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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첫 태권도 올림픽 금 지미 김 선수, 56세 별세

미국 최초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인 한인 2세 지미 김(사진)씨가 별세했다. 향년 56세. 5일 온라인 매체 ‘레거시닷컴’은 김씨가 지난달 23일 UC 샌디에이고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그가 오랜 기간 앓던 희귀 자가면역질환인 피부근염(dermatomyositis)이 사망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헤비급에 출전, 미국 남성으로서는 최초로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된 인물이다.   그는 걸음마를 시작하자마자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해 7세 때부터 경기에 참여했다. 헤비급 선수로 1985년 월드 게임과 1987년 팬암 게임을 포함한 여러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처음 시범종목으로 채택됐을 때 그는 한국의 유력한 우승 후보를 꺾고 금메달을 따면서 미국 내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올림픽 우승 이후 몇 년 동안은 스포츠 의학과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했다.     1999년에는 라구나니겔에서 ‘지미 김 태권도 센터’를 열고 올림픽 선수 샬럿 크레이그를 포함해 여러 학생을 훈련하며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그 결과 수십명의 주니어 및 시니어 전국 챔피언을 배출했다. 올림픽의 활성화와 더불어 올림픽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 2017년에 LA 올림픽 자문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장수아 jang.suah@koreadaily.com금메달리스트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한인

2023-07-05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아시안 인종차별' 봉변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체조선수 수니 리(18.사진)가 인종차별 폭력에 노출된 경험을 털어놓았다. 11일 CNN에 따르면 리는 지난달 아시아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뒤 밖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들 옆으로 차 한 대가 지나가더니 차에 탄 사람들이 ‘칭총(ching chong)' 같은 동양계 비하 발언을 쏟아내면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라”고 쏘아붙였다.   승객 한 명은 수니 팔에 후추 스프레이를 뿌렸고, 그들은 곧바로 현장을 벗어났다.   리는 “너무 화가 났지만 그들이 바로 도망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유명인으로서 곤란할 수 있는 일에 휘말리는 건 원치 않아 그냥 놔뒀다”고 말했다.   아시안 혐오와 인종차별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급증했다.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을 추적하는 비영리단체 ‘스톱 AAPI 헤이트’에 따르면 올해 1∼6월간 관련 행위 4533여 건이 보고됐다.   라오스 출신 몽족인 리는 지난 7월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개인종합 금메달을 획득한 뒤 인터뷰에서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리는 “우리를 이유 없이 혐오한다”며 “우리가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건 멋진 일”이라고 말했다.미국 금메달리스트 아시안 인종차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인종차별 폭력

2021-11-12

‘완벽해야’ 압박감에 시달렸다…스노보드 선수 클로이 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스노보드 선수 클로이 김 선수가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전했다.   유명 잡지 쉐이프(shape)는 8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클로이 김 선수가 대중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것과 관련해 본인의 정신건강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고 전했다.   김 선수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항상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그것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며 “그게 계속되다 보니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걱정이 돼서 한동안 계속 화를 냈다. 그건 나에게 독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선수는 “그때 나를 잘 돌봐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기 싫은 것이 있을 때 그것을 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계속 강요할 수 없었다. 그제야 내 삶을 관리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김 선수는 운동과 개인 생활 사이에 경계선을 긋기 시작했다. 일상과 운동을 구분하는 것은 비로소 진정한 ‘나’를 찾는 시발점이 됐다.   김 선수는 “나는 지금 완전 정신적으로 변했다. 스노보더 ‘클로이 김’이지만 집에 오면 눈 위에 있을 때와 전혀 다른 캘리포니아 소녀인 ‘클로이 김’”이라며 “나는 그러한 ‘클로이 김’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한편, 클로이 김 선수의 인터뷰가 실린 셰이프 12월호는 오는 12일 발행된다. 김 선수는 ‘천재 스노보더’로 불린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미국 스노보더 대표로 출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하프파이프 2연패를 달성할 지가 관심사다. 장열 기자스노보드 압박감 스노보드 선수 천재 스노보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021-11-11

"불가능은 없다", 새미 이 박사 올림픽 회고…아시안 아메리칸 최초 금

“미국에서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인 2세 새미 이(91) 박사는 1948년 런던올림픽을 회고하며 출전 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64년 만에 런던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23일 ‘그들의 전성기(Their Golden Years)’라는 특집을 인터넷판으로 보도하며 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했던 미국 대표선수 14명의 육성 메시지와 사진을 소개했다. 이 중에는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우승, 아시안 아메리칸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된 이 박사의 메시지도 포함됐다. 이 박사는 메시지에서 “'백인들이 더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색 인종은 올림픽 다이빙 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1920년 캘리포니아주 프레스노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 사이에 태어난 이 박사는 12살이던 32년부터 다이빙 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아시안을 비롯해 흑인·히스패닉 등 유색인종은 프레스노의 브룩사이드 수영장이 매주 물을 빼내고 청소하기 위해 휴장하던 목요일의 전날인 수요일 ‘인터내셔널 데이’에만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박사는 코치가 뒷마당에 특별히 파 준 웅덩이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이 박사는 “가끔씩 피를 토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했지만 최초의 비백인 다이빙 챔피언을 꿈꾸던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박사는 결국 48년 런던올림픽에서 10m 플랫폼 챔피언이 됐으며, 3m 스프링보드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4년 후 헬싱키올림픽에서도 10m 플랫폼에서 금메달을 따 2연패를 달성한 뒤 은퇴했다. 남가주대(USC) 의대를 졸업한 이 박사는 53~55년 군의관으로 한국에서 복무했으며,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운동선수에게 주어지는 제임스 설리번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또 의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다이빙 대표팀을 지도해 그렉 루가니스와 팻 맥코믹 등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이 박사는 미국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으며, 지난 2010년에는 LA 한인타운 올림픽블러바드와 노르망디애브뉴 코너가 ‘새미 이 스퀘어’로 공식 명명되기도 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헌팅턴하버에 살고 있는 이 박사는 올해 올림픽 참관을 위해 당시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런던을 다시 찾을 계획이다. 박기수 기자 kspark206@koreadaily.com

2012-07-23

"인종차별도 다이빙 영웅 막지 못했다"…LAT, 새미 리 박사 대서 특필

LA타임스가 한인 이민 2세로 올림픽 다이빙에 미국 대표로 출전해 두 차례 연속 금메달을 딴 새미 리(90.사진) 박사를 크게 소개됐다. LA타임스는 30일 스포츠 섹션 2면에 새미 리 박사의 사진과 함께 '인종차별이 결코 그가 세계적 다이빙 영웅이 되는 길을 막지 못했다'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이 신문은 새미 리 박사가 1940년대 심한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미국 대표로 다이빙 금메달을 딴 데 이어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32세의 나이로 금메달을 거머쥔 전 세계 이민자들의 영웅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새미 리 박사가 고교 시절 유색인종으로는 처음 학생회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이야기와 1주일에 단 하루 유색인종에게 수영장 입장이 허용되던 시절에 어렵게 수영을 배운 이야기를 소개했다. 새미 리 박사는 이 신문과 인터뷰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나의 꿈을 막지 못했다면서 "(인종차별에) 화가 났지만 (그때) 미국에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새미 리 박사는 다음 주말 개관하는 LA 통합교육구의 '고교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다른 54명과 함께 자랑스러운 인물로 헌정될 예정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1920년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새미 리 박사는 한인사회에서 살아있는 '이민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지난해 8월에는 한인타운에 '새미 리 광장'이 지정되기도 했다.

2011-05-30

[OC] 올해 주제는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박사'…'영웅에세이 콘테스트' 개최

한인2세들에게 한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제 2회 영웅에세이 콘테스트가 열린다. 지난 해 2차대전의 영웅 김영옥대령의 삶을 조명하는 초대 영웅에세이 콘테스트로 2세들에게 한민족의 자부심을 불러 일으킨 스티브 황보 라팔마 시의원과 김도원 세리토스고 한인학부모회 회장은 올해는 올림픽 영웅 새미 리 박사를 에세이 주제로 정했다. 김 회장은 "새미 리 박사는 온갖 차별과 역경을 딛고 아시안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영웅"이라며 "박사의 삶을 통해 미국에서 살아가는 2세들이 한국의 정신을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에세이 주제는 '새미 리 박사의 삶이 미국에서 한인으로 살아가는 당신의 미래를 계획함에 어떠한 도움을 줍니까?'로 전국의 6~12학년 한인학생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없다. 에세이 접수는 이메일(koamheroes@gmail.com)로만 가능하며 마감일은 다음 달 25일이다. 주최측은 참가자를 중등부(6~8학년)와 고등부(9~12학년)으로 나눠 7월 25일 각 3편의 우수작을 선정한 뒤 300달러의 아이팟 터치를 부상으로 전달한다. 또한 2등 6명에게도 도서상품권을 선물로 수여한다. 황보 의원은 "새미 리 박사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의대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으로 선출되는 등 가정과 사회에서 큰 모범이 되었다"면서 "한인 2세들도 리 박사를 본받아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의 정체성을 지키고 사회에 공헌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에세이 콘테스트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웹사이트(www.koreanamericanheroes.org)를 참고하면 된다. 백정환 기자

2011-05-10

'새미 리 박사 광장' 감격의 행사…현판 기둥 부여잡고 "내 생애 최고의 날"

"보잘 것 없는 소수계 이민자 자녀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시절이 올 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5일 1948년 런던 올림픽과 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아시안으로 사상 처음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다이빙 금메달리스트 새미 리 박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올림픽과 노먼디 거리에 세운 '새미 리 박사 광장' 현판이 공개되자 주인공인 리 박사는 현판이 걸린 기둥을 꼭 잡고 감격했다. 공개된 현판에는 '닥터 새미 리 광장. 미국의 첫 아시안 금메달리스트. 1948년 런던 올림픽-다이빙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다이빙'이라고 적혀 있다. 허브 웨슨 시의원(10지구)과 탐 라본지 시의원(4지구)이 이날 다울정 앞에서 공동주관한 기념식에는 리 박사의 부인 로즈 리 여사와 베벌리힐스경찰국 루터넌트인 아들 샘 2세(50)가 참석해 함께 기쁨을 나눴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남가주에 거주하는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 10여명도 참석했으며 미셸 박 조세형평위원 하기환 윌셔센터코리아타운주민의회 의장 박요한 새LA한인회장 스칼렛 엄 LA한인회장 등 각계 인사 80여명이 참석했다. 88년 서울 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현재 남가주 올림픽선수협회 회장인 캐티 마리노씨는 "온갖 차별과 역경을 딛고 금메달을 획득한 새미 리 박사는 한인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미국인들의 희망이자 자랑"이라며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딴 광장이 생겨 올림피안으로서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웨슨 시의원과 라본지 시의원도 "오늘은 한인들 뿐만 아니라 LA시에도 매우 뜻깊은 날"이라고 축하인사를 전했다. 한편 하기환 코리아타운 주민의장은 "올림픽과 노먼디 교차로 아스팔트 바닥에 다이빙 그림을 새기는 것을 제안했다"며 "모든 이들에게 이곳에 '새미 리 박사 광장'이라는 것을 알려 한인타운이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연화 기자

2010-08-05

"새미 리 광장, 커뮤니티 자랑되길" LA시의회, 명명 조례안 통과

1일 LA시의회가 올림픽과 노먼디 블럭을 '새미 리 광장'으로 지정하는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허브 웨슨(사진) 시의원은 상기된 표정으로 "올림픽 불러바드에 '올림피언'인 새미 리 박사의 이름을 붙이게 돼 기쁘다. 한인 커뮤니티의 자랑인 '새미 리 광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은 조례안 통과 후 본지와 인터뷰를 가진 웨슨 시의원과의 일문일답. -새미 리 박사가 한인 커뮤니티에 부여하는 상징성에 대해 알고 있는가? "물론이다. 1948년과 1952년 두 차례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다이빙 전설' 아닌가. 다이빙 스타 그레그 루가니스 선수를 지도해 금메달리스트로 키워낸 전력도 잘 알고 있다. 한인 이민 역사상 최고의 스포츠맨인 리 박사는 분명 커뮤니티가 보유한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왜 올림픽과 노먼디 블럭을 '새미 리 광장'으로 지정했나? "리 박사는 한인커뮤니티를 대표하는 '올림피언'이다. LA한인타운을 가로지르는 올림픽 불러바드에 올림피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또 이곳에는 다울정이 세워져 있으며 한인타운 5개년 개발 계획의 일부인 '한인타운 노인 및 커뮤니티 센터' 건물도 마무리 작업 중에 있다. 여러모로 볼 때 한인커뮤니티에는 상징적인 장소다. 앞으로 노인센터 건물이 완공되면 건물 앞 도로인 아이롤로가를 차단시켜 잔디밭을 조성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많은 시민들이 방문 할 수 있는 지역 명소가 될 것이다." -명명식은 언제 할 예정인가? "리 박사의 생일(8월 1일)을 기점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아무리 늦어도 내달 안에는 마무리 될 것이다." 글.사진=황준민 기자

2010-07-21

'새미 리(올림픽 다이빙 영웅) 광장' 타운에 생긴다

LA한인타운에 올림픽 다이빙 금메달리스트를 기리는 '새미 리 광장(Sammy Lee Square)'이 생긴다.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허브 웨슨 시의원(10지구)은 13일 올림픽과 노먼디 블럭을 '새미 리 광장'으로 지정하는 조례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현재 이곳에는 다울정이 세워져 있으며 '한인타운 노인 및 커뮤니티 센터' 건물도 마무리 작업 중에 있다. 노인센터는 건물이 완공되면 건물 앞 도로인 아이롤로를 차단시켜 잔디밭을 조성할 계획이다. 따라서 이곳이 새미 리 광장으로 지정되면 이 일대가 한인타운의 상징적인 거리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례안에 대해 웨슨 사무실의 마이클 배 수석보좌관은 "한인 커뮤니티의 영웅인 새미 리 박사를 기리자는 의미에서 추진하게 됐다"며 "올림픽 불러바드가 앞으로 타운의 중심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조례안은 다음 주쯤 본회의에 상정돼 투표에 회부될 예정이다. 시의회 관계자들은 이 조례안이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내용인 만큼 승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웨슨 사무실은 조례안이 통과되는 대로 올해 90세를 맞는 새미 리 박사의 생일(8월1일)에 맞춰 명명식을 가질 예정이다. ■새미 리는 누구? 하와이 사탕수수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새미 리 박사는 1948년과 1952년 두 차례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다이빙 분야에서는 전설로 통한다. USC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딴 그는 의사로 일하다 28세 때인 1948년 런던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땄고 4년 뒤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우승했다. 미국 다이빙스타 그레그 루가니스 선수의 감독을 맡아 그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이끌기도 했다. 장연화 기자

20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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