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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적자(赤字)

적자(赤字)

 
- 금강산기행시초·7
 
임보(1940~)
 
큰 절벽 바위마다
 
붉은 구호(口號) 요란하고
 
명승지 골골마다
 
주석(主席) 장군(將軍) 성소(聖所)로다
 
천만 년
 
지나는 손들
 
두고두고 울리리···
 
- 청산도 유수도 두고 (아트힐스 간행)
 
 
랭보(Rimbo)가 임보(林步)가 되다
 
금강산이 개방됐을 때, 시인은 다녀왔었나 보다. 나도 두 차례 다녀왔었다. 금강산은 역시 아름다운 명산이었다. 그런데 시인이 본 것처럼 큰 절벽 바위에는 붉은색으로 새긴 체제선전 구호가 요란했다. 명승지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이 다녀간 성소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자연과 후대에 죄짓는 짓이라는 생각을 했다. 길어야 백 년을 사는 인간이 천 년 뒤, 만 년 뒤에도 의연할 자연을 훼손하다니···. 시인은 ‘지나는 손들’을 ‘두고두고 울릴’ 것이라며, 이 시조의 제목을 붉은 글씨 ‘적자(赤字)’라고 붙였다. 무서운 일이다.
 
본명은 강홍기(姜洪基). 그런데 프랑스의 천재 시인 랭보를 워낙 좋아해, 영어식 발음인 ‘림보’에 두음법칙을 적용해 ‘임보’를 필명으로 하고 있다. 그는 운율에 기반을 둔 정형시를 많이 쓴다. 또한 시조가 오랜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정형시이기 때문에 한국시의 정체성과 가장 관련이 깊다고 밝혔다.

유자효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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