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이티에서 고아 구호 사역을 16년째 하는 우리 단체의 표어는 ‘신나는 심부름’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일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도 한다. 고아들의 식량을 공급하고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분명 신나는 일이지만, 이 심부름은 끝이 없다. 먹는 일은 멈출 수 없고, 배우는 일도 중단할 수가 없다. 나라가 고아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고아들을 돕는 일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 끝이 언제일지 가늠할 수 없다.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일이지만 16년을 먹이고 가르쳤으면 뭔가 이룬 것이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다. 그저 살아왔고, 아이들이 컸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세상에 나아가 어른이 되었고, 어떤 아이는 직업을 가지고 우리를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잊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살길을 못 찾아 고아원으로 되돌아간 아이도 있고, 고아원을 나갔다가 미혼모가 되어 다시 돌아온 아이들도 있다. 어쩌면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우리를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만나 추억을 더듬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고아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결과를 받아 들고 자랑스러워하거나, 커다란 보람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아이티에서는 여전히 갱단의 횡포가 수그러들지 않고, 유엔 경찰이 들어와 치안을 돕고 있는데도 지난 몇 주간 갱단 때문에 또 많은 희생이 발생하기도 했다. 안전 문제로 코로나 이후 고아원을 직접 방문한 것이 거의 4년쯤 되어간다. 대신 갱단이 좀 조용할 때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을 불러 선교센터에서 도시락을 나누고, 건강검진도 하며 만난다. 그렇게 몇 년 혹은 몇 개월 만에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눈에 띄게 자란 것을 보게 된다. 변변찮은 식사지만, 넉넉하지 않아 굶기도 하고 아껴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자란다. 학교에 가는 날만큼 못 가는 날도 많지만, 아이들은 글씨를 읽고, 이름을 쓰고, 숫자를 세며 자란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우리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물론 이 일은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 같아서 끝이 없기에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가난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하고, 언제나 모자라는 식량 때문에 애를 태우기도 한다. 하지만 늘 맑은 눈과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만나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 아이들이 잘 자라서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계속 도울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한다. 사랑은 넘치고 흘러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죄인을 구원하셨다. 오직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절대로 맞교환의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아들과 죄인을 바꾸는 일이 일어났고, 아들을 내어주고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게 했다. 이렇듯 사랑은 머뭇거리지 않고, 조건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랑이 넘친다고 덜어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랑은 낭비하는 것이다. 낭비처럼 여겨지더라도 멈추지 않고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랑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고, 이렇게 멈추지 않는 사랑 안에서 아이들이 꿈을 꾸며 자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밑 빠진 독에서 콩나물이 자라듯 아이들이 자라 세상을 변하게 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고아원 아이들 우리 사랑 고아 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