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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없다", 새미 이 박사 올림픽 회고…아시안 아메리칸 최초 금

다이빙 인종차별에 도전
64년 전 런던 이어 2연패

“미국에서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인 2세 새미 이(91) 박사는 1948년 런던올림픽을 회고하며 출전 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64년 만에 런던에서 다시 열리는 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23일 ‘그들의 전성기(Their Golden Years)’라는 특집을 인터넷판으로 보도하며 48년 런던올림픽에 참가했던 미국 대표선수 14명의 육성 메시지와 사진을 소개했다.

이 중에는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우승, 아시안 아메리칸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된 이 박사의 메시지도 포함됐다.

이 박사는 메시지에서 “'백인들이 더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색 인종은 올림픽 다이빙 챔피언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1920년 캘리포니아주 프레스노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 사이에 태어난 이 박사는 12살이던 32년부터 다이빙 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당시만해도 아시안을 비롯해 흑인·히스패닉 등 유색인종은 프레스노의 브룩사이드 수영장이 매주 물을 빼내고 청소하기 위해 휴장하던 목요일의 전날인 수요일 ‘인터내셔널 데이’에만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결국 이 박사는 코치가 뒷마당에 특별히 파 준 웅덩이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이 박사는 “가끔씩 피를 토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을 했지만 최초의 비백인 다이빙 챔피언을 꿈꾸던 내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박사는 결국 48년 런던올림픽에서 10m 플랫폼 챔피언이 됐으며, 3m 스프링보드에서는 동메달을 땄다. 4년 후 헬싱키올림픽에서도 10m 플랫폼에서 금메달을 따 2연패를 달성한 뒤 은퇴했다.

남가주대(USC) 의대를 졸업한 이 박사는 53~55년 군의관으로 한국에서 복무했으며,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운동선수에게 주어지는 제임스 설리번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또 의사로 활동하면서 미국 다이빙 대표팀을 지도해 그렉 루가니스와 팻 맥코믹 등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다.

이 박사는 미국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돼 있으며, 지난 2010년에는 LA 한인타운 올림픽블러바드와 노르망디애브뉴 코너가 ‘새미 이 스퀘어’로 공식 명명되기도 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헌팅턴하버에 살고 있는 이 박사는 올해 올림픽 참관을 위해 당시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런던을 다시 찾을 계획이다.

박기수 기자 kspark206@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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