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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100세 재일 광복군과 오사카 요양시설 ‘산보람’

#노병의 손은 따뜻했다. 한국에서 한번 찾아뵙겠단 말에 주름이 활짝 펴졌다. 열여섯살 어린 나이에 광복군에 합류했던 오성규 애국지사는 평생 일본에 머물다 백세가 되어서야 한국행을 택했다.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고 싶다”는 아버지의 바람.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지난 11일 도쿄 네리마구 한 임대주택. 오 지사의 아들은 푹 고개를 숙인 채 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시러 온 보훈부 장관의 대화를 들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그가 알아듣진 못했겠지만, 그는 무릎을 꿇은채 30여분을 꼼짝하지 않았다.  이젠 한국에 가서야 만날 수 있는 아버지. 자식으로, 애달픈 일일 수 있었지만,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일”이라며 애써 복잡한 감정을 감췄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니까요? 세상에,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선 거예요!” 수화기 너머로 흥분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일본 오사카에 있는 재일동포 어르신을 위한 요양시설 ‘산보람’ 고경일 대표 얘기다. 휠체어가 없으면 거동이 어려운 재일동포 1세 어르신이 장구 반주에 나오는 우리 민요를 듣자 그만, 벌떡 일어났단 얘기다. 그는 “이게 민족의 피인가란 생각을 했다”고 했다.   고 대표가 소위 ‘자이니치’로 불리는 동포 어르신을 위해 요양시설을 만든 건 1990년대의 일. 일본 정부가 우리로 치면 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지만, 정작 가난한 자이니치 어르신들이 갈 곳은 없었다. 일제강점기 때 여러 사연을 안고 일본으로 넘어와, 차별과 가난을 딛고 살다 고독사한 1세 이야기가 그를 움직였다. 마지막 순간만큼 살아온 보람이 있도록 모시고 싶은 마음에 ‘산보람’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곳에 머무는 자이니치 어르신들은 45명. 이 중 절반이 자이니치 1세대로 초고령이다.  아리랑을 부르고, 김치를 담그는 이곳 운영은 쉽지 않은 상태다. 코로나19 여파에다 이용자들의 형편이 좋지 않아서다.   일본의 빠른 고령화를 이야기하면서도 우리는 일본 사회 속 비주류로, 일제강점기 때 끌려오듯 넘어와 한국어와 김치로 마지막을 맞고 싶어하는 자이니치 고령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 주일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일본에 있는 재외국민은 약 48만 명. 이 중 100세 이상의 초고령자는 올해 기준 42명이다. 이들이 어떤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또 이들의 바람은 무엇인지 이젠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김현예 / 한국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글로벌 아이 요양시설 광복군 오사카 요양시설 재일동포 어르신 재일 광복군

2023-08-22

북가주 임시정부 비행학교…'한국 공군 효시' 동상 건립

일제 강점기 시절 북가주에 창설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이하 임정 비행학교)가 한국에서 되살아난다. 최근 한국 공군은 임정 비행학교를 오늘날 공군의 효시로 기리기 위해 동상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임정 비행학교는 공군력을 앞세운 독립전쟁을 위해 1920년 한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윌로우스에 세워졌다. 지난 2009년 본지에 연재된 '숨겨진 미주 독립운동사 임시정부 전투비행학교'에서 공군은 임정 비행학교가 대한민국 공군의 기원임을 인정한 바 있다. 공군은 동상 건립에 17억원(150만달러)의 예산을 편성했다. 동상은 당시 비행대 모습을 실물 크기로 재현해 제작되며 2015년 제막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전시 효과를 높이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세울 계획이다. 공군의 정체성 재확립과 역사 재편을 위해 한국 공군은 지난 2월 태스크포스를 출범해 동상 건립을 진행해왔다. 공군참모차장(공군 중장)이 이끄는 이 태스크포스는 매월 1회 진척상황을 점검하면서 비행학교/비행대 동상 건립 외에도 다큐멘터리 제작 등 11개의 크고 작은 사업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공군의 기원’을 주제로 한 강연도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성일환 공군참모총장(공군대장)에 의해 공군 정책발전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한우성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저자)는 “한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창설된 비행학교가 오늘날 한국 공군의 역사적, 법통적 기원임을 확인시켜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당연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UC리버사이드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의 장태한 소장은 “비행학교/비행대가 한국 공군의 원조라는 것을 밝히는 일은 역사 재정립을 위한 김영옥연구소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이를 통해 한인사회에 대한 미국과 한국에서의 이해를 넓히는데 주 목적을 두고 있다”며 “재외동포사회 위상과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비행학교/비행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치한 비행학교로 후에 비행대로 발전했다. 이 비행학교/비행대는 하와이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임시정부의 초대 군무총장(현재 국방장관)이 된 노백린 장군의 지휘 아래 김종림·신광희 등 미주 한인들의 재정적 지원, 박희성·이용근·한장호 등 파일럿이 돼 독립전쟁에 참가하고자 했던 한인 청년들의 인적 헌신을 바탕으로 설립, 운영됐다<본지 2009년 4월 15일~5월 8일 연재>. 이재희 기자

2012-08-01

박희성 선생(광복군 비행장교 1호), 마침내 고국 품으로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선생이 마침내 고국의 품으로 돌아갔다. 지난 1937년 LA에서 병사한 이후 73년만의 귀환이다. 15일 오전 7시(이하 한국시간) 인천국제공항으로 봉환된 박희성 선생의 유해는 이날 오전 11시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4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 날 안장식에는 박종헌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국가보훈처 관계자 등 정부대표, 광복회 대표, 유가족 등 1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며 광복회장의 약력소개,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 및 헌화 분향, 조총 및 묵념 순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이스트 LA 지역 에버그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던 박 선생의 유해는 지난 달 19일 파묘 작업을 거쳐 화장된 후 LA에 보관돼 있다가 14일 새벽 한국으로 봉환됐다. 보훈처 관계자는 "박희성 선생을 포함한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388위 가운데 122위가 봉환되어 국립 현충원 등에 안장됐다"며 "아직 봉환되지 않은 266위 중 소재가 확인된 102위는 현지에서 묘소를 단장해 민족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선생은 1896년 황해도 태생으로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18년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조종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 왔다. 이어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북가주 윌로스에 설치한 전투비행학교에 입교 1921년 비행사가 됐으며 임시정부는 박 선생을 비행장교로 임관시켰다. 하지만 박희성은 비행시험 중 기체 사고로 추락해 입은 중상의 후유증으로 1937년 4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광복절 때 박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한 바 있다. 곽재민 기자 jmkwak@koreadaily.com

2010-11-14

73년만에 '일왕 나무 그늘' 벗어났다…내달 한국으로 봉환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선생이 세상과 다시 만났다. 지난 1937년 LA에서 병사한 이후 73년만이다. 19일 오전 이스트 LA 에버그린 공동묘지에서 한국공군 출신들의 모임인 보라매동지회 회원과 묘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박 선생의 유해 봉환을 위한 파묘 작업이 진행됐다. 파묘는 유가족의 사전 동의와 묘지측의 허가에 따라 오전 10시부터 진행됐으며 박 선생의 유해는 오전 10시 50분쯤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 날 발굴된 박 선생의 유해는 화장됐으며 한국정부측이 정한 봉환 날짜까지 LA에 보관된다. 한국으로의 유해 봉환은 다음달 중순쯤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박 선생은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 날 파묘를 지켜본 보라매동지회 이선주 회장은 "일왕이 심은 나무 그늘 아래 잠들어있던 대한민국 공군 1호 박 선생이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다"며 "미주 한인 이민자의 대선배이기도 한 박 선생의 유해 봉환 현장을 한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켜볼 수 있어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박 선생은 1896년 황해도 태생으로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18년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조종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 왔다. 이어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북가주 윌로스에 설치한 전투비행학교에 입교 1921년 비행사가 됐으며 임시정부는 박 선생을 비행장교로 임관시켰다. 하지만 박희성은 비행시험 중 기체 사고로 추락해 입은 중상의 후유증으로 병사했다. 한편 지난 7월 LA를 방문했던 김양 국가보훈처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희성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추서돼 연 내 한국으로 봉환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곽재민 기자 jmkwak@koreadaily.com

2010-10-19

박희성 선생 유해 봉환 실사단 3명 LA에 왔다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선생(사진)의 유해 한국 봉환을 위한 실사단이 LA를 찾았다. 〈본지 8월 12일 A-2면> 19일 오전 국가보훈처(처장 김양) 안중현 보훈선양국장을 비롯 안주생 행정사무관 등 3명으로 구성된 실사단은 박희선 선생의 유해가 안장돼있는 이스트 LA 지역 에버그린 공동묘지를 찾아 박 선생의 묘지를 답사하고 공동묘지 현황 등을 둘러봤다. 이 자리에서 안중현 국장은 "미주에서 진행된 65주년 광복절 행사 참석과 미주 독립 운동 지역 등을 점검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며 "지난 광복절 때 박 선생이 건국포장을 받으면서 독립유공 공적을 인정받게 됐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박희성 선생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묘지를 직접 보기 위해 마지막 일정으로 LA를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으로 돌아가 박 선생의 유해 봉환을 위한 실무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박 선생의 유해 한국 봉환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초 박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은 지난 1995년 세상에 알려졌지만 출생과 사망일 등이 확인되지 않아 독립유공자 인정이 보류됐었다. ☞박희성 선생은. 지난 1921년 5월 독립전쟁에 참전할 조종사 양성을 위해 북가주 윌로우스에 설립된 비행사 양성소를 졸업한 뒤 그 해 7월 임시정부 국무원회의에서 비행장교인 참위(소위)로 임관된 대한민국 최초의 비행장교이다. 곽재민 기자 jmkwak@koreadaily.com

2010-08-19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선생, 건국포장 확정 '영웅 빛' 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임명한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선생(사진)이 건국포장을 받는다. 국가보훈처는 다음 주 실사단을 파견해 유해 봉환을 위한 실무작업에 나선다. 11일(한국시간) 국가보훈처(처장 김양)에 따르면 제 65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박 선생을 비롯 안중근 의사의 4촌 동생인 안홍근 선생 등 총 338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에게 훈장 및 포장을 수여한다. 박 선생은 지난 1921년 5월독립전쟁에 참전할 조종사 양성을 위해 북가주 윌로우스에 설립된 비행사 양성소를 졸업한 뒤 그 해 7월 임시정부 국무원회의에서 비행장교인 참위(소위)로 임관된 대한민국 최초의 비행장교이다. 박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은 1995년 세상에 알려졌지만 출생과 사망일 등이 확인되지 않아 독립유공자 인정이 보류됐다가 최근 가주 공공보건과에서 발급한 사망확인서 묘소 등이 확인돼 올해 포상 대상자에 올랐다. 박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됨에 따라 한국으로 그의 유해를 봉환하려는 작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훈처는 내주 쯤 박 선생의 유해가 안장돼 있는 이스트LA의 에버그린 공동묘지에 현지 실사단을 파견해 묘지 실태와 화장 등 유해 봉환 절차에 대한 실무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재 박 선생 잠들어 있는 에버그린 공동묘지에는 일본계가 다수 안장돼 있으며 아키히토 일왕이 왕세자 시절이던 1953년 LA를 방문해 기념식수를 하고 일본계 사망자들을 위해 위령탑을 세웠다. 박 선생의 묘지는 이 기념식수 위령탑으로부터 불과 30피트 거리에 있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박 선생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프리랜서 언론인 한우성씨는 "역사의 그늘에 묻혀있던 우리의 영웅이 이제 빛을 볼 수 있게 됐다"며 "박 선생의 유해 봉환과 관련한 절차들이 신속하게 마무리돼 하루라도 빨리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는 건국훈장 218명(독립장 5명 애국장 108명 애족장 105명)과 건국포장 41명 대통령표창 79명 등으로 여성은 6명이며 생존자는 없다. 포상자는 1995년 광복 50주년 포상 이후 최대 규모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애국지사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06명 애국장 3669명 애족장 4547명 건국포장 866명 대통령표창 2198명 등 총 1만2209명이다. 곽재민 기자 jmkwak@koreadaily.com

2010-08-11

김종림 독립운동가 유가족에 건국훈장

미주 한인 백만장자 1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고 김종림 지사(1886~1973)의 유가족들에게 한국 정부의 훈장과 감사패가 전달됐다. LA총영사관은 20일 고 김종림 지사의 유가족을 초청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을 수여했다. 김종림 지사는 '백미대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쌀농사로 막대한 부를 쌓은 뒤 재산 대부분을 독립운동에 쏟아부은 인물이다.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을 위해 1920년 북가주 윌로우스 일원에 비행학교를 설치하고 조종사를 양성했을 때 재정지원을 도맡으며 학교를 이끌었다. 또 도산 안창호와 1913년 흥사단을 창설할 때는 함경도 대표였고 이승만 대통령과 대동고아원 건립 주도 공립신보와 신한민보의 인쇄인 등 굵직굵직한 활동으로 미주 한인 이민사에 독보적 위치에 있는 독립운동가다. 이날 병환으로 참석하지 못한 김 지사의 장녀 코라 오(91)씨를 대신해 훈장을 받은 손자 스티븐 김(55) 외손녀 스테파니 번(56)씨는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할아버지가 어떤 인물이었는 지를 배웠다"면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활동을 인정해 준 한국 정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총영사관측은 "한국 정부에서 지난 2005년 김 지사를 독립운동가로 인정하고 훈장을 추서했지만 그동안 유가족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훈장이 수여되는 데 5년이 걸렸다"고 밝혔다. 서우석 기자

2010-07-20

고국 품으로 가는 '구국의 혼'…'일왕 나무 그늘'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유해 한국 봉환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선생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그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된다. 박 선생의 유해는 현재 일본계가 다수 안장돼 있는 에버그린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본지 7월 3일 A-1면> 한국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지난 2일 열린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 최종심에서 박희성을 6급 독립유공자로 최종 승인했다. 이번 승인안은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광복절인 오는 8월 15일쯤 공식 발표될 예정이며 박 선생에게는 건국포장이 주어지게 된다. 이 후 유족의 신청 절차를 밟아 빠르면 오는 9월 그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봉환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국가보훈처측은 해외 안장 선열 유해 봉환은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받은 사람에게만 부여하는 관계 규정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규정으로 인해 미포상자인 박 선생의 유해 봉환 여부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박 선생이 6급 독립유공자로 최종 승인이 남에 따라 유해 봉환 문제는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다. 박 선생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프리랜서 언론인 한우성씨는 "지난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북가주 윌로우스에 설치한 전투비행학교를 집중 취재하면서 박 선생에 대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의 그늘에 묻힌 영웅의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박 선생의 유족을 찾아 유해 봉환에 대한 위임장을 받았고 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의 첫번째 프로젝트로 유해 봉환 작업을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광복회장을 지낸 김우전 한국광복군동지회 고문과 긴밀히 협력해 지난해 11월 18페이지 분량의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보훈처에 제출했다"며 "앞으로 남은 절차들이 잘 마무리되길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박 선생은 1896년 황해도 태생으로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18년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조종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 왔다. 이어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북가주 윌로우스에 설치한 전투비행학교에 입교 1921년 비행사가 됐으며 임시정부는 박 선생을 비행장교로 임관시켰다. 하지만 박희성은 비행시험 중 기체사고로 추락해 입은 중상의 후유증으로 1937년 LA에서 병사했다. 곽재민 기자

2010-07-16

"임정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 유해 고국 품으로"

"일왕이 심은 나무 그늘에 잠든 독립운동가를 고국으로 모시자." 오렌지카운티 한인이 일본인들의 묘역에 잠들어 있는 '광복군 비행장교 1호' 박희성(작은 사진)의 유해를 한국으로 봉환하기 위한 노력에 앞장서고 있어 화제다. 가든그로브에 거주하는 로마노 김(55)씨가 그 주인공. 김 씨는 올해로 15년째 각종 사건 사고로 숨진 한인들의 묘지를 방문해 영혼을 위로하고 무연고자 묘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통해 한인사회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김 씨가 박희성 유해 봉환 사업에 나서게 된 데는 지난 해 4월13일부터 LA 중앙일보에 연재된 '임정의 전투비행학교' 시리즈가 계기가 됐다. 프리랜서 언론인 한우성씨는 지난 2008년 이후 1년 여 동안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정)가 1920년 2월 북가주 농촌의 소도시 윌로우스(Willows)에 설립한 전투비행학교를 집중취재해 그 존재를 알렸다. 한 씨는 그 결과물을 중앙일보에 시리즈로 연재하는 과정에서 박희성의 생애를 자세히 소개한 바 있다. 1896년 황해도 태생인 박희성은 연희전문학교 재학 중이던 1918년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조종사가 되기 위해 미국에 도착 1920년 오늘날 한국 공군사관학교의 모태인 전투비행학교에 입교했다. 뛰어난 조종술로 촉망받던 박희성은 이듬해 7월 2차례의 시험을 통해 국제항공연맹으로부터 조종사 자격증을 받았고 임시정부는 그를 이용근과 함께 비행병 참위(오늘날의 소위)로 임명했다. 광복군 최초의 비행장교가 됐지만 박희성은 1차 비행 시험에서 추락사고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시름시름 앓다 1937년 LA에서 병사했다. 41세의 나이에 미혼으로 요절한 박희성은 현재 일본계가 다수 안장돼 있는 이스트 LA의 에버그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다. 이 묘지는 아키히토 일왕이 왕세자 시절이던 1953년 LA를 방문해 기념식수를 하고 일본계 사망자들을 위한 위령탑도 세운 곳이다. 박희성의 묘지는 이 기념식수 위령탑으로부터 불과 33피트 거리에 있다. 김 씨는 "지난 4월에 묘지를 직접 찾아 갔는데 박 선생 묘 뒤로 일본계들의 묘비가 수두룩했다"며 "한국 국립묘지에서 영면하셔야 할 분이 엉뚱한 곳에 너무 오랫 동안 잠들어 계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5월 중순 유해 봉환을 청원하는 편지를 작성 자신이 촬영한 박희성의 묘 사진과 함께 청와대 비서실 백범 김구 선생의 아들로 공군 참모총장을 지낸 김신 백범 김구 기념관장 국가보훈처에 각각 발송했다. 공군 267기로 군 복무를 마친 김씨는 "내가 나설 일인가라는 망설임도 있었지만 공군 후배인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느냐는 생각으로 유해 봉환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국가보훈처로부터 답신을 받았다. 6월4일자로 작성된 답신에 따르면 해외안장 선열 유해 봉환은 독립유공자로 포상받은 이에게만 부여하는 관계 규정으로 인해 김 씨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보훈처 김순애 사무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해외에 안장된 애국선열 유해는 유족이 봉환을 희망할 경우 현지 묘소관리 실태 등을 파악해 국내 유해봉환을 추진하며 박희성 선생은 현재 독립유공자 미포상자이므로 유해 봉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해 봉환의 길이 열릴 가능성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광복회장을 지낸 김우전 한국광복군동지회 고문이 박희성의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보훈처에 제출해 놓았기 때문이다. 김 고문은 비록 독립전쟁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박희성 같은 이들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며 포상을 청원한 상태다. 이에 대해 김 사무관은 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희성 선생이 올해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대상에 올라 있고 심의 결과는 광복절인 8월15일에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환 기자

2010-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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