서 문제”라며 나는 양파를 썰면서, 네가 불편해할까 봐 너스레를 떤다.// (…)정확히 몸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눈물’을 담는 그릇이다.// 세월 따라 주름이 많이 간 그릇이 깨지기 전에 ‘눈물’이 다른 그릇으로 매일 조금씩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잘 옮겨지면 된다./ 휴일 늦은 저녁, 눈물이 듬뿍 들어간 나의 맛없는 요리를 맛있게 떠먹으려 너는 한참 전부터 커다란 숟가락을 들고 오직 사랑의 힘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김중일 시인의 ‘좋은 날을 훔치다-시라는 식당-’ 부분       눈물은 감정의 바로미터다. 눈물은 대체로 슬플 때 많이 나지만 기쁨이나 감동이 지나간 자리에도 눈물이 있다. 눈물이 난다는 건 오감이 자극되어 감정의 파도가 일기 때문일 터이다. 눈물에도 맛이나 밀도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해본다. 슬플 때 흐르는 눈물과 기쁠 때 흐르는 눈물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눈물의 진정성은 믿을만하다. 눈물의 빵, 눈물의 사죄 등등은 꽤 호소력이 있다. 그래서 읍소는 과오를 용서받을 수 있는 최선책이 되기도 한다. 이별과 눈물은 떼놓을 수 없다. 이별은 눈물을 거느린다. 부모를 떠나보내는 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슬픔의 극한에 다다르는 눈물이 있다.     눈물의 이야기가 있는 삶은 한 사람의 인생을 구축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 뒤에 눈물의 빵이 있는 것은 소설구성의 3요소 중 ‘배경’처럼 효과적인 장치가 되기도 한다. 이즈음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가수 임영웅의 눈물로 견뎌내던 시절의 이야기는 그의 재능까지 더 돋보이게 한다.   눈물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어떤 외부자극에 의한 최루성으로 흐르지만 신체적 기능이전에 희로애락을 받아내는 감정의 그릇이다. 슬픔이 흘리는 눈물보다 환희가 주는 눈물이 더 뜨거울 때가 있다. 그래서 눈물의 양면성은 어떤 삶도 구차하지만은 않게 해주고 감정을 얽힘을 풀어주는 청량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눈물은 소통을 위한 또 다른 언어다. 아기들은 눈물로 말을 한다. 여자의 눈물은 설득력이 있고 호신술이 되기도 한다. 이스라엘 한 연구팀에서 연구했다. 20대 남성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은 여자들이 슬퍼서 흘린 눈물을, 다른 한쪽은 일반 식염수를 냄새 맡게 했다. 여자들이 슬퍼서 흘린 눈물을 냄새 맡은 그룹 남자들은 심장박동과 호흡이 안정적이 되고 남성호르몬도 줄어들어 공격성도 낮더라고 한다.     눈물로 지은, 그러나 맛은 없는 밥을 먹겠다고 커다란 숟가락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을 사랑의 힘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는 시인의 말은 사랑의 근간은 눈물 아니냐는, 눈물 없이 사랑은 꽃피우지 못한다는 의미 리라.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진다고 한다. 드라마를 보며 우는 초로의 남자들이 있다. 세상 사람이 다 불쌍하다며 슬퍼하는 여자도 있다. 울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마음의 굳은살이 점점 물러지고 몸이 울음의 효능을 알게 된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눈물이 많다는 것은 살아온 궤적이 신산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눈물은 슬픔을 풀어주는데 으뜸이다. 마음을 정화하는 치유능력을 지닌 매혹적인 심리 기제이기도 하다. 웃음 못지않게 울음도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켜주는 약이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눈물 효능 이별과 눈물 저녁 눈물 그룹 남자들

2022-09-27

[살며 생각하며] 흔들리지 않는 활

 요즘 내 금요 북클럽에서는 “The Color of Water(한국명 컬러 오브 워터)’라는 책을 읽고 있다. 흑인인 저자 James McBride가 자신의 백인 엄마 Ruth에게 바치는 자전적 에세이다. 그의 엄마는 유대교 랍비였던 아버지의 성폭행과 학대 끝에 뉴욕으로 와 할렘가에서 흑인 목사와 결혼한다. 두 번이나 남편을 잃는 고난과 평생의 가난 속에도, 교육과 신앙 두 기둥으로 아이들을 양육해, 열두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다 대학 혹은 대학원까지 마치고 의사, 교사, 교수 등 전문인이 되었다. 엄마는 아이들을 늘 장학금 주는 먼 학교로 밀어 보냈다. 그리고 아이들이 떠날 때, 앞에서는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저자 제임스가 대학으로 떠나던 날, 형들 쓰던 낡은 가방을 들고 그레이하운드에 오르는 그에게, 엄마는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을 손에 쥐여준다. 14달러, 엄마가 가진 돈 전부다. 애써 눈물을 참는 제임스 눈에,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입술을 쫑긋쫑긋하며 인상을 쓴 채 정류장 앞길을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엄마가 보인다. 그래도 안 우시니 다행이다. 하지만 출발한 버스가 코너를 돌 때 다시 보이는 엄마의 얼굴. 아들 앞에서 참았다가 비로소 담벼락에 기대어 오열하는, 눈물로 얼룩진 엄마의 얼굴이다.   와, 난 이 쿨한 엄마와 완전 반대다. 일단, 아들만 둘인 내게 둘째 기원이는 어려서부터 딸처럼 곰살맞은 존재였는데, 이 아이가 카운슬러에게, 최소 여섯 시간 거리 대학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 바아로 배신감 느꼈다. ‘흠, 그래, 멀리 가거라 아들’ 이래야 하는데, 나 완전히 치를 떨었다는 사실! 기어코, 가까운 대학의 좋은 조건을 거절하고, 비행기로 여섯 시간 걸리는 학교로 정하신 나의 차남!     샌프란시스코 UC 버클리 기숙사에 내려주고 돌아오던 날, 공항 가기 전 차에 함께 앉아 “기원아, 엄마가 기도해줄게” 하고는 눈물이 나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Ruth 언니, 미안해요. 나 왜 이리 찌질한가요. 결국 아들이 “아이구 하나님, 우리 엄마 좀 울지 말게 해주시구요 뉴저지 잘 돌아가게 해주세요” 기도를 했다. 뭔가 소중한 보배 하나를 떨어뜨려 놓고 가는 듯한 허전함에, 공항 가는 내내 울었던 기억. 개학하고, 동료 선생님들에게 이 이야길 했다. 그런데 듣고 있는 선생님들이 다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자기 아이들 대학 갈 때 다 그런 마음이었던 거다!   여름이다. 아이들이 떠나간다. 대학으로, 첫 직장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 가정을 이루어, 이 넓은 미국 땅 곳곳으로 마구마구 떠나간다. 아이들은 떠나기 위해 자라고, 부모들은 보내기 위해 키운다. 부모님을 떠나온 우리가, 이제 아이들을 미래를 향해 떠나보낸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나오는 ‘자녀들에 대한 시’ 구절을 자꾸 마음에 새겨보는 요즘이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갈망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중략)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하여 활 쏘는 자인 신은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겨누고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그대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그대는 활 쏘는 이의 손에 의해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엄마 ruth 아들딸이니 그들 절대 눈물

202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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